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좋은 사람들 외 1편

 

[신작시]

 

 

착하고 좋은 사람들

 

 

신용목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죽음이 한꺼번에 태어날 필요가 있나?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대신해 시들어가는 국화꽃 옆에서
    둘은 싸운다.
    좀 따뜻하게 안아주고 갈아주면 안 돼? 갓난쟁이면, 죽음도 여리고 가냘프니까.
    둘은 우는데, 죽음은 죽지도 않아. 영생을 창조할 줄 아는 자에게 신은 말 걸지 않는다.

 

    너무 투명해서 어두워지는 밤처럼

 

    바다를 바다로 메울 만큼 비가 와.

 

    망각은 돌잡이로 무얼 잡을까? 실타래는 쓸모가 없고 마이크면 좋겠다. 크게 떠들며, 둘은 웃는다.

 

    비 오는 들판 가득 꽂힌 촛불을 평생 끌 수 없어서,

 

    우리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자라서,

 

    어느 날 걸어오겠지. 내 팔의 정면으로
    자라서

 

    어느 날 말을 하겠지. 어느 날은 지독한 꿈을 꾸고 저를 삶 속에 던져버리는 날도 있어서,
    싸울까?
    자꾸 새로운 첫사랑 시작된다고 어느 날은 수육 접시 앞에서 육개장을 비우며, 보고 싶다.

 

    그리고 문을 잠근 채, 울겠지.

 

    다들 너무 착해서, 기쁘다고 말하면 웃고 슬프다고 말하면 우는 사람들. 다들 너무 좋아서, 기쁘다고 말하며 울고 슬프다고 말하며 웃는 사람들.

 

 

 

 

 

 

 

 

 

 

 

 

 

 

 

 

 

 

 

 

 

 

모든 시계들이 미치리라

 

 

    나는 내가 지나가야 할 시간이 내일인지 어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언제나 보이지가 않아요.

 

    신호등.

 

    공중의 화염이자 지상의 등대.

 

    그래서 빨강 노랑 초록,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봅니다.
    정식 장환 기행
    아니, 화 악 주면 어때서?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이별을 통해 겨우 꾸며낸 만남처럼

 

    나는 동엽 앞에서 멈추고 수영을 통해 지나갔습니다.

 

    남주 앞에선 뛰었지요.

 

    맞아요. 비가 내렸습니다.
    비는
    69년 동안 땅을 두드렸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일을 위해 살았다는 듯
    그는,
    성실한 집사가 되어 땅의 문을 열었고

 

    비를 안내했지요.

 

    69년 만에 문 하나 여는 인생에게

 

    기도할까요? 하지만
    이미
    내 선택의 제방은 무너졌습니다. 내 삶은 내가 살아온 날들에 잠겨버렸습니다.
    침수된 지하실,
    빈 우유각 사이로 떠다니는
    일기장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오늘은 진입로 개나리꽃이 피로 물드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그냥, 노랑에서 빨강이군.’

 

    신호등이 바뀌듯
    밤과
    낮이,
    꿈과 삶이 번갈아 켜지는 것이 생활이라면, 정면의 초록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정희야,
    너는 왜 거기서 깜빡이고 있는 거냐?

 

    아무리 살펴도 건너편이 보이지 않아서, 모든 오늘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황에 대해서도 살았다고 쳐주는 겁니까?
    다시 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다만 비처럼
    울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속에도 신이 있구나.

 

    나는, 잠겨 있구나.

 

    네, 네.
    거짓말로 고백했던 사랑처럼, 69년은 계속될 것입니다. 마침내 비가 올까요?
    적어도
    비가 온 적은 있으니까.
    동식이처럼

 

    죽음은 우리 몸의 홍수가 생활이라는 부유물을 휩쓸고 문 너머로 사라지는 일이니까.
    아득한 하류에,
    옷가지처럼 기쁨 한 자락쯤 걸려 있겠지요.
    그러나
    비는 그쳤고

 

    문은 닫혔고,

 

    바짝 마른 날을 기다려 태우는 수밖에.

 

    오늘은 내가 죽으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청소를 할까 합니다.
    아,
    이 방은 내놔야겠지.
    책상은 버려야 할까?
    몇 권의 책은 마두도서관에 기부하고 일기와 편지를 태우고 인사를 해야지.
    다음엔 뭐가 남았나?

 

    오늘은 끝이 없는데.

 

    내가 죽은 후, 누군가는 이렇게 쓸 것입니다. “자신을 사망신고 할 수 없었던 그는 끝까지 살다 죽었다.”
    웃을래요?
    유령이기를 멈추지 못하는 유령처럼, 문 하나 열지 못해 오늘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래요? 하지만 울음을 다 써버린 육체에게

 

    자연사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자연사라는
    일.
    날개 없이 날아가는 것들에게만 가능한 일
    같습니다.
    마음처럼?
    이를테면,
    사랑과 분노와 슬픔과
    망각.

 

    그것이 중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던진 돌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
    저 달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
    어디로 날아간단 말입니까?
    누가

 

    저 큰 돌을 던졌습니까?

 

    비가 내리고

 

    달이 빛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돌이
    69년쯤 날아가다 그만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분노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슬픔만 남아

 

    비로 떨어지는 거라면,

 

    나의 홍수는 정말 박동학입니까?

 

    나의 홍수는 권재근 이영숙 양승진 고창석 남현철 박영인 허다윤 조은화 권혁규인데,

 

    박붕규인데, 그러나 반짝
    비
    그치면,
    거기 개나리 진입로 따라

 

    소풍 가자. 아름다운 곳.
    젖은 일기를 말리는 마음으로
    어디?
    공동묘지.
    왜? 공동묘지는
    인생을 다 이해하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끝을 보여주니까.

 

    빨강 노랑 초록 앞에 서면 모든 정면은
    건너편인데,
    창부 인섭 영훈 고운과 동선과 무창과 군재 현욱 대원으로도 끝나지 않는 이름을 지나서

 

    오늘을 지나가면
    오늘,
    아닌 곳으로 가게 될까? 오늘을 지나가도
    또
    오늘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다시, 대성과 용헌과 상림과 회성과 성수를 지나가야 한다면?

 

    그러니까
    그때,
    나는 길이 나를 잃어버렸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왜? 나는 길을 가진 적 없으니까.
    다만
    오늘의 가운데서 오늘을 잃었지만,

 

    내일을 가진 적 없으니까.

 

    그래요.
    기쁨이 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모두를 가지고도 한 번도 우리에게 오지 않은
    기다림처럼,
    나는 한 번도 그들과 헤어진 적 없습니다. 한 번도 그들과 만난 적 없으니까.
    그래서 만나러 갑니다.

 

    비가 옵니다.
    비가 오다가,
    어느 순간 신호등이 바뀌듯, 슬픔이 지나가듯, 한 발짝씩 누군가의 이름을 옮겨놓으며

 

    오래 걷다가 멈추듯

 

    비가 오다가,

 

    미안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먼저 보낸다.

 

    눈이 와.

 

    눈이,
    와.

 

    오늘 공동묘지에 가면, 모든 시계들이 미치리라.

 

 

 

 

 

 

 

 

 

 

 

신용목 시인
작가소개 / 신용목

–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가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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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걷는법심리학도

https://www.youtube.com/watch?v=xaQAyN95PIM&t=4s
선생님 혹시 이런식으로 시를 홍보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있다면 저에게 연락주시면 좋겠습니다

010-7794-4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