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

[단편소설]

 

 

나를 위한 시간

 

 

김세희

 

 

 

    1.

 

    승연의 아들은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장염에 걸렸다. 장염에 걸리기 몇 달 전에는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그때―독감에 걸렸을 때―승연의 가족은 지금 사는 동네로 막 이사 온 참이었다. 맛있는 빵은 어디서 파는지, 재미있는 놀이터가 있는지, 믿을 만한 소아과는 어디인지 아직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검색해 보니 근처 빌딩에 괜찮은 소아과가 있었다. 검사 결과 재준은 B형 독감이었다. 독감이라니……? 아이와 함께 다시 진료실로 불려 들어간 승연은 순간 멍해졌다. 독감이라면 가을에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나. 백신 접종을 해도 독감에 걸린다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걸 알았다면 주사를 맞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승연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자신이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그럴 거야. 예방주사를 맞아도 독감에 걸린다. 당연하잖아? 그것도 모르다니, 난 정말 어리석어.
    세상에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왜 그런지 승연만 감쪽같이 몰랐던 사실들―그건 때로 상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이 못처럼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크건 작건 승연에게 자신이 엄마 없이 자랐다는 사실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 모든 걸 다 알까?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떻게 그걸 몰라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묻는 사람을 보면 승연은 못으로 찔리는 것만 같았다.
    원장은 세련된 안경을 낀 중년 여성이었는데, 12시간 간격으로 5일간 타미플루를 먹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타미플루를 다 먹고 5일 뒤에 열이 없으면 끝나는 건가요?”
    승연이 어두운 얼굴로 질문했다. 원장이 고개를 들고 승연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끝나긴 뭘 끝나요. 이제 시작인데.”
    몇 달 뒤, 승연은 다시 빌딩의 소아과를 찾았다. 그날 새벽, 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쿨럭쿨럭 기침을 하는 것처럼 토했다. 승연은 침대 맡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서랍에서 새 잠옷을 꺼내 갈아입힌 다음 컵으로 물을 조금 먹였다. 아이는 다시 잠들었고, 아침에는 아무렇지 않게 깨어났다. 식탁의 자기 의자에 앉아 아침밥도 먹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히자 조금 전 먹은 것을 전부 토해 냈다.
    작은 배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듣는 원장의 얼굴은 심각했다.
    “소리가 많이 안 좋은데요.”
    이윽고 원장이 청진기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요?”
    “네. 많이 안 좋아요.”
    원장은 모니터 쪽으로 몸을 돌려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틀은 죽만 먹이셔야 돼요. 유제품, 과일은 절대 먹이면 안 돼요.”
    이제 시작이군요. 승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1층 약국에 갔다. 아이는 진열대에 줄줄이 놓인 주스를 보고 엄마를 잡아끌었다. 힘겨운 병원 진료―두 돌짜리 아이에게 이보다 큰 시련은 없을 것이다―가 끝난 뒤 보상처럼 주어지는 달콤한 주스 한 팩. 승연에게도 위안이 되는 순서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승연은 순간 깨달았다. 이게 장염의 힘든 점이 되겠구나. 아이는 주스가 뭔지 알고, 과자가 뭔지 알았다. 그걸 달라고 단어를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왜냐하면 지금 너는 아프고, 그 음식들이 너를 더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승연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는데,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면 엄마가 그렇게 해주길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재준아. 너 배가 아프잖아.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병원에 왔잖아. 주스를 마시면 안 된대. 엄마도 주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어. 다 나으면 많이 사줄게.”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오전인데도 도로에 차가 많았다. 멀리서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래, 이번엔 장염이구나.
    승연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한낮이 되기 전, 아직 신선함이 느껴지는 햇살이 보도와 가로수들, 자동차들 위에서 반짝거렸다. 이제 장염의 세계로 진입한다. 승연은 생각했다. 아니, 이미 진입해 있었다. 독감을 지나왔듯이 장염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고, 그러면 그녀는 장염에 관해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재준이 독감에 걸렸을 때, 승연은 타미플루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어째서 12시간 간격으로 먹어야 하는지,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타미플루는 주사로도 맞을 수 있는데 약과 주사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승연은 이런 치료법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정말 신비로운 일이 아닌가. 