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를 머리에 얹은 소녀와 그 남자

[단편소설]

 

 

까마귀를 머리에 얹은 소녀와 그 남자

 

 

신이현

 

 

 


    언제부터 이 숲에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여자가 이곳에서 나를 낳다가 죽었을 수도 있고 행복한 부모와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었을 수도 있다. 버림받았을 수도 있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없지만 지금까지 나는 살아왔다. 내 인생의 첫 번째 기억은 밤나무 속에 누운 나다. 밤나무 밖 저 멀리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빛은 아름답지만 인생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일곱 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늙은 밤나무 속에서 살고 있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할 것 없이 낙엽을 잔뜩 채워 넣고 그 속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 안에 밤도 잔뜩 비축해 두었다. 늙은 나무들이 우지직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기도 했다. 뒤이어 짐승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늙은 남자가 쓰러진 밤나무 아래 깔려 있었다. 그는 그렇게 깔린 채 죽어갈 것이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있다면 그를 꺼내 보려 하지만 나무가 너무 무거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밤 몇 알을 그 앞에 두고 그냥 지나갔다.
    나무에 깔린 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해주는 남자도 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잘 해주던 소금에 절인 정어리에 향긋한 와인 한잔 마시고 싶다. 포도밭의 환한 태양을 느끼고 싶다. 포도밭 복숭아가 그렇게 달콤했지. 태양 한 조각을 먹는 것 같았어. 그 따뜻한 햇빛…….” 죽어가면서 남자는 저 멀리 손가락질하며 그리운 태양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 남자들이 이 숲 바깥세상 ‘개들의 정원’에 살 때 이야기일 것이다. 그곳은 비가 내리지 않고 언제나 햇빛이 반짝이고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까마귀 숲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 숲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벗어 놓으면 50킬로는 될 것 같은 옷을 껴입고 다니는 남자도 있지만 나체의 남자들도 있다. 여자들도 간혹 있었지만 일찍 죽었다. 이곳에서 여자의 몸은 생존능력이 떨어졌다.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짐승들도 있었다. 이곳은 원래 그들의 숲이었다고 한다. 보름달이 형형할 때면 바위 위에서 무리 지어 신비로운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이 숲의 짐승들은 인간보다 아름다웠다. 생존 능력도 좋았다. 짐승들의 소리가 달빛을 타고 흐를 때면 늑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처럼 자유롭게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싶었다. 인간인 것이 늘 쓸쓸했다.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진짜 죽는 것 같아. 이 순간의 느낌이 나쁘지는 않군. 굉장히 평화로워.’ 까무룩이 별빛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런 순간에 무엇인가 내 머리를 톡톡 쪼는 것이 있었다. 까마귀였다. 죽은 줄 알고 내 살을 먹으려 한 것인지 나를 깨우려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그것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내 머리에 혹은 내 어깻죽지에 앉아서 떠나지 않았다. 내 어깨에는 까마귀가 움켜쥔 발톱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까마귀 숲 사람들은 나를 ‘까마귀를 머리에 얹은 소녀’라고 불렀다. 혹은 ‘어깨에 까마귀 발자국 있는 그 소녀 말이야.’ 이렇게 칭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몹시도 쓸쓸해졌다. 까마귀에게 어깨를 내주고 살다가 나무에 눌려 죽게 될 운명보다 죽으면서 추억할 정어리도 햇빛도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이 숲을 떠나 정어리의 추억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남자는 하얀 토끼를 잡으려고 쫓아오다 이 숲에 들어왔다. 그는 겨우 잡은 토끼를 가슴에 안고 이쪽저쪽을 오가며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나무 둥치에 부딪쳐 안경을 떨어뜨렸다. 무릎을 꿇고 손을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아 썼지만 안경은 다 부서져 버렸다. 깨진 안경을 끼고 허둥거렸다. 그렇게 길을 잃어 까마귀 숲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남자의 생존 능력은 일주일 정도로 보였다.
    “내가 데려다줄게.”
    내가 남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토끼가 바닥에 떨어졌다.
    “미미야!”
    남자는 소중한 것을 빼앗긴 것처럼 짤막한 비명을 질렀지만 순순히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개들의 정원’이 가까워지자 점점 빛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고사리 대신 제라늄과 능수단풍, 마로니에가 나타났다. 순간 내 어깨 위의 까마귀가 까악거리며 날아올라 몇 바퀴 돌더니 숲으로 돌아갔다. 나는 동굴에서 나온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햇빛이 강하게 나를 찔렀다.
    이번에는 남자가 나를 이끌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도망자처럼 어딘가 숨을 곳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빠르게 걸어갔다. 곧이어 묵직한 대문이 열리고 차가운 돌로 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쇠로 된 차가운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얇게 느껴지는 문이 열렸고 우리는 실내로 들어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나는 눈을 떴다.
