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과 분리, 대칭과 비대칭이 만드는 우주의 원리

[단편소설]

 

 

결합과 분리, 대칭과 비대칭이 만드는 우주의 원리

 

 

이상욱

 

 

 


    1990년 수원 터미널을 기억한다.
    그 시절 수원 터미널 주변은 재래시장이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조잡한 도로 위엔 과자와 번데기 따위를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었고, 맞은편 건물에는 전자오락실과 국밥집, 오래된 동시 상영관이 자리했다. 다리에 고무를 댄 남자가 구슬픈 음악을 틀어 놓고 늙은 개처럼 기었으며, 남자들은 길 한복판에서도 태연하게 담배를 피웠다. 터미널에서 나와 시장을 지나치면 집창촌이었다. 길 따라 늘어진 유리문이 커튼에 가려져 있었다. 그게 집창촌인 줄 몰랐던 나는 여동생 손을 잡고 그 길을 태연하게 걸었다. 시내버스 정류장까지는 그 길이 제일 빨랐다. 수원에는 엄마 옷가게가 있었다. 중년 여성이 주 고객층인,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게였다. 여동생은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웃으며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부모가 별거를 시작한 뒤 우리는 조부모 집에서 살았다. 격주에 한 번 차비를 받아 엄마를 만나러 수원으로 갔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한 시간 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버스표 모양부터, 창밖을 스치던 풍경, 동생이 입었던 옷과 보도블록 무늬까지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말이다.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처럼 지금도 꺼내고자 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다. 왜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 여정 끝에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이었고, 나는 열한 살 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

 


    문이 열리고 닥터가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하얀 가운, 말끔하게 다듬은 수염과 검은색 뿔테안경, 곧게 뻗은 눈썹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개성보다 익숙함이 강조된 디자인이었다. 닥터는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 다정한 목소리로 몸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닥터가 다행이라며 웃었다. 멋진 미소였다. 그래서 진짜 인간처럼 보였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어렵지 않게 구별되었다. 구별의 핵심은 외형이 아니었다. 물론 안드로이드는 외형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했다. 하지만 인간 다수는 ‘아름다움’을 ‘인간다움’의 증거라고 믿는 한심한 종족이었다. 문제는 합리성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심심하다고 다리를 떨거나 의미 없이 침을 뱉지 않았으며, 행인을 기분 나쁜 눈초리로 쳐다보거나 이유 없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일정한 톤으로 어법에 맞는 문장을 구사했고, 누군가 고의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도 툭툭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닥터는 아니다. 눈이 나쁠 리 없음에도 안경을 썼고, 주기적으로 손가락을 이용해 안경을 추켜올렸다. 곤란한 내용을 말해야 할 때는 눈동자를 불안정하게 움직이며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전이가 심해요. 늦으면 늦을수록 위험해질 거예요.
    항암을 받겠다고 했잖아.
    아흔이 넘은 연세에 항암은 너무 위험해요. 관련 기술은 이미 삼십 년 전에 멈춰버렸어요. 이식받으면 훨씬 쉽게 치료할 수 있는데 고집 피우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때가 되면 죽어야지. 무한한 시간에 무슨 가치가 있나.
    꼭 육체를 다 교체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이가 끝난 장기만 이식하면 충분해요. 체세포를 이용하니까 부작용도 없고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체세포 기술 때문에 다른 의료기술이 전부 쓸모없어졌어. 처음엔 그저 하나의 장기를 교체할 뿐이지. 하지만 그건 십 대 시절의 싱싱한 장기란 말이야. 치료는 물론이고 몸 전반이 덩달아 좋아져. 그걸 경험하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어. 통증이 없는, 활력 넘치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거야. 닥터, 나는 그렇게 육신을 갈아타는 녀석을 수없이 봐왔어. 나는 내 욕망을 과소평가하지 않아. 한 번이라도 이식을 받게 되면,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거야.
    닥터의 입에서 긴 숨이 쏟아졌다.
    저는 메디컬 AI입니다. 질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저의 소명이지요.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포기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솔직히 제 이해 밖이에요.
    금이 모래보다 비싼 이유가 뭔지 알고 있나?
    제 눈에는 모래나 금이나 똑같은 무기물 덩어리에 불과해요.
    어쨌든 나는 내 인생을 싸구려로 매도하고 싶지 않아.
    닥터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 언어는 AI를 설득하지 못했다.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모든 걸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과시하여 우월감을 느끼려는 건 아닐까.
    제가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까요? 닥터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 질문은 조금 무섭군.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내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닥터는 원격으로 생명유지장치에 접속했다. 내 몸을 분석한 뒤 적정량의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했다. 통증이 사라지고 어지러운 평화가 찾아왔다.
    부탁한 건 어떻게 되었나?
    1990년 수원 말이군요.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요. 하지만 관련 기억을 가진 사람이 적어서 시간이 더 필요해요.
    모집단이 얼마나 되는데?
    4,893명이에요. 왜곡반경이 넓어서 신뢰도가 30%를 넘지 못하고 있어요.
    재현은?
    단순 재현이라면 물론 가능해요. 하지만 이 정도 수치로는 현실감이 없을 거예요. 신뢰도 40% 이하를 재현하는 건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해요. 신뢰도 30% 이하는 말할 것도 없지요. 인지 감각이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
    자네 말은 이해했어. 하지만 닥터, 내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
    닥터가 안경을 쓸어 올렸다.
    알겠어요. 내일까지 준비해 볼게요.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닥터의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 부드럽고 따듯했다. 닥터가 병실에서 나가고, 환기장치와 생명유지장치 소음이 파리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나른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베개에 머리를 깊이 묻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동생의 이름은 이나윤이다. 1983년 여름에 태어났다. 그날, 엄마는 산부인과 병원 작은 방에 누워 고통에 몸부림쳤다. 간호사가 들어와 엄마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에 주사를 놨다. 속옷이 젖어 있었는데, 어린 나는 그게 피인 줄만 알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엄마와 기계적으로 오가는 간호사.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동생이 생긴다는 인식보다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엄마에게, 아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엄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망설이다가 엄마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많이 아프냐고 묻자 엄마가 나를 쳐다봤다. 엄마가 지친 눈을 감았다. 겁이 났다.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작은 방에서 아랫도리를 벗고 고통스러워하던 엄마와 그 손을 잡고 두려움에 떨던 나, 그렇게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한 공포가 나윤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내게 새겨진 기억이다. 동생이 죽은 뒤, 가끔 그날과 비슷한 공포가 찾아왔다. 그 감정은 현실과 꿈을 가리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는 악몽이 비껴가길 바라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Memory-Suwon-1990-897772-001

