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와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와 주파수가다른곳으로떠난여자의 기원막대나선공명 외 1편

[창작시]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와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와 주파수가다른곳으로떠난여자의
기원막대나선공명*)

 

 

김혜순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는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 않아서 화가 나.
   화 다음 수가 나.
   수 다음 목이 나.
   목 다음 금이 나.
   금 다음 토가 나.


   나는 화수목금토 육체에재갈물린여자야, 그런다.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는 상담실에 오자마자 모래상자 중앙에 모래언덕을 만들고 뱀 3마리를 상자에 놓고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소리친다.


   아빠가 뜨거운 물속에 나를 넣는 꿈을 꾸었어,
   뜨거운 물속에서 새빨간 너를 낳아야 했어,


   나는 융 학파들의 분석을 싫어해,
   내 기억은 내가 모르는 짐승이 되어 버렸어, 그런다


   내가 모래상자에 두꺼비를 놓으면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이 다음엔 물을 놓겠지!
   아즈텍에선 두꺼비가 자궁 상징이야, 그런다.


   내가 뱀을 놓았으니 벌써 분석을 끝냈겠지?
   우로보로스, 설마 생각하는 거야?
   나는 뱀이야, 양말 속에 눈알이 달렸어 하하. 그런다.


   개구리 입에 뱀을 밀어 넣으려 하다말고
   관람불가, 관람불가
   쩍벌남과 다꼬녀, 그런다.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가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에게 너는 지금 욕설이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위악적인가? 하고 묻자
   잠시 후 얘네들도 그림자가 있네
   죽은 부모의 사진 같은 내 그림자, 그런다.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가 심리 테스트를 제안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것, 죽음, 네와 아니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의한 것, 죽음, 네와 아니오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사람을 땅에 묻고 이렇게 우리가 앉아 있는 것, 공의인가, 그런다.
   나는 결국 죽음을 순산할까, 난산할까, 제왕절개할까, 그런다


   이 세상에 제일 냄새가 나는 색이 뭔지 알아?
   흰색, 흰 새의 겨드랑이 냄새, 기저귀냄새. 우주 냄새


   나는 옐로우에머랄드블루브라운그레이그린색이 좋아
   울려고 하면 뇌압이 상승하고, 정전. 그 다음 응급실. 흰색 정면. 반복. 반복. 반복.


   죽은 사람은 왜 죽어 있는 것을 멈추지 않지?
   죽음이라는 부모님의 딸로 살아갈 수는 없어,
   오늘은 수의 날.
   눈물의 날이야.
   오늘 내 밑바닥을 흐르는 지하의 강이 오도가도 못하네.


   호스피스에서 엄마가 자다가 눈을 뜨고 나한테 그러더라
   이것아, 왜 그렇게 다리를 꼬고 밤새도록 앉아 있니?


   그러다가 네가 내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있으니
   언제든지 날 찾으러 올 수 있겠지? 하더라.
   그 날은 금의 날. 마음이 철창살이었어.


   주파수가 다른 곳으로 떠난 엄마가 외치고 있어.
   뻔히 보이는 데 죽은 자가 되어 계속 딸의 이름을 부르는 그 심정, 우린 모를 거야, 그 한을, 그런다.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는 모래 위에 뱀 세 마리를
   세 사람의 손목처럼 꼬아 놓는다.
   왜 우리 셋이 껴안았는데 느낌이 안 나? 그런다.
   내 맘이 사막이라서 그런가? 적막의 막막한 사막.
   사막은 후회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아, 그런다
   토성의 고리처럼 모래로 꼰 훌라후프가 아무것도 없는 구멍을 맴돈다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와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주파수가다른곳으로떠난여자를 부른다.
   엉 엉

 

   *)  Origin-Barred Spiral Resonance

 

 

 

 

 

 

 

 

 

 

 

엄마 온 엄마 오프

 

 

 

 


   부엌에는 털실로 짠 냄비가 있다
   저 냄비는 불에 올릴 수 없다
   이제 저 부엌은 끝났다


   안방에는 털실로 짠 가위가 있다
   저 가위로 헝겊을 자를 순 없다
   이제 이 집의 바느질은 끝났다


   주전자는 말해서 무엇 하랴
   저 털실 주전자에 물을 부을 수 없다
   이제 차 마시기는 글렀다
   주전자에서 털까지 자라니
   주전자와 냄비가 부부라니


   엄마는 털실을 끌고 온 사람
   털실은 흡반 달린 촉수를 어디에나 뻗었다
   집에는 늘 털실로 짠 물건들이 늘어났다


   저것을 짜는 동안 몸이 알아챈
   불안감을 재울 수 있었다고
   엄마는 회상했다


   저 숟가락은 끝났다
   구멍이 뚫렸으니
   게다가 저 숟가락에서
   뿌리가 어마어마하게 돋아났으니


   태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만 만들다가
   6일만에 죽는 나방이 있다
   나방의 꼬리는 털실로 땋은 머리처럼 길다*)
   그 나방은 세상에 나올 때 이미 입이 없었다
   나방이 떠나자 이제 집이 털실로 따 짜여졌다


   금붕어 두 마리가 어항 밖에서 헤엄치며
   털실로 짠 어항을 들여다본다
   뭐 하는 물건일까 하는 표정으로
   어항은 방치된 정신 병동처럼 뿌옇다


   이 집은 끝났다
   집이 털실 꽃병에 꽂혔으니
   이 마을도 끝났다
   집들이 전부 털실 꽃병에 잠겼으니


   (엄마는 이제
   아 방에
   이렇게
   진열되었습니다}


   이 방에 불을 켜는 스위치는
   털실 뭉치 안쪽에 숨겨져 있고


   털실로 짠 이불을 들추자 그 안에
   집 안의 칼들이 전부 눕혀져 있다
   이제 칼을 찾는 숨바꼭질이 끝났다


   게다가 털실로 짠 칼이라니

 

   *)  장대꼬리산누에나방 Argema mittrel

 

 

 

 

 

 

 

 

 

 

 

 

작가소개 / 김혜순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환상통』.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나)』,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 하기』,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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