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묻지 마세요

[단편소설]

 

 

내 이름 묻지 마세요

 

 

이지영

 

 

 


    최초의 말막힘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네, 어머니. 입학 테스트는 매주……, 매주 ……, ……, ……, ……?”
    그것은 희진으로서는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토요일’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토요일을 발음하는 데 필요한 모든 신체 기관이 일순간 작동을 멈춘 것이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통화 상대인 학부모가 몇 번이나 전화가 끊어진 것인지 확인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희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십 초 아니면 일 분 남짓의 시간이 흘렀을까.
    “…… 토요일에 있어요, 어머니. 토요일에 입학 테스트요.”
    – 아, 통화 상태가 안 좋네요. 토요일 몇 시에 있어요?
    “오전 열한 시, 오후 두 시에 있고 지금 신청 가능합니다.”
    다행히 학부모는 통화 상태가 잠시 불안정해서 희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고 미루어 짐작했고, 희진은 그것을 짐짓 예사로운 일처럼 넘기며 통화를 이어 갔다.
    하지만 테스트 예약을 받고 입실 시간 엄수나 지참해야 할 필기구, 테스트 이후 진행되는 절차에 대해 기계적으로 안내하면서도 희진은 조금 전 자신에게 벌어진 당황스럽고도 기이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조갑지가 오므라들듯, 거북이가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기듯 일순간 모든 근육이 안으로 수축하며 바깥으로 나오려는 소리를 막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희진에게 일어난 것이다.


    상담사는 그것이 대표적인 말막힘의 증상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말막힘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말을 시작하려고 할 때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특정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첫 음절을 내뱉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희진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다.
    희진은 ‘토요일’을 말하려고 하면 열 번 중에 두어 번 정도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희진은 토요일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반 정도는 토요일을 억지로라도 내뱉으려고 애썼고, 나머지 절반은 토요일을 말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했다. 가령, 테스트가 진행되는 요일과 시간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드리겠다고 하거나 요일이 아닌 날짜를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희진의 말을 들은 상담사는 말막힘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회피하는 것까지도 말막힘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희진이 ‘토요일’을 말하지 못하는 횟수는 열 번 중에 두어 번이 아니라 다섯 번이 넘어갔다,
    상담사는 말을 더듬는 것보다 말이 막히는 것이 유창성장애에 있어 조금 더 심각한 문제라고 했는데 희진으로서는 어떻게 “토, 토, 토, 토, 토요일에 이, 이, 입학 테, 테, 테스트가 이, 있어요”보다 “……………………… 토요일에 입학 테스트가 있어요.”가 더 심각한 단계인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토, 토, 토, 토요일이든, ………… 토요일이든 희진과 토요일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희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한 증상이 비단 자신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명칭까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호소하는 어려움이라는 것을 알자 안심하는 동시에 낙담했다. 일단 진단이 나왔으니 치료법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면 희망적이었지만, 결국 희진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이라면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희진에게는 단 한 번도 말막힘이 나타나지 않았고(말막힘 증상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토요일’을 이야기해야 했음에도!), 희진에게 말막힘이 나타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며(희진이 언어치료 센터를 방문하기까지는 최초 증상이 발현된 시점부터 석 달 정도 흐른 뒤였다), 그전에는 희진에게 말막힘과 관련된 어떤 증상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상담사는 희진에게 말을 더듬거나 지금처럼 막히는 일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물었다. 