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단편소설]

 

 

각자의 사정 

 

 

강혜림

 

 

 

    오후 7시가 됐는데 은호 아빠는 오지 않는다.
    은호를 데리고 유치원에 왔던 은호 아빠에게 얘기했다. 오늘은 꼭, 7시까지 와주세요. 나는 ‘꼭’에 힘주어 말했다. 검은 마스크로 창백한 얼굴의 반을 가린 은호 아빠는 고개만 짧게 끄덕인 후 낡은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은호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벌써 세 번째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노래는 반복적으로 흐르는데 은호 아빠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선생님, 비와요.”
    창밖을 보던 은호가 높낮이 없는 톤으로 말한다. 긴급 돌봄을 받는 은호는 창밖을 관찰하고 그때그때 모습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은호는 아빠가 아닌 그림에 집중한다. 스케치북 속 노란 승합차 위로 파란 빗방울이 톡톡 떨어진다. 은호가 색칠하며 몸을 흔들 때마다 검은 단발머리도 찰랑거리며 빛을 낸다. 비 때문에 아빠가 늦는 것 같다고 전하려던 내 목소리는 은호의 정수리 위에서 맴돈다.
    빗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그림에 집중하던 은호가 창밖을 본다. 크레파스를 잡고 분주히 움직이던 손이 멈춘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도 깜박이지 않는다. 코와 입술은 마스크에 감추어져 있다. 마치 숨이 멈춘 것 같다.
    나는 은호의 머리 위로 손을 뻗는다. 그러자 정전기가 오른 은호의 머리카락이 금세 찰랑거린다. 은호는 손에 잡은 파란색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회색으로 바꿔 쥔다. 파란 빗방울이 떨어졌던 노란 승합차 위로 회색 빗줄기가 사선으로 거칠게 쏟아진다.
    은호는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묻지 않는다. 은호 아빠를 기다리는 건 나뿐이다. 은호 아빠에게 얼른 와달라고 메시지를 남긴다. 내게도 사정이 있다는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

