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A

[단편소설]

 

 

디스트릭트 A

 

 

정희선

 

 

 


    새 수업 문의가 왔을 때 나는 수업 하나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수업을 그만두는 것. 이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일 대 일 수업을 하는 일은 불안하고 자유로웠다. 커다란 자유가 불안함을 넉넉히 상쇄한다고 생각하지만, 수업의 선택권은 대체로 내게 있는 듯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면 – 통화할 때 학생 어머니가 명령조의 말투를 구사한다거나 교재나 수업 내용에 세세히 간섭하려 한다거나, 품행이 나빠 주변 학원에서 거부하는 학생이라는 게 내 귀에까지 들어온다거나. 여러 요소들이 작지만 강렬한 신호를 보내온다 – 어떤 이유든 대고 수업을 맡지 않으면 된다. 원하시는 요일에는 수업이 이미 다 차 있네요. 아이고, 어떡하죠. 꼭 듣고 싶으시면 기존 학생들에게 바꿔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글쎄요. 말은 해 보겠습니다.
    문제는 일단 수업을 시작한 이후다. 이미 정기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고 그 요일의 그 시간은 그 학생에게 내주기로 약속했음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수업을 그만해야겠다는 말은, 어떻게 해도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수업 중단 결정은 쉽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에겐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건 ‘그럴 만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번 숙제를 안 해 오면서 다양한 핑계를 대고 적반하장으로 억울해 하는 정도는 이유 축에도 들지 않는다. 수업료에 상응하는 높은 점수를 기대하는 학부모들과 최소한의 숙제도 하지 않는 자녀들을 두루 겪은 후 나는 거기에 말려들지 않을 장치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숙제 3회 불이행 시 경고 1회, 경고 3회 누적 시 수업 중단.
    몇 가지 조건을 적은 ‘안내문’을 수업 전에 나누어주기 시작하면서 소모전의 반복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그러나 나로서도 예상할 수 없고 안내문에 써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 수업이 예상대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건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 기초가 전혀 없다고 했고, 겨울방학 동안 기초만 잡아 주면 된다고 했다. 맡아 보니 과연 중학교에서 배운 내용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학생을 만나면 쓸데없이 의욕이 불타오르며 도전정신이 고개를 든다. 네게는 암호문처럼 보일 이 내용을 내가 환하게 이해시켜 줄게. 알고 보니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해 줄게. 나는 설명을 듣던 학생의 얼굴에 반짝, 불이 켜지는 그 순간이 좋았다.
    어쩌면 내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 한 명 한 명 가만히 들여다보며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설명을 해주면, 아이들은 다소 늦더라도 전환의 순간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 날은 자기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웃으며 집에 갔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해본 학생에겐 더 이상 숙제를 꼭 해 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의욕 없던 눈에 생기가 돌고 다른 문제집을 더 풀어 보고 싶은데 어떤 걸 사면 좋겠느냐고 물어 온다. 겨울방학 동안만 다닐 거라는 이 학생도 개학 전에 거기까지 밀어 올려 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본 내용부터 압축적으로 수업했다. 이제 원소와 원자, 분자를 구분하고 원소 기호와 화학식을 제법 읽고 쓸 줄 알게 된 학생을 데리고 원소 주기율표에 도달한 참이었다.
    “근데 봐, 여기 이런 애들이 이온이 될 때 양이온 되는 거 배웠지? 리튬도 1가 플러스, 나트륨도 1가 플러스, 칼륨도 1가 플러스.”
    일렬로 늘어선 Li, Na, K에다 길쭉하게 테두리를 쳤다.
    “근데 얘네가 다 같은 줄에 서 있네? 그럼 다 같은 1족이지? 이렇게.”
    “네.”
    “같은 족이면 화학적인 성질이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 화학적인 성질이란 게 별게 아니고, 그냥 이온이 될 때 같은 종류가 된다, 그거야. 얘네들이 다 똑같이 1가 플러스잖아, 그게 같은 족이라서 그렇다는 거지. 뭐 더 복잡한 것도 많은데 일단은, 여기까지.”
    시계를 보았다. 밤 열 시 오 분 전. 깔끔하게 설명을 마무리하고 쉬운 내용을 이해한 것을 크게 칭찬하고 헤어지면 되는 시각이었다.
    “자, 같은 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원소들은 같은 무엇에 속하는 거라고?”
    “같은 주기요.”
    “……어? 아, 아니, 여기 한번 봐.”
    각각의 족에 길게 동그라미를 덧씌웠다.
    “이게 1족, 이게 2족, 그리고 이게 17, 18족, 그렇잖아? 그치. 이렇게 같은 족에 한 줄로 서 있는 얘네들끼리 성질이 같은 거야. 자, 같은 성질을 가진다, 그럼 같은 뭐에 줄 서 있는 거라고?”
    “아……, 같은 주기요.”
    “에이, 현민아. 주기는 이거였지.”
    나는 방금 그린 동그라미에 직각으로 교차되는 길쭉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봐, 여기 이렇게 가로로 있는 게 주기라고 아까 말했고, 그러니까 이렇게 가로로 쭉 늘어선 얘네들이 같은 주기 원소인 거고,”
    다시 같은 족 원소들에 족 번호를 포함해 진하게 테두리를 쳤다.
    “이게 같은 족인 거지. 방금 그린 게 주기, 이건 족. 지금 얘네들이 1족, 2족, 알겠지?”
    “네.”
    “그리고 주기 얘기는 지금 안 할 거고, 족 얘기만 할 거야. 족이 같으면 화학적 성질이 같다는 거, 그거 하나만 하고 가자. 자, 다시 물어 볼게. 뭐가 같아야 화학적 성질이 같다고?”
    “……어……, 같은 주기요.”
    아무리 말해도 입력이 되지 않았다. 3초 전에 말해 준 걸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같은 성질을 가진다는 건 같은 족이라는 거야. 자, 같은 무엇이 같은 성질을 가진다고?” “같은 주기요.”를 일곱 번쯤 반복하고 나자, 머리가 뜨뜻해지고 귀에서 날카로운 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돌아버리겠다’가 머릿속 모니터에 그어지는 이명의 선 근처에 휙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학생은 “아니, 이게 주기니까, 하아, 이렇게 써 있는 게 주기니까……”를 제가 더 돌아버리겠다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그동안 수업하면서 이해에 시간이 걸리는 학생이라는 건 파악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대체 이 아이는 어디서 막힌 걸까. ‘오늘은 포기할 것인가, 끝까지 이해시켜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여러 가지로 질문을 바꾸어 던져 봤다. 단 두 가지 보기 중 바른 답을 말하지 못하는 학생의 머릿속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질문과 관찰 끝에 결국 모니터 한쪽에서 딩동, 벨이 울렸다. 아, 너 뭘 헷갈려 하는지 알겠다.
    이 아이는 표의 생김새 자체를 어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로로 적혀 있는 숫자가 가로인 주기를 나타내는 것과, 가로로 늘어선 숫자가 세로인 족을 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제목과 내용의 위치라는 게,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꼬여버렸고 그 상태로 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방금 전에 들은 걸 똑같이 대답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따위의 궁금증은 의미 없다. 그냥 이 아이는 그랬으니까. 따라 하면 되는 걸 왜 못 하는지, 그게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1 더하기 1이 2라고 따라 말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건 어려운 거다.