사람들이 온갖 분야를 연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 연구의 결과로 보통 사람―그게 그녀가 스스로를 느끼는 방식이었다―인 우리가 약을 먹을 수 있고, 이렇게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남아 있는 기름의 양이 작은 눈금까지 표시되고 고속도로에서는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를. 그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자신은 그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감탄할 뿐이라고, 승연은 생각했다. 그다지 훌륭한 사고방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 사람이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샅샅이 뒤져 봐도 약의 효능이나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짐을 감당하며 사는 거라고, 승연은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거나,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나아지게 만들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닐지라도, 그녀 같은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디테일. 승연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실이었다. 새들이 어느 병이나 항아리에서 나왔는지 모를 유리 조각을 지치지도 않고 둥지로 나르듯 그녀는 디테일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A형 독감과 B형 독감. 타미플루. 세균성 장염.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이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 덕분에 삶이 지루하지 않은 것이다. 지루함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승연은 생각해 왔다. 그녀는 삶이 지루해지면 어떤 위험이 입을 벌리는지 알고 있었다. 흐름이 없는 얕은 개울에서 물이 탁해지고 검은 이끼가 끼어 미끌미끌해지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흐르지 않으면 공기가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주변이 점차 검고 미끄럽고 흐늘흐늘한 물속처럼 변하고, 머릿속에마저 이끼가 끼면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머릿속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초록불이 켜졌다. 앞 차들이 움직이길 기다리면서 승연은 힐끗 룸미러를 쳐다봤다. 재준은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지금 잠을 자면 낮잠은 어떻게 하나. 그래도 당장 차 안이 조용하다는 것이, 혼자 여기저기 서성이듯 두서없는 생각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앞차가 움직였고, 그녀는 액셀러레이터에 올린 발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임신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승연은 깨달았다. 애써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속에서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일이 그녀의 하루를 계속 흐르게 하리라는 걸. 찾아보고 알아 둬야 할 것들, 쇼핑할 목록이 메모장에 가득했다. 목록은 끝없이 불어났다. 게다가 이건 축복받을 일, 가치 있는 일이었다. 가족들이,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다. 억지로 약속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임신해서, 몸이 좋지 않아요……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해 주었다. 막달이 되어 손가락이 퉁퉁 붓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울 때도 그녀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재준이 태어났다. 그녀는 지극한 애정으로 세심히 아이를 보살폈다. 베이비로션, 머리카락부터 발까지 씻길 수 있는 올인원 물비누, 앙증맞은 옷들, 턱받침들 속에서 그녀의 하루는 막힘없이 흘러갔다. 때로 겁을 먹고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을 해냈다.
    재준이 18개월에 접어들 무렵, 승연의 건강을 염려한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그녀는 집 안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에 내놓을 반찬을 만들었다. 어쩌다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으면 승연은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살림을 하는 건, 어쩜 이렇게 힘들까요! 놀라울 정도예요.
    하지만 또 다른 절반의 진실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거인의 손처럼 그녀를 쥐고 있던, 밤에 잠 속으로 사라졌을 때조차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일종의 어둠에서 놓여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생각했다. 영원히 이렇게 살고 싶어…… 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장염은 낫기까지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승연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할 수 있어. 그럼.
    다행히 주말이었다. 가장 힘든 이틀은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 그들은 이틀 동안 아이에게 흰죽과 따뜻한 보리차만 먹였다. 승연은 보리차를 끓여서 한 김 식힌 다음 커다란 보온병에 담았다.