    오늘은 남편 어머니 제삿날이다.
    시어머니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남편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결혼생활 3년 동안 시가 사람들은 딱 세 번 봤다. 한 번은 결혼 전에 남편 아버지가 주차관리인으로 일하는 빌딩 앞에서였고, 또 한 번은 상견례도 없이 치른 소박한 결혼식장에서 남편의 누나를 짧게 봤다. 마지막은 결혼 후 첫 번째 설 명절에 남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어머니의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그 집에서 남편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나와 함께 쫓겨났다. 그때 나는 남편의 배우자는 맞지만, 며느리가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남편은 미안해했고 나는 다행이라 했다. 잘해 보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방대학 강사였던 남편 누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가까워지려 하지 말자고, 그럴수록 서로 불편해진다며 나와 거리를 뒀던 누나는 작년에 공항에서 한 번 더 만났다. 남편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독일로 떠나던 누나는 남편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며 제사 얘기를 꺼냈다. 제사를 지내든 말든 그건 남편과 내 뜻이라고 했다. 남편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했고, 누나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남편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열세 마리, 열세 마리네. 나는 졸린 눈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꿈꿨구나. 고개를 저은 남편은 천장으로 손을 뻗었다. 남편 손가락이 천장에 딱 달라붙은 사각 전등을 가리켰다. 저 속에 죽은 벌레가 열세 마리나 들어 있어.
    남편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갈색 눈은 진심이었다. 나도 남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사각 전등 속에 점처럼 박힌 죽은 벌레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알 수 있는 죽은 벌레. 남편이 죽은 벌레들을 애도하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사를 지내야겠어.
    내 머릿속은 괜히 초조해졌다. 열세 마리 죽은 벌레와 제사라니. 내 불안한 시선을 의식한 듯 남편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엄마 제사’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왼쪽 볼에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는 새순 같은 상처를 조심스레 만지며 물었다. 제사가 언젠데?
    남편은 ‘오늘’이 무슨 일주일 뒤나 한 달 뒤의 어느 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황당해하는 내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누나가 하던 방식대로 소고기뭇국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소고기뭇국은 남편이 퇴근해서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남편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남편 얼굴이 조금씩 흐릿해졌다. 나는 잠겨 가는 목소리로 정말 준비할 것이 그것뿐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햇반을 얘기했다. 내 목소리가 깨어났다. 햇반? 그 인스턴트 햇반? 남편은 입술을 꾹 닫은 채 응, 하고 대답했다. 그냥 흰쌀밥을 해도 될 텐데 인스턴트 햇반을 올린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제사 음식을 그렇게 차려도 되는 건지 걱정됐다. 남편은 천장에 집중하며 죽은 벌레를 세듯 중얼거렸다. 엄마가 좋아하셨어. 밤 10시에 맞춰서 지낼게.
    당일 아침에야 제사를 지내겠다는 남편의 결정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준비할 음식도 없고 그것조차 남편이 만든다고 했으니, 남편 어머니 제삿날이라고 내가 신경 쓰거나 바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오후 6시쯤이었다. 남편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니 재료를 간단히 준비해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르기만 하면 되는데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필 오늘은 내가 원장님 대신 7시까지 유치원에 남는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퇴근했고 아이들도 모두 하원했지만 은호는 남았다.
    아빠가 왜 늦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은호와 달리 나는 궁금한 것들이 늘어난다. 남편은 갑자기 왜 제사를 지낸다고 한 것이며, 은호 아빠는 왜 오지 않는 것일까.
    불빛이 번쩍인다. 은호는 창문 앞으로 달려간다. 겁도 없이 다시 번개가 내려치길 기다린다. 번개가 번쩍이고 잠시 후 천둥소리가 터진다. 멈춰 있던 유치원 승합차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교실에 찾아온다. 천둥소리에도 놀란 기색이 없던 은호가 내게로 달려든다.
    “선생님, 유령 있어요.”
    나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는 은호 등을 다독거린다. 이제 배도 고플 것 같은 겁먹은 은호는 여전히 아빠를 찾지 않는다. 나는 은호 아빠에게 은호를 내 집으로 데려가서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일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정전이 된 유치원에서 연락도 안 되는 은호 아빠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나는 은호와 서둘러 유치원을 나선다. 아침에 우산도 없이 나온 은호에게 유치원에 남는 우산을 펼쳐 준다. 아이들이 한때 열광하던 신비아파트 캐릭터 우산이다. 빗방울이 은호의 정수리 끝을 역으로 지나 도깨비 신비의 커다란 눈동자 위로 주르륵 흐른다.

