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순환

[단편소설]

 

 

내부순환

 

 

정지돈

 

 

 

    1. 


     몰덴커는 남아 있을 것이다. 전설의 컬트 소설 『모터맨Motorman』의 첫 문장이다. 『모터맨』은 1972년 출간됐지만, 곧 절판됐고 삼십 년간 망각 속을 떠돌았다. 작가인 데이비드 올David Ohle 역시 소설과 운명을 함께했다. 청탁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90년대 즈음에는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본인도 까먹을 지경이 된 것이다. 소설가로서 모든 희망을 버렸을 즈음, 데이비드 올은 뉴욕의 KGB라는 소그룹에서 연락을 받았다. 웬 어린놈이었는데 그가 전화를 받자 흥분해서 외쳐댔다. 진짜야, 진짜. 진짜 살아 있어.


    그들은 데이비드에게 뉴욕으로 와줄 수 있냐고 했다. 수년 동안 『모터맨』을 읽고 필사하고 사본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말이다.


    살아계신 줄 알았으면 진작 연락드릴 걸 그랬잖아요.


    데이비드는 막 설거지를 끝내고 창문 옆의 1인용 소파에 앉아 떨에 불을 붙이던 참이었다. 치익 소리를 내며 오렌지 불빛이 깜박였다.


    아직 안 죽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랴.


    데이비드 올은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다음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갔다. 12월이었고 존 F. 케네디 공항의 활주로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평생 중남부에 살았고 눈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빌어먹을. 존나 예쁘군. 품에 넣어 온 50㎖짜리 버번위스키를 마시며 데이비드가 중얼거렸다.

 


    호준은 데이비드 올이 자신의 미래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이제 더 이상 컬트 작가 같은 건 없다고 해도 못 들은 척했다. 그는 『모터맨』의 세계관을 모델 삼아 새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운동장도서관에서 했던 강연에서 호준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등단한 지 몇 년 안 된 젊은 작가였고 첫 책이 나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드문드문 북토크를 했지만, 도서관에서 하는 강연은 처음이었다.


    파트너인 M은 강연도 하고, 진짜 작가네, 라며 놀리듯 말했다. 나는 덤덤한 척 굴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치만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며칠에 걸쳐 자료도 준비하고 강연록도 짰으니까. 어떤 독자가 올까? 무슨 질문을 할까? 내 의도를 눈치 챘을까? 그런데 웬걸, 바깥보다 춥고 을씨년스런 강의실에는 행사를 준비한 사서를 포함해 총 세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모집 인원은 마흔 명이었다). 두 명의 독자는 장년의 남성이었는데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서는 오전에 갑자기 난방장치가 고장 났다고 했다. 온열기를 빌려 오긴 했는데 저걸론 부족하겠죠? 방에서나 쓸 법한 작은 온열기 두 개가 덩그러니 켜져 있었다. 두 분이니까 각각 가져다 쓰면 되겠네요. 내가 말했다. 사서가 반색을 표했다. 정말! 그러면 되겠네요. 그러나 코드를 꽂아야 하는 온열기라서 위치를 옮길 수 없었다. 두 명의 독자는 온열기를 흘깃 보고는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매고 말이다.


    강연을 시작할 즈음 두어 명의 사람이 더 왔다. 그러나 그중 한 사람은 앉아서 주위를 살피더니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무섭게 나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좀 움츠러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진 않았고(한 명이라면 가방 싸서 나가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같이 커피나 한잔하든가) 그냥 준비해 온 이야기를 중언부언했던 거 같다. 강의를 절반쯤 했을 때 호준이 들어왔다.


    호준은 제일 앞자리에 앉았고 나중에는 익숙해진 특유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강연을 들었다. 눈도 작고 안경도 썼지만, 그의 눈빛을 막을 순 없었다. M은 호준의 눈빛을 보면 한니발 렉터가 생각난다고 했다. 너무 다르잖아? 내가 말했지만, M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눈을 안 깜박여.


