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곡곡] 천안 가문비나무아래 (제3회)

[책방곡곡]

 

 

 

천안 가문비나무아래(제3회)

 

 

사회 : 박진숙
참여 : 우연주, 이정희, 이영민, 한승연
책 : 조해진, 『환한 숨』

 

 

 

 

박진숙 :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작품집 『환한 숨』을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전체적인 감상을 먼저 나누어 주세요.

 

한승연 : 저는 조해진 작가를 처음 알게 되어서 이 작품집으로 책모임을 하기 전에 『완벽한 생애』라는 장편을 먼저 읽었어요. 단편집을 읽기 전에 작가가 쓴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문체로 쓰는지 어떤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인물의 일생을 읽다 보니까 슬프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기록을 하기 위해 한 번 더 읽다 보니까 플래그를 정말 많이 붙일 정도로 좋은 문장이 많았습니다. 이 모임 후에 친구들과도 이 책으로 모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하나의 숨」이라는 작품이 가장 와 닿았는데, 예전에 읽은 책 중에서 미성년자의 산업재해를 다룬 작품들이 같이 떠올랐어요.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는 최진영 작가의 『일주일』이 생각났고요. 작품 속의 인물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취업률이 떨어지니까 학교 측에서는 버티기를 권유할 뿐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해주지 않는 현실이 마음에 안타깝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의 숨’이라는 제목은 하나가 내쉬는 숨이 결국에는 우리에게도 돌아온다는 사실, 산업재해와 우리가 무관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해서 아주 의미 있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이정희 : 『단순한 진심』을 읽을 때도 슬픔이나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특별하게 느껴지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집도 마치 앞의 결과 뒤의 결이 다른 파이처럼, 아프긴 아픈데 어떻게 아픈 건지, 슬프긴 슬픈데 어떻게 슬픈 건지 잘 느껴지게 표현하고 있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과해 버리거나 뭉뚱그려 받아들이는 미묘한 차이를 섬세하고 풍부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숨」에서 하나 담임선생님이 비정함에 관해 얘기하는 부분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는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섞어가며 그렇게 말을 이었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쉬운 단념에 사나워졌던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공평하게 비정하다면 한 사람의 비정은 모두의 비정으로 희석된다고, 세상 어디에도 더 비정한 비정은 없다고, 그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 「하나의 숨」 96쪽

 
이 부분이 마음에 너무 와닿았어요. 그리고 하나의 담임교사가 기간제 교사여서 2주 뒤에는 계약이 끝난다는 것을 하나 어머니가 알게 되었을 때, 하나 어머니의 체념하는 듯한 표정 변화가 눈에 그려졌어요. 제 얼굴이 화끈화끈해질 정도로, 제가 마치 택시 기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요. 「경계선 사이로」도 무척 재미있었고, 「문래」의 문장들도 그 ‘차이’를 고민하며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래그를 붙이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이 작품집을 읽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주 : 『단순한 진심』을 읽을 때는 ‘이름’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작품집은 유독 ‘은유’가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매우 독특하고 신선하면서도 의미가 잘 와 닿았습니다. 놀라운 은유가 많았고 작가가 비유하고 묘사한 표현들이 독자의 마음에 그대로 이미지화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다가 아닌 강에 나타난 갈매기는 꿈과 현실 사이의 통로에서 길을 잃은 천사의 은유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 「하나의 숨」 101쪽

    시간이 멈춘 듯 그녀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이 터미널 대합실의 지붕을 뚫고 내려와 조금씩 그녀의 몸에 쌓여가는 장면을 나는 상상했다. – 「눈 속의 사람」 199쪽

 
그리고 작품 대부분이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각각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숨」을 읽으면서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들을 회사에 내보내기가 무섭지만, 취업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보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시던 어떤 선생님 생각이 났는데, 이 작품 읽으면서 그 아이들의 현실이 매우 슬펐습니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일을 하러 간 노동자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야 하는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높고 느린 용서」에서는 피해자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는 기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 영화감독, 설치예술가, 증언록 채록자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이 등장해요. 기록의 의미와 가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영민 : 조해진 작가는 ‘우리’의 이야기, 영웅도 아니고 독특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나, 나의 이웃, 나의 친구의 이야기. 요양보호사를 비롯해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흔한 이야기인데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 거죠. 흔한 이야기여도 자세히 보면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요. 작가는 자세히 볼 줄 아는 사람인 거죠. 요즈음 질문을 냉소적으로 던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작품집들이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냉소적이지 않은 질문을요. 이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다 한심한 이야기지만, 각자의 아픔과 슬픔이 엉겨 있는 이 세상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들인 것 같습니다.

