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가문비나무아래 (제1회)

[책방곡곡]

 

 

 

천안 가문비나무아래(제1회)

 

 

사회 : 박진숙
참여 : 우연주, 이정희, 이영민, 한승연
책 : 황정은, 『연년세세』

 

 

 

 

박진숙 : 우선 이 작품을 읽은 전반적인 느낌을 먼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연주 : 황정은 작가를 좋아해서 초기 작품부터 모두 읽었습니다. 팟캐스트도 듣고 있고요. 이 작품 역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깊이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도 첫째 딸이지만 한영진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한세진에 가까워요, 저는. 한영진 남매들처럼 저희 집 남매 세 명도 다 다른 색깔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읽으면서 특별히 공감한 부분은 한영진이 출산 후 겪는 감정에 대한 묘사였는데요, 아이를 낳고 나서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던 모성이, 아이와 거리가 생기고 나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 저의 경험과 일치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파묘」부터 무척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 작품입니다. 결론이 따로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정희 : 읽는 내내 세대를 거듭해 오는 어떤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연년세세’ 내려오는,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갑갑한 무언가…… 그래서 계속 소설의 장면과 인물들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나라면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첫째여서 한영진의 삶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한만수에게는 저의 남동생을 이입하며 읽었습니다. 등산화를 버리고 오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자기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걸었으나 결국 족적을 남기고 오는 그 장면이 인생에 대한 은유로 느껴졌어요. 날씨도, 건강 상태도, 신발도, 길도, 모든 것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태우고 돌아오는 길의, 어떤 ‘도장’ 같은 신발 자국…… 어딘가에 제 할머니의 도장, 제 어머니의 도장도 찍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나의 연년세세, 나의 할머니와 나의 증조할머니…… 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디디의 우산』(2019)을 끝까지 못 읽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디디의 우산』을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영민 : 15년 전부터 황정은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고 있고,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며 「상류엔 맹금류」1)를 떠올렸습니다.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량하지만 너무도 답답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역량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일과 드러나지 않고 밑에 깔린 감정과 정서를 잘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이 한영진 세대여서 더 공감했는데, 인물들의 나이 구성이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는 점이 이 작품의 옥의 티인 듯합니다. 전후 세대의 고통, 전쟁 경험으로 인한 가난, 그 가난으로 빚어진 삶의 모습이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 어머니 세대의 이름 중 ‘자’로 끝나는 이름이 여럿이었는데, ‘왜 영자가 아니고 순자인가?’가 저에게 다가온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순하게, 순종하며,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는 삶, 여자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이 내면화된 인물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삶의 규범은 강도와 정도가 다를 뿐이지 모두에게 요구되었을 것이고, 직접적인 강요는 없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떠돌고 있었을 거예요. 순일이 영진에게 매번 새롭게 지은 따뜻한 밥을 차려 줌으로써 강요를 하는 방식처럼요. 세진도 엄마의 어떤 표정을 보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고요. 주위 친구들과 사람들을 많이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작가인데 그 윗세대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인터뷰가 얼마나 충실했을지,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과 관찰이 얼마나 세심했을지 정말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버전의 『82년생 김지영』, 혹은 『82년생 김지영』보다 폭이 넓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1)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자음과 모음》 2013년 가을호

 

한승연 : 『계속해보겠습니다』(2014)를 읽은 후부터 작가의 작품들을 죽 읽어 왔어요. 황정은 작가의 작품들은 술술 읽히는 것 같으면서도 중간중간 가슴에 꽂히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연년세세』를 읽으면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2021)과 견주어졌어요. 『밝은 밤』은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 방식을 쓰고 있어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는데, 이 작품은 아예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이순일, 한영진, 한세진, 한만수가 되어 보는 시간이어서 저 역시 저와 제 주위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한영진이 나의 언니를 닮았고 한세진이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영진이 순일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저의 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한영진은 물었다.
    말도 안 하고 내 걸 쓰고, 그걸 거기 버리고 왔냐고.
    내 거를.
    쓰겠다 말겠다 말도 없이 가져가서, 망가뜨리고, 버리냐고.
    그걸 버리냐고.
    이순일은 그것이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입을 다물었다.” – 「무명」, 140쪽

 
세진과 영진이 다투는 장면에서 묘사된 이순일의 심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만큼 자주 다투지는 않았지만 훨씬 신랄하고 내밀한 것을 두고 다투었다. 그게 무엇이든 이순일은 가책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든, 자기 손으로 건넨 것이 그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가 쪼개졌고 그 파편을 쥐고 있느라 아이들이 피를 흘리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 「무명」, 109쪽
 
