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가나안

[단편소설]

 

 

그들의 가나안

 

 

조영한

 

 

 

    1

 

    뉴질랜드(New Zealand)는 두 개의 섬,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뉴질랜드 국민의 칠할은 도시들이 있는 북섬에서 살았고 나머지 삼할은 자연경관이 보존된 남섬에서 살았다. 북섬에서도 도시가 차지하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드물었고 다수의 지역은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산악과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래전 식민지 시대의 수도이자 현재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Auckland)에도 중심부에만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고 주변부로 갈수록 인구밀도가 낮아지면서 양, 알파카, 포섬, 키위, 사슴과 같은 동물들이 머무는 영역이 많았다.
    노스 쇼어(North Shore), 오클랜드 북쪽 권역에 속하는 도시였다. 그곳은 교육열이 높아서 학군이 형성된 지역이었고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주거가 밀집해 있었다. 그곳의 인구는 약 이십삼만 명이었으나 주거지 근처로 자연의 정서를 간직한 초지와 바다가 있어서 공기는 맑았고 하늘에 매연이 드리우는 날도 적었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서 토 베이(Tor Bay), 머레이즈 베이(Murrays Bay), 마이랑이 베이(Mairangi Bay), 캠벨스 베이(Cambbells Bay), 브라운즈 베이(Brawns Bay)와 같은 마을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에서 중간 지대는 마이랑이 베이로 곳곳에 카페와 식당, 펜션과 풀밭이 있었다. 앞뒤로 이웃한 바닷가 마을들의 색채가 장밋빛이라면 마이랑이 베이의 빛깔은 석양빛이었다. 모래톱에 깔린 모래는 수시로 바람에 흩날렸고 바람막이숲에 서 있는 종려나무들은 통일감이 옅고 개체성이 강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마이랑이 베이의 차도와 산책로에는 잡풀과 자갈이 많았다. 사람들은 바닥에 살얼음이 깔릴 정도의 날씨만 아니면 신발도, 양말도 벗고 맨발로 거리를 다녔다. 그들은 스스로를 키위(Kiwi)라고 불렀고 그러한 이름을 가진 키위새와 과일 키위를 좋아했다. 미풍이 불어오는 산책로에는 피케 티셔츠와 체크무늬 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걷고 있었다. 여자들은 금발에 눈빛이 새파랬으며 남자들은 발육이 빨라서 키가 껑충했고 어깨는 튼튼했다. 온종일 햇볕을 쬐어도 키위들의 피부는 붉어질 뿐 거뭇해지지 않았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있어서 돌부리가 있는 바닥을 디뎌도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그는 모래톱에서 걷고 있었다. 해풍이 코끝에 닿았고, 모래가 바람에 떠올라서 얼굴과 팔뚝을 스쳤다. 하늘에 구름이 덮여 있어서 날씨는 흐렸으나 주변이 어두운 날에도 바다 저만치에 떠 있는 무인도 랑기토토(Rangitoto)는 산책객의 눈에 띄었다. 그 섬은 구멍이 뚫린 회색빛 현무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정상과 가까운 곳에는 붉은 꽃을 피워낸 포후투카와(Pohutukawa) 나무들이 빽빽했다. 섬은 밤낮과 날씨에 상관없이 포후투카와를 지니고 있어서 언제나 불타는 모습으로 보였다.
    날이 저물었다. 그는 운동화에 묻어 있는 모래를 털고 둑길에 올라왔다. 둑에는 벤치와 화덕이 있어서 날씨가 화창한 날이나 휴일 저녁이면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황톳빛 벽돌로 지은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서 불을 붙이면 그릴에 열기가 모이면서 육즙이 맺힌 고기에서 연기와 향기가 올라왔다. 아이들은 고기를 그릇에 옮겨서 나이프로 잘라서 먹었고 어른들은 투이(Tui)라는 이름의 맥주를 마셨다. 어느새 밀물이 들면서 모래톱은 물에 잠겼고 파도 철썩이는 소리와 바람 부는 소리가 섞였다. 사람들은 고기 냄새와 맥주 냄새에 취했다.
    둑길에 서 있는 가로등 몇 개에 불빛이 맺혔다. 그는 둑길을 지나서 주택들이 있는 동네로 걸었다. 복층으로 지은 회백색 가옥과 조립식 차고는 어디에나 보였고 마당마다 연둣빛 풀과 이 미터 높이의 소관목이 자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류장 근처에 있는 집은 푸른색 지붕을 얹은 디귿자 모양의 펜션이었다.
    주물 재질의 출입문 안으로 들어오면 배불뚝이 남자가 뒷짐을 지고 앞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머리는 하얗고 얼굴은 주름투성이며 치수가 큰 남방과 허리 고무줄이 늘어진 백바지를 입은 주인. 주인 곁에는 귀가 늘어진 세인트버나드가 있었는데 온몸에 다갈색 털이 수북해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솜 덩어리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는 주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웃음을 보이자 개가 손님을 향하여 앞발을 쳐들며 잠시나마 짖었다.
    그의 방은 디귿자 펜션의 왼쪽 끝부분에 있었다. 방의 돌출창 밑에는 광택이 감도는 반원형 테라스가 있었고 대문은 아치형 모양이었다. 그리고 방 옆에는 줄눈이 닳아서 희미해진 벽돌담과, 테두리에 그물을 두른 트램펄린이 있었다. 주인의 손자인 금발머리 소년이 트램펄린 안에서 뛰놀며 소리를 질렀다. 피부는 가맣고 해종일 맨발로 길에서 노느라 발바닥에 붙은 각질이 두꺼워진 아이였다. 아이는 더 높은 허공에 머리를 닿으려고 다리를 오므렸다 펴기를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방문이 열렸다. 디귿자 펜션에서 가장 저렴한 방이었고 바닥에는 융털이 몇 가닥만 남은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창가 밑 침대에는 양모 담요가 놓여 있었다.
    그는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물병과 크림빵을 챙겨서 테라스로 나왔다. 마을에는 가로등이 적어서 주위는 어스름했고 하늘에서는 별과 달이 빛나고 있었다.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빛이었다. 그는 빵을 먹으며 목이 멜 때마다 찬물을 마셨고 소년의 발길에 눌려서 나오는 스프링 떨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은 얼굴이 땀범벅이었으나 움직임을 늦추지 않았다. 수없이 날갯짓을 해서 하늘로 오르려는 우윳빛 닭과 같은 모습이었다.
    빵 봉지와 물통이 비워졌다. 허기가 있지는 않았으나 배부름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에게 텅 빔과 꽉 참의 사이에 있는 이 기분은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좋음이나 기쁨보다는 괜찮음이나 나쁘지 않음의 상태에 만족하는 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식욕을 참고 안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다. 창가로 파도 밀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깨에 걸쳤던 담요를 다리에 덮고 눈을 감은 채 입소리를 내었다. 가나안, 가나안, 가나안, 그것은 그가 이 땅을 부르는 그만의 호칭이었다.
    창가에 걸어 놓은 부채꼴 모양의 리넨 커튼이 미풍에 조금씩 흔들렸다. 눈으로 좀처럼 잡아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곳에도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거나, 저렇게 잘 보이지 않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