    재준은 먹은 걸 전부 토해냈는데, 먹은 것 이상을 내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토하면, 그들은 옷을 갈아입혔다. 아래쪽도 줄줄 새서,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야 했다. 그들은 아이를 들어 올려 엉덩이를 따뜻한 물로 씻어 주었다. 나와서 엉덩이를 말리고, 다 마르면 다시 기저귀를 채웠다. 이 일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다. 아픈 아이는 평소와 달랐다. 잠시도 혼자 놀지 않고 어른에게, 특히 엄마에게 매달렸고 별것 아닌 일에 울고 짜증을 부렸다.
    “애가 아프니까 이렇게 달라지네.”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본인도 얼마나 힘들겠어.”
    다음날도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그들은 완전히 지쳤다. 일요일 오후, 그들은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틀어 주었다. 그들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기대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승연은 생각했다. 이런 시간을 함께 겪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지금 자신과 남편 사이에 앉아 있는 아이는 말 그대로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쌍꺼풀진 눈은 그녀를 빼닮았다. 길고 홀쭉한 얼굴형과 흰 피부는 남편에게서 왔다. 성격도 그랬다. 아직 어디가 나오고 들어갈지 모르는, 시시각각으로 모양이 달라지는 말랑말랑한 덩어리였지만, 이미 어떤 점은 승연을 닮았고 또 어떤 모습은 남편을 연상시켰다. 이 아이는 내게 속해 있는 만큼이나 남편에게 속해 있다. 신비한 일이라고, 승연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승연이 깨달은 사실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승연은 그 사실을 자주 생각했다. 내게는 아픈 못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꽃이어서 맨발로도 쉽게 밟고 갈 수 있다. 그게 승연이 깨우친 세상의 이치였다. 그런데 아이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보다 신기한 일이 있을까. 이 아이가 토하는 것, 설사하는 것은 그녀의 일인 만큼이나 이 남자의 일인 것이다.
    승연의 남편은 그녀보다 여섯 살 위였다. 그는 술을 잘 못했고, 일을 마치면 아쉬움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보기 드물게도 자기 곁에 있는 사람에게, 즉 아내와 아이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십대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피부가 희고, 단순히 흰 것이 아니라 얼굴색이 환했다. 눈동자는 차분했다. 충직한 개의 눈을 연상시키는 차분함이었다. 그의 세계는 관대하고 잔잔해서 사소한 돌멩이는 던져지는 즉시 그 속으로 삼켜졌다. 그에 비해 승연의 세계는 좀 더 연약했고, 수면이 잔잔할 때조차 어쩐지 불안한 면이 있었다.
    가끔 승연은 화를 내며 울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명랑해졌다. 그러면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승연을 대했다. 처음에 승연은 그게 싫었다. 겨우 가라앉힌 화가 다시금 치밀었다. 이 사람은 왜 묻지 않는 거지? 왜 무엇 때문이었냐고, 어째서 그랬냐고 묻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거냐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승연은 그 점에 익숙해졌고, 그가 묻지 않고 자신도 굳이 꺼내어 말하지 않는 그만큼이 일종의 안전지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뉴스에서 봤던 게 생각나.”
    나란히 소파에 앉아, 남편이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린 아이의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승연의 어깨를 만졌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아동학대 사건 말이야. 시터에게 이유가 뭐였냐고 물어보니까 애가 배탈이 나서 계속 설사를 해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했거든. 아이가 재준이랑 개월 수가 같았는데. 너무 힘들다는 게 뭔지 이유를 알겠다.”
    그는 녹초가 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런 얘기를 해?”
    승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기대고 있던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냥 생각나서 이야기한 거야.”
    남편은 어리둥절해했다. 승연은 굳은 얼굴로 남편을 쳐다봤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뭐야? 그 미소는 또 뭐고…….
    “전에는 24개월 아이라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의 아이인지 모르니까 구체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거든. 분유 먹고 누워 있는 아기들인 줄 알았어.”
    승연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학대라니. 그런 단어가 그녀의 집 안에서 발음되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고 싫었다. 게다가 아이가 듣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불쑥 꺼낼 수 있나! 마치 저녁 메뉴라도 이야기하듯 그렇게.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당신은 들어가서 좀 누워.”
    남편이 승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온화해 보이는 넓은 얼굴에 의아함과 걱정이 가득했다.
    먹을 것을 좀 주문했다고, 그는 나중에 승연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할 아내를 위해 식료품을 주문한 것이다. 월요일 아침, 그들은 재준이 깰까 봐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상자를 뜯어 물건을 꺼냈다. 핫도그, 과일, 무화과가 통째로 박힌 호밀빵, 그릭요거트, 전부 승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재준이 몰래 먹어야겠네.”