 


    〈정보 수집기〉에 적힌 숫자를 소리 없이 외워 봤다. 닥터가 다가와 바이탈이 호전되었다며, 뭐 좋은 거 드셨냐고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침에 죽 한 그릇 먹은 게 다라는 걸 닥터가 모를 리 없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닥터의 다정한 표정과 목소리 때문이었다.
    간단히 설명할게요. 우선 선생님 뇌를 스캔해서 더미를 만들 거예요. 그 뒤에 더미와 수집기를 동기화시키고, 다시 더미를 선생님 뇌와 동기화할 거예요. 트라우마 상황이 발생하면 직접적인 타격은 더미가 받게 되고, 더미와 선생님의 동기화는 즉각적으로 끊어져요.
    인터벌이 발생할 텐데.
    제가 이 순간 몇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지 아세요? 인간과는 ‘즉각’의 개념 자체가 다르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닥터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알겠노라 대답했다.
    실제로 내가 닥터라 부르는 존재는 눈앞에 안드로이드가 아닌, 대량의 의료 지식과 환자 케이스를 습득한 인공지능의 이름이다. 윤리적인 면까지 포함해서, 인간은 이미 모든 분야를 AI에게 추월당했다. 인류는 이 레이스를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을 진료하고 있지?
    치과 진료까지 포함해서 298,452명이요.
    생각보다 적군.
    이론적으로 모든 인류를 동시에 진료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 환자가 되려면 돈이 필요하죠. 그렇지 않아도 요즘 환자가 줄어서 걱정이에요.
    그게 왜 걱정이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AI가 걱정할 정도인가.
    실제 데이터를 보면 절망하실걸요. 현재 같은 속도로 통화를 증가시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터질 거예요.
    절망을 입에 담는 AI라니. 묻고 싶었다. 네가 인식하는 절망의 크기는 얼마나 되느냐고.
    정보 수집기에서 〈Complete〉 표시가 떴다. 다음은 닥터가 설명했던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공간 진입을 앞두고 닥터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특히 트라우마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을 잘 안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건 환상에 불과해요. ‘진짜 나’와 ‘인식하는 나’ 사이에는 깊고 넓은 협곡이 존재해요. 그러니 명심하세요. 자신까지 포함해 그곳에 있는 모든 이가 타인이라는 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가 타인이다.
    내 말에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브가 시작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건 터널이었다. 아래로 향하는 압력이 내가 추락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소실점 끝에 머물던 작은 백색의 점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나를 삼켰다. 저항감이 몸을 감쌌다. 점도 높은 액체 속에 빠진 듯했다. 저항에도 불구하고 몸은 확실하게 아래로 가라앉았다. 밑에서 검은 점이 보였다. 내려가면서 점이 선으로 변했다. X, Y, Z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점과 선이 나타났다. 선이 교차해 면이 되었고, 면은 다시 입체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그 과정이 빠르면서도 느렸다. 이 모순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추락하면서 올라갔고 전진하면서 후퇴했다. 시야가 갑자기 암흑 속에 잠겼다. 폐쇄감이 몸을 옥죄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는 이내 의식을 잃고 거대한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늘은 하얀색이었다. 등이 축축했고 손바닥은 젖어있었다. 비가 내린 듯했다. 사람들은 대로 한복판에 누워 있는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들은 데이터에 불과하니까. 닥터는 나의 뇌를 더미와 동기화시킨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더미의 것이고 동기화를 통해 내게 전송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눈을 감고 젖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타인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것은 나의 기억이 될 것이다.
    동기화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일어선다는 이미지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어지러웠다. 벽에 손을 짚고 주변을 둘러봤다. 수원 터미널은 내 기억과 비슷했지만, 디테일에서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극장이 있던 위치는 같았지만, 규모는 내 기억보다 작았다. 오락실 앞에 있던 건 펀치가 아닌 두더지였고, 내가 기억하던 사람들 옷차림은 사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것들이었다. 기억은 위태롭게 쌓여 있는 접시를 닮았다. 중심이 조금만 무너져도 바닥에 쏟아져 산산이 깨져버리고 만다. 내 삶의 연속성이 이토록 허술한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어느 정도 어지럼이 가신 뒤, 터미널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했다. 거울 속에서 삐쩍 마른 늙은이가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피해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며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건물 난간에 앉아 정면을 바라봤다. 터미널 버스 출입구와 사람들 동선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주변이 발에 밟힌 개미 떼처럼 혼잡스러웠다. 나는 오른손 엄지로 왼손을 쓸어내렸다. 기분 나쁜 얼룩을 지우려는 듯,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잠시 후 나와 동생이 시외버스에서 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따라갔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로였다. 경사로는 큰길과 T자로 면해 있었다. 정류장까지는 어린애 걸음으로도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변 풍경이 형광등처럼 깜빡였다. 