*

    8시까지 집으로 온다고 메시지를 남겼던 은호 아빠는 오지 않는다. 집 주소를 잘못 적어 보낸 것이 아닌지 다시 확인한다. 원효 묵정빌라 202호. 맞다.
    은호는 좁은 거실에 놓인 2인용 식탁에 앉아 마트에서 사온 돈가스를 먹는다. 공중에 뜬 은호의 두 다리가 흔들거린다.
    “선생님 혼자 살아요.”
    은호는 물음표도 없이 묻는다. 처음에는 은호의 말이 헷갈려서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가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은호가 질문할 때는 조금 전처럼 고개가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선생님 남편도 은호 아빠처럼 조금 늦게 오는 거야.”
    “선생님도 둘이 살아요.”
    “응. 선생님도 은호처럼 둘이 살아.”
    은호는 ‘아하’라고 느낌표도 없는 수긍 후에 남은 돈가스를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창밖을 본다. 창문에 비친 무표정한 은호와 걱정스러운 내 얼굴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주먹만큼 열어 둔 창문 틈으로 눅눅한 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은호 아빠가 늦는 것처럼 10시에 제사를 지내자던 남편도 귀가 전이다. 남편에게 전화하지만 받지 않는다.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조금 늦어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남편의 본가가 있는 강남은 늘 막힌다. 비까지 내리는 날은 더 꽉 막힌다. 어쨌든 차량정체와 남편이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본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된다. 남편이 오지 않는 것도,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도,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는지도. 자꾸 늦어지는 은호 아빠도.
    돈가스를 다 먹은 은호는 습관처럼 마스크를 쓴다.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은호도 괜찮다고 한다. 마스크에 반이 가려진 은호의 얼굴에는 아빠가 오지 않아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선생님, 그림 그려도 돼요.”
    고개를 기울인 은호에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식탁 위에 놓아 준다. 은호가 식탁에 앉은 채 창밖을 뚫어지게 보다가 크레파스 하나를 선택한다.
    어둠, 비바람, 빌딩, 기와집, ……. 은호는 무얼 그릴까.
    나도 남편 대신 소고기뭇국을 만들 준비를 한다. 국거리로 손질된 고기를 두고서 아무 생각 없이 양지 덩어리를 샀다.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물속에 들어간 양지가 천천히 분홍 피를 토해 낸다. 쓸데없이 큰, 하얀 무는 흐르는 물에 씻어 도마에 놓는다. 나는 어색하게 칼을 잡고 무를 누른다. 겨울 무처럼 단단하지 않은데도 칼날이 무뎌서 쉽게 잘리지 않는다. 날이 잘 드는 칼도 있지만 나는 항상 무딘 칼을 잡는다. 할머니 집에서 자라던 어릴 적에 날카로운 칼에 손바닥이 베인 기억 때문이다.
    그때 내가 왜 칼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작은 손바닥에서 뚝뚝 떨어진 빨간 핏물이 신기해서 바닥에 핏물로 그림을 그렸던 이미지, 병원으로 나를 업고 간 할머니와 놀라 달려온 엄마가 심하게 싸웠던 소리, 그 소리가 칼에 베인 상처보다 더 아파서 울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예리한 칼날만 보면 심장이 쿵쾅거렸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졌다.
    지금 쓰는 칼은 헤어져 살던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지고 온 것이다. 하필, 왜 칼이었을까? 그때도 몰랐던 것을 남편 어머니 제삿날에야 떠올려 봤자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혼하면서 새 칼을 장만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용한 적이 거의 없어서 지금도 예리함을 유지한 채 칼집에 꽂혀 있다. 엄마의 칼이 아무리 무뎌도 새 칼은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은 어린 은호가 있으니 더 조심해야 한다.
    “은호야 뭐 그려?”
    “비. 까만 비 내려요.”
    밤을 가로지르는 비바람. 은호에게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이 검은색이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은호의 정수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무엇을 아냐고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엄마 머리카락도 까매요.”
    아빠를 찾지 않듯 엄마를 찾지 않았던 은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잠시 칼을 놓는다. 적당히 대답할 말을 생각하며 은호를 보지만 은호는 이내 그림에 집중한다. 창밖에 내리는 비가 세상에 없는 은호 엄마의 긴 머리카락처럼 길고 까맣다. 은호에게 애써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은호가 그림에 집중하듯 나도 칼에 힘을 주어 무를 자르려고 애를 쓴다. 결국 무 등에 꽂힌 칼 손잡이를 잡고 도마 위로 내려친다. 칼이 아닌 힘으로 쪼개진 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절단된 무의 낙하와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거실 창문이 흔들리고, 은호는 일어나 무를 줍는다. 무를 건네준 은호와 무를 받은 나는 흔들린 거실 유리창 앞에 나란히 선다.
    바람이 거세지자 사선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수평으로 날아간다. 이런 날에 어울리는 흔한 클리셰처럼 앙칼진 고양이 울음도 바람에 휩쓸린다. 나는 그 소리가 거슬려 거실 창문을 꽉 닫는다. 창문을 닫자 밖의 소리는 차단됐지만, 안의 소리는 선명해진다.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온다.
    “선생님 집에서 이상한 소리 나요. 유령 살아요.”
    은호는 분명 “유령 살아요?”라고 물었을 텐데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고 집 안을 둘러본다. 다시 웃음소리가 들린다. 분명 비어 있는 203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닐 텐데 자꾸 203호와 벽을 공유한 안방으로 신경이 쏠린다. 진짜 이곳에 203호 유령이 떠도는 것은 아닐까.

