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여성 재현, 가시화의 정치와 비가시화의 미학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십대 여성 재현, 가시화의 정치와 비가시화의 미학

 

 

양근애

 

 

 


    1. 소녀는 없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가 개봉한 시점은 2016년 6월이었다. 우연으로 보이지만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이 공교로운 겹침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2016년 5월 17일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의 사회적 변화 속에서 더는 숨죽이고 있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이 미리 만들어진 영화의 개봉과 함께 일렁였기 때문이다. 정치 스릴러처럼 보였던 이 영화는 ‘The Truth Beneath’라는 영어 제목처럼 진실 아래를 헤집어 주체와 대상의 자리를 뒤집는다. 딸의 실종과 관련된 정치인 부부의 추적으로 보였던 영화의 스토리가 십대 여성, 그것도 여중생의 파괴적이고 기이한 행동으로 전환되면서 전에 없던 세계를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된 딸 민진이 ‘멍청한 엄마를 지켜주기 위해’ 교사를 협박하고, 민진의 죽음을 본 미옥이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등 이 영화에서 여중생이 할 수 있는 일은 관습적인 재현을 넘어선다. 무엇보다 ‘무키무키만만수’를 벤치마킹한 ‘지니와 오기’의 노래 ‘와일드 로즈 힐’이 나오는 뮤직비디오의 에너지는 이상한(queer)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다. ‘불량소녀’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제목을 거쳐온 이 영화에서 손예진의 새로움을 보는 재미는 대중적일 수 있지만 낯선 소녀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보는 쾌감은 결코 대중 친화적이지 않다. 여하하든, 〈비밀은 없다〉가 가부장제나 모성의 해체만큼이나 ‘소녀성’이라는 허울을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문학사에서 ‘소녀’는 주체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소년’의 대응/대립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문학의 출발과 함께 등장한 소년과는 달리 소녀는 나이 어린 여성이라는 이중의 타자화된 이미지로 재현되어 왔다. 소녀는 여성이지만 여성적 욕망을 억압해야 하고 남성 인물의 욕망을 자극하지만, 결코 욕망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연극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순수하고 연약하고 미숙하고 얌전하고 수동적인 소녀 캐릭터는 보호의 대상이 되거나 남성적 시선 속에서 대상화되는 대표적인 여성 인물로 등장했다. 남성 청소년이 주로 아버지 세대에 대항하며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는 성장 서사의 주인공으로 묘사되어온 역사와 사뭇 다르다.
    그렇지만 그런 소녀들은 없다. 적어도 2016년 이후 연극에 등장한 십대 여성1)은 ‘소녀성’을 탈피하여, 대상화하려는 시선을 비껴가며 여러 갈래의 길을 자유롭게 간다.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청소년극 〈고등어〉(2016)와 〈좋아하고있어〉(2017), 〈말들의 집〉(2017), 〈사물함〉(2018), 〈영지〉(2019) 등은 십대 여성들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의 욕망을 승인하고 사회적 시선에 고정되지 않으며 자기 세계의 확장을 위해 분투하는 고유한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2018년에 일어난 ‘스쿨미투’를 상기시키는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2020)와 〈사라져, 사라지지마〉(2021)에 이르기까지 이제 여성 청소년의 재현은 그 다양한 양상만큼이나 다르게, 또 두텁게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주목되는 것은 십대 여성들이 그들을 대신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말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유한 몸을 가진 존재로서 자기 욕망을 응시하는 인물들로 가시화 된다.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 역시 한때의 일탈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승인의 과정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이를 ‘가시화의 정치’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십대 여성은 대상화된 신체로 재현되기를 거부한다. 성폭력에 노출된, 또 그 과정에서 훼손된 순수성으로 왜곡되기 일쑤였던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은 이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차별적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회적 차별과 배제로 인한 고통의 실체적 진실이다. 이러한 전략을 ‘비가시화의 미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십대 여성’은 ‘소녀’나 ‘청소년’이라는 용어에 내포된 미숙함, 나약함, 성장 가능성, 여성성, 무성성 등의 이미지를 소거하기 위해 선택된 용어이다.

