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

[단편소설]

 

 

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

-동부이촌동-

 

 

윤보인

 

 

 


    만약 당신이 늦은 밤 한강변을 보면서, 저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 집이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면,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어느 날 주말 아침이 몹시 우울하다면, 한강 근처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 아파트를 보여 달라고 말해 보라. 부동산업자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이 집의 호가가 얼마인지, 한 달 만에 2억이 올랐다고 말하든 말든, 그냥 떠들도록 내버려 두어라. 직접 그 고가의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는 못하더라도, 미친 척하고 쇼핑하듯 아파트를 둘러보라. 일상이 지루하다면, 그런 취미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몇 달 전에 나는 파산했다. 동업했던 친구를 잃고, 인생이 개판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유니크하게 살고 있다. 경매 입찰일이 다가오면, 세탁소에 맡겨 둔 옷을 찾아오고, 늦은 밤이면 신성하게 기도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은 많을수록 좋다.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동의한다.
    파산한 뒤로 불편해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자동차를 팔았으며, 택시는 절대 안 타고, 아니 탈 수도 없으며,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팔았으며 이제는 거의 피난민처럼 살고 있다.
    피난민이라. 마음에 든다. 강남으로 출근하는 피난민.
    파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운이 좋게도 취직을 했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화장실에 갔을 때, 휴대폰으로 경매 물건이 새로 나왔나 살피면서, 그야말로 노예처럼 살고 있다.
    마음에 든다. 망했지만 어쨌거나 유쾌함은 남아 있다.
    하, 씨발.
    화장실 창밖으로 주차된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보였다. 차 주인이 어떤 놈인지 항상 궁금했다.
    나이 마흔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배를 한껏 내민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차 문을 열었다.
    저런 새끼가 끌고 다니네.
    나는 창가에 서서 중얼거렸다. 롤스로이스는 도망치듯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회사 대표가 일본어로 통화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늘 복리의 마법을 부르짖는 사람이었다. 지난달까지 통장에 30억을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돈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평소의 내 신념이었다.
    사기꾼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브라질의 사기꾼, 인도의 사기꾼, 주식 사기꾼, 부동산 사기꾼, 그들도 어딘가에서 하루 세 끼를 먹으면서 살고 있다. 기껏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서 어휴, 다행이다. 집값이 30억이 넘었네. 아직 우리에겐 돈이 많은데, 어떻게 관리하지. 기껏 그런 걱정이나 하면서 그들 또한 살고 있는 것이다.
    돈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미친 짓을 한다. 모건 하우절은 말했다.
    동의한다.
    회사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주식 창을 열고 가격을 확인했다. 어제는 70만 원을 벌었는데, 오늘은 100만 원을 잃었네, 얘기하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직원들 중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나만 유일하게 주식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남몰래 법원에 드나들고 있었다.
    경매 선생은 수업 도중에 말했다. 두 가지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1) 역세권 반지하를 산다. 2) 역에서 한참 떨어진 2층 빌라를 산다.
    수업을 듣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1번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반지하라는 말에 선택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거죠? 경매 선생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둘 다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적어도 나는 아파트에 꽂혀 있었다. 그때 수업을 듣던 누군가, 배울 준비가 안 되어 있네, 라고 나에게 쏘아붙였다. 나는 말없이 상대를 째려보았다.
    어쩌면 그 사람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생각해 보라. 파산을 겪은 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닌가.
    나는 망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은애. 슬프지만 은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은애의 죽음. 물론 거기에 나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애야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던 건 네가 먼저였잖니. 그 이후 내가 네 애인에게 망할 년이라는 욕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니.
