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들

[단편소설]

 

 

성실한 사람들

 

 

문은강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자. 기다란 팔을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거꾸로 숫자를 셌다. 보행자 신호에 적색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너무 크게 돌았나 싶어 사이드미러로 차선을 확인했지만. 괜찮았다. 몇 달 전부터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엉클어진 전선처럼 지저분했던 생각이 선명하게 정리됐다고 할까. 뭐든 그랬다. 상황판단이 중요했다. 황색불일 때 액셀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택하는 것처럼.
    하늘이 맑고 미풍이 부는 화창한 날씨였다. 출근 시간을 비켜난 도로는 한산하고 평온했다.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주 듣던 노래였다. 전주에 삽입된 파도소리. 물방울이 내는 파열음. 끊임없이 부딪히고 바스러지는. How many special people change, How many lives are living strange…… 가로수 잎사귀 사이로 흩어지는 초여름의 빛에 시선을 두었다가 차선을 변경했고 급정거하는 앞차를 따라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큰일 날 뻔했네, 하고 숨을 돌리려는 순간 둔탁한 것에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오른쪽 발목이 꺾이고 턱이 세게 다물어졌다. 악! 비명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룸미러를 통해 뒷유리에 거꾸로 붙은 초보운전 스티커를 쳐다봤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자 속눈썹 위로 햇볕이 와르르 쏟아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뒤따라오던 차가 급정거하던 내 차를 박았고 내 차가 앞차를, 앞차와 그 앞차가 충돌한 것이었다. 사고를 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수더분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다. 눈을 찌푸리면서 머리를 빠르게 흔들었는데 상황을 부정하려는 몸짓이라기보다 본인이 가진 어떤 습관에 가까워 보였다.
    내가 미쳤지.
    남자는 주먹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쾅쾅 내리쳤다. 그러더니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가 바빠서 정신이 없었거든. 어쩌면 좋아. 아이고 아가씨 정말 미안해요. 횡설수설하던 남자는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친 곳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려다 그만뒀다. 목덜미가 당기는 것이 느껴졌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오른쪽 골반과 발목도 아렸다.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는 앞차의 남자를 따라 핸드폰을 꺼내들었는데 범퍼와 트렁크가…… 안 돼. 이건 아니지. 찌그러진 자동차를 쳐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교통사고란 불시에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알겠어. 알겠는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억울했고 그러자 울고 싶어졌다.
    출고된 지 두 달 된 차였다. 오백만 원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삼 년 동안 칠십만 원씩 내는 것으로 갖게 된 첫 차였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내 집 마련은 더더욱 생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가면서 호기롭게 계약했었다. 내가 뭐랬어. 첫 차는 중고로 하랬잖아. 운전도 제대로 못 하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평생 안 그러고 살던 얘가 왜 이렇게 욕심을 부려? 엄마는 비난하듯 중얼거렸고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 왜 안 되나.
    이번만큼은 그랬다. 제대로 된 것을 사보자 싶었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여기저기 뒤져 가며 가장 싼 것을 골라내는 일은 그만하자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옷이나 가방 같은 소모품은 중고 거래를 이용했고 전자제품을 하나 고르려고 해도 가성비를 따지다가 내려놓곤 했다. 얘가 이렇게나 자질구레하다. 혀를 차는 엄마를 노려보면서 누가 이렇게 키웠는데, 하고 응수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었다.
    차가 출고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들떴던가. 딜러가 보내준 자동차 사진을 보고 당장이라도 대리점으로 달려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었다.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를 생각하면 배시시 웃음이 났고 흠집이라도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주차 공간에 차를 집어넣을 때도 전진과 후진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앞차와의 안전거리 유지는 물론이거니와 뒤에서 클랙슨을 울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정 속도를 유지했더랬다.
    어지러웠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운전면허 학원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배우는 것과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의 간극에 관해 이젠 제대로 안다고 믿었는데. 차들이 쌩쌩 오가는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노라니 어지러운 것을 떠나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피해 차량의 차주들은 심각한 얼굴로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고를 낸 당사자는 전화기를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보험사와 통화 중인 듯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멀뚱하게 서서 상황이 종결되기만을 기다렸다.
