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보이는 밤

[단편소설]

 

 

등대가 보이는 밤

 

 

유시연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창밖은 어둠이 가득 에워싸고 어둠 속에서 개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남자의 달래는 소리가 났지만 개는 계속 짖어댔다. 목청이 큰 것으로 보아 어린 강아지는 아닐 것이었다. 산책길에서 개를 끌고 가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덩치가 큰 진돗개였는데 새벽을 깨우는 저 개가 그 개일까.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뒤척였다.
    동이 터 올 무렵 겉옷을 걸쳐 입고 산의 초입으로 갔다. 몇몇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둘레길을 걸었다. 산자락으로 안개가 피어올랐고 바람이 차갑게 살갗을 스쳤다. 숲은 어두웠고 일찍 깨어난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약수터 근처 의자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데 묵은 오리나무 열매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까만 열매가 오리나무 눈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무는 수백 개의 눈을 뜨고 산을 살피는 것 같았다. 예전에 어머니와 산책을 나오면 약수터에서 물을 떠마셨다. 이런 깨끗한 물을 어디서 또 맛보겠니. 어머니는 세상의 보물을 가슴에 안은 양 두 팔을 가득 벌리고는 즐거워했다. 오래 살 것 같았던 어머니는 팔십 수를 채우지 못하고 가버렸는데 그 후 약수터에 발길을 끊었다가 어머니 집에 이사를 오면서 다시 찾았다. 한 시간쯤 걸었을 무렵 먼 산 능선에서부터 노랗게 밝은 빛이 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오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좁은 산길에 등을 돌리고 섰다가 다시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관리소 건물을 지나자 낡은 다세대 주택의 자줏빛 지붕이며 칠이 벗겨진 건물 벽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살 때는 예쁘고 아담한 산속의 집이었다. 건물 벽에는 재건축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비스듬하게 걸려 있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등허리에 땀이 났다. 잠시 서서 집들을 바라보았다.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벽은 휑하니 골조가 들여다보였다. 크림색 벽은 얼룩이 졌고 군데군데 철근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벽체가 훼손되었는데 고쳐서 살아도 될 것 같은 건물이었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갯비린내가 묻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서자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목청이 쉬어 그런지 늙어서 그런지 심하게 그르렁거렸다. 삼층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고층 건물 뒤로 숨어버린 개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동안 거실에 앉아 유리문 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일했다. 젊은 어머니일 적에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늙은 어머니가 되고 나서는 밖을 내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집들은 작고 예뻤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다보는 집들은 장난감처럼 자그마했다. 어머니는 개펄에서 돌아와 칠게장을 만들거나 뜨개질을 했고 이웃 여자들은 관리소 작은방에서 화투를 쳤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불빛이 번쩍거렸어. 느 외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난 무서웠지.”
    나이 들어 기력이 쇠잔해지면서도 어머니는 그날 밤 일을 중얼거렸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물으면 어머니는 빤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고층 건물이 빽빽한 해안 쪽으로 뿌연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우중충한 건물들만이 먼지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양새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매립하기 전에는 이름 없는 섬이었던 곳이었다. 운동장에서 놀다 보면 골목을 휘젓는 스피커 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 살던 터전 떠나라니 이게 웬 말인가!
    – 조상님이 물려준 땅 죽음으로 지키자!
    – 어민들 삶 다 죽이고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소형 트럭에 매단 스피커에서 연신 고함소리가 터져 나와 마을을 휘돌았다. 남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셨고 여자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근심을 나누었다. 술을 마신 남자들이 늦은 밤 돌아와서는 부인들과 다투는 소리가 열린 유리창으로 들려왔다. 관리소장이 집집마다 팸플릿을 돌리다가 마주친 날을 생각하면 오래전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던 소장의 험악한 얼굴이 떠올랐다. 외출에서 돌아와 막 현관문으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입구에서 기웃거리던 관리소장은 대뜸 성질부터 냈다.
