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아는 농담

[단편소설]

 

 

너만 아는 농담

 

 

이정연

 

 

 

    “다음 주 목요일은 어때? 화요일이면 프로젝트도 끝나 갈 테고…… 우린 금요일이 좋긴 한데 네가 가족의 날이라고 번번이 거절하잖아.”
    전화기에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건우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목요일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했다.
    “널 생각해서 날도 맞춘 거야. 코로나 때문에 한참 못 봤는데, 넌 그전부터 안 나온다고 얼마나 씹어대는 줄 아냐? 우리가 뭉친 게 네 결혼식이 마지막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됐나?”
    축의금석에 봉투를 건네고 식권을 받느라 몰린 사람들, 나를 알은체하고 호기심에 두리번대던 얼굴들, 문득 결혼식 하객들이 떠올랐다. 동네 친구들과 대학 동기들은 축하 인사를 건네고, 채경과 채경의 친구들에게 곧장 관심을 돌렸다. 여느 결혼식과 비슷하게 분주히 오가는 하객과 행사 진행요원, 예식장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화환과 대형 결혼사진은 식전부터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동시 예식으로 엉킨 사람들을 보며 비용이 부담되더라도 단독 홀에서 진행할 걸 후회했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차라리 번잡한 상황이 낫지 싶었다.
    건우는 내가 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준기랑 형민 선배. 아, 최 팀장님도 오신댔다. 그 양반, LK에 스카우트돼서 한동안 힘들다고 하시더니 이번에 인사부장으로 승진하셨나 봐. 얼마 전에 통화했는데 그 회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냐고 물으시더라. LK면 완전 대박 아니냐? 근데 너, 아직도 그 일로 애매한 건 아니지?”
    건우의 제안은 나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빠진다 해도 그들이 모이는 데 지장이 없을 테니까. 모임에서 유일하게 불편한 사람이 최 팀장이라고 옆에 앉는 것도 꺼리던 놈이 웬 존대를 저리도 깍듯이 하는지.
    4년 전 우리는 마케팅팀에서 같이 근무했다. 그때 최 팀장은 팀장급 차장으로, 형민 선배는 과장, 나와 건우는 2년차 사원, 준기는 막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다. 나름 팀워크가 좋아 형민 선배가 사업한다고 퇴사하고, 최 팀장이 스카우트되어 나간 뒤에도 가끔 만나서 애경사를 챙기는 사이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결혼 뒤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알았어, 장소 정해지면 알려줘.”
    나는 최 팀장의 얼굴을 오랜만에 떠올렸고, 문득 이제는 그와 얘기해도 감정이 동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둘이 따로 만나는 것보다 부담이 적을 것도 같았다.


    이번엔 확실히 풀어 봐, 라는 건우의 말을 곱씹으며 얼린 모유 팩을 뜨거운 물에 넣어 중탕으로 데웠다. 채경은 교육 일정이 갑자기 추가돼 자정이 되어서야 끝날 것 같다고 점심이 지나서 연락해 왔다. 아이를 출산하고 당분간 입사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마케팅 보조 경력이 인정돼 중소 규모의 홍보대행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채경은 회사에서 경단녀를 우대한 덕분이라며 기회를 잘 잡았다고 신입사원 연수일 뿐인데도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회사에서 기혼 여성이, 아이가 있는 여성이 어떤 식의 평가를 받는지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결혼했고,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티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베이비시터가 아닌 무릎이 불편한 장모를 부른 것도 출퇴근이 일정치 않은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장모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가는 날이 오늘이라며, 며칠 전부터 오늘은 다섯 시에 나가겠다고 예고했다. 올 초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조이를 안은 장모는 몸이 가끔 흔들려 불안해 보일 때가 있었다. 내가 알아차릴 정도면 채경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그녀는 장모의 용돈을 올려 주고는 별말이 없었다. 나는 채경도 늦을 거란 연락을 받고 반차를 낸 뒤 급히 퇴근했다.
    조이가 점퍼루1)에 앉아 손가락으로 장난감을 건드리며 까르르 돌고래 소리를 치고 웃었다. 데운 모유를 젖병에 담고 아이를 기구에서 꺼내 품에 안았다. 기쁜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에 채경이 지어 준 이름, ‘조이(joy)’. 아이는 이름만큼 순해 크게 아프지 않고 자랐고, 낯가림이 없어 아무나 잘 따랐다. 채경은 조이가 겉모습부터 무던한 성격까지 나를 쏙 빼닮았다고 말했다. 내가 언제 무던한 적이 있었던가.
    조이는 품에 안자 입술을 오물거리며 젖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옹알이하면서 올려다보는 눈길에 전기가 오듯 찌르르 가슴이 저렸다. 이젠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채경이 회사를 나온 지 2년이 지났고, 퇴사 후 바로 결혼을 해 조이가 태어났다. 이따금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들과 어울렸지만, 이른 결혼에 채경은 그들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고 있었다. 최 팀장도, 형민 선배도 회사를 떠났다. 어쩌면 나만 더는 필요 없는 감정의 찌꺼기를 붙들고 전과 같은 시선으로 채경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1) 유아가 안장에 앉아 통통 튀어 오르는 점프 놀이를 할 수 있는 기구


