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와 아폴로

[단편소설]

 

 

제우스와 아폴로

 

 

이홍

 

 

 


    암흑 속 두 개의 점이 나란했다. 산부인과에서 진료와 수납을 마치고 병원 건물을 나서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란성 쌍둥이라니. 무턱대고 건물 일층의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의 연녹색 이파리들이 쟁쟁한 생명의 기운을 뿜어냈다. 생명, 어쩌면 나는 이 두 개의 점처럼 작은 생명체를 더 늦게 발견할 수도 있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나는 임신 가능성이 칠 퍼센트 이하인 노산이다. 지난 일 년간 이 미미한 수치의 희망을 쫓아왔다. 생리주기가 오면 박스 채 주문한 임신 테스트기들 중 하나를 꺼내어 매일 아침 임신여부를 확인했다. 유난스러운 수고 끝에 맺게 된 결실이었다. 기뻐해야 마땅한 순간이었으나 초음파 촬영기에 잡힌 두 생명체를 목도한 후 내리 당혹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진정을 찾았다. 카페를 나서기 전 루에게 임신소식을 알리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제우스와 아폴로!
    내 문자를 받고 대뜸 전화를 걸어온 루의 첫 마디였다. 목소리 음역이 고른 루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약간 떨리는, 고무된 목소리를 들으며 카페 안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아까 앉아있던 자리로 황망히 돌아가 앉았다. 루는 태아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고 나는 이미 루와 헤어진 연인사이였다.

 

*

 


    통화를 마치기 전 루는 재우에게 이 소식을 알렸는지 물었다. 나는 아직, 이라고 말미를 흐렸다. 아들 재우에게는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재우는 동생을 바랐었다. 전남편과 이혼 후였다. 재우가 이따금 동생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을 비추곤 했었다.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더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일이다. 재우는 이제 열아홉 살이다. 성인식을 앞두고 생기는 배다른 동생에 대해선 어쨌든 소감이 다를 터였다.
    인도를 걷다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담배를 끊었었다. 일 년 가까이 금연한 게 아까워서라도 다시 피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술 사이에 물었다. 라이터 불을 붙였다. 두 모금 빨다가 담배와 라이터를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신발장 앞으로 나이키에어 농구화가 놓여있었다. 곧장 재우의 방 쪽으로 걸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책상에 앉아 킨들로 책을 읽던 재우가 기척을 듣고 뒤돌아보았다. 나는 할 말이 있어, 라고 운을 뗐다. 재우가 당장 나올 것처럼 기지개를 켜고는 이따가 얘기해도 되는지 물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식사시간이니 어서 나오라고 재촉했겠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재우가 방에서 나온 건 그로부터 두 시간 후였다. 허리밴드가 늘어져서 엉덩이 절반까지 흘러내린 파란색 사각팬티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상의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나는 오는 길에 사온 김밥 세 줄을 꺼냈다. 그릇에 김밥들을 덜어서 식탁 위에 올렸다. 재우의 등짝 날개 뼈 부위에 너르게 돋아난 여드름들을 들여다보았다. 개중 노랗게 성근 것을 발견하고 습관처럼 면봉 두 개를 들고 왔다. 면봉머리를 살갗에 꾹 눌러 집었다. 고름보다 더 빨리 터진 건 재우의 짜증이었다. 휴대폰으로 열어둔 유튜브를 보던 재우가 거칠게 어깨를 홱 돌렸다.
    그냥 둬도 괜찮아.
    재우가 미안했는지 좀 전의 신경질적인 표정을 거두고 말했다. 나는 재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엄마, 임신했어.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손가락으로 김밥을 들어 올린 재우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안의 심장고동이 아랫배 부근에서 내밀하게 둥둥거렸다. 재우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그럼 드디어 루가 서울로 오는 거야?
    루만큼 흥분한 건 아니었지만 기뻐마지않는 재우의 표정을 보았다. 나는 안도했다.

 

*

 


