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 외 1편

[창작시]

 

 

층간 소음

 

 

민구

 

 

 

 


   위층에 코끼리가 산다


   코끼리는 사막이나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데
   가족과 서식지를 잃고서 밀렵을 피해
   연희동으로 건너온 모양이다


   코끼리는 물과 먹이를 구하러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낮에도 걷고 밤에도 걷는 걸까


   코끼리 새끼와 싸우러 올라간 적이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았다


   멸종위기종이라도 월세를 감당하려면 일해야 한다
   통신요금도 내고 데이트 비용도 부담하고
   조직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그는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린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고 서성인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니까 과자를 주면 코로 받고
   화가 났을 땐 아카시아 나무를 다 뽑아버리며
   우연히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코로 사랑 고백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위층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드넓은 초원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쓸쓸하고 공허하다


   이럴 땐 코끼리 똥이라도 주워야지
   올라가서 따질 말을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

 

 

 

 

 

 

 

 

 

 

 

그릇

 

 

 

 


   내 그릇을 본 건 처음이었다


   청소하다가 우연히 꺼내본 그릇
   너무 낡아서 웃음이 나왔다
   내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원형이나 사각형은 아니었고
   강박 때문에 금이 갔으며
   군데군데 녹이 슬어서 보여주기 민망했다


   크림 컬러의 플레이팅 접시나
   바로크 엔틱 찻잔이 나왔더라면
   꿈을 더 크게 가질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 넉넉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릇은 종이 접시처럼 볼품없었다
   접히고 찢어져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주방을 정리하다가 그릇을 내놓았다
   이사할 때 가져온 밥공기도 있었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냄비도 있었다


   내 것을 함께 놔두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구겨진 그릇은 주머니에 넣거나
   급한 용무를 받아 적을 수 있었다


   떡이 되도록 술 마시고 돌아온 날
   세탁기에 돌릴 때도 있었다

 

 

 

 

 

 

 

 

 

 

 

 

작가소개 / 민구(閔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가 있다.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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