여기 없는 모든 것

[단편소설]

 

 

여기 없는 모든 것

 

 

기준영

 

 

    주말 오후 네 시경이 되어 그들은 쇼핑몰 내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섰다. 인주는 맥주를, 이석은 무알콜 칵테일을 한 잔씩 주문해 받아들고는 빈자리를 찾아 실내를 둘러봤다. 폭이 좁은 공용 테이블의 가장자리 좌석만이 비어 있기에 그들은 그리로 갔다. 나란히 앉은 한 커플과 마주 보는 자리였다. 커플은 말끝마다 서로를 ‘여보’라고 불러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인 듯했다. 남편은 졸음에 겨운 표정으로 손등에 턱을 괴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앞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팬지와 오로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주는 그게 이 부부가 기르는 새나 고양이, 개의 이름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가, 이내 이들 사이에서만 호환되는 성적인 신호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빙글거리는 표정과 간지러운 접촉으로 예열되는 빨간 팬지나 부드러운 오로라의 세계. 그때 이석이 부부의 말투를 흉내 내 인주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래 내가 어떡하면 좋겠어요, 여보?”
    인주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대꾸했다.
    “마시고 일어나자.”
    인주는 맥주 한 잔을 단숨에 거의 다 들이켰다. 부부가 동작을 멈추고 인주와 이석을 바라보았다. 이석이 칵테일 잔을 입가에 갖다 대 입술만 축였다 떼고서 다시 “여보.” 하고 운을 떼자, 인주는 천천히 두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보 소린 그만둬.”
    이석이 마저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잘할게, 걱정하지 마요.”
    인주는 가방을 둘러메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부가 그들을 흘깃거리며 귓속말을 나눴다. 이석이 인주를 뒤따라 나섰다.
    카페를 벗어나자마자 인주는 부루퉁한 얼굴로 이석을 흘겨보았으나, 이석은 괘념치 않았다.
    “하하. 미안합니다. 근데 좀 웃어요, 누나. 너무 긴장하셨네.”
    인주는 못 말리겠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앞서 나갔다. 그러다 두 사람은 점점 보폭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이름난 한 인테리어 숍의 분점이 이 쇼핑몰에 새로 들어섰다는 광고 메일을 받아 봤을 때, 인주는 엄마의 생일선물 품목을 마음으로 정해 두고 이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만 애인 노릇 해줄 수 있어?”
    이석은 잠깐 사이를 뒀다가, 이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도형이랑 같이 있어요?”
    도형은 이석의 친구이자 인주의 사촌이었다. 도형이라면 이런 질문에 상대가 내보일 만한 반응을 점치면서 그저 웃자고, 재미 삼아 인주와 내기를 해봤을 수도 있겠다고 이석은 생각했다. 그런데 인주가 되물었다.
    “도형이가 왜? 걔가 나에 대해 뭐라 해?”
    이석은 자연스럽게 말길을 돌렸다.
    “도형이랑도 본 지가 좀 돼서요, 그래서…….”
    이석은 인주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인주가 조곤조곤 용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한테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 너한테는 어려운 일은 아닐 거 같아. 다음 주 토요일이 엄마 생일인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찾아뵙겠어. 엄마 생각에는 내가 지금 죄인이거든. 넌 워낙 분위기를 잘 맞춰 주니까 같이 있으면 한결 내 숨통이 트일 거야. 새로운 사람을 데려가면 엄마도 해묵은 걱정거리에는 신경을 덜 쓰겠지.”
    이석은 ‘해묵은 걱정거리’와 ‘새로운 사람’이라는 표현 뒤에 놓인 배경이 무엇일까 가늠해 보았지만,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애인 치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실수하면 어떡하시게요?”
    이석은 동행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이런 질문을 했다.
    “선입견은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뭐.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돼.”
    인주는 가부간 서로 불편해지지지 않도록 미리 이렇게 말해 뒀다.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요.”
    인주는 그제야 안도한 듯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그전에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 인주가 출강하는 학교 근방의 카페를 약속장소로 정해 뒀다.
    그로부터 이틀 후 이석이 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으로 그려 본 다음 상황은 이러했다. 인주를 만나 그간의 근황을 주고받은 뒤에 인주의 어머니를 대하는 데 조심할 것들이 무엇인지 간단하게나마 파악한다. 다가올 주말의 일을 놓고 서로 좀 더 편안해진다. 함께 식사를 한다. 웃는다. 헤어진다. 돌아온다. 그런데 전철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주에게서 약속을 미뤄야만 할 것 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석이 왜냐고 묻는 말에 인주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먼저 끊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어지는 침묵의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되었다.
