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윤리

[단편소설]

 

 

미래의 윤리

 

 

박민정

 

 

 


    황지우의 근황을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듣지 못하게 될지는 몰랐다. 모두가 아주 오래 전부터 황지우를 알았다. 황지우의 개인 SNS 같은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녀의 소식은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이들은 가끔 황지우가 죽었나? 하고 말했다. 어떤 아이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황지우의 이름이 뜨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뜬다면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겠느냐며, 잠에서 깬 채로 포털에 접속했다가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아채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도 했다. 서아는 황지우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떠올렸다.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용히 살겠습니다…… 서아는 그녀가 정말로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장된 겸양의 태도가 사람들을 더 화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게 웃겼다. 대략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던 첫 번째 통화에서 서아가 느꼈던 바도 그와 비슷했다. 그녀는 자꾸 자기가 늙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비굴하게 웃었다. 서아의 입장에서 그녀는 늙기는커녕, 큰언니뻘에 가깝다고도 할 만한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꾸 ‘혹시 우리가 세대가 달라서’ 운운하는 모습이 본인의 부족한 인격에서 비롯한 말실수를 미리 만회하려고 선수를 치는 것 같아 불쾌했다. 서아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입학하기 전부터 꾸려 놓은 스터디를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다가, 칠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대면으로 팀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본인이 적폐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그 태도나, 혹여 적폐라는 것이 드러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계속 만들려고 하는 모양새가 기분이 나쁘다고.


    서아는 락스를 뿌려 화장실을 청소했다. 일주일간 청소를 안 하니 화장실이 끔찍하게 더러워져 있었다. 수전은 하루 이틀만 방치해도 허옇게 때가 올라오는데, 일주일을 버려뒀으니 심각했다. 누렇다 못해 빨개진 줄눈과 타일 사이사이에 낀 곰팡이가 보였다. 처음에는 변기나 세면대의 닿지 않는 곳에 핀 분홍색 물때를 보며 저게 정말 더러운 것이 맞나, 잠시 의아했다. 서아는 마치 형광핑크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해사한 물때의 색감을 엄마에게 전화로 설명하며, ‘나는 이런 건 평생 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평생 청소를 안 해봤으니 모르지, 타박하며, 사실 내내 구옥에서만 살아 온 자신도 분홍색 물때는 구경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마 신축이라 그런 거 아닐까.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구옥과 신축이라는 단어를 번갈아 들으며 서아는 한숨을 쉬었다. 딸이 대학에 간다고 신축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어 준 엄마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었고, 대출까지 받아 힘들게 집을 구해 줬는데 반년이나 쓰지 않고 방치해 둔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학교에 갈 일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서울에 살며 뭐든 해야겠다고, 전세를 얻느라 쓴 돈 이상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하며 기차를 타던 날이 생생했다. 집값이 안 아깝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서아는 오래도록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락스랑 과탄산소다는 같이 사용하면 안 돼,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베이킹소다는 세정력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구비할 필요가 없고, 과탄산소다를 이용해라…… 편의점에서 파는 희석된 것이라 해도 락스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고. 서아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락스의 세정력에 감탄했고 때론 경악했지만 그 물건을 쳐다보기만 해도 떠오르는 말과 동시에 상념에 사로잡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말은 황지우가 한 말이었다. 그녀와 만나 본 적도 없는데, 그녀가 자기에게 했던 말은 너무 많이 생각났다. 우리가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력은 만남 이상일 수도 있다고, 이게 새로운 시대의 공통감각이라는 것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마치 자신은 새 시대에 속해 있지도 않다는 양, 그러나 고독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오래된 감각을 갱신하겠다는 양. 황지우를 생각하면 늘 불쾌한 뒷맛이 남았다. 마지막 통화 이후 서아는 진심으로 황지우를 걱정했다. 동영상 속 흐릿한 얼굴에서 보였던 지친 기색을 반복적으로 떠올린 적도 있었다. 황지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건강을 걱정한다고, 앞으로도 건강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근황이 들려오지 않을지 몰랐다. 아이들은 걔 진짜 죽은 거 아니야, 라고 말하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것도 그녀의 부덕이라고 말했다.


    서아가 개인 방송을 하기로 마음먹은 까닭도 방치되었던 전셋집을 늦게라도 활용해 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대출까지 끼어 있는데 전셋집을 넘길 수도 없었고, 당시로서는 서울에 갈 이유도 찾지 못했다. 두 주간, 한 달간, 이런 식으로 등교는 계속 미뤄졌다. 우리 땐 전부 ‘학기세’였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고…… 부모님이 이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서아의 마음은 몹시 불편해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간다는 이유만으로 의기양양했던 자신이 생각나 겸연쩍어지기도 했다. 서아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서아의 과외 선생은 축하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 너는 이제 너희 집에서 가장 고학력자가 되는 거야.