    그날 퇴근 후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맥주 캔을 쥐고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처음 겪어 보는 이명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가슴 속은 벌건 숯을 삼킨 것처럼 쓰렸다. 이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뒤죽박죽 떠올랐다 가라앉는 조각난 생각 사이로 의구심 덩어리가 떠다녔다. 아니,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였나.
    사실 깊이 고민할 일은 아니었던 게, 어차피 개학과 함께 끝날 수업이었다. 학생의 집이 너무 멀어서 정하게 된 기한이었지만 여기까지 와 보니 어쩐지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그런데 그 다행스러움이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안도해도 되는 걸까. 가르치는 사람이. 알고 보니 나는 이해를 잘 못 하는 학생은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못 알아먹는’ 학생에게서 벗어날 미래에 안도하는 그런 사람인 걸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원하게 ‘나 그런 사람 아님’이라는 대꾸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차가운 맥주를 들이켰다. 달궈진 숯이 치이 소리를 내며 스팀을 뿜어 올렸다.

 

*

 


    이 동네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국내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여기는 지역 인구 대비 십대 인구의 비율이 높기로는 아마 최상위권일 것이다. 거주 인구, 유동 인구, 어느 쪽이든. 오후 서너 시와 일곱 시, 열 시쯤 교복 군단이 거리 곳곳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술처럼 사라진다. 그건 학교가 끝난 직후, 학원 수업이 한 타임 끝난 시각, 모든 학원 수업이 끝난 시각이었다.
    열 시를 전후해 도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학원 셔틀버스와 아이를 태우러 온 부모들의 차가 뒤섞여 혼잡하기 짝이 없다. 주·정차 금지 구역에 비상등을 켠 차량이 초조하게 멈춰 있고, 어디선가 달려온 아이가 타면 차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난다. 건물 주위를 빙빙 돌던 다른 차가 빈자리에 얼른 와서 선다. 지하철역 승강장에 늘어선 긴 줄은 출퇴근 시간대를 방불케 한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 학생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들을 불러들인 건 소위 ‘명문대’에 해마다 학생들을 줄줄이 보내는 고등학교들과 그 학교들보다 더 잘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학원들일 터였다. 특히 학원들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크기와 형태로 존재했다. 본관에 별관, 중등관과 고등관을 거느린 대형 학원들이 대로변의 건물을 차지했고 건물들 사이, 가느다란 골목 저 안쪽까지 중소형, 소형 학원들이 꺼지지 않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각기 다른 크기의 돌로 쌓아올린 테트리스 성벽 같았다. 기묘한 자부심과 경쟁심이 시멘트 대신 팽팽하게 발라져 있는 성벽. 교복 군단은 성 안에서 강처럼 흘러 다녔고 ‘명문대에 반드시 가야/보내야 한다’는 거대한 동의가 이 이상한 십대 인구 밀집 지역을 돔처럼 덮고 있었다.