 

    핸드폰이 울렸고 꿈에서 깨었다.
    이불과 베개에 누기가 져 있었다. 옥상 바닥에 빗물이 고였는지 천장 벽지는 축축했다.
    집주인은 올해 겨울에 옥상 공사를 했다. 일월 초에 한 차례, 일월 말에 한 차례. 나는 주말에 옥상으로 올라가서 주인의 작업을 곁에서 도왔다. 건물은 이십칠 년 전에 지어진 것이어서 몇 번을 고쳐도 손댈 부분이 많았다. 그는 처음에는 난간에 금이 갔다고 판단해서 스테인리스를 그라인더로 잘라서 씌우는 작업을 했다. 옥상 테두리에 철판을 씌우는 작업은 세 시간이 걸렸다. 그날은 한파주의보가 이 나라에 발령되었고, 눈발과 어둠이 땅으로 내리던 시각에 우리의 피부는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는 삼주가 지나서 다시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동안 폭우가 내렸고 거실 천장에서 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우리는 옥상 바닥에 녹황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섬유 공장에서 가져온 후렉스 원단을 덮었다. 옥상에는 시너가 녹아든 페인트 냄새가 풍겼고 작업을 절반쯤 마쳤을 무렵에 나는 어지럼을 느꼈다. 그날도 한파주의보가 이 나라에 내려서 날씨는 추웠고, 피부는 얼어붙었다.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작업을 마치고 술집으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집주인은 한때는 노동과 운동에 단련이 되었던 사람이어서 살빛이 적동색이었고 정수리 둘레에 난 모발과, 턱 선을 따라서 난 수염은 가닥이 굵었다. 그의 나이는 쉰아홉이었으나 거기에 열 살을 더해도 어색하지 않을 외모였다.
    맥주 세 병이 비워졌다. 주인의 입에서 조만간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투였고 명령이 아니라 권고 같은 인상을 주는, 약간의 온기와 미안함까지 어린 듯한 말. 나는 말투와 말뜻 사이의 거리를 측정했다. 거기에는 사람에 대한 친절보다 그만의 욕구가 있었다. 아마도 확대나 이익과 같은 단어들과 관련이 깊은 욕구. 나는 유리잔을 붙잡고 생각에 잠겼다. 취기가 가셨고 작업할 때 느꼈던 구역질이 일었으며 코끝에서는 시너 냄새가 살아났다.
    나는 자정이 되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새벽에 술집에서 먹었던 술과 안주를 변기에 게우고, 두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나는 이불을 한쪽으로 치우고 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대야를 놓았다. 물은 십오 초, 때로는 이십 초 간격으로 떨어져서 대야에 고였다. 물방울 고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등허리가 차가워졌다. 몸속의 피가 비워지고, 고농도의 산성과 고건물의 시간을 간직한 물이 뼈마디를 채우는 듯했다.
    오늘은 밖에서 소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를 물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 둘레로 노란색 포클레인들이 있었고 모래와 쇄석이 여기저기 쌓여 있어서 먼지를 날렸다. 평소에 하늘에 퍼져 있는 먼지보다 더 짙고 유해한 먼지였다. 몇 개의 건물 대문에는 붉은색 래커로 칠한 엑스 자 표시가 있었다.
    반파된 건물을 가리고 있는 포장천이 바람에 나부꼈다. 새벽에 내렸던 빗물을 머금은 천이라 이불 빨래를 터는 듯한 소리가 베란다 안으로 넘어왔다. 나는 필터까지 타들어간 꽁초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철조망 얹은 블록 담들이 늘어선 곳으로 머리가 센 남자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코르덴 바지에 회색 점퍼를 입은 모습이었고 손에는 하늘색 비닐이 들려 있었다.
    이웃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 큰 잡종이 짖는 소리가 들리자 머리에 고였던 잠기가 옅어졌다. 기운이 나지 않았으나 자리에 누워야 한다는 욕구는 누그러져 있었다. 나는 거실로 돌아와서 대야를 보았다. 천장에 스며든 물방울은 시간이 지나자 무게와 굵기를 키워서 대야에 떨어졌다. 또오옥, 또오옥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멍해졌고 잠들어, 잠들어 하는 명령조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핸드폰에는 다섯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두 통은 스팸이었고, 나머지 세 통은 지인이 보내온 것이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오늘 오후 다섯 시 대식당’. 사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장은 키가 백육십 센티였고 뺨에는 광대가 불거져 있었으며 팔다리는 가늘었지만 배와 엉덩이로 살집이 많아서 기형적인 생김새였다. 볼펜이나 분필을 쥐고 연단에 서거나, 햇볕이 한 움큼 정도만 모이는 지하실에 박혀서 연구를 하는 데 알맞은 외모였다. 하지만 그는 생김새와 걸맞지 않게 자영업자였다.
    두 번째 메시지는 ‘오늘 밤 니 새끼 집에서 한잔’. 나는 책상으로 가서 친구가 육 개월 전에 주었던 인쇄물을 찾았다. 책상에는 뉴질랜드의 풍광을 컬러로 인쇄한 종이들이 많았다. 나는 종이들을 모아서 파일에 끼우다가 모니터 뒤편에 있는 먼지투성이 인쇄물을 발견했다. 칠 개월 전에 북국(北國)에서 발행했다는 󰡔로동신문󰡕이었다. 나는 손끝에 묻어난 먼지들을 입으로 불면서 인쇄물을 읽었다. ‘경애하는 우리의 원수님께서 송도 국제 소년단 야영소에 축사와 선물을 보내시었다’, ‘경애하는 우리의 동지께서’, ‘경애하는 우리의 수령께서’, ‘경애하는 우리의 각하께서’, ‘경애하는 우리의 위원장께서’…….
    세 번째 메시지는 애인이 보내온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올해 일월까지만 애인이었던 여자였다. 나는 그녀와 반년간 사귀었고, 헤어졌다. 처음에는 타인과 눈빛을 교환하고픈 감정과, 다정한 접촉의 욕구를 원해서 만났으나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바람들이 희미해졌다. 우리의 성격은 서로가 기대했던 것보다 잘 맞지 않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침묵을 지키고 각자의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싸우는 시간보다 말이 없어지는 시간이, 내 눈에서 열기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불안을 심은 것 같았다.
    올해 일월 초였다. 나는 카페에서 잠시 일하는 중이었던 엔조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소주와 맥주를 함께 섞어서 마셨다. 관계는 다음날 아침에 가질 뻔했는데 과음을 했던 탓에 발기가 되지 않았다. 엔조이는 정오에 떠났고, 애인이 저녁에 집으로 찾아와서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알아차렸다. 나는 사과를 했지만 애인이 바라는 만큼의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만큼’을 찾기란 나로서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애인은 소리를 지르다가 울었고, 그동안 내 태도로 인해 느꼈던 마음속 상처들도 얘기했다. 나는 네 번째로 사과를 하다가, 그녀가 이 집에서 나가고 난 뒤에 생길 고요를 생각했다. 둘이서 보냈던 시간을 하루에 몇 번은, 어쩌면 몇 십 번은 떠올릴 테지만 혼자서 지내는 시간의 온도와 무게를 아주 나쁘게는 여기지 않을 듯싶었다.
    나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고 지웠다. 이르면 오늘 초저녁에, 늦어도 내일쯤 연락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주머니칼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집에서 나왔다. 복도의 너비는 좁았고 벽에는 먼지와 낙서와 틈새가 있었으며 벽 틈에서 나오는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 귀기(鬼氣)가 녹아든 듯한 공기였다. 이웃집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잡종이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열린 문을 보고도 이웃집 초인종을 눌렀다. 흰머리가 나왔는데 손에는 물기가 많았고 상의로 군용 방한내피를 입고 있었다.
    흰머리의 집은 추웠고 가구는 이불과 요, 러그와 다탁과 행어가 전부였다. 세간이 단출해서 새집처럼 보이다가도 벽지와 천장에 푸른곰팡이가 피어서 헌집같이 보이는 집이기도 했다. 나는 신발을 털고 잡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털빛이 흰색인 개였는데 오른쪽 눈은 백태가 끼어서 뿌옜고 이는 다 빠져서 네 개의 고름집이 생겨난 잇몸만 남아 있었다. 잡종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엎드려서 두 눈을 감았다. 나는 손바닥에 붙은 개털을 러그에 털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은 부푼 모습이었고 아래에는 물 고인 대야가 놓여 있었다.