    “재건축 도장 안 찍었죠. 다 좋자고 하는 일인데 왜 안 찍는 거요.”
    “사인하고 싶지 않아요.”
    “왜 반대하는 거요? 쌔빠지게 뛰어다니며 성사시키려구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신이 있소?”
    “…….”
    “그러지 말고 후딱 사인이나 해요. 이 통로에는 댁만 남았어요.”
    누구 좋으라고 사인을 해요, 쏘아붙이려다가 관리소장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익숙하고도 두려운, 욕망에 가득한 눈빛이었다. 관리소장과 헤어지고 옆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여자는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옆집 할머니 댁 딸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경계를 풀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우리는 소소한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근황을 탐색했고 그러면서도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두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찬장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무슨 차를 내놓아야 할지 분주했다.
    “커피 하실래요? 아니면 우롱차도 있고.”
    “커피 주세요.”
    여자는 물을 끓이고 잔을 내놓은 후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놓았다. 시든 바나나와 오렌지를 식탁 가운데로 밀어 놓고 커피콩을 갈았다. 여자의 행동거지에서 뭐라도 대접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여자가 커피콩을 가는 동안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오래전 여자가 그녀의 남편과 살 때는 집 안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거실과 베란다에 가득 쌓인 생활물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과 상자, 귤 상자, 택배 상자, 관엽식물을 키우는 화분과 자잘한 선인장 화분이 널려 있던 거실에서 생활이 팽팽하게 돌아가는 냄새, 된장찌개거나 간장 달인 냄새 같은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살림을 줄였다고 여자가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살림이 많다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뜨거운 물을 커피 분말에 부었다. 부엌과 베란다로 막혀 있던 벽을 터서 유리문에 나뭇가지가 늘어진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탁 트인 전경이 시원했으나 한쪽 유리창은 양문형 냉장고가 막고 있어서 조금은 답답했다.
    “베란다 확장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었어요?”
    “죽은 남편이 한 일이라서 모르겠어요.”
    여자가 내 앞으로 커피잔을 밀어 놓았다. 하루에 걷기를 만 보씩 한다는 그녀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일어나 찬장 서랍에서 견과류를 꺼내 놓으며 먹어 보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대화가 건강 쪽으로 흘러가자 그간 암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의 다양한 경험이 쏟아졌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여자는 고기보다는 채식을 주로 하지만 건강을 위해 단백질도 필요하다며 두부가 있으니까요, 그러고는 자기가 운동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치열하게 걷기를 한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이미 여자의 말에 내 기력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지독한 병마로부터 살아남은 자의 끈기와 저력이 있었다. 여자는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저 정도의 에너지라면 충분히 암을 이기고도 남을 체력이었다. 몸에 좋다는 온갖 약재와 과일과 견과류와 잡곡과 운동법에 이르기까지 여자는 모르는 게 없었다. 여자가 말한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건강식품과 운동법에 대해서는 박사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 남편이 떠나던 날 현관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안방에서 울었다. 밤새 남편과 다퉜기에 어쩌면 옆집 여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여자는 죽을 끓여서 멸치볶음과 가지볶음을 함께 쟁반에 담아왔다. 눈이 퉁퉁 부은 나에게 수저를 쥐여 주며 한술이라도 뜨라고 채근했다. 입맛이 없다는 내 말에 여자는 빤히 쳐다보더니 이대로 죽을 건가요, 하고 물었다. 여자의 당돌한 질문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수저를 들고 천천히 죽을 먹었다. 버섯이 씹혔으나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아주 느리게 몇 수저를 떴다. 죽을 먹는 동안 여자는 그녀의 남편이 암 병동에 있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죽고 사는 일도 있는데요 뭐. 여자의 말이 가슴을 찌르며 지나갔다.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계단에서 만나면 밝게 웃던 그녀였다. 그 일 이후 여자는 가끔 반찬을 만들어 갖다주고는 어떻게 사는지 내 근황을 살폈다. 얼마 후 나는 집을 세놓고 먼 도시로 떠나버린 터여서 여자의 소식은 끊어졌다.
