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단편소설]

 

 

아담

 

 

김강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자기를 찾아왔을 때 부재의 형태가 어떠하든,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줄 문장으로 부고를 남겨 달라 했다. 산을 내려오며 언제쯤 그를 만나러 와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삶이 그의 몫이기는 하지만 그를 알아버린 내게도 그의 삶에 대한 책임 중 일부가 주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수용되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니면 여전하거나.
    이후 삼 년이 지났다. 나는 그의 존재와 부탁을 잊어버렸다. 삼 년이면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이 많았던 만큼 바빴다. 첫 소설집을 내었고 정확히 일 년 후 두 번째 소설집을 내었다. 두 권의 소설집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다. 소설 쓰는 일을 그만두지 못할 정도의 반응. 삼 년은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볼 무료 영화를 고르다 영화 ‘마스크’를 선택했고 짐 캐리가 나무로 된 가면을 주워 올리는 장면에서 그의 부탁을 떠올렸다.
    삼 년 만에 그를 찾아 산을 올랐다. 그의 움막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곳에서 내가 보았던 장면, 그곳에 남겨진 흔적들은 단 한 줄의 문장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더구나 나는 소설가가 아닌가.
    그의 이야기를 한 줄 부고로만 남길 수 없어 이 기록을 남긴다. 그와의 대화,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살폈던 의료진을 찾아가 나눈 대화, 그의 움막에서 보았던 것들과 발견한 것들을 토대로 했다. 각각의 자료들에 번호를 붙인다. 순서에는 의미가 없다. 절대적인 시간의 순서, 내가 획득한 순서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으나 중요도 혹은 의미심장함 따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1. 아내가 말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내가 둘째 아이 친구 엄마들 대화방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둘째 초등학교 뒷산에 자연인 한 명이 살고 있다네. 애 친구 엄마들 말로는 소나무로 된 가면을 쓰고 다닌대. 가면을 팔기도 하고. 높지도 깊지도 않은 산에 자연인이라니 우습기는 하지만 한번 가보는 게 어때? 자기 슬럼프라며. 가서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즈음 나는 비어 가고 있었다. 경험과 지적 토대, 그리고 사유 모두 바닥을 드러냈다. 써야 한다는 강박과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절망이 누렇게 익어 가던 중이었다. 요즘 당신 소설 조금 뻔해. 이런 말 한 마디면 툭 터져 흘러내리기 충분한.
    다음날 나는 산에 올랐다.

    2. 그를 만나다

    산책로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움막을 찾았다. 움막의 비닐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그가 나왔다. 소나무 껍질로 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나가는 길에 못 보던 움막이 보여서요.
    못 보던 움막이라니요. 여기 자리 잡은 지 이 년이 넘었는데요.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이 년 만에 오신 길이겠군요. 들어오십시오. 궁금증도 풀고 가시고. 그도 적적하던 참이었습니다.
    움막 안은 바깥에서 본 것보다 넓었다. 장판이 깔린 바닥, 넓게 펼쳐진 신문지 위 빈 자장면 그릇이 보였다.
    웃기지요. 자장면 그릇. 그도 돈이 조금 생긴 날은 자장면도 시켜 먹고 그럽니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파랗고 둥근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오며 말했다.
    이리 올라와 앉으십시오.
    내가 물었다.
    선생님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는 ‘그’라 불러 달라 했다. 선생님, 당신 따위의 호칭을 듣고 싶지 않으며 이름을 묻지도 말라 했다.
    그저 ‘그’라 불러 주면 감사하지요.
    그는 스스로를 칭할 때도 ‘그’라 했다. ‘그’는 말하기 싫어해요. ‘그’는 졸려요. 이런 식으로.
    그나저나 무슨 일을 하시는 분입니까? 그를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이구요. 이 년 만에 들른 산책길을 걷다 우연히 들르신 것치고는 표정이 진지하신데.
    그가 물었다. 뭐라 대답할지, 소설을 쓴다 할지, 그렇게 말하면 돌아가라 할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저는 말입니다, 말하려는 순간 움막 안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섰다.
    소나무 가면 하나 사러 왔어요.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천장에 매달린 소나무 껍질들을 가리켰다.
    아이 얼굴에 적당한 것으로 골라 보세요.
    아주머니가 그중 한 가지를 고르자 그는 검정 펜으로 소나무 껍질에 눈과 코, 입을 그렸고 끌과 망치로 구멍을 만들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십 분 정도. 가면을 앞뒤로 살피고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오천 원입니다.
    아주머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고 그는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지폐뭉치를 꺼냈다. 다섯 장을 헤아렸다.
    아이가 자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릴 수 없게 되면 다시 오세요. 그때까지 그가 여기 있다면 다시 만들어 드릴 겁니다. 물론 오늘보다 조금 싸겠지요.
    누가 만들어 준다고요?
    아주머니가 되물었다.
    전체를 가리지 못하는 가면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는 자기가 할 말만 했고 잔돈을 받아든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나갔다.
    이런 날 자장면을 먹는 거지요. 참,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그렇지. 뭐 하시는 분이라 했지요? 말씀을 하셨던가?
    글을 씁니다. 소설.
    소설가시군요. 그렇군요. 재미난 소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셨겠습니다. 별로 재미난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그러면 그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가요? 작가님은 꽤 운이 좋으십니다. 이야기를 남겨야겠어, 엊저녁 그가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변명 같은 설명을 하겠다, 마음먹었거든요. 글재주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 중이었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가 운이 좋은 것이네요. 어쨌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뜻하는 대로 각색을 하셔도 됩니다. 작가라면 독자의 재미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가 사라진 뒤에 쓰시거나, 그전에 쓰더라도 그가 사라진 이후에 공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별것 아닌 이야기를 거창하게 한다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누구의 이야기든 인생 이야기는 약간은 거창한 것 아닙니까.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닐 테니.