*

    중개인 최 실장이 원망스럽다.
    이사를 더 미룰 수 없을 때, 퇴근길에 유치원에서 가까운 부동산을 들렀다. 비까지 내려 어느 집이든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중개인 최 실장은 묵정빌라로 향하며 잰걸음만큼이나 빠르게 집의 장점을 말했다. 깨끗한 투룸에 월세가 비교적 싼 집에 대해, 거기에 멋있는 야경은 덤인 그런 집은 쉽게 찾을 수 없다는 희소성에 대해. 나는 괜히 ‘싼’이라는 말이 거슬렀고 아파트 입주할 때까지만 임시로 지낼 집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금세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 신축 빌라들 뒤로 숨어 있는 낡은 빌라 앞에 도착했다.
    202호는 깔끔했다. 전에 살던 신혼부부가 인테리어를 해놓고 이사를 해서 집은 비어 있었다. 언제든지 원하는 날에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최 실장의 말처럼 야경은 멋있었다. 하지만 흔하게 멋있는 야경에 끌리지 않았다. 오히려 묵정빌라 담장 아래 있는 낮은 집이 묘하게 끌렸다. 신축 빌라들과 묵정빌라 사이에 알박기 한 것처럼 당당히 찌그러진 낡은 기와집. 오래된 기와는 군데군데 깨져 있고 나무 대문 옆에는 고물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지지대가 세워진 채 마른 풀들만 남은 텃밭과 수돗가의 붉은 고무대야가 빨랫줄에 매달린 전구 사이로 불안하게 흔들렸다.
    내가 기와집에 마음을 빼앗길 때 최 실장은 세입자들이 야경을 보고 많이 계약했다는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그깟 야경 따위에 현혹되어 집을 계약할 이유는 없었다. 환기가 안 된 답답한 공기를 피하려 단단한 거실 통유리 창을 열었다.
    토도독, 토도독, 등을 다독이듯 토도독, 여기서 살라는 듯 토도독.
    기와지붕 위로 리듬을 타며 떨어지는 빗소리, 그 별것 아닌 위로에 성급하게 사전 계약을 했다.
    이사하던 날, 탑차가 묵정빌라 앞에서 잠시 대기했다. 하필 102호에서 나가는 이사와 겹쳤다. 다행히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1인용 매트리스와 박스 몇 개, 작은 냉장고를 실은 1톤 트럭이 빌라 앞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탑차가 들어갔다. 잔금을 치르기로 약속한 시각은 오후 1시였지만 오전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집주인의 배려였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줄 음료수를 사기 위해 빌라 인근에 있던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계산하던 주인 할머니의 주름진 입이 오물거렸다. 203호 남자가 제 여자를 칼로 찔러서 죽였어…….
    부동산에서 마주한 최 실장은 고객을 상대하는 특유의 눈웃음으로 나를 달랬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떠벌리겠냐고. 나는 아래층도 그 사건 때문에 이사하는 것인지 물었다. 계약이 끝났다는 최 실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가 적당히 나온 집주인이 들어왔다. 최 실장은 집주인에게 인스턴트커피를 타주며 203호에서 일어난 사건이 신경 쓰이니까 202호 월세를 조금이라도 낮춰 달라고 형식적인 제안을 했다.
    당황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집주인과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걱정이 됐다. 마지막 서류를 다 확인한 집주인은 느긋하게 귀지를 파내며 내게 물었다. 주변에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내 미간이 찌그러졌다는 것은 안 봐도 빤한 일이었다. 파낸 귀지를 퉁 튕긴 집주인은 관리비 3개월은 면제해 주겠다고 말하며 나갔다. 계단 청소와 쓰레기 처리를 위한 관리비는 한 달에 삼만 원이었다. 나는 최 실장의 구만 원짜리 생색을 뒤로 한 채 급히 부동산을 나왔다.
    남편은 옆집 사건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 집에 살아야 하는 우리 부부의 결론은 같았다.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은 없다. 정확히는 내가 남편의 결론에 동의한 것이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불안하게 203호에 세입자는 들지 않았다.