 

박진숙 : 저는 이 작품집에 좀 압도되었습니다. 「문래」라는 자전적인 작품에서 작가는 워싱턴에 갔을 때 빈민가가 있는 워싱턴 북부를 찾아갑니다. 또 다른 ‘문래’를 만나러 가는 거죠. 작가는 소설가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문래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작가 스스로는 문래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계속 문래를 복원하고 가난의 현장, 죽음의 현장, 상처의 현장, 고통의 현장에 가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현장을 정교하게,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으려고 열정과 성실로 들여다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철학이 없는 언어가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는데, 철학이 있는 언어, 철학이 있는 문장을 쓰려고 단련한 노력의 결과가 이 작품집인 것 같아요. 문장을 단련한 게 아니라 시선 자체를 단련하고 삶 자체를 단련해 온 분이라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집을 읽고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늘 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데, 이 작품집은 줄긋기를 포기했습니다. 다들 비슷하실 텐데, 특별히 인상적인 문장이나 장면들을 한두 군데만 나누어 주시겠어요?

 

 

이영민 : 저는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라 좀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죽었는데, 죽었다는 걸 알고 느낄 수 있는 거야. 죽었다는 걸 아는 상태는 영원할 거잖아. 죽음처럼, 안 그래? – 「환한 나무 꼭대기」 19쪽

 
죽었는데, 죽었다는 걸 아는 게 왜 무서울까? 영원히 그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무섭다고 표현을 한 건데, 혜원의 공포심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어요.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라고 물으면서 말을 시작해서 잔뜩 기대하고 귀를 기울였거든요. 그 대답이 낯설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사람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혜원은 무엇이 두려운가에 대한 굉장히 새로운 대답을 해준 셈이죠. 납득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요.

 

이정희 : 저는 강희의 상황과 선택이 너무 낯설고 이해가 잘되지 않는 면이 많았어요. 혜원의 아들에게도 혜원의 동생에게도 그 집의 존재에 대해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강희가 어린 나이에 출가했을 정도로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너무도 이해되지 않아요. 유족들에게 유산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닐까 싶어서요.

 

이영민 :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연구자가 25년 동안 도시빈민 가족을 관찰한 기록인데요. 그 책을 쓴 중산층 연구자는 관찰 대상인 도시빈민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잖아요. 연구자에게 당연한 삶의 양식이나 윤리의식이 빈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요. 한 사회의 문화라는 것은 대부분 중산층 기준이잖아요. 유산이나 재산과 관련된 문화도 그렇고요. 강희도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사회의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인물,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현실에 떨어진 상황에 처한 인물이잖아요. 시대적인 것과 엮여 있기도 할 테고요. 그래서 저는 이 설정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강희에게는 자연스러운 거죠.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선택이 더 타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여기 이렇게 모여서 책 모임을 하고 있는 우리들도 어느 정도는 중산층 문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잖아요.

 

우연주 : 강희도 옳지 않다는 의식은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탈영병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정희 : 중산층 이야기가 나오니,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는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고 유리그릇을 쓴다고 얘기했더니 한 분께서 그건 유리그릇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햇반 데워 줄 시간도 없는 엄마들도 있다고 말씀하셔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많고,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박진숙 : 그런 점에서 소설이 자기의 세계를 끊임없이 넓혀 줄 수 있는 너무도 감사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저는 SF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최근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SF소설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소외를 논하는 최적의 장르라고 얘기한 부분을 읽으면서 SF소설도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영민 :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나오미 크리처)』 추천합니다. 이 작품집과 결이 비슷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요.

 

박진숙 : 네. 또 인상적이었던 다른 부분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영민 : 최근 용서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할 기회가 많아서였는지 「높고 느린 용서」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용서는 그 사람이 저만큼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표현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고통에는 저에 대한 미안함뿐 아니라 그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 포함되어야 하고요. – 「높고 느린 용서」 214쪽

우리 사회는 특히 성폭행과 관련해서는 너무 쉬운 용서를 사람들이 요구한다고 생각을 해왔었어요.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식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예전에는 성폭행 가해자의 아내가 이런 ‘용서 구하기’를 많이 했어요. 가해자는 가만히 있고요. 그건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죠. 가해자의 자식이 보낸 편지를 읽고 피해자가 다시 생각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또 하게 되긴 하지만 용서를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말을 하고 있어요. 용서를 위해서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지 작가가 너무도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주 :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가해자의 결핍된 유년을 강조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며 동정을 구하는 문화도 있는 것 같고요. 사회가 만든 면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피해자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이렇게 편지를 썼다는 것도 너무 대단하게 여겨지고 글로 표현해서 가해자의 딸에게 보낸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영민 : 어떤 면에서는 이것도 연대죠. 정확하게 아는 것. 가해자의 자식이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의 상황, 계속 약을 먹고 있고 8년째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죠. ‘네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용서받기를 바란다면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거죠. 최근까지는 피해자의 이야기는 꽁꽁 숨겨 놓아야 했던 것이 현실이었어요. 물론 가해자의 서사도 알아야죠.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과 용서를 받는 일은 별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받는 것과 용서받는 것은 별개입니다. 용서는 피해 받은 사람이 진심에서 이 모든 과정을, 즉 가해자에게 화내고 가해자로부터 사죄를 받고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받고 그러면서 분노가 서서히 잦아드는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지, 사과의 대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런 용서의 과정을 소설 속에서 잘 녹여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승연 :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김지은입니다』가 생각이 났는데, 사건을 기록하는 것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텐데 그것을 세상에 내기까지 감내했을 고통이 상상되지 않았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진숙 : 이 단편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주는 작품이기도 하겠군요. 한승연 님은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요?