    3. 그의 이야기를 듣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는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친구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넘어졌다고 했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다 자신하던 길이었다. 술을 한 잔 하기는 했지만 발을 헛디딜 정도로 취하지 않았고 작은 아이를 업고 있었지만 아이가 무거웠던 것도 아니었다.
    그날 그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기분이란 것이 술을 마시면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잖습니까.
    아이들은 모여 앉아 핸드폰 화면을 보며 놀았고, 아내들은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아이들 상에 올려놓기 바빴다. 친구가 잔을 내밀었다. 그 또한 잔을 들어 친구의 잔에 부딪혔다.
    넌, 내가 본 인간 중 제일 운이 좋은 놈이야.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더라면 왜? 어째서? 따위의 물음을 던졌거나 나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 따져 들었겠지만, 친구는 그를 잘 알았고 그 또한 친구를 잘 알았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 하고는 웃어버렸지요. 솔직히 말해 그즈음 그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입으로 명확히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지만 다만 그런 느낌, 친구가 ‘내가 본……’이라 한 이후부터 명확해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작은 아이를 업은 채 걷고 있었지요. 큰 아이가 앞장 서 걷고 있더군요. 그는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작은 아이의 발로 큰 아이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지요. 큰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는 뒷걸음질을 쳤고 그러다 발이 꼬여 넘어졌습니다.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몸을 돌려야 했다. 업혀 있던 아이의 머리가 다치지 않게 등을 위로 하고 얼굴을 바닥으로 향했다. 오른쪽 손으로는 업혀 있는 아이를 잡았고 왼손과 오른쪽 어깨로 바닥을 짚었다. 턱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왼손과 오른쪽 어깨로 충격이 흡수된 탓인지 살짝 닿는 느낌만 들었다. 업힌 채 자고 있던 아이는 놀라 깨어났고 아내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큰 아이가 아빠 괜찮아요, 하며 다가왔다. 괜찮아. 그는 웃으며 일어섰다. 왼손바닥이 아팠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얼굴과 손을 씻은 그는 잠이 들었다. 넘어지기는 했어도 기분 좋게 취한 좋은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 눈을 떴다.
    오른쪽 어깨가 아파,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그가 물었고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 전날 밤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렇게 넘어졌으니 아플 수밖에. 왼손바닥은 괜찮아? 손목은? 어제 저녁은 왼손이 아프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왼손에서 피도 났었어.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간밤의 일들이 정지 화면처럼 하나씩 떠올랐다. 그러자 왼손바닥이 아파 왔다. 살이 패고 검은 피딱지가 붙은 왼손바닥. 마침 일요일이었다. 손과 팔을 쓰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혹시 어제 얼굴도 바닥에 부딪혔어?
    아니. 반사 신경이 대단하던걸. 그 와중에도 고개는 들고 있더라고. 왜 얼굴이 아파?
    그런 것은 아니고 눈이 좀 이상해.
    시야가 좁아진 듯했다. 왼쪽 삼분의 일이 검게 가려진 것 같았다. 눈에 뭐가 끼었나 싶어 세수를 하고 눈을 씻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자꾸 신경이 쓰였고 신경을 쓰다 보니 어지러웠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나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안과를 찾아갔다. 안과의사는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이런 것이냐, 그가 물었고 안과 의사는 눈에는 이상이 없다는 대답을 다시 했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가 다시 물었지만 안과의사는 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하고 같은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상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편해질 수 있게 뭔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다못해 안약이든 인공눈물이든 무슨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는 따졌다. 그러면 인공눈물이라도 처방을 해드리지요. 안과의사가 대답했고 그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이 되어 시야의 장막이 걷히는 듯했다. 아직 흐릿함이 남아 있었지만 전날보다는 나았다. 