*

    203호 방향에 머물렀던 내 시선이 은호를 찾는다. 유령이 사냐고 물었던 은호는 어느새 그림에 집중한다. 마스크가 답답할 텐데도 벗지 않는다. 지루해하거나 졸린다고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가끔 창문에 얼굴을 깊게 대고 있다가 의자에 앉아 그림 그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다행이다.
    나는 은호보다 10시에 지내야 할 제사에 신경을 쓰며 자꾸 시간을 확인한다.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오고 있는 것인지 알려만 줘도 좋을 텐데. 남편의 전화는 신호음만 울린다. 대책이 없다. 도대체 이런 날 강남은 왜 간 것인지. 설마 아버지를 모시고 오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남편 아버지의 퇴근 시간은 오후 10시다. 아마 아직도 그 작은 사각 부스에 낡은 점퍼를 입고 앉아 오가는 차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면 눅눅하고 습한 공기는 더 무거워질 것이 뻔하다. 본인 소유 빌딩 꼭대기에 자랑할 만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집을 놔두고 왜 좁은 부스 안을 떠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둘이 쫓겨났던 날, 남편이 심드렁하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사람 못 믿어. 누구도 못 믿어서 본인이 직접 그 좁은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거지. 후줄근하게 입고 그렇게 고생하고 있어야 훔쳐 갈 돈이 없다고,
    내가 도둑년처럼 보여?
    남편 말을 끊은 내 말 때문인지 제 아버지에게 맞아 터진 입술 때문인지 남편은 인상을 쓰며 비뚤어진 입으로 중얼거렸다. 엄마도 못 믿던 사람이 아버지야.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꽉 깨문 남편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나는 남편의 입술을 휴지로 꾹꾹 누르며 남편 아버지의 빌딩 몇 채보다 더 큰 내 마음의 상처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렇게 꾹꾹, 무를 누르다가 칼을 놓는다. 대신 휴대폰에서 유튜브를 열어 요리법을 찾는다. 맛을 위한 요리가 아닌데도 이런저런 요리 영상들을 재생하며 가장 맛있을 것 같은 소고기뭇국을 찾는다. 다양한 소고기뭇국이 2배속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시간도 2배속으로 순식간에 흘러간다. 이미 겉이 말라 가던 무의 속살도 수분이 사라지며 미세한 금들이 늘어난다. 제사를 지낼 시간은 다가오는데 소고기뭇국은 시작도 못 했고 남편은 여전히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은호 아빠도 오지 않는다.
    은호가 창문을 연다. 비는 계속 내린다. 하늘 끝에서 번갯불이 반짝 하고 사라진다. 나도 번쩍 정신을 차린다. 결국, 무딘 칼을 내려놓고 3년 된 새 칼을 꺼낸다.
    무를 자른다. 쓱-싹. 갑자기 구멍가게 할머니가 오물오물 전한 ‘남자가 제 여자를 칼로 찔러서’가 귓가를 맴돈다. 쓱-싹, 쓱-싹. 은호가 쓱쓱쓱쓱 칠하는 크레파스 소리와 겹친다. 무를 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 쓱싹, 쓱싹.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식은땀이 나지만 그럴수록 무는 잘 잘린다. 은호가 색칠하는 소리가 바뀐다. 쭉-쭉-. 필압이 느껴진다. 나는 빠르게 무를 썰고, 은호는 강하게 그림을 그린다.
    비를 뚫는 고양이 소리가 유난히 앙칼지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싱크대 위로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살핀다. 빨랫줄에 매달린 전구 빛이 사방으로 흔들린다.
    나는 평소에도 가끔 기와집 마당 풍경을 살폈다. 텅 빈 마당이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빨래가 날리거나 고양이가 텃밭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그 집에는 비쩍 마른 상체를 속옷에 겨우 감춘 노인이 살았는데 고양이와 앙숙이었다. 고양이가 나타나면 자신만큼 가늘고 단단한 몽둥이를 찾아 들고 갈라진 욕을 날리며 고양이를 내쫓곤 했다.
    얼마 전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노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영문도 모른 채 육두문자를 받았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창문을 닫고 시선을 거두었다.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 모니터를 확인하니 노인이 서 있었다. 집에는 나 혼자였다. 맹렬한 초인종 사이로 노인이 끼어들었다. 미친년, 어디 염탐질이야?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현관문이 울렸다. 쾅쾅쾅. 당장 안 나와? 쾅쾅쾅. 누구도 노인을 제지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리는 멈췄다. 노인의 기운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현관에 귀를 댔다가 보안 렌즈에 시선을 모았다. 노인이 잇몸만 남은 자글자글한 입으로 이기죽거렸다. 히히, 나랑 살래?
    나는 현관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때마침 남편이 노인을 돌려보내고 들어왔다. 남편은 화장실로 향하며, 꼭 아버지 같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두 명의 노인 이미지가 겹쳐지는 걸 떨쳐내려 애쓰며 그날 밤을 새웠다. 며칠 뒤 초인종이 고장 난 걸 알았다.