    서아는 처음엔 어리둥절했고 곧 화가 치밀었다. 뭘 안다고 저따위 소리를 하는 거지? 서아의 부모가 서아가 합격한 대학보다 못한, 입결이 낮은 대학을 나왔다거나 대졸자가 아니라고 미루어 짐작하며 하는 말이 뻔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는 얼떨떨해서 대꾸를 못 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말의 의미가 자꾸 선명해지고 기분이 더러워졌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더욱 화가 났다. 과외 선생과 수업을 할 시기는 지금과 같은 감염병 시대가 아니었기에 서아는 그녀와 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지역에 있는 명문 공과대학의 학생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녀를 지방대생이라고 부르지 않을 텐데, 말끝마다 자기 학교가 얼마나 명문인지, 얼마나 입결이 높은지 강조하는 바람에 오히려 서아를 의문스럽게 만들었다. 저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방에 내려와 사는 바람에 사람이 꼬였구나, 서아는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이봐요 선생님, 당신 공부 잘한 거 잘 아니까 매번 본인 대학 올려치기 할 필요 없다구요’라는 말을 뱉은 적도 없고,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가 그만한 대학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부모가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것이었다. 서아는 일 년 동안 그녀에게 갖다 준 돈을 계산했다. 서아의 부모에게 돈을 받아 편하게 생활했으면서, 그녀는 서아의 집에 올 때마다 변변찮은 집안 살림을 훑어보며 이 집 부모가 학력이 낮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한 것이었다. 과외 선생을 건드릴 만한 말을 하지 않았고 그녀를 배려하며 조심했는데 그녀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서아는 생각했다.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부모가 그런 별 볼일 없는 대학의 캠퍼스 커플로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는 데 대해, 두 사람 다 본가는 서울이면서 이 지역까지 내려와서 대학을 다녔고 그런 바람에 여태껏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서로를 놀리며 주고받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무람없는 멸시가 집구석 세간 곳곳에 배어 있는지도 모르고. 서아가 합격한 대학은 서아가 목표했던 대학도 아니었고 당연히 명문대도 아니었다. 고작 그런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서 부모를 무시하는 말을 들었다는 데 대해 서아는 오랫동안 깊이 분노했다. 과외 선생의 연락처를 차단했고 그녀를 만나게 된 구직 어플에 익명으로 낮은 별점을 주고 최대한 고상하게 수업 태도를 비난하는 리뷰를 남겼지만 그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전셋집을 구하던 날, 엄마는 운전을 했고 아빠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대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겁 많은 아빠가 여태껏 운전면허도 따지 않고 엄마를 고생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엄마 차를 타는 마음이 편찮았다. 하이패스를 몇 번 통과할 때까지 잠자던 아빠는 대학 근처까지 와서야 눈을 뜨고 ‘아아, 여기가 학사촌이구나’ 지껄였다. 서아는 아빠한테 쏘아붙였다.
   
    – 조수석에서 그렇게 자는 건 비매너 아니야?


    아빠는 언제나 그랬듯 곰살맞게 웃으며 그런가, 하고 의미 없는 말을 뱉었다. 성인이 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려도 매번 샌드백처럼 받아 주며 허허 웃고 ‘화내지 마세요 여보’ 하는 골든리트리버같이 착한 아빠 때문에 엄마가 왜 속을 썩었는지. 서아는 엄마처럼 한숨을 쉬고 아빠를 노려보곤 했는데, 그럴 때도 아빠는 별달리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와, 너희 엄마 새내기 때랑 정말 똑같아’ 할 뿐이었다.


    부동산 카페에서 미리 점찍어 둔 집을 아빠에게 보여줬을 때, 아빠는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런데 서아야, 이렇게 좋은 집이 꼭 필요해? 있잖아, 아빠가 처음 살았던 방은…… 그 야구공 같은 걸 하나 둬도 또르르 굴러가는…… 그러니까 그런 집만 아니면 되지 않아?


