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P 외 1편

[창작시]

 

 

간병인 P

 

 

이원복

 

 

 

 


   P에게 맡겨진 것은 한 가족의 과거사다
   이미 몇 세대의 가족사를 꿰뚫고 있는 P는
   오늘도 노파의 가슴 속 끓는 가래를 제거하며
   침착하게 노파의 갈퀴 같은 두 손을 억세게 붙잡아 놓는다
   병풍처럼 둘러친 병실 커튼 사이 늙은 기침소리가
   노파의 처진 맥박과 같이 침대에 누워 있다


   명절 때 노파를 찾아올 가족과 찾아오지 않을 가족들의 속내를
   이미 알고 있을 P는 노파가 삶에 대한 마지막 의지를 놓치지 않도록
   노파의 희미한 기억 속 잊혀 가는 가족들의 비화와
   채무 관계 하나하나를 노파 옆에서 천천히 나열한다
   마치 장례식 때 읽어 내려가야 할 하나의 연보(年譜)를 정리하듯 비장하다
   돌아누운 노파의 파리한 몸에 붙은 욕창처럼
   떼어내어야 할 한 덩어리의 가혹한 가족사가
   오늘도 노파의 몸을 피가 나도록 긁고 있다
   P는 이제 홀로 버려진 노파의 가혹한 가족사의 마지막 증인으로
   노파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처럼 노파의 창백한 장기에 달라붙어 있는
   다음 명절 때 찾아올 가족들의 이름을
   천천히 되뇌며 P는
   오늘도 노파의 냄새 나는 몸뚱이를 씻겨 준다

 

 

 

 

 

 

 

 

 

 

 

분가(分家)

 

 

 

 


   빚쟁이를 피해 달아나듯 집을 떠났다
   아직 우리의 온기가 남은 방에 박힌 몇 개의 못에
   우리가 걸어 두고 나온 목소리들
   그날 밤 어머니는 홀로 빈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못에 걸리셨다


   한 집에서 두 집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한 집에서 또 다른 한 집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내가 버린 감당 못 할 무게의 겨울 외투들은
   어머니의 남은 겨울을 덮어 주었고
   그렇게 나는 거실 한구석 빈 옷걸이가 되었다


   안방 빛바랜 벽지를 베어 물고 있던 우리의 그림자들이
   어머니의 엎드린 등을 쓰다듬자
   내 몸 안에 낯선 방 하나가 새로 생겼고
   점점 다른 하나의 집으로 확장되어 갔다
   나는 베란다에 버려진 빨래건조대처럼
   좁은 방에 두고 온 어머니를 오래 지켜보고 있다


   또 다른 한 집이 되어
   주민등록등본 순서대로 누워
   첫 밤을 지내며
   몇 십 년 후 다가올 또 다른 분가를
   걱정한다

 

 

 

 

 

 

 

 

 

 

 

 

이원복
작가소개 / 이원복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리에종』.

 

   《문장웹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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