    아주 작은 집이었다.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집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는지도 모른다. 고소한 냄새에 대한 기억이 피어나는 듯도 했다. 내 심장이 팔딱거리며 뛰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과거와 미래, 모든 것을 다 말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나를 물어 줘.”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그를 보면서 누더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똑같이 윗도리, 바지, 양말, 팬티를 벗었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두 개의 알몸을 꼭 붙였다. 그가 까마귀 발톱이 어지럽게 찍힌 나의 어깨를 물었다. 나도 그의 하얀 어깨를 꽉 깨물었다. 사과를 깨문 것처럼 입안에서 단물이 흥건하게 고여들었다. 이윽고 내 몸속에 그가 들어왔을 때 내 유전자 속에 새겨진 모호함과 불안이 봉인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이 왔을 때 샤워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뒤이어 머리카락 말리는 드라이어 소리가 났다. 그는 알몸으로 걸어와 장롱 문을 열어 속옷을 입고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맸다. 그리고 내게로 와 무릎을 꿇고 까마귀 발톱이 찍힌 어깨에 키스를 했다. 그의 턱은 부드럽게 면도가 되었고 머리카락과 몸에서는 레몬 물비누 냄새가 났다. 그는 일어나 검은색 가방을 들고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남자가 빠져나간 침대 쪽으로 몸을 옮겨 그가 내 몸속에 들어올 때처럼 허벅지 안쪽을 꼭 오므렸다. 이불과 침대보에는 남자의 몸 냄새와 숨결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 냄새에 취해 다시 잠들었다 문 쪽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갑자기 긴장감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누구일까? 나를 잡으러 온 것일까?
    살금살금 걸어가 문에 귀를 댔다.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를 부르는 소환장을 가져온 것인가? 그렇지만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고발했을 리도 없다. 나는 까마귀 숲에서 온 여자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죄인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문 아래로 무엇인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문밖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마트 광고 카탈로그였다.
    자동차를 선물로 받아가세요. 광고지 첫 장에 적힌 문구였다. 이름과 주소를 적어 마트 입구에 설치된 함에 넣어 당첨되면 자동차나 세탁기 혹은 냉장고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리브기름에 절인 정어리나 냉동피자, 노르웨이산 연어 같은 것들을 사야 했다. 멕시코에서 온 원두커피나 불가리아산 산딸기 요구르트 혹은 남아프리카에서 온 설탕을 사도 된다.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두툼한 광고지 속의 사진들과 가격, 원산지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중 하나를 가위로 오려 냉장고 문에 붙였다. 흰 거품이 피어오르는 바다 한가운데를 뛰어오르는 참치가 그려진 통조림 사진이었다. 바다 참치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신날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온몸이 긴장되며 식은땀이 났다. 나는 벨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숨도 쉬지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이 집은 빈집이었고 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불안할 필요도 없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좁은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전화소리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방에 내가 있다는 것을 다 안다는 듯한 압력의 끈질긴 소리였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소리에 무릎을 꿇듯 수화기를 들었다. 그냥 플러그를 뽑아버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저쪽에서 화난 침묵이 흘러왔다.
    “나 욱이 엄만데, 게 누구시오?”
    찐득찐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팽개치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들이 직장에 있는 줄 뻔히 알 텐데 이 시간에 전화를 걸다니 미친년이었다. 나는 귓속에 들어간 지네를 털어내는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남자가 돌아온 것일까? 그가 아니었다. 평생 담배를 피웠을 것 같은 걸걸한 여자 목소리였다. 뒤이어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끙끙 소리가 났다.
    나는 카탈로그 독서를 계속하는 시늉을 했지만 온 신경이 문밖으로 갔다. 혹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침대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문 쪽으로 가서 귀를 대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려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의 말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럿이 속삭이고 웃는 걸로 보아 대화라는 것을 주고받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남의 집 문밖 기묘한 대화는 거의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남자가 돌아왔을 때 너무 반가워서 그의 목을 꽉 껴안으며 엉겨 붙었다. 그는 지하 갱도에서 막노동을 하고 온 사람처럼 이지러져 있었다. 아침의 레몬 물비누 냄새 대신 땀 냄새와 기계와 먼지에 전 냄새가 났다. 입에서도 단내가 피어올랐다. 그새 턱수염도 2밀리가량 자라났고 와이셔츠 깃도 더러워져 있었다. 그는 어깨에 걸머진 가방을 바닥에 놓았다. 돌덩이라도 든 것처럼 무거운 가방이었다. 그는 흐느적거리며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슈퍼에서 장을 봤어.”
    그가 들고 온 장바구니를 열자 달콤한 냄새가 나는 멜론과 소금에 절여서 말린 돼지새끼 넓적다리와 백포도주, 계란과 버섯, 정어리 통조림, 빵과 생크림, 버터와 파슬리, 그리고 요리책이 나왔다. 그는 요리책을 펴놓고 꼼꼼하게 읽으며 그대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멜론을 꽃 모양으로 오려 뚜껑을 만들고 그 속을 파낸 뒤 백포도주를 부었다. 그리고 빵을 올리브기름에 적셔 그 위에 정어리를 얹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회사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우리는 멜론 안에 든 와인을 마시고 정어리를 얹은 빵을 먹었다. 이상야릇한 음식인지 술인지를 먹으면서 뭉개진 꽃잎 같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살아났다. 전화가 울렸다. 그는 의외라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마귀할멈한테 다시는 이 집에 전화 걸지 말라고 해.”