하룻밤 더 푹 자고 일어나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았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내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이 감기지가 않았다. 아니 눈은 감았는데 시야가 닫히지 않았다. 전날 검은 장막처럼 가려져 있던 부위가 이제는 눈을 감아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밝게 빛이 났고 흐릿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끔은 어두워지기도 했고 가끔은 더 밝아지기도 했다. 다시 눈을 뜬 그는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깜짝 놀랐다. 시야의 왼쪽 삼분의 일에서 그녀의 어깨와 잠옷 사이, 그녀의 가슴이 보였다. 분명 그의 두 눈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의 말을 듣고만 있던 내가 그에게 물었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요? 이해가 안 되지요.
    그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 한숨을 몇 번 내쉬다 왼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고 왼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왼손바닥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건가요?
    그는 대답 없이 반창고를 떼어냈고 왼손바닥을 들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남아 있기는 한데 상처는 아니에요. 선생님 얼굴이 더 가까이 보이네요.
    그의 왼손바닥에는 십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나 있었고, 그 구멍 속에 까만 유리구슬 같은 것이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드문 세상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고.
    그의 세 번째 눈입니다. 행여 기대하지 마십시오.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천리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조리개도 없습니다. 딱 그의 팔 길이 정도 거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선생님 같으면 이 눈으로 뭘 하시겠습니까?
    그가 내게 물었다. 장난스런 대답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손바닥에 생긴 세 번째 눈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제일 운이 좋은 사람에게 온 또 하나의 운인지, 행운 끝에 찾아온 불운인지 판단하기 힘들었습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또 하나의 운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곧 운이 아닌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가지기 힘든 것을 가진 것과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은 다른 의미니까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눈의 유용한 사용처를 찾아내면 주위에 알릴 용기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용기라는 것을 내지 못했습니다. 사용처를 찾기는 했는데 세상에 유용한지 알 수 없었거든요.
    다행히 세 번째 눈이 생긴 곳은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먹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길 수 있었다.
    숨기기에만 좋은 눈입니다. 바깥을 보는 데 도움은 안 됩니다. 숨기기 위해서 생긴 눈이라니. 그게 우스운 겁니다. 도대체 왜 생겼나 싶기도 했지요.
    손목을 꺾어 바닥을 바깥으로 향하면 밖을 볼 수는 있었지만 굳이 힘들게 그리 하지 않아도 원래 가지고 있던 첫 번째, 두 번째 눈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게다가 초점을 조절할 수도 없는, 해부학적 그리고 기능적 한계를 가진 눈. 이 눈이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였다.
    이게 거울을 보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물론 그전에도 거울을 믿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는 이후로 한동안 세 번째 눈과 거울의 차이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왼손바닥에 있는 검은 눈동자를 살피느라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이 눈인지, 정말로 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그의 왼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브이 자인 것은 알겠는데 초점이 안 맞네요. 조금 더 뒤에서 흔들어 보십시오.
    머쓱해진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이게 말이 돼? 저 세 번째 눈이라는 것도 그저 조금 깊이 팬 상처일 거야. 입에서 맴돌다 삼켜버렸던 말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무안한 마음에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물었다.
    손바닥에 눈이 생긴 것과 가면을 쓰는 것은 무슨 관계입니까?
    그러게요.
    그는 가면을 만들기 위해 썼던 목공 기구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목이 마르기도 했던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4. 세 번째 눈