 

    흰머리는 일주일에 네 번씩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카페를 그만둔 뒤로는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뜬눈으로 보내다가 아침이 되면 이불에 누웠다. 여덟 시쯤이면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현관문을 열면 흰머리가 잡종의 목줄을 쥐고 서 있었다.
    내가 기상하는 시각은 보통은 오후 두 시였다. 나는 일어나면 모자를 쓰고 잡종과 산책을 나갔다. 단지 밖으로 나가면 빵집과 술집과 편의점이 입점한 몇 동의 건물들과 정차하는 버스가 하나뿐인 정류장, 회백색 밭이 있었다. 밭과 밭 사이로 난 비포장 길을 따라서 걸으면 적벽돌로 지은 역사가 나왔다. 평일 낮에는 무직자와 노숙자와 고령자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나와 잡종은 역사까지 걷다가 정류장으로 되돌아오기를 두세 번 반복했다. 우리가 왕복을 하는 동안이면 밭에서 나뭇개비들을 태우는 냄새와 허리가 잘린 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코밑에 닿았다.
    흰머리는 오후 다섯 시 무렵에 귀가했다. 잡종은 엎드려 있다가 주인이 복도에 오는 기미가 느껴지면 일어나서 짖었다. 나이가 들고 외모가 추해져도 누군가로부터 귀염과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는 바보를 보는 듯했다. 흰머리는 잡종을 돌려받으면 나에게 사례금을 주려고 했다. 그의 행동에는 때 묻지 않은 진심보다 때 묻은 거짓이 엿보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사례금을 받지 않았고, 그럼에도 흰머리는 지갑을 몇 번은 들척거렸다. 그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최소한의 체면을 지키려는 듯했다.
    흰머리는 다섯 시 반이면 저녁을 먹었고 나도 함께 먹을 때가 있었다. 흰머리의 집에는 언제나 쑥 타는 듯한 냄새가 풍겼고 벽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삼분의 이 정도는 흑백인 사진들이었고 나머지 사진들만 컬러였는데 흰머리의 얼굴은 주로 구석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거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흰머리는 식사를 차렸다. 메뉴는 돼지 앞다리살을 넣고 끓여낸 전골인 경우가 많았고 가끔은 북어와 된장을 우려낸 국도 다탁에 올라왔다. 주된 반찬은 새우젓을 넣어서 간을 한 계란찜과 간장에 졸여낸 마늘종, 기름을 발라서 구운 김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면 베란다에 내놓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베란다 창문 아래에는 원기둥 모양의 난로와 노을빛 액체를 담은 주전자가 있었다. 액체는 헛개를 넣고 달인 물이었는데 숙취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흰머리는 풍물시장에서 사온 민트색 도자기 찻잔에 물을 채우고 한 모금씩 마셨다.
    우리가 담배를 태우는 동안 밖에는 땅거미가 내렸고, 건물을 부수는 공사가 멀리서 이어졌다. 포클레인들이 굉음을 일으키면 톱니들이 달린 삽날이 콘크리트 벽을 허물고 유리창을 부서뜨렸다. 벽이 쓰러지는 소리와 유리창 깨지는 소리는 담배 연기가 차오른 베란다 안으로 넘어왔다. 기계가 어느 순간부터 가동을 멈추면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슬레지해머로 삽날이 다 허물지 못한 벽을 넘어뜨렸다. 유리와 벽이 땅바닥에 쌓였고, 먼지가 풀썩였다. 건물의 허리였던 골조들은 하늘을 향하여 삽날과 해머에 휘어진 머리를 들고 있었다.