어릴 때 말이 어눌해서 웅변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거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발표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지는 않았는지,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해 되도록 그런 일은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도 희진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의 희진은 모든 수학여행에서 관광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았고, 지금보다 키가 더 컸다면 분명 스튜어디스가 되고야 말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학교 때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도 복합 쇼핑몰의 안내 데스크였고, 놀이공원에서 일할 때도 희진이 제일 좋아했던 일은 마이크를 차고 놀이기구에 앉은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지금 희진은 ‘토요일’을 말할 생각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호흡이 가빠지고, 혓바닥에 힘이 들어가며 입술이 굳어지는 것이다.
    이전에는 말막힘 같은 증상은 전혀 없었고, 얼마 전부터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다는 희진에게 상담사는 최근에 환경이 달라진 점이 있거나, 큰 압박을 받은 사건이나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될 만한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환경, 압박, 부담 같은 단어를 듣자 희진은 자연스레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희진이 일하는 학원에 진 실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일 년 전부터다. 희진은 P시에 있는 어학원의 데스크에서 일했는데 입사 삼 년 차였고, 주로 하는 일은 전화를 받거나, 수납을 받거나, 컴플레인을 받는 일이었다. 진 실장은 학원의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학부모 상담 및 직원 교육을 위해 채용된 5성급 호텔 컨시어지 데스크 출신 ‘고급’ 인재였는데, 동시에 원장의 처제였고, 지금은 원장 부인을 대리해 학원 직원들과 원장을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진 실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원에서 사용 중인 기업 전화기 업체를 통화 녹음 서비스가 있는 통신사로 바꾼 것이다. 맨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희진을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우선은 통화가 연결되기 전에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거나 이전 통화 때는 분명 다르게 안내받았다며 터무니없는 내용을 가지고 억지를 쓰는 학부모들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순진한 직원들의 무구한 낙관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녹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실장은 직원들의 통화 태도와 응대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피드백은 세 가지 방식(① 밀실형-진 실장의 방에 불려가 녹음된 파일을 함께 들으며 신랄하게 비난받는다. ② 자아성찰형-자신의 녹음 파일을 확인하고 숙고한 뒤 진 실장 앞에서 참회의 시간을 가진다, ③ 공개재판형-녹음 파일을 모든 직원이 함께 듣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 전 직원으로부터 한 마디씩 듣는다)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에 희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자아성찰형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두 개밖에 찾지 못한 희진은 그 후로 나르시시스트 취급을 받게 되었다.
    희진의 기대, 그러니까 통화가 녹음되는 것이 직원들의 안위에 일조할 거라는 희망은 사뿐히 좌절되었다. 전화를 거는 쪽에서는 (요즘은 어디서나 통화 품질 향상을 위해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를 받으므로) 녹음이 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고, 서비스 마인드가 충만한 진 실장의 상식에서 고객은 언제나 옳고, 설사 고객이 틀리는 순간조차 고객은 늘 옳았으므로 통화 녹음이 시작된 이래로 더욱 수준 높은 갈굼을 당하는 것은 결국 직원들이었다.
    진 실장은 희진의 문제(말이 너무 빠르고, 습관적으로 ‘쫌’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것) 중에서 ‘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 희진이 3분 남짓의 통화에서 ‘쫌’이라는 말을 몇 번 사용했는지 그 횟수를 세서 전 직원이 보는 메신저에 실시간으로 공유해 주었다.
    그런 탓에 희진은 통화를 할 때마다 진 실장이 어디서든 자신의 통화를 듣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고, 계속해서 자신의 모든 통화 내용을 복기하고 후회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