    강연이 끝나고 호준은 봉투에 든 원고를 건넸다. 지금이라면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줘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피드백을 받고 싶으면 글쓰기 센터나 워크숍을 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도 어리둥절할 때였고 호준도 그랬다. 미색 A4 용지에 빽빽이 인쇄된 소설이 있었다. 제목은 「다람쥐 우리」, 쓴 사람은 미치-미치. 호준은 수줍게 웃으며 미치-미치가 필명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 사람이 별 특이할 게 없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타이밍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미치 미치는 아닌 거 같아요, 라고 나는 시간이 꽤나 흐른 뒤 호준에게 말했다. 필명으로 쓰기엔 지나치게 튀는 이름이었다.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래서 얼마 전에 개명을 했다고 말이다. 개명이요? 호준은 본명을 미치 미치로 바꿨다고 했다.


    그 뒤로 미치 미치(구 호준)는 내가 하는 거의 모든 북토크와 강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은 없지만 말이다.

 


    미치 미치의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을 향해 느리게 전진하는 연속적인 메모들의 모음이었다. 시간편성주식회사의 성적 문란을 문제 삼았다가 “현실 온실”에 감금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어의 뜻만 겨우 해석했다고 할까. 다행인 건 M이 미치 미치와 그의 소설을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나와 M, 미치 미치는 북토크나 강연이 끝난 후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미치 미치는 토크 중간에 왔고 M은 토크가 끝난 뒤에 왔다. 두 사람 모두 토크에서 내가 한 얘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신간에도 관심 없었고. 그들이 관심 있는 종류의 작품은 훨씬 그럴듯한, 이를테면 하룬 파로키나 아서 자파 같은 작가의 작품이었다. 뭐, 나도 그들을 좋아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1년에 서너 번은 만났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미치 미치는 열대여섯 번 정도의 공모전에 떨어졌으며 M은 두 개의 직장을 관뒀다. 나는 글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꾸역꾸역 작가 생활을 이어 갔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재미도 오지게 없었다. 다른 일로 돈을 벌면서 혼자 즐길 글이나 쓰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치 미치가 전화를 걸어 M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M? 뭘, 그냥 M이죠.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질문의 의도를 종잡을 수 없었던 탓이다. 미치 미치는 잠시 망설이더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자신이 M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M을 만날 날만 기다려진다고, 북토크도 M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온다고 말이다.


    맙소사. M과 내가 파트너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았다. 그냥 보면 알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을 말했다. 괜히 분위기 어색해지지 않게, 짧고 간명하게 진실을 전달했다. M은 나와 만나는 사이다. 그렇지만 미치 미치가 원한다면 M에게 고백하는 건 자유다. 부끄럽다면 내가 대신 전달해 줄 수도 있다, 라고.


    핸드폰에서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잠시 후 미치 미치가 입을 열었다. 녹화 인격 딕시 플랫라인…… 네? 뭐라고요? 미치 미치는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새로 쓰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바이오 해커가 나오는 아프로퓨처리즘 계열의 유전공학 SF라나. 나는 잠자코 미치 미치의 이야기를 들었다. 충분히 당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곤경을 또는 민망함을 미치 미치가 어떻게 타개할지 조금 궁금해 하며 말이다. 동시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전화를 끊고 창문을 연 후 뛰어내리겠지. 여긴 2층이니까 죽진 않을 것이다…….


    M에겐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M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투였다. 본인의 치명적인 매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늘어놓았는데 그냥 못 들은 척했다. 미치 미치에게 연락이 오면 어떡할 거야? 만나 보고 생각해야지. M이 말했다. 폴리아모리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겠지만 미치 미치라면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치 미치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강연에도 오지 않았고 우리도 따로 연락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강연 따위는 그만두고 직장을 얻었다. 어느 벤처 기업의 콘텐츠 사업부였는데 여기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할 게 없을 것 같다. 강남으로 1년 동안 출근하면서 얻은 거라곤 원형탈모밖에 없으니 말이다.


    올해 겨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치 미치에게 연락이 왔다. 내부순환로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새 소설을 쓰고 있다며 시간이 되면 M과 함께 들르라는 거였다. 홍제천변도 같이 걷고 말이다. 생뚱맞은 제안이었지만 좋다고 했다. 아마 그때 데이비드 올이라는 이름과 『모터맨』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미치 미치는 새 소설 때문에 뉴욕에 갔다 왔다고 말했다. 거기서 누굴 만난 지 아세요? 누구요? 한니발 렉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미치 미치가 말했다. 진짜 작가를 만났어요.

 

 

    2. 


