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된 여성, 여성이 된 사건

[현장 비평]

《문장웹진》은 다양한 시선을 통해 폭넓은 담론을 펼칠 수 있는 ‘비평의 장’을 마련하고자
2020년 진행되었던 〈본격! 비평〉 코너를 정비하여, 2021년 4월호부터 〈현장 비평〉을 선보인다.
2022년 〈현장 비평〉은 신진 문학평론가 12명이 각자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매월 1편씩 발표된다.

 

 


사건이 된 여성, 여성이 된 사건

 

 

김서라

 

 


    1. 두 가지 사건


    사건 바깥에도 ‘사건’들이 있다. 사건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일어나고 또 사건이 장소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공론장이나 재판정에서 오가는 말과 공방으로 그 사건의 실제가 드러났다고 여겨질 때에야 비로소 그것은 ‘사건’이라고 불리곤 한다. 사건을 둘러싼 말과 절차가 공개되고 공인받아야만 그것을 사건으로 알아본다는 것이다. 만일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쉬쉬하거나 모종의 억압이 가해져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게 됐다면 그 일은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2021년 12월 21일 노래방 도우미 2명이 살해당했지만, 가해자가 자수할 때까지 두 여성에 대한 실종신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1) 성매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일방적 폭력들은 ‘거래’라는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교환관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제대로 말할 수조차 없는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한 이후에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말이 ‘그러기에 처신을 잘했어야지’라면 누구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로 들었던 것처럼 여성의 ‘사건’들이 사건이 되지 못한 경우는 허다하다. 일상이라는 것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불편한 사건의 연속이었음이 드러난 것은 그나마 페미니즘 운동이 영향력을 지니고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여성들의 말은 잡담 내지는 수다로만 간주되었고 여성들에게 축적된 불안과 불만의 폭발은 그저 신경증이라고 매도되곤 했다. 질병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진단해 버릴 때, 그는 환자가 되고 말을 빼앗긴다. 이러한 원리는 사회 전반에 작동된다. 학벌 문제를 꼬집으면 그의 학벌이 낮아서 하는 분풀이 정도로 왜곡되거나, 산업현장에서 희생자가 발생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면 보상금을 많이 받고 싶어서 그러냐는 대응들이다. 크게 보면, 임신했다는 이유로 여성이 직장에서 경력단절을 겪거나 연구자로서 연구를 지속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 두 성별 모두에게 밀접하게 관련되는 임신과 출산임에도,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지’라는 막연한 믿음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장애로 변모하고 있다.
    여성의 자리가 집으로 좁혀지는 순간 여성을 둘러싼 사회의 불균등한 지형은 가려질 터, 여성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그저 여성 개인의 문제로 만들기도 쉬워진다.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불안감들을 과대망상으로 비하하거나 여성들의 신체적 조건 탓으로 내몰아 여성의 자리를 뒷방으로 내모는 방식 말이다. 그러니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피해자와 약자로서의 여성만이 아니라, 일상에 흠집을 내는 사건으로서의 여성이다. 사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증언과 발화로만 알려질 수 있다. 소설을 쓰고, 혁명에 참여하고, 광장에서 일구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발화는 언제나 사회와 불화해 왔다. 페미니즘에 엄혹한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지금도 광장에 모여들고 있다.2) ‘페미’라는 혐오 표현에서 볼 수 있다시피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사회적 적대감이 팽배하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사건에 대한 발화가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라고 신뢰하는 만큼, 여성의 장소가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  “가장 오래된 폭력, 가장 사소한 죽음 – 판결로 기록된 지난 5년 11개월 성매매 여성 살해 29건, ‘성매매 굴레’와 ‘사소한 이유’ 사이 보호장치도 애도도 없이 목숨 잃은 여성들”, 《한겨레 21》, 2021.12.21.
   2)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항의하는 사람들’ 단체가 지난 10일 집회를 열고 여성과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을 지원했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철회를 촉구했다. (《경향신문》, “국민의힘 앞에 모인 여성들 “여가부 폐지, 분명한 여성혐오…공약 철회하라””, 2022.4.10.) 뿐만 아니라 10일에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3주년을 앞두고 여성 임신중지 입법 공백을 해결하라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시 거리로 나온 여성들 “낙태죄 입법 공백 해결하라””, 《한국일보》, 2022.4.10.)