    동업했던 쇼핑몰이 망하고 난 뒤, 은애는 애인 앞에서 옷을 가위로 찢었다고 했다.
    하, 씨발,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다른 시간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한때 은애와 나는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광저우를 수십 번 드나들었고, 이번엔 네가 가라, 아니 이번엔 내가 가겠다, 하면서 다퉜고 그 와중에 옷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땀을 흘렸고, 자동차 안에서 마진을 얘기하고, 업체들에 관해 얘기하면서 술을 먹고 다시 돈을 벌려고 애를 썼다.
    동업하면 깨진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방울을 흔들던 무당이 나에게 말했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볼이 통통한 여자였다.
    1년만 기다려라. 네가 그지 깽깽이여도, 네 옆에 붙어 있을 놈을 만난다.
    기분 나쁜 말이었다. 그때, 무당은 함께 갔던 은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거지가 된 것은 사실이고, 파산 이후에 우울증을 겪은 것도 사실이며, 15킬로가 찐 것도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살을 빼겠다며 밖으로 나가 뛰어다녔고, 한강으로 가서 소리를 질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간혹 담배를 피우며 무심히 한강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염병할, 10년 안에는 가능할까. 어이없는 상상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현실은 1억도 채 되지 않는 지방 아파트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1억에서 30억으로 한 번에 점프할 수 있다면.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영영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었다.
    금방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쫄딱 망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말했다.
    동의한다.
    감정가 1억 이하의 아파트를 낙찰받는다 해도, 70% 이상은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3천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나? 경매 선생은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다고 했다.
    거지 깽깽이여도 가능하군요.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경매 선생은 37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 물건을 사듯 집을 사들였다고 했다.
    저는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겸손한 척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수동 트리마제에서 살고 있었다. 끌고 다니는 자동차는 페라리. 그는 재개발 확정지인 용산과 노량진, 광명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게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하, 가난한 사람들 상대하기도 싫다.
    누군가는 욕할지 몰라도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나는 되도록 부자들을 상대하고 싶었다. 둘 다 위선자들이라면, 차라리 돈 많은 쪽이 나았다. 결국 나는 강남에 있는 회사에 어렵게 취업을 했고 단지 일본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회사의 경리였다. 돈이 오가는 길목에 서 있다는 것. 마음에 들었다.
    가진 게, 좀 있나 보지?
    뭔 소리야?
    경매, 말이야.
    없어서 하는 거야.
    1년 전에 무당이 말한 놈이 바로 이놈인가. 거지여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놈이? 그렇든 아니든, 별 관심이 없었고 내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만나자고 하니, 몇 달째 주말에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곤란해.
    왜?
    임장 가야 해.
    그는 상처받은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항상 흰 셔츠 차림을 고수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를 처음 만난 게 파산 이후였는데, 그렇다면 6개월이 되었나. 이거 뭐 권태로운 부부도 아니고, 애틋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녀석을 왜 만나는 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동부이촌동에서 봐요.
    알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존댓말을 했다. 동부이촌동. 그 동네 일본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생선을 먹었다. 취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고 늘 쓸쓸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동부이촌동. 그 동네를 생각만 해도 가슴 아팠다. 거기서 태어나 16년을 살았고 부산으로 이사를 했고 그러다 다시 돌아왔고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족들은 제각기 찢어졌으며 어느새 나는 혼자가 되었고 신당동에서 살다가 현재는 고강동 빌라에서 월세로 살고 있었다.
    고강동이 어디죠?
    흠, 부천 쪽입니다.