    승연이 식료품을 냉장고에 채워 넣으며 말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
    남편이 웃었다.
    아침부터 승연은 바삐 움직였다. 이틀간 약을 먹자 토하는 건 멈췄지만, 설사는 계속되었다. 똥을 쌌는데 설사인 게 아니고, 항문에서 시도 때도 없이 갈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힘들지? 엄마가 잘 돌봐줄게. 걱정하지 마. 곧 낫게 될 거야.”
    승연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쩐지 아이에게는 자기 한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이가 측은하게 여겨져 목구멍이 죄어들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승연은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몇 번이고 옆에 누운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다가 토하면 기도가 막힐 수도 있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수요일에도 설사는 계속되었다. 승연은 수시로 엉덩이를 확인했다. 기저귀 안은 갈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짙은 갈색이거나,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색일 때도 있었지만 묽은 액체인 점은 같았다. 대체 이 작은 배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승연은 아이를 들어 올려 세면대로 갔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아이의 엉덩이를 갖다 댔는데 순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승연은 아이를 놓칠 뻔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낮춰 무릎을 꿇다가 왼쪽 팔이 변기에 세게 부딪혔다.
    씻는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처럼 안아서 씻기기엔 아이가 너무 무거웠다. 그래, 이런 계기를 통해서 바꾸는 거지. 승연은 샤워기를 틀었는데, 아이가 질겁하는 바람에 샤워기를 놓쳐버렸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얼굴과 윗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목요일. 아이는 컨디션을 회복한 듯했다. 어느 순간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설사는 찔끔찔끔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냉장고를 가리키며 뭔가를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승연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사정했다.
    “며칠만 더 참자. 다른 걸 먹으면 더 아프게 돼. 엄마도 정말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야.”
    다른 데 관심을 돌려도 그때뿐. 아이는 다시 냉장고로 갔다. 이 실랑이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전에 변기에 부딪힌 팔은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나도 병에 걸리겠어. 승연은 생각했다. 아이가 낫고 나면 내가 병에 걸리겠다. 아니, 이미 병에 걸린 것 같기도 했다. 목구멍안쪽에서 부기가 느껴지고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승연은 아이가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더는 할 수 없어. 더 이상은 못 한다고.
    그리고 처음으로 승연은 생각했다. 사라지고 싶다.
    지금 이 집, 이 공간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사라질 수 있다면. 물이 수증기가 되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대가가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을 듯했다. 정말로, 무엇이든. 복도식 아파트를 맨발로 뛰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을 쾅 닫고 그렇게 사라진다면…….
    1, 2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재준은 울음을 그치고 속눈썹이 눈물에 흠뻑 젖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연은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틀어 주었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이 옆에 앉지 않고 멀찌감치 식탁 의자에 앉았다. 생생한 꿈을 꾸다가 눈을 떴을 때처럼 조금 전의 상상은 아직 힘을 잃지 않고 그녀 안에 살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상상은 그녀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술이 주는 위안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람이 다시 한 번 그 위안을 발견한 것처럼.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상상 속에서 그녀는 사라진 엄마인 동시에 남겨진 아이이기도 했다. 분명 그랬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남겨진 아이의 눈으로 조금 전까지 엄마가 있었으나 이제는 텅 비어 있는 자리를,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너무 지쳐서 그런 거야. 승연은 생각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봤던, 독감보다 장염이 힘들다는 댓글이 기억났다. 그래, 확실히 그러네. 이게 독감보다 더 힘들어. 그런데 장염보다 더 힘들다고 했던 병들이 있었다. 수족구, 폐렴…….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승연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지금만 생각하자고.
    그런데 두 번 다시 단단한 똥을 볼 수 있긴 할까? 머릿속이 아득했다. 설사를 하지 않던 때란 얼마나 행복했나! 그런 때가 정말 있었는데.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3.