    1951년 9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윌리엄 버로스는 아내 조앤 볼머를 star.380 권총으로 쐈다. 파티 중에 있었던 일로 만취 상태의 두 사람은 윌리엄 텔 게임 중이었다고 한다. 머리 위에 뭔가 올려놓고 총으로 맞히는 게임이었다. 데이비드 올은 조앤 볼머가 윌리엄 텔의 아들처럼 사과를 얹어 놓았다고 알고 있었다. 윌리엄 버로스는 총을 쏜 후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베어 물었고.


    실제로는 사과가 아니라 위스키 잔이었다. 두 사람이 직전까지 마시던 필리핀산 진인 지네브라 산 미구엘이 들어 있었다. 버로스는 총기 마니아였고 취미가 사격이었으며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지만 총알은 위스키 잔이 아닌 조앤의 이마를 관통했다.


    조앤 볼머의 죽음이 버로스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르지만 버로스의 삶은 이미 시궁창이었다. 그는 마약 소지죄로 쫓기는 약쟁이였고 결혼 생활은 파탄난 지 오래였다. 사건 직후 체포되었으나 과실치사로 풀려났고 약에 취해 모로코와 파리, 스페인 등을 떠돌며 소설을 썼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 소설이 여기저기서 출간되긴 했다 – 뉴욕으로 귀환했을 땐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의 신화에는 아내를 총으로 쏜 구제불능 약쟁이 예술가라는 그림자가 떠돌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덕에 비극성과 아이러니가 더해졌다. 버로스가 이 사건을 은근히 이용해 명성을 쌓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세간의 소문에 대꾸하지 않았고 재킷 주머니에 총을 넣고 다니는 그에게 직접 묻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1985년판 『퀴어』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전적으로 조앤의 죽음 덕분이라는 소름 끼치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더 깊이 생각하면, 그 사건이 내 글쓰기에 동기가 되고 내 글쓰기를 발전시켜 왔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나를 사로잡은 유령의 끝없는 위협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 사로잡힘에서, 조종에서 벗어날 끝없는 필요와 함께 살고 있다. 조앤의 죽음은 나를 침략자, ‘사악한 기운’과 만나도록 이끌었으며 평생토록 발버둥 치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여정을 적어서 내보이는 것 말고 달리 아무 선택도 할 수 없었다.


    다수의 전기 작가들은 이 부분을 예로 들며 윌리엄 버로스의 글쓰기 근원에 조앤 볼머의 죽음이 있다고 썼다. 평생 괴로워했고 죽음보다 더한 트라우마에 맞서 글을 썼다고. 반면 릴라 지넬레Leela Ginelle는 비치미디어의 지면을 빌려 이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백한 가정폭력이자 살인이며 평론가, 동료 작가, 비트닉, 버로스의 팬, 문학사가들은 살인의 2차 가해자이자 동조자다. 문학의 역사는 2차 가해의 역사이며 병과 고뇌의 결과로서의 폭력, 숙명적이고 비극적인 후광에 매혹된 매 맞는 아내의 삶이었다고. 윌리엄 버로스는 죽기 1년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라도 내가 뭔가에 사로잡혀서 조앤을 쐈다고 한 말을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걸. 말도 안 되는 소리. 완전 개소리. 그가 한 짓이야. Tell any feminist I shot Joan in a state of possession, and she will scream: ‘Nonsense! No such thing. HE did it.


    데이비드는 사건을 둘러싼 의견 충돌에는 특별한 입장이 없었다. 비록 『정키』와 『퀴어』, 컷업 3부작이 『모터맨』에 영향을 줬지만, 개인사에 대해선 알고 싶지 않았다. 한두 세대 위인 비트 작가들과 그의 삶은 판이하게 달랐다. 데이비드는 그냥 문학을 전공하고 글쓰기 센터에서 작법을 가르치는 샌님이었다. 제3세계에서 약 빨고 총질하는 망나니들하고 전혀 달랐고 금기나 모험과도 거리가 멀었다. 『모터맨』도 캔자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쓴 거였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온순해졌고 작가들은 출판 산업과 아카데미 주변을 맴돌며 계급상승의 기회나 엿보는 겁에 질린 중산층 애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작품이 지루하고 현실과 유리되었다나.


    어쩌라고?