 


    희진은 매일 쉰 번쯤 토요일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 쉰 번 정도 벌어지는 것이다. 어학원에는 학원 입학을 위한 시험이 토요일 열한 시와 두 시, 네 시에 있었고, 수강생이 가장 많은 초등학생 대상 영어 독서 수업은 토요일 열 시부터 시작했으며 그밖에도 두 개의 수업이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물론 매일매일의 토요일이 모조리 곤란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희한하게도 어느 날에는 한 번도 막히지 않고 토요일을 발음할 수 있었고, 어느 날에는 열 번에 세 번 정도, 그리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날에는 두 번에 한 번은 토요일을 내뱉기 위해 자신의 몸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면서 희진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언제나 첫 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토요일의 첫 음인 ‘토’만 순조롭게 나오면 그다음은 쑥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티읕은 파열음, 파열음은 공기를 막았다가 터트리면서 소리를 내는 자음이다. 혀끝을 윗니 바로 위의 잇몸에 대고 공기의 흐름을 잠시 막았다가 혀를 가볍게 튕기면 막혀 있던 공기가 터지며 경쾌하게 ㅌ, 토, 토, 토요일, 토요일, 이 나오는 것이다.
    희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혼자서 토요일을 발음해 보고는 했다. 토, 토,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 혼자서는 이렇게나 쉽게 나오는데 토, 토, 토요일, 언제나 말이 막힐 때면 잇몸에 닿은 혀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토요일을 말하려는 몸의 움직임보다, 토요일을 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면 몸은 여지없이 생각에 굴복해 버린다는 것이다. 살면서 무수하게 토요일을 말해 왔지만 토요일을 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리면 몸은 여지없이 토요일을 말하지 못했다. 지금 이 어머니는 우리 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구나, 그러면 입학 테스트를 봐야 하는데, 분명 입학 테스트 일정을 물어볼 거야, 아, 또 토요일을 말해야 한다, 토요일, 토요일, 이번에는 될까, 과연 할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은데…….
    “…………, …… 입학 테스트 일정은 문자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또 한 번의 토요일이 실패로 끝나고, 실패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희진의 마음은 점차 어두워져서 점점 더 토요일을 영영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비관 상태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토, 토, 토요일, 토요일, 누군가에게 토요일을 말해야 하는 상황만 아니면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데 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정말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일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물론 희진이라고 해서 ‘토요일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가 아니라 ‘이번에는 토요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의 기저에는 결국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180도 다르게, 긍정적으로, 자신감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야!’라는 너무도 명백한 진실이 깔려 있으므로 언제나 더 강력하게 토요일은 불발되고 만다.
    상태가 이 정도인데도 희진이 학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미연 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날마다 갱신되는 우울 속에서도 희진은 미연 님이 있어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고, 마음 놓고 쉬어갈 수 있었는데 말하자면 미연 님은 희진에게 심신이완제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미연 님과 데스크에 나란히 앉아서 근무할 때면 놀랍게도 토요일이 막히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번에는 분명 말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희진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희진의 몸이 아주 가뿐히 토요일을 발음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근속 기간이 가장 오래된 미연 님과 그다음으로 오래된 희진이 나란히 데스크에 앉아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미연 님이 쉬면 희진은 일했고, 반대로 희진이 쉴 때는 미연 님이 출근했다. 두 사람이 같이 출근하는 날에는 서로 다른 층에서 근무하거나 한 명은 오전, 다른 한 명은 오후 출근으로 근무가 지정되었으므로 희진으로서는 미연 님 옆에만 앉으면 모든 증상이 씻은 듯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미연 님을 멀리에서 바라보며 끝없이 밀려드는 토요일과 매 순간 맞설 수밖에 없었다.