    그는 세 번째 눈의 용처를 찾아냈습니다.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용처라 말하기도 뭣 합니다.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말 있잖습니까? 존재의 목적.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자신을 볼 수 있었지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표정과 눈빛, 잘못된 – 명확히 ‘잘못’이라는 것이 누구의 기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 행동을 빠르게 교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몰랐던 버릇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콧구멍을 후비는 버릇이라든지, 그 손가락으로 다시 귓구멍을 후벼 귀지를 빼내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든지, 그러고는 모르는 척 바닥에 털어버리는 것들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버릇이 고쳐지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세 번째 눈에 적응을 했습니다. 분할된 시야에도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그를 동시에 살필 수 있게 된 거지요. 그는 그에게 온 행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특별한 것이 아닌 큰 키나 잘생긴 얼굴과 같은 그저 조금 좋은 신체적 조건으로 간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눈의 새로운 사용법을 알아내었습니다. 세 번째 눈을 처음 떴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아내의 가슴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적당한 거리만 유지된다면 상대방이 모르게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용도는 그것이었습니다. 신났습니다. 동료 여직원에게 믹스커피를 건넬 때, 카페 카운터에서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주문을 하면서, 여학생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에 그의 왼손은 쉼 없이 움직였습니다.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말이지요. 그의 왼손만 쉼 없이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왼손을 사용하기 위해 하루 종일 쉼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마주 서 있던 아가씨가 그의 손을 곁눈질로 살피기도 했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심지어 시계나 핸드폰 같은 물건들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다 돌아온 그는 침대에 누워 그날 보았던 것들을 기억해 내며 빙긋이 웃곤 했습니다. 표범무늬 팬티와 핑크색 젖꼭지, 다양한 깊이의 가슴골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지요. 침대에 누웠을 때뿐이겠습니까?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지내는 동안은 계속이었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놈이……. 몇 개월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존재의 목적?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존재만 있을 뿐. 그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의 노트북 하드디스크에는 동영상들도 쌓여 갔습니다. 돌아다니며 본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노트북이 놓인 식탁에 앉아 두 눈으로는 누가 오나 살피고 세 번째 눈으로 동영상을 보며 오른손으로 수음을 한 겁니다. 웃기지요. 슬픈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전에는 그러니까 세 번째 눈이 생기기 전에는 안 그랬겠습니까? 의식하지 못할 뿐, 기억하지 못할 뿐, 애써 무시할 뿐이지요.
    여전히 그렇던 어느 날 여전히 그러던 중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뒷머리가 가려웠던 겁니다.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던 왼손을 들어 뒷머리를 긁으려던 순간, 그는 그의 얼굴을 봐버렸습니다. 발갛게 달아오른 두 흰자위와 초점 없이 확장된 동공, 반쯤 벌린 입술과 입술 사이로 날름거리는 혀, 앙상하게 드러난 광대. 아래위로 들썩이던 오른손이 멈췄습니다. 그 얼굴이었지요. 직장에서 버스에서 카페에서 그러는 동안에 그의 얼굴은 그랬던 겁니다. 그날 이후 그는 왼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야의 삼분의 일을 가려버렸지요. 당신 요즘 몸이, 얼굴이 부쩍 야윈 것 같아. 어디 아파? 말 못 할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즈음 아내가 했던 말들입니다. 아내가 본 것이 야윈 얼굴뿐이었겠습니까? 붉게 물이 든 두 흰자위와 초점을 잃어버린 동공은 보지 못했을까요? 그 얼굴을 아내만 보았겠습니까? 그는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들게 감았던 붕대를 풀고 밴드를 떼어내고 돌아다녔습니다. 돌아와서는 지웠던 동영상을 다시 찾아내 그 짓을 했습니다. 그러다 자기 얼굴을 보고 그러다 멈추고 그러다 울고.
    눈요? 파낼 생각을 왜 안 했겠습니까? 송곳으로 찔러도 보고 칼로 헤집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프기만 하더군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깊이 찌르지 않았을 수도, 깊이 헤집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의 부끄러움은 횟수와 강도를 더해 갔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더라면, 못 본 체할 수 있었더라면. 그에게는 아이들을, 아내를 마주할 자신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집에서 나왔습니다. 직장도 그만뒀지요. 그리고 이곳으로 온 겁니다. 가면에 대해 물으셨지요? 손바닥의 눈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얼굴이라도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믿어지십니까?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이 정도 이야기면 소설 한 편 나오겠습니까?
    그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믿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집을 나와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그는 기지개를 켰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한편으로는 실망한 듯 보였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가면 속의 눈동자. 궁금한 것이 있다며 캐묻거나 이야기를 더 해달라 조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예의상 몇 가지 질문을 할까 잠깐 머뭇거렸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나의 질문은 그의 망상을 더욱 키울 터였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차도 잘 마셨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신을 신고 일어서는데 그가 말했다.
    그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네? 제가요?
    그가 대답했다.
    아니오. 부탁드리는 겁니다. 혹시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다 확인할 것이 생기거나,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갑자기 궁금해져 이곳에 다시 오게 되면, 그런데 그가 없거든 어떤 형태든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이거든 방금 말씀드린 한 문장으로 신문에 부고를 내어 주십시오. 세상에 이해를 구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다고.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무슨 그런 말씀을.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말을 했더라면……. 험한 생각은 하지 마시라, 말을 했더라면……. 그의 말을 믿지 않은 탓이다. 그의 세 번째 눈, 그의 부끄러움을 나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내가 그날 그에게서 들은 것은 여기까지다. 다음은 그의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의 주치의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다. 이것저것 보태거나 숨기지 않고 혹은 이리저리 앞뒤를 바꾸거나 섞지 않고 그대로 남긴다. 그의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 혹은 주제로 삼지 않겠다는 내 의지의 표현이다. 나를 믿고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털어놓지 않았나. 그의 삶을 이용해 나의 이익을 취하고 싶지 않다.