    나?
    나는 성벽 어딘가에 박힌 자갈쯤 될 것이다. 이왕이면 투명하게 반짝이는 수정 조각이었으면 좋겠는데 반짝이는지는 몰라도 투명하기는 한 것 같다. 어디에도 내 간판은 없으니까.
    골목 안쪽에 빌려 놓은 조그만 강의실에서 수업을 한다. 광고를 하지 않는데 학생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온다. 입시를 끝낸 학생의 어머니에게서 아파트 이웃의 손으로, 친척의 손으로, 부모끼리 동창인 집으로 내 전화번호가 건네지는 모양이다. 광고하지 않아도 와 주니 고마운 일이다. 조용히 박혀 있는 저를 잘 찾아오셨군요. 고마운데, 또한 같은 이유로 조금씩 곤란했다. 아는 사람끼리의 소개로만 수업이 이어진다는 것.
    한창 수업 진행 중인 학생의 어머니는 같은 학년 친구를 절대 소개하지 않았다. 성적을 보면, 또 웬만해서 그만두는 학생이 없는 걸 보면 고객 만족도가 낮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학생들은 내게 혼자만 다녔다. 아주 가끔 다른 학년의 사촌이나 이웃집 학생의 문의가 올 뿐이었다. 수업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게 약간 섭섭하지만 갑자기 줄지도 않으니까 하던 수업을 평화롭게 계속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수업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수업을 줄이면 수입이 준다. 당연하다. 수업 한두 개의 수업료가 끊긴다고 생활에 지장이 오는 건 아니어도, 빈자리를 메워 줄 다음 소개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는 게 나를 한 번은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수업을 이 이유로 붙들고 있었던 적은 없다. 나는 나름대로 신중히 고민한 끝에 ‘돈 때문에 참고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결론을 내리고 나서도 머뭇거렸던 건 매번 비슷비슷한 고민 때문이었는데 – 그래도 선생인 내가 좀 더 참아 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가르쳐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 결국 내 뜻대로 끝낸 수업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그 망설임과 고민이 다 무슨 필요였는지 싶긴 하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야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일 당신의 자녀가, 나에게는 돈 받고 일주일에 한 번 마주 앉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존재라는 걸.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부모들을 설득할 방법을 몰랐으며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은 한, 부모란 대개 자식 얘기에 관해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 마디도 보태거나 뺀 것 없이 설명한다 해도 그걸 듣고 순순히 알겠다고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일에 학교 끝나면 뭐 해?”
    “친구들하고 놀아요.”
    “주로 뭐 하고 놀아?”
    “코노*)도 가구요, 창녀촌에 창녀들 보러 가요.”
    화학 들으러 오는 요일 외에는 뭘 하는지, 숙제는 계획 세워 하는지, 학원에 안 다닌다는 다른 과목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표의 가로세로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혼자 고군분투할 학생의 고충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보고 싶었다.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알면 내가 좀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녀석의 목소리는 뚜렷하고 컸다. 생전 누구의 입에서 이렇듯 좔좔 나오는 걸 들어 본 적 없는 단어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는 깜짝 놀라 말 그대로 의자에서 튀어오를 뻔했다. 이를 어쩐담, 저 불똥 같은 단어가 여기저기 함부로 튀지 못하게 얼른 틀어막아야 할 텐데. 뭘 어떻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네가 지금 쓴 말은 듣기 안 좋은 말이니까 ‘창녀촌’보다는 ‘사창가’, 그보다는 ‘홍등가’가 낫겠다고 가르쳐 주었다.
    “따라 해 봐, 홍등가.”
    “홍등가.”
    녀석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혹은 실수했는지 몰랐을 거다. 하지만 왠지 잘못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진짜 뭘 잘못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어서 그렇게 천지분간 안 되는 강아지가 혼나는 것 같은, 어리둥절하고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걸 거다.
    우람한 팔뚝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는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앉아 ‘창녀촌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야’를 배우고 있는, 여드름이 박박 난 186센티짜리 소년이라니. 말해 놓고 나니 이 녀석이 친구와 거리를 돌아다니며 “야, 홍등가에 창녀들 보러 가자.” 할 것도 한숨이 났다.
    “대체 니들이 거길 가서 뭐 하는데?”
    “창녀들 이쁘잖아요.”
    녀석이 헤헤 웃었다.
    “그냥 예뻐서? 밖에서 보고 와?”
    “아뇨? 문 두드리고 도망쳐요.”
    그러니까……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동네 ‘초딩’들 같은 거구나, 그렇구나. 그러니까 이제 겨우 고2밖에 안 된 녀석들을 두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들이 사창가에 놀러가다니’ 하며 놀라지는 않아도 되는 게 맞겠지, 맞을 거다. 맞는 것 같다. 더 발랑 까지지 않아서 다행인 건지 장소가 장소라서 어이없어야 하는 건지는 도무지 판단이 안 되지만.