    내가 말했다. 아, 그는 낮고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숲에서 토끼를 떨어뜨릴 때만큼 망설이지는 않았다. 느릿한 손길로 전화기를 들더니 ‘다시는 전화 걸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볼에 키스를 한 뒤 그 심장에 귀를 댔다. 따뜻한 덩어리가 갈비뼈에 감싸여 조용히 할딱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젖은 셔츠를 벗겨내고 살며시 소파에 눕혔다. 우리는 옷을 벗고 두 개의 심장을 꼭 붙이고 두 마리 개처럼 서로의 어깨를 꽉 물었다.
    “미친개를 조심해야 해.”
    남자가 한밤중에 깨어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침이 되어 남자는 속옷과 와이셔츠를 벗은 그대로 팽개쳐 놓고 회사에 갔다. 나는 그것을 주워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바닷물이 밴 모래 냄새가 났다. 욕실에 가서 샤워꼭지 아래 남자의 옷을 비누칠해서 내 몸에 문지르며 몸과 함께 빨았다. 젖은 옷을 옷걸이에 걸어 창가에 늘어 두었다. 햇빛은 없었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날씨 같은 건 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속옷과 내 몸에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냉장고에서 남자가 사온 멜론과 계란을 꺼내 상표를 떼어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보아 온 냉장고 오른쪽을 받치고 있는 두꺼운 백과사전을 꺼내고 대신 플라스틱 통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장롱 구석에 박힌 구겨진 공책도 한 권 찾아냈다. 계란과 멜론에서 떼어낸 상표를 공책에 붙였다. 백과사전에서 멜론의 상표에 표기된 마다가스카르를 찾아 읽어보았다.
    어제 먹은 그 멜론은 아프리카 동남쪽 인도양에 있는 커다란 섬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백과사전에 적힌 것을 꼼꼼하게 베끼기 시작했다. 그곳은 커피나무가 많이 자라는 땅으로 붉은여우원숭이와 사향고양이가 사는 나라다. 백과사전에 나온 커피콩이 담긴 자루와 원숭이, 사향고양이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마다가스카르의 자연과 역사를 다 적기도 전에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네 시였다.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내 귀가 이유도 없이 쫑긋거리며 긴장했다. 남자가 벌써 퇴근했을 리는 없었고 광고지 돌리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나는 살며시 문 쪽으로 나아갔다. 광고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문에 귀를 대고 기척을 살피던 나는 너무 놀라 벌렁 나자빠졌다. 초인종이 울린 것이었다. 누가 초인종을 울렸을까. 수도검침원이나 전보를 들고 온 우편배달부이거나, 아니면 정말 나를 잡으러 온 것일까? 그런데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늘 잡혀갈까 봐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평생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명백한 무죄였다. 그런데도 바깥의 부름에 이렇게 겁을 먹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원죄, 혹은 유전자 속에 죄의 인장이 새겨졌는지도 모른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지 못할 아무 이유도 없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놀라 자빠지게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경찰이었다. 그 옆에는 늑대보다 매서운 커다란 개가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개 주둥이에는 가죽 입마개가 채워져 있었다. 지옥에서 갓 내려온 듯 진저리치게 차가운 한 쌍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경찰의 허리춤에 꽂힌 총과 수갑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경찰이 금속성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난 아무 잘못이 없어요.”
    “인간과 동거할 수 있는 것은 개나 다른 짐승뿐입니다.”
    경찰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금시초문입니다.”
    나의 대답에 경찰은 들고 있던 기계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곳 주인은 토끼와 동거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는데 토끼는 어디에 갔죠? 하루에 한 번씩 산책하지 않으면 동거법 위반인 거 아시죠?”
    개의 가죽 입마개에서 걸쭉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숨을 어찌나 거칠게 몰아쉬는지 콧구멍에서 빠져나온 열기가 내 무릎까지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미친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범을 다스리기 위해 경찰들이 미친개를 길들인다고 남자가 말해 주었다. 그 개들은 주로 한밤중에 지하철이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를 향해 풀어 놓는다고 했다. 미친개에게 물려 미쳐버린 사람들은 모두가 까마귀 숲으로 달아났다. 사람들은 이 강력하고 잔인한 대응책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것을 모르시다니 어디 달나라에서 왔나요? 인간은 모든 종류의 동물과 함께 살 권리가 있지만 인간과 살 권리는 없어요. 두 사람의 어젯밤 섹스는 ‘인간과 동물의 권리 37조 2항’을 어겼습니다. 민원고발이 들어왔어요.”
    경찰관이 줄줄 흐르는 개의 침을 손으로 닦아 자신의 바지에 닦았다.
    “누가 고발했는데요?”
    “익명의 사람입니다.”
    “난 아무 피해도 준 적이 없는걸요!”
    내가 소리치자 미친개는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으르렁거렸다.
    “그렇다면 시청에 가셔서 서류를 한번 내보시도록 하세요.”
    “서, 서류요?”
    “개의 권리를 취득할 수 있는 서류들이죠. 주민등록초본과 은행잔고 증명서, 국세 지방세 완납 증명서, 임대차 계약서와 4대 보험 증명서, 전기 요금 계산서, 소득금액 증명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이유를 200자 원고지 300매로 적어 첨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동의서가 있으면 많이 유리…….”
    경찰관이 대단히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듯 성실하게 말을 이어 갔다.
    “무슨 그런 개떡 같은 소리를 하고 계시는 거죠?”