    5. 그의 (전)아내로부터

    『나는 그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그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싶지 않았어요. 그 사람 몸에서 나온 냉기가 주위를 차갑게 만들고 있었지요. 시체와 함께 있는 것처럼. 의사는 출혈을 많이 해서 그러니 수혈을 받고 나면 나아질 거라고, 한꺼번에 수혈을 많이 받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 나누어 받을 것이라고, 며칠 걸리겠지만 그래도 곧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무서웠어요. 어중간하게 얼굴을 들었는데 그 사람의 입술이 보이더군요. 백짓장 같은 입술 말이에요.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제가 무슨 말이든 해야 그 사람이 대답을 할 것 아니겠어요? 입술이 움직이겠지요.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라 생각했어요.
    많이 흘린 모양이네요. 입술이 창백해요.
    119가 생각보다 늦게 오더라고.
    요즘은 보존만 잘 되어 있으면 접합수술을 할 수 있다 하던데.
    내가 그럴 줄 알고 잘라내자마자 마초에게 던져 줬지. 개새끼. 잘 먹더라고. 뭔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 사람 입에서 몇 마디 말이 나오자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입술은 창백했지만 그 사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거든요. 그는 간간이 손에 쥐어져 있는 진통제 버튼을 눌렀고 그때마다 마약성 진통제가 몇 방울씩 그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갔어요. 통증 때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이마를 찌푸린다거나 신음소리를 내지는 않았거든요. 헛소리를 뱉어내기 위해 진통제를 이용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날의 일은 환상이나 상상은 아니었지요. 그 사람은 자신의 그것을 스스로, 단칼에 잘라냈으니까요. 문득 하얀 침대보에 뿌린 듯 묻어 있는 갈색 반점들이 보였어요. 유난하다 싶어 손으로 문질렀지요. 제가 묻지 않았는데 그가 말을 하더군요.
    아침에 혈관 잡던 중에 흘린 거야. 가뜩이나 모자란 아까운 피를 말이지. 바로 갈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안 오네. 뭐,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참, 조금 전 회진 다녀갔어. 내 엉덩이 살을 떼어내 잘 뭉치면 뭘 새로 만들 수 있다네. 쉽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드릴 생각입니다, 인심 쓰듯 말하더라고. 자기 엉덩이 살을 떼어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뭘 새로 만듭니까. 힘들게 잘라냈는데, 하고 말이지. 기겁을 하더라고. 버벅거리다 돌아갔어. 잘라내겠다,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말이야, 어디까지 잘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끝만 잘라낼까? 하다가 그럴 거면 의미 없다 싶었지. 뿌리까지 잘라낼까? 생각해 봤는데 그게 기술적으로 쉽지 않아. 뿌리 부분의 단면이 보기보다 넓거든. 한 번에 자를 수가 없어. 한 번에 자르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붙어서 덜렁거리면 아프기만 하고 그럴 것 같아서. 나, 해부학 책도 샀어. 최소한의 손실을 생각했지. 뿌리나 그 아래쪽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어. 똑같아, 동맥 하나 정맥 둘. 네임펜으로 표시해 둔 곳을 노려보다 단숨에 탁. 뿌리 쪽을 고무줄로 단단히 묶었는데도 피가 많이 나더라고. 119가 올 때까지 정신을 차리려고 했는데 어지러워서 그만. 그런데 왜 이리 담담해. 아무렇지도 않아? 왜 불렀는지 묻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당신은 변한 것이 없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부끄러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왜 나와 아이들은 함부로 대하는 거죠? 아이들과 나를 두고 집에서 나와 하는 짓이 겨우 이건가요?
    겨우라니. 나로서는 큰…….
    나는 왜 불렀죠? 뭘 보여주고 싶은 건가요? 굳이 나를 이리로 부른 것에 대해서 화가 나요. 지금 참는 중이에요.
    그 사람과 나눈 대화에 대해 기억이 나는 것은 여기까지. 더 이상 제게 묻지 말아 주세요. 할 말도 없을뿐더러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도대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그 사람은 왜 그랬던 건지.』