    데이비드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의 소설은 친구들 말고는 아무도 보지 않았다. 사실 친구들도 볼까 싶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동창인 게리 올슨이 술을 진탕 마시고 전화를 걸어 말했다.


    모터맨은 흑인 안드로이드다!


    뭔 소리야.


    왜, 『멈보 점보』의 주인공 있잖아.


    파파 라바스?


    그래. 잠깐만 기다려.


    게리 올슨이 전화를 끊었다. 데이비드는 잠시 수화기 옆에 서 있었다. 인생이 꼴같잖다고 생각하면서. 곧 다시 전화가 왔다. 따르릉.


    여보세요.


    모터맨은 파파 라바스다!!


    …….


    근데 멈보 점보가 무슨 뜻이야?


    혼란스럽고 의미 없는 말이라고, 서아프리카에서 유래된 단언데…….


    게리 올슨은 데이비드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숨이 넘어가도록 웃기 시작했다. 주변에 누군가 있는 모양이었다. 키득거리며 뭐라고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모양이야, 호모 아니야? 어쩌고저쩌고. 데이비드는 웃지 않았다. 전혀,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게리 올슨이 이제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플레이보이 출신 미녀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걸작을 쓴 소설가가 친구라는 사실이 언제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데이비드는 구역질이 났지만 잠자코 있었다.


    멈보 점보!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는 윌리엄 버로스의 아들인 윌리엄 버로스 주니어의 유작 『프라크리티 교차로 Prakriti Junction』를 편집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한 사람은 버로스의 비서이자 유령작가인 스티븐 로우로 그는 자신이 버로스에게 『모터맨』을 추천했다며 생색을 냈다. 버로스 주니어의 유령작가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았다며 말이다.


    그즈음 데이비드는 소설 쓰기를 완전히 중단한 상태였다. 처음 겪는 작가의 블록이었다. 낮에는 수강생들에게 존 바스의 『고갈의 문학』이나 도널드 바셀미의 작품을 가르치고 집에 와서는 타자기 앞에 멍하니 앉아 대마초나 피워댔다. 이 타자기를 덤벨로 써도 글을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잔디깎이를 끌고 앞마당을 왔다 갔다 하거나 나무를 베어 책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 나를 작살낸 걸까. 아니면 지금에야 진실이 드러난 걸까. 내게 문학적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실 말이다. 『모터맨』이 고든 리시와 알프레드 노프의 눈에 들어 출간된 건 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매일 밤 뭔가 썼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소설의 주인공 몰덴커의 음성이 유령처럼 집 안을 맴돌았다. 그만 좀 닥쳐. 데이비드가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미치는 거 아닐까.


    나도 한때 소설을 썼지.


   데이비드의 고충을 들은 스티븐 로우는 자신의 전사를 늘어놓았다. 바퀴벌레가 팬티 속을 드나드는 소호의 다락방에서 포르노 소설을 썼다나. 일주일에 삼백 페이지씩 썼는데, 써도 써도 쓸 이야기가 넘쳐났다고 했다. 그때의 뉴욕은 그랬지. 골목마다 게이와 레즈비언 유령들이 넘쳐났어. 작가의 블록 같은 건 징징대는 샌님들이나 하는 소리야. 스티븐 로우는 버로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 거라고, 시드니 셸던 같은 작자에게 왕관을 넘겨주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난 지금에 만족해. 우린 모두 추방자니까.


    데이비드는 수화기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떠들기 좋아하는 건 비슷하군.


    스티븐이 영 가망 없는 뻥쟁이는 아니었다. 그는 버로스와 긴밀한 거리에서 작업을 했다. 연인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붉은 밤의 도시들』(1981)을 쓴 사람이 스티븐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데이비드는 『붉은 밤의 도시들』에 산재한 구린 파트들이 그것 때문이었군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상황은 정반대일 수도 있었다. 버로스는 영감이 다했고 염소수염을 기른 근육질의 퀴어 스티븐 로우가 진짜 작가일지도 몰랐다. 버로스는 언제나 젊은 남자의 육체를 필요로 했다. 그들을 단지 조수, 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훨씬 복잡할지도 모른다. 버로스의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기생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글쓰기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균사체처럼 모든 것을 분해하고 썩은 시체 더미 속에서 자실체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일지 멸망의 징조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티븐은 작가의 블록을 극복하는 데 유령작가 일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결국 모든 작가는 유령-작가라고 말이다.


