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뜨는 동안 외 1편

 

[신작시]

 

 

무지개가 뜨는 동안

 

 

신철규

 

 

    여기는 그늘이고, 저기는 환한 빛 속이야.

 

    커튼이 쳐진 교실은 어둑하고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촛대처럼 길게 늘어져
    교실 바닥을 두 쪽으로 쪼갠다

 

    우리는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무지개를 바라본다
    처음과 끝이 희미해서 아슬아슬한 무지개
    손으로 잡기에는 너무 멀고 뛰어가면 사라져버릴

 

    운동장에서 단체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은 한 마리의 벌레 같다
    지구가 생기고 난 뒤 한 번도 멸종된 적이 없는
    구름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

 

    먼지 속에 갇혀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유령처럼 보이겠지.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송사리 떼 같은 햇살이 스쳐간다
    우리는 서로 뜨거운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어준다
    너의 슬픔은 찰랑거린다
    그 수면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
    오른눈은 반달 모양으로 웃고 왼눈엔 주먹만 한 눈물이 맺힌다

 

    우리가 평생 동안 흘릴 눈물을 모은다면
    몸피보다 더 큰 물방울이 눈앞에 서 있을 거야.

 

    누군가 텅 빈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는 가만히 숨을 멈추고 몸을 포갠다
    훈풍이 불어와 커튼을 펄럭이자
    우리의 등 뒤로 뚱뚱한 거인의 그림자가 늘어진다
    그녀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어깨를 토닥인다

 

    여기는 투명한 그늘이고
    저기는 여전히 물방울이 타오르고 있어.

 

 

 

 

 

 

 

 

 

 

 

 

 

 

 

 

 

 

 

 

소행성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의자만 뒤로 계속 물리면 하루 종일 석양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너와 나는 이 별의 반대편에 집을 짓고 산다.
    내가 밤이면 너는 낮이어서
    내가 캄캄하면 너는 환해서
    우리의 눈동자는 조금씩 희미해지거나 짙어졌다.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적도까지 몇 발자국이면 걸어갈 수 있다.
    금방 입었던 털외투를 다시 벗어 손에 걸고 적도를 지날 때
    우리의 살갗은 급격히 뜨거워지고 또 금세 얼어붙는다.
    우리는 녹아가는 얼음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나는 네게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못 보고 지나친 유성에 대해
    행성의 반대편에만 잠시 들렀다가 떠난 외계인들에 대해.
    너는 거짓말하지 마, 라며 손사래를 친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네 꿈 속의 유일한 등장인물은 나.
    우리는 마주보며 서로의 지나간 죄에 밑줄을 긋는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신철규 시인
작가소개 / 신철규

–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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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스웨터

아름답다.

'무지개가 뜨는 동안' 이 시가 실제 학교를 떠올리게 하고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읽었던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