    6. 담당 의사로부터

    『굉장히, 아주 드문 경우였습니다.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 자체가 흔한 일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도 아니고. 퇴원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왔지요. 응급실로. 토요일이었습니다. 마침 그 주에 저희 부부의 열세 번째 결혼기념일이 있었고요. 그 핑계로 지인 부부를 초대해 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사실 결혼 십삼 년쯤 되면 둘이서 기념일을 보내는 것이 딱히 아주 재미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초대하겠다 말을 건넸던 지인 부부를 불렀지요. 물론 아내도 동의했습니다. 그 주는 제가 당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콜이 온 겁니다. 핸드폰에 응급실 번호가 뜨는 순간 솔직히 짜증부터 났습니다. 제가 큰 소리로 뭡니까? 하고 물었죠. 전공의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이러더군요.
    3주 전 교수님 앞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분이신데요. 페니스를 셀프로 절단해서 오셨던…….
    거기까지 말하면 누군지 바로 알지요. 하지만 3주 전 제 환자였다고 해서 제가 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죠.
    그런데 왜?
    이번에는 셀프로 왼 손목을 자르고 방문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호기심도 생겼지요. 이 사람 뭐지? 지난번도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지난번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보통 누군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거나 사고로 성기가 절단되면 그걸 찾아서 들고 오거든요. 어떻게든 붙여서 살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그걸 기르던 개한테 줘버리고 왔단 말입니다. 어떻게든 살려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환자가 원하지 않는다 해서 의사가 할일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기능을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필수적인 것, 말하자면 배뇨라든지 미용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비슷한 무언가라도 만들어 드리려 했지요. 엉덩이 살을 떼어내 그럴듯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힘들게 떼어냈는데 뭘 새로 만드느냐며 거부를 하는 겁니다. 황당했지요. 하지만 저도 한번 마음먹은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한 번 더 말했지요, 씨익, 웃더군요. 그러고는 제게 물었습니다.
    새로 만들어 주신다는 그것, 그것도 전의 것처럼 잘 섭니까?
    기가 찼지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엉덩이에서 떼어낸 살은 발기가 안 됩니다, 하고 말이죠. 제 대답을 듣더니 그러면 필요 없다 하더군요. 이번에는 저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이렇게 말하고는 병실을 나와버렸습니다. 이후로는 저도 의례적인 회진만 돌았을 뿐 다른 제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난 거죠. 왼쪽 손목을 자른 채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잘라낸 것을 기르던 개에게 줘버렸더라고요. 개에게나 줘버려, 그 말이 이렇게 현실로 나타나다니요. 웃기지요, 어떻게 되었냐고요? 제가 해줄 것이 없었죠. 가져다 붙일 것이 없으니까요. 성형외과 의사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사람이 정상은 아니니까 정신과에 의뢰를 했지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망상장애의 일종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신과에서 입원을 시키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하더군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연락이 안 돼서. 연락되고 모두 동의하면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일단 퇴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도움이 되었습니까? 궁금한 것은 모두 풀렸습니까?』