 

   *)  코노 : 코인 노래방


    녀석에게 사소한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게 교과 수업보다는 조금 수월한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다시는 ‘창녀촌’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임은 물론, 친구들이 아무리 꼬드겨도 문 두드리러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을 때. 녀석은 진지한 나머지 약간 굳어진 얼굴로 “진짜 안 갈 거예요. 저 약속 잘 지켜요, 진짜.”라고 했다.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이 아이에게는 ‘그런 데는 고등학생들이 놀러가도 좋은 데가 아니야’라고 말해 준 사람이 없었던 걸까. 말해 주지 않아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한편 모두에게 당연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녀석은 ‘당연히 아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녀석은 자기들끼리 떠드는 채팅방을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건 안 하는 게 좋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니 내게 자기 말의 증거를 보이겠답시고 휴대폰을 건네줬을 것이다.
    “애들이 자꾸 저 생긴 거 가지고 놀려요.”
라는 하소연을 한 직후였다. 어떻게든 한 글자라도 더 수업하고 싶은 나는 아이의 말을 대충 넘겼다.
    “요즘 트렌드에 안 맞게 왜 얼평을 하고 그런대. 얼평 하는 애가 나쁜 앤 거 알지? 자, 57쪽 펴 보자.”
    “아니, 자꾸 저보고…….”
    목소리에 ‘들어 줘요, 들어 줘요, 제발 내 얘기 좀 들어 줘요’가 묻어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곧 눈물이 맺혀도 이상할 것 없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너보고, 뭐?”
    “저보고 자꾸 강간범같이 생겼다고 하잖아요.”
    “아니……, 어떤 놈의 새끼가 그런 소릴 해. 그걸 냅뒀어?”
    “그게요…….”
    녀석이 서둘러 휴대폰 화면을 켜고 카톡 목록을 바쁘게 넘겼다.
    “얘가 먼저 시작을 하면요, 다른 애들이 다, 맞다고, 자기가 봐도 그렇다고…… 못생겼는데 강간범같이 생겼다고요, 얘도 그러구요, 얘도 그러구요.”
    내 손에 녀석의 휴대폰이 넘어왔다. 나는 얼결에 눈앞에 활짝 열린 ‘남고딩’들의 채팅방을 그닥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훑어보았다. 대문자로 척하니 적어 놓은 ‘SEX’라는 아이디가 말을 제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녀석이 ‘네 얼굴은 강간범’의 주범인 것 같았다.
    대화라기보다 소음으로 가득한 채팅창을 보는 건 잠깐인데도 어질어질했다. 온갖 비속어, 줄임말, 욕설, 한글 자음, 무차별적인 킬킬거림이 총알처럼 채팅창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래, 총알에 맞아 네가 지금 전사하기 직전인 거구나.
    “에이, 네 말처럼 다들 그렇게까지 동조하는 건 아니네.”
    전화기가 아니라 언어의 쓰레기통처럼 느껴지는 녀석의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해 보았다.
    녀석의 얼굴을 보니 전혀 위로가 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벌떡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번호를 눌러 쓰며 떠들기 시작했다.

 

   *)  얼평 : 얼굴 평가, 외모 평가


    1. 강간범같이 생긴 건 어떤 걸 말하는가? →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말한 그놈도 그게 뭔지 모를 거다.
    2. 그럼 그 녀석은 왜 그런 말을 했는가? → 너 기분 나쁘라고.
    3. 왜 네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은가? → 그건 나도 모르지만
       – 네가 부럽거나(너는 걔보다 키가 크잖아)
       – 그냥 애가 못됐거나(이런 애들 많아, 널렸어)
    4. 너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기분 나쁘라고 한 말에 기분 나빠하면 걔한테 지는 거다. 완전히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히! 그럼 거꾸로 걔가 기분 나빠질 거다
       (가끔 ‘응, 거울 봐’ 정도를 날리는 것도 괜찮다).
    5. 너는 정말 이상하게 생겼는가? → 멀쩡하다.
    6. 저런 애들하고 계속 놀아야 하는가? → 카톡 보니까 쟤 같은 애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더라. 착한 애를 골라라, 그런 애가 너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밖에서 맞고 들어온 아이에게 ‘얘야,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한 건가,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더 짜증나는 ‘옳으신 말씀’을 건넨 건가 내심 걱정하고 있는데 녀석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화사해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한낱 과외 선생의 말이 매일 카톡창을 울려대는 친구들의 말에 맞설 힘을 얼마나 크게,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이런 말이라도 없는 것보다 네게 낫다면.