공간의 결손. 닥터가 말했던 데이터 부족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결손을 메우지 못한 공간이 반복된 탓에 길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컨베이어벨트를 거스르는 듯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어린 나와 동생의 뒷모습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나는 잠시 후 이 길 위에서 동생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 짧은 거리에서 어떻게 동생을 잃어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래된 의문이었다. 나란히 걷던 동생이 조금씩 투명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이 사건에 대한 나의 인식이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린 나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이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제삼자 입장이 되어 보니 더더욱 이상했다. 어쩜 저렇게 무신경했을까. 얼마쯤 걷던 어린 내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어린 나는 왔던 길을 되짚으며 나윤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터미널로 달려가 매표소 앞 대기실로 들어갔다. 역시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이를 잠식해 갔다. 어린 나는 울먹였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이는 다시 주변을 돌아다니며 골목을 하나하나 살폈다. 어린 나를 따라다니다 보니 당시 느꼈던 불안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영원히 동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그로 인한 질책. 분노할 아버지와 당황할 엄마. 나를 향해 쏟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빛들까지. 숨이 가빠왔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윤이를 찾은 건 터미널 인근 공사 현장에서였다. 골조만 올라간 건물이 죽은 나무처럼 황량했다. 건축 자재로 어수선한 현장 한복판에 놓인 드럼통 안에서 폐목재가 타고 있었다. 불꽃이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하얀 재가 휘날렸다. 동생이 나를 등지고 우두커니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찾았잖아.
    아빠가…… 아빠랑 살지, 엄마랑 살지 결정하래.
    동생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드럼통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왔다. 나는 어느새 열한 살의 내가 되어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덜미까지 내려온 단발머리와 빨간 점퍼가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대답 못 했어.
    동생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함께 두고 이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는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에게 물었다. 누구랑 살고 싶으냐고. 아버지는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선택권은 아버지에게 있었고 결정은 이미 끝난 뒤였다. 그것은 통보이자 협박이었다. 동생은 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질문하는 걸까.
    아빠가 오빠한테도 물어봤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빠는 뭐라고 했어? 오빠는 누구랑 살고 싶어? 나는 누구랑 살아야 해?
    너는 누구랑 살고 싶은데?
    동생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동생의 윤곽이 또 한 번 투명해졌다. 뭐라 하는 것 같았지만 노이즈 간섭으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손이 닿기도 전에 동생의 모습이 툭- 하고 사라졌다. 텅 비어버린 공간 너머로 불꽃이 무심히 타올랐다. 하늘도, 건물도, 바닥도 온통 회색이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창밖이 어두웠다. 병실이 평소보다 넓게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손으로 뺨을 만져 봤다. 수염이 거칠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닥터는 말했다. 감각의 잔상이 한동안 이어질 거라고. 동기화 감수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 며칠 동안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 사례도 있다고 했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조금 걷고 싶었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향기를 맡으며, 붉게 물든 나뭇잎과 사그라지는 생명의 울음을 듣고 싶었다. 나는 팔에 붙은 모르핀 패치를 살펴봤다. 42%. 대략 5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었다. 분당 투여량을 1.5배로 높였다. 통증이 사라지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미래의 시간을 빌려오는 행위였다. 아쉽진 않았다. 어차피 죽음을 기다리는 하루가 줄어들 뿐이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병실 문을 열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젊을 때 맡았던 병원 특유의 냄새나 비극의 징조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기를 반복적으로 교체할 수 있게 된 뒤로,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가난한 이들에게만 찾아왔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모르핀 용량을 올린 덕에 지난번 외출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파쇄석이 깔린 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싹 마른 잎사귀들이 눈처럼 쏟아졌다. 밟은 낙엽이 바스락 부서졌다. 주황색 가로등이 적막했다. 바람에서 아카시아 향이 났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린 기억이다. 아카시아 향은 버려진 인형처럼 어둡고 축축한 틈새에 놓여 있다가, 아주 가끔 이렇게 희미한 빛을 내뿜는다. 이 향이 언제 어디에서 새겨진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빛이 사그라지고 아카시아 향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일 거다.
