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그림찾기 외 1편

[창작시]

 

 

틀린그림찾기

 

 

여세실

 

 

 

 


   아이는 식탁보 끝을 잡아당긴다 식탁보를 잡아당길 때는 망설임이 없어야 해 숨을 들이마시고 힘껏 당겨야 해 식탁보가 걷히는 순간에 식탁 위에 얹어 있던 밥그릇은 요동치다가 제자리에 멈춘다 아이는 승자가 깃발을 흔들 듯 온몸에 식탁보를 휘두르고 박수를 친다


   나무는 흔들리고 사물은 바래간다 모서리는 뭉툭해지고 열매는 커지고 냄새는 퍼진다


   이 거리에는 얼마나 많은 식탁보가 숨어 있는 거야? 저 나무는 언제 초록 천을 거둬들이고 붉게 바뀌어 버린 거야? 미처 보지 못하는 순간에 바퀴는 도로의 속도를 휘감아 잡아당기는 거야?


   오렌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오렌지인 거야? 오렌지와 나는 얼마만큼 다른 거야? 저 간판 속 글자들은 사실 오렌지를 본 적 없대 만난 적 없는 것들끼리 짝꿍이 된대 악수를 한대 아이가 오렌지를 열어젖히고 오렌지 위로 쿵쾅거리며 나아갈 때


   신이 난다 신이 난다 신난다 신난다 아이는 발을 구른다 자기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몸만으로는 포옹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도


   영혼이 뭐게? 그건 몸 안에 찌그러져 있어 언제든 용수철처럼 뛰어나가 끝없이 늘어나며 너를 안을 준비가 되어있어


   갇혀 있는 것들은 도망가기 마련이에요 뛰어넘기 마련이에요
   문은 열리고 부서지고


   나는 도움을 주는 쪽이고 싶어
   모두가 자기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몸에 갇혀 있대도 나는 벗어날걸요? 매달릴걸요? 뛰어내릴걸요? 굴러갈걸요? 나는 오렌지를 먹을 수 있고 나는 오렌지를 쓸 줄 알고


   오렌지는 나를 먹지 않고도 내가 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되지 않고도 우리는 같이 언덕 위를 굴러갈 수 있는데


   혼자일 때 나는 내 몸을 실컷 만질 수 있다는 거지 몸에도 구멍이 있다 손가락은 갈라진다 머리카락은 끝없이 뻗어나가고 손톱은 자란다 아이는 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는다 손끝으로 발끝을 잡는다


   화살표를 안고 간다 길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다 손을 양쪽으로 뻗어 중심을 잡고 일자로 발을 내딛으며 방지턱 위를 걷는다 아이는 방향을 발명하기 시작한다 이쪽과 저쪽이 동시에 아이 앞으로 닥쳐온다 물병을 흔든다 물은 물병의 안쪽 벽면을 훑으며 흔들리고 있다 깊어진다 살은 튀어나온다 접힌다 옷 속을 물끄러미 보다가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뱃살을 잡고 만지작거린다


   햇볕은 확실하다 뚜렷하다 손바닥을 뻗는다 하품을 한다 숨이 온몸 가득 통과할 때 햇볕을 들이켜고 있다고


   햇볕을 꿀떡 불길을 폴짝


   아이는 자기 윗옷을 벌려 그 안에 이유를 잔뜩 모은다 모래가 흩어지는 이유 개미가 모래를 파고드는 이유


   물방울은 매달린다 매달리고 있는 건 힘이 세지 부풀고 있는 건 뜨겁지


   들어오세요 문을 열어드릴게요 같이 얘기를 해요
   아이는 화장실에서 한 시간째 오줌을 누고 있다

 

 

 

 

 

 

 

 

 

 

 

대장을 찾아서

 

 

 

 


   하나뿐인 가짜가 좋았다


   거리에 옷무더기가 쌓여 있다 헐값에 팔고 있는 금속 시계가 가판에 널브러져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청바지를 목에 둘러보고 옷소매에 묻은 얼룩을 문질러 보았다


   세탁을 한다고 지워질 게 아닌 걸, 소매를 오래 쥐고 있다가 흔들어보았다 처음 보는 색이었다 보라색에 가까웠다 그건 연한 것과 진한 것 사이


   너를 부르면 네가 돌아본다 옷감은 부들부들하다 옷걸이가 휘어있다 이 뜨개와 자수는 사람이 일일이 짠 것 같고, 너는 거의 사람이다 일부는 버리고 몇몇은 나누기도 하며


   매대에 있는 옷 중에 제일 이상한 옷
   옷 중의 대장


   내가 쓰지 않는 것과 네가 찾지 않는 것들이
   다시 쓰임을 찾아갈 때에도


   밑단이 짧은 셔츠, 콩단추가 달린 자켓
   이 거리의 상인들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홈이 페인 그릇과 유리들
   그 사이를 걸었다 그릇 위에 그릇이 쌓여 있었다


   반짝인다 이 그릇들을 차례로 쌓아놓았을 주인의 걸음걸이를 본다 제각기의 안목과


   이 그릇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이 코트는 곧 안감이 뜯어질 것 같다
   이 찻잔은 받침과 함께 버려졌으니 값어치가 더 나간다


   너는 짝이 없는 빛 위로 넘어진다 컵과 그릇들이 무너지고 깨지고
   내가 찾아 헤매던 게 바로 이런 순간이라고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 계속 열리는 중 쏟아지는 중


   아주 작은 이염을 알아보고
   평범한 옷에 새 단추를 다는 마음은
   단 한 벌뿐이라서


   어그러진 마음을 비밀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코위찬이라고 해도 다 같은 코위찬이 아니듯 이걸 입는다고 해서 내가 북유럽 부족의 일원처럼 보일까


   아니 너 엄청 더워보여


   이 옷은 주인이 필요 없습니다
   너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재채기를 멈추지 않는다

 

 

 

 

 

 

 

 

 

 

 

 

작가소개 / 여세실

2021. 6. 《현대문학》 신인추천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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