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들판 외 1편

[창작시]

 

 

가상들판

 

 

성다영

 

 

 

 


   오늘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진다
   오늘은 2020년 3월 20일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람 21만 명이 죽었고
한국의 26만 명 남성들이 미성년자 성착취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너는 남성들을 사람들로 바꾸어서 읽고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따뜻하고
   사람들은 활기차다


   린네는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한다


   젖소가 VR고글을 쓰고 아름다운 풍경을 봅니다
   러시아 농업부는 가상현실 속에서 젖소가 초원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젖의 질과 생산량을 늘리려고 합니다
   임신한 동물은 수유 기간에만 새끼에게 줄 젖이 나온
다 젖고양이 젖돼지 젖고래 젖사람
   계속해서
   인터넷에 젖이 나오는 남자들의 고민이 올라온다
   유즙분비 호르몬은 뇌하수체종양이 있을 때 증가할 수
있다 우선 검사를 하시고 정확한 진단을 받으시기 바랍
니다


   린네는 페이지를 닫는다
   흐르는 하얀 액체
   젖은 끔찍해
   린네의 생각은 흐르던 방향으로 흐른다
   깊어진다
   존재하는 사람은 더 존재하고자 한다
   두려움은 안전한 것이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해마다 처음이다
   계절이 끔찍하게 이어진다
   어떤 동물은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 평생을 어둠 속에
서 살다가 죽는다
   강아지의 눈빛이 선량해요
   그 말이 이상해서 선량하다는 말은 인간에게만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나무에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한다
   마치 죽었다 살아났다는 듯이


   나는 습기처럼 가라앉는다
   잎과 잎이 부딪히며 쏟아지는 소리


   동물화된 인간
   이것은 린네가 상상하는 가장 나쁜 인간의 모습
   좀처럼 화면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을 읽는 동안 어떤 생이 닫힌다

 

   *  두려움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 딜러드

 

 

 

 

 

 

 

 

 

루프이미지

 

 

 

 


   파랗게 죽어가는 나무의 잎이 흔들린다. 여기에 죽어가는 나무들이 있다. 수양버드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파랗게 살아 있는 나무의 잎이 흔들린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장면.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네. 죽음이 바람에 부서진다. 파랗게 흔들린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큰 원을 그리며 아파트 주위를 돈다. 바람과 나무가 만드는 소리를 가로지른다. 내가 만드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규칙적인 그러나 규칙을 알 수 없는 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새로운 공간을 새로운 소리가 채운다. 죽어가는 나무와 가까워지기 위하여 멀어진다. 페달 밟는 것을 멈출 수 없네. 이 세계에서 나는 소리를 만들지 못한다. 여기 소리 내는 죽어가는 나무가 보인다. 죽음이 나무에 있다. 파랗게 흩날리는 나무가 있었다. 쏟아진다.

 

 

 

 

 

 

 

 

 

 

 

 

변윤제
작가소개 / 성다영

비건. 시 쓰는 인간동물. 2019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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