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돌아왔다 외 1편

[창작시]

 

 

S가 돌아왔다

 

 

윤지양

 

 

 

 


   스페인어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H는 묵음입니다


   발음하며
   뒤뜰에 묻은 것을 떠올렸다

 

 

 

 

 

 

 

 

 

 

 

소설

 

 

 

 


   P가 언성을 높이는 것을 듣는다. P는 유튜브를 통해 정치와 관련된 동영상을 보고 이것저것을 말했다. 나는 그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다만 그는 자주 빨갱이 소리를 했고 독재 국가 하에서는 국방력이라도 강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독재를 모른다.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력 또한 모른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기어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폭격을 모른다. (…)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수많은 말들을 늘어놓았다.1) 나도 그처럼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말을 늘어놓을 수가 없다. 내 생각은 둔하고, 섬세하게 뻗어 나가지 않는다. (…) 하나의 생각은 하나가 되지 못한 생각을 부른다. 생각은 점점 닳아 없어진다. 그러나 구체적인 말은 더욱 구체적인 말을 부르고 점점 더 뾰족해진다. 토마토를 찌른 칼처럼. 공교롭게도 아침엔 토마토를 갈아 마셨다. 붉은 것을 떠올린다. 부른다. 말은 넘실거린다. 파도와 파도와 파도와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는 게와 게와 빛과 그리고 빛. 마음은 그런 것들을 말해 주지 않는다. 생각은 그런 것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중략)


   어쩌면 나는, 문장의 가능성만으로 쓰인 소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2) 부정형 어미만으로 실현되는 소설을. 심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을. 그것은 소설이기에 가능하다. 소설 속 진실은, 사실상 모두 허구가 아닌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가 부럽고 질투가 난다. 뛰어난 것을 보면 으레 그러하듯. 나는 단지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러나 시를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 쓰지 않게 되었는지 (…) 모른다. 누군가 말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대요. 나는 소설 또한 쓰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연필을 들어, 가장자리에 금박을 입힌 메모지에 글자를 채워 넣지 않는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를 들으며 내 앞에 있는 전등을 하염없이 바라보지 않는다. 전등은 가끔씩 깜빡이지 않는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둔중한 몸을 이끌며 화장실로 가지 않는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뛰어다니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만 시끄럽게 굴라며 고함치지 않는다.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맞춘 노란색 원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파트의 일원 모두 묵념하지 않는다.


   (후략)


   나는 P에게 어서 국기를 게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경일은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 학교에선 기쁜 날과 슬픈 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어떻게 국기를 게양하는지 배우고 부모 앞에서 떠들지 않는다.
   아이가 게처럼 걷지 않는다. 화장실로 달려가 먹었던 것을 토하지 않는다.
   토사물은 붉지 않다. 밀려오지 않는다. 더 이상 모래를 먹지 않게 되었을 때 국가는 들리지 않는다. (…) 덮거나 생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또한 아니다. 막 젖힌 커튼 앞에서
   눈이 부시지 않다.

 

    1) 쇠렌 키르케고르로 추정됨
    2) 이 부분에 대한 각주는 여러 번의 번안을 거쳐 소실되었다.

 

 

 

 

 

 

 

 

 

 

 

작가소개 / 윤지양

2017년 《한국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스키드』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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