「다가오는 것들」을 읽으면서는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생각도 났고, 가해국으로서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세진과 제이미가 함께 보았던 911 테러 기념물에 대한 장면에서 세월호 참사도 떠올랐고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박진숙 : 한세진과 하미영의 대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생명안전공원은 납골당이 아니므로 안산시는 명품도시가 될 거라고 설명하면서 아나운서는 울었을 거라는 하미영의 말을, 한세진이 인용하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그러면서 하미영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죠. “그런 말(명품도시-기록자 주)을 하게 만들었어. 용서할 수가 없어.”라고요. 이 작품에는 ‘용서’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용서할 수 없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도 존재한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용서에 관한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서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폭력과 관련한 장면과 상징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어요. 한국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에서 시작해서 외할아버지와 고모의 폭력, 그리고 하미영이 실수로 고양이를 밟게 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폭력과 그 폭력에 대응하는 용서 문제를 병치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파묘」에서 시작해서 「다가오는 것들」로 배치된 작품 구성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연년세세 흐르고 있는 삶의 역사와 방향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라고 느껴졌는데, 그래서인지 하미영과 한세진이 살아가는 방식이 작가가 은근히 제시하는 방향성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진숙 :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좀 더 나누어 볼까요?

 

이영민 : 영진이 남편 김원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 「하고 싶은 말」, 70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영진은 김원상과 반대로, 안간힘으로 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는 삶.

 

한승연 : 순일이 세진과 영진의 등산화를 사러 간 장면에서 나오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 「무명」, 138쪽

 
이 문장을 보면 이순일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잘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겪지 않고 잘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잘산다는 것을 잘 모른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잘산다는 건 무엇일까, 하고 저도 묻게 되었습니다.

 

우연주 : 한세진에 의해 인용되는 하미영의 말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어른이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중략) 그 두 사람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아버지는 나더러 잊으래. 편해지려면 잊으래. 살아보니 그것이 인생의 비결이라며. 그 말을 들었을 땐 기막혀 화만 났는데 요즘 그 말을 자주 생각해. 잊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 「다가오는 것들」, 146~147쪽
 
이 부분을 읽으며 용서할 수 없는 것과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이정희 : 평소에는 책을 읽을 때 태그 스티커를 붙이며 읽는데 이 작품은 유독 술술 읽혀서 따로 붙이지 않았어요. 저도 하미영의 어른이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영진과 세진이 다툴 때 순일의 생각이 묘사되는 부문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에는,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다투거나 하면 즉시 개입할 수 있었는데, 한쪽을 혼내거나 둘 다 혼내거나 달래거나 중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 「무명」, 109쪽
 
눈앞에 있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순일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과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저의 현실이 겹쳤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어요. 이순일에게도 이순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베란다의 작은 정원뿐이었잖아요.
 
‘잘살기’에 대해 이순일이 고민하는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삶을 즐기면 잘사는 것인가? 자긍심을 가지게 되면 잘사는 걸까? 자긍심이나 우월감에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 않나? 한만수의 입장에서 잘산다는 것과 한영진의 입장에서 잘산다는 것, 그리고 한세진의 입장에서 잘산다는 것은 다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요. 이순일은 아이들이 끔찍한 일을 겪지 않길 바라잖아요. 견고한 식탁에 난 작은 스크래치를 보며 순일이 속상해하는 장면에서 순일이 생각하는 ‘잘살기’가 어떤 건지 엿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견고한 미로 같은 순일의 방 역시 순일식의 잘사는 삶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영민 : 순일은 또 자신의 살림을 이어서 사는 것이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늘 순일의 살림 방식과 다르게 사는 세진을 걱정하는 것일지 모르죠. 저는 한영진이 이순일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에 관해 서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한영진은 오래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 「하고 싶은 말」, 81~82쪽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라는 이 말을 누구도 명징하게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한영진의 모습을 보며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봤습니다. 미숙함 때문일 수도 있고 첫째에게 요구되는 여러 규범을 내면화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저는 늘 하고 싶은 것이 그다지 없는 성장기를 보냈는데,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원래 자제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키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있었어요. 제 동생은 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어쩜 ‘애기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아’하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세 살 위인 나 자신이 어른인 것 같았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태도인 것 처럼 느껴졌었어요. 나중에서야 나는 그런 감정이 거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영진이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직접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운 거죠.

 

이정희 :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는 K장녀들에게 요구되는 멍에가 있어요. K장녀로 태어나고 K장녀로 키워지는…….

 

박진숙 : K장녀로 살아가는 한영진의 모습을 한세진은 지켜보았을 테고, 그것이 한세진이 작업한 〈가정실습〉이라는 연극 속에 형상화되어 있어요. 연극 관람을 갔던 한영진은 연극 속의 대사가 한영진 자신이 한 말이라는 것을 인지하죠. 아주 일상적인 대화인데 무대에는 굉음이 계속 들려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고, 그 상황에서 영진은 절규하듯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마음 맞는 사람’이라고 소리를 지르잖아요. 이 장면을 한세진이 〈가정실습〉이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형상화한 걸 보면, 한영진의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참으로 탁탁하고 견습생의 ‘실습’처럼 미숙하고 어려운 과정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지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해서 한국 ‘가정’에 대한 한세진의 문제의식도 엿보였고요.