    처음에 그와 저녁을 먹던 날,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털어놓았다. 3년 정도 광저우에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작년에 돌아왔다고 했다. 현재는 식품회사 차장. 회사 생활을 한 지는 13년째. 그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이놈이 그동안 얼마를 모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서울에 아파트 한 채라도 마련한 놈이라면. 아니 스스로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이 있는 놈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찌하여 망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해질녘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잘 보일 생각도 하지 않고, 기껏 모자를 눌러쓰고 편의점 앞에서 닭다리나 뜯어먹으며 맥주를 마셔대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편안했다. 그동안 하도 잘난 척하는 놈들만 봐왔더니, 물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괜찮았다. 뭐, 따지자면 그게 그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좀 가볍고 흥이 많고 변덕이 심한 인간이었다. 나의 이런 성격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술값을 냈다.
    물론 그에게도 단점이라는 게 있었다. 주식에 빠져 있는 인간이라는 것. 물론 주식이나 경매나 그 곁에는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한 회사에서 긴 세월 근무하면서, 마약 같은 월급에 취해 있었다. 좋게 말하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에 익숙해져 있었고 무기력한 상사들을 보면서 10년 후에는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내심 한탄을 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소유했던 수원 아파트를 팔고 그 돈을 모조리 주식에 투자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반 토막이 나버렸다.
    기업과 차트를 그렇게 분석했는데도 한번 실수를 하면 손실이 나는 게 주식의 세계인가. 그는 나를 만난 순간, 아마도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산했는지, 쇼핑몰에 얼마를 투자했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다가 망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돈 많은 집 딸을 만나려고 할 텐데, 그는 그쪽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비슷한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거기서 위안을 얻으려는 건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수원 아파트를 팔았다는 것, 그 이후에 폭등을 경험했다는 것, 그건 제삼자가 봐도 애석한 일이었다.
    모든 건 본인이 책임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책임지지 못했고 빚을 갚지 못했으며 두 손 두 발 다 들고 모든 걸 털어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빚쟁이들의 전화와 협박. 그 모든 게 어떤 면에서는 끔찍했지만, 빚쟁이들에게도 나름 긴 사연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나에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빚쟁이가 물었을 때, 나는 고작 글쎄요, 라고 대답했다.
    우선 산에 좀 올라가 본 후에.
    나도 과거에 빚이 17억 있었어. 추락과 상승을 반복하는 게 인생이야. 죽지는 마.
    노력해 보죠. 사장님.
    결국 그렇게 말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 계절, 가을과 겨울 사이, 외출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칩거를 한 채 몹시 우울하게 지냈다. 핏속까지 흐르던 나의 명랑함과 밝음, 나의 흥은 어디로 사라졌나. 물론 나에겐 허영마저 있었다. 과거에 옷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고,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으니, 그 후 돈벌이보다 놀고먹는 일에 더 집중했으니, 순식간에 돈은 빠져나갔다. 은애도 나도 둘 다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죽을 필요까지 뭐, 있나? 안타깝게도 은애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외롭게 자란 탓에 곁에 둘 사람이 필요했고 그러다 나와 마음이 맞았던 것뿐인데.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은애를 처음 만난 곳은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중국 경유를 해서 왕복 48만 원에 뉴욕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그야말로 개고생의 시작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어찌나 떠드는지 기내가 흡사 시장판 같았다. 그 와중에 은애는 비행기가 흔들리거나 말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야말로 너무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옆에 있던 나와 긴 얘기를 나누었다.
    뉴욕에 도착한 후,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고 며칠 후에 워싱턴 스퀘어 앞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니치빌리지, 그 동네를 오래 걸었고 미술관에 들어갔고, 카페에서 다시 공원을 오가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은애는 대학에서 해금을 전공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처음 배웠다고 했다. 나는 국악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났다. 그것참 애석한 일이었다. 현재 오래된 애인이 있다. 아마도 권태기인 것 같다. 은애는 말했다. 헤어져야지 뭐. 나는 그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은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몇 달간 회사 다니며 모아 둔 돈을 뉴욕에서 다 써버릴 것이다. 그것도 괜찮다.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그게 전부였다. 뉴욕에서 보낸 열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어떤 절망이나 슬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인생에서 계속되지는 않는다. 인생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위험과 파탄, 불운, 뭐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이.