*

    굉음처럼 터진 천둥소리에 창문에 붙어 있던 은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은호야, 괜찮아?”
    은호는 크고 검은 눈동자로 나를 본다. 마스크에 가려져서 그 표정을 더욱 알 수 없다. 은호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무른다. 나는 서둘러 예리한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는다.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을 옷에 대충 문지른다. 은호가 다시 창문에 붙어서 고개를 기울인다.
    “선생님도 신비아파트 봤어요.”
    “봤지.”
    은호는 작은 손가락으로 창문을 꾹 누른다.
    은호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은 기와지붕에 누군가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여자다. 머리카락 색이 어찌나 까맣던지 어둠 같은 건 비교할 바가 아니다. 까만 머리카락이 내려앉은 부드러운 어깨는 새하얗다.
    나는 숨을 멈춘다. 지붕 위에 앉은 저 여자와 지금은 지어내지도 않을 소복 입은 귀신 따위를 겹쳐 보며 눈을 깜박인다. 이번에는 더 세게 깜빡. 몇 번이나 감았다 눈을 떠도, 이미 내 속으로 들어온 여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온몸에 가득 불어난 소름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선생님, 고양이.”
    은호는 지붕에 앉은 여자가 아닌 고양이를 말한다. 은호가 본 것은 고양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고양이는 소리만 들릴 뿐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창문을 얼굴만큼 열어 고개를 내밀고 확인한다. 고양이가 아니라 그 여자를 확인한다. 정확히, 제대로 확인해야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다. 눈이 시큰해질 정도로 집중해서 자세히 지붕을 살핀다.
    귀두(鬼頭)다.
    까만 머리를 내려뜨려 앉아 있던 여자는 용마루 끝에 장식된 귀두였다. 귀두 옆으로는 하얗게 아귀토 마감이 되어 있어 마치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헛웃음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제사와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과 은호 아빠 때문에 내가 너무 불안하게 예민해진 것 같다. 나는 땀이 가득한 손으로 비를 맞은 얼굴을 닦아낸다.
    “은호야, 고양이가 어디 있어?”
    은호가 창문 밖으로 손가락으로 내민다.
    텃밭에서 두 눈이 반짝인다. 실컷 울던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던 노인도 뛰쳐나온다. 몽둥이가 빗줄기를 가로지른다. 몽둥이를 피하던 고양이가 힘껏 지붕 위로 뛰어오르며 귀두를 할퀸다. 그러자 낡은 귀두가 힘없이 떨어진다. 귀두를 할퀴었던 고양이도 귀두와 함께 떨어진다. 고양이를 쫓던 노인의 게슴츠레한 눈빛이 떨어진 귀두가 있던 지붕으로 향한다. 그리고 기와지붕보다 더 높은 이곳으로 노인의 시선이 향한다. 나는 재빨리 은호를 데리고 창문에서 비켜선다.
    “선생님, 고양이는.”
    은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다. 노인이 우리를 보지 않았을까, 또 찾아오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 이 집에는 나와 어린 은호뿐이다. 은호는 내가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동그란 두 눈을 깜박거리다 식탁에 앉아 크레파스를 잡는다.
    나는 ‘괜찮을 거야’를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싱크대 앞에 서지만 역시 괜찮지 않다. 잇몸만 자글자글 남은 그 노인이 현관문 앞에 서 있을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날선 칼을 꽉 쥐고 현관으로 가서 내 눈보다 작은 보안 렌즈에 눈동자를 끼워 맞춘다. 잠깐 멈춤. 아무것도 지나지 않은 어두운 계단뿐이다. 긴장을 풀며 돌아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그 짧은 시간, 은호의 손가락에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싱크대 위에 치우지 못한 무딘 칼이 눈에 들어온다. 내 손에 잡은 예리한 칼이 떨어지면서 나는 쨍그랑 쇳소리만큼 내 목소리도 날카롭게 퍼진다.