    루와 나는 이년 반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해왔다. 서울과 홍콩. 비행기로 세 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각자의 일과 생활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보고 싶으면 주말에라도 항공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날아갈 수 있는 거리다. 연애 초기, 두 사람 다 그렇게 믿었는데 주변인들의 우려는 상당했다. 루와 나는 각각 이탈리아 제약회사의 홍콩지사와 서울지사에 근무한다. 아시아 총괄인 루는 서울로 출장이 비교적 잦은 편이다. 무리 없이 한 달에 닷새 이상은 서울에서 보낼 수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면 루와 나는 서로에게 몰두하고 배려했다.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연인들처럼 성격차이로 다투거나, 서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기운을 소진하기엔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애틋하리만치 짧았다. 한 번도 이견이 생기거나 다툰 적이 없다고 하면 주변인들이 의아해했고, 그런 반응을 보면 루와 나는 더 단단한 결속력을 느끼며 흐뭇해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의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던 지난 해였다. 여름휴가를 맞아서 루는 제 고향인 이탈리아로 나를 초대했다. 방학기간 동안 아들 재우는 전남편과 한 달을 보냈다. 회사에서 나는 이주 정도 휴가를 쓸 수 있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고, 그 여름 루와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사흘은 그의 어머니 집에서 지냈다. 프랑스 국경에 근접한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였다. 시차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피로해하며 이틀을 보내고 난 아침이었다. 바닥에 깐 요가매트 위에서 운동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거실 건너편 방에서 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 손을 작은 둥지처럼 모으고 있었다. 188 센티미터의 커다란 체격과 대조되는 앙증맞은 노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운동직후라서 내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숨이 가쁘게 차올랐고, 무엇보다 갈증이 일어서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 상자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의 외할머니가 그의 어머니에게 물려준 반지였다. 페루치 컷의 영롱한 빛 입자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반지는 아름다웠다.
    그날 점심 루의 외할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대도시에 사는 조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약혼반지를 끼고 나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다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전남편과는 결혼하고 일 년 후 헤어졌다. 전후로 몇 번의 연애들은 짧은 기간 동안 이어지는가 싶다가 이별로 끝났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쪽은 언제나 나였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내 감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해오지 않았는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루와 루의 어머니와 나는 바닷가 아파트 아래서 외할아버지를 기다렸다. 가족들 중 루가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이 외할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루를 보살펴주었다고 했다. 아버지 같은 존재와 소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많았고, 루는 그 추억담을 내게 말해주길 좋아했다.
    루의 외할아버지가 승강기에서 내렸다. 99세의 노인은 피노키오 동화에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인상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듯했다. 루의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서 걸어오는 외할아버지 쪽으로 다가갔다. 외할아버지가 두 팔을 벌려 나를 포옹하고 가슴팍을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식당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볕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물보라 치는 바다가 펼쳐진 절벽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각종 해산물과 빈대떡처럼 널찍하고 편편한 면에 바질 페이스토만 바른 파스타를 먹었다. 푸르쉐코와 백포도주를 곁들였다. 루의 외할아버지는 내 그릇과 잔이 빌라치면 음식과 술을 채워주었다. 식당 앞 바다 빛깔처럼 회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그윽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외할아버지와 자주 눈이 마주쳤다. 때마다 나를 안아주던 순간에 전해왔던 할아버지의 요동치는 심장고동이 되살아났다.
    루의 가족들은 루만큼이나 자애로웠다. 이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러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해서도 현재의 홍콩과 서울의 장거리를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는 간과할 수 없었다. 루의 어머니 집을 떠나기 직전 캐리어에 짐을 챙겨 넣으며 나는 루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기다렸다는 듯 루는 자상한 목소리로 이미 본사에 서울지사로 이직신청을 해두었다고 말했다. 재우 때문에 내가 홍콩으로 이주하는 건 당장 불가능했다. 전남편과 이혼할 당시 아들에 대한 나의 양육권과 친권을 국내로 국한한다는 데 합의했었다. 그땐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루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이 사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 자신이 이행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만약에 서울로 발령이 나지 않으면?
    나는 루에게 물었다.
    그러면 지금 상태를 유지하다가 재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네가 홍콩으로 이주하면 되지. 재우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재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일 년 반 정도 남았었다. 루의 명쾌한 답변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 남녀가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닌가. 루와 나는 둘 다 외동으로 자라서 독립적인 성향이었고, 연인의 부재가 힘겹다고 느끼기엔 각자 책임져야 할 일들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장거리연애, 국제커플의 문화적 차이와 같은 타인들의 비관적인 우려에 결코 지지 않으려는 의지도 결연했다. 두 사람이 한 지역에서 살 수 있느냐의 문제만 해결하면 결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이고 까다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문제를 직면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

 