    그러한 굴곡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머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페라리 정도는 탈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이 제멋대로 굴러가든 말든, 그런 상상쯤은 가능해진다.
    뭐,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다 있나.
    네이버 부동산에서 아파트 시세를 확인하다가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살던 동부이촌동의 아파트 시세는 30억을 넘어선 상태였다. 나는 짧은 시간, 슬픔을 맛보았다. 그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가 무슨 30억이나 하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해도 건물의 가격은 그렇게 매겨진다. 어찌 보면 돈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어쩌자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 투자의 대부인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말했다. 멋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임장을 다니며 인생을 겨우 즐기는 중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의 눈치를 봐 가면서.
    제기랄. 떨어져라. 떨어져.
    하지만 무당말대로 그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이별의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몇 번 주말에 약속을 취소하면, 저 남자도 결국 지쳐서 단념하리라고 나는 예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애정을 갈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돈이 아닌, 아파트가 아닌 그 무엇에도 욕망할 수 없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차라리 그가 주식에 더 올인하기를 바랐다. 가진 돈을 잃든 말든, 추락과 상승을 경험하든 말든, 그의 삶에서 나라는 사람을 배제하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함께 보낸 몇 달의 시간을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그저 심심하고 외롭고 할 일이 없어서, 잠깐 만나 술을 마신 것뿐이었다.
    인간관계가 이렇게 심플하다니. 나는 누구의 삶에도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경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경매는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비논리의 세계였다. 입찰가의 몇 프로를 써야 낙찰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무조건 높게 쓰는 사람이 가져가는 게임이었다.
    어느 날 나는 법원에서, 경매를 하러 온 인간들 중에서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나 말고도 상태 안 좋은 인간들이 또 있다니. 분명 지방 18평 아파트의 감정가는 1억이었고, 최저 입찰가는 7천이었는데, 그러니까 최저가 이상만 쓰면 되는 게임이었는데, 어떤 미친 인간이 1억도 아닌 10억을 쓴 것이었다. 숫자를 잘못 기입해서 0을 하나 더 쓴 것이었다.
    결국 낙찰되었다고 호명할 때, 그 멍청한 인간은 앞으로 나가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한 번만 봐달라고 울고불고 사정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그 어떤 연민도, 눈물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 물건을 포기하면, 보증금 10%는 돌려받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 룰이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탈락자들은 속출하기 마련이었다. 당첨된 사람은 수십 명 중의 한 명이었고, 그게 경매의 시작이었고 결국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걸 명도라고 하나. 애석하게도 나는 단 한 번도 명도를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진심으로 간절하게 세 든 사람이든, 집주인이든 누군가를 쫓아내고 싶었다.
    내게는 그런 간절함밖에 없었다.
    법원에서 몹시 깐깐해 보이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오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판결문이라도 읽는 듯 하나같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패찰 한다는 건 아주 허탈한 일이어서 술꾼들은 술을 찾기 마련이고, 애연가들은 담배를 찾기 마련이었다. 운이 좋게도 단 한 명의 낙찰자가 밖으로 나갈 때, 대출 명함을 주는 아줌마들이 몰려들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나는 차순위 보증금이라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1등과 70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2순위가 된 것이었다.
    제기랄. 단 한 번도 나는 가격을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입찰 당일, 새벽에 일어나 냉수 한잔을 마시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탁자 앞에서 기도하듯이 가격을 종이에 적었던 것뿐이었다.