    “오늘이 남편 기일이라 마음이 그래서 산에 갔다 왔어요.”
    여자가 묻지도 않은 일을 무심하게 말했다. 여자의 남편이 암에 걸렸던 일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커피를 마시며 여자가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다.
    “정신없이 세월이 갔네요.”
    “나는 남편 보내고 이듬해 유방암 진단받고 투병 생활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몰라요. 완치 판정을 받은 건 몇 년 됐는데 며칠 전 의사가 이젠 그만 와도 된다고 건강관리 잘하라고 하더라고요.”
    “고생하셨네요. 그것도 모르고 지냈으니 야속하네요.”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상실감을 메우려 발버둥 치며 사는 동안 여자는 암 투병으로 그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여자와 내가 각자 자기만의 운명과 싸우는 동안 십 년이 가버렸다.
    “숙명이네요. 우리가 자기 인생을 건사하느라 치열하게 사는 동안 십 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으니 말이에요.”
    “이제부터 건강 챙기며 살면 되죠. 뭐.”
    “아, 참 재건축 사인 하셨어요?”
    “안 했어요.”
    “관리소장이 거짓말했네요. 우리 동에서 나만 사인 안 했다고 하던데요.”
    “사인 안 한 사람 많아요. 여기는 고도 제한이 있어서 재건축 쉽지 않아요.”
    오래전에도 그랬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이 패를 나누어 다투다가 결국 한 사람이 죽어 나가면서 잠잠해졌다. 살기 좋던 마을은 인심이 사나워지고 흉흉해졌고 마을은 매일매일이 시끄러웠다. 고층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분양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팔아치웠다. 당장 먹고살 일이 급박한 데다 비싼 분양가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어민들은 보상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매립지 안쪽 작은 섬 주변에는 자잘한 바다생물이 살았다. 어민들이 남은 자투리 개펄에서라도 게나 고둥, 주꾸미를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고 시에서는 암암리에 묵인을 해줬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우울해졌다. 역사는 반복되는 건지 피해 갈 수 없는지 답답함이 에워쌌다. 산자락의 빌라아파트 – 빌라도 아파트도 아닌 다세대주택을 그렇게 불렀다 – 로 이사 오기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젊은 어머니는 어판장에서 일하거나 개펄에서 양식을 구해 왔다. 한가로운 어촌 마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산천은 의구한데란 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판이었다. 여자가 커피 리필을 해주며 뜬금없이 죽은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가 죽고 나서 처음 일 년간은 정신이 없었어요. 막막하더라고요. 죽음이 임박하자 그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얼마간 있는 돈도 없는 티를 내라고, 자식도 믿지 말라고.”
    “홀로 남겨 두고 가자니 걱정이 됐나 보네요.”
    “그나마 통장에 있던 돈도 동생들이 다 빌려 갔는데 돌려받지 못했어요. 심지어는 빌려 간 것도 잊고 있더라고요.”
    “자식도 믿지 말라는 말은 아이러니예요.”
    “아들이 매달 생활비를 얼마간 보내줘요. 남편이 남긴 국민연금이랑 합해서 살 만해요.”
    죽은 사람의 기억보다 살아남은 사람의 무게가 더 무거웠음인지 여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슬픔의 무게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사별이나 생이별이나 경중을 달 수야 없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상실감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십 년이 지나서야 먼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며 남의 이야기하듯 할 수 있게 되었다. 원인이 무엇이었건 사람과의 관계란 인연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운명론에 기대기도 하였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유도 희미해졌고 미움도 고통도 희석되어 아득한 세월 저 너머의 일이 되었다.