   2. 여성의 사건을 이루는 것


    여성의 사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발화로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사건(L’événement)』(윤석헌 옮김, 민음사, 2019)은 저자 자신의 불법 임신중지의 경험을 통해서 여성의 신체가 위치한 사회적 구조들, 미혼모의 사회적 계급 등을 사건화하고 있다. 여기서 사건은 이중적으로 겹쳐진다. 첫째, 주인공 ‘안’이 불법 임신중지를 선택해야 했던 사건, 둘째, 이 일이 숨겨져야 했던 조건이다. 물론 불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의식 내부 깊숙이 뿌리박힌 사회의 계급구조가 여성의 임신과 임신중지 또한 규정 대상으로 삼는 탓이기도 하다. 『사건』을 읽는 독자는 후자의 사건, 즉 임신중지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사건이 되지 못한 조건을 진술하고 증언함으로써 전자를 새로운 사건으로 구성해 내야 하는 상황에 있게 된다.
    『사건』은 올해 〈레벤느망(L’événement)〉(오드리 디완, 2022)으로 영화화되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다시 화제가 됐다. 『사건』의 진행은 아니 에르노 자신이기도 한 ‘안’이라는 한 여성의 예측하지 못했던 임신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미혼모가 됨으로써 지식인의 경로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안이 임신중지 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금기시된 임신중지와 그에 저항하는 여성의 시도를 다룬 작품이 〈레벤느망〉과 『사건』이 처음은 아니지만,3) 이 작품이 다시 한번 조명받은 까닭은 한국 사회의 여전한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2019년 4월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남으로써 2021년 1월에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부터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었지만 관련된 의료서비스와 돌봄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않다.4) 임신중지에 관한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곧, 법적으로는 금지하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임신중지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도덕적 행위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임신중지의 안전망을 확정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 사회의 분위기를 묵인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여전히 여성 신체를 두고 인구를 재생산하기 위한 기관으로 보도록 하는 환상이 도시를 맴돌고 있다.
    에르노의 투명한 진술 방식은 그에 대적하기 위한 문학적 전략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의제에 어울릴 만하게, 에르노의 『사건』을 비롯한 글들은 모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대상으로 하면서 사물을 관찰하듯 혹은 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1인칭으로 진행되는 글이지만 문체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심리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안 자신의 심리적 불안감과 통증은 그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안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관계들과 성별, 계급 의식들이며 이 모두 사건에 관여된 요인들이다. 에르노는 글쓰기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두고 사회가 다루는 방식을 함께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임신중지 수술은 당시(1963년 프랑스)에는 불법이었다 해도 그것이 자신의 체험을 말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쓴다. 애초에 여성의 임신중지를 불법으로 사회가 규정한 것이 중요한 사건이다. 여성의 경험 중에서도 임신은 여성의 신체를 인구의 생산 부지로 개간하려는 사회의 기획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고, 온갖 도덕적 메타포와 법적 구속에 정치까지 동원된다. 부지불식간에 여성의 신체가 기획에 의해 잠식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동력 삼아 에르노는 끝까지 이 경험을 밀어붙이면서도 그와 동반되는 불안과 수치심과는 거리를 두면서 사건 진술하듯 쓰고 있다.5)

 

   3)  하나의 예시로 2007년 개봉한 임신중지를 소재로 한 영화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크리스티안 문지우, 2007)을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7년, 루마니아의 독재정권이다. 이 정권하에서 임신중지는 살인죄에 버금갈 만한 중범죄로 여겨진다.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밖에 없던 사회 현실과 더불어 이 경험을 함께 겪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4)  ““수술하려는데요” 낙태죄 ‘비범죄화’ 결정 3년 후, 상담센터에 물었다.” 《경향신문》, 2022.4.11.
   5)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아니 에르노, 『사건』, 윤석헌 옮김, 민음사, 2019, 38쪽)