    9,420만 원을 적은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최고가를 쓴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을 때, 옷차림이 아주 허름한 중년 남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가 종이를 내밀었다. 무주택자인가.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으나, 부자인지 아닌지는 옷차림으로 봐서 알 수 없었다.
    은애야, 나 이번에도 안 될 것 같다. 차순위라는데, 아무래도 기회가 안 올 것 같다. 만약 된다면, 고작 1억의 집이라 해도, 네가 만약 천국에서 돌아와 준다면, 그 집을 너에게 주면 좋을 텐데. 그래,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말대로 망할 년일지도 모른다. 은애야, 너는 천국에서 몇 평의 집을 가지고 있니? 그 집은 편안하니? 나는 갈 데까지 가버려서, 바닷가가 가까운 아파트를 원한다. 되도록 썰물과 밀물이 오가는 바다에 나가 산책이나 하면서 말년을 보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내 욕망은 너무 강하고 잔인하다.
    때마침 저 멀리서 택시가 오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택시 문을 열었을 때, 담배 냄새가 훅 끼쳐 왔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하, 죄송합니다. 선생님. 먼저 연락드려야 했는데.”
    “어떻게 됐나요?”
    “패찰입니다.”
    “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가장 먼저 진행을 했습니다. 25명이나 입찰했더군요.”
    “그래서 1등은 얼마에 가져갔나요?”
    “9,490만 원입니다.”
    “아쉽겠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죠.”
    “그래야겠죠.”
    하지만 다음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경매 선생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를 더 얻어내기 위해서는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경매 수업료는 무려 3백만 원이었고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갖고 있는 돈을 쪼개어 비용을 지불했다.
    수강생은 4명. 나만 빼고 모두 유주택자들이었다. 한 명은 3채, 다른 한 명은 4채, 다른 한 명은 아파트를 8채 소유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세금 때문에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나는 다주택자에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경매는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2천, 3천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죠. 물론 좋은 물건을 건질 수는 없습니다. 자본이 많으면 좋은 걸 선택할 수 있죠.”
    수업을 들으면서도, 나는 경매 선생이, 아니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이 사기꾼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쩐지 사기꾼들이 포진해 있을 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가장 가난했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가장 가난할 예정이었고, 어쩌다가 그곳에 참석한 것뿐이었다. 실내 수업은 4번이었고, 마지막 수업은 임장이었다. 남양주 쪽으로 임장을 갔을 때, 나는 그렇게 썩은 빌라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흔히 말해 썩빌이 존재했지만, 어쩐지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빌라 옥상에 올라갔을 때, 주위는 온통 산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 빌라를 매수한다면, 누수로 인해 개고생을 할 게 틀림없었다.
    “오, 여긴 지하 주차장이 없군요.”
    “빌라에서 무슨 그런 걸 찾아?”
    내가 질문했을 때 어이없다는 듯 누군가 쏘아붙였다.
    “하, 여기는 풍수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말을 꺼냈다.
    “풍수도 할 줄 알아요?”
    “아, 그냥 느낌입니다.”
    “느낌 좋습니다. 경매는 바로 그 느낌으로 하는 거죠.”
    풍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는 무너질 것 같은 빌라 옥상에 서 있는 게 답답해서 그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입찰가는 바로 느낌으로 적는 건가요?”
    “바로 느낌으로 적습니다. 직감이죠. 우주의 기운으로.”
    “우주의 기운으로?”
    “우리는 노력할 뿐이죠. 입찰가를 쓸 때는 온 힘을 빼고,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최저가를 쓰기 위해 법원에 갑니다. 출근하는 느낌으로.”
    최저가를 쓰기 위해? 나는 도통 경매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저가를 쓰면 결국 떨어지는 거 아닌가? 무슨 우주의 기운까지 필요한가. 결국 나는 썩은 빌라를 구입하는 게 자신이 없어서 지방에 있는 아파트로 방향을 틀었다. 빨리 매도가 가능한 곳. 약간의 이득을 보고 도망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어야만 했다.
    “선생님, 만약 정권이 바뀌어서 요즘 트렌드인 공시지가 1억 이하 아파트에 세금을 많이 때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죠?”
    나는 경매 선생에게 물었다.
    “글쎄요.”
    “다 같이 한강 다리에서 만나야 하나요?”
    “오우, 난 부산에 집이 있어요. 낙동강에서 만납시다.”
    임장을 갔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공시지가 1억 이하라도 소유할 수 있다면.
    “선생님, 투기꾼이라는 비난은 어떻게 견디시죠?”
    “글쎄요. 그건 그 사람들의 말이니까요. 신경 쓰면 안 됩니다.”