 

*

 


    희진이 ‘토요일’에 이어 ‘따뜻’을 잃어버린 것은 미연 님의 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카페 라떼 주세요.”
    “카페 라떼 따뜻하게 하시나요, 아이스로 하시나요?”
    “……, ……, …… 아이스……요.”
    곧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 날씨에 아이스 카페 라떼를 들고 온 희진을 본 진 실장은 ‘희진 님, 안 추워? 혹시 희진 님도 그거야? 왜, 그거, 그거 뭐냐, 그, 아, 얼죽아, 희진 님 얼죽아야?’라며 깔깔거렸다.
    희진은 진 실장의 경박스러운 웃음에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숨기려 얼른 탕비실로 들어갔다. 미연 님의 퇴사가 결정된 뒤로 진 실장은 계속 기분이 좋았다. 희진은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미연 님이 떠나서 슬픈 것은 희진의 사정, 괜히 진 실장을 건드려 봤자 희진의 신변에 좋을 게 없었다.
    미연 님은 원장이 원장이 아니었을 때부터 함께 일한 직원이다. 원장이 강사 시절 여러 학원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던 때 미연 님은 운전기사이자 비서, 현장 조교 역할까지 혼자 도맡아 했다고 했다. 그런 공력이 있으므로 진 실장도 미연 님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그것은 진 실장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 틀림없었다.
    진 실장이 통화 녹음을 도입한 다음 두 번째로 추진한 일은 자신의 방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복합기를 비상구 쪽으로 옮기는 일이었는데 미연 님이 소방 점검에 걸린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그것 말고도 진 실장의 시누이의 남편이 영업하는 방향제 자동 분사기 설치는 이미 사용 중이던 기존 업체에 생각보다 큰 위약금을 주어야 해서 불발되었고, 강의실에 페인트칠을 다시 하는 것 역시 이미 예정된 수업을 옮겨서 할 강의실이 없는 관계로 학원 전체 수업을 쉬는 명절 연휴로 무기한 미뤄 둔 상태였는데 진 실장은 미연 님이 퇴사하자마자 휴강을 불사해서라도 그것부터 하고야 말 작정인 것 같았다.
    미연 님의 퇴사는 서류상으로는 미연 님의 번 아웃이었고, 표면적으로는 유니폼 때문이었으며 암묵적으로는 진 실장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호텔리어 출신 진 실장은 품격 있는 서비스를 위해 외모부터 그에 걸맞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모든 직원이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머리 색깔은 어두운 갈색, 새치가 보여서는 안 되고 입술 색은 Y사의 6호 립스틱, 피부 화장은 20, 21호 색상만 사용해야 했다. 손톱은 투명이나 자연스러운 베이지, 연한 핑크로만 칠할 수 있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톱도 불가했다.
    데스크에서도 5센티 이상의 단화를 신어야 한다는 규정도 생겨 근무 중에 신던 통굽 슬리퍼를 갖다 버리면서 희진은 방문보다 전화 문의가 곱절은 많은 학원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적어도 원장은 모든 직원이 화사한 색상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서 학부모가 로비에 들어설 때마다 발딱 일어나 공손히 맞이하는 것에 무척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회사나 고객 만족보다 오너의 만족이 더 큰 가치였으므로 진 실장으로서는 원장의 니즈 파악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하나같이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에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미연 님이었다. 진 실장이 선택한 유니폼은 흰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가 이어진 원피스 타입의 신축성이 없는 소재로 사이즈는 55와 66 중에 선택이 가능했지만 희진이 착용해 본 결과 55는 44 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나마 66이 기성복 55 사이즈를 입는 희진에게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딱 맞았다. 그마저도 밥을 많이 먹으면 윗배가 도드라져서 모든 직원이 반강제로 회사에서는 평소 먹던 식사량의 절반밖에는 먹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소 66 사이즈를 입는 미연 님에게 유니폼은 절대 입을 수 없는 옷이었을 것이다.
    미연 님은 어쩔 수 없이 유니폼 대신 흰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를 따로 구매해서 입었는데 흰 블라우스야 어떻게든 비슷한 것을 찾아 입었지만 유니폼과 똑같은 스커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호등의 초록불 색상에 가까운 초록색은 유니폼으로는 입어도 일상복으로는 좀체 입지 않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책임자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나온 진 실장과 유니폼을 맞춰 입은 직원들 사이에서 펑퍼짐한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 차림의 미연 님이 전체의 완성도를 해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진 실장은 자꾸 자극을 받아야 살을 뺀다면서 미연 님에게 충격요법을 빙자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미연 님, 평소 66 입는다면서 이거 유니폼 66인데 왜 못 입어. 자기 솔직히 얘기 좀 해봐. 지금은 66 아니지? 확실히 좀 쪘지? 내가 다 자기 생각해서 이런 이야기도 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자꾸 얘기해서 살 빠지면 내가 좋아? 자기가 좋지.
    그러다가 미연 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떡볶이가 얼마나 살찌는 음식인 줄 아냐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미연 님, 어제도 떡볶이 먹었어? 아니 왜 그렇게 부었어. 미연 님, 어제는 확실히 먹었네, 먹었어. 얼굴 좀 봐! 미연 님, 그렇게 먹다가는 미연 님 터져. 알아요? 터져, 터져.
    희진은 진 실장이 미연 님의 떡볶이를 입에 올렸을 때 미연 님이 더는 참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미연 님에게 떡볶이란 그런 거였다.
    미연 님의 떡볶이에 대해서라면 희진이 잘 알았다. 미연 님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는 미연 님 집 근처의 좌판에서 파는 떡볶이로 그 집은 여느 평범한 떡볶이와 다르게 지름이 족히 3센티가 넘는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든다고 했다. 두꺼운 가래떡을 맵고 단 양념에 오래도록 조리면 진득한 양념이 떡에 스며들면서 겉은 말캉하고, 중심은 본연의 쫀득함을 간직한 떡볶이가 된다는 것이다.
    일인분을 주문하면 가래떡 두 개를 무심히 툭툭 잘라 주는데 어느 날에는 열 조각, 어느 날에는 열한 조각으로 잘린 떡볶이를 미연 님은 모든 직원이 다 보는 앞에서 진 실장으로부터 ‘미연 님, 그래머가 뭐예요, 그래머가. 그뢔마, 따라 해 봐요, 그뢔마’라고 무안을 당한 날에도 먹었고, ‘미연 님, 조금 전 오신 어머니가 미연 님 엄마라도 그렇게 안 된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미연 님은 미연 님 엄마한테 그딴 식으로 이야기해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조미 김에 싸서 먹었다. 그리고 희진과는 늘 언제 한번 같이 먹자고 이야기만 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먹지 못했다.