    데이비드는 제안을 수락했다. 유령작가 따윈 되고 싶지 않지만 주니어의 유작에는 호기심이 갔다. 윌리엄 버로스와 조앤 볼머 사이에 태어난 윌리엄 버로스 주니어는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파란만장한 삶 끝에 서른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경화. 셀러브리티 작가의 아들이자 그 또한 소설가였던 젊은 청년의 죽음은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지역 신문에 작은 부고 기사가 실렸을 뿐이다. 데이비드는 주니어의 첫 소설인 『SPEED』(1970)를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빅벤드 파크의 어둠 속에서 뿔을 쳐들고 길을 헤매는 한 무리의 동물들, 배고픈 양떼를 먹이지 못하는 가우초의 고해성사. 그 막막함과 당당함은 소설의 내용이나 완성도와 무관한 충격이었고 버로스의 초기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미치 미치를 보며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문학으로부터 도망쳐요. 그러나 미치 미치는 도망치기는커녕 출발선상에 선 그레이하운드처럼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영영 끝나지 않을 무의미한 경주에 기꺼이 영혼을 바치겠다는 태도다. 새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모닝사이드 애비뉴 63번지, NY.

 


    뉴욕의 문청이라면 너도나도 데이비드 올을 읽기 시작했을 즈음 벤 마커스는 브라운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평소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맨해튼에 왔는데 – 파트너인 쉴라의 로프트에 짐을 풀었다 – 공기가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소규모 창작 그룹과 워크숍의 사람들이 등 뒤에서 수군대고 있었다. 예전에는 누구도 가지 않던 부쉬위크의 폐건물에서 낭독회가 열렸고 독자들은 재빠르게 모였다 흩어졌다. 뉴욕 지성계의 파국을 예감한 바퀴벌레들처럼 말이다. 쉴라는 내 알 바 아니라는 투였다. 뉴욕대 시절만 해도 그녀는 열정적인 아방가르드 지지자였지만 지금은 문학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졸업 후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편집장을 목격한 것이다. 여긴 망할 거야, 내 인생도 망할 거고. 쉴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퍼이스트사이드를 걸어 다녔다. 다음에 얻은 직장은 베이 에어리어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회사의 뉴욕 지부 마케팅 부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딱 맞는 곳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소호에 집도 구하고 커낼 스트리트의 스시집에도 마음껏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벤은 탐탁지 않았지만 참견할 순 없었다. 쉴라의 삶 아닌가. 문제는 밤만 되면 새로 구한 쉴라의 집 현관문을 누군가 쾅쾅 두드린다는 사실이었다. 쉴라는 별거 아니라며 어서 자라고 했다. 별거 아니라고? 저게? 벤이 나가 봐야겠다고 하자 쉴라가 붙잡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여긴 소호야. 벤은 대학을 다니며 브루클린에 오 년간 살았지만 소호에는 살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했다. 게다가 그의 고향은 텍사스 오스틴 아닌가. 동부의 밤에 대해선 무지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소리는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이어지더니 멈췄다. 쉴라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잠에 빠졌다. 벤 역시 밤거리의 소음은 잊고 문학을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보 버블이 시작된 21세기의 문학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지금 시대에 부족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 실험 문학, 시대로부터의 탈출이다. 벤은 후고 발의 일기를 떠올렸다. 말은 버림받았다. 말은 상품이 되었다. 말은 홀로 내버려둬야 한다. 말은 모든 품위를 잃었다.