    채경을 처음 봤을 때 낯이 익다는 기분만으로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직원이고, 채경은 아르바이트라는 상황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외부 용역직에 대한 갑질로 회사가 종종 시끄러웠다. 특히 성이 다른 직원 간의 문제는 추행이었느냐를 두고 사안이 민감하게 다뤄져 관련자를 징계하고, 상급자를 보수 교육에 보내는 일이 더러 있었다. 가까스로 들어온 직장인데 부적절한 구설수로 입지를 좁힐 수는 없었다.
    그러다 2년 뒤에 마케팅팀으로 전보하면서 채경과 일을 같이하게 되었다. 채경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서베이 보조를 해와 내가 그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업무 4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이었다. 말뿐인 전임자는 달랑 한 시간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는 지방 지사로 떠나 실질적인 인계는 채경에게 받았다. 조직에 나름 잘 적응해 웬만한 일은 동요하지 않는 2년 차라고 자부했는데, 채경을 가까이서 보자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호감을 느꼈다.
    “저기, 윤 대리님. 혹시 예전에 저희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우리가요? 신입사원 때 전 부서로 인사를 다니긴 했는데, 그때 봤나? 여기도 아마 들렀을 거예요. 그리고 저, 아직 대리 아니에요.”
    “저희는 사원 분들도 대리라고 불러요. 직원들 이름을 아르바이트가 함부로 부르는 게 고객님들 보기에 좋지 않다고 회사에서 방침이 내려왔거든요.”
    채경은 그 말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곤 골똘한 표정으로 나를 다시 쳐다봤다.
    “그럼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대학교 말이에요.”
    나는 단답형으로 대꾸했고, 채경은 그 말에 아, 하고 짧은 탄성을 질렀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저도 거기 다녀요!”
    순간 놀랐으나 채경이 마주친 사람은 내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삼수해서 대학을 갔고, 입학하고 1년 뒤에 군대를 다녀와 졸업했다. 2년 구직 활동 끝에 입사했으니 아무리 되짚어 봐도 우리가 학교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예요. 나이 차도 많이 나고…… 제가 취직 준비에 바빠서 학교 활동은 거의 안 했거든요.”
    “이상하네. 2016년에서 2019년 올해까지, 학교에 계신 적 진짜 없으세요?”
    채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을 꼽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졸업하기 전년도인 2016년에 우리는 마주쳤을지 모른다. 그해 나는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서 최소한의 수업만 들었고, 대부분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과 영어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마디로 우리가 만날 확률도 낮지만, 마주쳤다 해도 누군가의 기억에 내가 남기는 어려울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나는 채경의 말에 아닐 거라며 손을 내저었다.
    “안 믿으시네요? 그때 빨간 빅 폴로티셔츠 입고 다니셨잖아요. 가슴에는 검정 로고가 있었던가? 어깨에 숫자 자수가 들어간 거요.”
    채경은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오래돼 해져서 버렸으나 누나가 생일선물로 사주었던 폴로티셔츠를 한동안 즐겨 입었다. 그걸 채경이 기억하고 있다니 당혹감이 감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도 내 기억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였다. 그녀는 빨간색을 말했고, 나도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을 보니 내가 입은 옷은 진핑크의 자그만 문양이 새겨진 폴로티셔츠였다. 생각해 보면 붉은 계열의 티셔츠는 브랜드에 상관없이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 있어 과 동기 중 서넛은 입고 다닐 정도로 흔했다.
    내가 채경에게 갖는 관심, 채경이 직원인 나를 대하는 깍듯하고 친절한 태도. 나는 그녀를 사무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썼으나 도리어 어색한 행동으로 튀어나와 감정을 감추는 데 실패했고, 채경은 노련한 업무 처리로 블랙컨슈머나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상대할 때 도움을 주어 선을 긋는 게 의미 없을 때가 많았다. 나중에는 채경과 같이 설문 세부 사항을 검토해 작성하기도 했다. 학교라는 연결고리가 아니라도 같이하는 일이 많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한 분기의 고객 설문조사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대리님과 채경 씨라는 호칭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조이는 물고 있던 젖병을 절반도 못 비우고 잠이 들었다. 내가 딴생각에 빠져 살펴보지 못한 탓이었다. 채경은 젖을 물리며 조이가 잠들라치면 볼을 건드려 깨우곤 했다. 먹으면서 잠드는 게 아이의 소화에도, 치아에도 좋지 않다나. 순한 아이일수록 투정이 적어 문제가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녀가 짓는 표정은 진지했다. 채경은 친구들보다 이른 결혼과 출산을 한 탓에 취직이 어렵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그렇다고 마음을 잘 감춘 것은 아니었다), 조이를 자신이 맡은 업무라도 되듯 세심히 보살폈다. 