    “어디예요? 괜찮으면 제가 그리 갈게요.”
    이석은 전철에서 내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하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서 인주가 있다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인주의 열두 살 난 애완견이 오랜 병치레 끝에 이 날 늦은 오후에 숨을 거두었다. 이석은 그 암컷 발바리의 이름이 승희였다는 것도, 애완동물 장례업체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됐다. 그는 인주의 차에 인주와 죽은 개를 태우고서 교외에 있는 한 애완동물 화장터로 운전을 해 갔다. 화장터는 그의 짐작보다는 자그마한 곳이었는데, 죽은 동물들을 안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들 말고도 세 명 더 대기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옆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이는 없었다. 화장하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흔들고 있는 듯했다. 이석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인주가 예를 치르고, 또 값을 치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인주는 차 뒷좌석에서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조금 울다가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루가 저물어 간 탓에, 이석은 무언가를 더 묻고 말고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채로 인주의 그 ‘복잡한 사정’의 일부가 됐다. 애인 노릇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제 집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설 즈음에는 ‘그날’을 위해 적당한 옷이라도 찾아 두는 게 좋겠다는 데 자연스레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카페와 음식점이 모여 있는 A구역을 돌아 생활용품과 잡화, 옷가게들이 모여 있는 B구역으로 들어섰고 거기서 인테리어 숍을 발견했다.
    “이런 데가 있었네. 여기 들러 가요?”
    이석은 인주가 멈춰선 데서 걸음을 멈추었다가, 눈치껏 그녀를 뒤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인주는 젊은 여자 점원에게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장식장 안에 둘 예쁘장한 장식품을 찾아요.”
    점원이 첫 번째로 권한 것은 춤추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한 쌍이 서 있는 오르골이었고, 두 번째로 권한 것은 크리스털로 만든 손바닥만 한 첼로 모형이었다. 점원은 어떤 신혼부부는 조금 전 두 가지를 다 사갔다며 구매를 부추겼다.
    “첼로요.”
    인주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크리스털 첼로를 골랐다. 그게 칠십대 노인을 위한 선물이 될 거라고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좋은 선택이세요. 너무 예쁘죠.”
    점원은 그렇게 의례적인 추임새를 넣고서 뒤돌아서더니,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되돌아서서는 그걸 인주 앞으로 스윽 밀어 놓았다.
    “3호점 오픈 기념이에요. 운 좋으면 사은품이 딸려갑니다!”
    점원은 인주에게 상자 속에 작게 접힌 색색의 종이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라고 시키고는, 충전재가 들어 있는 검정색 케이스에 크리스털 첼로를 넣었다. 인주는 그제야 이석을 돌아보았다.
    “해보겠어?”
    이석은 인주가 이끄는 대로 플라스틱 상자에 난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석이 끄집어낸 종이에는 숫자 4가 적혀 있었다. 4번 사은품은 도자기로 만든 연노랑색의 자그마한 알 모양 장식품이었다.
    “애들 건가요?”
    이석이 물었다.
    “한번 열어보시죠.”
    점원은 그 알 속에 대답이 들어 있기라도 하다는 듯 웃음 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연다고요?”
    이석은 그 작은 물건이 위아래로 절반이 나뉘어져 있는 걸 확인했다. 뚜껑에 해당되는 윗부분을 들어 올리자 아랫부분에 작은 인공의 나비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게 드러났다.
    “하아! 애들 거네요.”
    이석은 개구쟁이처럼 히죽 웃었다. 점원은 알 모양의 사은품을 도로 가져가서는 얇고 하얀 종이로 몇 번 감싼 뒤에 작은 비닐 백에 따로 담아 주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르게 포장된 두 개의 장식품을 받아들고서 숍을 빠져나왔다. 인주는 이석이 뽑은 물건보다도 그걸 받아들고 좋아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고, 요사이에는 작은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고 했다. 이석은 답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기는 그녀의 푸른 블라우스 소매 끝에 달린 마름모꼴의 금색 단추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인주는 이석을 조수석에 태우고서 제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까지 속력을 내 달렸다.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었고,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신호대기 때마다 운전대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석은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말없이 창밖만 보았다. 인주는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서서야 그에게 첫 마디를 꺼냈다.