 

한승연 : 저는 「문래」의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이십대 중후반이었다. 그녀가 가방에 담은 건 옷가지와 화장품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가방을 진정 무겁게 했던 건 더 멀리 가보고 싶다는 바람과 다른 삶에 대한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앞으로도 나아지는 건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두려움이 그 위에 얹히기도 했으리라. – 「문래」 269쪽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고 작품 속의 어머니와 제 어머니의 상황이 겹쳐지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재 이십대인 저와 견주어지면서 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노동자이면서 어머니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진숙 : “다른 삶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부분이 저도 마음에 크게 와닿았는데요. 아이를 방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하러 가야만 했을 때 그 어머니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어요? 다른 삶을 상상하고 기대하는 욕망이 짐을 꾸리는 행위로 나타난 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해진 작가의 어머니 아버지의 어떤 모습이 조해진 작가의 소설 쓰기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의 아버지는 겪어 보지 못한 시간을 다룬 역사책이나 가보지 못한 곳이 담긴 여행서를 읽으셨잖아요. 어머니는 다른 삶을 상상하고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이 소설의 본질이라면 조해진 작가의 소설적 역량은 부모님께 받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우연주 님께서는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지요?

 

우연주 : 끝까지 하나 어머니 편에서 같이 싸워 주고 싶지만 계약직 교원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하나 담임교사가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하나 담임교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경계선 사이로」에서 선배들이 해고된 자리에 들어온 연진이 선배 기자들과 시위에 함께하지 못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과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 담임교사도, 연진도, 자신의 삶이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 딜레마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정말 현실적으로 잘 그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작품집을 읽다 보면 순환의 이미지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같은데 그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하나가 내쉰 숨을 다른 사람이 들이쉰다는 표현에서도 순환의 이미지가 담겨 있고, 「흩어지는 구름」에서도 “구름의 한 조각으로 소급되는 빗방울, 그것은 내가 사는 행성이 끊임없이 돌고 있고 모든 물질은 순환하며”라는 구절이 나오고요. 떠나고 돌아오는 순환의 공간인 공항과 버스터미널이라는 공간도 그렇고요.

 

박진숙 : 저는 「하나의 숨」에서 기현 어머니의 대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긴, 요즘이야 공장에서 다칠 일이 어디 있겠어. 보호 장비 다 있지, 누가 때리길 해,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길 해. 우리 때랑은 다르지, 완전히 다를 거예요, 그죠?” – 「하나의 숨」 88쪽

어떤 서술보다 현재의 산업 현장이 6, 70년대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사로 처리하고 있지만, 작가의 안타까움과 분노도 느껴졌고요. 작품 중간중간에 계약직 교원의 현실, 사립학교 채용 비리에 관한 내용도 배치해 놓아서 하나의 죽음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M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완성할 것이며 계속해서 익명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을 거라고,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의 유일한 특권이기 때문에, 내게는 그것이 위안이 맞으며 절실하게 필요하다고도. – 「파종하는 밤」 159쪽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의 유일한 특권”이라는 말이 쿵 하고 울렸고, 이 작품 속의 ‘나’의 작업과 작가의 소설 쓰기는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업재해를 다룬 작품인 「하나의 숨」과 「파종하는 밤」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작가의 말에서 「하나의 숨」은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 빚을 졌고, 「파종하는 밤」은 「기억박물관-구로」라는 작품을 보고 산업재해 희생자인 고 문송면에 대해 알게 되어서 쓴 작품이라고 쓰고 있는데요, 책이나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소설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이 작가의 힘인 거잖아요.

 

이영민 : 고(故) 문송면이라는 분이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해가 88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거예요.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산업재해로 인한 비참은 이전 시기에 비일비재했고 여러 작품을 통해 많이 접한 이야기여서, 내용 자체가 주는 충격이 크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저와 같이 71년에 태어나 18년 동안 살다 죽은 한 사람의 사인(死因)이 수은중독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구체적으로 형성화되어 저에게 다가오니까 놀라웠던 것이죠.

