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불며 먹기 외 1편

[창작시]

 

 

호호 불며 먹기

 

 

하재연

 

 

 

 


   구워진 알을 테이블에 굴리면서


   뜨거운 돌 위에서 흙빛으로 굳어 가는
   투명한 액체를 떠올리는 한 사람과
   새의 잘린 부리가 쌓여 만드는
   황금빛 산의 모양을 생각하는 한 사람이


   마주 앉아 껍질을 알에서 분리해 낸다.


   소금을 찍지 않으면 비린 맛이 가시지 않아


   한 사람의 말에


   그런 건 그냥 관념일 뿐이야
   한 사람이 말한다.


   낮에는
   열한 살에 왕위에 올랐다는 사람의 무덤이 있는 숲을 걸었다.
   갓 태어난 아기 손가락 같은 새 잎을 펼쳐 올리는
   단풍잎의 그림자에
   한 사람과 한 사람은 같이 손을 포개었는데


   그런, 그냥, 뿐 같은 단어들은
   뭘 꾸며 주는 한국어이기에


   비린 맛은 아무런 맛도 아니게 되는 것일까?


   뜨거운 무언가를 입속에 넣고 삼키면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진다.


   껍질이
   벗겨지고 나면 새살이 돋을 것 같고 좋지만,


   찬물을 마셔도
   부드럽고 폭신한 마시멜로를 깨물어도
   아픈 건 똑같이 아프다.

 

 

 

 

 

 

 

 

 

종의 기원-과도기적 변종의 부재 혹은 희소성에 대하여

: 더 나아가 우리는, 이 투명한 층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매우 사소한 변이들을 예의주시하는 힘, 변이하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또는 어떤 정도로든 더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경향을 가진 것을 주의 깊게 선택하는 힘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종의 기원』 p.276)

 

 

 


   우산을 두 개 흙에 꽂아 놓은 것과 같이 생긴 식물을 화훼단지에서 구입한
   재이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만다.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지구가 달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했었지.


   지금까지 내가 끌어당겨진 시간의 힘들 때문에
   나는 나의 시간의 뒷면을 보지 못하고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 명제에 골몰하는 건
   재이의 오래된 습성이다.
   재이를 바라보다가 너는
   말라 있던 물관으로 실 줄기 같은 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현기증을 느낀다.


   재이의 얼굴에 빛의 물결이 일렁인다.
   벽에 붙어 있던 유리 촛대의 빛이 깜박, 흔들리며
   가짜 촛불의 그림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달의 뒷면이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풍경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뜻일까?


   그러니까 우산이 두 개 펼쳐진 식물을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만나지 않게 될 너와의 미래를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을 펼쳐 상상해 본다는 것은.


   화훼단지에서 심겨온 화분의 흙을 뒤적이며 벌레를 발견하고 난
   재이는 또다시 어떤 골몰에 빠지는데.


   곤충의 신경계에 침입하여 비가역적인 신경계 손상을 일으키는
   약을 뿌려 벌레를 죽이는 일과
   뿌리가 감긴 흙의 모든 부분을 식물에게서 분리해 내는 일의
   이점에 대하여
   가늠해 보는 것이며


   그런 재이를 바라보다가 너는

 

 

 

 

 

 

 

 

 

 

 

 

하재연
작가소개 / 하재연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우주적인 안녕』이 있다.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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