아이를 돌보다 취업 대비 일반 상식과 자격증을 공부했고, 그러다 머리를 식힌다고 육아 도서와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때로는 ‘아는 워킹맘 언니들’을 동원해 방법을 찾기도 했다. 휴일에 두어 시간만 아이를 맡아도 피곤해하는 나와 달리, 육아에서 취업 준비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의지는 대단해 보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웠다. 그런 면이 마케팅 업무에서도 드러나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잠든 아이를 내려놓고 주방을 서성이는데 건우에게 카톡이 왔다. 멤버 다섯 명 모두 목요일 일곱 시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며, 충무로에 있는 냉면집에서 보자고 했다. 냉면? 이라고 물었다가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러겠다고 바로 대꾸했다.
    최 팀장이 그곳의 제육볶음과 만두를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냉면으로 유명한 곳인데, 여러 번 방문했으나 한 번도 냉면은 먹지 못했다. 제육볶음 5인분과 만두 3인분, 소주 여러 병. 갈 때마다 주문한 메뉴는 비슷했고, 우리는 메뉴에 불만을 드러내며 냉면 육수를 자주 시켜 먹었으나 최 팀장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 손님이 북적거리고 가게 회전이 빠른 곳이라 다섯 명의 남자가 두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도 눈치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 팀장은 본부장을 험담하다가 자신이 왜 팀장급 차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며 불평했고, 팀원들을 하나씩 지목하면서 어떻게 해야 팀이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조언하는 등 두서없이 말을 이어 갔다. 업체 계약 건으로 자주 부딪히는 나를 볼 때면 한숨을 먼저 내쉬었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 말을 꺼내는 게 가능할까. 아니, 내가 하는 말에 그가 관심이나 가지려나. 머릿속이 복잡해 지끈거렸다.
    냉장고를 뒤져 냉동만두를 꺼냈다. 저녁 다섯 시, 조이는 이른 잠이 들었으니 두어 시간 뒤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전에 저녁을 해결하고, 사용한 젖병을 닦고, 장모가 건조기에 돌리고 간 빨래도 개켜야 한다. 나는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캔맥주를 꺼냈다가 채경이 떠올라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었다.
    조이 옆에 다이어트 콜라와 냉동만두를 놓고, TV는 음소거한 뒤 화면의 조도를 낮췄다. 다행히 조이는 깊은 잠이 든 것 같았다.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를 틀었지만, 손흥민이 출전하지 않아 흥미를 바로 잃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호텔 뭄바이>가 영화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었으나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살해하는 장면을 조이 옆에서 보는 게 내키지 않았다. 스토리도 이미 중반까지 전개되었다. 채널을 돌리다 10년도 더 된 <무한도전>을 보면서 출연자들의 표정을 보고 낄낄대다가 진행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TV를 끄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마음이 부산해 어느 하나 집중할 수 없었다. 바이킹을 타고 눈을 감을 때처럼 사방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았다.
    나는 지금 최 팀장을 만나는 게 신경 쓰이는 걸까, 아니면 전에 그가 흘리고 다녔던 소문이, 나를 쳐다봤던 예의 눈빛과 부딪쳤던 순간이, 그의 말속에 등장하는 채경이 괴로운 걸까. 그도 아니라면 이런 고민을 아직도 하는 내가 참을 수 없는 걸까. 스테이플러가 마구 찍혀 넘길 수 없던 문서가 손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심오한 트라이앵글이었단 말이지.
2차를 끝내고 세 명은 어느 틈에 사라졌고, 나와 형민 선배가 남은 자리에서 최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형민 선배는 취할 대로 취해 앉은 자리에 그대로 엎어졌고, 나 또한 어지러운 기운에 사로잡혀 최 팀장의 얘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할 때 최 팀장의 표정은 어딘지 비굴해 보였다. 취기에, 장르를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음악, 시시때때로 빛을 바꾸는 조명.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네? 하고 크게 되물었다.
    “씨발,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
    형민 선배가 비틀거리고 일어나 허공을 향해 화를 쏟고는 화장실에 갔다. 최 팀장은 고개를 숙여 웃고 있었다. 그의 그런 웃음은 일하다 종종 봐서 특이할 게 없는데 이상하게 술이 깰 만큼 신경에 거슬렸다. 그는 1차에서 일부러 나와 떨어져 앉는 듯했고, 2차에서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약간의 취기를 빌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테이블에 기댄 그의 몸이 흔들렸다. 최 팀장은 뒤를 돌아본 뒤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말했다. 흐르던 음악을 교체하는지 실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하지 마. 사귀기는 무슨, 그걸 아는 사람이 대체 몇인데.”