    “다 왔어. 여기야.”
    그리고 어린이놀이터 앞에 차를 세우고는 피아노 연주곡을 나직하게 틀어 놓았다.
    “한 곡만 듣고 올라가자.”
    이석은 막연히 그 연주자가 손이 큰 중년 여자일 거라고 상상하면서 제 상상이 맞는지 확인하러 그녀를 돌아봤으나 질문을 건네지는 못했다. 인주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용케 그의 시선을 느꼈던지 “담배 끊은 지 십육일째야.”라고 중얼거리면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 한 개비를 끼워 든 것처럼 손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폐가 안 좋아. 본인은 전혀 몰라. 그저 내 걱정뿐이지. 난 걱정거리거든. 부모들이 자식을 구속하는 흔한 방법이지 뭐. 엄만 다음 주에 입원하게 될 텐데, 그냥 간단한 검사를 더 하는 줄로만 알고 있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내 곁을 떠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섭고 두려워.”
    “아이쿠, 담뱃재 떨어지는데요.”
    이석이 싱거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흩트렸다. 인주는 담배 한 개비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듯한 동작으로 화답하고는 갑자기 발끝에 뜨거운 게 닿은 사람처럼 눈을 반짝 떴다.
    “아! 잠깐, 좋은 게 떠올랐어.”
    인주가 음악을 끄고는 한동안 차창 밖을 응시했다. 이석은 그녀를 따라 시선을 멀리 두었으나 별다른 볼거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인주가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라이라라라, 디오리디디.
    “즐거운 날, 비가 내리는 소리 같네요.”
    이석의 말에 인주가 콧바람을 내며 작게 웃었다.
    “기분이 엉망이라 금세 잊어버릴 거 같아.”
    이석은 방금 들은 멜로디, 인주의 발음과 표정을 죄다 머릿속에 담아 두려고 했다. 그는 인주가 만든 곡들에 대해 특별한 찬사나 소견, 그저 듣기 좋은 빈말 모두 길게 늘어놓을 만한 재간은 없었다. 하지만 기억하는 일에 관해서는 노력해 보고 싶었다.
    “이제 올라가야 해.”
    인주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두 팔을 들어 양 손바닥을 제 눈두덩에 올려놓았다.
    “가서 내가 어떡하면 좋겠어요?”
    이석이 물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먼저 와 있을 거 같아. 오빤 나 때문에 화가 나 있어. 오빠나 엄마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아무렇게나 내 좋은 점을 둘러대. 나머지는 흘러가게 두고, 곤란할 땐 그냥 웃어. 내달에 내가 이삿짐을 쌀 때 너랑 네 친구들이 와서 도울 거라고 해. 전에 사귀던 사람은 마르고 나이 든 사람이었고, 지구력도 생활력도 하나 없었어. 애도 하나 딸렸고. 그 사람 딸이 내 집에서 석 달을 살았어. 아토피가 있는 애라 새집으로 옮기는 걸 미뤘는데……. 엄마가 나 때문에 병난 게 아니면 좋겠어. 그런 일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넌?”
    “글쎄요. 난 다 모르는 척할까요?”
    “굳이 그럴 것도 없어. 지난 일인걸.”
    인주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이석도 차에서 따라 내렸다.
    “날 뭐라고 생각해요?”
    이석은 문득 흘리듯 그렇게 물었는데, 인주는 이 질문을 꽤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녀는 정색을 하며 이석을 돌아봤다. 이석은 짐짓 장난스런 표정을 하고 다시 고쳐 물었다.
    “믿나요?”
    “집 앞까지 다 와서 왜 사람을 떠보니? 여기까지 오면서 난 널 재보지 않았는데.”
    이석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인주를 뒤따라가며 성급히 말을 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드럼을 쳤다고. 하룻밤 새에 소주와 커피를 최소 여덟 잔 이상씩 번갈아 마시며 당신 위장과 소화력을 과신했고, 여자들을 좋아해서 망신을 떨치며 길바닥에서 가족들과 종종 싸움을 벌였고, 빚에 쪼들리면서도 드럼을 팔지 않아서 엄마를 ‘드럼보다 못한 년’으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원수가 됐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한텐 리듬감이 있어요.”
    인주는 그 말을 놓쳤다. 그녀는 좀 전의 멜로디를 생각했다. 계단을 올랐다 내려오는 구둣발들이 그려졌다. 먹구름이 몰려와 후드득 빗방울들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두 팔로 머리통을 가리고서 비를 피하려 광장을 가로질러 달려 나가고,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저만치 서 있는 먼 집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와 팔을 쳐들고는 “이리로 오세요!”라고 외치는 풍경이.