    나는 그의 성실한 면상을 살짝 비웃었다.
    “그렇다면 경찰서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경찰이 번쩍이는 수갑을 꺼내자 나는 거칠게 문을 닫았다. 그러나 문이 닫히기도 전에 재갈이 풀린 개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날카로운 이빨로 내 허벅지를 물었다. 두 팔로 짐승을 밀어냈지만 이빨은 더욱 깊숙이 박혀 들어왔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나를 풀어 놓지 않을 태세였다. 허벅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번에는 뼈를 물었다. 나는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켰다. 악몽이었다. 아니, 사실이었던가? 개가 물었던 한쪽 허벅지가 너무나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지만 화끈거리는 통증이 계속되었다.
    방 안도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던 것처럼 장롱 문이 열리고 백과사전과 공책이 찢어져 흩어져 있었다. 소파에 누워 남자를 기다리는 동안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바깥은 완전히 깜깜해졌지만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불을 켜지 않았다. 남자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걸음 소리, 그의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절뚝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주머니에서 열쇠 빠져나오는 소리가 나고 그의 손이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먼 바다에서 날아오는 듯한 이 냄새,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너무 무서웠어.”
    나는 그를 꽉 안았다. 그는 불을 켰다.
    “무슨 일이야?”
    그는 도둑이 파헤치고 간 듯한 방 안 꼴을 보았다.
    “경찰이 날 체포하러 왔어.”
    경찰이라는 말에 그는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왜?”
    “몰라. 날 잡으러 왔어! 개가 날 물었어! 미친개가!”
    내가 떨자 남자도 심하게 떨었다. 내가 떨면서 경찰! 미친개! 라고 거듭거듭 말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소파에 나를 눕히고 이마에 얼음찜질을 해주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 요리를 했다. 양파를 썰면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올리브기름을 둘러 팬을 뜨겁게 달군 뒤 양파를 볶고 버섯을 섞어 볶았다. 거기에 계란 물을 끼얹어 부드럽게 팬을 흔들어 오믈렛을 춤추게 했다. 그는 커다란 접시에 오믈렛을 담아 침대로 와 내 머리맡에 앉았다. 우리는 어깨를 붙인 채 따뜻한 오믈렛을 뜯어먹었다. 빈 접시를 침대 밑에 놓고 우리는 옷을 벗어 서로의 몸을 만지고 깨물면서 세포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 속에 숨어들면서 우리는 조금 안정되어 갔다.
    “그만 일어나. 산책 가야 해. 일요일이잖아.”
    아침이 되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졸랐다. 나는 이불을 덮어썼다. 이 도시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모두가 ‘개들의 정원’으로 가 동물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일요일 산책’이라는 오랜 전통을 즐겼다. 남자는 왠지 불안해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걸어 다녔다. 오랜 전통을 깬다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그럼 나가 보자.”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그의 중절모자를 쓰고 그의 양복저고리를 입었다. 남의 옷을 입으니 내가 아닌 것 같아 조금 덜 불안했다. 밖으로 나가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머리에 비닐 수건을 쓰고 개들에게 끌리듯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개들의 정원’에 도착하니 매끈한 잔디 위에 티 없이 고운 개들이 와글와글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도 개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먹고 자는 인생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신선한 잔디 위에 똥을 쌀 수도 있다. 거실 화덕 앞 양탄자에 엎드려 비스킷이나 뼈다귀 껌을 씹을 것이고 늙은 주인의 짠맛 나는 손등을 핥으며 심심함을 달랠 것이다.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인생이다.
    고양이나 햄스터, 도마뱀 같은 동물을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간혹 토끼도 보였다. 우리는 공원을 빙빙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그림자와 함께 내 머리 위로 휙 날아와 앉았다. 나의 까마귀였다. 사람들은 불길한 표정이 되었고 개들은 으르렁거리거나 낑낑거렸다. 공원을 순찰하던 말을 탄 경찰이 우리 쪽으로 왔다. 딸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 선 말은 씩씩하게 뻗은 길쭉한 다리에 몸뚱이 곡선이 탄탄한 윤기가 흐르는 검은 말이었다. 그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생쥐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
    “까마귀는 금지품목 아닌가요?”
    경찰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떤 동물도 금지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남자가 당당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경찰은 말 잔등에 앉아 작은 기계를 두드리며 검사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날카롭게 우리를 훑었다. 우리는 몸을 떨었다. 경찰이 가고 나자 우리는 공원의 가장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내 까마귀가 휙 날아올랐다. 까마귀 숲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잔디와 제라늄이 피어난 개의 정원이 끝나고 어둡고 서늘한 야생의 숲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나의 최초가 시작된 곳, 나무들이 하늘을 빽빽하게 가린 그곳은 대낮에도 빛이 들지 않았다. 나무 아래는 음지식물밖에 자라지 않았다. 개들도 이쪽으로 오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몇 해 전에는 이곳을 장악한 까마귀들이 개들의 정원으로 떼를 지어 날아와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 적이 있었다.