    옆집 여자와 헤어지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오후에는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갔다. 산자락에서 내려다보면 아득하게 보이던 개펄이 해안가에 바짝 잇대어 있어서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더러 있었다. 작은 섬 아암도는 어민들이 개펄에서 일을 하다가 주로 쉬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서 상품이 돼버렸다. 길옆에 주차를 하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물 빠진 개펄에는 작은 게들이 구멍을 찾아 들어가거나 나돌아다녔다.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 옆 개펄에는 번잡한 세상일은 상관없다는 듯 검은머리도요새, 가마우지 같은 새가 한가롭게 서 있었다. 청라 시흥에 걸쳐 삶의 지평을 향유하던 새들에게 좁아진 환경은 숨 막히는 압박일 것이었다. 칠게를 꿀꺽 삼키는 검은 머리 갈매기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품새가 위태로워 보였다. 너른 개펄을 유영하던 과거를 회상하는 듯 새는 가느다란 목과 다리가 유난히 추워 보였다.
    매립지에 고층 아파트가 세워진 후 어머니는 살던 터를 떠나 산자락으로 옮겨 살았다. 한때는 개펄에 물이 차오르면 앞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던 추억을 회상했다. 어머니처럼 멀리 가지 못하고 주변 도시에 포진하고 사는 사람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계모임을 했다. 집집이 돌아가며 어탕을 끓이거나 문어숙회, 잡채를 만들어 먹었다. 나중에는 회비를 걷어 식당 예약을 하고 돌아가며 한 턱씩 쏘았는데 꽤 오랜 시간 그 모임이 지속되었다. 그 모임이 없어진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독립을 하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나둘 아프거나 죽거나 자식들을 따라 가구를 합치거나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다.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고 주민들이 떠나고 건물이 한 층씩 치솟을 때 어머니는 무얼 생각했을까. 어머니의 막막함이 평생 터전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이 밀물로 차오를 때 그 공허를 무엇으로 지탱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다 위에 덩그러니 신기루처럼 생겨난 신도시, 그 도시로 진입하기 위해서 긴 다리가 놓여졌다. 고무 대야에 나를 앉혀 놓고 개펄을 뒤지던 어머니는 삶이 막막할 때 자식 때문에 살았다고 회고했다. 어린 새떼가 꼬리를 까닥거리며 바닥을 쪼아대고 있다. 이제 개펄은 온전히 새들에게 돌아갔다. 아무도 게를 잡거나 주꾸미를 잡거나 망둥어를 잡지 않았다. 개펄을 막고 있는 건물들과 도로와 공사판이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멀리 와버린 것임을 알려주었다. 바다로 가는 길이 막혀버린 개펄은 아주 작은 섬의 운명이 되어 있었다. 어민들의 생계를 유지해 주고 어민들과 살아가던 아암도 개펄은 동물원에 갇힌 신세가 되어 식물인간처럼 겨우 숨만 쉬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말끔하게 단장된 진입로와 색색의 보도블록을 밟으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나 살던 곳에 좀 데려다 다오.”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마지막 남은 숨을 얕게 뱉어내며 생의 마지막을 애원했다. 해가 기우는지 바닷바람이 차가워졌다. 어머니와의 추억 중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은 일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외출복으로 갖춰 입고 내 손을 잡았다. 산자락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 있고 그 옆에 간이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로 가기 전 숲속에 비행기가 있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비행기는 거대한 세계였다. 비행기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흥분해 있다가 돌아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 이름을 부르며 찾아 나섰다. 한참을 헤맨 끝에 멀리서 웅크린 여자의 등을 볼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췄다. 어머니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보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등 뒤에 오랫동안 서서 가만히 있었다. 한참 울고 난 어머니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속에 뛰어들었다.
    “내 새끼, 내 강아지. 너만은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힘껏 끌어안으며 볼을 비볐다. 어머니 인생에서 남자는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일찍 떠나갔다. 어머니가 팔을 풀어 기분 좋은 숨막힘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나란히 계단에 주저앉아 해수풀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그날 일이 꿈에 나타나. 캄캄한 바다 위로 불빛이 번쩍거리던 날, 하늘이 불타는 줄 알았지.”
    “등댓불이었겠지.”
    “등댓불을 모를까 봐. 천둥소리가 진동했으니까. 그날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미군이 월미도에 폭탄을 터트린 거야. 느 외할아버지는 그날 큰집에 갔다가 못 돌아왔어.”
    “미군이 왜 폭탄을 터트려?”
    “몰라. 상륙작전을 하려고 그랬다나 뭐라나.”
    “상륙작전 하는데 왜 월미도에 폭탄을 터트린대.”
    “월미도에 인민군 진지가 있었으니까.”
    “엄마, 무서운 얘기 싫어.”