 

    주말이 지나,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이가 자란 뒤로도 승연은 이 날 아침을 기억했다. 장염에서 회복된 아이가 일주일 만에 어린이집에 가던 아침을. 자신의 조바심과, 쿵쾅거리던 심장소리도.
    남편은 아이를 현관 턱에 앉게 한 다음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겼다.
    “왼쪽 발 먼저 신고, 그렇지, 이제 오른발.”
    승연은 남편에게 건넬 빵빵한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뒤에 서서 기다렸다. 신발 신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 발이 단 두 개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신발을 신을 수가 있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 됐다.”
    아이가 발딱 일어나자 현관이 꽉 찼다.
    “안녕. 잘 다녀와. 오랜만에 선생님이랑 친구들 만나서 좋겠네. 그래그래. 안녕, 안녕.”
    승연은 인사했다. 마침내 남편과 아이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혔다. 철컥. 경쾌한 도어록 잠금 소리. 문밖으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고요.
    승연은 천천히 소파로 걸어갔다. 풀썩 허물어지듯 한쪽에 앉았다. 거실 바닥에 흩어진 장난감들 위로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얇은 흰 커튼이 바람에 흔들렸다. 집 안에 혼자 있는 게 얼마 만인가. 열흘 만인가? 안도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뭔가가 있었다. 뭔가가 그녀를 움켜쥐고 있었고, 아이와 남편이 밖으로 나간 지금도 그녀는 놓여나지 못했다. 모든 게―이 거실에 앉아 있는 그녀 자신마저―현실감이 없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콩을 갈았다. 여과지에 가루를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 커피를 내렸다. 뭘 할까? 승연은 생각했다. 그래, 넷플릭스를 보자. 일주일 동안 승연은 아이가 나으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 패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TV로 프로그램을 재생시켰다. 오랜만에 보는 미국식 유머가 친근해서 빙그레 웃었다. 전에는 외국 드라마를 참 많이도 봤었다. 밤을 새워 한 시즌을 몰아서 보기도 했다. 이윽고 참가자들―신진 디자이너들―이 소개되었다. 경연으로 진행되고, 최종 우승자를 뽑는 방식이었다. 이제 패션에도 점수를 매기는구나. 하지만 패션은 무엇보다도 취향의 영역이 아닌가. 그렇지만 점수를 매기려면 못 매길 것도 없겠지.
    참가자 중에는 두 아이의 엄마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패션업계에 몸을 담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는 거지. 화장이 다 망가지겠어. 승연은 우는 엄마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울고 있는 아이 엄마는 매력이 없다구. 전혀 없지. 시청자들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승연은 바닥에 놓아두었던 머그컵을 집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승연은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다. 자주 하지는 않는 생각이었다. 승연의 엄마는 약물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승연은 궁금했지만 혹시나 그게 자살일까 봐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확인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자라면서 승연은 이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속 깊은 곳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얘기가 하나쯤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오래전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부모님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람을 치었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고. 승연은 비스듬히 몸을 일으킨 자세로 그의 머리통을 안고 있었다. 커다란 돌의 표면을 손으로 더듬듯, 윤곽 하나하나를 손바닥에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그렇게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 또한 털어놓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녀의 차례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럭저럭 1화를 다 보았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 장을 보았다. 다행히 재준은 장염에서 회복했다. 다음날도 어린이집에 갔고, 그다음 날에도 갔다. 아이는 갑자기 쑥 자란 것 같았다.
    아픈 뒤에 큰다더니, 정말 그러네. 그녀와 남편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한 시기가 지난 듯, 재준은 한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을 잤다.