    어허, 이거 마음이 쓰리겠는데.
    모자를 뒤로 눌러쓴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보험사 직원인가 했는데 묘하게 껄렁대는 태도가 수상했고 훈수 두기를 좋아하는 행인으로 치부하기에는 이상하게 전문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새 차잖아요.
    남자의 말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차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흐음, 음? 으응…… 하는 추임새를 냈다. 나는 어떤 지시를 내려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남자는 도로에 멈춰 있는 네 대의 차를 차례로 가리켰다.
    지금 그쪽이 여기 사고에서 제일 피해자예요.
    제가요?
    앞에 차들 봐요. 다 똥차야. 이거는 딱 보니까 출고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거 합의금으로 못해도 삼백은 받아야 해요. 병원에 이틀 정도 입원하고. 어? 결국에는 되팔려고 신차 사는 건데. 안 그래요? 감가 생각해서 그렇게 안 받으면 호구지. 호구. 억울해서 잠도 안 오지.
    그의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됐다. 어쨌든 이 사고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나였다. 그게 중요했다. 차량 진행에 방해되니 갓길에 차를 대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앞차의 주인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 보험사에 연락은 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젓자 그는 비밀을 폭로하는 사람처럼 몸을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거 레커차예요. 따라가면 최소 백만 원입니다. 경찰 불렀으니까 그냥 조용히 차에 계세요.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사설 견인차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고 교통사고 대처법에 관해 검색했다. 블로그 특유의 유난스러운 문장을 천천히 읽어 가다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트위터를 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글자 적었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두 눈을 감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리자 원장은 탐탁지 않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갑자기 빠지면 곤란한데.
    사중 추돌 사고예요. 제가 가장 피해자고요. 곧 경찰도 온대요.
    나는 일부러 피해자와 경찰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커다란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다름 아니라 당신의 학원으로 향하다가 벌어진 사고라는 것도. 원장은 알겠다고 하면서 정 안 되면 대타 강사를 찾아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도착한 경찰은 현장 사진을 몇 장 찍고 차량 운전자들의 면허증을 확인했다. 상황 설명을 듣더니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만 쓰면 끝날 문제라고 했다. 가해 차주가 과실 백 프로를 인정하기 때문에 굳이 얼굴 붉히면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험사 직원까지 합세해서 나를 안심시켰다. 무조건 보상받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술서 쓰면 됩니다.
    무조건이요?
    무조건이죠.
    상대 보험사 직원은 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 대인 접수번호를 말하고 몸이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치료받으라는 설명과 함께 차를 수리하는 동안 사용하게 될 렌터카까지 양도받았다. 내 차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차였다. 그렇지. 역시 내가 잘못한 건 없었지. 상황이 정리되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형외과로 갈까 하다가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앱을 켠 뒤에 ‘학원’이라고 등록된 버튼을 눌렀다.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은 가을 선배였다. 우리는 같은 지도 교수 밑에 있었지만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선배는 뭐랄까,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남편이 분당에 건물이 있어서 돈 걱정 안 하고 산다는 말도 있었고 호주로 이민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람들의 상상을 부풀리는 데 옷차림도 한몫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묶을 생각도 없이 치렁치렁 풀고 다녔고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짧은 바지에 높은 힐을 신고 인문대 복도를 거닐었다. 수업은 밥 먹듯이 빠졌으며 과제는 해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저럴 거면 왜 대학원에 온 거야? 그런 의문이 들었고 선배의 부주의한 태도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가을 선배는 나를 편안하게 여겼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례한 부탁도 스스럼없이 했다. 교수님들께 드린다는 명품 지갑이나 발렌타인 삼십 년산 같은 선물을 내가 대신 전달하기도 했었다. 가끔 문자로 명언 같은 것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우리 이 말을 믿자. 파이팅!’이라든가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정아의 하루에 미소만 가득하길.’과 같은. 소름 끼칠 만큼 전형적인 문장이었다.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선배의 동그란 이마. 그 예쁜 이마를 학회실 책상에 콩콩 부딪치던 모습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선배 곁으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하고 물었는데 가을 선배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아야, 나 정말 모르겠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나는 울고 있는 선배의 등을 차분하게 쓰다듬었다. 모르면 하지 마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면서. 가을 선배는 안온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선배의 욕심이었다. 그러니까 선배는 도망쳐도 괜찮았다.
