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외 1편

[창작시]

 

 

 

 

성은주

 

 

 

 


   대학병원 화장실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사내가 방향 잃은 채 손을 놓고 있다 트럭에서 굴러 떨어진 상자처럼, 버스를 눈앞에서 놓친 사람처럼, 폭우에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외진 그늘에 앉아 쉬다가 일행을 놓친 여행객처럼, 오래된 간판 속 지워진 글자처럼,


   나는 손을 닦는다 공중화장실에서 문득 따뜻한 물이 나올 때 물이 베푸는 친절이 흐르는 방향에 대해 생각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는 동안


   다정한 젊은 여자 목소리가 사내에게 다가간다
   어디 찾으세요
   제가 밀어드릴까요


   방향을 바꾸는 바퀴처럼 그녀가 힘주어 말할 때
   감추고 싶지만
   불쑥 들켜버리는 얼룩 같은 부끄러움


   눌러도 나오지 않는 세정제 앞에서 손을 닦는다 잘 떼어지지 않는 껌처럼,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는 척하는 사람처럼, 하얀 이를 보이며 고개를 내미는 당나귀처럼, 편의점에서 잘못 받은 거스름돈처럼, 깨끗하게 닦지 못한 플라스틱 재활용품처럼,


   병실에서 귤껍질을 벗긴다
   옆 침대에서 귤을 쉽게 까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요즘 많이 배우면서 산다

 

 

 

 

 

 

 

 

 

 

 

싱잉볼*

 

 

 

 


   긴 목을 빠져나온 혀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눕는다


   설탕 뿌린 듯 달콤한 말에 눈이 풀리고


   새벽에 켜지는 불빛은 아침이 온다는 신호


   문과 벽을 비교할 때


   쌓여 있던 물건이 우르르 무너질 때


   가장자리로 밀려나도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이름 없는 징검돌 하나 박혀 있다


   가만히 멈춰 있다가 여러 번 놓친 건널목


   아지랑이 핀 철로 옆 안전속도


   잘 자라고 있다는 안부가 들리는 날


   좋아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증거


   청동 기차를 타고 우주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잔다

 

 

 

   * Singing Bowl, 노래하는 그릇이라 불리는 명상 도구

 

 

 

 

 

 

 

 

 

김 근
작가소개 / 성은주

197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현재 한남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집으로 『창』이 있습니다.

 

   《문장웹진 2022년 6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