    주어와 목적어, 그의 몇 마디에는 그 두 가지가 없었으나 나는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1차에서 채경과 만나고 있다고 고백했고, 모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당황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최 팀장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채경과 교제한다는 소리에 축하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래? 둘이? 아아, 같은 말로 얼버무렸고 표정을 고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최 팀장의 ‘그걸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모호했으나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노려보듯 빤히 응시하는 시선에 더 물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음악이 다시 재생되었고, 다행히 볼륨이 높아 최 팀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최 팀장은 안 된다는 엑스 표를 하면서 가슴을 가리켰고,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맥주잔만 비웠다. 형민 선배가 비틀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최 팀장은 형민 선배를 부축해 내 앞에 앉혔다.
    “조 과장, 괜찮아? 지난 일인데 이제 털어낼 때도 됐잖아.”
    “아뇨, 저 안 취했습니다.”
    대화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었으나 앉아 있기가 어딘지 불편했다. 가보겠다고 조용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 팀장이 돌아선 뒤통수에 대고 크게 외쳤다.
    “야, 너 이 새끼가 왜 취했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다음날 팀원들의 말투와 표정을 분석하는 나를 깨달았다. 업무상 다른 부서 직원들과 통화할 때도, 복도나 화장실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피할지 속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해도 최 팀장의 눈빛과 그가 한 말은 술주정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라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그간 나와 최 팀장의 사이가 어땠는지, 그런 유의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문제는 용역업체 선정에서 그가 추천한 회사로 결정하지 않고부터는 그와 업무 외에 다른 말은 섞지 않고 지냈다는 거였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 척 조언했으나 돌아오는 건 반려 문서였고, 그가 반대해서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협력업체의 난감해하는 전화였다. 그와의 관계는 풀릴 줄 모르고 꼬이고만 있었다. 결국에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형민 선배를 회사 근처 카페로 불러냈다.
    “이 시간에 술도 아니고, 단둘이 차를 마시자고?”
    선배는 약속보다 30분 늦게 나왔다. 그는 왜 늦었는지 말하지 않고, 웃음기 없이 농담을 던졌다. 나는 어색하게 대면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미리 시켜 놓았는데, 얼음이 녹아 커피잔 주위로 물기가 흥건했다. 선배는 잔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도 젖은 바지를 털어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돌리지 않고 물으려 했다. 최 팀장이 한 말이 무슨 소리냐고, 선배도 알고 있느냐고, 아니 선배랑도 관계가 있느냐고. 그러나 말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았고, 잡다한 부서 업무만 떠들어댔다. 한참 뒤 선배는 들고 있던 잔을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의 물음은 정곡을 찌른 데다 단호해 당혹스러웠다. 나는 잠시 그를 응시했다. 사실 어떻게 묻든 이 만남에서 무례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일 테다. 왜 불러냈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자리에 앉아서도 내내 딴소리만 했으니까. 내가 물으려는 말은 그가 대꾸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날 팀장이 한 말…… 뭐예요?”
    그는 다 마신 커피를 내려다보고는 카운터에 가서 뜨거운 커피를 더 주문해 돌아왔다. 여전히 시선은 맞추지 않은 채 커피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잔을 천천히 돌렸다.
    “트라이앵글은 들었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알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어 고개를 흔들었고, 그걸 본 선배는 그러느냐고 중얼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가슴에, 정확히 말하면 왼쪽 유방 아래쪽에 점이 있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삼각형처럼 보이는 점 세 개. 그래서 최 팀장이 그렇게 불러.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나는 멍해져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동안 생각했다.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자 가슴에 확 불이 일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꽤 되는 것 같아. 어릴 때도 그런 거 떠벌리는 놈들 있었잖아. 누가 봤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소문이 그래.”