 

*

 


    희진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샀다. 요즘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셔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미연 님 없이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서 희진은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토요일’에서 시작해 ‘따뜻’과 ‘카라멜 마끼아토’로 이어지던 말막힘은 이제 희진의 모든 말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희진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면 토마토 베이컨 파스타나, 카르보나라나 크림 버섯 파스타는 어쩐지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처음부터 봉골레를 주문했고 평소 밥 대신 즐겨 먹던 클럽 샌드위치나 크루아상 샌드위치도 대면 주문을 해야 하는 카페에서는 사 먹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녹진한 카르보나라 파스타를 먹는 진 실장 맞은편에서 조개 육수가 말갛게 우러난 오일 파스타를 먹거나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키오스크로 주문할 수 있는 카페에 가기 위해 눈이 내리는 날에도 왕복 이십 분을 걸어갔다 오는 불편은 희진이 진짜로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희진이 일하는 학원이 위치한 P시에는 조선 시대 때 지은 ‘청운정’이라는 오래된 정자가 있는데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이 청양중과 청이초, 청이중, 청신고에 다녔다. 희진은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혼자 있을 때면 처, 처, 처, 청양중, 청신고, 청, 청, 청이중, 을 말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그렇지만 토요일의 ‘토’와 달리 청양중의 ‘청’은 혼자 발음할 때도 가끔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청양중의 치읓은 티읕과 달리 혀와 입천장을 붙여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틈을 조금 벌리며 마찰을 일으켜 소리를 내야 했는데 혀와 입천장이 붙은 채로 그냥 굳어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희진은 학교별 내신 수업이 개설되는 4월 일에 대해서 1월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 청이중 내신 수업은 ………… 토요일 …… 다섯 시부터 시작합니다. 저희 학원에 ………… 청양중 내신 수업 있어요. …… 청이초 다니면 중학교 배정은 거의 ………… 청이중으로 간다고 보면 되더라구요.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학교별 내신 수업에 대한 문의가 들어올 텐데 희진은 자신이 없었다. 그전에 퇴사를 하는 게 좋을까, 이렇게나 말이 나오지 않는데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나약한 생각이 희진을 잠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희진의 말이 막히는 것은 전적으로 희진 마음의 문제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해결되기만 하면 문제 될 게 없는데 굳이 퇴사해야만 하는 걸까. 퇴사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청국장도, 차돌된장찌개도 주문하지 못해 매일 순두부만 먹는 주제에.
    그렇게 봄이 되었고 희진의 걱정과 달리 청운중도 청신고도 무탈하게 넘어가는 순간이 많았다. 직원들이 여럿 퇴사하면서 남은 직원들이 처리해야 하는 콜 수가 대폭 늘어났고, 정신없이 전화를 받다 보면 말이 막힐 것 같다는 예단을 할 겨를조차 없이 통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아의 지경에서는 ‘청운중 수업은 토요일 두 시에 시작해서 다섯 시에 끝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막힘없이 해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러고 나면 결국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에 이토록 진을 빼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치료사는 희진이 겪고 있는 불편이 전적으로 마음에서 기인한 문제이므로 그것을 너무 오래 방치하거나 자꾸만 회피하려 하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희진으로서는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치료사가 제안한 방법 중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 실장과 반드시 마주 앉아야 했다.
    실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사실 제가 얼마 전부터 말을 하는 데 불편한 증상이 생겨서요. 그걸 말막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어떤 증상이냐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그 말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아서 약간 힘이 든 증상인데, 이게 정신적인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주로 토요일이나 청운중 같은 말이 제일 힘든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 해결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실장님께 말씀을 드리게 되었어요. 아, 실장님 때문에 제 마음이 힘든 건 아니고요, 제가 요즘 조금 피곤한 것 같아서…… 아, 학원에서 무언가를 해주실 필요는 없고요…….
    치료사를 만나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희진은 더는 상담을 받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은 희진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희진이 해내야 할, 극복해 나가야만 할, 이겨내야만 하는…….
    희진은 까만 지하철 유리에 비친 자신을 마주 보았다. 확실히 고장은 났는데 수리가 가능한지, 이런 채로 언제까지나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서른넷의 희진이 거기에 있었다.
    복합 쇼핑몰의 안내 데스크에서 희진은 발음이 가장 또랑또랑한 알바생이었다. 네 고객님, 삐에르가르뎅 매장은 이쪽으로 직진하시다가 꼼떼까르송 매장을 끼고 돌아서 조금 더 걸어가시면 빨라조데쁘레또 매장 옆에 있습니다. 캉골 매장이요, 저 앞에 케즈 매장 보이시죠. 케즈 매장 지나서 조금 더 가시면 캉골 매장입니다.
    커피 전문점에서도 다른 파트타이머들은 에스프레소 샷을 뽑고 음료에 휘핑크림을 올려 초코 시럽으로 드리즐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희진은 포스에 서서 주문을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 카푸치노 한 잔, 카라멜 마끼아토 한 잔 하시는 것 맞으실까요. 카라멜 마끼아토는 따뜻한 것 맞으시고요. 아, 카푸치노는 투 샷, 차가운 음료로 하시고, 퍼플 카드에 도장 찍어 드릴까요?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던 희진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휘핑크림과 초코 시럽을 듬뿍 올린 시원하고 달콤한 자바칩 푸라푸치노가 먹고 싶었다.
    자바칩 푸라푸치노. 자바칩 푸라푸치노. 푸라푸치노까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자바칩이라고만 해도 충분히 전달될 거다. 그러니 자바칩, 자바칩. 자, 자, 지읒. 지읒은 예사소리.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지읒만 터지면 그다음 두 글자는 쑥 나온다. 자바칩, 자바칩, 자바칩. 쉬지 않고 한 번에 이야기해야지.
    “주문하시겠어요?”
    “…………”
    “…………?”
    “……, …… 핫초코 주세요.”
    “휘핑크림 올려드릴까요?”
    희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휘핑크림이 소담스레 올라간 따뜻한 머그를 양손으로 쥐고 희진은 오래도록 카페에 앉아 있었다. 휘핑크림이 데운 우유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때까지.