 


    2. 마주 서고, 뛰어 오르고, 춤추고


    2016년 이후의, 좁혀 말해 이 글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십대 여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주로 친구나 선배, 드물게는 다른 세대의 여성과 함께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한다. 여성을 위협하거나 괴롭히는 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대에 직접 등장하지 않으며 성적 욕망의 인물이 되는 남성 역시 대화 속에서만 등장할 뿐, 서사 속에 안착하여 극의 전개에 가담하지 않는다. 여성이 위해나 위협 없는 안전한 공간 속에 놓이는 상황이 우선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성 서사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그간 여성의 삶이 전면화 되는 이야기에서 오롯한 주인공으로 등장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여성 인물들에게, 차별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여성들의 세계가 마련되는 것은 중요하다. ‘보편’으로 이해되었던 남성적 세계 속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끼리,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욕망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역설적으로 성별의 표지를 떼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 인물과의 비교를 통해 두드러지는 신체가 아니라, 다양한 여성의 서로 다른 몸들 속에서 가시화 되는 몸은 그러한 맥락에서 중요하다. 십대 여성이 등장하는 희곡에서 다양한 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발화하고 상상한 세계로 달려간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희곡에는 십대 여성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마음껏 소리 지르고 마주 보고 큰 소리로 웃고 무대 위를 활보한다. 작가의 시선이 얌전히 거기 있는 인물의 모습이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에너지를 담지한 인물에 가닿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경주  안 태워주면 못 탈 줄 알아?

 

경주, 순식간에 배를 향해 달려가 몸을 날려 갑판에서 내려온 밧줄에 매달린다.
지호, 예상치 못한 경주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지호  경주야!

 

바다와 갑판 사이, 경주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지호  야, 미쳤어?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

 

경주,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소리를 지른다.

 

경주  조용히 해봐, 안 태워주면 내가 타면 될 거 아냐.

 

경주, 밧줄을 타고 갑판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선원들, 출항에 정신이 없다.
경주, 밧줄에 매달린 채 아슬아슬하게 발버둥친다. 자못 위험해 보인다.

 

지호  야! 야! 조심해. 움직이지 마! 어떡해…. (갑판 위를 향해) 저기요!

 

지호, 광광 소리를 지르지만 선원들은 안 들리는지 반응이 없다.
배에서 호각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커진다.
당황한 지호, 더 크게 외친다.

 

지호  아저씨! 누구 없어요?(대답이 없자 발만 동동 구르다) 어떡해…. (그러다 결심한 듯) 에이 씨…나도 몰라.

 

지호, 마구 소리를 지르며 배를 향해 달려가 몸을 날린다.2)


    배소현 작가의 에 등장하는 지호와 경주는 열다섯 살, 여중생이다. 이 희곡에는 살아 있다는 생생함을 느끼기 위해 통영항의 물고기를 만나러 가는 여중생이 등장한다. “지호야, 정말 살아 있다는 건 뭘까?”라는 경주의 질문은 사춘기라는 시절에 갇혀 있지 않고 바깥으로 분출된다. 살아서 펄떡이는 고등어를 만나러 가자는 제안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음을 밀어붙이는 이 건강함이 극에 흘러 넘친다.
    허선혜 작가의 에도 이러한 건강한 생명력이 있다. 이 연극은 2018년 ‘병목안’이라는 제목으로 개발되었다가 2019년에 초연을 올리고 2020년에 재공연하면서 COVID-19 상황 때문에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제로 다양한 지역의 십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아동청소년극 중에서도 드물게 조명되는 연령대인 10대 초반을 그리고 있다는 점 외에도,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이상한 애’로 보이는 영지를 ‘비정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그래서 다른 세계를 볼 줄 아는 인물로 그려낸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 즉 두 김이박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 춤을 추는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연결/연대의 감각과 연극적인 쾌감을 주었다. 이 극에 등장하는 많은 노래들은 배우나 연출의 컨텍스트로 만들어지기 이전에 극의 내용에 알맞은 방식으로 마련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을 반대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했을 때 불렀던 노래다. 이후 ‘다만세’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많은 매체들이 지적하듯, 이 노래는 ‘새로운 시대의 투쟁가요’로 ‘기획’된 것이 전혀 아니었지만 이후 여러 정치적 사건을 통해 특정한 정동을 생성하는 노래가 되었다. 십대 여성 아이돌의 노래가 정치적 수행이자 미학적 연대의 힘을 가지기까지의 맥락이 이 극에 잘 스며들어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무대를 뛰어다니고 춤추고 노래하고 떠들고 마주 서는 여성들의 모습을 가시화하는 것만으로도 그간 납작하게 재현되었던 여성 인물을 일으켜 세우는 느낌이 든다. 다르게 재현되는 무대는 곧 달라진 세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2)  배소현, 〈고등어〉, 배소현, 황나영, 박춘근, 『여학생』, 제철소 2017, 71~72쪽.

