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문 토기 눈사람에게 시 읽어주기

[창작시]

 

 

빗살문 토기

 

 

곽재구

 

 

 

 


   빗살문 속으로
   사람이 걸어간다


   슬픈 사람도
   외로운 사람도
   기쁜 사람도 걸어간다


   꽃이 피면 빗살 하나 긋고
   초승달이 뜨면 또 하나 긋고
   아기 만들던 새벽 하나 긋고


   흙속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
   최초의 시가 태어났다

 

 

 

 

 

 

 

 

 

 

 

 

눈사람에게 시 읽어주기

 

 

 

 


   아세안 식료품점을 지나 카페 1mm 앞을 지나 불로만 치킨구이를 지나 매곡동 성당을 지나 북한 여자 결혼 중계소를 지나 오토미션 전문이라 적힌 카센터의 붉은 네온사인을 지나 삼인 약국과 옛날 손만두 집을 지나 토끼를 파는 대성수족관을 지나 동천에 이르는 동안


   눈이 펑펑 내렸다
   산자두나무 꽃비 같아


   연탄 화덕 구이 막창집 손님들이
   유리창에 돼지코를 만들며 손을 흔드는 동안
   오토미션 카센터 주인 사내가 헐렁한 주황색 바지를 걸치고
   내리는 눈을 향해 몽키스패너를 흔드는 동안
   가로등 아래 아이들 몇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눈사람은 뚱뚱해
   웃는 얼굴이지
   빨간 벙어리장갑을 꼈네
   뚱뚱한 것들은 따뜻해
   두 팔을 벌려 힘껏 껴안아 주지
   고통의 세상 끝까지 함께 굴러도 좋을 것 같아
   구르다가 어디선가 멈추면
   시를 읽어주지


   눈사람이 환하게 웃네
   아이들이 하얀 콧김을 눈사람의 귀에 불어 넣어 주고 있어
   아이 간지러
   눈 내리는 소리는
   아이 간지러


   시가 어디에서 오는지
   사랑이 어디에서 오는지
   참 많이 알고 싶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악귀와 같은 언어들과 뒹굴며 밤을 새운 아침 신기해 그곳에 햇볕을 뒤집어쓴 자두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연두색 꽃잎들 바람에 날리고 믿음이 깨질 때까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쓸쓸한지 알 수 없는 밤이 지나간 뒤 신기해 그곳 어딘가에 펑펑 송이눈이 왔지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뚱뚱한 눈사람들이 세상 어느 거리론가 흩어져 갔지 눈사람들은 봄날 카페A의 창가에서 수정 씨가 날려 보낸 민들레꽃씨 같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그들을 위해 밤새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쓴 시를 읽어주는 거야


   시가 무엇인지
   사랑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의 거리 안에
   눈 내리고
   햇볕 쏟아지고
   자두꽃 피고


   연탄 화덕 구이집 손님들이
   떠들썩하게 가위바위보를 하며
   구운 막창과 돼지껍데기에 남은 술을 마시는 동안
   카센타 집 사내가 몽키스패너를 흔들며 춤을 추는 동안


   눈사람들은
   세상 곳곳에 멈춰 서서
   웃는 얼굴로 우리를 보지
   분홍 벙어리장갑을 끼고 손을 흔들지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고통은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눈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알 것 같아
   뚱뚱한 그 사람 곁에서
   밤새 하얀 시를 읽어주고 싶어.

 

 

 

 

 

 

 

 

 

 

 

 

작가소개 / 곽재구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1981)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 아리랑』, 『와온바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꽃으로 엮은 방패』, 산문집 『포구기행』, 『예술기행』 간행.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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