    나라에서 까마귀 머리에 현상금을 붙이자 용감한 남자들이 떼를 지어 까마귀 숲으로 들어가 수탉처럼 큰 까마귀를 잡아 목을 잘랐다. 그러나 그 냄새가 너무나 지독해 그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쳐 나왔다. 그 뒤로는 누구도 까마귀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 숲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간혹 까마귀라도 보면 지옥의 한 자락이라도 본 듯이 뒷걸음질 쳤다. 실제로 까마귀는 너무 구워 타버린 빵처럼 따뜻한 새였다.
    “이제 다시는 일요일 산책을 나오지 않을 거야.”
    우리는 손을 잡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에 슈퍼에 들러 먹을 것들을 샀다. 오랫동안 피난처에 들어갈 사람처럼 비스킷과 국수, 설탕, 밀가루, 식용유, 독한 술과 많은 깡통 제품들을 샀다. 찬장 속이 캔 제품들로 가득 차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부슬비에 젖은 옷을 벗은 뒤 잔에 럼주를 따라 굵직한 흑설탕과 레몬을 짓이겨 넣어 마셨다.
    밖은 캄캄해져 있었다. 태양이 하루가 다르게 식어 가고 있었다. 낮이 하루에 거의 일 분씩 짧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산책 시간도 매일 일 분씩 빨라졌다. 이 도시 사람들은 햇빛을 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요일 산책은 가장 길었고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소다수를 마시며 짐승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 곧 빙하기에 들어설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마지막 태양 파티에 몰린 사람들처럼 “오, 날이 너무 좋군요!” 소리를 지르며 햇빛에 집착했다. 하지만 나는 햇빛이 불편했다.
    초인종이 찌링 하고 울렸다. 우리는 심장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놀랐다. 누구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이렇게 눈으로 물었다. 그는 마지못해 엉덩이를 들고 문 쪽으로 갔다
    “열어 주지 마.”
    내가 그의 옷깃을 당겼다.
    “왜?”
    “이 시간에 올 사람이 누가 있어? 분명 귀찮은 일일 거야.”
    “열어 주지 않으니까 더 불안해.”
    “열고 나면 더 불안해질 거야.”
    우리는 숨을 죽이고 초인종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옥까지 따라올 듯이 끈질기던 날카로운 소리가 멈추었다. 그러나 문 뒤의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문틈 이쪽저쪽에 귀를 대고 기웃거리는 것 같았다. 손잡이를 잡고 삐걱거리며 돌리기도 했다. 몇 번 쾅쾅 두드리기도 했다. 이윽고 포기를 했는지 발걸음이 멀어졌다.
    “당장 저 초인종 떼버려.”
    내가 말했다. 남자는 드라이버로 문 옆에 붙은 작은 단추를 신속하게 제거했다. 긴장 때문인 듯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났다. 나는 그의 손에 독한 술잔을 쥐어 주었다. 그는 잔을 꽉 쥐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나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도둑질을 한 걸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가 말했다.
    “우리가 도둑질한 건 공기뿐이야. 이건 그냥 신의 선물이야.”
    우리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서로에게 말하면서 불안해했다. 도망자처럼 독한 술을 마셨다. 속에서 뜨거운 불이 올라왔다. 계속해서 독주를 몇 잔 더 털어 넣듯이 마셨다. 온몸이 화끈거렸다. 우리는 옷을 벗으며 조금 웃었다. 불안하지만 좋았다. 남자가 있어 좋았다. 작은 방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맞붙이고 서로의 조각을 맞출 수 있어 좋았다. 밤새 절정과 불안의 바다에서 출렁출렁 함께 헤엄칠 수 있어 좋았다. 밤새 손을 잡고 도망가는 꿈을 꾸었다.
    아침이 되면 그는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한 뒤 와이셔츠를 입고 회사에 갔다. 나갈 때마다 그는 불안해했다. 어느새 나의 불안에 깊이 감염되어 버렸다. 죄지은 것처럼 문을 열기 전에 바깥 기척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비상계단을 이용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턱수염이 1밀리 자랄 때까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일했다. 그는 정확히 7시 30분이면 집에 돌아왔다.
    아침에 풍기던 레몬 냄새 대신 땀 냄새에 젖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내 품에 푹 쓰러졌다. 나는 마늘을 듬뿍 넣어 볶은 기름에 캔 참치를 넣고 거기에 면을 비벼서 식탁을 차렸다. 우리는 매일 밤 와인을 마셨다. 침대에 누워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면 기름에 볶은 마늘 냄새와 참치, 와인 향기가 났다. 천진한 냄새에 싸여 밤을 지내고 나면 남자는 다시 파릇파릇해져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남자가 없는 동안 나는 전날 먹은 깡통 캔의 원산지를 찾아 그곳의 다양한 정보를 공책에 적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창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제 먹은 것은 세네갈에서 온 정어리였다. 땅콩이 많이 나는 이 나라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 해안에 있다. 7월과 10월은 사하라 사막 쪽으로 남동계절풍이 불어 국토 전역에 비가 내리는 우기다.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서 참치를 잡아와 바닷가에서 도끼로 참치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큰 칼로 뼈를 발라냈다. 그런 뒤 여자들이 더 작은 칼로 잘라서 통조림통에 직접 손으로 담았다. 참치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휴가를 맞으면 밀가루와 설탕과 크림과 우유와 신발을 사서 가족에게로 갔다. 가족들과 함께 바오바브나무 아래서 노란 먼지를 일으키며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나는 노란 먼지를 그렸다. 바오바브나무 열매도 그리고 춤추는 맨발도 그렸다.