    “그래, 그 얘기 그만할게. 아이스크림 사줄까.”
    “응.”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휴게소로 갔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방금 전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는 까마득하게 잊혀졌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이 내 기억을 가져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안 했다. 치매가 생기면서 어머니는 다시 그날 밤 이야기를 뜬금없이 끄집어내거나 혼자 중얼거렸다. 어머니와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면 없는 형편에도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준 기억이 남았다.
    휴게소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숲속 비행기는 오래전에 봤던 그 모양 그대로 있었다. 세월의 간극에도 그대로 놓인 비행기가 신비했다. 기억 속에 존재하던 비행기는 거대하고 컸는데 다시 본 비행기 몸체는 작아 보였다. 비행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어머니와 앉았던 계단에 주저앉아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매립지에 신기루처럼 생겨난 도시를 뿌연 먼지가 에워싸고 있었다. 말끔하게 단장된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은 월요일이라 문이 잠겨 있고 관리인이 한두 명 어정거렸다. 기념탑 주위로 젊은 연인이 두 팔을 벌리거나 혹은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었다. 전쟁의 흔적도 상품이 돼버린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철모를 쓴 군인들 동상을 지나 오솔길을 걸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앞 포장마차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났다. 포장마차 안에는 냄비에 어묵이 담겨 있고 커피를 파는 도구와 샌드위치를 열심히 만드는 중년의 여자가 바쁘게 손을 놀렸다. 치즈 토스트를 주문하고 박물관 안마당으로 다가갔더니 그곳도 출입문에 걸쇠가 걸려 있었다. 박물관을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한 사람들이 포장마차 주변에 모여 있거나 박물관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포장마차 여주인은 밀려드는 주문에 돈을 받아 옆에 놓인 종이 상자에 던져버리고는 뜨거운 철판에 버터를 녹이고 식빵을 올리고 계란물을 부었다. 설탕은 넣지 마세요. 포장마차 주인이 바쁜 나머지 케첩을 넣지 말라는 것인지 설탕을 넣지 멀라는 것인지 헷갈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설탕을 뿌리려는 순간 아, 아니요, 넣지 마세요, 소리치자 그제야 식빵에 계란물을 넣어 익힌 내용물에 케첩을 발라 기름종이에 싼 후 종이봉투에 넣어 주었다.
    이층 계단 앞에서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와 개를 만났다. 산책길에서 본 개였다. 개는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댔다. 남자가 목줄을 잡아당기며 진정을 시켰으나 개는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손을 내밀어 개를 안심시키려 했다. 꼬리를 똬리처럼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덩치가 컸고 흰색 털은 윤기가 흘렀다. 개는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진땀을 흘리며 달랬다.
    “시골에서 누님이 키우던 진돗개예요. 잠시 맡아 달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계속 키우게 됐네요.”
    “개가 잘생겼어요.”
    남자가 미안한지 묻지도 않은 말로 설명을 했고 달리 할 말이 없어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평소에는 본 적도 없는 이웃인데 개로 인해 말을 트게 된 상황이 우스웠다. 아기를 어르듯이 쯔쯔쯔를 외쳤더니 진돗개가 빤히 쳐다보았다. 까만 눈이 공허해 보였다. 벽에 등을 대고 밀면서 조심스럽게 개 앞을 지나오는 동안 개 주인은 목줄을 꽉 움켜쥐고 진돗개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했다. 진돗개 짖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손을 씻고 소파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방금 본 진돗개의 공허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첫날 새벽에 진돗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깬 이후 이른 저녁마다 개 짖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빌라 뒤쪽에 버려진 밭도 있고 숲도 있고 빈터가 있는데 굳이 집 안에서 큰 개를 키우는 건 문제가 있었다. 질주 본능이 있는 개가 좁은 집 안에 갇혀 사는 것도 감옥일 터였다. 신도시와 도로에 갇힌 아암도 개펄이 언뜻 떠올랐다 사라졌다.