    다음날, 벤은 눈을 뜨기 무섭게 퀸즈에 살고 있는 망명 작가 이고르를 만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곧 데이비드 올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작품이 사미즈다트 형태로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뉴욕에 아직 언더그라운드 씬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대부분의 작품이 구제불능의 쓰레기다). 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그가 알던 인맥은 도움이 안 된다. 평소 저능아 취급하던 KGB의 우두머리들이 데이비드 올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들은 벤을 거머리로 생각하고 작은 소리만 들려도 박쥐처럼 숨는다. 클럽에서 『모터맨』이 전설과 컬트가 사라진 시대의 진정한 전설이라고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흡연자를 위한 바의 화장실에서 낙서를 발견한다. 『모터맨』을 읽고 세 시간 동안 토했다. 이고르는 차를 빌려 골목에 숨어 있다가 데이비드 올을 납치하자고 제안한다. 동료 러시아 평론가와 함께 토머스 핀천을 납치하려고 벌판에서 반나절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말이다. 벤은 진짜 납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날 밤에도 여지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쉴라, 쉴라. 데이비드가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는 곤히 자고 있었다. 삶에 완벽히 만족하는 사람의 숙면이었다. 벤은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일이 죽은 자의 방문이라는 사실을. 어둠 속의 소음이 유령의 공습경보라는 사실을. 안개 자욱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처럼 머릿속 저편에서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통밀 빵. 시각화 루틴. 앨라배마 흑인 소년의 춤. 언어는 바이러스다. 텍스트의 양자적 속성에 주목하라.

 

 

    3. 


    미치 미치의 메모: 도로를 따라 걸으면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의식하기 힘들지만 현실을 구성하는 선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서로를 연결하는 섬뜩한 동질성이 유령처럼 떠도는 공간. 이를 초간접적인 세계라 부르자. 흔히 4차원이라고 말하는 분할된 우주, 경험이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위치를 설정할 때마다 사이 공간으로 미끄러지는 삶.

 

 

    4. 


    나는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었다. 매일 책이나 편지를 가져다주는 연방정부의 우편배달부 외에는. 그러나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로버트 발로우는 H. P. 러브크래프트와 플로리다에서 보낸 한때를 추억하며 위와 같이 썼다. 당시 그는 퇴역한 육군 대령인 아버지와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없는 어머니와 함께 데이토나비치에서 남서쪽으로 17마일 떨어진 드랜드에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정신병을 얻어 돌아왔고 정체불명의 집단에 맞서 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호모, 광신도, 유대인, 인디언, 이민자……. 그들은 본래부터 이 땅에 있던 이들이 아니라 심해에서 왔거나 다른 행성에서 온 자들이다. 아버지의 망상은 단순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였을지도 모르지만 축축한 남부의 숲속에 외따로 사는 동안 크고 단단해져 갔다. 발로우는 아버지와 거의 소통하지 않았고 어머니와도 제대로 된 교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우편배달부가 매월 가져다주는 《위어드 테일스》를 반복해서 읽었고 매일 수영을 했으며 밤에는 피아노를 치고 진흙인형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근처 늪에서 뱀을 잡아다 가죽을 벗겨 책을 꿰맸다. 발로우는 직접 만든 뱀가죽 책을 “네크로노미콘”이라 불렀다. 물론 이 이름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발로우의 유일한 (상상 속) 동료이자 친구였고 매일 밤 함께 잠들고 일어나는 동반자였다. “크툴루의 부름”이 실린 《위어드 테일스》를 골백번은 더 읽었는데 읽을수록 궁금증이 더해 갔다. 네크로노미콘과 크툴루는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이러한 신화를 에멜무지로 혼자 만들어내진 않았을 것이다.


    발로우가 러브크래프트에게 처음 편지를 보낸 건 1931년 즈음이었다. 뭐라고 썼는지는 본인도 잘 모른다. 아버지가 허공에 산탄총을 쏘던 날 밤, 그냥 냅다 후려갈겼던 것이다. 당연히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실존하는 인물인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크툴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답신이 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외견상 딱 부러지는 신사였고 평생 5만 통의 편지를 썼다. 거의 모든 팬들에게 친절히 답장을 보냈고 망상의 공모자로 임명했다. 어떤 팬들은 화들짝 놀라 편지 쓰기를 멈췄지만 어떤 팬들은 기꺼이 그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로버트 발로우는 후자였다.