    “은호야!”
    움찔하는 은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나는 오래전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은호의 손을 꽉 쥐고 요동치는 내 심장 앞으로 가져가며 자꾸 미안하다고, 병원에 가자고, 정신없이 중얼거린다. 은호도 그때의 나처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다.
    “왜요. 선생님 아파요.”
    천진하게 내가 아프냐고 묻는 은호의 시선은 선홍빛에서 진한 붉은빛으로 변한 양지가 담긴 물로 가 있다. 뒤늦게 꽉 잡았던 은호의 손을 재빨리 살핀다. 검은 크레파스 자국만 남은 작은 손은 상처 하나 없이 그냥 젖어 있을 뿐이다. 은호의 손에서 떨어진 빨간 물은 양지가 빼낸 핏물이었다. 은호는 빨간 물이 궁금했고, 손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칼에 베였던 상처가 엷게 남은 내 손으로 은호의 손을 씻긴다. 아이 손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내 심장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떻게 칼에 베인 것처럼 진한 빨간 물이 뚝뚝 떨어질 수 있었을까.
    나도 은호처럼 양지가 담긴 그릇에 손을 담근다. 하얀 손이 핏물의 절반 정도 잠겼다가 나온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무리 봐도 진한 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은호는 내 손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보며 묻는다.
    “선생님, 빨간 물속에 뭐가 있어요.”
    “고기. 국에 들어가는 고기가 있어.”
    은호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덩어리로 된 붉은 고기를 꺼낸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고기라는 사실을 확인한 은호는 붉은색에 관한 호기심을 거둔다. 아무리 혼자 잘 지낸다고 해도 제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얼마나 지루했을까 싶다.
    “은호랑 못 놀아 줘서 미안해. 선생님은 지금 제사 준비를 해야 하거든.”
    처음에는 은호의 눈이 반짝이고, 다음에는 고개가 기울어진다.
    “나 제사 알아요. 선생님도 엄마 제사해요.”
    나는 손을 닦고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럼, 선생님도 엄마 제사하지. 근데 오늘은 선생님 남편 엄마 제사야.”
    엄마 제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거짓말을 하고, 쓸데없는 사실까지 얘기한다. 은호는 졸린 듯 두 눈을 비빈다.
    “졸리면 자고 있어도 괜찮아. 아빠 오면 알려줄게.”
    “자면 안 돼요. 제사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은호의 목소리는 마스크 속에서 잠긴다. 지금 은호는 잘 알고 있다. 은호 엄마 제사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은호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사진도 있어야 해요.”
    식탁에 앉은 은호는 졸린 눈을 느리게 깜박이면서 크레파스를 놓지 않는다. 다시 은호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여전히 연락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또 메시지를 남긴다. 몇 시쯤 도착하는지 묻고는 오늘 10시에 남편 어머니 제사를 지낸다고 적다가 지우고, 집에 사정이 있다고 쓰다가 삭제한다.
    – 몇 시쯤 도착하시나요? 은호가 많이 기다려요.

