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重慶森林) 외 1편

 

[신작시]

 

 

중경삼림(重慶森林)*

 

 

장이지

 

 

마음이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사물이 되어서 만지면 아픈 날이 있어요.
세탁기가 울어서 방에 홍수가 나고
인형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날이 꼭 있어요.

 

방이 눅눅한 마음일 때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왕자웨이(王家衛) 영화를 보죠.

 

금색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린칭샤(林靑霞)가 인도인들을 총으로 쏴
마구 죽일 때,
내 친구는 조금 겁먹은 표정을 짓지만…….

 

쫄지 마, 바보야.
린칭샤는 센 역을 많이 했지만
그건 변장일 뿐.
경찰 223이 호텔방에서 잠든 그녀의 신발을 벗겨줄 때
고단한 신발이 침대 밑에 놓일 때
그건 그녀의 아픈 마음이야.

 

어른들은 모두 서툰 어른이란 걸 알게 되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마음이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날이죠.
그리고 말예요,
그날은 내 친구가 없는 날…….

 

* 왕자웨이(王家衛)의 1994년 영화.

 

 

 

 

 

 

 

 

 

 

 

 

 

 

 

 

 

 

 

 

 

 

 

 

 

 

 

 

 

 

시*

 

 

고백이란 제도에 어서 오세요.
여기서는 진실만을 말하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마지막엔 강물 위로
비어 있는 죽음을 띄우는 것을.
이를테면 죽은 채로 되돌아오는 아도니스 인형을,
시체의 의식을.
눈물의 유속(流速)을 계산하는 걸 잊지 마세요.

 

고백이란 회사에 어서 오세요.
연분홍 치마에 어서 오세요.
‘문학소녀가 이렇게 예쁠 리 없어’에 어서 오세요.
‘알바 하는 문단 아이돌’에 어서 오세요.
시와 음악이 있는 문학콘서트에 어서 오세요.
시를 사랑하는 모임의 육담(肉談)에 어서 오세요.
‘기교 시인은 상처 받지 않고…….’
‘언제나 이 고비를 넘어가는 법의 사각을 알고…….’

 

회사에서 배양되는 시체들이
멋진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그래도 시인 되자고 시를 배우지는 마세요.
꿈을 짓밟히면서까지 참지 마세요.
블랙회사는 연필을 깎게 하면서 희망고문을 하지만
시인이 안 되어도 우린 슬픔을 쓸 수 있어요.

 

* 이창동의 2009년 영화. 이 시에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및 김수영 시를 패러디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음.

 

 

 

 

 

 

 

 

 

 

 

장이지 시인
작가소개 / 장이지

–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으로 『환대의 공간』, 『콘텐츠의 사회학』 등이 있음. 김구용시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을 수상.

 

   《문장웹진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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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스웨터

너무 좋아요…

바람을걷는법심리학도

https://www.youtube.com/watch?v=xaQAyN95PIM&t=4s
선생님 혹시 시를 이런식으로 홍보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win-win하게 연락주십시오

010-7794-4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