    피곤이 몰려왔다. 소파에 누운 채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앞 동 자주색 지붕 너머로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옅은 남색을 배경으로 자잘한 구름이 뜯어진 솜털처럼 흩어지며 흘러갔다. 맵싸한 초봄의 공기 속에 매연 냄새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와 살던 예전 집의 풍경이 떠올랐다. 저녁이 오면 집집마다 냄비에 무를 썰어 넣고 생선 내장과 대가리를 푹 삶아 먹던 풍경이 아른거렸다. 흰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평상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면 파전 안주를 내어가던 여자들의 모습도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은 별똥별을 쫓아 몰려다녔다. 창문을 열어 놓고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바닷물이 개펄을 쓰다듬는 소리가 났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온갖 쓰레기를 먼바다로 가져가면 뻘은 말끔해졌다. 어머니 옷자락에서는 갯내음이 났다. 코끝에 스치는 비릿한 갯내음, 생선 내장이 발효되는 듯한 갯내음이 집 안 구석구석 스며 있었다. 성장해서도 어린 시절 맡았던 갯내음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어두운 밤하늘에 환한 불이 날아다녔지.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도 들렸어. 월미도 큰할아버지댁에 간 느 외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 천둥이 잡아간 거야.”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어머니는 그날 밤 일을 그렇게 말했다. 천둥이 잡아갔다거나 불이 삼켰다거나. 외할아버지가 그 밤에 어딘가로 사라진 이후 어머니의 삶은 결핍으로 채워졌다. 어머니의 기억이 토막토막 잘리는 통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살았던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불빛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 도서관을 뒤졌다. 내가 알고자 하는 진실은 없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일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날 새벽, 팔미도 등대의 석유 심지에 불이 당겨졌다. 먼바다에 대기하고 있던 항공모함과 구축함, 순양함 이백육십여 척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가을의 바람이 불고 한지로 꼬아 만든 심지가 석유를 힘껏 빨아들이며 불을 밝혔다. 한적한 해안과 조그만 섬에 쏟아진 폭탄과 네이팜탄은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본국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노린 유엔연합군사령관 맥아더의 모험은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기록은 50년 9월 15일 새벽으로 되어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의 전황을 역전시키는 전기가 되었고 피난 갔던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밤이면 바람소리와 울음소리가 허공을 떠다녔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외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인천상륙작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상륙 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한 공중 폭격이 두 주 전부터 계속되었다니 고요하던 어촌 마을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국 해병대 항공기는 네이팜탄으로 월미도를 폭격한 이래 수십 회에 걸쳐 북성포나 화교들이 사는 마을, 화수동과 만석동 자유공원을 폭격하였다. 그날 새벽 맥아더가 직접 관측하는 가운데 상륙작전이 개시되고 몇 만 명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상륙작전은 조용히 진행되었으며 월미도에 이어 북성동과 낙섬에 순조롭게 진입하였다. 북한군 진지를 묶어 놓은 후라 가능했다. 다음날 해병들이 인천 전역에 대해 수복작전을 펼치며 상륙작전은 막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해안 일대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기록은 현대사에 남아 있다. 기념관에서 본 것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 남은 것은 어머니가 기억하는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오전 이른 시간에 이루어졌고 2차도 오후 시간 즉 낮의 시간대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자꾸 밤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웃들은 모두 피난을 떠나고 어머니는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외할아버지 때문일 것이었다. 월미도로 간 외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수 없었고 어머니의 마음은 절망으로 까맣게 탔을 것이었다. 어머니의 심경이 캄캄한 밤을 대변했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그렇다는 짐작일 뿐이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인천상륙작전은 절망과 공포,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 혼자 남게 된다는 공포가 에워쌌을 것이다.