    서아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화를 냈다. 야구공이 또르르 굴러갔다는 기울어진 집에 대해서는 자라오며 외우도록 들었다. 엄마는 그때도 그따위 집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고, 동기들 중에서도 아빠가 제일로 가난해서 그런 집에 살았던 거라고 말해 줬다. 그것도 선배들 둘이랑 같이. 아빠는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해 준 적도 있었다. 싱크대와 변기가 한 공간에 있었다는 둥, 컴퓨터 한 대를 놓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형들이랑 머리를 맞대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사용해 가며 각을 쟀다는 둥. 그런 괴담은 듣고 싶지도 않은데 아빠는 자꾸만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니까 서아야, 방 두 개, 거실 하나, 식탁 둘 수 있는 부엌, 이런 우리 집이 얼마나 소중한 거야. 과외 선생이나 남들이 어떻게 보든 그게 부모의 행복이며 자부심이라는 걸 서아도 알긴 알았다. 그런데 그만하게 만족하는 삶을 서아에게 강요하려고 한다면 단연코 거절하리라고, 서아는 완강하게 다짐했다.


    부모가 여러 번이나 은근히 신축 원룸은 너무 비싸다고 눈치를 주긴 했지만 결국 서아가 원하는 집을 얻게 되었다. 막상 집을 본 아빠도 얼굴이 밝아졌다. 집이 크진 않은데 바닥이 대리석이니 고급스러워 보인다, 요즈음은 빌라도 이렇게 층고가 높구나, 우리 딸은 얼굴도 웜톤인데 집 안이 난색이라 잘 어울린다, 이렇게 환한 형광등 아래에서 공부하면 더 잘 되겠다. 서아는 문득 눈물이 찔끔 났다. 서아는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으며 말했다.
   
    – 아빠, 엄마, 미안해. 자랑할 것도 하나 없는 딸인데 이만큼 해줘서.


    엄마는 서아를 노려보며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퉁명스럽게 말했고,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현관에 세 사람이 서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 장면을 서아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기억했다.


    그날 이후,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끝나 갈 때까지 교정에 발 디딜 일이 없을 줄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강을 두 주 앞두고 감염병이 창궐해 입학식이 취소되었고 입학식에 맞춰 짐을 옮기려고 했던 일정도 미뤄졌다. 동기 커뮤니티와 단톡방에 날마다 심란한 글들이 올라왔다. 우리 정말 학교 안 가요? 개강 안 한대요? 우리 등록금은요? 서아가 꾸려 놓은 스터디 팀원들은 대개 서울 아닌 지역 출신이었는데, 기숙사 수용 인원이 턱없이 낮기로 유명한 학교인 탓에 전부 월세나 전세로 자취방을 구해 둔 처지였다. 서아는 그들과 날마다 연락을 주고받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선배들은 어떻게든 조언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말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서아가 중학생일 적 대학 신입생이었던 사촌언니가 방학에 놀러와 며칠 밤을 상기된 얼굴로 들려주던 대학 생활 이야기가 떠올랐다. 몇 시간을 떠들던 언니가 깊은 새벽 갑자기 등지고 돌며 풀죽은 목소리로 엠티에 가서 자는데 어떤 선배가 브래지어 끈을 억지로 풀었다고 말했지만, 서아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뭘 더 물어 봐도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어둠 속에서 언니의 굽은 등이 아른아른 흔들렸다. 서아는 어쨌거나 대학에 갔기 때문에, 적응해서 즐겁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별일을 다 겪나 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학교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워 주지 않는 건가요? 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가만히 기다려야 합니까? 커뮤니티에 성토가 이어졌다. 글을 읽다 서아는 불현듯 옛날에 사촌언니가 말했던 ‘등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봄은 등투의 계절이래. 나도 해본 적은 없는데, 선배들이 그랬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였지만 중학생이었던 서아도 듣자마자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았다. 봄은 등투. 벚꽃의 꽃말은 시험기간. 그런 말들이 생각나며, 아직 목련이나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나리와 매화는 만발한 시점까지도 개강하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는 학교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대체 이 학교 교수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우리 죄다 마스크 쓰고 본부에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감염병 기세가 나아지지 않으니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학과의 문자가 왔다. 황지우가 처음 서아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서아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 내선 번호도 아닌 휴대폰 번호였다.


    “그것은 마법에 걸려 전도되고 거꾸로 선 세계이며, 거기에서는 무슈 르 카피탈과 마담 라 테르가 사회적 등장인물(동시에 직접적인 단순한 물적 존재)로서 괴상한 춤을 추고 있다.”*)


    무슈 르 카피탈, 자본 씨, 마담 라 테르, 토지 부인,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묘사한 이상한 나라입니다.