    “오, 신경 안 써야 하는군요. 투기꾼이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하겠군요. 그런데 선생님, 곧 하락할 거라는, 부동산은 끝났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지금도 해가 지고 바람이 붑니다. 과연 끝이라는 게 있을까요?”
    경매 선생은 말했다.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게임. 시간 속에서 소유해야만 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실패를 맛보았고 낯선 도시에서 차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 여기서 내려주세요.”
    “출세하십쇼, 손님.”
    택시 기사는 통화를 엿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택시에서 내렸다. 이 나이에 출세하라는 말은 뭔가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이미 떠나버린 택시를 돌려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택시는 떠나보내고 내게서 멀어진 아파트도 떠나보내고 과거도 떠나보내야만 했다.
    어쨌거나 살다 보면 추락을 경험한다. 그게 계속되는 게 문제겠지만.
    “낙찰이 되면 친구들에게 얘기하십니까?”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때 나는 경매 선생에게 질문했다.
    “저는 친구가 없습니다. 고로 얘기할 사람이 가족밖에 없죠.”
    “친구가 없나요?”
    “경매는 외로운 세계입니다. 돈을 벌수록 친구들은 떠나가기 마련이죠.”
    “정말 외로운 세계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경매 선생은 입맛을 다셨다.
    “선생님, 저는 훗날 동부이촌동에서 살려고 합니다.”
    “저도 그 동네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럼, 거기서 한번 뵙죠.”
    나는 그에게 유년 시절을 그 동네에서 보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말했어도 믿어 주지 않았겠지만.
    동부이촌동이든 청담동이든 그것은 같은 도시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먼 세계인 게 분명했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다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처음 패찰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늦은 밤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몹시 우울해졌다. 결국 바에 들러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부동산이 내 삶의 거의 전부인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한다면, 경매, 그것은 절망을 이기게 해주었다. 무언가를 부여잡을 수도 있다는 희망, 소액으로도 가능하다는 희망, 끝내 그게 나를 붙들고 있었다.
    추월하는 삶의 속도. 뭔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가난뱅이라 불렀던 사람들. 그 시선, 경멸. 뭔가 판을 엎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경매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우선 바에 들러서 목을 적시고 싶었다.
    나는 뭔가를 잊기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자 혼자서 위스키를 마신다면, 직원이 한번쯤 쳐다보겠지만, 그런 거에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다.
    “여기서 가장 비싼 게 어떤 거죠?”
    바텐더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보다 어떤 종류의 술을 좋아하시는지.”
    “아무거나 한잔 권해 주세요. 아, 독한 걸로 주시는 게 좋겠네요.”
    “하이랜드 파크 다크 오리진으로 하시죠.”
    “그럼 그걸로.”
    결국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맞은편에 있는 LP판을 쳐다보았다. 쳇 베이커였다. 그때 스피커에서 쳇 베이커의 나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펫 연주도 흘러나왔다. 평소 같으면 음악에 취했겠지만, 기분 탓인지 별다른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오래전 부모님의 파산과 나의 파산. 인생에서 두 번이면 충분했다. 결국 급하게 위스키를 마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걸로 한 잔 더 주문했는데, 이럴 때는 술값을 대신 내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30분쯤 뒤 한 남자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 귀염둥이. 여기.”
    나는 한 손에 턱을 괴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하루 종일 바쁜 업무에 시달렸는지 그의 얼굴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그는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의자에 앉았다.
    “몇 잔째지?”
    그가 물었다.
    “겨우 두잔.”
    “취했어?”
    “오우, 노우.”
    “멀리까지 다녀오고 힘들었겠군.”
    “귀염둥이, 오늘도 주식으로 재미 좀 봤어?”
    “많이 폭락했어. 처참했어.”
    “원래 인생은 처참한 거야.”
    “당신은 차순위라고?”
    “그렇게 됐어.”
    “그런데 만약 상대가 포기한다면, 가능성도 있잖아.”
    “과연 그럴까? 그 사람, 아주 기뻐하던데.”
    “혹시 또 모르지. 돈을 구하지 못하면.”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들고 온 가방을 툭 건드렸다. 그 안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오, 꺼내지 마.”
    내가 말했을 때, 그는 알겠다는 듯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안에는 흰색 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웬 개야?”
    “분양받았어. 키워 보려고.”