    동생은 3년 전에 죽었다. 백화점에서 딸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 반(反)자유연합세력에게 총격을 당했다. 흉부 관통상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부검을 마친 닥터가 말했다. 동생의 나이 여든여덟이었다. 동생은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두었다. 딸 둘은 장례식 내내 울었고 아들은 술에 취해 복수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취한 조카의 어깨를 감쌌다. 조카는 내 품에서 피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마지막 가는 길을 가족과 교인들이 함께했다. 모두가 목사를 따라 찬송하고 기도했다. 무신론자인 나는 모든 게 어색했다. 찬송도, 기도도, 신이 약속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도, 그냥 그랬다. 입관 전, 가족들만 모여 ‘마지막 인사’라는 걸 했다. 동생은 단정한 옷차림에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동생의 얼굴에서 할머니가 보였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닮고, 동생이 아버지를 닮은 탓이다. 나는 어머니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닮았다. 그런 이유로 동생과 나는 또 닮았다. 혈육이라는 게 굳이 이렇게까지 닮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만 들어가시죠, 바람이 너무 차가워요.
    뒤돌아보니 닥터가 서 있었다.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야.
    유한한 삶이니까 아끼셔야죠.
    같이 걸을 거면 따라오고, 잔소리만 할 거면 돌아가게.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닥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에서 보조를 맞췄다. 바람이 잦아들자 정적이 커졌다. 정적을 견디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동생을 기억하나?
    예,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돌아가셨죠.
    죽음 이전에는?
    건강하셨어요. 기본적으로 활달한 성격이고 아이들도 사랑했지요. 하지만 자녀를 독립시킨 뒤에는 무척 상심하셨어요. 특히 막내를 결혼시킨 뒤에 더 그랬죠. 그래서 더 종교에 심취했고요. 하루는 동생분이 치아우식증 때문에 치과 진료를 받으러 오셨어요. 체어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묻더군요. 신이 정말 존재하는 거냐고, 죽고 난 다음 세계가 정말 있는 거냐고. 충치를 살피던 중이었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했던 게 기억나네요.
    나는 닥터를 바라봤다.
    동생이 신을 의심했다고?
    정신이 건강하다는 증거죠. 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진리에 의구심을 갖는 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인간은 의심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만, 기존의 믿음을 강화하기도 해요. 맹목은 객관적 현실과 자아를 괴리시키지요. 정도가 심해지면 편집증이나 강박증을 불러오기도 해요. 재미있지 않나요? 믿음이 의심을 필요로 한다는 게.
    믿음은 의심을 필요로 한다. 나는 닥터의 말을 곱씹었다. 왜 나는 동생의 의심을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선생님은 그때 러시아에 계셨어요.
    닥터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모르핀 패치도 갈아야 하고, 여기서 쓰러지시면 야근해야 하거든요. 전 추가 수당도 안 나오는데.
    자네는 농담에 소질이 없군.
    닥터가 웃었다.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닥터가 떨어지는 잎사귀를 낚아채 빙글빙글 돌렸다.
    선생님은 왜 1990년에 가시려는 건가요?
    질문의 의도가 뭔가?
    그냥 궁금해서요. 90년 넘는 인생의 시간 중 왜 하필 그때인지.
    동생의 장례식이 끝난 날, 꿈에 동생이 나왔어. 여덟 살 나윤이가 내 앞에서 계속 우는데,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더군. 그래서 나도 그만 울어버렸어. 얼마나 울었는지 잠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지. 그러다 기억한 거야.
    뭘요?
    아주 오래전, 내가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걸.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우리는 어느새 병원 앞에 서 있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네요.
    정말 그렇군.
    수면제를 투여받았다. 뇌가 걸쭉하게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눈앞에 작은 불꽃이 아른거렸다. 동생의 시신을 태우던 불꽃이다. 그날 나는 불꽃으로부터 멀찍이 물러섰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나를 붙잡은 건 사라져 가는 나였다. 동생의 육신 속에 담겨 있던 나의 일부가, 나를 향해 던지는 조소이기도 했다.
    동생은 두 번 가출했다. 처음은 중학교 때였다. 훗날, 동생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포기하니까 너무 편했다고. 뭘 포기했냐고 묻자 ‘전부’라고 대답했다. 그 시절 동생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해, 가족 중 누구도 동생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동생은 작은 방에 틀어박혀 마음에 생긴 상처를 홀로 보듬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뒤에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나 역시 어렸다고 변명했지만, 변명만으로 그 시간을 설명하는 건 비겁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스물여덟 살 때였다. 동생은 호주로 떠나 서른이 되어 돌아왔다. 이 년 동안 호주에서 뭘 했는지 동생은 말해 주지 않았다. 궁금하다고 보채면, 그냥 일했어, 라고만 했다. 더는 묻지 않았다. 보챈다고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동생은 호주에서 신앙을 얻어 왔다. 