    최 팀장이 말할 때와 비슷하게 형민 선배도 가슴의 주체를 가리키는 주어를 빼고 말했고, 나 또한 최 팀장에게 들었을 때와 비슷하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캐묻지 않았다. 우려한 것보다 더한 사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한참 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선배도 굳이 보태지 않았다.
    “그럼, 우리 같이 모이는 사람들은요?”
    “최 팀장은 말하는 투로 봐선 맞는 것 같고, 나머지는 모르겠어.”
    “……선배는요?”
    텅 빈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선배는 새로 주문한 커피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커피는 아직 식지 않았을 테다.
    “내가 많이 좋아했었지. 그걸 몰랐을 때까지는 말이야.”
    그는 담담히 나와 채경의 교제를 만류했고, 더 이상 다른 곳에 소문을 묻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나까지 풍문에 휩쓸려 나와 우리 팀이 타격을 받으면 안 된다면서 걱정해 주었다.
    “지금 수군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널 괴롭힐 거야.”
    나는 그가 소문을 털어놓은 뒤부터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는 아주 한참 뒤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이가 이르게 깨어 입을 쩝쩝거렸다. 모유를 충분히 먹이지 않아 배가 고픈 탓일 것이다. 채경에게 어떻게 할지 전화를 걸면 교육 중이라서 안 받을 것 같고, 장모는 치료가 덜 끝나 연락하기 망설여졌다.
    “조이, 맘마 먹고 싶어? 맘, 마?”
    아이는 겨우 익힌 세 단어를 옹알이하곤 했는데, 그게 음마와 꼬꼬, 맘마였다. 맘마, 맘마, 하면서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들썩이니 제법 오른 살 때문에 내 어깨도 덩달아 움직였다. 냉동해 둔 이유식을 해동해 먹이고 점퍼루에 다시 앉혔다. 안아서 트림을 시키려다 앉아 놀면 자연스럽게 소화가 될 것 같아 생략하고 이마에 손을 얹어 체온만 체크했다. 나는 아이가 노는 것을 확인하고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냈다. 장모는 병원 진료를 마치면 처가로 돌아갈 것이고, 채경은 세 시간 뒤에나 퇴근한다. 세 시간 뒤라면 맥주 캔 하나쯤은 취기도 남지 않겠지. 생각을 흩뜨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TV를 다시 켰다.
    번호키 누르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소파에 기댄 채로 맥주를 마시면서 〈호텔 뭄바이〉를 보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호텔 직원과 고객을 총과 폭탄으로 무차별 공격해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영화는 듣던 대로 피가 낭자해 어지러웠으나 강렬한 스토리 때문에 따라가는 데 무리 없었다. 다만 몇 년 전 최 팀장이 보였던 눈빛과 형민 선배의 말이 영화와 상관없는 장면에서 불쑥 떠올라 혼란스러웠고, 온종일 트라이앵글을 고민하느라 피로한 탓에 어느 틈에 눈을 감고 몸을 늘어뜨렸다. 조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조이는 점퍼루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고개가 푹 떨어져 불편했을 텐데 칭얼대지도 않고 그 상태로 잠이 들다니. 나는 조이를 얼른 침대로 옮기고, 빈 맥주 캔을 들고 화장실로 뛰었다. 아이를 잘 눕혔는지 확인도 못 하고 잽싸게 문을 걸어 잠갔다. 다행히 채경은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바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 뒤로도 연달아 실수해 문이 잠시 잠겼다. 캔을 구겨 휴지통에 밀어 넣고, 거울을 확인했다. 눈이 붉고, 뺨도 상기되어 있었다. 바깥에서는 채경이 아닌 장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아가, 혼자 놀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애기가 걱정돼서 후딱 들어왔지.”
    나는 그제야 막힌 숨을 몰아쉬며 변기에 기대앉았다. 맥주를 마시고 아이를 돌본 게 뜨끔해 채경보다 장모가 일찍 돌아온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도 붉어진 눈을 장모에게 들킬 수 없어 고개를 젖혀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했다. 장모는 조이에게 연신 말을 걸고 있었다.
    “맘마는 잘 먹었어요? 아빠가 기저귀는 갈아 줬지?”
    장모의 말에 아차 싶었다. 퇴근 후 기저귀를 갈아 준 기억이 없었다. 화장실에는 시계가 없고, 핸드폰은 거실에 두고 와서 몇 시인지 가늠도 안 되었다. 아이의 젖은 엉덩이도, 그것을 보고 나무랄 장모도, 채경이 알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바깥은 잠시 조용하다가 조이와 장모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화장실에 간 거니? 어째 집 안에 쥐새끼 소리 하나 없어?”
    나는 그제야 변기 물을 내렸다. 시간을 두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나가야지 하면서, 입을 대강 헹구고 문을 슬쩍 밀었다.
    장모는 조이를 안고 무릎에서 뛰게 하고 있었다. 아이를 들어 올릴 때 미소 짓다가 무릎에 내리면 인상이 굳어지는, 한눈에 봐도 다리가 불편해서 짓는 표정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아이를 받아 품에 안았다.