 

*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가며 희진은 걸음걸음 가슴이 점점 빠른 속도로 뛰는 것을 느꼈다. 요즘 희진은 말막힘의 정도를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고는 했는데 기본값에 가까운 토요일은 1단계, 참치 김밥과 치즈 김밥은 못 먹지만 불고기 김밥은 먹을 수 있는 날은 2단계, 비타민이 많아 피로회복에 좋은 자몽주스를 주문할 수 없어 못 먹는 날은 3단계 같은 식이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어떤 말도 잘 나오지 않는 날은 무어라고 부를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는데 경보 단계라고 해야 할까, 재난 단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출근 전에 들른 치과에서 희진의 삶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을 마주했다. 물론 말막힘 자체가 이미 전에 없는 낭패감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응이 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 진료 보러 오셨어요? 저희 치과 처음이세요?
    – 아니요.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 ……, ……, ……, 이희진이요.
    의사가 왼쪽 어금니 근처에 마취 주사를 두 번 놓고, 뿌리 가까운 곳까지 썩어버린 부분을 공들여 긁어내는 동안에도 희진은 방금 전 데스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곱씹고 또 곱씹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이희진이요.
    의사는 긁어내도, 긁어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충치의 깊이를 확인하고는 마취 주사를 한 대 더 놓았다. 그러면서 지난번 정기 검진 때는 충치가 없었는데 단시간에 너무 심하게 썩어서 온 게 이상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희진으로서는 조금도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희진의 어금니에 때 아닌 충치가 생긴 것은 사탕 때문이다. 아주 신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말막힘의 정도를 완화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는데 입에 고인 침을 삼킬 때마다 혀와 안면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도 들었고, 입안에 사탕이 있는 것을 들키지 않는 것에 신경 쓰다 보면 말이 막힐 것 같다고 지레 생각해 버리는 일이 실제로 줄어들기도 했다. 물론 덕분에 지금처럼 양쪽 어금니에 충치를 얻게 되었는데 일하는 내내 어금니 깊숙이 사탕을 밀어 넣은 채 계속 물고 있었으므로 예정되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늦은 출근길을 재촉하던 희진은 커피라도 마셔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치과 접수 데스크에서 있던 일에 사로잡혀 기분이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까라지는 마음을 어떻게라도 추스르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시럽을 잔뜩 넣은 커피를 들이켜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각을 했으면서 커피까지 들고 들어가면 진 실장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족히 다섯 문장은 떠올릴 수 있었다. 더구나 치과 진료 때문에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했다가 쉬는 날에는 뭐 하고 출근하는 날 치과에 가냐는 질책을 이미 차고 넘치게 들은 상태였다.
    학원에 들어선 희진이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진 실장이었다. 진 실장은 희진이 학원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노골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희진은 진 실장 혼자서 지키고 있는 데스크와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원장실을 보고는 원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면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연 님 이후로 진 실장은 두 명의 직원을 더 내보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중 한 명이 진 실장 때문에 그만둔다고 이야기를 했고, 원장은 그 뒤로 진 실장을 제외한 전 직원과 면담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말이 면담이지 그저 직원들과 잠시 수다를 떨다가 밥이나 사주고 끝나는 일종의 요식행위였다.
    희진이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오기 무섭게 진 실장은 중국집에서 밥을 시킬 거라면서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저는 괜찮아요.”
    “원장님이 직원들 다 사주시는데 안 먹으면 꼭 희진 님만 따돌리는 것 같잖아.”
    “아…… 저 치과 치료받고 와서 정말 괜찮은데…….”
    “…… 먹어. 희진 님. 그냥 먹어. 먹어 그냥.”
    진 실장이 왈칵 짜증을 내자 희진은 그제야 메뉴를 고르라는 진 실장의 말이 희진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아닌, 원장의 좋은 원장 놀이에 동참하기를 종용하는 것임을 눈치 챘다.
    “먹기 싫어도 먹어. 못 먹겠어도 그냥 시켜서 버려.”
    원장실에 모두 모여 잡담을 하는 와중에 자기 혼자만 데스크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에 심사가 잔뜩 꼬여 있던 진 실장의 화가 애꿎은 희진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 불합리함에 부당함을 느낄 새도 없이 희진의 머릿속에서는 중국집에서 파는 것 중에 희진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제일 무난한 짜장면, 짜, 쌍지읒은 오늘은 절대 불가다. 짬뽕도 마찬가지. ‘짜’를 내뱉으면서 바로 미음 받침을 붙여버리면 ‘뽕’이 따라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짬………………뽕’이 되겠지. 그래도 볶음밥은 비읍, 비읍은 예사소리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입술만 살짝 닫았다가 보, 하고 내뱉으면 되는데, 보, 보, 볶…….