    넷플릭스 시청 목록은 패션 프로그램 1화에서 멈춰 있었다. 그녀는 조금씩 아이가 아프지 않은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이를 후닥닥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보내고,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해서 남편이 귀가하면 셋이 함께 먹었다. 식사 후에는 놀이 시간이었다. 주방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를 씻기고 나면 한 방울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소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듯 이따금 그녀를 두드렸다.
    아이가 옷을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정성껏 만든 반찬 먹기를 거부할 때. 씻고 나와서 평화롭게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을 때조차 불현듯 그녀는 생각했다. 사라지고 싶다고.
    때로는 더 나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사랑스럽게, 한 점의 어둠도 없이 완벽한 신뢰의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올 때, 그녀는 갑자기 아이의 눈앞에서 자신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펑.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그 상상은 승연을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살피고 있어.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아이였던 자신이 원했을 다정함과 참을성으로, 아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다. 그녀는 아이와 남편을 두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는 건 때리는 것보다 나쁘다. 어떤 것도 사라지는 것보다 나쁠 수는 없다고 승연은 생각했다.
    “당신, 친구를 좀 사귀면 어때?”
    어느 날,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뭔가 배워 보든지. 재준이도 이제 많이 자랐으니까.”
    “뭘 배워?”
    그녀가 되물었다.
    “아무거나. 꽃꽂이 같은 거. 요즘엔 꽃꽂이가 아니라 다른 말로 부르던데, 뭐더라.”
    남편이 멋쩍어하며 웃었다.
    “플로리스트인가?”
    승연도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위한 시간을 좀 가져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남편이 말했다. 그다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그녀는 남편에게 대답했다. 정말이었다. 난 이대로가 좋아. 지금이 좋은걸.
    어느 오후, 그녀는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리다가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외국 방송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같았는데, 그녀가 보기 시작했을 때는 감옥 생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감옥을 체험한 사람들에 관한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계속 보다 보니 자극이 극도로 부족한 환경에 장기간 놓여 있던 인간들이 겪는 정신적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감옥에서 오래 생활한 뒤, 특히 독방에 갇힌 뒤 일종의 빛을 보고 초월 신앙에 빠져든 사람들―그중에는 저명한 사람들도 있었다―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승연은 심각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프로그램은 하루하루의 일과가, 의무와 책임이 인간의 삶에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소 교훈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일상이 중요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 사실을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승연은 언제나 채울 것을 찾아다녔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으로 삶을 채우는지 관찰했다. 그건 빈방에 가구를 채우는 것과 똑같았다. 사람들은 직업으로, 야구 중계에 열중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으로, 오락으로 방을 채웠다. 그중 어떤 것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어떤 것은 유치한 것으로,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실패로 격하되었다. 똑같은 일이 어느 시기엔 눈총을 받을 만한 것으로, 다른 시기에는 더없이 훌륭하고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고 승연은 생각했다. 결국 빈방을 채운다는 점에서 보면 완전히 똑같다고.
    그녀는 머리통 한쪽이 눌려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다른 남자들도 떠올랐다. 그녀는 어딘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에게 끌렸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들은 자신의 비밀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가까스로 그 점을 깨닫고, 승연은 다른 남자를 택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고르지도 않은 가구로 가득찬 방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4.