    “치료받고 힘드실 텐데 뭐 하러요. 점퍼루에 앉혀도 잘 놀잖아요.”
    그 말에 장모는 내 다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조이 때문에 같이하는 시간이 늘고, 채경의 철저한 육아로 나와 장모는 때때로 같은 편이 되어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 장모는 내가 웃으면서 내려다보자 흘기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퇴근하고 정신없어도 그렇지. 엉덩이에 빨간 기가 올라왔더라. 자네가 화장실에 있는 것 같아서 씻기지도 못하고 크림만 발라 놨어.”
    변명할 말이 없었다. 최 팀장을 만나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느라 기저귀 따위는 잊어버렸다? 목요일 모임에 나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머리를 굴리느라? 트라이앵글은 여전히 모르는 척, 과거의 소문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에? 나는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아이의 기저귀만 잡아당겨 엉덩이를 확인했다. 장모는 아이를 받아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때 형민 선배를 만나고 한동안 채경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채경과 만나기 전, 아니 채경을 만난 뒤에도 결혼 전 연애는 결혼 후 상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평소 갖던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런 말을 술자리에서 몇 번쯤 떠든 기억도 난다.
    그러나 가슴의, 그것도 목이 파인 옷을 입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윗가슴이 아닌 아랫부분은 동거하는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운 곳이라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떠들고 다니는 건 상상만으로 끔찍했고, 그걸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려니 자꾸 주눅이 들었다. 그 갑갑함은 채경이 다칠까 봐 그러는지, 혹은 내가 잃어버릴 무엇이 떠올라 오는 두려움인지 감정조차 인정하기 싫었다.
    채경이 이성에게만 친절한 건 아니란 사실은 사무실을 같이 쓰는 사람이라면, 한시적으로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최 팀장이 채경을 이따금 불러낸 일과 그녀가 회식을 마치고 연락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일하며 어깨를 스치는 가벼운 스킨십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떠들썩하게 소리치며 웃는 모습도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사회생활이니까, 나보다 사교적인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녀의 행동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불행히 어떤 가정에도 루머가 완전히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최 팀장이 나를 대하던 까칠한 태도가 그 때문이 아니었는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나는 어느새 소문이 더 퍼지지 않길, 채경의 드러나지 않는 신체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으면, 나와 그녀를 두고 악의적인 농담을 떠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긴 고민은 채경을 만나 몇 마디 나눈 끝에 그만두었다.
    “회사에서, 회사에서 말이야.”
    오래 자문하고 수없이 할 말을 골라냈지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적당한 질문이란 게 있기나 한지. 내가 머뭇거리자 채경은 의자를 당겨 앉고 잠자코 기다렸다.
    “그니까 회사에서, 혹시 회사에서…… 사람을 만나고 후회한 적은 없어?”
    채경은 그 말에 응? 하고 묻더니 내 팔에 손을 얹었다.
    “사람을 안 보고 어떻게 일해.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 근데 회사가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볼 수 있었겠어? 대리님은 날 만난 게 후회돼?”
    수척해진 내 얼굴에 손을 올리며 걱정하는 채경에게 그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채경은 하지 않던 반말까지 하며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내가 우리의 교제를 회사에 공개하는 걸 주저하고 있다고 짐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채경의 물음에 고개를 내둘렀다. 그녀가 과거에 누구를 만났든 나와 동시에 만난 건 아니었고, 나를 속인 것도 아니라서 어쩌면 고민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인지 몰랐다. 내 감정은 어느 때보다 그녀를 향해 있어서 불확실한 이유로 헤어지면 후회할 게 빤했다. 오해를 떨치려고 사실을 파헤치는 게 이성적이지도, 감정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비로소 결심했다. 소문은 무시하겠다고, 아니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 감당하겠다고. 최 팀장과의 사이는 어차피 틀어졌으니, 떠드는 사람들을 한동안 피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최 팀장은 그 뒤로 만나자는 연락을 몇 번 더 했고, 내가 핑계를 대며 계속 약속을 미루자 형편없는 인사고과로 감정을 표현했다. 퇴사하기 얼마 전에는 승진 대상에서 나를 제외시켰다.