    가을 선배는 박사 과정을 이 학기까지 마치고 휴학에 돌입했다. 이후로는 학교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선배의 이름은 술자리에서 잠깐의 안주거리로 소비되었다가 그마저도 금방 휘발되었다. 학교엔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들과 달랐다. 서른 살의 나이에 직장도 없고 부자 남편은커녕 독립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학교에 남는 것 이외에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야지. 보여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학교에 나가 여덟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인문대 4층 지박령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말이 좋아 박사 논문을 쓰는 것이지 사실은 백수나 다름없었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전전하며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강의 자리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 바람은 박사 논문부터 쓰라는 압박으로 되돌아왔다.
    내 사정을 어디에서 전해 들었는지 몰라도 가을 선배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 왔다. 입시 학원이야. 교재 연구 팀이고.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시급을 일러주었는데 계산해 보니 달에 백오십 정도 받는 격이었다. 출퇴근길이 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주 3회 출근이라는 걸 고려하면 결코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원장과의 면담 끝에 나는 고등 국어과로 배치 받았다. 대학원 스터디를 병행하면서 일하기에도 좋았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과도 잘 맞았다. 출근하는 날이 일상의 환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잠시였다.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모의평가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서울에 위치한 주요 대학의 입시 요강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몇 개년에 걸친 모의고사의 문법, 고전문학, 현대문학, 비문학 문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까지 진행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가을샘이 정아샘을 적극 추천하더라고. 분명 잘할 거라고.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고맙다가도 과도한 업무량과 원장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견뎌야 하는 날엔 이런 자리를 소개시켜 준 선배를 향한 원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선배가 여태까지 이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면 놀라웠다. 내가 아는 선배는 유약하고 철없는 부류에 가까웠다. 학원에서 동분서주하는 가을 선배를 상상하면 거짓말 같았고 학교에서 행했던 일련의 행동이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은 교통사고만이 아니었다. 고삼 A반의 국어 강의를 전담하던 강사가 급성 위염으로 쓰러지면서 학원에서는 급하게 강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정아샘 수업 가능하겠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시작. 나도 모르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연구팀 선생에서 강의 전담 강사로 위치가 바뀌었다. 3일 출근과 6일 출근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격무에 시달리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훌쩍 넘었고 침대에 누웠다가 눈을 뜨면 다시 연구실에, 강의실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학생들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봤을 땐 순한 양처럼 느껴지던 아이들을 강의실에서 대면하니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따로 없었다. 니 얼굴 뻐큐. 어쩌라고 반사. 초등학생도 안 할 것 같은 말들을 떠들어대는 걸 보면 이들이 진정 열아홉 살이 맞는지 대한민국 고삼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좌절하기 일쑤였고 이들의 지적 수준과 내 인생과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상기하곤 했다. 좋은 것들을 생각하자. 월급은 원래 받던 것에 두 배가 늘었고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돈을 보기 위해서 은행 앱을 들락거리는 것이 하루의 낙으로 자리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샀고 아이폰 새로운 시리즈와 아이패드에 맥북, 결국엔 자동차까지 결제했다. 갚아야 할 할부금은 불어났지만. 괜찮았다. 월급날은 돌아올 것이니까. 그렇지만 학교는? 논문은? 인문대 앞 등나무 벤치와 학생식당 특유의 음습한 냄새가 떠오르면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았다. 간단명료하게 생각하자고.
    많이 벌수록 좋지. 돈 있어서 나쁠 게 뭐가 있나.