    루와 나는 밀라노에서 이틀, 꼬모와 베로나와 파도바에서 하루씩 보내며 각 지역에 사는 루의 대학 친구들을 두루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숙소가 가까운 편이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수상버스에서 내린 후부터 길바닥이 몹시 울퉁불퉁했다. 루가 양 손으로 두 사람의 캐리어를 끌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열어두고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다. 캐리어 바퀴들과 인도 위로 솟아오른 모난 돌들의 마찰음이 연신 불안정하게 드르륵 울렸다. 마찰음의 장단에 맞추어 루는 수상도시인 베네치아가 100년 안에 침수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장황설을 늘여놓았다.
    이백 미터 쯤 나아갔을 때 캐리어의 바퀴 하나가 툭 떨어져나갔다. 나는 바퀴를 주어서 가방 속에 넣었다. 루가 내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다른 손으론 제 캐리어를 끌었다. 우리는 오렌지색 회칠을 한 낡은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구글맵이 가리키는 곳이었다. 건물 현관 옆에 붙은 주소를 확인했다. 베네치아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루의 친구가 알려준 주소와 동일했다. 우리가 사흘 동안 지내게 될 집은 건물 삼층이었다.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폭이 좁고 턱이 높은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루의 친구가 빌려준 집의 나무문이 우리를 환영하듯 활짝 열려있었다.
    실내 온도가 서늘했다. 루는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다가 킹사이즈 침대가 놓인 방에 캐리어 두 개를 내려두었다. 바깥의 공기가 들도록 아치형 창문을 열어두고 침대 위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며 럭비경기방송을 보았다. 나는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기 위해 채비를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저녁식사 자리에 어울릴 법한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홀터넥 저지 드레스였다. 옷장 문에 부착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침대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가 다가왔다. 섬세한 손길로 척추하단에서부터 어깨까지 어루만졌다. 왼쪽 어깨 끝에서부터 오른쪽 어깨 끝까지 루의 입맞춤이 물결을 이루었다. 루는 나를 안아 올리고 침대 쪽으로 걸었다.
    침대 위에서 루와 키스를 했다. 여독과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던 지난 며칠의 피로감 때문인지 흥분이 되지 않았다. 루는 내 뒷목에 묶인 드레스 끈을 풀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한 손으로 내 뒷목에 있는 루의 손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로 거친 수염이 웃자란 루의 턱을 살며시 밀어내며 속삭였다.
    지금 하면,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해서 번거로워. 그리고 나 배고파.
    루와 나는 곤돌라를 타고 아프레티보를 하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시간은 9시였다. 이탈리아에선 저녁식사를 9시 경에 시작하여 자정이 넘도록 먹는다는 사실을 여행 중 알게 됐지만, 평소 6시 경 저녁식사를 하는 내게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둘 다 출출했던 터라 저녁식사 전 가볍게 해물을 올린 치케티를 먹었다. 바다엔 석양이 지고 있었다. 요트와 곤돌라가 노을을 등지고 금빛 물결 위를 떠다녔다. 곤돌라 위에는 가족단위나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청혼을 하고 받는 연인들을 실은 곤돌라가 드물지 않게 지나갔다.
    비릿하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바람결에 이마 아래로 쏠린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내 눈을 바라보던 루가 물었다.
    혹시 나 만난 이후에 다른 사람 만난 적 있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장거리 연애를 하니까, 혹시라도 해서.
    쳇, 그런 실없는 말이 어디에 있어.
    나는 실소하며 잔에 담긴 푸르쉐코를 마셨다. 혀에서부터 시큼한 맛이 퍼졌다. 이런 질문을 하는 루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몇 번의 연애경험만으로 정확한 기준을 판단할 수 없지만, 내 경험들을 비교했을 때 루는 상당히 관대한 남자였다. 퇴근 후 친구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다가 루의 전화나 문자를 놓쳐도 의심하지 않았다. 술을 마신 친구가 이성이어도 추궁하지 않았다. 서울로 출장을 오면 루는 내 남자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스스럼없이 동석하기도 했다. 그들과 있을 때 조금도 예민하게 굴지 않았었다. 그런 루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어쩐지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날 저녁 집을 빌려준 루의 친구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대학시절 루가 소속돼있던 럭비팀 친구였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해산물 식당은 광장 인근이었다. 테이블이 다섯 개였다. 아담한 식당 크기에 비해 음악소리와 손님들이 내는 소음이 굉장히 컸다. 자주색 구슬커튼이 달린 구석 자리로 들어갔다.
    11시가 되기 전 하품을 쏟아내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있다가 같이 가자.
    루가 길고 두꺼운 팔로 내 허리를 휘감고서 말했다.
    피곤해.
    나는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루가 친구에게 나를 데려다주고 오겠다고 말하며 따라 일어섰다. 식당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루가 건물 위까지 따라오려는 걸 만류했다. 건물 앞에서 루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았다. 골동품처럼 생긴 금속성의 큼직한 열쇠였다.

 

*

 