    그는 잠시 내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애틋한 미소로 개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그 모습에 질투를 느낀 건 아니었다. 다만 한 남자의 눈빛이 그렇게 순해질 수 있는지, 그게 좀 의아했다.
    “외로운가 보지?”
    “조금은. 밥은 먹었어?”
    “술이면 충분해.”
    나는 남아 있던 술을 천천히 마셨다.
    “위스키에 물 탔나 봐.”
    “왜?”
    “약해. 술꾼, 어때? 딱 질색이지?”
    “술꾼 아니잖아.”
    “맞아. 잠시 흉내만 내본 것뿐이야. 쓸쓸해, 인생. 이제 주식에서, 개로, 그다음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시간이 나면 소설을 써보고 싶긴 해.”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흐음, 돈이 안 되잖아.”
    “버는 사람들도 있긴 해.”
    “나에겐 아파트가 필요해.”
    갑자기 나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알고 있어.”
    “네가 만약에 돈과 관련 없는 짓을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져. 사요나라라고. 알아들어?”
    그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당신, 골드 디거야?”
    “그게 뭔데?”
    “돈 보고 만나는 사람. 된장녀.”
    “아무래도 좋아. 마음대로 생각해.”
    “세상이 너를 그렇게 봐도 좋아?”
    “뭔 상관이야?”
    나는 그를 응시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위스키 한 잔을 주문했다. 잠시 음악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소음으로 가득 차 버렸다.
    “뭘 시켰어?”
    “같은 걸로.”
    “내 말 좀 들어 봐. 내 가슴엔 아무것도 없어.”
    나는 가슴을 쳤다.
    “알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어느새 말라버린 거야.”
    “당신, 참 재밌어. 그래서 만나는 거야.”
    “재밌다고?”
    “당신처럼 재밌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
    “젠장, 그런 얘기 들을 기분이 아니야.”
    “그럼, 조용히 하지.”
    “물론 내가 연민을 자아낼 정도로 형편없는 여자는 아니잖아? 나도 자존심 같은 건 있다고. 연민 같은 건 개한테나 줘버리라고.”
    “알아.”
    “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여자야. 그건 아주 중요하거든. 두 발이 허공에 떠 있으면 안 돼. 좆같은 인생, 땅에 발을 붙여야지. 안 그러면 끝장이야. 그리고 나는 경매를 무척 좋아해. 물론 현재로서는 아무 결과물이 없지만 말이야. 당신이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그 차트보다는 나아. 그 추락의 곡선이, 나는 그 선이 어쩐지 기분 나빠.”
    “그 선이 내 삶에 도움이 돼.”
    그는 부정하듯이 말했다. 잠시 고요해졌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을 기다리는 거야. 하루의 시작 말이지. 그리고 오후 3시 반이면 끝나는 거. 그렇게 끝나는 거야. 그리고 몇 시간만 회사에서 농땡이 치다가 퇴근하는 거지. 당신은 뭘 원해?”
    “당연히 아파트지.”
    “3월의 빛. 남향집. 너무 저층도 안 되고, 너무 고층도 안 돼. 로열층이어야 해. 매도할 때 편하게 말이야. 치고 빠지는 게 중요해. 내겐. 그보다 좋은 건, 입지 좋은 브랜드 아파트를 갖는 거.”
    “그게 3월의 햇빛보다 중요해?”
    “물론 둘 다 중요해.”
    나는 사나움을 숨긴 채 말을 이었다.
    “흐음, 3월에 내리는 눈, 고요함 같은 거, 혹은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조용히 듣는 거야. 신선한 과일 안주를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느끼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거지.”
    “아파트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한강 근처에서 살기를 바라면서, 지금은 지방을 돌아다니는 거야. 계속 점프를 하며 살 테니까. 그전에 쓴맛을 보더라도 제기랄, 견뎌 볼 작정이야.”
    “과연 가 닿을 수 있을까?”
    “모르지. 인생, 몰라.”
    나는 잠시 그에게 지나온 날들을, 살아온 나날을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시간을 굳이 꺼내어 펼쳐 보일 필요는 없었다. 과거는 뭐, 지나가 버렸고 늦은 밤이 되면 잠시 술을 마시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남자도 그저 내 삶의 구경꾼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오, 개가 자꾸만 움직여.”
    “여기서는 꺼낼 수가 없어. 그만 나갈까?”
    “한 잔만 더 마시고.”
    나는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술을 한 잔 더 주문하고 술값까지 다 계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빠르게 술을 마신 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서 플라타너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오자마자 개를 꺼냈다.
    “이름은 정했어?”
    “아직.”
    작은 개는 킁킁거리며 내 발등을 핥았다.
    “저리 가. 저리.”
    그는 잠시 웃음을 지었다.
    “다음에도 김해로 갈 거야?”
    “지금으로서는 거기가 마음에 들어. 바닷가 근처야. 김해평야, 알지? 낙동강. 편안해. 그 동네.”
    “언제 내려갈 거지?”
    “오늘 낙찰받은 사람이 잔금을 치르면. 그 이후에 움직일 거야. 보증금을 받아야 하니까.”
    “회사에는 휴가를 쓰고?”
    “병원에 간다고 둘러댈 거야.”
    나는 그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면서 말했다. 작은 개는 두려움을 느끼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아직은 움직이는 게 버거워 보였다.
    “얘야, 더 멀리 뛰렴. 그렇게 버둥거리지 말고.”
    나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투자가 오고 나서 음악이 온다고 코스톨라니는 말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멋진 말이다.