    바스 타월로 아이를 감싸 안고 욕실에서 나오는 장모의 걸음이 흔들거렸다. 채경은 베이비 마사지를 하며 조이가 소아 비만은 아닌지, 그래서 혼자 앉는 것도 기는 것도 조금 느리다면서 모유가 아닌 특수 분유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10개월 여아 중 몸무게가 상위 2퍼센트 안에 든다나. 나는 조이를 장모에게 받아 거실 매트에 올리고, 안방에서 로션을 가지고 나왔다.
    술 마신 걸 장모가 알아채면 안 돼서 아이와 장모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소리를 줄이고 TV를 켰다. 넷플릭스에 신작이 있는지 하릴없이 뒤적이는데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지만 이번에는 채경이 맞을 것이다. 채경은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던지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장모는 채경을 힐끗 쳐다보고는 부산하게 손을 움직였다. 로션을 바르는 순서와 방향을 따지는 채경과 달리 무심하지만 신속하고 노련했다. 나와 채경은 장모가 마련한 쇼라도 구경하듯 아이에게 로션을 바르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장모는 어깨와 배, 다리를 빠르게 오가며 로션을 바르다가 손을 멈췄다. 엉덩이를 들고 혀를 차는 모습에 순간 긴장했다. 다행히 장모는 왜 그러는지 말하지 않았고, 채경은 피곤한 탓에 장모의 달라진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장모는 아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다리를 들어 허벅지 안쪽에 발진 크림을 덧발랐다.
    "채경아, 여기에 점이 있는 거 알았어?”
    채경은 모르겠다고 건성으로 대꾸하며 몸을 완전히 늘어뜨려서 내 무릎을 베었다. 장모는 나와 채경을 다시 돌아보고는 조이의 허벅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안쪽에 웬 쌍둥이 같은 점이라니. 안 보이는 데에 점이 있으면 복이 많다던데, 접힌 살에 가려서 너보다 훨씬 잘살겠다.”
    장모가 소리 내어 웃자 채경이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소리 없이 웃다가 나중에는 피식거리다가 결국에는 미소를 지우고 똑바로 자리에 앉았다. 조이가 앉은 엄마를 보고 손뼉 치며 웃더니 채경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저귀만 찬 엉덩이를 씰룩대며 다른 때보다 날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참 신기해. 보이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내가 비밀인 것처럼 알바들한테 이걸 떠들었더니 직원들이 모일 때 그 자리에 끼워 주대. 슬슬 눈치를 보며, 진짜인지 묻지도 못할 거면서. 하긴 지금 사장도 거기에서 소개받았으니까, 뭐.”
    채경은 자신의 가슴에 세모꼴을 하며 냉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녀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고 최 팀장과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조이를 채경에게 안겨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에 급히 처리할 일이 생각났다고 말하고는 핸드폰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그를 향해 간다. 그는 채경이 회사를 떠난다고 팀에 발표하던 날, 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내가 연락을 받지 않자 “정말 알고 싶은 게 없느냐”며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게 그와 내가 틀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는 내가 마케팅팀에 전보되었을 때 잘 지내보자며, 아니 아무 이유 없는 휴일과 늦은 밤에 자주 연락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그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니, 전혀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채경의 소문에 빠져 나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감색 정장에 앞코가 뭉뚝한 구두를 신고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같이 근무했던 2년 전보다 살이 빠져 재킷이 헐렁거렸다. 