    「“문학은 싸움의 무기입니다…”」라는 이사벨 샤르팡티에(Isabelle Charpentier)와의 대담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쓰기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영향이 컸다고 언급한다. 부르디외를 통해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불안이 사회적 토대에 있다는 것, 그리고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분석은 그에게 사회의 위계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공했다.6) 사회학적 관점과 더불어 에르노는 임신중지라는 자전적 경험을 개인의 반성과 죄책감, 수치심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사건으로서 진술할 수 있었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에르노가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하고 있다. 이로써 그의 독자들은 안의 임신과 임신중지를 두고 하나의 재판정을 구성할 수 있다. 원고이자 피해자는 안이라는 여성의 신체, 그리고 피고는 여성 신체를 뒤덮은 금기, 미혼모에 대한 차별, 계급이 만드는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임신 자체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축복받을 일이라고 여긴다. 다만 그 일이 예상치 못했던 미혼 여성에게서 일어날 때 불행이 된다. 그 여성이 출산을 거부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할 때 그 불행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와 연관되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임신한 여성을 제한하는 사회적 조건들 그리고 임신중지를 둘러싼 사회의 부정적 인식들이 에르노의 진술을 통해서 드러나지 못했던 임신중지라는 개인적 경험은 비로소 사건이 된다. ‘노동자와 소상공인 가정’에서 자라 ‘고등 교육을 받은 수혜자’인 안은 임신으로 인한 ‘사회적 실패’, 즉 계급 상승의 실패를 걱정한다.7) 미혼모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은 둘째치더라도, 생계에 매달려야 할 것이 빤하기에 안은 현재 걷고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경로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혼인 관계 아래서 임신 및 출산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관계와 지형이 크게 나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여성들이 비혼과 비출산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오는 말들은 주변으로부터 결혼을 권유받는 데 대한 스트레스부터, 경제력이 있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양육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일화까지 다양하다. 양육의 책임부터 여성에게 일임하거나 훨씬 더 많이 부과되는 현실 속에서는 아이가 있는 여성이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추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불리한 조건들은 여성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6)  〈이사벨 샤르팡티에(Isabelle Charpentier) ‧ 아니 에르노와의 대담 “문학은 싸움의 무기입니다…”〉, 《오늘의문예비평》 118호, 박진수 옮김, 2020, 163쪽.
   7)  “노동자와 소상공인 가정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첫 번째 수혜자였기에 나는 공장이나 상점 계산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학사 학위도, 알코올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 때문에 나는 다시 따라잡혔고,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뭔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아니 에르노,『사건』, 22쪽)


   3. 장소 밖에 놓인 여성의 신체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겪은 임신중절 수술과 함께 그때 자신의 의식 내부에도 작동하고 있는 지식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노출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은폐한 채 내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지식인의 계급적 정체성은 그가 불안감을 느끼는 한 가지 요인이다. 안이 지닌 이 계급적 정체성과 여성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지식인의 대다수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을 터, 대학 내의 남성 지식인의 계급적 정체성 그리고 그들의 아비투스(Habitus)는 자신도 모르게 안을 일정 부분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 지식인이 기대하는 관념적 여성상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를 명확하게 드러낸 사건 또한 임신이다. 안은 임신하는 순간 자신의 신체가 남성과는 다르며, 임신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온 학업과 미래의 사회적 지위 등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리라고 예감한다. 이처럼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임신이라는 사건을 한 여성 지식인이 처한 사회적 지형과 조건들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외과 조명을 쏘는 장치로 이용한다. 아무 일 없는 일상 속에 있던 계급과 성별에 대한 사회구조가 사건이 된 것이다.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본질적으로 남자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사건』, 16쪽)


    “이제 ‘이념의 천국’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 어쨌든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해야만 하는 필연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공부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다들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킨다.”(『사건』, 33쪽)