 

    상이 차려졌다. 된장을 풀어서 끓인 국에는 소고기가 들어가 있었고 반찬은 고등어구이와 잡채, 오징어 젓갈과 멸치볶음과 감자조림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야의 수면에는 석회로 보이는 회색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행어에도 물방울 몇 개가 떨어져 있었고 경비복 상의와 외투와 바지는 조금 젖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베란다에 나왔다. 흰머리는 평소에 피우던 것과는 다른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담배 공사에서 고가에 내놓는, 맛과 향이 부드러워서 소수의 부유한 애연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담배였다. 나는 담뱃갑을 받아서 금띠가 둘러진 커버를 보았다. 눈 덮인 들판을 배경으로 가지와 몸통이 오른쪽으로 굽어진 소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담배를 꺼내어서 불에 그슬렸다. 콧속과 목울대에 고급 연초 냄새가 밀려들자 잠시간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전자 안에는 오그라든 헛개 한 줌과, 빛깔이 흙빛으로 흐려진 물이 바닥을 적실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흰머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물을 민트색 도자기 찻잔에 따르고 창밖을 보았다. 오늘은 건물을 부수는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고 텅 빈 고요가 우리를 둘러쌌다. 그렇게 답답하지도, 그렇게 편하지도 않은 고요가. 그는 민트색 도자기 찻잔을 손끝으로 문지르면서 최고급 연초를 종이에 만 담배를 피웠다. 마시고 피우는 사람은 그가 사용하는 물품들 덕분에 일상과 거리가 먼 영역에, 잠깐이나마 도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흰머리는 마시고 피우는 시간이 끝나자 난로를 껐다. 나는 그의 집에서 나오려다가 선물을 받았다. 소나무 담뱃갑에 남아 있던 담배는 열네 개였다.

 

    오후 네 시였고 비는 내리다 멎기를 반복했다.
    대학가는 산을 깎아서 만든 도시였다. 차도와 인도는 오르막이었고 가게들 앞에는 과일이나 야채를 파는 노점들이 있었다. 나는 노점에 들러서 사과 두 개를 사고 건물들이 밀집한 쪽으로 걸었다. 한동안 방문이 뜸했던 사이에도 술집과 밥집과 카페는 늘어나 있었다. 퀴클리(QUICKLY), 이디야(EDIYA), 할리스(HOLLYS), 커피 베이(COFFEE BAY), 원스(ONCE), 그루나루, 빽다방…….
    나는 예전에 일했던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영업을 하는 시간이면 테라스에는 원형 탁자들과 목제 의자들이 줄을 맞추어서 놓여 있었으나 오늘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문에는 ‘휴점’이라고 쓰인 무늬목 명패가 걸려 있었고 유리벽에는 빗물이 묻어서 생긴 얼룩이 가득했다.
    사장은 아침이면 잠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날 쓸 원두를 준비했다. 나는 하루나 이틀 전에 배달된 신문지를 찢어서 유리벽을 닦고 행주로 테이블과 조리대를 훔쳤다. 여덟 시가 넘으면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유리벽 너머로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일하는 카페로 들어와서 음료와 음식을 주문했다. 대부분 눈 밑에 그늘이 지고 살결이 까칠하며 목소리에 졸음이 묻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장은 탬핑과 태핑을 거친 원두들이 담긴 포터 필터를 머신기의 그룹 헤드에 부착했다. 추출 버튼을 누르면 두 개의 추출구로 고온의 에스프레소가 나와서 예열된 컵들의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사장은 에스프레소 표면에 뜬 크레마의 색상과 두께를 눈으로 확인하고 맛을 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가고, 오른쪽 눈이 작아지지 않으면 그 커피는 사장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사장이 완성한 커피에 적정량의 물이나 우유를 배합해서 사람들에게 주었다.
    아침 손님들은 보통은 열 시가 넘어야 줄어들 기미를 보였다. 그때는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만 몇 명 있었다. 사장은 일손을 덜어도 좋은 상황이면 조리대 아래에 놓았던 도시락을 들고 창고에 들어갔다. 반찬에 육류가 들어가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고 밥과 장아찌, 두부와 콩장과 젓갈 같은 것들이 그의 식단을 이루었다. 매장에서 먹으면 마늘 냄새를 풍길 법한 반찬들이었다. 사장은 창고에 들어가면 가능한 십 분 이내로 식사를 마치고 매장 맞은편에 위치한 꽃집으로 갔다. 꽃집 여주인은 사장보다 나이가 두 살 어렸고, 과부라고 했다.

 

    대식당 안에는 마늘을 까는 할머니와 상자를 주방으로 나르는 그녀의 딸만 있었고 손님은 없었다. 메뉴는 국, 찌개, 구이, 볶음, 튀김, 조림, 무침 등 너무나도 다양했으나 주력이라고 할 만한 음식은 없었다. 미각에 감동과 기쁨을 주는 음식은 없으나 다른 술집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며, 혼자서 술을 마시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꺼냈다. 차도 옆 길가로 큰 소리로 떠드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들과, 우산을 들고 웅덩이를 피해서 걸음을 옮기는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어깨에 가방을 멘 모습이어서 학교에 다니는 듯했다.
    나는 학교에 일 년 동안 다녔고, 졸업을 하지는 않았다.
    사장은 다섯 시 정각에 부슬비 내리는 큰길로 모습을 드러냈다. 키는 전보다 더 작아져 보였고 팔다리 두께는 그대로였으나 배와 엉덩이에 붙었던 살집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제는 연구자도 자영업자의 모습도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누울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술잔에 소주를 채우고 가스버너 불을 높여서 국물을 데웠다.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의자에 앉았고 서둘러 첫 잔을 비웠다. 갈증을 느끼는 듯했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흉터가 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담배를 받았다가 담뱃갑에 그려진 소나무를 보고 왼쪽 입 꼬리만 올려서 웃었다. 감탄과 무시, 아마도 두 가지 감정을 더불어 보여주는 듯한 미소였다.