 

*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찾은 정형외과에서 전치 삼주를 진단받았다. 손목과 발목이 시큰거리는 건 여전했지만 일상생활을 전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형외과에서 받는 물리치료는 효과가 없었고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만 들었다. 애초에 나는 시간 내서 몸을 돌보는 부류가 아니었다. 감기 정도는 편의점에서 파는 쌍화탕을 들이켜면서 이겨냈고 등허리가 뻐근해 오면 파스를 붙이는 것으로 끝이었다. 통원 치료를 받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평일에 못 잔 잠을 몰아서 잤고 거기에 보충 수업까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다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목이 뻐근하거나 발목이 시큰거리는 감각을 스트레스로 치부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 정도는 괜찮아.
    교통사고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싶었다. 이제 합의만이 남아 있었고 그 역시도 보험사에서 제시하는 적당한 금액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여러 면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런 부당함 같은 것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할수록 감정만 지저분해질 뿐이었다. 스스로가 선량하다고 믿고 살아가야지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감정적으로 덜 어려운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보험사에서 합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십 분 뒤면 강의실로 들어가야 했고 성가신 일은 빨리 치워버리자는 생각이었다.
    네?
    나는 상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사십팔만 원이요?
    아무리 그래도 사중 추돌에 출고된 지 두 달 된 차체의 앞뒤가 찌그러진 사고인데? 거기에 따른 보상 금액이 사십팔만 원이라니. 못해도 백은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에 한참 못 미쳤다. 자동차 수리비용과 수리 기간 동안 이용한 렌터카의 값은 이미 보험사에서 전부 지불했으니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은 대인 보상비용뿐이었다. 합의하는 순간 더 이상 병원에 다닐 수 없었고 내 몸의 치료를 포기한 대가로 받은 현금으로 차량에 발생한 여러 피해들을 메우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사십팔만 원? 어째서 이 가격이 책정되었냐고 묻자 담당자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답변을 내어놓았다. 합의금액은 병원에서의 진단과 치료를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내 경우엔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의 책상에 문제지를 배부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사십팔만 원 생각뿐이었다.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하는 동안 교통사고 합의금에 관해 찾아보았다. 대부분 억울하다는 이야기였다. 명쾌한 답은 알 수 없었다. 트위터를 켜서 답답한 마음을 실컷 토로하다가 친한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게 맞니? 나는 그냥 정직하게 진행할 생각이었다고. 그게 잘못이야?
    정아야, 이 호구야, 그건 정직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지.
    한의원에 가서 교통사고라고 했어야지. 그럼 바로 한약부터 대령이야.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자 힘이 쭉 빠졌다. 보험사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초보라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정보를 덧붙인 것도 후회스러웠다. 딴에는 상대에게 동정을 얻기 위해서 했던 말이었다. 당신도 사회초년생일 때가 있지 않았냐고. 그러니 언젠가의 당신을 떠올리며 나를 잘 봐달라고. 왜 몰랐을까. 그들 역시 회사에 소속된 직원일 뿐이라는 걸. 대한민국 고삼의 수준과 내 인생이 아무런 상관이 없듯이 내가 사회초년생이라는 것과 그들의 인생 또한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는 걸. 한참을 좌절하는 내게 카톡방의 친구들은 심심찮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교통사고 처리에 관해 잘 아는 사람과 연결해 주겠다는 한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부터 제 말을 잘 따르셔야 합니다.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눌러 봤다. 고집스럽게 앙 다문 입술, 다부진 턱, 카메라 렌즈를 정확하게 노려보고 있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조승헌. 이름부터 어쩐지 단단하고 정확한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보험사에 전화하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합의할 생각 없다.
    합의 금액으로는 이백오십만 원을 제시하라고 했다. 사고 상황과 차 상태를 봤을 때 그 정도 금액이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합의를 안 한다는 건’ 하고 채팅창에 입력하고 있는데 상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조승헌 역시 교통사고 때문에 보험사와 분쟁이 있었고 얼마간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원하는 합의금을 받아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받을 수 있어요. 아니, 받아야 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조승헌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보험사 이 새끼들 완전 양아치들이거든요. 사람을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그는 연달아 카톡을 보내면서도 이모티콘 하나 덧붙이지 않았다. 분노가 휴대폰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착한 사람들 등쳐먹는 세상이라고요. 지금 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십팔만 원은 아니잖아. 나는 조승헌이 말해 주는 것들을 메모장에 정리했다. 무조건 선빵을 쳐야 한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시한 보험금의 액수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시작된 이야기는 내가 초보라서 무시하는 것 아니냐, 하는 감정적인 호소까지 이어졌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담당자의 말투 또한 묘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의가 담긴 목소리가 불쑥불쑥 들릴 때마다 기분이 불편해졌다. 얼마 전 상담을 목적으로 통화했던 학생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들의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나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말을 고고한 태도로 전달하던 남자. 대놓고 신경질을 내는 편이 나았을 것이었다. 미치광이 학부모 취급을 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는 상대가 모멸을 느끼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감정을 마구 엉클어트리는 언어를 구사했다. 나는 어떤 방어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다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전화기 너머의 상대 역시 그러할 것이다. 담당자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들으란 식으로 대놓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나는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부분 잘 알았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담당자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가로막았다. 왜 사람 말을 끊지? 나는 뜨거워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는 동료들과 내 욕을 할지도 모른다. 교통사고로 한 몫 챙기려는 진상이라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항변은 무의미했다. 그쪽 뜻대로 합의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카톡을 열어서 조승헌에게 진행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서 전송했다. 잠시 뒤 조승헌에게 답장이 왔다.
    잘하셨어요. 정당한 항의입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당하다. 그 말은 내게 큰 위안이었다. 그래, 다들 이렇게 살고 있다. 그건 나 역시 비로소 보편의 세계로 편입되었다는 전언처럼 들렸다.