    문밖에서 늙은 여자와 늙은 짐승소리가 났다. 오후 두 시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늙은 개는 관절염에 걸려 앞쪽 두 다리로만 걸었다. 여자는 개 목걸이 대신 특별하게 맞춘 가죽 띠를 개 엉덩이에 감아 뒷다리를 들어 주었다. 한 번도 이들과 마주친 적은 없지만 다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늙은 개가 먼저 죽기를 기도하면서 걸어 다녔다. 무덤도 이미 봐두었다고 개에게 말했다. 여자와 개는 둘 다 지독한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그들이 지나가면 나는 문에서 가장 먼 욕실로 가 옷을 벗고 샤워기 아래서 남자의 속옷과 와이셔츠에 비누칠을 해서 내 몸에 문지르며 내 몸과 옷을 함께 빨았다. 옷을 옷걸이에 걸어 욕실 벽에 걸어 물이 빠지게 한 뒤 요리를 시작했다. 깡통 속의 토마토를 기름에 볶아 역시 깡통 속의 완두콩과 마른 파슬리 가루를 섞었다. 완두콩과 파슬리가 어디서 자라 이곳까지 왔는지 생각하면 그 땅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은 늙은 여자가 오랫동안 개에게 말을 하며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늙은 개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개는 그냥 헐떡거렸다. 여자의 손이 굵직한 개 목걸이를 만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살며시 문 쪽으로 가 문이 잠겼는지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문이 너무 얄팍하게 느껴졌고 누구라도 당장 부수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개 헐떡이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나는 깜짝깜짝 놀랐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자가 돌아올 시간이 되도록 늙은 여자와 개는 문 앞에 있었다. 저렇게 진을 치고 있으면 남자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텐데. 이윽고 늙은 여자와 개가 사라지고 승강기에서 내린 누군가의 발소리가 나를 향해 와 멈추었다. 내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냄새도 달랐다. 조용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와 초인종을 떼어낸 뒤 우리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에 바짝 붙어 섰다. 문 드리는 소리는 그리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늙은 개와 여자가 다시 나타난 듯했다.
    개 목구멍에서 나온 그렁거리는 소리와 찌르는 향수 냄새가 확 느껴졌다. 여자가 무슨 말인가 하면서 우악스레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따려는 것인가? 젊은 남자와 늙은 여자가 웅얼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문 안에 여자가 있다, 어쩌고 하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멀찍이서 문을 노려보다 천천히 걸어가 문에 귀를 대니 남자가 떠나는 승강기 소리가 났다.
    토마토소스가 졸아들기 시작했다. 남자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밖은 조용했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나는 가스 불을 껐다. 어디 가서 남자의 행방을 알아봐야 하는지, 어떻게 사고처리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문밖으로 나갈 자신도 없었다. 나의 집, 까마귀 숲의 밤나무 둥치로 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가 진짜 돌아오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열이 확확 올랐다. 불안하게 뛰는 내 심장소리로 방 안이 꽉 찼다.
    새벽이 되어도 남자는 오지 않았다. 비상계단에서 만난 개에게 물려 갈가리 찢겨버린 것인지 모른다. 나는 너무 큰 절망에 빠져서 소파에 이마를 쾅쾅 찧으며 울었다. 승강기 멈추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남자의 냄새였다. 그는 죽음의 사자와 싸우다 도망쳐 온 사람처럼 흠뻑 젖고 얼빠진 표정이었다. 수염이 목 밑까지 시커멓게 자라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붉은 모란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꽃잎이 핏방울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늦을 거라고 이 꽃다발과 함께 전보를 보냈는데 왜 문에 걸려 있지?”
    남자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나는 벌떡이는 가슴으로 그를 꽉 안았다.
    “갑자기 감사가 나왔어. 차변 대변 0.03이 맞지 않아 올 수가 없었어.”
    남자는 욕실로 가 젖은 옷을 모두 벗었다. 땀을 한 양동이 쏟은 것처럼 잘 걷지도 못했다. 우리는 서둘러 졸아버린 토마토소스에 면을 비벼 먹었다. 독한 술을 몇 잔 마시자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내일부터 회사 가지 마.”
    내가 말했다. 그는 펄쩍 뛰었다. 그는 10년 동안 회사에 다녔고 앞으로 30년은 더 다녀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이 나온다. 매달 그의 월급은 스무 가지가 넘는 세금으로 아주 세심하게 쪼개졌다. 집세를 내고 나면 꼭 먹고살 만큼만 돌아왔다. 이불을 덮고 가스 불에 음식을 익혀먹으며 살기를 원한다면 직장 생활은 계속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까마귀 숲으로 가야 했다. 이불도 가스도 따뜻한 물도 없는 곳에서 살다가 쓰러지는 나무에 눌려 죽어야 한다.
    “더 이상 혼자 있기 싫어. 무서워.”
    여자의 요구는 남자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일요일 산책 전통을 어기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굶어죽거나 이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내 소원을 못 들어주겠다면 난 떠날 수밖에 없어.”