나는 창밖에 서서 한참 동안 그를 쳐다봤다. 통유리창이라 몸을 조금만 창 쪽으로 돌려 앉았다면 눈이 먼저 마주쳤을 텐데 조금 늦춰진 만남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이 내린 시각이었으나 건물 앞 조명이 밝아 안도 바깥도 낮처럼 환했다. 그는 머그잔을 앞에 두고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늦었으니 다음에 보자는 그의 말을 거절했다. 회사와 떨어진 곳에서 만나자는 말도 거절했다. 목요일에 보면 되지 않느냐는 그의 물음에 그날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해서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가 퇴근했을지 모른다는 가정 따위는 하지 않고 무작정 LK 본사 앞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앞에 설 때까지 핸드폰으로 화상 회의만 지켜보고 있었다. 눈꺼풀이 내려왔으나 집중한 기색이었다. 테이블 앞에 선 나를 그는 뒤늦게 알아보고 영상을 무음으로 돌렸다.
    “채경이는 어쩌고 혼자 나왔어? 우리 회사 자회사라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부탁하라고 내가 저번에도 말했는데.”
    용역 입찰 프레젠테이션 전에 업체 서류를 건네면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을 때 그가 지었던 표정이다. 자신의 파티션 안으로 나를 불러서는 내가 만든 서류에 스테이플러를 곳곳에 눌러 찍으며 문서가 읽기 어렵게 됐다고 저 얼굴을 하면서 물었다. 총알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던 스테이플러 심. 나는 그때 그가 한 제안을 내가 거절해 생긴 일이라고 사무실에서 한동안 쩔쩔매었고,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한 무던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동료들과 멀어졌고, 승진 기회도 놓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팀원들과 어울릴 때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잘 될 거라며 큰 소리로 위로했다.
    이제야 묻는다. 채경의 비밀이 당신에게 중요한 적이 있었느냐고, 반려된 문서는 무엇을 향해 던진 거였느냐고, 단지 만만해 보이는 대상에게 잔인하게 구는 게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느냐고, 그 대상이 채경이었고, 혹시 나였느냐고.
    당신과 나 사이에 뒤늦게 상영되는 플래시백. 나는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더는 흔들리고 있지 않았다. 헛기침해서 잠긴 목소리를 깨우고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고작, 이라고 고작 한마디를 뱉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몹시 지쳐 있었다. 손에 꽉 쥔 핸드폰에는 부서 실적 그래프가 확대되어 깜빡였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였다.

 

 

 

 

 

 

 

 

 

 

 

이은정
작가소개 / 이정연 

201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2405 택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을 썼다.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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