 


    3. 성적 욕망과 퀴어 인식


    황나영 작가의 〈좋아하고있어〉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혜주가 밴드부 선배인 소희를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 승인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입시 때문에 다른 지역에 와서 혼자 살고 있는 혜주는 깜박이는 전구를 신경 쓰면서도 전구를 갈아끼는 일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짝 친구인 지은은 또래 남학생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혜주에게 말을 걸지만, 혜주는 소희를 향한 마음을 말로 할 수 없다. 소희는 교사와의 상담에서 커밍아웃을 하지만 부모가 학교에 불려오면서 아웃팅 당하는 상황이 된다. 소문에 둘러싸여 깜박이는 전구처럼 불안정한 상태가 된 혜주는 용기를 내 스스로 전구를 갈고 소희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이 희곡은 혜주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과정과 계기를 언어화하는 대신 행동으로 그려낸다. 소희와의 입맞춤과 키스,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 마음을 고백한 후에 소희와 손을 잡고 더는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좋아하고있어”라고 띄어쓰기 없이 단숨에 고백하고 꽉 안는 장면이 그것이다. 십대 레즈비언 여성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이 장면이 중요한 까닭은 이들이 겪는 감정의 파고가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내적인 갈등에서 온다기보다 차별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안 보잖아. 그게 내 전부가 아닌데.”라는 혜주의 대사는 그래서 울림이 크다.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의 고백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고유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수많은 욕망을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폭력적 시선이 문제라는 것. 〈좋아하고있어〉는 퀴어 정체성의 문제를 가시화하면서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욕망을 응시하도록 한다.

 

최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래가 뻐근하고 시원하고 찌릿했다. 어지럽고 기분이 이상했다. 엉덩이를 아래로 꾸욱 밀어내다 힘을 풀면 탁 하고 큰 숨이 내쉬어졌고 세상 끝처럼 어지러웠다. 한참 어지럽고 나서 문득, 하이틴잡지에서 읽은 남자애의 상담편지가 떠올랐다. ‘자위’를 너무 많이 해서 죽고 싶다던. 나도 편지를 써야 하나? 죽고 싶은데. 그리고 나는 여자애인데. 이런 짓이나 하고.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엎드려서 책을 읽었다. 매일 어지러웠고 매일 죽고 싶었다.

 

백  엄마 아빠와 언니 동생들이 집에 없으면 거실에 누워서 텔레비를 보았다. 전기매트에 누워서 이불을 덮은 채 팬티에 손을 넣었다. 팬티에 손을 넣고 보지를 손가락으로 비비면 미끄러운 게 나왔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팬티 안에 손을 넣고 팬티 안에 손을 넣으면 미칠 것 같고. 야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벌리고 콧김을 뿜었다. 하마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하고 나면 축축한 팬티. 손가락에서 나는 냄새 찌린내 같은 거 맡고. 아. 진짜 더럽다. 선생님은 나 같은 애 관심도 없는데.3)

   3)  이오진,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공연과이론》 2020 봄호, 231~232쪽.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에 나오는 ‘자위와 죄의식’ 장면은 희곡에 잘 그려지지 않았던 십대 여성의 자위를 가시화하고 있다. 두 사람의 독백 뒤에 무키무키만만수의 노래 〈방화범〉이 나오는 것도 감각적이다. 자위를 하고 나서 ‘타버릴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는 두 김이박의 모습은 십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말라는 말이 그들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라는 말과 같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장국영과 키스하는 상상을 하고 누구와 자고 싶은지 말하며 성적 호기심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십대 여성에게 성적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성적 욕망을 억압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시선, 혹은 재현의 장벽이 너무 크게 드리워져 있었다. 십대 남성의 성장 서사에서는 성적 욕망과 자위의 문제가 빠지지 않았고 등장했지만, 십대 여성의 성장은 남성적 시선에 대응하는 식으로 그려졌던 역사가 너무 길었다.
    이 희곡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지점은 학교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의 가해자나 삼촌과 같은 주변 남성 인물의 행동을 모두 김이박을 연기하는 여성 배우들이 패러디하도록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패러디 속에서 남성들은 역으로 대상화된다. 십대 여성을 향한 불온한 욕망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이 대리 재연될 때, 미러링을 넘어서는 재현-가시화의 잠재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명찰이 없다면서 가슴을 만지고 잠을 깨운다며 뒷목을 주무르는 교사의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관심과 폭력을 분별할 줄 아는 김이박들의 움직임은 이제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창밖으로 날리는 시위는 용화여고의 창문에 붙었던 미투운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 희곡의 마지막 대사는 “김이박은 2004년에 태어나 2020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다. 뒤이어 ‘균열의 소리들’로 극이 마무리된다.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다시 만난 세계’는 이 균열들로부터 도래하고 있다.