    여자는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일어서서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그러나 내가 문을 향해 한 발짝 옮기기도 전에 남자가 내 허리를 꽉 안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이 여자를 잃는 것이었다. 그녀를 잡기 위해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헌납해야 했다. 집세는 누가 지불하고 세금은 어떻게 되고 먹고살 음식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자를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세상과 연결되었던 마지막 끈이 잘려 나갔다. 이틀이 지났을 때 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남자가 안에 있는 것을 다 안다는 투였다. 아프면 병가를 내고, 원한다면 법정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적절한 서류를 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니 빨리 나와서 규칙대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고 말했다. 며칠 후에는 남자의 엄마도 왔다. 퉁퉁한 손으로 문이 떨어져라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 까마귀, 망할 년을 당장 거기서 끌어내라!”
    그러자 그녀 뒤에 서 있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합창을 했다. 그 까마귀, 망할 년을 당장 거기서 끌어내라. 순한 남자 인생을 망친 까마귀를 당장 끌어내라. 동네 사람들은 날마다 문 앞으로 와서 합창을 했다. 까마귀 냄새가 난다! 망할 까마귀를 당장 숲으로 돌려보내라! 합창단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까마귀 숲에서 온 여자가 이곳 남자와 함께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이 도시의 다른 젊은이들에게 전염될까 봐 두려웠다. 합창단이 없을 때는 늙은이들이 개와 함께 왔다. 중얼중얼 기도인지 욕설인지 오랫동안 퍼부어댔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밤새 주기도문을 외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그만들 하세요!”
    남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온 흔적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많은 원망과 분노의 소리가 사실이었는지 환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문을 닫은 뒤 찬장 안에서 캔을 꺼내 요리했다. 남자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캔에 들어 있던 원산지를 사전에서 찾았다. 우리가 먹는 깡통 속 음식들은 대부분 밀림이 있고, 태양이 뜨거운 나라에서 온 것들이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을까 봐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몇 가지 손짓을 창조해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우리는 갑자기 말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초부터 언어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몇 가지 손짓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검지를 까딱까딱하면 나는 새끼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답을 했다.
    어느 날 전기가 끊겨버렸다. 뒤이어 가스도 끊겼다. 우리는 장님처럼 어둠 속에서 요리를 하고 음식을 해먹었다. 문을 흔들며 욕을 하거나 기도하면서 밖으로 나오라고 설득하는 사람들은 계속 몰려왔다. 흔들리는 얄팍한 문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우리는 문 앞에 소파를 놓고 탁자를 붙이고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 두꺼운 벽을 만들었다. 우리는 조용히 생활했다. 수화의 단어들을 좀 더 개발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나를 표현할 때가 좋았다. 그의 손은 까마귀 숲 속에 천천히 부는 바람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날 수도가 끊겼다. 이제 너희들은 죽었어. 이 까마귀 자식들아! 집주인인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을 때리는 도끼처럼 날아와 박혔다. 우리는 음식을 데우지 않고 그냥 먹었다. 모든 것에 쉽게 적응이 되었다. 문제는 식량이었다. 찬장 속이 점점 비어 갔고 어느 날 텅 비어버렸다.
    “찬장을 좀 채워야 되지 않을까?”
    내가 찬장을 가리키며 두 손을 맞잡고 푹 주저앉히는 수화를 했다.
    “어떻게?”
    남자 역시 수화로 대답했다.
    “나가서 통조림이랑 물을 사와.”
    내가 밖으로 나가는 손짓을 하자 그는 천 길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왔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사흘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나갔다.
    “배가 너무 고프다. 죽을 것 같아.”
    내가 허리를 꼬부리며 웅크려 눕자 그가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남자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단내가 났다. 우리는 거리가 한산해질 때를 기다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 문 닫기 한 시간 전이 되자 그가 커다란 가방 두 개를 어깨에 멨다
    “국수랑 토마토 캔, 정어리 캔, 물을 사와야 해. 설탕이랑 칼바도스도.”
    내가 수화로 말하자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허리를 꽉 안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안았다. 그의 몸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듯했고 심장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확확 뛰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머리카락과 수염도 길게 자라나 예전의 출근할 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까마귀 숲을 배회하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금방 다녀올게.”
    그는 문을 열고 재빨리 바깥을 살핀 뒤 비상계단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갔다. 그가 돌아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칼바도스를 한잔 마실 생각이었다. 그리고 올리브기름에 저장된 정어리를 한 조각 먹고,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서로의 입술을 핥을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나는 깜박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때 깊은 밤이었다. 창밖에 보름달이 지붕에 닿을 듯 내려앉아 빛나고 있었다.
    나는 불안하게 서성거렸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내 심장이 미칠 것처럼 뛰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문을 열고 나갔다. 비상계단 불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 그림자도 없는 조용한 밤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처럼 거리에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그 사이로 병아리만큼 커다란 달팽이가 허연 진액을 풀어 놓으며 기어가고 있었다. 잡초들 사이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 보니 토끼였다. 그 옛날 남자가 애지중지하던 그 토끼인지 다른 누군가의 토끼인지 하얀 털 뭉치였다.
    “미미야.”