 

    인주의 어머니는 새카맣게 물들인 숱이 적은 머리칼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서 딸을 맞았다. 회색 스커트 아래로 뻗어난 얇은 두 다리에는 반짝이는 살색 스타킹을 신은 채였다.
    “오빠는?”
    인주는 옆에 선 이석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대뜸 그 질문부터 던졌다. 인주의 어머니가 천천히 이석을 돌아봤다.
    “이분은 누구시니?”
    인주는 “전에 말했던 사람.” 하며 말끝을 묘하게 끌어올렸다. 마치 그에게 ‘네 차례야’ 하고 신호를 주려는 것처럼. 이석이 꾸벅 인사했다.
    “송이석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주의 어머니는 이석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주름진 손을 들어 거실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 가죽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들어와 앉으세요.”
    이석은 신발을 벗고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인주의 어머니는 이석의 뒤쪽에서 그를 의식한 게 분명한 혼잣말들을 중얼거렸다. 아들딸이 서로 많이 닮았다고, 두 사람 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이석은 소파 중앙 즈음에 살며시 앉았다. 인주가 제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좀 전에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오빠는?”
    “수진이랑 같이 온다더라. 수진이 학원 끝나면 데려온다고.”
    인주의 어머니는 이석을 돌아보면서 그 뒷말을 이어 갔다.
    “열에 아홉은 곤란한 일이 생긴 게죠. 분명 부탁할 게 있는 거지. 늙은이 생일이 뭐 대단하다고 여태 안 하던 짓들 하면서 자식들이 요란들을 떨겠어요. 우리 인주랑 심각한 사이는 아니죠? 얘는 지금 제정신 아니에요.”
    “아, 엄마!”
    인주가 말을 가로막으려니까 그녀의 어머니는 고집스레 뾰족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너는 어려서부터 그게 문제였다. 물을 엎지르고 나서 그걸 불로 닦으려고 하지.”
    인주는 피하듯 주방 쪽으로 갔다.
    “저, 수진이라면……”
    이석은 알고 넘어가야 하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짚어내고자 했다. 인주가 주방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힌트를 내주었다.
    “수진이는 미친 고모를 선망하는 나이니까 자기한텐 아주 친절할 거야.”
    이석은 인주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쯤에 고풍스런 갈색 장식장이 하나 서 있는 게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상단은 텅 비어 있는 채였고, 하단에는 상패가 몇 개 늘어서 있었다. 인주는 그 옆에서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
    “우리 인주랑은 어떻게 만났나요?”
    인주의 어머니가 순간 이석의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으며 물었다.
    “인주 씨는 저한테……”
    이석과 인주가 처음 만난 건 근 팔 개월 전의 일이었다. 도형이 혼자 술에 취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 사람 중에 다섯 명이 술집에 나타났는데, 그중에 이석과 인주도 있었다. 취중에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도형을 둘러싸고 친분이 각기 다른 다섯 명의 남녀가 당혹감 속에서도 나름 유쾌한 시간을 이어 가다 기약 없이 흩어졌다. 그 다음 만남은 그로부터 사 개월 후의 일이었다. 이석이 인주가 출강하는 학교에 일이 있어 방문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시간을 맞춰 얼굴을 보았다. 강의실과 캠퍼스를 함께 돌아다니며 삼십여 분 정도 이야기하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햇살, 미풍, 그에게 도리어 강의실의 위치를 묻던 신입생들의 눈빛과 건물 높은 층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던 유리창들, 그리고 인주의 톤 높은 목소리와 일정한 구둣발 소리가 그 봄날의 잔향처럼 남았다. 이 개월 전에는 도형의 주도로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이 처음으로 합석했던 술자리를 떠들썩한 추억으로 미화하는 티타임을 가졌다. 그날 모임은 실은 목적이 따로 있었다. 도형이 한 여행 잡지의 창간을 준비하면서 지인들에게 금전적인 후원과 아이디어를 끌어내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여행담, 세 사람이 품은 미지에 관한 로망으로도 번졌다. 인주는 봄이나 여름 한낮에 숲길을 나체로 걸어 보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질문을 도형과 이석에게 던졌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 제 이모, 그러니까 도형 엄마의 책을 훔쳐 읽었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숲에 모인 남녀들이 자발적으로 나체가 되어 스스로를 나무나 새라고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뒤엉키는 대목을 만났다고 했다. 그녀는 놀라움과 죄책감 때문에 그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웃었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덧붙였다. “고가의 테마 여행 코스 중에 그런 게 있다면 재미있을 것도 같아.” 가장 최근의 만남은 삼주 전, 우연히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한 클래식 공연장에서였다. 인주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였고, 이석은 혼자였다. 인터미션 십오 분 중 삼사 분간 서로 짧게 인사를 나눴다. 인주가 “혼자 왔어?” 하고 물었고, 이석은 “말러도 처음이고, 혼자도 처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이석이 지난 일들을 되짚는 동안 인주의 어머니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집요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그 시선과 부딪치자마자 그는 상대와 맞서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거기서 벗어나야겠다 싶었다. 도움닫기를 해 공중으로 점프하는 사람처럼 제 목소리에 탄력을 실었다.