*

    10시가 다가온다.
    큰 냄비 가득 소고기뭇국이 끓고 있다. 아마 10명이 먹어도 될 것 같은 양이다. 제사를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려고 하는지 남편은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다. 남편이 와야 알 수 있지만 아직도 남편은 귀가 전이다. 독일로 떠나던 누나가 준 상자가 떠오른다. 은호가 말한 ‘엄마의 사진’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남편의 책상 서랍 속에서 작은 상자를 찾는다.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그 상자를 어쩐지 쉽게 열어 볼 수가 없다. 예리한 칼이 든 것도 아닌데 손에서 자꾸 땀이 난다.
    그림을 그리던 은호는 식탁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은호를 조심스레 안아 안방 침대에 눕히고 스탠드를 켠다. 마스크를 뺀 은호의 여리고 하얀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엷게 남았다. 싱크대 위에서 휴대폰 벨이 울리자 서둘러 나간다. 짧게 울리던 전화벨이 끊긴다. 확인하니 남편이다. 재빨리 전화한다. 벨 소리가 끝날 때까지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아주 짧은 순간, 남편과 또 연락되지 않는다. 사정이 있으면 있다고 메시지라도 남겨야지!
    계속 국이 끓는다.
    좁은 거실이 참지 못할 정도로 후덥지근하다. 창문에 서서 혹시라도 노인이 있을까 봐 조심스레 밖을 살핀다. 비가 잦아든 기와집 마당에서 노인이 서성거린다. 몽둥이로 텃밭을 푹푹 쑤시다가 위태롭게 어긋난 대문을 훅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 기와집 마당은 텅 비었다.
    두려운 것들은 호기심을 부추긴다. 다시 그 여자를 확인하고 싶다. 이번에는 내 몸만큼만 창문을 열어 가슴까지 내민다. 여자가 앉아 있다고 착각했던 귀두를 찾는다. 고양이가 떨어질 때 떨어진 귀두, 그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안심은 잠시, 여자의 이미지가 기와지붕에 앉은 채 사라지지 않는다. 떨어진 그것이 다시 나타날 것만 같다. 진득한 바람이 내 귀밑을 지나 거실에 무겁게 깔린다. 가스레인지 불이 어지럽게 방향 틀기를 반복하며 불안하게 흔들린다.
    아무래도 제사를 지낼 곳은 식탁뿐이다. 은호가 그리던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정리한다. 그제야 은호가 뭘 그렇게 열심히 그렸는지 확인한다.
    까만 비가 내리는 기와집 마당, 그 텃밭에 고양이, 고양이가 올려다보는 기와지붕, 그 지붕에 앉아 있는 여자, 까만 머리 여자, 나만 봤다고 생각한 여자…….
    은호가 필압을 강하게 주며 색칠했던 부분이 그 여자의 까만색 머리카락이었다는 걸 알아챈다. 힘이 빠진 손에서 스케치북이 떨어진다. 식탁 모서리에 걸쳐 뒀던 작은 상자도 떨어진다. 상자 안에 있던 액자가 너무나 쉽게 깨진다. 늙지도 않은 남편 어머니 얼굴에 금이 간다. 남편 어머니 머리카락이 까만 단발이다. 그러자 돌아가신 엄마도 까만 머리였고, 몇 번 보지 못했던 은호 엄마도 까만 머리였다는 것이 떠오른다. 어쩌면 203호 죽은 여자도 까만 머리이지 않았을까. 기와지붕에 앉았던 귀두(鬼頭)처럼.
    현관문이 쾅쾅 울린다. 초인종을 고치지 못했다. 문을 열려다 잠시 멈칫한다. 앞집 노인일 수 있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다시 문이 쾅쾅 울린다.
    “은호 아빠신가요?”
    또 대답이 없다. 렌즈로 밖을 살핀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지만 문을 열지 않는다. 내가 열지 않아도, 굳게 닫혀 있어도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 이곳으로 모여든 것 같다. 심지어 열세 마리 죽은 벌레들까지도.
    더운 공기가 좁은 거실에 가득 찼는데도 나는 몸을 떤다.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손으로 뜨거운 국그릇을 들고 식탁 위에 놓는다. 전자레인지에서 햇반을 꺼내자 허기가 밀려온다. 식탁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식히지도 않고 후루룩 먹는다. 깨진 유리 속에 갇힌 남편의 어머니가 나를 노려본다. 햇반을 국에 말아 한 입. 은호가 그린 그림을 확인한다. 기와지붕 위에 위태롭게 앉은 하얀 어깨선의 여자를 한참 바라본다. 다시 국물 한 입. 입속에 넣은 국물이 너무 뜨거워서 눈물이 난다.
    사부작사부작 작은 움직임에 돌아본다. 잠이 깨어버린 은호가 어느새 마스크까지 낀 채 침대에 앉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유령 있어요.”라고 또 물어본다면, 이번에는 뭐라도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은호는 너무나도 새까만 눈으로 나를 본다. 벽에는 어둠으로 나만큼 자라버린 은호가 우리를 지켜본다. 나는 모른 척 계속 뜨거운 국을 떠먹는다. 흔들리는 손으로 턱을 닦아내고 식탁 위도 훔쳐내며 누구보다 먼저 밥을 먹는다.
    오늘은 남편 어머니 제삿날이다.
    10시가 다 되었는데 남편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아직 귀가 전이다. 8시까지 온다던 은호 아빠도 어떤 사정이 생겼는지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도 어떤 불안한 사정이 생겼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강혜림
작가소개 / 강혜림

2020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나의 레인보우샤크」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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