    편지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가끔 발로우가 소설을 보내고 러브크래프트가 손을 봐주기도 했고 한 작품을 같이 쓰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공동 집필에서 그랬듯 러브크래프트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한 문단씩 쓰기로 해놓고 자기 차례가 오면 한 단어만 쓰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로우는 투덜대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아니면 작품이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로우는 무턱대고 러브크래프트를 플로리다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의 아버지가 북부의 친척을 만나기 위해 2달간 집을 비우기도 했고 여름 내내 할일도 없었던 탓이다. 러브크래프트가 진짜 온다고 하면 어떡하지. 발로우는 편지를 배달부에게 건네며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배달부는 아무 낌새도 못 채고 편지를 챙겨 넣었고 발로우 역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긴 플로리다고 여름엔 할일이 많아. 당시 러브크래프트는 첫 번째 부인 소니아 그린과 헤어진 뒤 뉴욕살이를 접고 고향인 프로비던스로 돌아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의 걸작 대부분이 쏟아져 나왔지만 작품에 대한 비판과 몰이해, 무관심, 계속되는 경제적 궁핍으로 정신과 육체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그런 그에게 발로우의 제안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특히 악어에 관한 제안이 그의 흥미를 끌었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실버스프링의 늪지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다지 두려울 것도 없네, 라고 러브크래프트는 지인에게 말했다.


    버스를 타고 드랜드에 도착한 러브크래프트는 발로우를 보고 아연실색한다. 발로우가 열여섯 살 먹은 말라깽이 꼬맹이였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마흔셋이었다. 여태까지 편지를 교환하고 함께 소설을 쓴 재능 많은 젊은 작가가 여드름투성이 고등학생이라니. 그러나 발로우와 러브크래프트는 잘 어울렸다. 둘 다 나이를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잠재적 동성애자였으며 애초에 생각한 대로 여름의 플로리다엔 할일이 많았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넜고 숲에서 버섯을 채취해 요리를 했으며 바다를 보며 함께 소설을 집필했다. 소설은 발로우가 어린 시절부터(지금도 어리지만) 끊임없이 상상하고 수정한 것으로 매우 간접적으로 어둠의 존재를 암시하는 앨거논 블랙우드풍의 단편이었다. 나중에 “나이트 오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는 이 소설을 발로우는 러브크래프트와 마지막으로 만난 1936년 9월까지 계속해서 고쳐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지인에게 나는 쓰지 못했을 작품이라고 추켜세웠고 친한 편집자에게 수십 번 원고를 찢고 다시 쓴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른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였고 친애하는 동료 로버트 하워드의 권총 자살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 된 때였다(하워드와 러브크래프트는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펜팔친구였다). 러브크래프트는 1937년 3월, 암으로 죽는다. 발로우는 러브크래프트가 죽고 난 뒤 소설 쓰기를 멈췄지만 유고를 정리하고 출판하는 일은 계속하고자 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유언집행자로 발로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의 유산을 노리는 제자나 작가들은 발로우를 치매 걸린 노인의 돈을 노리는 남창 정도로 취급한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 곧 누구도 발로우와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좁디좁은 위어드 픽션 무리에서 완전히 제명된 것이다. 발로우는 러브크래프트의 원고 대부분을 브라운대학교에 기증하고 문학계를 떠난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멕시코 시립대학의 교수가 된다. 밤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실험적인 시를 쓰고 낮에는 나와틀 어 신문을 발행하고 북미와 남미의 유복한 학생들에게 메소아메리카 문화를 가르치면서 러브크래프트를 머릿속에서 지워 간다. 그건 단지 철없던 시절의 모험담에 불과했다고 말이다.


    1950년 7월, 테오티우아칸을 방문한 멕시코 시립대학 인류학 학과 학생 그룹에 윌리엄 버로스가 섞여 있었다. 그는 그로부터 약 1년 후 아내 조앤 볼머를 총으로 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솔자였던 로버트 발로우 또한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발로우는 6개월 후 아즈카포찰코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 세코날 26알을 먹고 자살할 예정이었다. 버로스는 그 모습에 대해 이렇게 쓸 것이다. 멕시코 시립대학 인류학과 퀴어 학과장. 침대 전체가 토사물이었다.