    북한군에 의해 억류되어 있던 많은 사람들은 피난을 떠날 수 없었다. 서울과 인천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후퇴한 한국군과 유엔군은 다급했다. 맥아더는 모두들 말리는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남아 있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는 오직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했고 한국 민족에 대한 안위는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개펄로 뛰어들었다. 뻘을 흰옷에 바르며 숨어 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육지도 아니고 바다 위 낚싯배도 아닌 개펄에 뛰어든 사람들은 뻘이 자신들을 살렸다고 말했다.
    목이 탔다. 차가운 정수기 물을 마시고 나니 머리가 맑아진 듯했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하루 종일 무얼 먹은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가 만든 된장과 젓갈 간장이 먹고 싶었다. 바다물빛이 순해진 봄날, 어머니는 어판장에서 생멸치를 대야에 이고 왔다. 눈알이 또록또록하고 배가 불룩한 작은 멸치였다. 바가지로 생멸치를 항아리에 담은 어머니는 굵은 소금을 한 됫박씩 얹었다. 다시 생멸치를 한 바가지 깔고 소금을 넣고 생멸치 한 바가지를 넣고 소금을 얹었다. 굵은 소금 서너 됫박이 얼추 들어갔다.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멸치는 안 보이고 하얀 소금 알갱이만 가득했다. 여름 내내 멸치 삭아 가는 냄새가 떠다녔다. 가을볕이 부드러워졌을 때 어머니는 꼭꼭 싸맸던 항아리를 풀었다. 뚜껑을 열자 멸치와 소금이 사라지고 흐물흐물한 액체만 진하게 남았다.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났다. 김장철에 배추김치와 섞박지를 담갔다. 오래 삭힌 젓갈을 끓여 맑은 액젓으로 간장을 만들어 썼는데 어머니만의 손맛이 배어 있어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했다. 매운탕을 끓이거나 미역국을 끓일 때면 젓갈 간장으로 간을 했다.
    무슨 국을 끓일까 고민하면 어머니의 젓갈이 떠올랐다. 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만들었다. 시래기를 넣고 유기농 된장 한 수저를 떠 넣으니 집 안에 된장찌개 냄새가 가득했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하는 것 같은 저녁이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은 지가 까마득해서 언제 적 일인지 기억이 희미했다.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그 남자는 어머니의 집이 어둡다고 싫어했다. 멀리 해안이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사계절이 지나가는 집을 그는 유난히 싫다고 했다.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닫혀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초봄의 진달래꽃이 필 무렵 틈만 나면 베란다로 나가 진달래에게 말을 거는 나를 그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남들이 보면 웃겠다. 그의 비아냥거림에 마음이 닫히면 그만큼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살았다.
    “살아남은 게 용했지.”
    어머니는 옛날을 회고할 때마다 그 말을 되뇌었다. 세상이 종말을 고할 것 같던 그 일도 지나가고 외할아버지를 잊고 산 세월이 다 돈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돈이 제일 무섭다고, 돈이 전쟁이라고 말했던 어머니는 꼬깃꼬깃 뭉쳐진 종이 지폐를 몸뻬 바지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하도 오래되어 지폐가 너덜너덜해져서 일련번호가 지워졌는데도 버리지 못했다.
    사막의 신기루, 개펄 위에 세워진 도시의 형상이 자꾸 아른거렸다. 유리문 밖을 내다보니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시야를 막고 있었다. 바다는 영영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부터 귀를 파고들던 전기톱날 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개가 짖는 이유도 전기톱 때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공원 녹지로 묶여 있어서 개발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산이었다. 그런데 청량산 자락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전기톱이 산자락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에도 어디 먼 곳에서 간벌하는 것이겠지, 그러고는 외출을 했었다. 우연히 내다본 뒷산 중턱에 큰 나무 몇 그루가 쓰러져 있다. 무슨 일이지. 불안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어머니처럼 살던 터를 내주고 이사를 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재건축을 한다고 주위에 소문이 나서 카페 여주인이나 미용실에서도 거기 집값 많이 올랐죠, 하고 물었다.
    “진달래 필 때가 되었어요.”
    그들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 다시 또 질문이 들어왔다.
    “좋겠어요.”
    “뭐가요.”
    “집값이 많이 올랐잖아요.”
    “그게 좋은 건가요.”