    황지우가 프롬프터를 읽는 듯 부자연스럽게 말한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한 시간이나 전화통을 붙들고 떠들 때, ‘나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말했나…… 있잖아요, 말이 많은데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거래요’ 하면서 소탈하게 웃음 짓던 모습과는 다르다고 서아는 느꼈다. 훗날 황지우는 자신은 원래 숫기가 없고 말주변이 지나치게 없기 때문에 혹여나 말실수를 할까 봐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말도 지독한 변명처럼 들렸다. 말주변이 없어 두려웠다고 하기에는 황지우는 이미 몇 년째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이었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서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봐야 몇 십 명이 시청하는 강의에서 긴장했다는 게 웃겼다. 그렇다면 교수님, 방송에 출연하실 때도 전부 남이 써준 대본을 읽는 건가요? 그런 의문을 가진 학생은 서아 말고도 많았지만, 서아는 끝내 그 말을 황지우에게 하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셀럽들이 그렇듯 황지우도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던 사람이었고 대중이 검증하지 않은 능력을 내세우며 전문가 행세를 했다. 서아도 고등학생일 적부터 심심찮게 그녀가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껄이는 모습을 봤고 대형 서점 평대를 지나가다 저서를 본 적도 있었다. 독문학을 전공했고 꽤 많은 단독 저서를 집필한 사람이며 촉망받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는 건 알았지만, 자신이 진학한 학과의 교수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건 서아의 동기들이 소리 높여 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 중에 황지우 보고 진학한 사람 있어요? 난 솔직히 아니에요. 뭐, 황지우가 학과의 명예에 보탬이 된다는 이야기에 동의하는 사람 있어요?

 

   *)  카를 마르크스, 『자본 Ⅰ-1』, 강신준, 길, 2008


    서아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수능이 끝난 직후 시작한 일로, 처음부터 사장에게 한두 달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서울에 갈 필요가 사실상 없어지며 어영부영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 전화를 받을 때 서아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식사 메뉴는 김치볶음밥과 토마토달걀볶음뿐이었는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한 요리가 아니었다. 사장이 일러준 대로 냉장고에 있는 쉬어터진 김치에 버터를 잔뜩 둘러 볶아 내놓으면 되었다. 카페에 오래 죽치고 있던 사람들이 배고프면 한 번씩 시켜 먹는 메뉴였기에 만들 일이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팬에 버터를 바를 때면 서아는 어김없이 비참한 기분에 빠졌다. 엄마도, 아빠도, 사촌언니도, 모두 누렸던 삼월의 대학 생활을 박탈당했다는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재수는 꿈도 못 꿨기에 억지로 대학에 갔다고 했다. 그런 삼류 지방대에 가게 된 자기 처지가 너무 서러워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이 전부 형편없이 낮은 수능 점수를 받은 인간들이라는 생각에 기가 막혔고, 사 년 혹은 오 년 후에 졸업하고 나서도 자신을 평생 따라다닐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암담했다고 했다. 그 사 년 혹은 오 년이라는 것도 결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고. 그런데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르는 거라,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존재감조차 없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지역 공무원이 되어 눌러앉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 그런데 서아야, 결국 그 학교에서 도망 나오지 않고 끝내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 첫 강의를 들은 날, 그 벅참을 잊지 못해서야. 교수가 대단해서도 강의 내용이 대단해서도 아니었어. 드라마에서나 봤던 대강의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제 내가 대학생이구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정신이 혼미하고 설렜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타악기 소리, 노랫소리, 목청껏 웃는 소리…… 계단 저 끝까지 올라가 책상에 앉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어.


    그런 건 전부 풍문이었다.


    황지우는 자신은 학교에 부임한 지 일 년 남짓 된 신임이며, 서아의 지도교수라고 했다. 이 시점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어 유감스럽다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건강은 괜찮으냐고 했다. 학교의 모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개강조차 미뤄진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고 자신도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되는 일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서아는 세탁을 언제 했는지 가늠이 되지도 않는 더러운 앞치마에 손을 문질러 닦으며 잠시 의문이 들었다. 교수가 학생에게 양해를 부탁드린다니. 이게 이치와 도리에 맞는 일인가. 그제야 황지우가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귀가한 서아는 유튜브에서 황지우의 이름을 쳐봤다. 문화사, 여성사, 일상사 등 갖가지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제로 썰을 풀고 있는 황지우의 얼굴이 담긴 다양한 썸네일이 떴다. 이런 방송은 가능한데 강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나의 지도교수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은 이내 사라졌다. 서아는 이번 학기에 황지우의 수업을 수강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서아는 어플을 열어 며칠 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시간표를 다시 훑어봤다. 시간표에는 황지우의 이름이 없었다. 서아는 자주 연락하는 스터디 팀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오늘 황지우 교수님 연락 받은 분 계실까요?