    발로우와 버로스는 테오티우아칸의 난간에 앉아 모래바람을 맞으며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발로우가 러브크래프트의 유산을 처분하고 처음으로 꺼낸 러브크래프트의 기억이었다. 발로우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미국인 학생 버로우가 소설을 쓰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플로리다의 늪 속에 묻어 두었던 유년 시절이 악어처럼 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유령의 부름이었고 유령의 부름은 언제나 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소설이 지박령처럼 그의 세포에 들러붙었고 자신의 기이하고 불안한 삶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미묘한 예감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전자기 펄스처럼 감각과 기억 전체로 운명이 방출되었고 예감에 복종하는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발로우는 오줌을 지릴 만큼 오싹했지만 내면에선 웃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버로스는 그런 발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삶을 권태로운 어투로 늘어놓을 뿐이었다. 멕시코 소년들을 만나 보라.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올은 버로스 주니어의 남은 원고를 정리하며 『프라크리티 교차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겨진 유작 같은 건 없었다. 버로스나 스티븐 로우 둘 중 하나가 착각했을지도 모르고 이삿짐센터에서 분실했을지도 모르며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누군가 유고를 훔쳤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건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고 존재하지 않는 소설을 편집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이 매주 목요일 저녁 윌리엄 버로스의 집에서 모일 때였다. 당시 버로스의 집은 캔자스 로렌스의 러너드 애비뉴 1927번지에 있었다. 붉은색 벽면에 기둥을 흰색 페인트로 칠한 중남부의 평범한 가정집이지만 조금이라도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 집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집은 너무 평범해서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티내고자 하는 속셈이 빤히 드러났고 뒤뜰에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 백색 노인 한 무리가 휠체어에 앉아 탄창을 갈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들은 환영일 뿐이었고(그러나 그들은 환영을 권장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각지에서 온 문화예술계의 저명인사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알 수 없는 잡놈들이 섞여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웠다. 요리는 아마추어 쓰레기 예술가 웨인 프롭스트가 담당했는데 처음 부름을 받은 날 그의 요리를 먹은 데이비드는 자신이 요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롭스트의 음식은 좋게 말해 구운 똥 같았다. 노년의 버로스는 미각을 상실했으니 그렇다 쳐도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이 음식을 참고 먹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요일 저녁, 데이비드는 깨끗이 설거지한 그릇을 정리하며, 주니어의 원고는 없다고 말했다. 서른 개의 박스 가득 일기와 편지, 메모만 가득할 뿐 소설은 없다고 말이다. 누워서 이야기를 듣던 버로스는(그는 식사도 누워서 했다) 발로우와 러브크래프트의 일화를 들려줬다. 데이비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자신과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주니어의 박스 가득 들어 있는 글들이 그의 다음 소설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지금까지 그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고 말이다. 내가 할일은 그것들을 읽고 맞는 자리에 두는 것뿐이라고, 그게 정확한 자리인지 모르겠으나 그들 스스로가 있을 곳을 찾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소설은 꿈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탐색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5. 


    나와 M이 도착했을 때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님이 없었고 사장인지 알바생인지 모를 바리스타만 있었다. 우리가 미치 미치의 흔적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바리스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구석 테이블로 고갯짓을 했다. 그곳엔 두 권의 책과 노트,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딱 봐도 미치 미치의 자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일 위에 올려놓은 책이 데이비드 올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The death of a charater』. 금빛으로 타오르는 나무가 표지에 있는 얇은 책이었다. 앞과 이어지는 뒤표지에는 하나의 문장만 쓰여 있었다. THE END OF THE ROAD FOR MOLDENKER. 출간일은 2021년 7월 15일이었다.


    나와 M은 몸이나 녹일 요량으로 카페 쓰어 룽고를 주문했다. 연유를 탄 베트남식 커피였는데 단맛의 카페인이 위 속에 들어가자 소음이 잦아들고 차갑고 사납던 공기가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너무 춥다고, M이 말했다. 산책이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오늘의 날씨로는 터무니없는 생각 같았다. 햇빛 한 점 없이 불투명한 대기 위로 희끗희끗한 눈 알갱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통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 1차선 도로 너머 작은 정자와 내부순환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보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미치 미치는 오지 않았다. 바리스타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에 간 거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이 카페엔 화장실이 없어 스위스 그랜드 호텔의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스위스 그랜드 호텔은 카페에서 20분 떨어진 백련산 언덕바지에 있었다. 나와 M이 당황한 눈으로 바리스타를 보자 바리스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호텔 로비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잖아요. 바리스타는 우리를 물끄러미 보더니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다음 말을 보탰다. 깨끗하고 따뜻하고. 좋지 않아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네요. 그리고 미치 미치가 오길 기다렸다.

 

 

 

 

 

 

 

 

 

 

유응오
작가소개 / 정지돈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등의 책을 썼다.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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