    “뭐 먹을 거야. 지금 주문해야 해. 빨리 골라.”
    “…….”
    진 실장은 전화기 숫자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로 희진을 재촉했다.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진 실장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실장님이랑 같은 걸 먹겠다고 하면 곧이 주문해 줄까, 아니면 지금 장난하는 거냐며 냉랭한 표정을 지을까.
    “……………… 울면이요.”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희진이 가까스로 울면을 고르자 진 실장은 울면? 이라고 한 번 되묻더니,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희진은 진 실장에게는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얕게 한숨을 쉬었다. 짜장면도, 간짜장도, 짬뽕이나 볶음밥, 마파두부와 잡채밥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울면을 떠올린 것은 정말이지 순간적인 기지라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희진은 먹어 보지도, 하물며 누가 먹는 것을 본 적도 없는 울면이라는 메뉴를 생각해 낸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역시 궁지에 몰리면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위기를 재치 있게 극복해 낸 희진은 재난을 알리는 경보가 울리는 것 같던 오늘의 말막힘 정도를 약간 하향 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로 희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평생 먹어 본 적 없는 울면을 떠올렸는데 그깟 청이초가 대수인가,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
    “아, 전화 되게 안 받네. 희진 님, 희진 님이 좀 시켜 봐.”
    진 실장이 희진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원장실 안에서 한 차례 왁자한 웃음이 밀려왔다 잦아들자 진 실장은 지금 진행 중인 대화의 카테고리와 그 향방에 대한 궁금증을 더는 참을 수 없어 데스크를 박차고 나가 원장실 문 앞에서 서성이기 시작한 것이다.
    – 네, 중국집입니다.
    엉겁결에 수화기를 넘겨받은 희진은 중국집 사장님과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 실장이 앉아 있던 자리에 남겨진 메모지에 빼곡히 적힌 메뉴들, 짜장면 1, 간짜장 1, 짬짜면 2, 탕수육 중, 삼선짬뽕 1 중에서 지금 희진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삼선짬뽕 정도일까. 하지만 일단 주문을 시작하면 짜장면도, 탕수육과 짬짜면도 말해야만 한다.
    – 중국집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희진은 행여 중국집 사장님의 목소리가 진 실장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의 볼륨을 제일 작게 줄였다.
    희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중국집 사장님은 몇 번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고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연속해서 울려대는 통화 종료음을 들으며 희진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고심했지만 무엇도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실장님 여기 중국집 오늘 안 하나 봐요. 그럼 다른 중국집 시키면 되잖아. 에이, 그래도 원장님이 여기만 드시는데 다른 데서 시키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우동 어때요, 우동. 우동 여섯 개로 통일. 아니면 오므라이스, 별로예요? 그러면…… 그러면…… 오징어 볶음! 오징어 볶음 좋다.
    희진은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어 ‘오’나 ‘우’를 말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았다. ‘이’는 어려웠지만 ‘오’나 ‘우’는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조금 전에도 ‘울면’을 성공시켰으니까. 물론 희진이 오므라이스나 오징어 볶음을 먹는 게 어떠냐는 헛소리를 하면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진 실장이 달려와 희진의 주둥이를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진 실장한테 맞을 수도 있다, 나쁘지 않은데. 그러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다고 하면 되잖아.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실업급여 신청도 가능할까. 희진이 자신의 생각이 아무렇게나 마구 뻗어 나가는 것을 방관하는 사이 진 실장은 계속 아무 말도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는 희진에게 입 모양으로 ‘아직도 안 받아?’라고 물었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몇 달이나 받을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느라 진 실장이 데스크로 다가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희진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진 실장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화 안 받아?”
    “아…… 오늘 쉬나 봐요.”
    “아니야, 내가 아까 전화해서 확인했어.”
    “아…….”
    “다시 안 해?”
    “번…… 호가…….”
    “희진 님, 자기는 여기서 일한 게 벌써 몇 년인데 원장님 만날 드시는 중국집 번호 하나도 몰라? 관심 좀 가져, 관심 좀. 내가 불러 줄게. 5, 7, 3…….”