    7.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

    『작품 메모 : 그의 머리는 수십 걸음을 굴러 맞은편 식탁 아래를 지나 벽에 부딪혔고 잘린 목에서는 투욱 투욱 투욱 붉은 것들이 솟아 둥근 천장까지 올랐다. 순간 어두워졌으며 천장에서 아래로 꽃들이 – 동백과 꽃무릇이 뚝뚝 그리고 후두둑, 어떤 것은 홍매화 같기도 했고 어떤 것은 체리 같기도 했다. 명자였을 수도 있는. – 내려왔다. 집이 흔들리는 것인지 그가 흔들리는 것인지 세상이 아래위로 좌우로 흔들렸고 이윽고 그는 쓰러졌다.』
    『그건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아. 정해야 하지. 어디까지 받아 줄지, 어디서부터 막아야 할지. 버릇없이 자라게 되거나 온갖 콤플렉스가 생기거나. 필요하다면 체벌도 해야겠지. 감당할 수 없다면 해결해야 할지도.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하는 거니까.』
    『그것만 잘라내면 될 줄 알았는데……. 이 왼손모가지를 잘라야 하나? 그러면 해결이 될까? 자꾸 떠올라. 그것도, 손모가지도 잘라내었는데 자꾸 떠오르면 다음엔? 그다음엔? 하긴 기억이 사라질 수 있겠어? 이 머릿속 어딘가 영원할 테지…….』
    『하긴 세 번째 눈은 잘못이 없어. 그것이 오기 전에도 그는 그랬었잖아. 그랬고말고. 그 눈동자 그 혓바닥, 그가 가진 모든 감각으로 탐했지. 상상으로 머릿속으로.』
    『그는 운이 좋은 놈이기는 하지. 왼손바닥에 있는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달랐을 것 같아? 그저 들키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게 운이 좋은 거지.』

    8.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들

    그의 움막에서 그림 두 점이 발견되었다. 처음 움막을 방문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당시에는 캔버스뿐만 아니라 붓이나 물감, 팔레트 등 그림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사이 그림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의상 그림 1과 그림 2로 명명한다. 그림은 사건의 증거로 검찰에 제출되었다가 수사 종료 후 유가족들에게 인도되었다. 그림을 찍은 사진을 따로 남겨 둔다. 또한 분실의 경우에 대비하여 각각의 그림에 대해 글을 남긴다.
    그림 1(송판, 아크릴, 크기 : 대략 10호)
    흰 대리석 건물에서 벌거벗은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남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그것이 괴로움인지 슬픔인지 혹은 통증에 의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아랫도리, 그것이 있어야 할 부위에는 고환주머니만 보인다. 고환 주머니 위, 그것이 달려 있어야 할 곳에서 나온 붉은 것이 남자의 허벅지를 타고 내려온다. 남자의 머리 위에는 태양을 가린 구름들로 가득하다. 구름들의 형상은 여성의 유방이고 여성의 그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남은 한 손,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손에 쥔 검붉은 살덩어리에서도 붉은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남자는 맨발로 모래밭을 걷고 남자의 걸음이 시작된 곳에서부터 지금 남자가 걷고 있는 곳까지 남자의 발자국은 붉다. 남자의 걸음이 시작된 곳 너머 건물의 안쪽은 황금색과 푸른빛이 가득하지만 그 빛은 이쪽 남자에 미치지 못한다.
    그림 2(송판, 아크릴, 크기 : 대략 12호)
    검은 나무들로 가득한 숲과 햇살과 꽃이 가득한 정원 사이에 벌거벗은 남자 두 명이 겹치듯 서 있다. 정면을 향한 몸을 가진 남자는 붉은 얼굴을, 몸과 얼굴 모두 왼쪽으로 돌아선 남자는 희거나 창백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측 가장 윗부분에는 짙푸른 피부색을 가진 여성이 날갯짓을 하며 떠 있고 그녀의 유방과 성기에서 거친 바람이 불어 나온다. 거친 바람은 세 갈래로 나뉘어 붉은 얼굴의 남자에게로 향한다. 한 갈래는 뒤를 바라보는 얼굴의 입속으로, 한 갈래는 정면을 향한 몸의 두 손으로, 그리고 마지막 한 갈래는 정면을 향한 남자의 발기된 성기를 감싼다. 남자의 왼손은 손목 아래가 없다. 왼쪽으로 돌아선 창백한 남자는 정원을 배경으로 시선을 좌측으로 향한 채 웃고 그의 성기와 왼 손목에서 꽃넝쿨이 뻗어 나와 정원을 가득 채운다.  