    어쩌면 그게 문제였던 걸까.
    녀석이 수업을 계속 듣겠다고 했다. 개학을 앞두고 헤어질 준비로 ‘앞으로 공부라는 것을 혼자 잘 해나가려면’을 착착 정리해서 말을 꺼냈을 때였다. 학기 중에,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니겠다고?
    전화 저편에서 학생의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성적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가 공부를 해 보겠다고 할 때 시켜 보려는데, 지금 수업을 들어 둬야 나중에 또 겨울방학에 ‘엄마, 공부해 보고 싶어요’ 할 때 선생님한테 보낼 수도 있고…….”
    무슨 소린지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학기 중에 계속 보내야 겨울방학에 아이가 원할 때 보낼 수도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물어 보려다 포기했다. 녀석의 어머니가 말하는 게 ‘그냥 수업을 계속하시오’인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거절하거나 수업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저도 예전에 수학 과외 오래 했었거든요. 그때 학부모님들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선생님께 나중에 ‘감사합니다’ 하고 싶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 먼 거리,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굳이 아이를 보내려고 하시면서, 정말 성적을 기대하는 게 아닌가요. 그럼 뭘 배우러 보내시는 건가요. 혹시 아이가 사창가에 구경하러 친구들과 놀러가는 걸 아셨나요. 이제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긴 했는데…… 아, 그게 아니면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걸 눈치채셨나요. 저에게 무슨 담배는 맛이 어떻고 무슨 담배는 어떻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다 듣고 나서 담배의 성분을 간략하게 알려줬죠. 그리고 암보험 빵빵하게 들어 두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담뱃갑을 꺼내서 라이터랑 같이 저에게 주더군요. 뭐, 그래도 그 정도 말에 넘어가다니 조금 순진한 것 같기도 해요.
    참, 그런데 처음에 여쭤 봤을 땐 1학년 때 평균 5, 60점 정도는 꾸준히 받았다고 하셨죠. 학생에게 물어 보니까 자기 점수 2, 30점이었다고 하던데요. 그런 건 솔직하셨어야 하지 않나요. 수학을 지금도 직접 가르친다니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수업하고 있을지, 현민이는 단순히 기초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요, 어머님.
    당연하지만, 이 중의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쩐지 몰린 기분으로 툭 던졌다.
    “개학하면 곧 시험입니다. 방학 동안에는 기초만 정리했어요, 어머님. 첫 시험에서 오십 점도 안 나올 수 있어요.”
    “괜찮아요,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 믿고 맡기고 싶습니다.”
    괜찮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을 거절할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녀석이 나에게 해준 얘기다.
    오, 너 중간고사에 관심이 있구나.
    착각이었다. 녀석의 마음은 희망을 긁어모아 본격적으로 고삐를 죄어 보려는 나와 상관없이 봄날의 콩밭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언제부턴가 ‘여자’ 얘기를 자주 입에 올리기 시작했던 거다. 관심이야 진작부터 있었겠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하아……, 나만 여자친구 없고, 아 짜증나요.”를 말하기 시작했달까.


    어느 날, 얼굴이 구겨져서 수업에 들어왔다. 알아봐 달라는 표정이었는데 못 본 체하고 책을 폈더니 못 들을 수 없게 한숨을 ‘하아아아……’ 쉬었다.
    “무슨 일 있어?”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도르륵 굴러 나왔다.
    “채였어요.”
    “누구한테 차여. 너 여친 있었어?”
    “아뇨, 친구한테 여소*) 해 달라고 했는데 그 여자애가 저 찼어요.”
    “그게 뭐 찬 거야, 사귄 것도 아닌데.”
    아이의 심정을 헤아려 줬으면 좋았겠지만 나라는 선생은 찼다는 표현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꽂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처 입은 사나이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아니 그 여자애가요, 페메**)로 제 사진 달라 그래서 줬는데요, 사진보고 싫대요. 하아아아…….”
    이 날 녀석은 ‘우거지 죽상’을 하고 수업 내내 혼자만의 심각함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은 얼굴이 더욱 구겨져서 들어왔다. 이번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 진짜 기분 나빠요, 라고 말을 꺼냈다.
    “왜? 뭔 일 있었어?”
    녀석은 조금 전 지하철역에서 자기네 학교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고 했다.
    “어? 이 동네에서? 오, 신기하다. 근데 왜? 너보고 뭐라고 하셨어?”
    내 상상력으로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기분 나쁘다’ = ‘무슨 이유로든 혼났다’
    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요오……, 여자랑 같이 있잖아요.”
    “……?”
    “아니 그 쌤이이, 여자랑 같이 있더라구요.”
    “너보고 뭐라고 하신 건 아니고?”
    “네.”
    “근데 그게 왜 기분이 나빠?”
    이해가 가지 않아 물어본 결과, 요컨대 ‘그 쌤은 여자랑 데이트 하는데 나는 여친 하나 없고’가, 부러운 것도 아니고 기분이 무려 나쁘신 이유라는 것이었다. 이건 무슨……. 아무리 넓은 이해심의 소유자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 구조다. 그냥 이건 이 녀석의 머릿속이 기-승-전-‘여친 구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인과관계였다. 사춘기 남학생이 대개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녀석은 증상이 보다 심하고 오로지 한 방향이어서 별로 이해해 주고 싶지가 않았다.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야이노므자슥아시끄럽고공부나해’라고 하지 않은 건, 이게 너무 전형적인 꼰대들의 대사여서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이 날 녀석은 정말로 기분이 나빴는지 꽤나 오래 씩씩대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달래기 위해
    “현민아, 그 쌤은 어른이고, 너는 애잖아. 다 큰 어른이 퇴근하고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는 게 잘못이야? 그게 네가 왜 기분이 나쁠 일이야. 너도 나중에 커서 데이트 하면 되잖아! 그 쌤도 너만 할 때는 모쏠이었을 거야.”
    라고 말해 보았다. 나로서는 상당히 깔끔한 설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씩씩대는 당사자에게는 씨도 안 먹힐 소리였다는 걸 안다. 역시나 안 먹혔으며 성난 황소 같은 녀석은 콧김을 뿜으며 이렇게 툴툴거렸다.
    “아 씨, 나도 여자한테 잘해 줄 수 있는데. 그 쌤보다 제가 더 잘해 줄 수 있어요.”
    대꾸를 하지 않자 녀석의 논리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그 쌤보다 키도 크고…… 어깨도 더 넓은데…….”