    “인주 씨는 저한테 자주 뭘 도와달라고 합니다. 전 그게 좋아요. 누가 저한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요. 제가 독립적으로 자라나 그런지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저는 못 하는 걸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인 게 좋고, 또 제 친구가 괜찮은 조율사예요. 실제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그 친구가 저보다 먼저 인주 씨를 알았고요. 예, 둥글둥글한 일이에요. 사람 사는 일. 구르고 닿고 엮이는 일이요.”
    그는 그 말끝에 큰 소리로 한 차례 웃고는, 인주가 출강하는 학교의 봄 축제 때 야외무대의 음향을 담당했던 이가 자기 대학 선배이고, 자기는 그 선배를 도우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알렸다. 인주의 어머니는 대번에 흥미를 잃은 표정이었다.
    “많이 어리네요. 어려 보여요.”
    “네?”
    “아무리 많게 봐도, 스물다섯으로밖엔 안 보여요.”
    “스물여덟입니다.”
    “흠, 여섯 살 연하……”
    인주의 어머니는 왼손을 들어 허공을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마치 윙윙대는 작은 곤충을 쫓듯이. 그러고는 말을 이어 갔다.
    “서른이 되면 지금하고는 다른 게 보일 거예요. 자명한 이치죠.”
    “어머니, 편히 앉으세요.”
    이석은 그렇게 말하며 뭔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따로 있으리라는 그 고루한 화젯거리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처럼 인주의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인주가 커피 세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인주의 어머니는 갑자기 몸에 힘을 풀었다. 구부정한 자세가 되면서 앉은키가 작아졌고 어깨가 내려앉았다. 이석에 대한 경계심을 놓은 듯했고, 그와 동시에 회색 치마와 반짝이는 살색 스타킹 속으로 존재를 잠시 감춘 것처럼 보였다. 이석은 어쩌면 그 속내가 읽히는 듯도 했다. ‘이 자는 내 딸이 홀랑 반할 만한 사람은 아니야. 이 녀석도 홀린 듯 여기 온 건 아닐걸. 무능하고 애 딸린 남자에게서 벗어나자마자 이십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활기찬 청년이 눈에 들었다는 점에는 어쩔 수 없이 납득할 만한 데가 있어. 그렇더라도, 물을 쏟고 그걸 불로 닦아내려는 무모함은 여기 없어, 이 둘 사이엔.’
    “엄마, 이거 끌러 봐. 트로피 대신이야. 둘이서 같이 골랐어.”
    인주가 어머니에게 선물을 건넸다. 인주의 어머니는 바로 포장지를 찢어내고는 케이스를 열었다. 그리고 투명하게 빛나는 첼로를 한 손에 그러쥐더니 깐깐한 표정으로 딸에게 물었다.
    “이걸, 같이?”
    “그렇다니까.”
    인주는 이석을 슬쩍 한 번 쳐다보고는 둘러메고 있던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그것도 제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렸을 땐 금색 칠한 플라스틱 트로피만 갖고도 엄마를 펄펄 기운 나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정말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해 폐부에서 열이라도 올라오는 것처럼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인주의 어머니는 크리스털 첼로 장식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서 흰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돈을 눈으로 헤아린 뒤에야 비로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표정만으로는 그저 무덤덤했다. 그래서 투명하게 빛나는 생일선물을 아끼듯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인주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주여야 했다. 인주는 장식장의 유리문을 열고서 그걸 상단에 잘 세워 놓으며 말했다.
    “기념일마다 하나씩 사서 여기를 오케스트라로 꽉 채워 넣을게.”
    그리고 제자리로 되돌아와서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
    “생일 축하해, 엄마. 속 썩여서 미안해.”
    인주는 어머니를 포옹했고, 이석은 스스로를 껴안듯 제 팔짱을 끼고서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밀착했다. 그는 평온을 구하는 이 가족 드라마의 새로운 구성원, 혹은 특별한 관중이나 지휘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인주의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그녀가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확인한 뒤 몹시 난처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면서부터 제게 주어진 넉살좋은 젊은 애인 역할이란 얄궂은 모험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으리란 걸 어렴풋이 예감했다.