 

 

박진숙 : 자, 그럼 네 작품 모두에서 언급되고 있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죠.

 

한승연 : 「다가오는 것들」에서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식이 사회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911 참사 현장에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풀’을 만들고 참사를 기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모를 하는 모습에서 희생자에 대한 존중도 느껴졌고요.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여러 논란이 겹쳤습니다. 한세진이 참석한 문학 포럼에서 한국의 해외 입양 문제를 다루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읽으면서 마주하지 않았던 진실, 감추고 싶은 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만났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가해국으로서 어떻게 새로운 연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요.

 

박진숙 : 이 소설은 역사 소설로도 읽힙니다. 곳곳에 역사의 장면들이 녹아 있는 점도 그렇고, 한 사람의 삶에 역사의 파고가 어떻게 스며들어 한 인생을 만들어내는지를 그려낸 점도 그렇고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 「무명」, 106쪽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 「무명」, 142쪽

 
이런 용서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문장을 읽으면서 어떠셨어요?

 

이영민 :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피해자가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에서 용서와 관련된 그 장면을 보며 모두가 분개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담자들에게도 쉽게 용서하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 먼저이지 용서하기 위해 나를 괜찮아지도록 끌고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한 용서는 더더욱 조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단위로 폭력이 일어날 때 선택과 무관하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 고리 안에서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거죠. 누구도 그 인생을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히만 같은 사람은 사과하고 용서할 차원의 일이 아니고 죄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문제겠지만 자신의 삶으로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주 : 개인이 어떤 참혹한 사건을 겪으면 용서한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용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잊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괴로워서…….

 

이영민 : 그런 ‘잊어버리는 삶’을 몸으로 산 사람이 순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다 잘 보관해 두었는데’라고 하면서 찾지 않고, 그러면서 방을 미로로 만들고, 그 안에 딱 들어가 있는 형국이죠. 그 속에서 어떤 안온감을 느끼는 것도 같고요. 사실, 용서도 할 만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순일은 누구에게도 ‘네가 잘못했잖아’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나마 마음을 나누고 의지했던 친구마저 나를 배신하고요. 순일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순일의 가해자가 된 상황이라고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용서가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 사회가 쉽게 용서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주 : 작년에 진도 팽목항을 찾았을 때 공항을 만든다며 기억 공간을 다 헤집어 놓은 것을 목격했어요. 국가 차원에서 추모가 이루어지고 추모할 수 있는 토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영민 : 911 참사를 추모하는 방식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911 참사는 미국 사회가 일방적인 피해자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추모를 결정하는 데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가해의 일부가 된 상황이므로 국가 권력이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국가가 가해의 일부임에도 추모를 책임질 수 있으려면 어마어마한 성찰이 필요하고 그 정도의 성숙한 정권이 수립되어야 하는 선결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주 : 성수대교 붕괴사건 위령비가 성수대교 진입로에 있어서 위령비 접근성이 무척 떨어지는데, 그걸 보면서도 희생자에 대한 추모 문화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정희 :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후 위령탑 건립 요구에 대해 땅값 하락을 걱정하며 건립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을 보며 한국의 추모 문화를 생각해 봤어요. 용서할 수 있을 만큼의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일 나쁘고도 쉬운 방법으로 ‘잊는’ 것을 택하는 것 같아요. 가해자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오히려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피해자가 예수가 되기를 바라는 어떤 문화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문화 속에서 피해자가 도리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혹은 되게 만드는 상황도 만들어지고요.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사과하는 법을 너무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과에 관한 공부, 위로에 관한 공부, 사과의 태도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움에 대한 감수성도 함께요.

 

이영민 : 저와의 관계에서 사과가 익숙했던 저의 아이가 어느 날 아이 아빠에게 ‘아빠는 왜 사과를 안 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사과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는 몹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 〈도깨비〉(2016)에 나오는 대사처럼 ‘사과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삼풍백화점 때 제대로 사과를 했다면 그 이후 수많은 사회적 참사들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박진숙 : 「다가오는 것들」에서 “왜 한국의 해외 입양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세진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사과를 합니다. 질문의 형태지만 질문이 아닌 발언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중에 하미영에게 “부끄러운 질문을 받았고 나는 사과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황정은 작가가 생각하는 사과의 방식이 무엇인지 좀 알 것 같았어요. 현대사를 관통한, 고통의 실체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제대로 보는 것이 제대로 된 사과의 시작, 제대로 된 용서를 구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승연 : 저는 용서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관점과 태도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순일은 공부를 시켜 주겠다고 데리고 가서는 식모살이시킨 고모에 대해서도,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도, ‘저거 하나 남았다’고 말하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묻어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 같아요. 한영진은 말은 하지 않지만 용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계속 곱씹는 사람인 것 같고, 한세진은 ‘로맨스와 화해에 대해 실망을 시키는 게 맞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바쁘게 흘러간다’라는 문장을 통해 굳이 용서하지 않아도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용서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를 챙기면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인 것 같아요. 굳이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아도 삶은 다가오고 흘러가니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삶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황정은 작가의 생각을 한세진에게 많은 부분 투영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책 앞에 서명과 함께 쓴 문장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요. 우리의 삶을 꾸려가면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고 살아간다…….

