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바숑 외 1편

[신작시]

 

 

모티바숑motivation *

 

 

주하림

 

 

 

    파리의 겨울은 늘 세 번째 전생 같다 결혼식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 류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어 결혼식 사진이 나왔는데 누구도 날 찾지 못해 프랑스에 머문 친구들은 그런 말을 자주 했어 갔다 오면 정신병자가 되거나 우울증을 앓게 된대 가보지 않고 앓는 병은 어떤 걸까

 

    하녀방이라 불리는 곳에 살았어 옥탑으로 민트색 바람이 불지 처음엔 소공녀 다락방을 떠올렸어 파리에 동화 같은 건 없는데 거기선 늘 바닷물에 발이 젖는 꿈에 빠져 방 모서리를 타고 들려오던 목소리
    창이 그리워 생샤펠 성당에 갔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굴절된 빛들이 창을 통과하고 갑자기 유리들이 와장창 머리 위로 쏟아진대도,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어둡고 아름다운 것들을 믿어 오는 일을 그것이 쏟아지는 것을 복원가들은 왜 천사의 한쪽 팔을 방에 숨겨 두었을까

 

    하녀방은 버려진 축사 같아 종종 창을 바라보며 열기구로 탈출하는 건 어떨까 신문을 보고 서독의 부를 부러워한 동독 사람들처럼
    학교에서는 이집트, 터키 애들 틈에서 발표란 걸 했지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카페에서 맥주와 라자냐를 떠먹는 날들
    하루는 흑인 남자가 다가와 남는 라자냐를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식당 주인은 그를 쫓아냈지
    발밑을 걸어 다니는 비둘기 떼
    정오의 눈부신 도시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는 서 있었고 방학에 남부에 놀러가서도 친구 같은 건 사귀지 말자고 결심했지 아니 북부든 남부든 친구란 것을 가진다면

 

    오늘은 소도시 예술 대학에 모티바숑을 제출하고 유화를 샀어 눈코입이 피와 선으로 흘러내리는 초상화 온통 흐르는 피로 가득한 코튼 모스 모스 류, 우리 중 하나가 멈출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이 거리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을 테지 내가 죽으면 가난한 새 주인이 올 테고, 떠나는 유학생에게서 산 침대가 놓이고 그 아래 고양이들은 혼자가 되겠지

 

   *  불어로 자기소개서.

 

 

 

 

 

 

 

 

 

 

옆자리 약혼자 키나

 

 

 

 

    베드로 성당 기둥에 발을 딛고 있는 천사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입장료를 내고 입국심사대를 거쳐야 하는데
    인파 속 키나의 약혼자는 사라지고
    키나는 하늘을 날기엔 너무 작은 날개들을 바라보고 있다
    교황 방 치장을 위해 젊은 날을 석회벽에 그려 넣은 궁중화가
    그가 매일 붓을 쥐고 올려봤을 천장의 암흑

 

    그가 그렸던 마리아상은 전부 사랑하던 여자의 얼굴이었대
    그녀 이름은 마르게리타 루티
    나폴리 항구 레스토랑 키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마리게리타 조각을 집는다 버팔로 치즈 우유 비린내
    키나의 약혼자는 약간 굳은 얼굴로 에스프레소잔 가라앉은 크레마를 젓는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나를 보며 윙크하는데 손등에 입맞춰 주는데

 

    여름에도 가을에도
    나폴리에선 아직 마피아들이 밥을 먹고 술을 팔고
    키나는 그들을 피해 피자집에서 줄을 섰지만
    호텔방으로 돌아와 그들에게 피자박스처럼 팔려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8월의 차가운 카푸치노, 다른 연인, 망각의 다른 얼굴
    창문이 열릴 때마다 수음하는 옥상의 로마인 그것을 기다리는 키나

 

    해변과 카페테라스에서 바닷바람에 타들어가는 담배
    그때마다 키나는 고국의 절망을
    암흑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이빨을 생각한다
    멀리 지중해 절벽에 둘러싸인 해변
    검은 모래 검은 자갈들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망각에 필요한 건 연습이 아니라 메이크업을 끝낸 얼굴이나
    휘파람을 불며 키나를 걱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일지 몰라
    잊지 못한 것들이 무엇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야
    키나 너는 내게서 자유로워져 누구와 놀든 누구와 집에 가든
    로컬버스를 타고 절벽과 언덕을 수없이 왕복하고
    새벽이면 키나는 홀로 눈이 떠졌다

 

    돈 포토
    싸이런스
    우리는 세속에서 죽었다
    베드로 성당 천장으로 울려 퍼지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
    로만 카라 검은 신부복을 입은 검은 피부의 사제들이
    천장을 올려다보는 키나 곁으로 다가온다

 

    내일은 북부로 가는 기차를 타 선반 위에 누군가 짐 싣는 걸 도와줄 거야 그에게 기대야지 잠든 그의 낮고 무거운 악몽 속으로 들어가는 내 옆자리 누군가의 약혼녀 키나

 

 

 

 

 

 

 

 

 

 

주하림
작가소개 / 주하림

2009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이 있음.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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