 

*

 


    “어마, 아가씨 비를 이렇게 맞아서 어떡한대.”
    점심시간이 지난 중국집은 텅 비어 있었다. 카운터에서 티브이에 열중하던 사장님은 비를 흠뻑 맞은 채 중국집으로 들어오는 희진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걸음걸음마다 빗물을 뚝뚝 흘리며 카운터까지 걸어온 희진은 손에 꼭 쥐고 있던 메모지를 사장님에게 내밀었다.
    “아니 전화를 하지……. 전화 두고 왜…….”
    희진은 사장님의 황당함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사장님이 얼른 주문내역이 적힌 메모지를 확인하기를 바랐다. 희진에게는 학원의 이름을 이야기해야 하는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거를 이렇게 적어 주면.”
    하지만 폭우를 뚫고 달려오면서도 끝까지 사수하기 위해 손에 꼭 쥐고 있던 메모지는 이미 푹 젖어버린 뒤였다. 사장님은 잘 펼치려고 하면 할수록 수성 사인펜의 잉크가 흘러내리며 한데 얼룩지는 메모지를 보며 난감해했고, 희진은 희진대로 주문서가 사라진 것에 절망했다.
    짜장면 하나에 간짜장이 둘이었던가, 짬뽕도 있고, 짬짜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두 개지, ‘삼선’으로 시작하는 메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삼선짜장인지 삼선짬뽕인지 헷갈렸다.
    희진은 데스크에서 본 메모를 복기하려 애썼지만 메뉴가 기억날 리 만무했다. 그때는 온 신경이 이 메뉴의 첫소리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메뉴를 불러 줘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은 이미 축축한 메모지를 내려놓고 희진의 얼굴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희진은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중국집 전화기를 들어서 마르고 닳도록 누군가에게 불러 주기만 했지 막상 직접 걸어 본 적은 없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직 원장실에 모여 있으려나, 아니면 다들 데스크로 나와 식사 배달을 기다리며 업무를 보고 있을까.
    초조한 몇 번의 신호가 가고,
    – 네, 브라우딩 아카데미입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진 실장이다.
    희진은 진 실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전화기를 중국집 사장님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중국집 사장님이 희진에게 뭐라고 말을 걸 새도 없이 중국집을 나와버렸다.
    “아, 여보세요. 여기 청심각인데 아니 어떤 아가씨가……. 아…… 브라우딩. 어쩐지 입고 있는 옷이 낯이 익다 했어. 전화를 안 받아? 아닌데…… 아니, 아무튼 그래서…….”
    희진은 중국집 밖에 서서 사장님과 진 실장이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 메모지를 들고 왔는데…… 짜장면 하나, 간짜장 하나, 가만있어 봐…… 이거는 뭐라고 쓴 거야, 짬…… 아, 짬짜면 두 개, 탕…… 수육은 중 자, 삼선짬뽕 하나, 울면 하나.”


    희진은 중국집 문 밖에서 사장님이 진 실장과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짜장면, 짬뽕, 간짜장, 탕수육…… 파열음과 파찰음을 넘나들며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장님의 말이 한 음절 한 음절 희진의 마음에 와서 박혔다.
    희진도 저렇게 말을 잘하던 때가 있었다. 팝콘은 칠리, 치즈, 카라멜, 어니언, 이렇게 네 가지 중에 어떤 거로 하시겠어요? 고객님 찾으시는 매장이 파타고니아 맞으세요? 아웃도어 브랜드는 컬럼비아와 코오롱 스포츠, 케이투까지 입점 되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팔월까지는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폐점 상태입니다. 파열음의 거센소리를 거침없이 말하던, 입술소리와 잇몸소리, 여린입천장소리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말을 쏟아내던.
    하지만 지금은 단단히 망가져서 이름조차 말하기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보러 가도, 기분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미용실에 가도,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심리치료 센터를 가도, 정신과에 가도, 어디에 가도 첫 관문은 언제나 이름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이요. 이름! 이름이 뭐예요?
    …………………….
    희진은 나지막이 자신의 이름을 발음해 보려 했다. 이희진의 첫소리는 이, 사실 ‘이’는 이응의 문제라기보다는 모음 ‘ㅣ’의 문제다. ‘ㅣ’를 발음할 때는 입술을 양쪽으로 평평하게 만들고 혀의 앞부분을 높게 들어서 ‘이’ 하고 발음해야 한다.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희진, 이희진이요,
    이희진입니다,)
    희진은 아무리 애써도 뱉어지지 않는 소리를 몸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희진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희진의 몸은 이름을 말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 같았다. 마치 지금의 희진은 희진이 아니라는 듯, 지금의 희진이 희진일 수 없다는 듯. 소리도 없이 입술로, 혀로, 목구멍으로
    (이, 이, 이, 이)
    내뱉던 희진은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보다 소리가 먼저 나오는 울음이었다.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희진의 잇새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이, 이, 이, 이,
    희진은 연신
    이, 이, 이, 이,
    거리며 울었다.
    이, 이, 이, 이희진, 이희진, 이희진, 이희진, 이희진.
    희진은 안도한 듯 몇 번이고 자기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이름이……,
    이희진이에요.
    고객님 성함이랑 생년월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희진, 89년 4월 17일이요.
    저희 병원은 처음이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희진이요.
    이희진, 이희진이에요.
    제 이름, 이희진이에요.

 

 

 

 

 

 

 

 

 

 

이지영
작가소개 / 이지영 

1989년 출생.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문장웹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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