 

*

 


    조승헌의 숙제 중 또 다른 하나는 매주 두 번 이상 한의원에 가는 것이었다.
    돈을 쓰세요. 보험사 돈을 펑펑 써야 합니다.
    조승헌은 ‘펑펑’이라는 부사를 강조하듯 한 번 더 적었다. 저쪽에서 법을 운운하면 이쪽도 법대로 하면 된다. 대인 접수번호를 가지고 있는 이상 보험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 조승헌은 말했다. 지치는 사람이 지는 싸움입니다. 버티세요. 다른 건 몰라도 병원만큼은 성실하게 다니세요. 나는 그의 메시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성실하게 버티기.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선 아침잠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원 출근은 열한 시까지니 한의원이 문을 여는 아홉 시에 맞춰서 치료받으면 됐다. 그럼 늦어도 여덟 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네 시간밖에 못 자잖아. 얼마나 대단한 돈을 받겠다고 이러나 싶다가도 약해지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간 포기했던 많은 것. 증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신청하지 않았던 지원금 같은 것들. 그게 다 얼마야.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엉망이 됐고 모두가 자기 몫을 챙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회의가 찾아오곤 했다.
    너 박사까지 왜 했니? 학원에서 근무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말했었다. 한 군데에서 진득하니 있는 걸 못 해. 넌 꼭 그러더라. 대체 언제까지 학교에 있을 거냐고 비아냥댔던 엄마가 그런 말을 했을 땐 화가 나서 얼굴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버이날이며 생일, 명절 같은 각종 기념일에 빳빳한 현금으로 이십만 원씩 건네니 엄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돈의 힘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유효하게 작용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말하다가도 내 눈치를 보곤 곧바로 입을 다물었으니.
    학원은 지금 잠깐 하는 거야. 우리 정아는 교수 할 거래요.
    지난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엄마가 뭔가를 선언하듯 말했을 때 나는 사레들린 것처럼 콜록거렸다. 포부가 대단하네. 삼촌의 말에 고모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가 독하긴 하잖아. 엄마는 그것이 칭찬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비웃고 있다고 느꼈고 우리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이젠 낙관적 미래가 허황됨으로 다가오는 나이가 됐으니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몇 번이나 설명했다. 엄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었고 나는 끝끝내 엄마를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을 알았다.
    엄마를 잠에서 깨우지 않기 위해서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 알림을 몇 번이나 켰다 끄면서 겨우 눈을 떴다. 치료를 받은 뒤에 바로 학원으로 가야 했기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 근처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아홉 시 십 분 전이었다. 교통사고 전문 병원. 병원 앞에 붙어 있는 글씨를 보면서 굳게 닫힌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벤치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 노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이, 아가씨, 줄 서.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그들 곁으로 가서 섰다. 십 분 뒤, 병원에서 나온 간호사의 수신호에 맞춰 노인들은 줄을 지키면서 입장했다. 나도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를 하고도 삼십 분을 더 대기한 이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교통사고 때문에 왔다고 말문을 열자 한의사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고가 언제 났어요?
    몇 주 전에 있었던 사고라고 답하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컴퓨터에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나갔다.
    늦게 오셨네요.
    그 말에 민망해졌다. 제가 너무 바빠서요. 시간이 도저히 안 났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최대한 가슬가슬한 목소리를 냈다. 목도 팔도 다리도 얼마 전까지는 시큰거리고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한의사는 무료하고도 차가운 얼굴로 아무래도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서운 거니까요, 하면서 갈 때 한약이나 몇 재 지어가라고 말했다.
    간호조무사는 침을 맞을 거라면서 갈아입을 옷을 건네줬다. 하필이면 딱 달라붙는 티를 입고 나오는 바람에 환복하면서 애써 세팅한 머리가 완전히 망가졌다. 머리카락에 걸린 귀걸이를 빼내는 데도 한참 걸렸다. 뒤가 트인 연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엎드려 있으니 한의사가 다가왔다. 그는 목덜미 부근과 척추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침놓을게요, 하는 말과 함께 뻑적지근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의사는 다른 진료를 보기 위해 가고 간호조무사가 다가왔다. 오십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부산스러운 손길로 등허리에 뜸을 올렸다.
    자주 오셔야 해요. 그래야 빨리 낫죠.
    빨리 낫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얼마나 많이 병원에 다닐 수 있는가. 조승헌의 말대로 치료비를 펑펑 쓰는 것이 중요했다.
    노력은 해야죠. 근데 제가 너무 바빠서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인터넷 뉴스를 스크롤 하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지각하진 않겠지만 아침을 챙겨 먹을 시간은 없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감동란과 베지밀을 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간호조무사가 핸드폰 화면을 흘깃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몸이 가장 중요하지. 몸 상하면서 돈 많이 벌면 뭐 해요. 아직 젊어서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거 다 병원비로 나가요.
    아, 네…….
    나도 옛날엔 잠도 안 자고 일했어. 근데 요즘은요. 봄엔 꽃놀이 가고, 여름엔 계곡 가고, 가을엔 단풍 보러 청계산도 다녀와요. 짧은 인생인데. 그렇게 재미지게 살아야지. 안 그래요? 몸이 고장 나는 거야. 그렇게 살면.
    나는 그녀의 말이 성가셔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끄고 의료용 침대에 이마를 댔다.
    부항까지 뜨시게요.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부항을 뜨면서도 자꾸만 잠이 쏟아져서 꾸벅꾸벅 졸았다. 다 끝났다는 말을 듣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머리카락을 다시 깔끔하게 묶고 화장을 정돈했다. 얼굴은 말끔해졌지만 목덜미에 분명한 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이 내 모자람을 알려주는 표식 같아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

