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양파 캐기
피재현
경북 안동시 남선면 원림리 양지마을 앞 들판에서 양파를 캐던 그 남자는 아프리카 말리에서 왔다고 했다
스물두 살이라고 손가락으로 말했다
‘한국말 몰라요’라고 했다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양파를 키운 검은 비닐을 벗기고 또 벗겼다
이 동네 청년인 양 갈라산을 향해 돌아서서 오줌을 눴다
잠시 말리공화국의 노을이 지는 저녁으로 날아가 밥 짓는 아내를 보고 온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기 집이 있다
저기 집이 있다
내가 스물아홉 살 때 아버지는 집을 샀다
아버지는 육십이었고 난생처음이었다
일천이백만 원을 주고 슬레이트 외딴집을 사서
마구간으로 쓰던 아래채를 허물었다
나는 오함마로 벽을 허물고 무너진 흙벽돌을 잘게 부쉈다
아버지가 아플 때마다 엄마는 그 일을 후회했다
마구간도 집인데 함부로 허물어서 귀신이 노했다고
잘못했다고 빌면서 객귀를 물리고 마구간이 있던
쪽으로 정지칼을 던졌다
아버지는 해마다 허물어지는 집에 굄대를 덧대며
그 집에서 21년을 살았다 엄마는 24년을 살았다
이제 빈집은 저 혼자 쓸쓸해져서 온 마당에
명아주를 키우고 정지방에 바람을 들였다
나는 가끔 그 집에 가서 개집이 있던 자리나
감나무가 감을 떨어트리곤 하던 뒤란에 앉아
동그라미를 그려 보곤 한다
어디든 동그라미를 그리면 얼굴이 생기고
아주 가끔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저기 집이 있다
내가 따로 집을 샀다 마흔여덟,
내 아들은 스물둘이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지 26년 만이었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오래도록 내가 산 집 마당을 서성이다가
해가 기울고서야 산 아래 외딴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그린 동그라미가 여럿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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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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