 

    우리는 그동안 메신저를 통해 퇴직금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에는 먼저 서면으로 한 달 전에는 통보해야 하며, 예고가 없을 시에는 통상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자가 직장을 그만둔다면 근속연수 일 년마다 평균 임금 삼십일분을 퇴직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말은 나의 생각과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법에 근거하고 있었다. 보통은 소유자와 사용자에게 힘을 실어 주지만 내게도 약간의 권리와 혜택은 마련해 주는 법.
    나는 사장에게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을 얘기했다.
    내가 카페에서 일했던 기간은 사 년 팔 개월이었고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보통은 여덟 시간, 때로는 열 시간이었다.
    사장은 신경질을 냈다. 그는 자영업자임에도 법에 어두웠고 금전적 손해를 보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며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사장이 알고 있는 이 나라의 법적 이해도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대와 공간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과 비위생적인 현장과 선임자의 폭행과 욕설이 있고 근로기준법이 누군가의 존엄보다는 최소한의 생존에 방점을 두고 있던 때. 사장은 매장 안에서 보였던 내 근무 태도도 지적했다. 상습적인 지각, 손님과의 트러블, 계산 실수로 인한 손실,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말투, 미흡한 위생 관리, 어두운 말귀, 느릿느릿한 행동…….
    나는 사장이 언급한 사안들과, 내가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 정당성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예컨대 전자가 A이고 후자가 B라면, A라는 문제가 있기에 B가 합당하지 않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
    A는 A이고, B는 B일 뿐이었다.
    논리의 우위는 나에게 있었다. 사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나를 아들처럼 여기고 있었다는 말을 꺼냈다. 그것은 신경질을 내던 때와는 다른 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장의 태도는 친절과 냉대 사이에 있었고, 그 지점을 굳이 말하면 무심이라고 불러야 했다. 무심과 부성애가 같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둘이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말했던 A에 불과할 뿐이었다.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나는 고용노동부에 퇴직금 체불을 사유로 민원을 넣었다. 우리는 이주가 지나서 고용노동부 건물에 있는 근로개선지도과에서 만났다. 근로감독관은 뿔테 안경을 쓴 초로의 남자였고 손목과 팔뚝이 굵었으며 손톱에는 때가 없었다. 감독관은 사투리 억양이 센 목소리로 퇴직금을 미지급한다면 사용자는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장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두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목과 팔목은 가늘었고 손톱은 더러웠다. 감독관은 나와 똑같은 애기를 했지만 그의 말에는 논리의 우위에 더해서 힘의 우위와, 법의 권위도 있었다. 그런 말들은 이해는 되었으나 감독관의 말투에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일시불로 받기를 원하며 분할 지급을 하더라도, 세 번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사장은 지급 기한을 두 달만 늦추면서, 지급 횟수를 네 차례로 늘려 줄 것을 요청했다. 목울대에 가래가 낀 목소리였다.
    술병이 비워졌다. 나는 사장의 얼굴에 팬 주름과 머리털들 사이로 몇 올씩 올라온 새치를 보았다. 그에게 불만을 가져야 하는지, 동정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피 고인 상처로 소금 알갱이 몇 알이 뿌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급 기한을 한 달만 늦추면서 지급 횟수는 세 차례로 늘려 주겠다고 했다. 사장은 내가 제시한 조건보다 더 나은 타협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이상의 양보는 없었다.
    나는 사과를 꺼내어서 주머니칼로 껍질을 깎았다. 사장은 평소에 과일을 잘 먹지 않았다. 나는 과일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말하면서 사과를 빈 접시에 놓았다.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 조각이었다. 그는 사과를 입안에 넣었고, 맛이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좋다, 라는 표현을 속으로 곱씹었다.
    우리는 신호등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표면이 갈변하기 시작한 사과를 씹으며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노점은 두어 개 정도만 남아서 생김새가 별로인 떨이를 팔았고 카페들은 간판에 불을 밝혔다. 이곳에 카페들이 많아질 때부터 내가 오전과 오후에 맡았던 일감의 총량은 줄었고, 사장은 식사량이 줄지 않았음에도 살이 줄었다. 나는 버스를 타려다가 셔터를 윗부분만 내린 꽃집을 보았다. 내부는 불이 꺼져서 어두웠고 유리벽에 비쳤던 꽃들과 진열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단지에 어스름이 내렸다. 건물이 무너진 자리는 휑했고, 건물이 있는 자리는 불빛이 옅어서 어두웠다. 나는 캔맥주를 마시면서 걷다가 모자를 눌러쓰고 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봉지는 밑바닥이 젖어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서 붕어빵이거나 호두과자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한 동네에서 살았으나, 서로의 눈길을 피했다.
    누군가가 불빛이 엷은 계단에서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칼을 꺼냈다. 상대는 친구였고, 칼에 비친 광택에 놀랐는지 뒷걸음을 쳤다.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탁해서 말이나 소가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쇼핑백 안에는 폐사된 닭들을 튀겨서 판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어느 브랜드의 저염식 치킨이 들어 있었다.
    바닥은 대야에 고였던 물이 흘러넘쳐서 물바다였다. 나는 수건으로 바닥을 닦은 뒤 대야를 비우고 보일러를 틀었다. 친구는 속옷만 입은 채 냉장고 옆에 있던 소반에 술상을 차렸다. 그의 팔뚝과 다리는 전보다 홀쭉했고 목주름이 몇 개는 늘어났으며 얼굴은 기미와 부스럼이 덮여서 지저분했다. 예전에는 피부만큼은 깨끗했던 인간이었다. 남들은 일 년이 지나면 나이 한 살이 늘어날 때, 친구는 십 년의 시간을 몸속에 채우는 것 같았다.
    친구는 등에 메었던 가방에서 스테이플러로 찍은 인쇄물을 꺼냈다. 가장 최근에 북국에서 발행한 『로동신문』이었다. 이번에는 사진이 컬러로 나와 있었는데 서른이 넘은 북국의 지도자가 인민복 차림으로 단상에 서 있었다. 고귀한 혈통을 가졌다고 알려진 고도 비만의 남자, 타인의 감정과 고민을 정확하게 이해할 줄은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이 나라에서도 흔하게 마주치는 얼굴.
    친구는 북국 관련 영상을 만드는 방송국에서 보조 작가로 일했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북국에서 나오는 영상과 인쇄물을 보았다. 그러한 자료들 중에서 방송에 내보내기에 알맞은 원고를 만드는 것이 친구의 업무였다. 그가 말하기를 보기와 쓰기는 지루함을 버텨낼 수 있는 끈기와, 얼마큼의 수입이라도 없으면 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주 업무 외에도 방송 녹화와 관련된 부수적인 일들을 맡아서 처리해야 했고 야근과 밤샘은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있었다.
    친구는 직장에 다녀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 다니지는 않아서 큰 빚은 없었다.
    담배 연기와 기름내가 거실을 채우고 있어서 베란다 문을 반쯤 열었다. 먼지내가 녹아든 밤공기가 밀려들었고 쇄석들이 쌓인 곳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 울음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친구는 조만간 일을 관둘 것이고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도시락을 들고 강으로 소풍을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햇볕이 내리는 둔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맥주와 김밥을 먹으며 물 위에 떠다니는 배들과, 도로를 지나는 자전거와, 얼굴이 예쁜 여자를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저염식 치킨은 바닥났다. 나는 라면을 찾으려고 찬장을 더듬다가 전화를 받았다. 애인, 정확히 말하면 전 애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와인이나 맥주 정도만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취해서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다음날이면 자신에게 수치와 짜증을 느낄 정도의 취기였다. 나는 그녀의 음성을 말없이 들었다.
    2.5톤의 덤프차가 그녀가 몰던 소형차를 측면에서 들이받았다. 새벽에 폭우가 내려서 도로는 빗길로 변했고 차들이 듬성했던 토요일 출근길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토요일은 휴일이었으나 그녀에게는 쉬는 날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고가 난 지 삼십 분 만에 소방구조대의 도움을 받아서 병원에 입원했고 전치 사주의 진단을 받았다. 두 발목에 깁스를 해서 목발 없이는 거동을 할 수가 없었고 오른팔에도 타박상을 입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쐐기를 박는 듯한 통증이 생겼다. 어렵사리 퇴원한 뒤에도 밤이면 그날 사건이 떠올랐고, 회사에 출근하면 동료들은 여전히 환자다운 예후를 보이고, 주어진 업무를 다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예전만큼의 친밀감과 유대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의 위로를 바라는 듯했다. 그 누군가가 좋은 놈이건 나쁜 놈이건.
    나는 그날의 빗길을, 덤프차 운전자를, 그녀의 동료들을, 회사를, 그보다 더 높은 영역과 차원에 있는 것들을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난을 하려는 욕구는 엷어졌고 특정한 종(種)에 대한 연민만 느껴졌다. 그녀는 아마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와 통증을 참으면서, 차가 뒤집혀서 혼절했던 순간을 상기하면서, 얼마 전 사고를 당했던 도로를 따라서 출근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전하는 위로가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는 병나발을 불다가 신음소리를 뱉더니 바닥에 엎드렸다. 아마도 허리 통증이 심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오른발로 친구의 허리를 밟았고 나중에는 등덜미까지 발바닥으로 눌렀다. 저체중이어서 살집은 적은데 뼈의 촉감은 생생해서 천 밑에 깔려 있는 나뭇조각들을 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바닥에 놓여 있는 파일을 주워서 사진들을 보았다. 나는 조만간 그곳으로 가서 살 것이라고 했다. 현무암이 지반인 화산섬, 붉은색 섬유를 뭉쳐서 만든 듯한 포후투카와, 비치를 휩쓰는 바닷바람, 통일감이 희미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방풍림, 둑길에 설치한 화덕과 가로등, 복층으로 지은 회백색 가옥들,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
    나는 말했으나 친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발바닥 압력으로 통증이 조금이나마 엷어지고 있다는 데 안도할 뿐이었다.