 


    4. 사라지지 않아도 되고, 드러나지 않아도 되는


    “분명히 어떤 일이 있었는데, 없던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라는 문장은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로부터 나왔지만, 십대 여성들이 학교에서 경험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가 조용해 보이는 이유는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이 학교 담장을 넘어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폭력 문제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 속에서 무마되거나 소문 속에서 실체 없이 휘발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도은 작가의 〈사라져, 사라지지마〉는 고등학생들에게 일어난 ‘비동의 성적 촬영물 불법 유포’를 다루고 있는 희곡이다.4) 고등학교 2학년생인 유영, 고나, 남정, 은소는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들이다. 극은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 유영의 부재를 슬며시 인지시키다가 반 단톡방에 올라온 의문의 영상과 ‘ㄱㅇㅇ’이라는 글자로부터 사건을 심각성을 고조시킨다. 유영은 친구들의 연락도 받지 않고 집에 찾아가 보아도 만날 수 없다. 남정, 은소, 고나는 유영의 아파트 복도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영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혼란스러워 한다.
    ‘사라진 여자애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극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겪는 2차 가해의 문제와, 학교에서 발생한 일들로 인해 소문 속에서 사라진 십대 여성들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희곡이 유영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사라져, 사라지지마〉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사연에 집중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극에 등장하는 유영의 친구들처럼 이 극은 유영이 그 영상의 주인공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희곡 속에는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의 내용이나 그와 관련된 유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유영에게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기 위해 유영과의 일을 떠올리고 유영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무대 위에 소환한다. 이 희곡 속에서 유영은 성폭력의 피해자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생기 넘치는 입체적인 한 인간으로 무대 위에 있다.

   4)  이 희곡은 2018년 스쿨미투 이후에 작가가 처음 쓴 것이지만, 2021년 제4회 페미니즘 연극제에 올라가면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다.

 

고나  뭐야?

남정  명찰이네.

은소  대자보 붙이고 나서 이것도 . . 애들한테 나눠주자

남정  이걸?

고나  빈 명찰인데.

은소  내일부터 수업 때 이 명찰 달거야.

고나  페북 대숲 때문에?

은소  우리 이름 자음으로 올라온 거 봤지.

남정  어, . . 봤어 개짜증나

은소  한 번 찾아보라고 하지 뭐, .

고나  오 이은소 , . 머리 좋다

남정  어차피 빈 명찰이니까?

은소  아까 오면서 선도부 여자애들도 나눠줬어.

남정  …… 걔네가 뭐래?

 

은소,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팍에 원래 달려있던 명찰을 떼고 빈 명찰을 단다.

 

은소  바로 달던데?

 

남정과 고나, 환하게 웃는다.

고나  나도, 나도.

남정  근데….

 

남정  이래도 안 바뀌면 어떡해?

은소  … 그럼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 얼른 일어나, 빨리5)

   5)  도은, 〈사라져, 사라지지마〉 공연대본, 2021, 41~42쪽.


    관음증적 시선에 의해 굳이 재현되었던 성폭력 장면을 의도적으로 비가시화하는 전략은 피해와 가해를 개인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구조의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사라져, 사라지지마〉가 문제를 돌파하는 방식은 퍽 인상적이다. 그것은 두 번의 다른 행동으로 제시되는데, 한 번은 단톡방에 올라온 그 영상에 대해 은소, 고나, 남정이 “그거 나야.”로 응수하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은 인용된 위의 장면과 같이 빈 명찰을 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구든 그와 같은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행동은 더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 바깥의 문을 두드리고 이 문제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 일도 그에 해당할 것이다. “이래도 안 바뀌면 어떡해?”라는 질문에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라고 응수하는 이들의 건강함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궁금증을 피해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쪽으로 옮겨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2020년 창작산실 대본공모에 선정된 도은 작가의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에도 이처럼 ‘사라진 여자들’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이 희곡의 작품노트에는 ‘냉장고 속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명시되어 있다. 그 노트에 따르면, 1999년 게일 시몬은 남성 히어로의 각성이나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죽음을 사용하는 것을 일컫기 위해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성 인물의 성장을 위해 ‘죽임당하고, 불구가 되고, 무력화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화될 수 있다. 사라져야 할 것은 혐오와 차별과 배제의 언어와 폭력이지 피해를 당한 여성이 아니다. 가시화되어야 할 것은 여성 인물의 욕망과 내재적 힘과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고유성이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재현되는 신체나 도구적으로 그려지는 사연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상으로 언급한 2016년 이후 십대 여성을 다룬 희곡들이 매끈한 드라마의 재현이 아니라 해설과 지문 등 파라텍스트 읽기와 수행적 행위를 위한 유동적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특기하고 싶다. 전형으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십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낼 새로운 형식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려하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 다 담기지 않는, 소통과 불화의 여백과 잉여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선명하고 다채로운 여성의 언어들이 무대 위에 새롭게 새겨지고 있다. 이 반가운 변화들은 ‘청소년극’뿐만 아니라 경계 자체에 균열을 내고 다른 세계로 가려는 모든 연극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

 

 

 

 

 

 

 

 

 

 

 

 

양근애
작가소개 / 양근애

2011년 겨울부터 연극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2015년 가을부터 드라마터그로 연극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2020년 연극평론집 『‘이후’의 연극, 달라진 세계』를 냈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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