    곧 나는 후회했다. 건물 현관을 들어서서부터 캄캄했다. 삼층 계단까지는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그 건물 전등 스위치위치는 알지 못했다.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벽을 집었다. 희붐하고 가느다란 불빛에 의존하여 조심조심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에서 넘어질까 봐 긴장을 했다. 손바닥에 축축한 땀이 배어 미끄러웠다. 놓칠세라 루가 준 열쇠를 손에 꼭 쥐었다.
    손전등 불빛을 문고리에 고정하고 하단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웠다. 열쇠가 조금 돌다가 멈추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보았지만 더 돌아가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쇠를 끼운 채 문고리를 잡고 들추어서 열쇠를 돌려보기도 하고,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조금 더 승강이를 벌이다가 포기했다. 문에 기대고 주저앉았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골몰했다. 열리지 않는 나무문과는 무관한 초저녁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혹시 나 만난 이후에 다른 사람 만난 적 있어? 루의 질문에 이어 내 가슴에 묘하게 피어오른 이물감이 되살아났다.
    휴대폰 손전등 불빛에 의존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힐을 신고서 어둡고 폭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느라 중심을 잡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넘어질 것 같았다. 계단에 앉았다. 힐을 벗어서 힐의 끈을 손목에 걸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한 칸 씩 엉덩이를 미끄러트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루가 여기까지 데려다주었을 땐 몰랐는데 베네치아의 밤은 음산했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지금 쳐다보지 마’에 불쑥 등장하는 90센티미터 난쟁이가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골목에는 인적이 없었다. 사방으로 난 운하에선 지린내가 낭자했다. 골목마다 올라선 건물들과 운하 위 아치교는 죄다 비슷한 외관이었다. 어느 다리를 건너서 왔는지조차 헷갈렸다. 과연 그 식당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다리를 건너서 길목을 살폈다. 지났던 다리를 도로 돌아왔다. 원점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다음 다리, 그 다음 다리를 건너서 골목들을 기웃거리고, 다시 돌아와서 이전의 다리로 가보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루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어둑한 골목들을 헤매는 사이 불현듯 솟아오른 작은 의문점은 그림자처럼 길쭉하게 늘어졌다.
    가까스로 골목 모퉁이에 작은 불빛을 밝힌 식당을 찾았다. 루는 친구와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중이었고, 그 모습을 보자 공연히 기분이 구겨졌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나는 냉랭한 어조로 루에게 물었다. 루가 웃음을 거두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로베르토와 얘기 중이었어. 보다시피 여긴 음악소리도 크고. 근데 왜 다시 돌아온 거야?
    문이 열리지 않아.
    아까 열쇠 줬잖아.
    열쇠로도 열리지 않아.
    그럴 리 없는데.
    다른 열쇠 준 거 아니야?
    열쇠라곤 그것 하나뿐이야.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의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베네치아의 건물들이 오래되고 낡아서 문의 경첩이 맞지 않아 종종 생기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은 숙소로 돌아갔다. 어둠 속을 걸으며 문이 열리지 않은 게 정말로 오래되고 낡은 문 때문인지, 혹시 열쇠가 잘못 된 열쇠는 아닌지, 루의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열쇠를 가지고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닌지, 그보다는 열쇠공을 불러서 새 열쇠를 맞추는 게 나은 방법이 아닐지, 머릿속으로 재차 따져보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루와 루의 친구가 각자의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루의 친구는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웠다. 바로 열릴 듯했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두 남자가 문과 씨름을 했다. 나는 계단참에 앉았다. 졸음이 밀려와서 머리통을 찬 벽에 기대었다. 문은 그대로 닫힌 채였다. 루의 친구가 이탈리아어로 루에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루의 친구는 아까처럼 예사로운 일이라는 듯 느긋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물었다. 루가 친구의 말을 내게 영어로 통역해주었다.
    열쇠는 이 열쇠가 맞대. 근데 여기 문들이 워낙 오래되고 낡아서 생긴 일이래.
    차라리 열쇠공을 불러. 여기서 밤을 샐 순 없잖아.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는 자정이 지난 시간에 근무하는 열쇠공은 없다고 대답했다. 소방서에 전화를 걸겠다고 덧붙였다. 베네치아에서 문과 관련된 문제는 소방서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불길을 잠재워야 할 소방관이 문을 따러 온다는 사실이 어쩐지 생뚱맞았다. 나는 미덥지 않다는 듯 미간을 오므렸다.
    베네치아의 문이 열리지 않는 건 열쇠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문의 문제이니까.
    루가 말했다. 나는 루의 말에 응대하지 않았다.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열쇠로 열지 못하는 문이라니. 쉬이 납득되지 않았다.

 

*

 


