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외 1편

[창작시]

 

 

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황성희

 

 

 

 


   최승자를 읽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시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계보다는
   자신의 시를 살아낸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감당해야 하는 게 실존이라면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물의 귀퉁이가 투명해진다 싶은 날에는
   얼른 뛰어가 텔레비전을 켠다


   거기에는 이국의 전쟁고아들도 있고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환자들도 있다
   후원단체의 스케치북에 감동하는 아버지와
   주민센터의 도배로 곰팡이가 숨겨진 방에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가족도 있다


   그들 옆에서 잠시 나의 허공을 잊고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후원계좌를 받아적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한 게 최고야
   먼 세계의 메아리 같은 내 목소리를 듣지만


   숨소리의 직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시각각 실존의 정면이다


   대대로 이어져 온 나는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이 세계는 어떤 기원에 대한 상동과 상사의 기관인지


   유서 깊은 벽에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1)이 되어
   명상을 가능하게 했던 햄버거2)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지만
   어떤 식으로든 없어지고야 마는


   구체적 생애에 대하여 생각한다

 

   1)  최승자 「일찌기 나는」 중에서 부분 인용.
   2)  장정일의 시 「햄버거에 관한 명상」의 제목 변용.

 

 

 

 

 

 

 

 

 

 

 

개 한 마리의 지구력

 

 

 

 


   관사를 지키던 개가 쥐약을 먹고 자꾸 죽어 나갈 때
   천장의 쥐들이 그토록 피해 달아난 건 무엇이었을까


   달이 뜬 마당 가득
   검은 자정이 차오르면


   나는 목줄을 끌며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개를
   살며시 열어놓은 방문의 좁은 틈으로 지켜보았다


   개는 자신이 개라는 사실에 흥분한 듯도 보였고
   두려운 듯도 보였고 견딜 수 없는 듯도 보였다


   너덧 발짝도 안 되는 짧은 쇠줄의 세계 안에서
   귀 안으로 쏟아지는 밤의 소리를 주워 담으며


   경쾌하기 짝이 없는 발자국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마치 땅에다 새겨넣는 주문 같았다


   제발 변해라
   쥐약을 먹기 전에, 내가 아닌 그 모든 것으로


   열린 방문의 좁은 틈 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친 개는
   무언가 들킨 듯 정지하더니 다시금 걸음을 내디딘다


   쇠줄이 당겨질 때마다 멈추지만 곧 다시 나아간다
   지조란 그러한 것, 한 방향에 대한 모진 습관 같은 것


   개는 혀를 내밀어 양쪽 입가를 교대로 핥아 내린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보이잖아


   개는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대신
   네 발을 쉼 없이 내디디며 시간을 밀어낸다


   오로지 자신이 지닌 개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개를 버텨내고 있었다

 

 

 

 

 

 

 

 

 

 

 

 

작가소개 / 황성희

1972년 경북 안동 출생.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작품집으로 『앨리스네 집』, 『4를 지키려는 노력』, 『가차없는 나의 촉법소녀』, 『눈물은 그러다가 흐른다』가 있음.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