 

   *)  여소 : 여자 소개
   **)  페메 : 페이스북 메신저


    중간고사 시간표가 나왔다. 냉정하게 봤을 때 녀석의 화학 점수가 오십 점을 넘기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최대한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나는 바위산에 반복적으로 돌을 밀어올리고 또 굴러 내려오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보통 시험 기간에 다음날의 시험 과목이 아닌 학원이나 과외 수업은 빠진다. 확정된 시험 시간표를 보니 하필 우리 수업 다음날이 중간고사 첫날이었다. 과목은 영어와 기타 과목 하나. 다른 학생이라면 정규 수업을 취소하고 화학 시험 전날로 수업 날짜를 옮겼겠지만 이 아이는 수업을 한 번이라도 더 하면 했지 빼먹으면 안 되는 상태라 선뜻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수업을 그대로 하자고 했다. 대신 학교 끝나면 바로 와서 수업부터 하고, 그다음엔 밤까지 쭉 영어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고. 어차피 영어는 과외도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한다고 했으니 정해진 시간만큼 화학 수업을 하고 나면 집에 갈 때까지 영어를 봐 주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 수업에도 지장이 없고 다음날의 시험도 웬만큼은 볼 수 있을 테니까.
    아이는 활짝 웃으며 좋다고 했다. 아무리 공부를 못 하는 학생도, 시험을 잘 볼 방법이 있다면 잘 보고 싶은 마음은 작게라도 다 있다. 녀석은 도와준다는 말에 기뻤던 거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중에 전화가 왔다. 녀석의 어머니는 언제나 한결같은 그 목소리로 그래도 시험 전날인데 시험 과목 공부를 해야지, 화학 수업은 빠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영어 학원 안 다닌다고 하던데 제가 영어를 꽤 하는 편이라 잘 도와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어머니는 ‘그 얘기 들었지만 왕복 시간도 있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였다.
    오케이.
    화학을 가르치지만, 수업료 두 배로 줄 테니 기숙사에서 나오는 주말마다 좀 하자고 특목고 학생과 어머니가 끈질기게 조르던 영어 수업도 한 적 있는데 말이지. 나 잘할 수 있는데, 내가 도와주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텐데…… 라는 생각은, 필요 없다, 사실.
    싫다는데.
    학부모 입장에서야 내가 영어를 잘 가르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거지.


    중간고사 결과, 화학은 86점이 나왔다. 영어 21, 수학 18.
    나는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으나 – 시험이 쉬운 편이었다, 그래도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며 소리 내 웃고 싶었다 – 감사하다고 하고 싶다던 그 어머니에게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꼭 뭘 듣고 싶었다기보다는, 수학을 직접 가르치니까 고충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

 

*

 


    녀석은 생각보다 끈기가 있는 편이었다. 학기 중에 먼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제풀에 지쳐 포기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고, 힘들다 소리 한 마디 없이 씩씩하게 와서 질량수와 몰수로 점철된 외계어 같은 수업을 듣고 돌아갔다. 녀석의 여자 타령 역시 끈기 있게 이어졌다.