    루의 친구는 소방관을 호출한 후 제 집으로 돌아갔다. 루와 나는 계단참에 앉아서 소방관을 기다렸다. 내 휴대폰은 방전되어서 루의 휴대폰 손전등만 켜두었다.
    아까 나한테 그 질문을 한 의도가 뭐야?
    루에게 물었다. 초저녁의 석양 아래서 루가 무심히 내뱉은 그 질문을 나는 저녁 내내 곱씹고 있었다. 질문의 의도를 묻고 싶었지만 곧바로 재우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해야 했고, 캐리어 바퀴를 고치러 백화점에 가야했고, 바퀴를 수선하는데 한 달이 소요된다고 해서 새 캐리어를 샀고, 밀라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루의 가족들에게 선물할 쿠키를 사고, 루의 친구와 저녁식사를 먹느라 내내 미루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루와 내가 쌓아온 견고한 평화지대를 무너뜨리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슨 질문?
    루가 되물었다.
    아까. 혹시 내가 너 만난 이후 다른 사람 만난 적 있는지 물었잖아.
    루가 대답하려고 입술을 떼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루가 전화를 받는 동시 손전등 빛이 꺼졌다. 그 바람에 계단참은 암흑이었다. 루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루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먼저 간 친구라고 말하며 루는 다시 손전등을 켰다. 사라졌던 루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나마 윤곽을 드러냈다.
    통화 전에 내가 물었던 거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어?
    아, 그거.
    저녁 내내 기분이 이상했어. 네가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아니잖아.
    다시 휴대폰 벨이 울렸다. 루의 휴대폰 액정을 보자 루의 엄마였다. 루가 전화를 받고 손전등 불빛은 다시 꺼졌다. 이번에도 그의 얼굴이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그는 엄마와는 좀 더 길게 통화했다. 이탈리아는 모계사회이다. 루를 만난 이후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터득한 사실이다. 아들이 모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글을 읽었었다. 유럽인들은 이탈리아 남자를 마마보이라고 비약하며 놀리기도 한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소수 이탈리아 남자 동료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누군가와 길게 통화를 한다. 처음엔 통화 상대가 여자 친구이거나 아내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대부분 통화상대는 그들의 모친이었다.
    루도 그들과 비슷하게 엄마와 자주 통화했다. 안건만 간략하게 주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점이 내겐 조금도 껄끄럽지 않았다. 루의 어머니는 어머니로서나 애인의 어머니로서 훌륭했다. 그녀는 나처럼 싱글 맘으로 루를 양육했었다. 내 이혼 전력과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루가 결혼한 적 없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재우의 선물까지 챙겼다. 내 입장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해주는 따뜻한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루가 통화하는 동안 나는 루의 팔마디에 내 몸을 붙였다. 그렇게 루의 체온을 느끼는 동안엔 어둠 속에서 사라진 루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어서였다.
    전화를 끊고 루는 손전등을 켰다. 계단참에서 내리쏜 빛이 문에 가닿았다. 나무문은 군데군데 벗겨지거나 닳았다. 아무리 낡은 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문의 문제일 리 없어. 열쇠가 문제인 거야. 고개를 돌리고 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그 질문. 별 의도 없었는데.
    루가 심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거 같지 않은데.
    정말로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어. 나 잘 알잖아.
    루의 말과는 반대로 나는 이 남자를 잘 모른단 생각이 스쳤다. 일 년 넘게 만나왔지만 장거리 연애였다. 한 달에 한두 번, 며칠 만나는 동안 연인들이 흔히 겪는 갈등과 다툼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거라곤, 루가 단순하고 성실하며, 운동과 친구를 좋아하고, 잠들기 전 럭비방송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음식과 술과 패션에 돈을 아끼지 않는 전형적인 이탈리언이라는 것뿐이었다.
    연인으로서의 루는 딱히 이렇다 할 문제점이 없었다. 매일 아침과 점심, 알람시계처럼 제 시간에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보내왔다. 틈틈이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내 기분상태가 어떤지, 다정한 문자로 질문했다. 퇴근길에는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저녁식사 자리의 음식이나 야경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잠들기 전 잘 자라는 말과 사랑의 인사를 보내왔다. 파스텔 톤 꽃다발과 내가 선호하는 이탈리아 브랜드의 맥주 한 박스를 매달 보내주었다. 낭만과 일관성과 책임감을 두루 갖춘 남자였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고, 그 문제가 무언지는 당장 알 수 없으나, 마치 베네치아의 문처럼 열쇠가 있어도 열리지 않는 종류의 문제라고 느꼈다.
    혹시 나 만난 이후 다른 사람 만난 적 있어?
    동일한 질문이었지만 이번엔 내가 루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루는 노을 진 바닷가에서의 나처럼 실없는 소리를 들은 양 허탈하게 웃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 휴대폰 배터리마저 방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루는 웃지 않았다. 웃었다고 해도 암흑 속이어서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의 입술 틈에서 흘러나온 건 비단 꺼지는 한숨소리였다.

 

*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루와 나는 공식적으로 약혼한 사이였다. 나의 왼손 약지에는 그의 집안에서 유산처럼 물려온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루와 나는 문이 열리지 않는 베네치아의 낡고 컴컴한 건물 계단에서 합의한 것을 수행했다.
    검은 일주일. 나는 루에게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은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루는 망설였지만 그 순간 다른 방도가 없어서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약속했던 대로 루와 나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 기간은 두 사람 다 자유였다. 모든 비밀은 비밀의 존재 자체로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연인이었지만 연인 사이에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정의된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둘 중 누구도 지적하거나 책망할 수 없었다.
    검은 일주일 동안 내게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에도 그랬지만 초등학교 동창이자 동네 친구인 지운을 한 번씩 만났다. 지운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루와 썸을 탈 무렵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나처럼 양육하는 자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운도 이혼을 했다. 자유연애주의자이다. 이 세계에서 무엇이든 성립할 수 있다고 여기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 그리고 지난 이 년 동안 나와 가장 친한 사이였다.
    지운과 육체적 관계를 한 적은 없었다. 지운과 나는 친구관계 이상의 그 무엇도 시도하지 않아왔다. 이삼일에 한 번 정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한 동네 이웃이니 둘 중 한 명이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거나 심심하면 문자를 보냈다. 집 근처에서 편한 츄리닝 차림으로 만나서 단골 바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셨다. 자고나면 기억에 남지 않을 종류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운은 데이트하는 여자들에 대해 떠들었고, 나는 격려와 아우성을 적절히 섞어가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검은 일주일이 열 번 지났다. 열한 번째가 오기 전 지운을 만났다. 주말 낮이었다. 만나기로 한 곳은 지하의 바였다. 시간을 감각할 수 없었다. 지운과 나는 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으면 상대의 손이 슬쩍 닿기도 하는 좁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었다. 지운은 한 달 동안 만났던 여자와 며칠 전 헤어졌다고 말했다.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라서 새롭지 않았다. 옹색한 무대에서 재즈 음악가들이 귀에 익지만 곡명을 알 수 없는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운은 엇박자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연애가 이렇게 진부해질 날이 올 줄 알았을까.
    왜 그렇게 진부한데?
    난 불안정성에 매혹되는데 데이트하는 여자들은 안정성을 요구하니까.
    지운은 어깨를 으쓱하며 잔을 비웠다. 나는 지운의 빈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내 잔도 단숨에 비웠다. 그 자리에서 와인 두 병을 비웠다. 지운은 입가심으로 럼 두 잔을 주문해서 내게 한 잔 내밀었다. 럼을 마신 후에야 술기운이 확 올랐다.
    너 정말로 결혼할 거야?
    지운이 물었다.
    응.
    루가 그만큼이나 좋아?
    나도 네가 차버린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아.
    에이, 그런 여자가 검은 일주일을 제안했다고?
    지운이 입가에 애매한 미소를 걸치고 말했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지운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엔 모든 게 괜찮았다. 먼 거리에 거주하는 연인이 제 육체적 갈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밀어낼 수 있었다. 그 무엇도 심각하지 않았다. 일, 양육과 교육, 혼자 사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아버지, 사회적 책무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천진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냥 즐거웠다. 그래서 지운과 있을 땐 자주 루의 전화나 문자를 놓치곤 했었다.
    너, 오늘 예뻐 보인다.
    나는 지운의 시시한 말을 듣고 시시하게 웃었다. 지운이 손가락을 내 손등에 대고 추처럼 움직였다. 나는 그런 지운을 저지하지 않았다. 바를 나가면서 지운은 제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졸음이 몰려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운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지운과 나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루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날은 루가 나와 관람하기 위해 홍콩 럭비 7 VIP 티켓을 사둔 날이었고, 나는 루와의 약속을 까마득히 잊었던 것이다. 나는 약속한 날짜에 맞춰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조차 예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은 일주일이 아닌 날이었다. 루와의 신뢰를 지켰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지운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베네치아가 침수하는 꿈을 꿨다. 낡고 오래된 나무문짝들이 부풀어 오른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며칠 후 나는 루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약혼반지는 빼서 상자 안에 도로 넣어두었다.