    안의 입을 빌려 저자가 진술하고 있는 바는 지식인이나 관념적 여성은 ‘이념의 천국’에 속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념의 천국’이라는 유토피아는 가상에 불과했으며 안은 더는 ‘지식인’이나 ‘관념적 여성’이라는 이상에 속할 수 없었다. 마치 안이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초현실주의 문학에서 여성의 역할」을 선정하고 나서 문장을 적고 메모들을 연결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작업이 되지 않았던 것과 같다.8) 그가 영향을 받았던 초현실주의자들인 엘뤼아르, 브르통, 아라공이 예찬한 ‘관념적 여성’9)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브르통의 저작 󰡔나자󰡕에서 그가 만난 ‘나자’라는 여성은 주인공 ‘나’에게 몽환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의 여성이지만 이후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운명으로 치닫는다. 나자에게 ‘나’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도시산책자의 전형이라고 알려진 보들레르가 도시를 산책하며 얻었던 영감들은 거리를 함께 산책한 여성이 아니라 주로 도시의 환락가에서 나왔다.
    여성이 거리를 거닐 수 있었던 것도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도시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특권이었다.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군중 속의 누군가가 되는 일은 도시를 향유하는 일로서 예찬받았고 도시를 걷는 지식인들은 19세기의 대도시에선 도시산책자(flâneur)10)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주로 부르주아 계급의 남성 지식인들이 즐기던 일이었지, 그들 속에 여성은 섞일 수 없었다. 도시 속 군중으로서 즐기던 스펙터클 속, 환락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도시 변두리 어딘가에 여성의 자리가 있었을 뿐이었다. 뭇 남성 지식인들보다도 뛰어났던 나혜석과 같이 여성 도시산책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11) 그마저 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삶을 마쳐야 했다. 여성들에게는 한정된 곳만을 내어주고 수용해 왔던 장소가 도시다. 수용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차별과 조롱이 무참하게 가해진다. 금기시된 임신중지 수술 이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에 가게 된 안이 남성 의사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12)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던 일상과 현실이 사건의 장소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19세기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누리는 도취의 방법을 전유할 수는 없다. 기존의 일상을 구축하던 인과관계를 해체하고 우연히 등장하는 새로운 장소들을 발견하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남성 지식인들이 거니는 도시의 환상 속에서 출몰하는 관념적 여성상은, 그들에게 여성은 환상일 뿐이지 신체와 사건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려한 상품들로 가득한 파사주(Passage)에는 여성의 신체가 자리할 수 없었다. 『사건』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사건은 오히려 사적이고 낡고 축축하고 혐오스러운 장소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금지되어 있고 위험하고 낡고 은밀한 곳에 그대로 놓여 있는 사건들은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안이 걷는 파사주는 임신중지 수술을 해주는 P.-R. 부인이 거주하는 파사주 카르디네였다. 임신중지 수술을 한 이후 거리로 나와 걸었을 때, 안 외부의 일상적 공간은 환상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8)  같은 책, 33쪽.
  9)  “남성과 우주 사이의 중재자라며, 관념적인 여성들을 찬양하는 엘뤼아르, 브르통, 아라공의 책들을 아무렇지 않게 읽어 나갔다.”(같은 책, 33쪽)
  10)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았던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게서 알려진 개념이다. 당시 대도시는 새로운 공간이다. 도시산책자는 대도시에서 나타난 주체로, 도시를 부유하는 익명적인 집단인 대중 속에 스며들다가도 어느 순간 대중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들을 도시 경관처럼 대상으로 본다. 이들은 도시의 환상을 즐기고 마치 영화처럼 체험하다가도 그 안에서 발견되는 흔적을 통해 우연한 기억을 되살리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벤야민이 가리키는 도시산책자들은 쁘띠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초현실주의자들이기도 하다.
  11)  서지영에 따르면 나혜석은 예술가-관찰자로서의 여성 산책자의 대표적 사례다. 경성의 문화, 예술, 유행의 변화에 민감한 관찰자였던 나혜석은 시선의 주체로서 여성 산책자의 면모를 지녔다. (서지영, 〈산책, 응시, 젠더 : 1920~30년대 ‘여성 산책자’(flâneurie)의 존재방식〉, 《한국근대문학연구》 21호, 한국근대문학회, 2010, 233쪽)
  12)  ““넌 오텔디유로 가게 될 거야!” 나는 개인 병원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치 나 같은 여자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란 그 병원뿐이라고 알려주고 싶은 듯 그는 ‘오텔디유’라고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했다.” 각주에 따르면 오텔디유(Hôtel-Dieu)는 빈민과 고아, 순례자를 돌보기 위한 공립병원이다.(『사건』, 66쪽), “그는 벌려진 내 두 다리 앞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사건』, 68쪽)


    “돌연 밖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차도 한가운데를 나란히 걸었고, 희미한 빛이 드리운 건물 벽 때문에 전망이 막힌 듯 보였던 파사주 카르디네 끝까지 걸어갔다. 장면이 느리게 전개된다. 날이 아주 밝지는 않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이전 삶의 무엇도 나를 이리로 이끌지 않았으리라 (…) 세계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 엄마인 양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는 검은색 외투를 걸친 늙은 여자를 제외하고. 자신의 동굴에서 벗어나 거리의 불빛 아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잿빛 피부 탓인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를 구원해 준 여자가 마녀나 늙은 포주처럼 보였다.”(『사건』, 56쪽)