    어떤 날은 불쑥
    “대학생들 모임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를 물었다. 이게 뭔 소린가 들어 보니 녀석은 ‘토익 학원이나 독서 모임같이 대학생들이 모이는 데 가서 대학생인 척 끼어들어 여자를 사귀어야겠다’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세우는 중인 것 같았다. 내게서 알아내고자 하는 건 ‘학번은 어떤 식으로 말하는가’,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너 입 열면, 오 분 안에 들켜. 꿈 깨.”
    ‘헛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하지 않고 대략의 학번 체계를 친절하게 알려준 후 현실성 있는 조언까지 덧붙이다니,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실한 답을 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외모는 대학생 같잖아요.”
    “아니야, 표정이 달라. 어린 표정이 있어. 딱 봐도 고딩 같아.”
    “진짜요? 고딩 같아요?”
    “어, 완전 얼굴에 고딩이라고 써 있어. 여드름도 그렇고,”
    녀석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너는 대학생이 아는 걸 하나도 몰라. 학교, 시험, 동아리, 그런 거 물어 보면 뭐라고 할 거야? 들킬 수밖에 없어, 포기해.”
    이놈의 기-승-전-‘여친 구함’ 모드에 노골적으로 진입한 후 녀석에게서 자주 듣게 된 탄식이 ‘아 씨……’와, 글자를 하나하나 작위적으로 읽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하아아아’인데 이 날은 이 두 가지 탄식의 고장 난 구간 반복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녀석은 이런 말로 삼십대를 넘보기 시작했다.
    “하아……, 서른두 살까지는 커버 가능한데.”
    내가 아무리 ‘최대한 들어 주고 최대한 대답한다’를 기본 모토로 학생들을 대하고는 있지만 이건 좀, 듣고 대답할 그 어떤 값어치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못 들은 체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녀석이 연이어 의견을 피력했다.
    “십대는 음, 너무 애 같고, 이십대도 안 이쁘고, 삼십대가 제일 이쁜 나인 거 같아요. 제일 성숙하고.”
    열여덟 살 먹은 네 녀석이 할 말은 아니야…….
    나는 웬만하면 잘 사용하지 않는 ‘그래서 어쩌라고’ 눈빛을 잠시 쏘아 주고 싸늘하게 책을 폈다.
    “현민아? 공부하자……?”
    녀석에게는 ‘아니, 내 말이 틀렸어요? 봐봐요, 맞잖아요?’ 하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바로 그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답답한 얼굴로 녀석은 다시 커버론을 반복했다.
    “아 진짜, 서른두 살까진 커버 가능해요.”
    인내심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건 ‘나보다 어린 존재에 대한 보호본능’의 심지에 책임감, 슬픔, 안타까움과 허탈함 같은 것들이 마구 뒤엉킨 질긴 끈인데 홱 당겨질 때의 느낌으로 미루어 보면 대략 뒷목에서부터 척수를 지나 심장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종종 아주 세게 당겨질 뿐 끊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얼어 죽을 ‘삼십대 커버론’ 앞에서 뚝 소리가 날 때까지는.
    네 놈이 커버하긴 뭘 커버해, 인마.
    “야, 삼십대 여자가 미쳤어? 너를 왜 만나?”
    녀석은 예의 그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의 체격이 성인과 비교해 전혀 모자라지 않음을 주장하고 잘해 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아니……. 잘해 주는 게 뭔데.”
    신기하게도 녀석은 그런 생각은 단, 한, 번, 도 안 해 본 모양이었다. 정곡을 찔린 표정으로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졌다.
    “……잘해 줄 건데요.”
    급격히 자신감을 잃고 입속으로 꿍얼거리는 ‘건데요’는 ‘꼰되요’로 들리는 동시에 듣는 사람의 등에 열이 오르게 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니까 잘해 주는 게 뭐냐고. 그냥 친절한 거? 너 예쁜 여자 좋아하잖아. 못생긴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도 안 하잖아, 어? 오크라며, 쿵쾅이라며. 근데 예쁜 여자가 살면서, 친절하게 잘해 주는 사람이 한두 명일 거 같아? 세상 남자들이 죄다 친절해. 근데 그냥 친절하게 대해 주겠다고? 그래 가지고 삼십대 여자한테 만나자고 할 거라고?”
    “저는 진짜 잘해 줄 수 있어요…….”
    “아, 알았는데……”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어쨌든 너 미성년자잖아. 어떤 정신 나간 삼십대가 미성년자를 만나니, 어?”
    시끄럽고, 공부나 하자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의 구시렁거림이 꼬리를 끌었다. 질질 끌었다. 나는 그나마 남아 있던 인내심 부스러기를 갖다버리고 이 녀석이 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이고도 속물적인 말을 퍼부어 대화를 끝내버리기로 했다.
    “멀쩡한 또래 남자들이 있는데 너를 왜 만나냐고. 너보다 멋있고, 너보다 능력 있고, 어? 너 차 있어? 면허 있어? 여자친구 태우고 어디 놀러 갈 수나 있어? 없잖아?”
    “아스팔트는 잘해요.”
    ‘아스팔트’를 못 알아들었다. 거기서 나올 만한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뭐지?’ 한 다음 순간 나는 물어보았다.
    “그거 혹시…… 운전하는 게임이야?”
    “네.”


    그것이 녀석의 반박이었다.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이 한심한 대화의 종료 버튼을 누르기 위해 전진했다.
    “너 한 달에 용돈 얼마 받아?”
    “오만 원요.”
    그래, 정직함은 높이 산다. 부풀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야, 오만 원을 누구 코에 붙여. 영화 보고 밥 먹으면 한 달 용돈 다 쓰겠다. 데이트도 돈 들어, 네가 무슨 돈으로 삼십대 여자랑 데이트를 할 거란 거야.”
    “돌반지 팔면 되죠.”


    ……중요한 건 말이지, 이게 농담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녀석은 시종일관 진지했으며, 진심으로 억울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로 반박했고, 사실에 기반한 자신의 정확한 반박에 내가 왜 반박당하지 않는지 진심으로 의아했다. 녀석의 눈동자에 들어 있는 의아함이나 억울함이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인 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더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을, 녀석은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모를 것이다.
    엄청나게 웃고 나서 “하……, 돌반지…… 돌반지…….” 하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녀석은 그걸 어떻게 이해했는지
    “왜요, 제 건데요. 제 돌에 받은 건데요. 그럼 제 거죠.”
    라는 말로 자기에게 팔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래, 알았어. 믿는다고.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 웃은 게 아니야.