 

    외출은 이틀 동안 두 번만 했다. 한 번은 택배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고, 한 번은 생필품을 사려고 편의점으로 갔다. 전 애인은 그날 이후로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 역시 연락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사진들을 보거나, 남아 있던 소나무 담배를 피우거나, 아령을 들고 팔 운동을 하다가 땅거미가 지면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천장 벽지는 아직은 찢어지지 않았고, 가까스로 물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집에서 머문 지 사흘째인 날에는 네 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벽지가 찢어져 있어서 바닥은 축축했고, 여자와 자는 꿈을 꾸어서 속옷도 축축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고 사정을 하고 난 뒤에도 욕구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 주소록을 뒤져서 엔조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했다. 엔조이는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는데 오늘은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이 쓰러져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고 오늘 저녁까지 그곳에 남아서 간호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삼촌과 대식당이라는 곳에서 만났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한 명의 발소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내는 소리였다. 손끝과 발끝이 떨렸고 목뒤로 얼음으로 만든 송곳이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복도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았다. 세 명의 남자들은 방호복 차림에 입에는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고참으로 보이는 키 큰 남자가 마스터키를 사용해서 이웃집 대문을 열었다. 사람과 짐승의 살이 썩고 세포가 분해되어서 나오는 냄새가 문밖으로 빠져나와서 복도에 고였던 냉기와 합쳐졌다. 귀기(鬼氣)와 이어진 냄새였다. 세 사람 중에서 막내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장갑 낀 손을 내저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고, 옷소매와 장갑 사이로 드러난 손목이 유난히 희었다.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시취가 몸의 신경을 자극했고 두 개의 사체에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현관문 앞에서 추도식을 했다. 일회용 알루미늄 그릇 두 개에 북어포와 담배가 놓였고 종이컵에는 소주가 채워졌다. 남자들은 두 손을 배에 모으고 담배가 꽁초로 사그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삼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며칠간 보일러를 틀어 놓아서 실내는 사우나로 변해 있었고 시취는 열기와 뒤섞이면서 농도가 짙어졌다. 방호복 남자들은 실내에 있던 물건들을 복도로 옮겼다. 이불과 러그와 요, 다탁과 행어와 난로와 주전자와 민트색 찻잔에는 흰머리 몸에서 나온 분비물이 굳어서 보랏빛에 가까운 막을 이루고 있었다. 행어에 걸어 놓았던 경비복 상의와 점퍼와 바지에는 살이 찐 구더기들 수십여 마리가 붙어서 오물거렸다.
    나는 복도 창문을 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날씨는 화창했다. 봄옷을 입고 도시락을 챙겨서 둔치로 소풍을 가기에 좋은 날씨였다.
    키 큰 남자가 복도로 꺼내온 다탁에는 두 장의 봉투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두꺼웠고, 다른 하나는 얇았다. 막내로 보이는 남자가 세정제를 물에 풀려다가 두꺼운 봉투를 집었다.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 겉면에는 내 이름이 쓰여 있었고 안에는 랩으로 포장한 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잡종을 돌려받으려고 내 집으로 찾아온 흰머리를 생각했다. 그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다른 봉투는 방호복 남자들의 몫이었다.