 

*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고모가 제일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요.”
    스무 살의 여름을 맞은 수진은 대학 기숙사의 제 침대 위에 인주와 이석을 나란히 걸터앉게끔 하고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인주와 이석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수진을 만나러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온 참이었다. 수진의 룸메이트는 방학을 맞아 고향인 제주로 가고 없었다.
    “네가 사람들도 나도 다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인주가 수진에게 핀잔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주말엔 한나절 내내 소파에 누워 꼼짝 않고 숨만 쉬고 있는 게 행복한 사람, 그게 나야. 너 지금 그걸 모른 척하고 있네.”
    인주는 나이 마흔을 넘기며 크게 한 번 앓았고, 체중이 많이 줄었다. 야윈 얼굴 때문에 두 눈동자가 전보다 더 검고 커다래진 듯한 인상이었는데, 감정이 드러날 때 특히 더 그래 보였다. 이석은 조카와 고모 간의 이 애정 어린 말씨름을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수진은 예전에 제 아버지가 인주를 힐난하며 했던 말을 ‘난 고모가 좋아요’라는 고백처럼 사용하고 스스로 흡족한 모양이었다. 마치 그게 이 집안에 전래된 유머감각이기라도 한 것처럼.
    수진이 다니는 대학 내 스포츠센터에서 이 날 오전에 수영대회가 열렸다. 수진의 애인은 오후 두 시경 다이빙 종목에 출전하기로 한 선수로, 이름이 최언이었다. 수진이 종종 ‘우리 언이’라고 부르는 스물넷의 과묵한 청년. 우리 언이는 노력파야. 침착해. 꾸준해. 언이는 다이빙 실력보다는 다른 능력으로 수진에게 감동을 주는 듯했다. 수진은 언이가 어렸을 때 사고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는데, 그 때문에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내는 감각을 키웠다고 주장하곤 했다.
    “언이가 우리 온 것 눈치 못 챘을까? 네 얼굴이 온갖 힌트로 가득한데.”
    인주가 물었다.
    “괜찮아. 대회 앞두고는 다른 생각은 내려놓거든."
    수진이 대답했다.
    인주와 이석은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간 수진에게 말로만 숱하게 들어온 ‘우리 언이’를 비로소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만남에 관해서는 언이에게는 아직 비밀이었다.
    “오늘 사진 많이 찍어요, 우리.”
    수진은 최근에 필름카메라를 새로 샀다면서 카메라를 찾아 들고 와 이석과 인주를 향해 내보였다.
    “생각보다 재밌어요, 인화되기 기다렸다가 찍힌 걸 확인해 보는 게. 고모, 이리 와요. 아저씨 옆에 앉아 봐요, 아까처럼. 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이석은 수진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력적인 피사체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긴장감으로 살짝 굳은 표정이 됐다가, 곧 그런 자신이 우스워져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동안이었지만 웃는 눈가에 옅게 주름이 잡혔다.