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외 1편

[창작시]

 

 

초행

 

 

김희업

 

 

 

 


   시간이 빨래를 말린다
   빨래가 빨리 말라 갈수록 밤은 더디 마른다
   하늘은 구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새 단장을 했다
   천둥도 한 가닥 걷어내자 멍 자국이 보였다


   난청의 밤이 와
   소란스럽던 소리조차 침묵에 덮이고 만다
   침묵은 얼마나 무서운가, 할 말을 못 하고 세상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밤은 서식지가 불분명한 달이 출몰하는 장소인가
   밤은
   이런저런 생각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송곳의 시간인가


   빼뚠 글자를 수선해 가면서
   밤새 밤도 모르는 줄거리를 찾아 밤을 이어 붙인다


   어둠을 덮고 자는 밤에는 서로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게 되어
   우리의 동공은 더욱더 캄캄하구나


   해마다 겨울은 처음인지라
   한 발 물러서 나는 봄 쪽으로 걷게 되었고
   그때부터 길은 나와 어긋났다


   내 그림자를 밟지 못하는 나는 평화주의자인가
   4월을 걸어서 갔다, 이 길로 곧장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나를 향한 걸음은 이리도 무거워라


   도착하니, 나를 빼닮은 그림자 나보다 먼저 잠들고
   어디서
   마르지 않은 젖은 마음이 다가와 묻길,


   오늘 밤은 초행이지?

 

 

 

 

 

 

 

 

 

 

 

보자기

 

 

 

 


   떨리는 손으로 풀어 보는 손편지


   가끔
   아주 가끔
   설움과 울분을 삭이다
   주먹을 쥔 결심 끝에 보따리가 생겨난다


   구름을 끌고 가는 하늘이나
   하늘에 걸려 넘어진 저녁 해나
   외로운 공존의 중심에 있다


   한 뭉치 근심을 꾸린 보따리가 길을 나선다
   서글픔을 품고 가야 하기에 뒷모습은 흐릿한 안개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날 사람
   떠난 사람은 떠나야만 했던 사람
   우여곡절 끝에
   보따리와 함께 떠나게 된 횡재


   그 모든 게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는지?


   어떤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
   가보지 못한 나라의 국기가 되어 보는 것은


   이제는 맘껏 펄럭여 보라고
   여기 바람을 묶어 보내는 바이다

 

 

 

 

 

 

 

 

 

 

 

 

작가소개 / 김희업

19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비의 목록』, 『칼 회고전』이 있음. 천상병시상 수상.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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