 

    며칠 뒤 저녁, 그녀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아버지 집에 갈 생각으로 나왔지만, 막상 자동차에 앉으니 망설여졌다. 차라리 다른 곳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혼자 시간을 보낼 만한 곳으로.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파트 주소를 입력했다.
    40분 뒤, 그녀는 어느 문 앞에 서 있었다. 벨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니?”
    아버지가 전화를 받아 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오랜만에 와봤어요.”
    승연의 아버지는 혼자서 넓은 아파트에 살았다. 물건이 없어서 그런지 지나치게 넓어 보이기도 했다. 까만 가죽소파 세트가 있고, 한쪽에 골프를 연습하는 초록색 융단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주방을 둘러봤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가져온 고기를 넣었다. 혹시라도 아버지와 저녁을 먹게 될까 봐 가져온 것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가죽소파로 가서 앉았다. 바닥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마 청소업체에서 사람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을 터였다. 베란다 창으로는 맞은편 단지가 보였다. 거기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멍하니 보다가 승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엄마는 죽지 않은 것 아닐까. 언젠가 내가 말도 할 수 없던 시절, 맨발로 바깥으로 뛰쳐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빠와 나의 삶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었을까.
    승연은 아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녀는 궁금했다. 엄마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린 시절에 엄마는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하지만 과연 물을 수 있을까? 나는 그걸 듣고 싶은가? 이제 와서? 스스로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깥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이 환해지고, 커다란 사람이 들어왔다. 아빠. 승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왔니?”
    키가 크고 늘 그렇듯 정장 차림―정장이지만 묘하게 후줄근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인 그녀의 아빠가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네.”
    “아이 아빠랑 아이는?”
    “집에 있어요.”
    남편과 싸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승연은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하지. 아빠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그가 나왔을 때 승연은 주방에 있었다.
    “지하철 타고 온 거야?”
    아빠가 물었다.
    “차 갖고 왔어요.”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 운전해요.”
    승연이 면허를 딴 것이 벌써 1년 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운전한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아버지와 오랜만에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구운 고기를 나눠 먹었다. 먹으면서 승연은 아버지의 일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아파트나 주택처럼 주거용 건물을 취급하는 중개인이 아니라 공장 부지를 매매하는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승연은 늘 전화가 울리고, 아빠가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는 데 익숙했다. 그런 일이 아빠는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언짢은 표정조차 지었던 기억이 없었다. 전화가 오면 받고, 누군가 나를 찾으면 간다. 그런 식이었다.
    이 남자는 인생을 일로 채웠어. 승연은 생각했다. 그건 이 사람의 선택이야.
    “다음엔 애를 데려올게요.”
    승연은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하나뿐인 딸, 아이 엄마가 된 딸을 배웅하는 남자는 생각 속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의 짐을 지고 있는 늙은 남자일 뿐이었다. 승연은 아버지와 식탁에 앉아 있는 동안 깨달았다.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궁금하지 않다는 걸. 그들이 완전히 남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 사이에 있던 건 사라지고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네.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은 어두웠다. 안방에서 남편과 아이가 자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거실로 나와 캄캄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여기 이렇게, 여전히 자기 자신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지루함에 삼켜지지 않았고, 연기처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며칠 뒤 저녁, 승연은 남편에게 말했다.
    “나 뭔가 새로운 걸 해볼까 해. 모임에 나가 보려고.”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남편이 반겼다.
    “평일 저녁도 괜찮아. 이제 당신도 시간을 가질 때가 됐어.”
    확실히 아이는 더 건강해졌고 많이 자랐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났다. 육아는 수월해졌다. 그녀는 재준 또래의 아이 엄마로 이뤄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얘기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생겨서 엄마가 사 온 옷을 입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들에 대해서. 비가 오지 않는 데도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졌다는 이유로 우비를 입고 밖에 나가는 아이들에 대해서. 하루하루 부지런히 어휘를 습득해서 써먹는―종종 잘못 써먹는―아이들이 얼마나 웃기는지에 대해서.
    승연은 말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때, 아이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베풀 때, 그건 아이를 향한 것이지만 동시에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는 기분이라고. 그럴 때 자신은 아주 조금은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이라고. 더 정확하게는 인생을 고쳐 쓰는 기분이라고. 승연은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지만 언젠가는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 엄마들은 말했다. 이제 좀 살 만해진다고. 적어도 이제 사람처럼 살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본인을 위한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슬슬 일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요. 저는 요가를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어요.
    “승연 씨는요?”
    사람들이 물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뭔가 하려고요.”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다. 가을이 되자 점점 옷자락 위로 배가 불룩해졌다. 승연은 집 안을 정돈하고, 재준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었다. 때로 재준이 아팠고, 다시 나아졌다. 때로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원치 않는 상상이 그녀를 방문해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그 상상들을 뿌리치고, 내쫓고, 때로는 그저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결국 지나갔다. 그것은.
    곧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두 번째 아이를 기다리며, 승연은 하루하루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것이 나의 짐이고 나의 헌신이고 나의 전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승연은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살림을 하는 건, 어쩜 이렇게 힘들까요. 정말 몰랐어요. 이렇게 힘이 들 거라고는. 그런데 저는, 지금이 좋아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승연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녀의 말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

 

 

 

 

 

 

 

 

 

 

김세희
작가소개 / 김세희

2015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가만한 나날』,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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