    나는 쪼그리고 앉아 놈을 불러 보았다. 놈은 귀를 쫑긋하고 나를 보더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가와 내 품에 콱 안겼다. 놈은 화끈화끈거렸고 푹 젖어 있었다. 나는 토끼를 안고 걸어갔다. 이상한 밤이었다.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개도 보이지 않았다. 가게와 식당들의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자동적으로 까마귀 숲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길을 몰라도 알 수 있었다. 도시의 한쪽이 까맣게 보이는 저곳이었다. 골목이 끝나고 까마귀 숲으로 가는 길목인 ‘개들의 정원’ 입구에 이르니 사람들이 보였다. 경찰차가 여럿 보이고 제복의 경찰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피해 다른 쪽으로 가자 군인인 듯한 제복의 남자들이 장총을 메고 서 있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 다시 도시의 골목들을 헤매고 다녔다. 커다란 쓰레기통 안도 들여다보았다. 어디에도 내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개들의 정원’으로 돌아왔다. 전투 모자를 쓴 군인들이 당장이라도 쏠 듯이 긴 총을 겨누고 정원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떨면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의 실종이 너무나 걱정되어 온 용기를 짜내었다. 검은 무리의 눈길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날카롭게 번득이는가 싶더니 내 품에 안긴 흰 털 뭉치 미미를 보자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풀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나도 모르게 수화로 말했는데 그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오늘 밤 공원 산책은 금지되었습니다. 미친개에게 물린 남자가 저 까마귀 숲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나왔어요. 밤도둑이었어요. 그자가 우리 시민을 물 수도 있기 때문에 사살 명령이 떨어졌어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세요.”
    경찰은 바닥에 팽개쳐진 커다란 가방을 총으로 가리켰다. 내 남자가 들고 나간 두 개의 커다란 가방 중 하나였다. 지퍼를 잠그지도 못할 정도로 불룩하게 채워진 채 국수와 각설탕, 칼바도스, 정어리 캔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정어리기름에 국수를 볶아 먹은 뒤 디저트로 각설탕을 입에 넣고 커피를 마시던 순간이 생각났다. 혓바닥 위에서 커피에 녹아 부서지는 각설탕 맛이 정말 좋았는데 이제는 모두 끝이었다.
    나는 경찰로부터 멀리 떨어져 개들의 정원으로 들어갈 길을 찾아보았다. 덤불로 된 담 아래를 뚫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바위를 지나자 개들의 정원과 까마귀 숲 경계가 나왔다. <입산을 금지합니다>라는 글귀와 해골이 그려진 팻말이 까마귀 숲 앞에 세워져 있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덤불을 헤치며 걸어 들어갔다. 입구의 나무들이 어찌나 빽빽한지 보름달도 그 나뭇잎을 뚫지 못했다. 내 동공은 자연스럽게 커지고 코가 벌름거렸다. 한창 밤나무꽃이 필 때였다. 그 포근한 냄새에 입에 침이 돌았다.
    나뭇가지들이 내 뺨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나뭇잎의 느낌이 좋았다. 썩어 가는 나뭇잎이 도마뱀처럼 발목에 붙었다. 그 축축한 느낌이 좋았다. 이 숲 어딘가에 남자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둠보다 짙은 까마귀들이 커다란 박쥐처럼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녔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남자가 어디서 나를 기다리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뛰어갔다. 까마귀가 까악거리는 소리를 냈고 발밑에서 커다란 버섯이 뭉그러졌다.
    늑대들의 바위에 이르러 뛰기를 멈추었다. 달빛을 받아 바위들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헉헉거리며 바위 꼭대기를 보았다. 바위틈에 난 작은 나무가 흔들리더니 그 옆으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이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적인 두려움에 나무 사이로 피하려 하자 그것은 풀쩍 뛰어내려 내 앞으로 왔다. 내 남자였다!
    그는 반쯤 개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등에 걸친 옷은 갈가리 찢어져 너풀거리고 네 다리는 땅을 짚고 머리 위로 뾰족한 귀가 솟아나 있었다. 조금 튀어나온 주둥이 속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그는 뒤로 물러섰다. 나는 토끼를 내려놓고 두 팔을 벌렸다.
    “어서 날 물어 줘.”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거친 털로 덮인 짐승의 목을 꽉 껴안았다. 그의 이빨이 내 어깨에 와서 박혔다. 우리는 물고 물린 채 땅 위로 쓰러졌다. 그가 내 어깨를 풀었을 때 나는 내 손등에 거뭇하게 덮이기 시작한 짐승의 털을 발견했다. 이제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내 옆에는 늑대인지 개인지 알 수 없는 짐승이 한 마리 서 있었다. 내가 깨어나는 것을 보자 짐승은 바위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단숨에 낮은 전나무를 흔들며 바위 뒤로 사라져 버렸다.
    나도 일어나 바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내 몸이 너무나 가볍게 바위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바위 뒤로는 달빛을 받은 나무들이 밤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다이빙하듯 나무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리고 짐승이 사라진 곳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십 리 밖의 수컷 냄새가 강하게 내 코를 찔러 감전된 듯 떨면서 나의 수컷을 향해 달려갔다. 내 몸이 너무나 자유롭게 숲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나는 까마귀 숲에 어울리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신이현
작가소개 / 신이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으로 데뷔. 에세이 『알자스』, 『열대탐닉』,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등의 저서와 『에디트 피아프』, 『야간비행』 등의 번역서가 있다.

 

   《문장웹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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