    단톡방 인원 중 절반 이상이 황지우의 전공수업을 신청했다고 대답했다. 서아는 이런저런 교양 프로그램명을 대며 여기 출연하는 그분이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기가 오래 전부터 존경하는 인문학자가 학과장인 것도 며칠 전에 알았다고, 교수님들을 뵌 적도 없는데 같은 공동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서아는 엄마에게 황지우라는 사람이 지도교수라며 연락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했다. 엄마는 갸우뚱하며, 아 그 사람? 굉장히 젊은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빨리 등교를 해서 수업을 들어야 할 텐데, 엄마는 날마다 한걱정하듯 또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황지우 교수의 강의 자료와 영상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올라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스터디 단톡방에, 다음에는 학과 전체 단톡방에 의견이 올라왔다. 서아는 자신이 수강하는 강의도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강의 시간이 좀 짧은 것 같다, 강의가 제시간에 맞춰 올라오지 않고 꼭 조금씩 늦더라,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한 선배와 서아의 동기 사이에 잠깐 신경전이 오갔다. 작년 내내 황지우의 수업을 들었다는 선배가 ‘수업 내용이 아니라 행정적인 절차에 대해 자꾸 비토를 놓는 건 좀 무례한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학생이 따져 물었다. 당신들은 입학하고 한 번도 학교에 가지 못한 우리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우리는 황지우 교수를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선배들이 갖고 있는 감정적 유대를 느낄 만한 시간도 없지 않았겠느냐. 그리고 이게 왜 행정에 대한 이야기냐. 강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그분이신데. 서아는 단톡방 알람을 처음으로 껐다. 그리고 핸드폰을 곁눈질하며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대화가 충분히 쌓이고, 여론 형성이 될 만큼 되었을 때 차분히 지켜보고 싶었다. 단톡방에서 의견을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인원은 백 명에 달했다. 서아는 얼른 귀가해서 침대에 앉아, 이왕이면 아이패드로 하나하나 곱씹으며 보고 싶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람은 꺼두었지만 단톡방의 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걸 시시각각 바뀌는 숫자로 알 수 있었는데, 별안간 숫자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멈추었을 때 서아는 무척 아쉽다고 생각했다.


    젖은 손에 좁쌀 묻히듯 날마다 황지우란 사람에 대해서, 그녀의 강의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던 건 학기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도 서아는 황지우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스터디 단톡방에 황지우 강의 PPT 자료가 업데이트되었을 때, 누군가가 강의를 듣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자료를 보여줘도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뒤이어 ‘이런 자료 공유는 하다못해 청강조차도 아니다, 우리에겐 권리가 있다’는 말을 통해 무마되었다. 서아는 황지우가 제작했다는 PPT를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이렇게 형편없는 자료가 대학에서 쓰일 수가 있나?


    PPT를 열어 본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황지우에게선 한 달에 두어 번 전화가 걸려왔다. 비대면 수업이므로 전화 상담에 더욱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그랬듯 정상적으로 대학 생활을 했더라면 마주 앉아 어떤 질문을 했을까, 서아에겐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아는 더구나 황지우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화의 질이 높아지지 않았다. 황지우에게는 학생에 관한 정보가 없을 터였고, 서아도 교수에게 할 만한 깊이 있는 질문이 무엇일지 떠오르지 않았다. 상담일지를 기록해야 하는 교수의 의무를 억지로 채우기 위한 시간은 아닐까. 서아의 입장에서는 안부와 근황을 묻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나누다 변죽만 울리고 끊는 전화가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강의에 대한 불만을 부쩍 털어놓는 즈음에는 공손하게 대화를 이어 가는 일조차 가식적이라 여겨져 불편했다. 학생들의 단톡방이나 커뮤니티에 어떤 의견이 올라오는지 황지우는 알지 못할 게 뻔했다. 원래 어른들은 그 모양이니까. 그래도 이런 여론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아는 게 좋지 않을까, 서아는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걸 전해 줄 순 없었다. 그럴 만큼 황지우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자칫 잘못하면 익명 여론을 전달한 프락치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의미 없는 통화를 이어 가야 할 까닭이 뭘까, 서아는 종종 생각했다.


