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모래시계
김현서
딱 10분
지렁이의 긴 운구 행렬이 이어진다
메마른 영혼이 서성거리는 이 도시를
떠나기 위해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달린다
목이 떨어진 채, 나는 새
제한 속도를 무시한 채 눈을 감고
딱 10분
닳고 단 이생의 흉터를 모아
핏기 없는 또 다른 생을 향해
딱 10분
나는 구석 자리에 안치될
218번째 반가운 인사
나는 부서지고 부서져서 조금만 건드려도
홀연히 사라질 볍씨 한 알
두려움과 공포가 무르익는 계절
유리에 비쳤던 새파란 하늘을 지나
셔터를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상점을 지나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당신을 지나
딱 10분
한 무리의 화염이 방사되면
초조하게 떨어지는 죽음의 뼛가루
딱 10분
먼지처럼 무거운 출가를 꿈꾸는 나와
목덜미가 참 따뜻한 당신과의 인연을 떨쳐내기 위해
딱 10분
먹을 수 없는 소리를 먹기 위해
가질 수 없는 구름의 윤곽을 갖기 위해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사이에서, 나는 새
깨지 않을 잠을 청하기 위해
불편한 침구를 정리하며
딱 10분
투명한 유골함 속에 담겨
웃음을 보였지만
딱 10분
비틀거리는 사막과 사막 사이
좁은 길을 빠져나온 생의 이 기형적인 눈빛
딱 10분
10분 안에 모든 일은 끝이 난다
10분 안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무선주전자
어제는 꺾어진 붓꽃이었어
뿌리를 따라 긴 타원형 이파리가 마주나 있는 연못가
이른 아침이 물 위로 떨어지면
수심에 빠져들지 않도록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바람이 불었지
동심원처럼 둥글게 둥글게
뜨거워졌다가 이내 식어버릴 태양
얇은 비닐 같은 가면을 걷어내면서
모호한 인사를 건네던
끓는 물속의 자줏빛 혀
아물지 않는 통증을 우려
가까스로 채워 놓은 허공 같은 꽃잎
꽃대마다 진딧물처럼 맺힌 수액을 받아먹으며
꽃망울은 수포처럼 부풀어 오르고
갑자기 끼어 들어온 등나무의 기억에
머릿속이 하얘진
붓꽃 한 송이
한낮이 잠시 방을 채운 사이
얼마나 많은 꽃잎이 차올랐는지
자꾸만 조여 오는 심장을 움켜쥐고
붓꽃 한 송이
잎맥에 기록된 어지러운 시간을
가슴 뻐근한 흑자색 웃음을
차분히 따라내지만
평온해진 수면 아래에는 여전히
흔들리던 유리 붓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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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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