 

우연주 : 처음에는 제목을 ‘대대손손’으로 정하려고 했다가 ‘연년세세’로 바꾸셨다고 하더군요.

 

박진숙 : 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은 한국전쟁이었고 한세진이 미국에서 한국전쟁의 유적지와 제이미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역사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연년세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영민 : 4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글쓰기 모임의 주제가 ‘엄마’이어서 외할머니-엄마-나, 이렇게 3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역사, 한국전쟁, 가부장적 사회 내에서의 성장, 가장의 부재 속에서 자란 아이가 결혼했을 때 자식을 대하는 특정한 행동양식이 나오게 된 맥락 등을 정리했는데, 그 글을 쓴 것이 어머니를 애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외할머니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연년세세’라는 제목을 통해 죽 이어 내려오는 여성의 삶과, 그러면서도 모두 다 다른 삶이 얽혀 있는 이야기, 여성들의 역사, 여성 서사, 이런 여성의 서사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진숙 :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46년생 순자들’의 전형적인 삶을 형상화하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순일의 목소리를 일부는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서술했고요. 이순일은 전형적인 인물임에도 어떤 면은 전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오고도 ‘존엄’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잘사는 삶에 대한 어떤 상을 가지고 고민하는 점도 그랬고요. 잘산다는 것,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작가의 메시지와 연결해서 말씀 나누도록 할게요.

 

우연주 : 다가오니까 살고 있는데…….

 

박진숙 :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안나는 안나의 삶을 거기서, 나탈리는 나탈리의 삶을 여기서.

 

우연주 : ‘매일 지는 것 같아’라는 하미영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잘사는 삶에 대한 어떤 높은 기준이 있어서 늘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영민 : 안나의 삶은 가장 주체적인 삶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나의 아들은 한국어를 못할 리가 없을 텐데 한국말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죠.

 

박진숙 : 그 부분에 대한 제이미의 논평이 굉장히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갈보, 양색시.
    노먼은 그 말을 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말 자체를 용서하지 않기로 한 거야. 안나를 고립시키고 무시하고 경멸한 그들과, 그들의 언어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주 강한 동조였다고 생각해. 안나를 양갈보라고 부른 그 사람들과 말이야. 그는 안나의 언어를, 자기 모어를 경멸 속에 내버려둔 거야.” – 「다가오는 것들」, 177쪽

 

이영민 : 제이미의 삶이 가장 멋진 삶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 시각으로 해석을 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그에게는 그의 삶, 나에게는 나의 삶. 아파는 하되,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는……. 잘사는 것은 다 다르죠. 그런 점에서 순일의 삶이 안쓰럽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연주 : 평범한 일상에 관한 세세하고 따뜻한 묘사를 통해 잘사는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박진숙 : 이순일은 특히 한세진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저는 한세진이 아주 많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살림도 하고 있고요.

 

이영민 : 그것이 이순일 세대의 한계이기도 하지요.

 

우연주 : 열 살배기 아이가 애물단지라는 말을 배우고 나서는 우리 집안에 결혼하지 않은 이모가 애물단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순일 세대의 생각이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의 생각에까지 연년세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잘사는 것’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아 한센뢰베는 ‘다가오는 것들’에서 로맨스와 화해에 관한 기대를,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실망시키는데, 그게 정말 좋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하미영이 옳다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나탈리를 향해 다가오니까.
 
    다가오니까, 하고 하미영은 말했다.” – 「다가오는 것들」, 182~183쪽

 

박진숙 : 연년세세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삶, 그 삶 속에 빚어진 여러 형태의 폭력과 사과와 용서의 문제,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영민
참여자 / 이영민

사람의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활자 중독자, 꿈작업가입니다.

 

우연주
참여자 / 우연주

고민의 길을 열어주는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한량지망생입니다.

 

이정희

참여자 / 이정희

책과 사진 속에 녹아 있는 생각거리를 즐기는, 책 읽는 엄마입니다.

 

한승연

참여자 / 한승연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는 20대 직장인입니다.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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