    황지우의 수업을 수강하는 스터디 팀원은 서아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서아 씨는 수업을 듣고 있지 않다 보니 황지우 교수가 선을 넘는 건 모르나 보네요. 수강하는 학생들에게는 좀 더 친밀감을 느끼는지 아무 말이나 하시는데. 서아는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 얼마 전에 전화하셔서 맥락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본인 대학원 시절에 교수에게 논문을 표절당한 적이 있었다고. 옛날 어느 날 학술지를 보니까 그 교수 개인 명의 논문에 본인의 발표 자료들이 무더기로 복붙되어 있었대요. 저는 뭐라고 반응해 드려야 할지 몰라서 도무지…… 되게 웃기는 건 뭔지 알아요? 지금은 본인도 교수면서, 자꾸 교수들은, 어른들은,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본인이 아직도 학생인 양.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서아도 그런 뉘앙스를 느낀 적이 있었다. 황지우가 은근슬쩍 자신을 기성 권력과 선을 긋는다 느낄 때.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지껄이는 ‘우리는 다른 세대’라든지, ‘제가 늙어서 잘 모르나 봐요’ 같은 말들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 요즈음 고민이 무엇이냐고 실컷 묻고 나서 ‘제가 심리상담 전문가는 아니지만’이라고 치고 빠지는 태도도 비겁했다. 점점 서아에게 황지우란 사람은 상황에 맞게 되는 대로 말을 지껄이면서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비겁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분명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말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같은 편에 서주리라는 신뢰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예의 바르고 공손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며, 그런 인간일수록 표리부동한 경우가 더 많다고 서아는 생각했다.


    강의 PPT가 올라왔을 때 서아는 놀랐고 차츰 분노했다.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이런 자료를 만드는 것이 그녀 직무의 일부라면, 이따위로 하고 월급을 받는다는 건 너무 부조리한 것 아닌가. 초등학생일 적부터 지금까지 수강한 어떤 인터넷 강의의 자료에서도 그런 형편없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중고등학생일 적 조별 과제를 할 때조차 어떤 학생도 그따위로 만들어 오지 않았다. 서아의 동기들 중에서 다섯 명이나 개인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학기 중반쯤이 되었을 때 서아도 개인 방송을 준비하면서 그들과 영상 자료를 제작하는 팁을 나누곤 했다. 멀리 본다면 누구나 수익창출 같은 것을 꿈꾸겠지만 당장은 맨몸으로 아무 보수도 없이 밤을 새우며 영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동기들 중 가장 처음 방송을 시작한 친구는 첫 번째 영상에 ‘개강은 했는데……알바 브이로그’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고 산책을 하고 가끔 드럭스토어에서 쇼핑을 하거나 반려동물과 놀아 주는 일상. 촬영하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에 손수 임하는 친구들은 당장 구독자의 숫자가 열 명 미만임에도 열정을 다해 제작했다. 자기만의 캐리커처를 그렸고 폰트를 구입했고 신중하게 대본을 작성했고 썸네일과 오프닝 화면을 만들었다. 전문가에게 영상 디자인을 배운 친구는 없었지만 모두 예쁜 영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만 한다면 그것은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교수들이 제작하는 수업 영상은 형편없었다. 깨끗한 화질과 음질을 제공하며 아나운서만큼 명확한 발성으로 수업하는 인터넷 강사들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과거 한 인터넷 강사가 판서를 할 때 글씨를 가리지 않기 위해 몸을 돌리는 각도를 계산하며 강의한다고 여담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우중충한 저화질로, 얼굴만 겨우 보이게 수업하면서 음성조차 종종 끊기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PPT 자료야말로 공들여서 제작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디자인도 탬플릿도 없고 가독성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무렇게나 낙서된 것 같은 문서를 보니 기막혔다. 수강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하물며 그런 PPT를 띄워 놓고 화면의 내용과 강의 음성이 따로 논다고 했다. 그거야 다른 교수님들도 대체로 컴퓨터를 못 하시기는 하는데…… 서아는 다른 교수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황지우는 컴퓨터를 잘 못 다룰 만큼 늙은 교수도 아니었고, 공중파에도 출연하는 사람이 아닌가.


    황지우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조차 그런 사람이 실재하긴 했었나 싶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 서아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만나서 대화조차 해본 적 없고, 대학원처럼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닌데, 황지우와 자신을 허상으로 연결했던 지도교수와 제자란 이름에 대해서. 행정상 지도교수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통화를 의미 없이 이어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의 통화만 아니었다면. 그런데 그런 가정은 언제나 의미가 없었다. 황지우는 전화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자신 역시 그 전화에 응해야 했다. 임시 조치였던 온라인 수업이 언제 끝나리라는 기약 없이 이어졌고, 원격으로 중간고사를 치렀고, 부모며 카페 사장이 언제 서울에 가게 되는 거냐고 더 이상 묻지도 않을 무렵까지 등교하지 않았다. 서아는 어떻게든 서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갈 일이 없는데 서울에 사는 것도 그곳에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전셋집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일상 브이로그용으로 틈틈이 찍어 둔 영상을 편집하긴 했지만 아직 송출하지 않은 상태였다. 서아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영상을 촬영하거나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집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지우는 언제나 서아에게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 재미있게 보는 넷플릭스 시리즈는 없냐, 대학 와서 배우고 싶었던 공부는 없냐, 캐물었다. 그날도 그랬다. 서아는 황지우의 전화를 받을 때면 뭐라도 남다른 근황을 전해 주어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한 날이었다.
   
