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적인, 인어 외 1편

[창작시]

 

 

양자역학적인, 인어

 

 

변윤제

 

 

 

 


   인어의 머리를 자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숙련된 기술자들은 인어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르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머리와 몸통을 빨리 던지는 사람일수록 직급이 높았다


   태어나 한 번도 마주 본 적 없던 자신의 속이 드러나는 찰나
   제 몸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려는 머리통도 있었다
   번개가 마르고
   통 안에 자신의 상체가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
   양자역학에 따르면


   누군가 들여다보는 순간 물질은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어 버린다고


   그 말은 회칼로 인어를 자르기 전
   몸통 안쪽엔 유선형의 빛, 가시 사이 퍼져 나가는 잔향
   태초에 탄생한 부모에게서 온 파동이나, 먼바다를 회전하던 지느러미 입자와 가능성이
   정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나


   머리와 떨어지자마자
   그것의 육체는 통조림용 생선의 일부로 변해버렸다


   월급이 떨어진 어떤 날엔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잔뜩 쌓여야 할
   그들의 머리를 들고 집에 돌아올 때도 있었다


   속살이 부드럽고, 깊고
   버려진 것이기에
   여전히 대가리로만 남을 수 있던 그것들


   저녁 식탁
   그들의 머리는 매운탕 국물 속에 겹겹이 중첩되어 보이지 않았다
   숟가락에 뜬 진한 국물 어딘가에서
   내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대가리탕을 끓일 때
   넘친 양념이 그들의 눈을 감겨 줄 때도 있었고
   물결치고, 들썩이고, 뒤섞이며 머리통들은 한 그릇 요리로 재차 변해 가고 있었고

 

 

 

 

 

 

 

 

 

비숑식 체조 교실

 

 

 

 


   회원들은 말이 없었죠. 새우깡을 파는 동물병원 앞에서. 강아지 대신 목줄을 산책시키는 사람 앞에서.
   체조가 시작되기도 전에 등이 홀딱 젖어버린 선생. 그래요. 제 앞에서.


   내가 회원이라고 말해버렸나요?
   형이요. 삼각형을 완성하는 등 근육. 더듬으면 절벽이 되어 가는 대흉근. 그래, 당신 말이에요.
   그 몸은 체조에 적합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강력하다고요.
   굴곡을. 하나의 몸이 또 한 개의 곡선을 표현하는 이런 방식에 대해서요. 우리 체조의 완성은.
   둥그런 머리와 네 개의 다리. 비숑을 따라 하는 자세. 그런데 말이에요. 형은요.


   형은 체조 교실에 나왔습니다. 그것도 매일같이요. 내가 뒤에서 지켜보던 것을 알았을까. 어쩌나. 저 단단한 육체가. 체조를 거듭할수록 체조와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장딴지와 종아리가. 어깨와 복근이. 체조를 반복할수록 체조의 무언가를 왜곡하는 것처럼 비치는데.
   체조라는 것은 당신의 무엇이었을까요. 비숑식 체조라는 점에서.
   귀엽잖아요. 우리의 선율이. 표현해 내고자 하는 방식이.
   사랑스럽잖아요. 불가피하게 사랑에 빠졌다는 이 말인데요.


   어느 날 말이지요. 전신 거울에 비치는 당신의 눈이 날 향했다는 걸 알아채면서 말이지요. 반전의 서스펜스가 흐르기 시작되는데요. 나는 핥는다. 우리의 디스코를. 비숑을 끌어당겨 제 심장을 망치는 사람처럼. 무늬가 돋는 팔뚝.


   우리라는 것이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주고받는 시선 속에서.
   그 뒤로부터는 우리의 연애.
   후지필름에 브라운 치즈를 올리고 씹어 삼키면.
   동공에 인화되는 풍경.
   그러니까 형의 말을 경청했다기보다는. 그것은 모두 이제 나의 말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근육질의 한 남자가 체조할 때.
   타이트한 피트의 레깅스.
   비숑식 체조라고 할 때의 이 어감에 대해.
   당신이 욱여넣는 허벅지를 받아들이면서.
   곱씹게 되고 말았는데요. 벗어나고 싶었어. 벗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벗어나고 싶었어. 그런 형의 되뇜이.
   이젠 내가 했던 말처럼 느껴지는데.


   비숑을 심장 가까이 끌어당겨 제 결심을 다짐하는 사람.
   그러나 나는 다짐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벌써 하나의 다짐이 시작되고 말았지만.
   강아지는 물지 않아요. 흰색의 순한 등. 무는 건 언제나 사람들이죠. 다정한 척 가볍게.
   그러니 개의 머리를 풍선이라 믿는 일처럼. 숨을 불어넣으면 날아오를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주저하지 않아요. 물어버려요. 이빨을 내미는 순간 시작되는 체조입니다.


   어떻게 이별할 때 선물을 주지요? 흰색 강아지를 안겨 주다니.
   오늘의 아픔은 너무 귀엽잖아요?


   체조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과 젠더로서의 기질과 품격에 대해. 가르치는 방식과 꽃과 넘어섬과. 휴지 한 장의 세계와. 소나무와. 체조로서만 가능한 사랑의 이륙과. 수건 한 장을 둘이 돌려씀과. 이런 풍경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개처럼 짖어.
   라고 명령하는 자들에게 차라리 개처럼 물겠어요. 대답하는 시절과.


   이제는 비숑을 놓아 주며 다시 생각해 볼 시간. 비숑식 체조가 아니라 진짜 비숑을 안으며. 이 심장과 심장의.
   둥글고 흰 얼굴과 마름모 창백한 낯빛의 조우를.
   형의 체조는 거의 로봇의 체조에 가까워졌군요?
   비숑이라뇨.

 

 

 

 

 

 

 

 

 

 

 

 

변윤제
작가소개 / 변윤제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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