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를 보관하는 법 외 1편

 

[신작시]

 

 

딸기를 보관하는 법

 

 

박세미

 

 

    딸기를 반으로 가르면
    하얀 촛불이 켜진다
    천사의 힘줄처럼
    타오르는
    단면
    중심에 눈부심을 가두는 일
    이 방식에는 강력한 슬픔이 있어
    보관하는 방법에 따라
    날씨, 운세, 기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딸기를 심으면 딸기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한겨울 손에 딸기 한 알을 쥐고 온종일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면. 또는,
    보석함에 딸기를 넣어두었다가 마침내 봄이 되어 뚜껑을 열어보았다면.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먹어버렸다면.

 

    어떤 슬픔이 더 소중한가

 

    자, 그럼 이제부터
    딸기 씨앗을 자르는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다

 

 

 

 

 

 

 

 

 

 

 

 

 

 

 

 

 

 

 

 

 

관찰자로서

 

 

    마주앉은 사람이 내게 끝없이 질문을 합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내가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뒤에 있는 사람이 내게 끝없이 용기를 줍니다 주먹을 쥘 때마다 내 두 눈이 감기는 줄도 모르고

 

    몰려드는 구경꾼들
    그들 한가운데 나는 속이 비치는
    동물
    그들은 각자 스케치북을 꺼내어 드로잉을 시작합니다

 

    이제 나는 관찰의 대상으로서 존재합니다
    해안가로 떠밀려온 돌고래로서
    죽은 새끼를 안은 채 영영 잠이 든 침팬지로서
    가끔 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드로잉만을 남겨두고 떠나갔는데, 나를 그린다면서 자신들을 그려놓았습니다 나는 잠시, 내가 선택한 것이 죽음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벽과 종이와 액자로서
    태어납니다 서로에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박세미 시인
작가소개 / 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 졸업. 2014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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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걷는법심리학도

https://www.youtube.com/watch?v=xaQAyN95PIM&t=4s

선생님 혹시 시를 이런식으로 홍보할 생각은 없으신가요?있다면 win -win하게 연락주십시오
010-7794-4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