    – 교수님, 그런데 제 일상은 아르바이트 말고는 별다른 게 없어서요…… 교수님께 고민거리를 지어내서 얘기해 드릴 수도 없고 난감하기도 해요…….


    황지우는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참, 난감하기도 하겠네요. 저도 대학 때 학생회를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할 때면 뭐라도 만들어 가야 하나 싶었지요.


    생활총화라는 단어가 생경했고 호기심이 들기도 했지만 서아는 곧 잊어버렸다. 서아의 머릿속에 문득 번개처럼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인터넷 방송.
   
    – 아, 교수님. 다른 동기들 몇몇도 하고 있는데, 저도 곧 개인 방송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황지우는 잠시간 아무 말이 없었다. 서아는 전화를 귀에서 뗐다. 갸우뚱하며 교수님? 물을 때도 황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재차 부르자 황지우는 말을 더듬었다.
   
    – 아. 네. 학생, 제가 좀 당황스러워서…… 그러니까 무슨 방송을 한다고요?


    ‘해외사건사고’라는 타이틀을 붙여 방송하던 유튜버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서아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황지우 교수를 규탄하는 글이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왔을 때는 당황하지 않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논란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터질 게 터졌다’고 말했다. 서아 역시 황지우 수업의 부정성을 제기했던 친구들과 의견을 같이했고 자료를 모으기도 했지만, 정작 문제제기가 들불처럼 번질 때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모른 척하고 싶어졌다. 해외사건사고 유튜버는 서아에게 일종의 롤모델이었는데, 그가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이나 세련된 배경음악 같은 것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서아에게는 해외사건사고 쪽에 더욱 이목이 쏠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실제 사건 푸티지, 미주나 유럽의 사건 현장을 급습하는 자료 화면들이 전부 다른 외국 유튜버의 영상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서아는 실망했다. 경찰의 보디캠에 찍힌 긴박한 현장의 모습 같은 걸 어디에서 구했을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 출처가 다른 유튜브 방송이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사건 자체를 여러 방송이 동일하게 다루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서아가 배우고 싶었던 편집 기술조차 다른 유튜버의 방식을 베껴 왔다는 점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구독자가 이십만 명 가까이나 되는데 영원히 들키지 않을 줄 알았냐, 당신만큼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은 구독자들 중에도 널렸다, 이런 댓글이 이어졌다. 영상의 내용에 대한 댓글은 단 한 개도 달리지 않고 논란만 이어지는데도 그는 계속 영상을 업로드 했다.


    황지우 교수가 다른 교수의 논문을 표절해서 수업을 제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후, 학생들은 황지우 교수의 사직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작성했다. 그 형편없는 PPT의 내용조차 교수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학생들은 분노했다. 통화에서 용기내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학생에게 황지우는 도리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고 했다. 표절의 개념이 뭔지를 모르나 본데 자신이 한 수 가르쳐주겠다며 적반하장으로 으름장을 놨다고도 했다. 단톡방에서 한 학생이 말했다. 그래요, 엄밀하게는 표절이 아닐 수도 있지. 그런데 교수가…… 이런 건 자존심 문제잖아요. 우리는 강의 내용이 황지우 교수의 저작이라고 생각해 왔던 거잖아요.


    서아가 생각하기에 그 지점은 해외사건사고 유튜버에 대한 논란의 핵심과도 비슷했다. 일어난 사건은 모든 방송에서 보도 내용과 그것을 보는 시각을 비슷하게 다룰 수는 있으나, 문제는 구독자들이 영상의 오리지널리티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 점에서 서아도 크게 실망했다.