 

    엔조이는 회전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포근한 편이었으나 추위를 타는 체질이어서 오리털 패딩과 기모로 짠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엔조이는 인사를 하고 패딩 옆구리에 붙였던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신체접촉을 삼가라는 뜻으로 풀이가 되었다. 그녀의 태도는 우리가 구두로 맺은 계약의 조건들에 어긋나지 않아서 나는 이의나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외벽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고 지붕 테두리에 붉은색 네온을 두른 가게였다. 그녀는 외양이 깔끔하고 품위가 느껴지는 공간을 좋아했으나 내가 그동안 들렀던 가게는 대체로 오래된 곳이었다. 의자와 탁자는 비좁고 벽에서는 냄새가 나며 주인은 친절하지 않고 중년 남녀들이 모여서 목소리 높여서 떠드는 곳. 나는 엔조이와 전 애인을 그러한 곳으로 데리고 갈 때가 많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남는 자리가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번호표를 받고 출입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대기 시간은 예상보다 길었고 주위에는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떠들고 있었다. 엔조이는 핸드백을 열어서 박하 맛 레몬 맛 사과 맛 사탕들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입속에 사탕을 머금고 레스토랑 둘레를 뛰어다녔다. 엔조이는 언젠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육아의 고됨과 기쁨을 귀중한 가치로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종(種)의 보존과 번식을 신성한 일로 여겼으나 그러한 신성을 이 나라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직원이 내가 쥔 번호표에 쓰인 숫자를 불렀다. 십삼이었다.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와서 푸른색 갓등이 설치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서 직원이 추천하는 커플 세트를 시켰다. 몇 분이 지나서 라즈베리 소스와 초코 소스, 적갈색 호밀빵이 나왔다. 엔조이는 아침과 점심을 거른 탓인지 도마에 놓인 빵을 집어서 자르지 않고 먹었다. 나는 사장의 몸 상태를 물어보려다가, 생각을 접었다.
    탁자 위에 새우튀김과 파스타, 맥주와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엔조이는 스웨터 소매를 걷고 나이프로 고기를 세로로 썰었다. 누군가의 마디가 얇은 손가락과 실핏줄 드러난 손목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열을 올리면서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는 속도가 느릿해졌다. 나는 맥주만 마시고 있었기에 그녀가 아무리 먹어도 음식의 양은 넉넉했다. 그녀의 입에서 밭은기침 소리가 나왔고, 식사가 끝났다.
    엔조이는 하루를 쉬려고 월차를 냈으나 삼촌이 입원하는 바람에 휴식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녀의 삼촌은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서 살았고 최근에는 중증 고혈압과 조울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 몸에는 몇 개의 플라스틱 관을 주입한 삼촌과, 병실에 녹아든 누군가의 몸에 마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독약 냄새를 말했다. 그곳에서 접했던 사람과 냄새가 그녀의 입맛을 떨어뜨린 듯했다.
    우리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녀의 입술에 칠해진 립스틱이 냅킨에 묻자 다리로 흥분이 전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뉴질랜드를 아느냐고 물었다. 엔조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해안가와 화산섬, 바람막이숲과 포후투카와, 키위와 풀밭과 펜션과 소관목을 얘기해 주었다. 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 사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노동을 적게 하면서도,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는, 내가 아는 사실을 넘어서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근거가 희박한 거짓일지도 몰랐다.
    엔조이는 검지로 그릇을 두드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명목상으로는 애인이나 이제는 나보다도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회사원 남자. 나는 사실에 상상을 덧칠하려는 시도를 접고 테이블 왼쪽에 놓인 계산서를 보았다. 메뉴에 나왔던 가격보다 십 퍼센트의 부가세를 더한 금액이 종이에 인쇄되어 있었다. 직원이 곁으로 다가와서 음식이 맛있었는지, 위생에 문제가 있었는지, 다른 직원들의 태도에 소홀함이나 무례함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가격만 빼면 다 좋은데, 이 좋음은 역시나 이만 한 돈을 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입속에 고였던 말들을 목울대 아래로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진심을 온전히 말하는 것보다 약간의 거짓말을 해야 그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직원도 입술을 당겨서 웃고 다른 자리로 가서 좀 전과 똑같은 질문들을 했다. 그곳에 있던 손님들은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부부였다. 그들은 음식의 질과 대기해야 하는 시간, 직원의 친절도와 공기의 건조함 같은 것들을 탓했다. 그들의 말에는 진심이 배어 있어서 직원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야 했다.
    엔조이는 전화를 끊고 일어났다. 나는 카운터에 가서 봉투에 든 돈으로 계산했다. 평소의 보름치 점심값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엔조이는 덕분에 즐거운 식사를 했다며 앞니와 덧니가 보이도록 웃음을 지었다. 오늘 처음으로 내게 보이는 미소였다. 나도 미소를 보이고, 화장실로 가서 맥주를 한 움큼 토했다.