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수진은 먼저 스포츠센터로 향했고, 이석과 인주는 한 시간 정도 바닷가에서 바람을 쐬기로 하고 해운대로 갔다. 팔 년 전 인주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둘은 장지에서 곧장 차를 달려 무작정 해운대에 왔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각자 연인이 있던 시기였다. 이석은 인주와의 관계를 놓고 이따금씩 자신을 의심하며 몰아세우던 연인과 그 후로도 일 년 남짓 더 사귀다 헤어졌다. 항상 짧은 커트머리를 유지했던 연인은 사랑스럽고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이석은 종종 그녀를 실망시켰다. 아니면, 그녀는 이석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또 요구하다 환상을 지우며 떠나갔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 그게 이석이 그녀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팔 년 전의 겨울 바닷가에서 애도의 눈물을 흘린 사람은 인주가 아니라 이석이었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네. 이 삶에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네.”
    이석은 그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향해 서서 아마도 오래된 노래, 혹은 시의 한 구절에서 따왔을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그 순간의 그의 내적 진실이 무엇인지 탐색하고자 두 사람이 함께 옷을 벗고 침대에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주는 이석을 그대로 내버려두었고, 주위를 오가는 다른 연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나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후 두 사람은 아주 친밀해졌다가 더없이 소원해지는 시기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없는 ‘최초의 자리’ 같은 것을 서로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 갔다. 그 최초의 자리란 그들 관계의 맨 첫머리에 놓일 일화들을 고르고 거기 명예나 작위를 부여하는 일과도 같았다. 어떤 날은 겨울 바다를 향하고 서서 우는 이석의 뒷모습이 가장 앞자리에 놓였고, 또 다른 날은 “하루만 애인 노릇 해줄 수 있어?”라고 묻는 인주의 모습이 그 자리를 새로 차치했다. 완벽한 가상의 오케스트라를 이루지 못한 채 고풍스러운 장식장 상단에 홀로 남게 된 크리스털 첼로 모형 장식품이 첫머리에 놓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떤 장면보다 먼저 추억의 소리들이 스윽 끼어 들어와 공명할 때도 있었다. 변치 않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인주에게 감정적으로 가장 의존적이던 두 존재가 그녀를 떠나갈 때 이석이 모두 함께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누구의 욕망에 충실한 과정이고 현존인가는 이제 알 수가 없게 돼버렸다.
    인주와 이석은 아무 말 없이 여름 바다를 바라보았다.

