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로 가는 마음 외 1편

[창작시]

 

 

판교로 가는 마음

 

 

이근화

 

 

 

 


   판교로 가자고 그가 말했다
   옷을 차려 입고 서둘렀지만


   끊임없이 신발이 태어났다
   나의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발 아래
   그 아래
   더 아래
   나
   나의 신발
   판교


   판교로 가자고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냉동 인간처럼 그는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았는데
   먼 미래에 우뚝 솟은 판교


   아버지는 판교에 가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세 가지 말해주었다
   한 가지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판교를 중얼거리며
   아,
   무너지는 마음


   이것은 행운인가, 판교
   밀애인가, 판교
   배교일 뿐이야, 판교


   아이는 없었다
   고양이도 없었다
   주말도 소풍도 기차도 김밥도 달걀도 다 날아가고
   없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판교는 있는가
   그는 있는가


   그가 웃었다
   판교에 가자고
   거의 다 되었다고

 

 

 

 

 

 

 

 

 

 

 

그에 걸맞은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그 안에 내가 잠자고 있다
   그에 걸맞은
   옷을 벗고서
   눈을 입고서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그 안에 내가 웃고 있다
   그에 걸맞은
   찬 입술로
   주문을 외우며


   염소젖과
   소금을 상상하며
   발을 헛딛는 상상
   바퀴가 돌아가는 상상


   나는 살았네
   나는 살았네


   세상에는 없는 높이로 뛰었지
   땡그랑 땡그랑 바람은 무관심했지


   제자리로 다시 나의 집으로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너의 주문은 역겹다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살았다

 

 

 

 

 

 

 

 

 

 

 

 

작가소개 / 이근화(李謹華)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2006), 『우리들의 진화』(2009) 『차가운 잠』(2012)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2016),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2021) 등이 있음. 김준성문학상(2010), 현대문학상(2013), 오장환문학상(2018) 수상.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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