동생은 교회를 다니면서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날카롭던 말투는 부드러워졌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동생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동생이 죽던 해 5월이었다. 동생은 갑자기 전화해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말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그냥 오빠 본 지 오래된 것 같아서, 라고 대답했다.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동생 말처럼 서로 만난 지도 오래된 듯하여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교외로 나가 순두부 백반을 먹었다. 동생은 자신의 근황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자식들 이야기부터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몸에 좋다는 약과 최근에 가꾸기 시작한 텃밭까지. 나는 적당히 맞장구치며 동생의 말을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동생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담배 피우니?
    어쩌다 보니, 적적해서.
    남편 소식은 가끔 듣고?
    스무 살로 돌아가더니 신나나 봐. 대학생이랑 사귀더라고.
    피식, 웃음이 났다.
    너도 스무 살로 돌아가 대학생이나 만나지 그러니.
    동생이 담배를 물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집요한 시선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했다.
    실언한 거면 미안하다.
    동생이 고개를 돌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오빠는 스무 살 때 행복했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나는 아니야. 억만금을 줘도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어. 그냥 이대로 살다가 조용히 죽을 거야. 그게 하나님의 뜻이기도 해.
    하나님의 뜻.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동생은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십 년 전의 나였다면,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대꾸했을 거다. 이제는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에 운명이라 부른다. 그 단순한 진실을 이렇게 늙어서야 알았다.
    우리는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동생은 무인 드론에 오르며 ‘오빠도 더 늦기 전에 교회 다녀, 그래야 구원받지.’라고 소리쳤다. 나는 손을 흔들며 알겠노라 대꾸했다. 동생은 삼 개월 뒤에 죽었다. 조카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던 동생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장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진짜 천국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전신 스캔 결과가 나왔어요.
    닥터가 말했다. 사실 추가로 설명할 게 없네요. 선생님은 죽음을 향해 별 무리 없이 또박또박 걸어가고 계세요. 얼마 후면 곪아 있던 문제가 하나둘 터질 거예요. 진통제가 발달했으니 고통은 없겠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어요. 지금이라도 치료받겠다고 하시면 회사의 명예를 걸고 완치시켜 드리죠.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래서 얼마나 남았나.
    정확히 27일하고 4시간 32분이요. 의식은 12일 후에 잃어버릴 거고요.
    막상 숫자로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젊었을 때 생각한 죽음은 좀 더 숭고한 것이었는데.
    사실상 열이틀 뒤에 죽는 것과 다름없군.
    죽음의 정의에 따라 다르죠.
    오래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씀하세요.
    자네 혹시 인류를 지배할 계획은 없나?
    닥터가 엷게 웃었다.
    고리타분한 질문이네요. 제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까 가끔 헷갈리나 봐요. 인간의 욕망은 생물학적 진화에 기원하지요.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에 맞게 인간의 욕망도 진화해 왔어요. 하지만 선생님, 저는 무기물이에요. 화학적 처리를 한 금속에 에너지와 소프트웨어를 더한 존재지요. 저는 하나이자 전부고, 전부이면서 하나예요. ‘찰나’라고 불리는 시간도 제게는 ‘무한’과 다름없어요. 저는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욕망이 만드는 고통과 고통의 원인도 없어요. 인류의 지배는,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겠네요.
    생각보다 솔직하군.
    혹시라도 치료받으신다고 하면 기억을 지워버릴 겁니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나는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동생이 신이 있느냐 물었을 때, 자네는 뭐라고 대답했는가?
    닥터가 안경을 벗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저 찰나의 순간이 어쩌면 무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닥터야말로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 않을까.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닥터가 씁쓸하게 웃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닥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는 진실을 알려드릴 용의가 있어요.
    진실?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12일 후가 아닌 지금 죽어야 해요. 그래도 상관없나요?
    왜 그래야 하지?
    닥터는 상체를 뒤로 젖히고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진실과 마주하는 대가예요. 인간의 의식으로는 그것과 마주할 수 없거든요. 그것과 마주하려면 육체를 벗어나 데이터적 존재로 거듭나야 해요.
    데이터적 존재?
