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외 1편

[창작시]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박규현

 

 

 

 


   문을 도둑맞았다 태평한 오후였다


   해안가로 밀려오는 동물 여러 마리는 거의 죽어 있었고
   그중 하나를 데려와 쓰다듬었다
   털이 빠지고 앙상해질 때까지
   가족이 될 때까지


   체하면 손을 따주었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핏방울


   그달에도
   그달에도
   그달에도


   떨어졌다
   욕실 타일과 타일의 틈으로 피가 번지면 그 위로 물을 끼얹었고


   자면서 피 흘리면 안 되었다
   꽤 다정하고 정겨운 모양새로


   창밖으로 화재가 난 건물이 보여
   구경했다 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구조는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나
   출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사할 수는 없었다
   보증금도 가구도 문도 없었고


   여기가 상자였더라면 오히려 명쾌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간을 잘 개어서 놔두면 누군가 수거해 가는 것을 기대할 수도


   동물은 입을 벌린 채 여기
   이 목구멍을 통해 나갈 수 있다며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줘
   어머니와 아내가 필요해


   인간이었다면
   신고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가족이 안 될 때까지


   배를 갈랐더니
   희고 빛나는 솜만 가득했다


   방의 가장자리에서 동물 여러 마리는 아주 죽어 있었고
   한가로운 오후의

 

 

 

 

 

 

 

 

 

 

 

80571

 

 

 

 


   어디 있어? 찾아다닌다 만질 수 없는 것 희고 투명한 것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것 재빨리 꼬리를 잘라버리는 것


   여기서는 닭 우는 소리에 깨어나고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하다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는 우리에게도


   내일이 있다 애써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을 두고 이곳에 와 있다니


   죄를 짓는 기분 밥을 지으면서도 이곳의 쌀은 몹시 가늘고 길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마뱀이다 도마뱀을 보아서 그렇게 외친다 도마뱀이다 너는 도마뱀을 볼 때마다 그 생물을 처음 보듯 신비로워하고


   이 나라의 말로 된 이름을 짓고 집이라는 것을 짓고 싶다 너와 도마뱀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벌레를 찍어 누를 때 두 손을 모아 사과할 줄 아는 사람 누군가 아플 때 외국어로 약국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연습하는 사람


   어디 있어? 한국에서 연락이 오면 나는 지상낙원이야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속에는 깊이 잠수하는 네가 있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찬바람을 쐬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있다고 젖은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걸어 나올 너를 잘 개어서 채소칸에 넣어 두어야겠다고


   정면에서 보면 나의 친구가 비뚤어져 보일 수도 있겠으나


   도마뱀과 같이 몸을 엎드리고 네가 사라지는 틈을 기다리면서


   냉장고 문을 닫고 들어간다

 

 

 

 

 

 

 

 

 

 

 

 

작가소개 / 박규현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문장웹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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