    안의 몸은 사회적 금지, 억압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가 분투하는 장으로서 재구성되었다. 임신한 순간부터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통제선, 그리고 국가적 기획에 의해 신체의 권리를 빼앗겼음을 체감했던 안은 침범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생명의 공간’이었던 자궁에 자신의 의지로 탐침관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 신체가 놓인 순간부터 안은 도리어 남성의 질서와 국가의 기획으로 짜인 공간을 환상, 즉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임신중지를 하도록 도와준 P.-R. 부인과 함께 걸을 때 파사주 카르디네는 환상으로 가득한 거리가 아니라, 짓눌려 중절된 것들이 탄생하는 사건 현장이었다.
    아니 에르노가 진술하고 있는 『사건』은 여성의 신체에 덮인 환상을 벗겨내면서 그 아래에 처한 사회적 구조를 가시화한다. 이는 단지 안을 미혼모로 만든 남성의 무책임만을 고발하거나 안의 심리적 불안감만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 놓인 여성 신체를 사진 찍듯이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사건』에서 자궁은 후세대를 약속하는 유토피아적 공간 이전에 여성의 신체다. P.-R. 부인의 방 안에 누워 임신중지 수술을 받고 있었을 때, 그리고 탐침관을 넣고 P.-R. 부인과 파사주 카르디네를 걸었을 때 안의 자궁은 현실을 비현실로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사회가 규정한 모든 장소 바깥의 장소인 것이다.13)

 

   13)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장소다. 푸코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 속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 기획 바깥에서 이를 전도하거나 이의제기하는 장소다. “아마도 모든 문화와 문명에는 사회 제도 그 자체 안에 디자인되어 있는, 현실적인 장소,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반反배치이자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이 있다. 그 안에서 실제 배치들, 우리 문화 내부에 있는 온갖 다른 실제 배치들은 재현되는 동시에 이의제기 당하고 또 전도된다. 그것은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이다. 이 장소는 그것이 말하고 또 반영하는 온갖 배치들과는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나는 그것을 유토피아에 맞서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르고자 한다.”(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47쪽)


   4. 여성의 신체를 확장하기


    『사건』은 〈레벤느망〉으로 영화화되어 신체에 밀착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시각, 청각적 체험을 통해서 여성의 신체를 사건화 하는 데 꽤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레벤느망〉은 안의 어깨 너머와 얼굴 근육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그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불안감 서린 일상들을 노출시킨다. 영화 스크린에 안의 바스트 샷이 담길 때마다 그의 감정들은 점도 높게 관객과 달라붙는다. 여성 주인공의 계급의식과 시한폭탄과도 같은 임신 상태, 사회적 조건과 여성 신체의 밀착 상태에 초점을 맞춘 카메라는 단지 안을 향한 게 아니라 사회와 신체가 서로 달라붙은 지점을 노린다. 안의 동선과 경로를 따라가면서 사건을 체험하는 관객들은 자신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회적 낙오에 대한 불안감을 바로 상기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안에게 밀도 있게 몰입하도록 했으며 그 덕에 그가 내보낸 태아가 변기물 속으로 빠지는 장면에서 물방울 튀기는 소리는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온다. 이 같은 체험은 바깥에 내던져진 여성의 신체가 놓인 장소를 가까이서 감각하도록 한다.
    『사건』과 〈레벤느망〉이 196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 사회에서 단절 없이 전승되었던 공고한 계급적 정체성을 한국 사회의 독자, 관객들이 온전히 실감할 수는 없더라도 알 수 있다. 미혼모가 되는 순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추락하고 이를 회복하기란 어렵다. 이 낙차는 지식인에게 특히 치명적인데,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 요구되는 일은 이 치명적인 사건들을 여성들에게 겨냥하여 말을 막거나 혹은 여성들이 자신의 탓으로 내몰아 스스로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발화하는 것이다. 여성학자이자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혐오와 수치심은 역사적으로 배척의 무기로 이용되어왔다고 말했다시피, 여성 자신이든 남성이든 신체를 수치심이나 혐오 때문에 사건화하지 않는다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적용되어 온 여성혐오의 원리를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은 위기상황이다.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면서 두 성별의 간극을 벌리고 그 사이를 혐오로 채우는 저들의 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를 넘어 젠더의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던 페미니즘의 의제들이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공격당하고 있다. 올해 새로 바뀌는 정부에선 여성가족부 대신 인구니 미래니 하는 국가적 기획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명칭으로 바꾸려는 중이다. 여성의 신체를 옭아매는 전선이 코앞에 있다는 위기를 감각한 여성들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며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 말하고 집결하는 신체가 구성되고 있다. 언제나 일상이라는 잔잔한 표면 아래 여전히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입에서 사건이 되지 못했던 일들이 발화될 때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어 말하자. 사건이 담론이 되고 역사가 될 때까지. 이미 여성들의 말과 더불어 탄생한 딸들은 새로운 사건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작가소개 / 김서라

2021년 《광남일보》 평론 등단. 광주모더니즘 독립연구공동체에서 여성과 광주에 대해 연구 중이다.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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