 


    역시 선생님이심. 목 뒤에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다님.
    븅신 저거 부항 자국이야.
    등 뒤에서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화이트보드에 고전시가를 적었다. 누가 수업시간에 떠들어. 나지막하게 읊조리자 킥킥대는 소리가 멎어들면서 조용해졌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면서 남은 강의 시간을 계산했다. 두 번의 쉬는 시간을 두고 열 시까지 수업을 진행하면 오늘 계획한 진도를 간신히 맞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몸이 쓸듸 업셔 성상이 바리시니 부귀를 하직하고 빈천을 낙을 삼아 일간모옥을 산수간에 지어두고 삼순구식을 먹으나 못 먹으나 십년일관을 쓰거나 못 쓰거나 분별이 없어거니 시름인들 있을소냐 만사를 다 잊으니 일신이 한가하다


    사월 모평에 나왔던 문제야. 해석할 사람?
    누구도 손들지 않았고 정적 속에서 나는 「낙빈가」의 전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자연 속에 은거하면서 살기를 바라지.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은 내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빠르게 적어 갔다. 연필이 노트 위에서 사각사각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소리에 집중하자 날카롭던 마음이 서서히 마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한의원에 다닌 것도 어느덧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절함과 불친절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한의사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민망했고 아침잠을 줄여 가면서 침을 맞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한다고 뭐 살림살이가 나아지나. 아득바득해 봤자 내 기분만 상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면 거울을 보는 것처럼 조승헌의 프로필 사진을 봤다. 그의 단호한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사건이 보험사의 새로운 담당자에게 인도되었고 그에게서 곧 연락이 갈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일이 다른 직원에게 넘길 만큼 어려운 사안이었던가.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고 찜찜하고 당혹스러운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나답지 않은 일 처리 방식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뒤엉킨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잔뜩 날이 선 채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바뀐 담당자는 능글맞은 목소리의 남자였는데 이전 담당자보다 친근하게 접근한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같은 직장인끼리 그러지 마시고, 에이, 저도 그 마음 알죠, 하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결론적으로 이백오십만 원은 과하다는 말이었고 나는 그 금액이 아니면 합의할 생각이 없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늘어놓았다. 통화 내용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았기 때문에 나는 보험사의 전화를 받는 일이 너무나 피곤했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교통사고 합의금에 관해 찾아봤다. 인터넷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이놈의 광고, 광고. 이러니까 블로그가 망하는 거야. 유튜브에 접속해서 긴긴 광고와 사족을 견뎌내며 듣는 이야기는 조승헌의 말과 거의 비슷했다. 무조건 버텨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어줄 때까지.
    담당자는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 듯싶었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맞춰서 전화했는데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연락해 오는 경우도 있어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점심 안 먹어? 퇴근 안 해? 퇴근 이후에도 업무를 수행하는 건가? 회사 일을 집까지 끌고 간다고? 뭘 위해서?
    연구실 앞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는데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백오십으로 합의할 생각이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내뱉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몸을 돌려 강의실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나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어우 깜짝이야. 너 왜 거기 있어.
    학생은 양손을 뒤로 감추고 으흐흐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러더니 선물을 내미는 것처럼 짠, 하고 스마트폰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눈을 끔벅거리면서 학생과 핸드폰 액정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선생님 트위터 계정 찾은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일종의 조소처럼 느껴졌다. 학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악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말을 거는 방식일 뿐인지 가늠이 가지 않아서 나는 순식간에 피곤해졌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교실로 들어가.