 

 

박진숙 : 저는 구체성이라는 게 이 작품의 빛나는 지점인 거 같아요. 사회적 타살을 관념이 아니라 구체로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의 숨」에서 하나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하나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데 뒤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요.

    “얼마 전에 무슨 시민 단체에서 일한다는 분이 병원에 찾아와서 그러데요, 이 사회가 하나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요. 그런가요, 선생님?”
   “……”
   “근데요, 그거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못나서 하나가 저렇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중퇴에 미혼모에, 나 좀 못난 거 맞잖아요.” – 「하나의 숨」 97쪽

사회적 타살로 보는 입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 동시에 제시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의 말, 하나가 친구들과 함께 갔던 망상해변, M군이 점심시간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축구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상상해서 구체적인 일상을 누렸던 삶으로 복원하려고 해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는 산업사회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거야, 이렇게만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파괴한 것이 ‘하나’와 ‘M군’이라는 구체적인 사람의 일상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문래」에서 대부분의 예술이 다 그렇겠지만 유년의 상처가 문학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에 빚을 지며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거겠죠,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특권일 테니까요. – 「문래」 291쪽

결국 두 작품을 통해 사회적 타살을 당한 존재가 가진 상처의 고유함을 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상처의 고유함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냄새, 숨결을 만드는 작업을 한 거 같아요.

 

우연주 : 첫 작품은 ‘통증’에서 시작하는데, 통증에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나는 점도 의미심장한 거 같아요. “나는 너무 일찍 내 안의 집으로 이주한 이방이었는지도 모른다”라고 고백한 부분도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박진숙 :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이 작품에 대해 새로이 얻게 된 인식이나 느낀 점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영민 : 저는 서사나 논리적 구조를 중심으로 작품을 읽는데, 함께하시는 분들이 표현이나 감성적인 부분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셔서 작품을 새롭게 읽은 느낌입니다.

 

우연주 : 우리는 늘 경계에 서 있고 순환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작품입니다. 경계는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나들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사람들, 순환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고 연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승연 :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대부분이라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삶에 대해 서글프게 서술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다정한 소설이라는 느낌도 받았고요.

 

이정희 :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서 얼마 동안 소설을 읽지 않던 시기가 있었어요. 2년 전쯤에 『다시 책으로』를 읽고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말한 부분에 납득되어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모르던 세계에 대해 인식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책 모임을 하면서 소설 작품을 여러 결로 느낄 수 있었고요.

 

박진숙 : 보통은 단편소설 제목 중의 하나를 작품집 이름으로 하는데, 이 작품집은 「하나의 숨」과 「환한 나무 꼭대기」를 조합해서 작품집 제목을 정했잖아요. 우리의 숨결들이 세상을 환하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의 전언 같기도 하고요. 「하나의 숨」에서, 참사를 당한 유가족이 느낄 만한 감정을 잘 그려 놓은 부분이 있어요.

    길을 걷다가 퓨전식당이나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을 발견하게 되면, 마트나 병원 앞을 지나갈 때도, 심지어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도(하나가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일을 했으니까요-기록자 주) 하나는 어김없이 내 삶으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의 숨이 내가 들이켜는 숨과 섞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웠다. 인공호흡기를 통과한 하나의 가느다란 숨이 물결처럼 움직이는 공기를 타고 내가 생활하는 곳에까지 유입되고 있으며 내가 그 숨을 들이켜면서 하나 대신 일하고 돈 벌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 – 「하나의 숨」 101쪽

살아남은 자의 고통, 슬픔을 잘 그린 것 같아요. 사실 이 분은 유가족도 아닌데 하나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숨 쉴 때마다 하나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 거죠. 숨을 쉴 때 모두의 숨이 섞이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경계도 사라지게 되는 거고 누군가의 숨에 빚져서 살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제목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한승연 : 책 띠지에 작가의 말 한 구절이 적혀 있어요. “내가 숨을 내쉬며 쓴 이 소설들에 당신이 숨을 불어넣어 준다면 어떤 이야기가 비로소 완성되지 않을까.” 이 말을 보면 독자가 소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독자가 이 소설로 인해 어떤 변화가 있을 때라야 이 소설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박진숙 : 어쩌면 저희가 이 작품집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진 질문에 대해 성찰해 보는 이 시간들이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었겠네요. 이 작품 자체가 ‘환한 숨’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한 숨을 불어넣는 일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영민
참여자 / 이영민

사람의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활자 중독자, 꿈작업가입니다.

 

우연주
참여자 / 우연주

고민의 길을 열어주는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한량지망생입니다.

 

이정희

참여자 / 이정희

책과 사진 속에 녹아 있는 생각거리를 즐기는, 책 읽는 엄마입니다.

 

한승연

참여자 / 한승연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는 20대 직장인입니다.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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