 

*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거기에 더 놀랐을 것 같다. 그러나 화학 점수 65점, 이 숫자는 여전히 녀석의 성적표에서 지필 시험 과목 중 가장 높은 자리에 빛나는 찬란한 점수였다. 체육 외의 다른 어떤 과목도 감히 화학의 왕좌에 근접하지 못했다. 또한 처음에 절망적으로 예상했던 ‘오십 점 이하’보다 여전히 선방 중이었다. 나는 녀석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애들이 너보고 화학 잘한다고 하지 않아?”
    “해요.”
    “뭐래?”
    “화학 천재래요. 와서 저한테 물어 봐요.”
    “……천재씩이나? 애들은 화학 잘 못 해?”
    “와, 진짜 못 해요. 제가 우리 반 삼등 안에는 들걸요. 아니 이걸 왜 못 하나 모르겠어요.”
    여드름이 울긋불긋한 녀석의 창백한 피부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반드시, 꼭, 이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녀석을 이끌고 가는 일은 교과 과정 학습과 그 외의 요소 모두에서 정신적, 신체적 소모가 너무 컸다. ‘갈아 넣는다’는 말이 수업 시간마다 선득선득 실감났다. 예고 없이 시작되었듯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랐으나 이명은 이제 조금만 피곤하면 어김없이 들리는 것이 되어 있었다.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제 정말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떻게 말을 꺼내느냐. 언제 꺼내느냐. 특히, 이유를 뭐라고 말하느냐. 나는 미로에 갇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만두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소개해 준 은서 어머니에게 뭔가 이야기가 들어가겠지. 좋은 뉘앙스의 이야기는 결코 아닐 거다. 왜 그런 선생을 소개했느냐고 원망이라도 하면 믿고 소개해 준 사람의 입장은 뭐가 될 것인가. 이 문제는 몇 번을 생각해도 좋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가득 넣어 주세요.”
    시험이 끝나고 나니 가로수의 여린 이파리가 어느새 땡볕에 그을린 두껍고 짙은 잎이 되어 뿌연 먼지를 쓰고 있었다. 매년 매 학기 겪는 일이지만 전쟁 같은 시험 기간을 치르고 나면 누군가 시간을 뭉텅이로 잘라 훔쳐간 것 같다.
    어쨌든, 곧 방학이었다. ‘돌반지 소년’의 수업을 방학 전에 마무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과연 뜻대로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나 그건 그거고, 시험 없는 방학은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과외 선생에게도 기다려지는 좁은 숨구멍이었다. 나는 경쾌한 기분에 발을 걸쳐 두려고 애쓰며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새로 수업을 문의한 학부모님에게 강의실로 오는 경로를 캡처해 보낼 참이었다.
    화면에 녀석의 어머니 번호가 떴다.


    “선생님, 성적이 떨어졌더라고요.”
    “……아, 네, 현민 어머님.”
    “선생님, 성적이 이십 점이나 떨어졌어요. 여기에 대해서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아, 지난 중간고사를 워낙 잘 보기도 했고……. 학기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원래 예상하기로는 오십 점도 어렵지 않을까 했거든요,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다행히 현민이가 열심히 해줘서 중간고사 성적이 높게 나오긴 했는데요,”
    “아니, 선생님,”
    말을 툭 잘랐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제가 선생님 믿는다고 했잖아요. 믿고 맡겼는데 이렇게 성적이 뚝 떨어지면 안 되지 않나요?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애가 그렇게 먼 거리를 선생님 수업 하나 듣겠다고 다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무책임한 거죠, 안 그런가요?”
    “저, 어머님, 성적 자체만 보면 떨어진 게 맞긴 한데요. 이번 시험은 지난번보다 어려운 범위가 들어가서 점수보다……”
    등급을 보라고 하려 했다. 숫자 그 자체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최종 성적표가 나온 후에 석차와 등급을 보셔야 한다고 하려고 했다. 녀석의 다른 과목이라든가, 다른 말이라든가, 주기율표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하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누구의 소개도 아니라 해도, 상대방과 나를 위하여.
    전화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 학력도 안 물어보지 않았냐구요……. 물어볼 수도 있었거든요……, 믿고 넘어가 드렸는데 결과가……”
    한 마디 한 마디 나직하게 들려오는 말에 믿을 수 없어 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탁 밀치고 뛰어갔다. 커피가 쏟아지고 휴대폰이 보도블록 위로 날아갔다. 나는 얼른 달려가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깜깜한 화면 위로 조각조각 금이 가 있었다.
    “아……, 이런.”
    혹시나 했는데 전화는 끊겨 있었다. 이건 대답해 줘야 하는데. 나는 휴대폰 지문 버튼을 눌러 보며 누가 나를 치고 갔는지 보려고 두리번거렸다.
    아까 커피를 사러 나올 때는 거리가 텅 비어 있었는데 지금은 사방이 교복의 물결이었다. 누가 누군지 구분되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대로변에도, 골목에도, 휴대폰을 보거나 친구와 떠들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문득 턱까지 차오른 만조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숨이 찼다. 한 손에 닭꼬치를 든 중학생이 다른 손에 든 단어장을 보면서 걷다가 다 먹은 꼬치를 길에 버렸다. 다른 녀석이 그 옆으로 삼각김밥을 먹으며 걸어갔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김밥 전문점, 패스트푸드점, 카페, 편의점, 식당에 아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계산을 마친 아이들이 잰걸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몇몇 아이들이 뛰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뛰기 시작했다.
    조각난 화면에 전원이 들어왔다. 일곱 시였다.

 

 

 

 

 

 

 

 

 

 

정희선
작가소개 / 정희선 

서울 출생. 2014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쏘아올리다」로 등단.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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