 

    스포츠센터 내의 관람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이석, 인주, 수진은 나란히 앉아 다이빙 경기를 지켜보았다. 다부진 몸의 선수들이 다이빙대를 발로 구르며 높이 떠올랐다가, 유연하게 몸을 틀어 회전을 하고는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게 물속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를. 때로 첨벙!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물을. 점수판을.
    네 번째 선수로 최언이 다이빙대에 오르자, 수진은 양손을 입가에 갖다 댔다. 수진의 ‘우리 언이’가 그들 모두의 시간 속으로 동시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첫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아주 짧게 번쩍였다 물밑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낮은 탄성을 울렸다.
    “아!”
    안도감과 벅찬 감회로 수진의 얼굴에 순식간에 많은 표정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잘한 거 같아. 그죠?”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입수가 이어지는 동안 수진의 세계는 언이로만 부풀어 올랐고, 인주와 이석은 그 곁에서 바닷가의 여운으로부터 이어져 온 무언의 대화를 이어 갔다.
    다섯 번째 선수가 입수하던 때 인주의 마음속에서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그것을 ‘최초의 자리’에 놓았다. 열 살 된 수진이 제 아빠와 함께 거실에 발을 들여놓자 이석은 그들에게 인사했다. 호기심 어린 소녀의 미소와 입술을 굳게 다문 중년 남자의 얼굴이 뚜렷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자기 병세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는 노인이 ‘물을 쏟고 그걸 불로 닦으려는’ 자의 무모함과 생각 없음에 관해 한탄하며 시작되는 생일날 늦은 오후의 풍경. 이석은 침착하게 제 소개를 하며 수진의 마음을 열었다. 수진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자기를 전부 내주지 않는 듯한 이석의 태도가 제 아빠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간파할 만큼은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여섯 번째 선수가 긴장으로 다이빙대에서 멈칫하며 숨을 고르는 동안, 이석은 아파트 거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것처럼 초조해하던 십 년 전의 인주 모습을 ‘최초의 자리’에 놓았다. 어떡해. 애가 날 찾아. 우는 것 같아. 인주가 그에게 다가와서 속삭이며 제 휴대폰을 슬쩍 손에 쥐여 주었다. 늦여름인데도 긴장으로 그녀의 손이 차가웠다. 아줌마, 미안해요. 저 때문인 거 알아요. 그렇게 시작된 문자메시지는 긴 많은 말줄임표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는 것 같아. 내가 그 사람하고 헤어진 건 이 애 탓이 아니야. 누구 탓도 아니야. 책임지지 못할 아이에게 정들이고 만 건 내 잘못이야. 인주는 그러면서도 궁리 끝에 긴 답신을 보냈다. 이석은 그때 인주가 짐작과는 달리 헤어짐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란 것, 그리고 그녀의 금연 계획이 곧 깨지고 말리란 걸 알아차렸다. 하루 한낮에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삶 깊숙이 발을 깊이 들여놓았다는 걸, 돌이킬 수 없게 돼버린 눈앞의 일들을 받아들였다.

 

    영원히 최초의 자리에 놓이지 않을 순간들도 있었다. 인주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게 된 사람은 우연히도 어린 수진이었다. 수진은 할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다가 그 순간을 맞이했다. 병세에 비하면 평온한 마지막이었다. 입관 때 수진은 이석에게서 선물 받은 작고 노란 알 모양의 소품을 제 할머니의 머리맡에 넣어 두었다. 알 속의 나비가 죽은 이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기를 기원하면서. 이 이야기는 영원히 수진의 몫이 될 것이었다. 또 다른 일화들 중에는 이석과 인주가 지난 십여 년간 네 번, 함께 나체 삼림욕장을 찾은 것도 있었다. 각자 지인들에게 서로 다른 이유를 꾸며내어 짐을 꾸렸고, 삼림욕장에 들어서면서는 부부로 가장해 한낮의 숲 속에서 벌거벗고 지냈으며, 그밖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일을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남겨 두고자, 둘은 삼림욕에 관한 무슨 이야기든 함구할 것이었다. 수진의 상상력이 둘 사이를 놓고 때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때가 있다면 그 역시 수진의 몫으로 남겨 둘 요량이었고, 이제는 기꺼이 그들 사이에 한 사람을 더 맞아들일 준비가 됐다.

 

    다이빙 경기가 종료됐다. 최언은 순위권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실망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수진을 알아보고 관람석 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석과 인주는 수진과 함께 그와 그 너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준영
작가소개 / 기준영

2009년 단편소설 <제니>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비장편소설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2012), 단편소설집<연애소설>(2013), <이상한 정열>(2016)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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