    집값이 올라도 내 삶은 변한 게 없었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살던 집도 바다도 어머니도 모두 사라졌다. 어머니는 개펄과 바다에 대한 추억에 기대어 살았다. 아주 어릴 적, 아마도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 어른들과 배를 타고 작약도로 소풍을 갔었다. 어른 남자의 팔에 안겨 있었던 나는 훗날 그 남자가 아버지였을 걸로 추측했다. 어른들이 낚시로 물텀벙이를 잡아 회를 떠서 소주와 먹을 동안 옆에서는 매운탕이 끓었다. 자갈밭에 부려진 아이들은 까맣게 타도록 돌을 갖고 놀다가 칠게에 물려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였다. 등대에 불이 들어오고 바다물빛이 붉게 출렁이면 배를 타고 돌아왔다.
    손때가 묻은 자개장롱은 경첩에 녹이 슬어 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걱거렸다. 버릴까 하다가 어머니 유품이라 남기기로 했다. 어머니는 자개장롱을 들이고 나서 틈날 때마다 쓰다듬고 걸레질을 했다. 밤이 깊어 갔다. 초봄의 바람이 부드러워졌다. 베란다 창을 열어 놓고 어두운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는 두 다리를 올리고 소파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하염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눈꺼풀이 자꾸 무겁게 내려앉았다.
    귀청을 찢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거실에 깊이 들어와 있고 숲에서 강한 쇳날이 빠르게 돌아가는 굉음이 났다. 엉거주춤 일어나 내다보았다. 뒷산 가득 빽빽하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하늘이 휑하니 다가왔다. 진달래와 산수유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철모를 쓴 인부 서너 명이 쇠톱으로 나무를 자르느라 산이 아수라장이었다. 전기 톱날을 허리쯤 대자 나무가 맥없이 쓰러졌고 뒤이어 뿌리가 땅에 닿는 부위를 잘라버렸다. 순식간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쓰러져 덤불처럼 뒤엉켜버렸다.
    “아저씨, 나무 베지 마세요!”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소리쳤다. 내 소리는 전기톱 소리에 여지없이 잘려 나갔다.
    “아저씨, 나무 베면 안 돼요!”
    다시 고함을 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보전녹지로 지정되어 비닐하우스 한 개도 설치하지 못하던 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청에 전화를 했다. 콜센터 여직원은 사유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원녹지과에 연결이 되었다.
    청량산 자락 나무들이 베어지는데 현장 확인하라는 내 말에 담당 공무원은 집주인이 하는 거라고 자기네도 어쩔 수 없다고 대지로 지목변경이 되었는데 건축과에서 허가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무를 베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대지로 지목변경이 될 수 없다는 거 잘 알지 않으냐고 예전에는 땅 한 평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녹지대 아니었냐고 항변하자 직원은 다시 건축과에서 다 한 거라고 대답을 했다. 공원녹지과는 책임이 없냐고 따지자 공무원은 다시 건축과를 둘러댔다. 전화는 끊어졌다. 겉옷을 걸쳐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경비가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이고 있어서 물어보았다.
    “산 주인이 업자에게 팔아서 빌라를 짓는대요. 경비실 입구에서부터 어린이 놀이터 있는 곳까지요.”
    “저쪽 주차장 말인가요.”
    “그렇죠.”
    쇠 톱날 소리 사이로 고함소리가 섞여 왔다. 목청 큰 남자 목소리였다. 조금 후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둘 사람들의 무리가 나무들이 쓰러진 산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 무리에 섞여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선창하고 사람들이 다 같이 후렴구를 외쳤다. 막막하고 어두운 장면이 떠올랐다. 오래전 신도시 개발을 앞두고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투기 자본 물러가라!”
    “조상들이 물려준 터 마구잡이 개발이 웬 말이냐!”
    “우리는 맑은 공기, 맑은 숲을 원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쇠 톱날 소리가 멈춰 섰다. 합창소리는 빌라아파트 지붕을 넘어 쓰러진 나무들 위를 지나 벌거벗은 산 중턱을 떠돌았다. 뒤를 돌아다보니 옆집 여자가 보였다. 옆집 여자 뒤로 진돗개가 짖으며 따라왔다. 이층집 남자가 진돗개 목줄을 잡고 있었다. 선창자가 구호를 외치자 진돗개가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개소리는 산 중턱 바위에 부딪혔다가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다.

 

 

 

 

 

 

 

 

 

 

유시연
작가소개 /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 단편소설 신인상 당선.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달의 호수』, 『쓸쓸하고도 찬란한』,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벽시계가 멈추었을 때』, 기행 에세이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 등이 있음. 정선아리랑문학상·현진건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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