 

    침대는 넓었고 벽에는 두 개의 가운이 가로걸려 있었다.
    욕실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깍지를 끼어서 배에 올려놓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중앙은 오목했고 네모난 백열등 주위로 물결무늬 야광이 빛났다. 며칠간 폭우가 내려도 천장의 벽지는 젖지 않을 듯했다. 모노륨 바닥에는 잎맥이 선명한 나뭇결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흠이 없어서 매끈했다. 누군가와 잠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하루나 이틀을 지내기에는 나로서는 어려운 방이었다.
    엔조이가 흰빛 수건을 가슴에 두르고 욕실에서 나오자 라벤더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웠고, 나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비누칠한 몸을 이태리타월로 문지르자 악취를 간직한 다량의 입자들이 살 속으로, 뼛속으로, 뇌 속으로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비눗기를 닦고 하체에 수건을 두른 뒤 욕실 문을 열었다. 엔조이가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티브이에서 나오는 소리와 색채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고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월차는 오늘까지였고, 우리는 자정 즈음 방에서 나가야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엔조이는 일일드라마가 끝나자 티브이의 음량만 줄이고 내 곁으로 왔다. 전등불이 꺼지자 티브이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우리 곁에서 출렁였다. 그녀는 애무를 하다가 전에도 그랬듯이 자지가 발기되지 않자 손길을 늦추었다. 오늘은 살에서 땀 냄새가 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녀가 땀 냄새 이외의 냄새도 맡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방호복 남자들이 가고 난 뒤에도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앞으로 세 시간이 지나면 자정이었다. 우리는 섹스를 관두고 잠자기로 했고, 나는 그녀에게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엔조이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으나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고,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올 것이며 잠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에게 안도감이 찾아오기를, 방에서 나간 뒤에도 서로의 삶에 어려움만큼은 생기지 않기를, 지금 이 나라에서 잠자는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닌 사람들이 오늘밤 악몽만은 꾸지 말기를.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가나안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오른쪽 가슴이 밍근해지면서 한쪽 눈꺼풀이 감겼다. 엔조이는 입을 벌린 채 코골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엔조이가 깨지 않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입술만 움직이며 머릿속에 있던 내용을 되짚었다.
    뉴질랜드(New Zealand)는 두 개의 섬,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뉴질랜드 국민의 칠할은 도시들이 있는 북섬에서 살았고 나머지 삼할은…….

 

    3

 

    남녀는 잠들어 있었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 티브이에서 저녁 뉴스가 나왔다.
    영상의 화질은 전체적으로 흐렸고 누군가가 운전하고 있는 차 안의 풍경이 나타나 있었다. 카메라는 는개가 내리고 있는 바닷가 도시를 비추다가 소로에 접어들면서 조수석을 향했고 거기에 있는 물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소총 다섯 자루, 권총 한 자루, 총기 면허증, 헬멧 두 개, 성경책, 종이 뭉치.
    운전자가 손을 뻗어서 조수석 가장자리에 있는 종이 뭉치를 쥐었다. 운전자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코가 큼직하고 하관이 뾰족하며 눈매가 예리한 호전적인 인상의 백인 남자였다. 그는 전투복 차림으로 운전을 하면서도 종이 앞부분에 쓰여 있는 문장을 읽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그가 말하는 내용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으나 화면 하단에 떠오른 자막은 이러했다.
    ― 백인들의 땅과 문화를 지키고 유색인종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 우리의 신을 위해서 저들을 추방해야 한다.
    차가 멈추었다. 차 오른쪽에는 알밤 모양의 베이지색 지붕이 인상적인 사원이 있었다. 사원 너머에는 해안이 있었는데 방추형 모양으로 생긴 바람막이숲과 회황색 모래가 바람에 쓸려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백인은 헬멧을 쓴 채 두 자루의 소총과 한 자루의 권총을 챙기고 차에서 내렸다. 총구는 비에 젖은 노면을 향하고 있었고 철제 울타리 안에는 두 대의 차들이 있었으나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피케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잠시간 화면 한쪽에 작게 보였는데 그들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백인 남자가 사원의 갈색 출입문에 이르자 총구가 위로 쳐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사원 안에는 히잡을 쓴 여자들과 얼굴이 황갈색에 가까운 남자들이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총구에서 연속적으로 불이 뿜어져 나오면서 사람들은 놀라서 우왕좌왕했고 곧이어 화면이 까매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면이 환해지자 화질이 전보다 나아지면서 얼굴을 싸쥐고 있는 히잡 쓴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외상을 입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으나 옷에는 피가 튀어서 새붉었고 얼이 빠진 듯했다. 사원 안에는 수사 진행 중임을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이어져 있었고 바깥에는 구급차들이 대기 중이었다. 연녹색 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은 상처 입은 환자들을 들것에 실어서 날랐다. 누군가의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누군가는 팔목 살갗이 찢어져 있었으며, 누군가는 피가 낭자한 복부를 붙잡고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남자가 구급차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콧수염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며 천 바깥으로 드러난 발등이 검었다.
    경찰들이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 어느 남자의 양팔을 붙든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자의 무장은 해제된 상태였고 얼굴은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수십 개의 네모난 조각들로 분절된 얼굴이 경찰차 안으로 들어갔고, 하단에 자막이 나타났다. 그가 죽인 사람은 이십 명이었고 사망자 연령은 두 살 아이부터 팔십대 노인까지 다양했으며 부상자 숫자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국적은 대부분 아시아권에 있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여성 총리가 단상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비껴 있었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연설의 요점은 이번에도 자막으로 전달되었다.
    ― 총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십여 분 전에 범인으로부터 테러 선언문을 받았다는 것.
    ― 현재 자국의 총기법은 적잖은 사람들이 제약 없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는 것.
    ― 테러 재발 방지책으로 소총의 판매를 금지할 것이며 총기 관련 잡지들의 발간을 앞으로 불허한다는 것.
    ― 총리 본인은 이번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는 것.
    뉴질랜드(New Zealand)에서 발생한 참사였다.

 

 

 

 

 

 

 

 

 

 

조영한
작가소개 / 조영한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서 작품 활동 시작

 

   《문장웹진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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