    성가신 것을 쫓아내듯 양손을 휘휘 저었다. 아, 정아샘 진짜 재미없다. 친구에게 달려가서 팔짱을 끼는 뒤통수를 보자 부아가 치밀었다.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 많지? 텀블러에서 찰랑이는 투명한 물 표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엉망인 기분을 누르려고 애썼다. 복도에서 뛰는 학생과 부딪치는 바람에 손등으로 물이 흘러넘쳤다. 차가운 감각에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조승헌의 딱딱한 문장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가 그 돈 받자고 이러는 것 같아요?
    대뜸 소리를 지르는데도 담당자는 놀라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조바심이 났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저도 번듯하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고요. 상식도 갖출 만큼 갖췄어요. 솔직히 그깟 이백오십.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요. 그런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거죠. 그쪽에서 사십팔만 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애초에 어느 정도의 성의라도 보여줬어도 저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요.
    빠르게 말을 쏟아내니 뜨거운 기운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정말 그랬다. 나는 흔쾌히 합의할 생각이었고 인간적인 호의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쥔 손이 떨렸다. 나는 텀블러를 바닥에 내려놓고 코를 훌쩍였다.
    네, 고객님. 어떤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정말 속상하셨겠죠. 이해합니다.
    그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나는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았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담당자는 뜸을 들이더니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그가 꺼낼 말을 기다렸다. 피차 피곤한 이 싸움을 종결시켜 주기를 고대하면서. 수화기 너머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백팔십으로 끝내는 건 어떠세요?


    손바닥으로 교탁을 두드리면서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용해진 강의실에서 빠르게 비문학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자, 여기에 밑줄. 세 번째 문단의 중심 문장은 뭐지? 몇몇 학생들이 오답을 말했고 나는 문제의 답이 어째서 오번이 아니고 일번인지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받을 돈이 사십팔만 원이 아니라 백팔십만 원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끝끝내 이백오십만 원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백팔십에 합의했다는 메시지에 조승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걸까. 하지만 왜? 나는 큰 소리로 문제의 오답을 읽었다. 너희는 그래서…… 이 답이 왜 틀렸다고 생각해?
    강의는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학생들을 집에 보내고 아직 못다 한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서 연구실에 남았다. 모의평가를 대비하는 모의평가를 준비해야 했다. 정아샘, 퇴근 안 해? 어느새 다가온 연구실 선생님 중 한 명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곳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더라. 칭찬이라고 여겼나.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인문대 앞 등나무 벤치엔 나만큼이나 간절했던 누군가가 앉아 있을 테고 내가 학원을 떠나더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 나보다 더욱 성실한 누군가가 이 역할을 대신할 것이었다.
    적당히 해. 몸 상하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막한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모니터를 바라봤고.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밟지 않은 빛을 기대했지만 도시의 불빛은 지나치게 환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도로 위로 흩어지고 부서지는 헤드라이트의 파편을 응시하면서. 나는 내일 해야 할 일을 더듬었다. 몇 시간 후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듯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생각했다. 저 차에 탄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지치지도 않고 태어날 것이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기를 바라는. 어쩌면 그 마음이 문제일지도 몰랐다.

 

 

 

 

 

 

 

 

 

 

문은강
작가소개 / 문은강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가 있다.

 

   《문장웹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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