    서아는 그날 통화한 이후 황지우의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무슨 방송? 무슨 방송을 한다구요? 재차 묻던 황지우의 말투에 서려 있던 은근한 멸시를 서아는 느꼈고, 뭔가 오해받았다는 억울한 기분은 전화를 끊은 후에 더욱 심해졌다. 단지 기분이겠지. 황지우 교수라는 인간, 원래도 신뢰하지 않았으니까.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벌써부터 강의 평가에 올릴 내용을 몇 페이지나 작성했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격미달로 인구에 회자되곤 하던 교수였으니까. 서아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계속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예민한 탓이겠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개인 방송을 한다고 이야기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지, 그렇게나 뜨악한 반응을 보일 만한 일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뒤이어 이어지던 황지우의 질문 내용도 서아의 마음을 내내 찝찝하게 만들었다. 방송의 소재가 뭔데요? 책 소개 영상인가요? 황지우는 백 번 양보해 짐작한다는 듯 말했다. 동기들 중 몇이나 개인 방송을 하는 마당에, 고작 그렇게밖에 상상할 수 없는 교수라니. 아뇨, 책 소개 영상 같은 거 아닙니다. 그냥 제가 사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거예요. 서아는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고 있는 예외 상태라지만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따위 헛짓거리는 왜 하는 거예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서아의 머릿속을 때리는 말이었다.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으면서. 대충 하다 말 거면서. 안 그래요?


    황지우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는 방학이 시작되자 단톡방에 공지로 떴고, 뒤이어 학과장이 단체 메일을 보냈다. 모두가 감염병 시대에 역경을 겪고 있는데 대학의 부주의함으로 이런저런 곤란한 일까지 겪게 해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우리 학과를 시끄럽게 만든 당사자는 몇 월 며칠부로 사직했으니 염려 말라는 말이 말미에 있었다. 당사자라는 말에 왠지 눈길이 가서 서아는 그것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려운 말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벌어졌던 여러 논란에서 익숙하게 등장한 단어였는데 생경하게 느껴졌다. 서아는 황지우에게 충동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외사건사고 유튜버에게 달린 댓글 하나가 생각이 났다. ‘자살하라니이건너무심한거아니에요이런말을보면당사자는진짜자살말리겠네’ 서아는 황지우에게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교수님, 건강하세요’라고 남겼다. 답장이 오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소 실망스럽게도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간 죄송했고 조용히 살겠다고, 눈에 띄지 않겠다고……. 그러나, 황지우는 서아가 누군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서아 학생에게 그다지 높은 학점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이번 학기에 제출했던 과제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아는 읽다가 버럭 화가 나 핸드폰을 침대에 던졌다. 오후 한낮의 햇빛이 침대에 쏟아졌다. 빛이 잘 들어서 난색, 따뜻한 색이라는 거구나. 아아, 집은 이렇게 정남향이어야지, 그래야 집이지! 하고 허허 웃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서울에 짐을 풀었지만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언제 정상화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에게는 왜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를 꿈꾸는 건 허황된 일이라는 건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잘 알았다. 그러나 부모나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듣고 너른 잔디밭에서 사시사철 술자리를 갖고 엠티를 가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은 마땅히 주어져야 했다. 황지우 역시 그렇게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친구가 말한 대로 교수와 갈등을 겪었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빼앗길 좋음이라는 것도 없어. 서아는 생각했고 자신이 생각해 낸 말을 나눌 만한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아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아무런 해명 없이 계속해서 영상을 올리는 해외사건사고 유튜버의 계정에 접속했다. 그를 비난하는 댓글도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문제가 많은 영상이라면 안 보면 그만이지 않느냐, 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해명이 올라왔을까 싶어 날마다 접속하는 서아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조회 수는 여전히 높았다. 미리 편집해 둔 영상이 아까워서였을까, 다른 유튜버를 베낀 방식 그대로 그는 계속 업로드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이런 걸 표절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황지우의 PPT와 학술자료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 된 논문들을 비교하며 토론할 때, 서아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황지우 교수는 본인도 표절당한 적이 있다고 했으면서 똑같은 짓을 하네요.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흐릿한 영상 너머 대본을 읽듯 부자연스럽게 수업하던 황지우의 몽타주를 서아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까지 기억했다. 엄마의 가장 강렬한 첫 학기 기억이 가슴 벅차던 대강의실인 것에 비해 자신은 너무 형편없음을 느끼면서. 한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서아는 황지우가 흐릿한 영상에서, 전화 통화에서, 문자 메시지나 공지사항으로 했던 말들을 여러 차례 곱씹었다. 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윤리는 도덕이랑 달라서, 윤리란 한 개인의 생존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서아는 그 말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이 황지우가 오롯이 생각해 낸 말인지, 전공서적이나 다른 교수의 논문에서 가져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박민정
작가소개 / 박민정

1985년 서울 출생. 2009년 《작가세계》 등단.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중편소설 『서독 이모』,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가 있음.

 

   《문장웹진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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