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콜 외 1편

[신작시]

 

 

마진 콜

 

 

이세인

 

 

 

    소원의 밀도가 너무 높아 곪아버린 귓바퀴를 은하수에 씻느라 바빴단다 그새 인간들이 빌고 또 빌어서 이제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단다 아직도 질척하구나 롯데리아에 온 기분이다 내가 말 걸고 싶어지는 이들은 그래, 너처럼, 아무것도 빌지 않는 아이란다 눈동자는 도시의 불빛으로 환하지만 새벽 백사장의 포말만 생각하고 빈약한 가슴에는 별 없는 우주를 채워 넣은, 속이 까맣고 낯이 하얀 너란다 떨지 말렴 이건 스팸메일도 아파트 안내방송도 아니니
    그러니 물을게 너 네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으니? 떨어지면 끝날 것 같으니? 여기서 너를 밀어 봤자 부서지지도 않을진대 몸이란 거
    으깨지고 마는 거지 소소하게……
    그래도 재가 되면 훨씬 가벼워질 테니 다이어트는 성공하겠구나
    아니 떨지 말렴 너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거란다 지하 124층에서부터, 그래, 소금광산 같은 그곳으로 엘리베이터를 내려주마
    일단 15층 버튼을 눌러 그러면 숫자가 빠른 속도로 15 16 19 흰 옷에 검은 머리 여자……가 서 있는 것 같기도 기는 것 같기도 한 초록색 옥상을 지나서 128 888 너를 집어 올리는 게 인형 뽑기 같다 1367 42910 스피드를 즐길 줄 아는구나 아니면 센 척하는 건가 디즈니랜드에서 연습해 봐서 쉬운 건가 5999954 663828292 99999999999993 웃어 봐 카메라는 어디에나 있단다
    시원하니? 여긴 내가 있고 너는 없는 곳, 폭락할 때 더 시원한
    숫자들
    하지만 말했지 않니 나는 너를 떨어뜨리지 않을 거란다 내려다보렴, 아름답지 않으니 찬란한 개미들과 개미굴 너의 지옥 서울

 

 

 

 

 

 

 

 

 

 

POV

 

 

 

 

    비 내리는 가을밤이면 나는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고 눕는다 잠든 사이에도 발은 어디든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풀테니 다리 위를 뛰어가고 있다 비가 쏟아지고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다리 밑에서 흙탕물이 휘몰아친다
    오늘은 나를 태운 비행기가 떠나기 이틀 전이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토끼 모양 섬을 온몸으로 껴안기 위해 맨발로 빗속을 달리기로 한다 누군가의 로만 바스 누군가의 코니쉬 파이 누군가의 런드리 그것들이 시야를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이토록 빨리 뛰어 본 적 없이 언덕을 오른다 35도 각도로 기울어진 지붕 위를 내달리면 내 세상도 딱 이만큼 기울어진 것 같아 아늑하고 평온해진다 멀리서부터 감색으로 물드는 하늘 골목에는 민둥한 승용차 껍데기들 그리고 오래된 지붕들보다 조금 더 기울어진 녹색 언덕 아래
    구름 조각을 던지고 있는 사람과 원반을 찾아 뛰어가는 커다란 개가 있다 나는 빗속으로 비와 함께 추락한다 구겨진 보닛을 퉁 퉁 두드리면 언제 찌그러졌냐는 듯 다시 판판해진다 내 발자국, 사라진다
    로만 바스의 사람들은 목욕탕에 앉아 생굴 먹는 것을 즐겼고 나는 빗속에 투명하게 앉아 다시 자라지 않을 이 언덕을 내려다본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들을 사랑해 버려서 내 시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자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 꿈에서 젖은 버드나무 냄새가 난다

 

 

 

 

 

 

 

 

 

 

이세인
작가소개 / 이세인

2020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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