    투자가 시작되면 정말 음악이 올까. 언젠가는 올 수도 있었다. 나쁜 날씨는 곧 끝이 날 테고.
    “담배 한 대 피울까?”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무척 기뻐했다. 그는 말없이 담배를 내밀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뭔가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 가난해?”
    “아마도 그럴 테지.”
    “흐음, 솔직한 게 좋을 거야.”
    “다음엔 통장을 보여주지.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을.”
    “쉽지 않을 거야.”
    “알아.”
    “만약 내가 호텔에서 혼자 자고 싶다고 말하면, 호텔비만 내주고 돌아가겠어?”
    “그러지.”
    “잘 가.”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작은 개를 가방에 넣더니, 버스를 타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술기운 탓인지, 뭔가 가슴을 적시는 게 있었다. 한낮에 경험했던 추락의 느낌은 잠시 사라지고 어느새 평온만이 남았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좀 쉬고 싶었다. 다음엔 호텔비를 좀 받아낼 생각이었다.
    뭐, 누군가 골드 디거라 말한다 해도, 세상이 그렇게 보든지 말든지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뭔가를 좀 소유해야만 했다. 한겨울에 노숙자도 이불을 덮고 자는 법이니까. 심지어 상자라도 덮고 자는 법이니까.
    역시 술은 아픔을 달래 주는 데 선수였다. 진실이든 아니든, 과거에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뭔가를 달래 줄 만한 게 필요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미 문을 닫은 부동산 사무실이 보였다. 아파트촌이었고, 어디든 세입자들이 즐비하고, 집주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고 어딘가로 도망치듯 떠나고 있었다.
    하, 개떡 같은 인생!
    그 수많은 사람들, 여러 장소 중에서 내 명의의 집이 없을 뿐. 그 모든 게 내 책임이라 해도, 파산 따위가 내 책임이라 해도.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주 잠깐 일요일의 오전, 고요 속에 깃드는 햇빛을 생각했다.
    은애야, 너는 어느 햇빛 속에 머물러 있니?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부동산만을 생각하고, 겨우 술을 마셨을 때만 죽은 자를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미쳤다 내게 말해도, 뭐 인생은 제멋대로 굴러가는 법이니까. 망한 후에야 이제 겨우, 농담이나 할 여유가 생겼다.
    술값이나 내고 돌아가라고, 한 남자에게 큰소리나 치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타인을 등쳐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너는 말했겠지만 이렇게 빛의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나도 네가 머물러 있는 그 장소에 가 닿을 것 같다.
    오,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하지 말자.
    나는 이 생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에 머물다 갈 테니, 망자여, 너는 더 근사한 곳에서 머물고 있어라. 내가 너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아, 씨발, 너는 끝내 모르겠지만 돈에 미친 여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간 속에서 이 삶의 판도를 바꾸려 한다.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파산에서, 근사한 성공으로, 돈다발을 쓸어 담는 삶으로.
    수천만 달러를 검은 가방 속에 넣고 어두운 도시를 걷다가 날이 밝으면 아무 부동산에나 들어가 빌딩과 토지를 계약하고, 별거 아니군, 떵떵거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와 다른 부동산에 들어가고, 땅값이 하락하든지 말든지, 폭등하든지 말든지, 히힛, 롤스로이스를 타고 선글라스를 끼고, 뭐 어차피 가진 거 많잖아, 하는 표정이나 지으면서 한동안 지내보려 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아무도 모르게 너의 무덤가에 가서 꽃을 한 송이 심어 두겠지만.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허영과 위선에 가득한, 욕심 많은 미친년이라 불러도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
    그리고 머지않아 안락함과 부촌의 상징인 그곳, 동부이촌동, 팔 할 이상 나를 키워 준 그곳으로 돌아가겠다.
    이 글은 그저 죽은 자에게 보내는 연서 같은 것.
    이 글을 읽는 그대여, 만약 그대가 운이 좋아 어느 날 한강이 보이는 꽤 괜찮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면, 일요일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구축이라도 좋으니 어느 조용한 날, 나를 초대해 달라. 물론 당신의 센스로 리모델링쯤은 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남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아 비가 걷힌 맑은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 늦은 밤, 근사한 야경을 보면서 남의 집에 있는 위스키 한 병을 따서 함께 마시는 것을 꽤 좋아한다.
    그때까지 그대여, 인생의 거처할 수 없음을, 어이없음을, 이 폭죽을 즐겨라.

 

 

 

 

 

 

 

 

 

 

강혜림
작가소개 / 윤보인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뱀』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 『재령』이 있다.

 

   《문장웹진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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