 

*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건물 계단참에서 루는 정직하게 대답했었다. 외도를 했었다고. 감정적인 교류는 없었으며 오직 육체적인 갈급을 해소하려고 만났었다고. 딱 한 번뿐이었다고.
    근데 왜 나에게 청혼한 거야?
    나는 루에게 물으며 내내 그의 팔마디에 기대고 있던 내 몸을 떼어냈다. 그러곤 바로 후회했다. 어리석고 유치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이십 대였다면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신감을 느끼고, 루를 원망하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화를 냈을 터이다. 하나, 초로의 건장한 성인남자가 번번이 일어서는 육체적 갈망을 외면하기 쉽지는 않을 거라는 짐작을 여러 번 했던 차였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일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각오해오지 않았던가.
    루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너를 만나기 전에 여섯 번의 연애를 했었어. 그런데 한 번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이번은 달랐지. 평생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
    확신이라…….
    나는 자신 없는 어조로 말미를 흐렸다. 그 단어를 뇌까리는 동안 목덜미가 갑갑하게 죄여왔다. 별안간 베네치아의 물이 차오른 듯 질식할 것만 같았다. 확신. 나는 물속에 잠겨 이 단어를 발설하면 어떤 표정과 입모양을 지을지 뜬금없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실수를 저지른 내가 할 말은 아니라는 거 알아.
    루가 미안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아니, 그런 것 때문은 아니야.
    솔직히 나는 루의 확신보다 내 안의 확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가기 전 몇 번이나 갈지 말지 망설였다. 단기로 이삼일 동안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과 2주라는 긴 시간 내내 함께 지내는 것은 달랐다. 이미 갑갑함과 희미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커플 카운슬링을 받아볼까?
    루가 물었다.
    아니.
    헤어지고 싶어?
    모르겠어.
    좀 더 생각하고 대답해줄래?
    이 반지는 어떻게 할까?
    더 생각해보고 네가 헤어지고 싶으면 그때 돌려줘.
    대화가 끝난 후에도 소방관은 도착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보려고 해도 불빛 한 점 없는 계단참을 내려가는 건 위험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칠흑처럼 어둡고 서늘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외도를 했던 여자가 누구인지, 내가 아는 여자인지, 혹은 육체적 관계를 가진 후에도 그 여자와 계속 연락하는지를 묻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폐안에 물이 팽창한 듯했고, 그 순간이 견딜 수 없어서 불쑥 검은 일주일을 제안했던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지나서야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세 명의 소방관들이 손전등을 휘저으며 계단으로 올라왔다. 그 빛에 의해 루의 윤곽이 제법 선명히 드러났다.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만 해도 활기차고 생기로 넘기던 루는 그 계단에서 관에 누워있는 시체처럼 핏기가 없고 수척했다.
    자처럼 기다란 장비를 들고 나타난 소방관들은 루의 친구와 같은 반응이었다. 범상한 일이라는 듯 웃고 있었다. 심지어 문을 곧장 따지 않고 난간과 벽에 기대어 루와 잡담을 나누었다. 느긋한 미소들을 보자 짜증이 치밀었다.
    베네치아가 침수되면 이 문을 열거야?
    나는 비꼬는 투로 루에게 따졌다. 루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소방관들과 잡담을 나누며 어른거렸던 웃음기가 얼굴에서 지워졌다. 소방관 한 명이 너털웃음으로 베네치아에선 문이 열리지 않는 게 흔한 일이며, 누구도 이 문제에 항의하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나는 계단에서 일어났다. 루에게 성큼 다가갔다.
    문을 열 수 없는 열쇠라니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문이 열리지 않는 게 열쇠 때문인지 너희들 말처럼 오래되어 낡은 건물과 문 때문인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 열쇠 때문일 수도 있는 거잖아.
    날카로운 내 목소리는 울음으로 젖었다.