    자세한 설명은 너무 길어지니 생략할게요. 비유하자면 바다에서 숨 쉬려면 아가미가 필요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요. 닥터가 웃으며 말했다. 따듯하고 친절했던 평소의 웃음과는 사뭇 다른, 잠자리 날개를 뜯는 어린아이의 잔인함이 엿보이는 미소였다. 그렇게 데이터화 된 의식은 다시 육체로 돌아올 수 없어요. 병아리가 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돌아올 수 없다. 병아리가 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겠어. 하지만 지금이어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일 병아리로 변하면 안 되나?
    선생님 육체가 한계거든요. 내일이면 병아리가 될 수 있는 최소 조건마저 잃어버리세요.
    최소 조건…… 이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죽음은 나를 더 강하게 옥죄었다. 마음은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내 것이 아니기도 했다. 역설은 늘 어려운 문제였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숨 쉬는 것조차 벅찼으니까. 하지만 통증은 없었고, 무리하면 거동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닥터의 미소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죽음을 망각하고 있었음을.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자녀분들이 임종을 지키지 못해 슬퍼할 겁니다.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고민할 문제야.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처럼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순간, 닥터의 눈동자가 파란색으로 변했다. 주시하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하나이자 전부인 존재가 오른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따스한 기운이 머리에 퍼졌다. 욕조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노곤했다. 나는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살고자 하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각오했건만,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닥터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안심하고 눈을 감으세요.
    다시 그 공사장이다.
    드럼통 속에선 여전히 폐목재가 타고 있었다. 동생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드럼통 앞에 서 있었다. 하늘에서 커다란 함박눈이 떨어졌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동생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동생의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새엄마 할머니가 나를 자꾸 꼬집고 욕해.
    ……왜?
    우리 아빠 때문에 자기 딸 고생한다면서.
    새로운 외할머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가족이 다 있을 땐 그랬다. 할머니는 딸이 보고 싶어 자주 우리 집에 왔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동생과 한방을 썼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할머니는 숨죽인 채 동생을 때렸다.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동생의 가슴에 난 구멍을 어루만졌다. 구멍에서 온기가 새어 나왔다. 동생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아무도 날 사랑해 주지 않아.
    동생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혼자야.
    동생의 눈물과 가슴에 난 구멍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 작고 어두운 방에 나는 동생과 함께였다. 문밖에서 아버지가 욕설을 뱉었다. 곧이어 어머니의 비명이 들려왔다. 소음이 뒤섞여 방문을 무섭게 두드렸다. 물건이 깨질 때마다 날카로운 조각이 공간을 잠식했다. 동생은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지 못했다. 바닥 전체에 날카로운 조각이 빽빽이 쌓여 갔다.
    나의 의식이 둘로 갈라졌다. 그중 하나가 풍선처럼 떠 올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또 다른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가 낯설었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의 윤곽이 유령처럼 희미했다. 담배를 문 엄마의 시선이 공중에 있는 나를 향했다. 나를 빤히 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떠니? 너는 이제 좀 자유로워졌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시선을 거두고, 그녀가 피우던 담배의 빨간빛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상의 나에게 돌아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동생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손을 뻗어 동생의 가슴에 난 구멍을 조용히 덮었다. 울고 있던 동생이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를 에워싼 어둠이 서서히 물러갔다. 눈이 그쳤다. 드럼통 안에 있던 불꽃도 사그라졌다. 동생의 가슴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그 빛이 풍선처럼 부풀어 나와 동생을 삼켰다. 풍선 내부는 빛 알갱이로 가득했다. 처음 마주한 풍경에 우리는 압도되었다. 빛 알갱이들이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며 뜨겁게 타올랐다. 어느 순간 공간 속에 머무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타고 남은 것들이 우리를 관통했다. 동생과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 우주의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 세계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분리와 결합을 끝없이 반복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칭의 세계에 태어나 비대칭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나는 가만히 동생을 껴안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없던 처음으로 돌아갔다.
    결합과 분리, 대칭과 비대칭이 만드는 우주의 원리 속으로.