    9. 그의 부재

    마지막으로 그의 움막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리고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기술한다.
    움막 주위, 움막의 문 입구에는 키 큰 잡초들이 자라 있었다. 움막의 문은 굳게 잠긴 듯했지만 힘으로 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어깨를 움막의 문에 갖다 대고 밀었다. 안쪽 걸쇠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움막 안은 삼 년 전 처음 보았을 때와는 구조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원형 톱이 있는 큰 테이블이 중앙에 있었고 그 좌우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코를 소매로 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썩은 냄새와는 조금 다른, 매캐함과 달콤함이 버무려진 그러나 유쾌하지 않은 공기가 소매를 뚫고 콧속으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 말라붙은 검은 흔적을 확인하고 아래를 보았다. 테이블 좌측 아래에는 두개골이, 테이블 우측 뒤쪽 아래에는 갈비뼈가 드러난 몸통이 있었다. 말라붙은 속옷과 바지는 건드리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릴 것 같았다. 백골화 된 시체였다. 구역을 참을 수 없었다. 시신 위에 토해 낼 수 없어 고개를 돌렸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테이블 위에 배 속의 것들을 게워냈다. 핸드폰을 꺼내 신고를 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움막 밖에서 기다렸다. 냄새가 심하게 났기 때문에 움막의 문을 닫았다. 경찰이 와서 시신을 확인했고 테이블 위의 토사물에 대해 물었다.
    시체가 눈에 들어오고 속에서 뭐가 막 올라오는데 참을 수 있어야지요.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사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하다고 덧붙여야 했다.

    10. 남아 있는 아쉬움

    움막 안의 모든 것은 수사 자료가 되었다. 내가 임의로 접근할 수 없었다. 수사가 종료된 뒤 수사 기록과 자료의 사본을 받으려 했으나 유족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유족들을 직접 찾아갔고 생전에 그가 내게 했던 부탁을 유족들에게 전했다. 고인은 당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비록 소설가지만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만 남기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유족들의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그가 남긴 노트를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신이 노트 위로 엎어졌거나 그가 노트를 품에 안고 그 일을 실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신이 부패되는 과정에 노트의 손상도 상당했다. 노트를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면 그간 그의 심경이 어떠했는지, 세 번째 눈에 대한 그의 입장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왜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실행했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르던 개에 대한 의문도 남았다. 처음 움막을 방문했을 때는 개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아내 사이에 나눈 대화, 주치의의 진술에 의하면 기르던 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초,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이제 신문사로 갈 것이다. 그의 부탁대로 부고를 전할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김강
작가소개 / 김강

2017년 단편소설 「우리 아빠」로 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2020, 아시아, ARKO문학나눔 선정도서), 『소비노동조합』(2021, 아시아), 앤솔로지 『여행시절』(2021, 아시아), 『당신의 가장 중심』(2021, 리잼)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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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과논

챕터 3 그의 이야기를 듣다
부분이 제목만 있고 내용이 누락되었군요!

왈과논

이제 수정되었군요.

cadeau

한참 동안 생각하게 됩니다.

쓰는사람

속 깊이 가둬논 비밀에, 마음 저 아래 침잠해 있는 부끄러움에 돌 하나가 툭 하고 던져지는 기분입니다.

징검돌

눈, 초점, 부끄러움의 자각, 인간의 본질~ 떠오르는 단어들이 한참동안 여운으로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