 

*

 


    루는 금요일 저녁 서울로 왔다. 임신소식을 듣고 나흘 후였다. 루가 투숙하는 호텔 방호수를 알려주면 내가 찾아가는 식이었는데, 이번에 루는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곧장 나를 데리러 왔다. 루가 택시에서 내렸다. 육주만의 재회였다. 물리적인 재회이기도 하지만 암묵적으로는 이별 후 재결합이어서 분위기가 다소 서먹서먹했다. 인도에서 마주 선 루와 나는 예전처럼 무람없이 서로의 시선을 맞추거나 장난을 치지 못했다. 루는 어색하게 팔을 벌려서 나를 안았다. 우리는 인도에서 잠시 포옹하고 서있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방에서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루가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룸서비스로 음식을 주문했다. 서울의 야경 한 조각을 흘긋거리거나 각자의 휴대폰을 확인하며 음식을 먹었다. 나는 샤워를 한 후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루는 테이블을 침대 언저리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 위에 내려둔 노트북을 열었다. 넷플릭스에 로그인했다. 육주 전 만났을 때 함께 보았던 미드 홈랜드를 켰다.
    나는 노트북 가까이 누웠다. 루가 내 등 뒤에 누웠다. 모로 누운 채 포개어져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지금 보고 있는 에피소드를 이미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루도 그럴 거였다. 어쩌면 루와 내가 보는 거의 모든 에피소드들은 이미 다 본 것일 수 있었다. 루는 내 아랫배 위에 제 손을 가만히 대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귓가에 루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루는 내 귓불에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했다. 엉덩이 꼬리뼈에 닿은 루의 아랫도리가 딱딱했다. 나는 임신초기라서 조심하는 게 나을 거라고 속삭였다. 루의 뺨을 쓰다듬었다. 루가 체념에 잠긴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제우스와 아폴로, 그리고 내 사랑, 잘 자.
    풋, 이 아이들이 남자아이라고 어떻게 확신해?
    딸이어도 제우스나 아폴로 같을 거야. 널 닮았다면.
    루와 나는 쌍둥이 태명에 대한 잡담을 잠시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

 


    7주 차였다. 재우는 쌍둥이 존재를 반겼다. 지나가다가 한 번 씩 내 배에 손가락을 튕겼다. 영어학원을 다니며 짝사랑했던 여자 친구가 데이트신청을 수락한 날엔 손가락을 튕긴 후 귀여운 녀석들, 이라고 홀연한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제 외할아버지에게 두둑한 용돈을 받은 날엔 나중에 우리 엄마가 늙어서 기운이 없으면 내가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마, 라고 허세를 부렸다.
    루는 나와 재우와 제우스와 아폴로가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해주었다. 루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루가 레스토랑 직원에게 부탁해서 만든 카드와 요리와 샴페인 한 병이 테이블 위에 차례로 놓였다.
    루는 참 스윗해.
    재우가 카드를 열어보며 말했다. 재우는 처음부터 루를 좋아했다. 솔직히 루가 아닌 그 어떤 남자라도 좋아했을 것이다. 눈에 띄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지 않는 한 그랬을 것이다. 이혼 후 사오 년 쯤 지나서부터였다. 열두 살 무렵의 재우는 내게 연애를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엄마는 아직 젊고, 충분히 예쁘다고, 과장법을 보태어 부추겼다. 일과 양육으로 바빠서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하자 데이팅 앱을 제안하기도 했다. 어린 아들의 격려가 낯설었다. 너나 제발 여자 친구 좀 사귀어라. 괜스레 재우를 떠밀었다. 내 친구들도 그런 재우의 태도가 독특하고 희한하다고 입을 모았었다. 그러나 재우처럼 엄마와 둘이 살았던 루는 이 말을 듣고 재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었다.
    제우스와 아폴로야, 건강하게 자라다오. 엄마, 나 얘들 데리고 대학갈까?
    재우가 손을 뻗어서 내 배 위를 간질이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샴페인 병을 쥐었다. 예외를 두었다. 샴페인 병을 따서 재우의 잔에 따라주었다. 내 잔에도 한 모금만 부었다. 재우가 술잔을 들었고 나도 잔을 들었다. 짠 소리를 내며 부닥쳤다. 모자가 나누어 마시는 첫 술은 달콤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내가 쌍둥이 할머니인 줄 알겠다. 내가 출산하면 네가 스무 살이잖아. 이미 성인이라고.
    아직 엄마는 그 정도로 늙어보이진 않아. 근데 루는 언제 서울로 발령이 난대?
    몰라. 그리 빨리 나진 않겠지.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올 해가 지나기 전엔 루가 서울로 왔으면 좋겠다.
    재우는 내년에 서울을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내의 대학 몇 군데에 지원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재우의 마음은 확고했다. 그게 어느 곳이든 태평양을 건너가 새로운 세계에서 자기만의 삶을 구가할 것이다. 재우는 그 전에 루가 서울에 오길 바랐다.