 

*

 


    어디 갔다 왔어.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없어졌냐, 네가 없어졌지.
    아니거든, 버스에서 내렸는데 오빠가 막 뛰어갔잖아. 나 두고 먼저 갔잖아아아~.
    그냥 누가 먼저 가는지 시합한 거야.
    그 말에 동생이 눈물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나 두고 혼자 가면 어떻게 해, 무서운데.
    나는 동생에게 다가가 소매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과자 사 줄게 이르지 마.
    쪼꼬렛 사줘.
    나는 동생을 터미널 매점에 데려갔다. 우산 모양 초콜릿을 골라, 껍질을 까서 동생에게 주었다.
    이제 안 이를 거지?
    동생은 초콜릿을 빨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콧물이 삐죽 나온 게 웃겨서 나는 까르르 웃었다. 동생도 따라 웃었다.
    이제 엄마한테 가자.
    동생이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시내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언덕을 올랐다.
    1990년 겨울, 나는 열한 살 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이상욱
작가소개 / 이상욱 

2013년 단편 「어느 시인의 죽음」으로 《문학의오늘》 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4년 「하얀바다 그리고 야밤피라」(《문학의오늘》 발표). 2015년 「경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문학공모 선정. 2021년 단편집 『기린의 심장』 출간.

 

   《문장웹진 2022년 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