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그늘 찾기 외 1편

[창작시]

 

 

한낮의 그늘 찾기

 

 

이제니

 

 

 

 


    너는 천변의 끝에서 끝을 반복해서 오가고 있다. 한여름의 천변은 눈멀었던 날을 비추고 있다. 천변과 낙원. 천변과 낙원. 너는 천변을 걸을 때마다 낙원을 생각한다고 했다. 출렁이는 물결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며 뒤덮이고 있다는 기시감 속에서. 너는 눈부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픈 것을 가리고 있었다.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파편적으로 배열되고 있는 이미지 속에서. 물가로 나와 몸을 말리는 한 마리의 백조가 있고. 무성한 잡초가 있고. 버려진 조각들이 있고. 끝내 가닿지 못한 그늘이 있고. 결국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있고.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 갈증과 증발. 갈증과 증발. 낱말은 발음하기에 좋은 낱말을 제 곁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가리는 것을 더는 가리지 않게 될 때. 기다리는 것을 더는 기다리지 않게 될 때. 가리는 것은 기다리지 않은 것으로 문득 드러나게 될 것인가. 여기까지 썼을 때 너는 너를 위로해주러 오던 언젠가의 발소리를 듣는다. 조금씩 선명해지면서 네 곁으로 와 멈추어서는 소리 앞에서. 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중요하지 않게 될 때. 더는 기다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때. 그때. 너는 네가 기다려온 것의 중심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천변은 걸으면 걸을수록 한 번도 가닿지 못했던 낙원을 닮아가고 있었다. 너는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감각 속에서 다시금 눈을 감는다. 뒤늦게 찾아오는 명료한 사실 하나를 깨달으면서. 벽이라든가 막이라든가. 벼랑이라든가 불안이라든가. 피안이라든가 피난이라든가. 낱말과 낱말의 질감을 섬세히 구분하고 구별하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늘그막의 그늘막. 늘그막의 그늘막. 더는 만날 수 없는 얼굴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를 옛날의 장소로 불러 모으고 있다. 언젠가의 우리는 한낮의 그늘 속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오늘 다시 오래전 그늘 속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천변은 보고서도 보지 못한 것으로 가득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놓여 있는 전경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우리에게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풍경이 저세상처럼 아득하게 좋았다.

 

 

 

 

 

 

 

 

 

 

 

인간의 빛 이어가기

 

 

 

 


    하나의 단어로 어제의 문장은 시작된다. 하나의 물결로 지나간 꿈은 되돌아온다. 그 꿈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한 계절 속으로 옮겨와 있었다. 계절꽃을 머리에 꽂고 있던 아이는 이미 몇 년 전에 죽고 없다고 했다. 아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채로 태어났고. 말을 전하던 아이의 두 손. 허상처럼 겹치고 쌓이며 흐르던 두 손. 고요한 손짓이 그려내는 파찰음이 귓속에서 환하게 터지곤 했다. 그 꿈속에서 우리는 깨어나지 않는 물가에 있었다. 강이라고 하기에도 호수라고 하기에도 연못이라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물가였다. 쏟아지는 빛줄기 속에서. 이름도 장소도 없이 사라져간 지상의 기억 속에서. 물 위를 걸어가라. 물 위를 걸어가라. 혼잣말하듯 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우리는 물 위를 걸었다. 의심 하나 없는 마음으로 물 위를 걸었다. 무성한 나무의 연두가 물가 너머까지 우거지고 있었다. 흘러가는 물결이 우리의 얼굴을 흔들고 있었기에 우리는 깨지 않는 각자의 꿈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깨지 않는 물결 속에는 깨어나지 않는 물고기 두 마리 마르지 않는 조약돌 세 개. 채워지지 않는 여백 속에는 복원할 수 없는 장면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너는 매일매일 네 마음을 비춰보는 사람이니까 어떤 말들이 우리를 어둡게 물들여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겠지. 흘러가는 대화들 속에서. 추상적인 문장들 속에서. 언제 이렇게 어두워졌을까. 꿈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어 우리는 뛰어들기 직전의 연두 앞에 멈추었다. 순간의 순간을 걸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번지는 연두 아래로 흔하고 흔치 않은 것들이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무구한 표정으로 놓여 있는 것.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것들. 나의 두 눈은 좇고 있었다. 눈보다는 귀가 먼저. 귀보다는 마음이 먼저. 바닥 없는 바닥으로 내려앉아 본 적이 있는 얼굴이 사람의 빛을 이어가고 있었다. 최대의 어둠 속에서 최소의 말로. 곳곳에서 가득히 언제나 더욱 그러했다.

 

 

 

 

 

 

 

 

 

김 근
작가소개 / 이제니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출간한 시집으로 『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가 있다. 편운문학상 우수상·김현문학패·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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