 

*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저녁에 먹은 음식을 모조리 게워냈다. 탄산수에 레몬과 꿀로 재워둔 청을 섞어서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이튿날 정기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갈 준비를 해두었다. 산모수첩을 핸드백 속에 챙겨 넣었다. 종아리와 발이 부어서 발 받침대에 두 다리를 올려두었다. 소파에 앉아서 일자로 뻗은 다리 위에 노트북을 켰다.
    이튿날 퇴근을 한 시간 앞당겼다. 산부인과로 갔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진료의자에 누웠다. 의자가 젖혀지는 동안 커튼을 열고 들어온 여의사가 손 장갑을 꼈다. 배 위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기계를 문질렀다. 차가운 기운이 온 몸으로 번졌다. 지난번처럼 어두운 화면 위에 뿌연 것들이 흩어졌다가 모아지길 반복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 두 개의 점이 보였다.
    의사는 멈추지 않고 초음파 기계를 쓱쓱 문질렀다. 아랫배 오른쪽 부위에선 뭉툭한 기계 끝을 꾹 누른 채 한참 고정해두었다. 초진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의사가 기계를 내려놓고 손 장갑을 벗으며 정기검진결과를 알려주었다. 설마. 귀를 의심했다. 누워서 두 눈을 끔뻑거렸다. 얼떨떨한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진료의자가 세워진 후에도 바로 내려오지 못했다. 삼주 전 피운 담배 한 개비와 전날 마신 샴페인 한 모금이 뇌리를 스쳤으나 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운의 전시회 오프닝에는 가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어스름 속 인도를 걸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몇 달 전에도 초기에 계류되었다. 노산이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 그때와는 다른 기이한 감정이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슬프기보단 섬뜩한 기운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쌍둥이 태아들 중 하나의 심장이 멈추었다고 말했다.

 

*

 


    더 충격적인 건 의사가 그 후에 한 말이었다. 다른 태아의 심장은 아주 건강하게 뛰고 있어요. 의사는 ‘건강하게’에서 발음을 부쩍 강조했다. 곁에 있던 하나의 생명이 이미 죽었는데 여전히 다른 하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쉬이 용인되지 않았다. 심지어 건강하게 살아서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있다니. 며칠 후 루가 오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왔다. 이번에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 앞으로 데리러 왔다. 저녁 8시 즈음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 문을 열어두고 나와서 루가 물었다.
    쉬고 싶어, 걷고 싶어?
    루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사려 깊었다.
    루와 나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야외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수영장 벽을 따라 붙어있는 조명등들의 노란 불빛이 수면을 뚫고 일렁였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식힐 겸 수영장 물속으로 몸을 밀었다. 루가 뒤따라 들어왔다. 루와 나는 물속을 천천히 걸었다. 이틀 전 산부인과에서 들은 검진결과를 전했으니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을 텐데 루는 그에 대해선 이내 말을 아꼈다.
    체온이 내려갔다. 찬 기운이 끼쳐와 몸서리쳤다. 팔로 수면을 저으며 걷던 루가 우뚝 멈추었다. 반걸음 앞에 있던 나는 루를 돌아보았다. 루의 커다란 눈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물기에 젖은 음성으로 루가 중얼거렸다.
    제우스일까, 아폴로일까?
    루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헷갈리는 모호한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질문에 가까운 것 같아서 대답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나는 입술을 달싹했다가 도로 다물었다. 내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헷갈렸다. 제우스인지 아폴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자궁 안에서 생존한 태아를 묻는 건지 죽은 태아를 묻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생명과 죽음을 분별한 질문이라고 해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베네치아의 문이 열리지 않은 게 열쇠 때문인지, 문 때문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것처럼. 일순 사위가 어두워졌다. 밤 10시가 되자 야외수영장의 모든 조명등과 가로등이 꺼져서였다. 루와 나는 수영장 한 가운데 물속이었다. 고요한 어둠에 묻혀서야 비로소 루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루의 커다란 몸을 감싼 물결의 파동이 내 살갗으로 전해왔다. 베네치아 건물 안에서의 골진 어둠보다는 미약하게나마 더 밝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불시에 마주한 어둠 속에선 모든 게 불분명했다. 루와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곤 하나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음이 여전히 생존한 생명의 곁에 있는데, 죽은 게 어느 쪽인지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공존한 죽음과 생명처럼 루와 나는 여전히 함께였다.

 

 

 

 

 

 

 

 

 

 

문서정
작가소개 / 이홍 

1978년생. 서울. 서울예술대학 졸업. 장편소설 『걸프렌즈』로 2007 ‘오늘의 작가상’ 수상. 경장편『성탄 피크닉』, 단편집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장편 『100개의 리드』 출간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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