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의 집

[단편소설]

 

 

메리의 집

 

 

박지음

 

 

 

    내 안에는 불 켜진 방이 있다. 그 방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평생 꿈꾸며 찾던 공간. 메리의 집을 찾아가려고 모인 오늘, 나는 그녀들에게 묻고 싶었다.

 

    – 쓸데없이. 또 나가서 싸돌아다닐 생각이냐?
    양말을 신는 내게 엄마가 소리 질렀다. 나는 거실에 있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입은 붉은 조끼가 어딘가 익숙했다.
    – 엄마 어디 가?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내 방문을 닫았다. 문밖에서 중얼거리는 엄마의 말이 들렸다.
    –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나이만 먹어서. 옛날 같으면 애들 대학교까지 보낼 나이야. 좀 얌전하게 집에 있을 일이지…
    나는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명치가 꽉 막혔다. 가슴을 두드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내려가라. 내려가라. 제발, 내려가. 현기증이 나며 눈앞이 흐려졌다. 식은땀에 겨드랑이가 끈적거렸다. 다시 샤워해야 할지 모른다. 내려가. 제발 내려가.
    전세가 오르고 직장에서 잘리지 않았다면 엄마의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십 년 넘게 일해서 얻은 내 아파트는 가격이 세 배로 뛰더니 전세도 두 배로 올랐다. 원래 전세대출을 끼고 있던 터였다. 직장에서 잘리고 나자 방법이 없었다. 전세가 내려가지 않는 한, 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은 경기도 외곽에나 가능했다. 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사들였던 소품으로 꾸민 내 공간을 정리했다. 엄마의 집으로 들어갈 때 내가 들여놓을 수 있는 짐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소품 대부분을 온라인 중고 마켓에 팔았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엄마가 나가자 갑자기 숨이 쉬어졌다. 조여졌던 명치가 풀려 덩어리가 내려갔고 뇌에 산소가 돌면서 눈앞이 맑아졌다. 나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 그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떠올렸다. 그러자 자기를 키워 준 공간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땅에 자기 공간을 만든 여자 생각이 났다. 메리 린리 테일러.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
    엄마가 들으면 놀고 자빠졌다고 비아냥거릴 테지만. 왜냐하면, 나는 어디서 살고 싶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까. 어디든 받아 주기만 하면 일할 직장이 절실했고, 엄마의 집 외에 나를 재워 줄 공간도 없으니까 내게 너무 멀고 철학적인 질문인 줄 알면서도 묻고 싶었다. 질문과 답은 돈이 들지 않으니까.
    남들 살 집만 짓다가 지 살 집은 사 놓지도 못한 것이.
    엄마는 TV에서 집에 대한 프로만 나오면 투덜거리곤 했다.
    엄마의 집에 들어와서 한동안 방에만 있었다. 가시방석이었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았고 먹어도 체했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이 문밖 소파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였다. 어디든 나갈 곳을 찾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방에 누워서 넷플릭스 채널을 돌려보는 내게 잔소리를 하던 엄마는 어느 날부턴가 출근하듯 나갔다. 엄마는 아빠의 연금을 받으며 생활했기에 일하지 않아도 노후가 보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 교회에서 집사들과 봉사활동과 전도를 하고 다녔던 것으로 안다. 나는 엄마의 삶을 부러워도 했지만,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목표도 있었다. 집에서 아이를 기르고 살림을 사는 삶이 꿈인 여자도 있겠지만,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생을 살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먼저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약속을 잡았는데, 엄마가 먼저 나가버리니 허무했다. 집에 있으면 집에 있다고 잔소리하고, 나가면 나간다고 얌전히 집에 있으라고 잔소리를 해대니, 내가 아빠여도 일찍 죽었지, 악담을 퍼붓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걸어 다닐 종로의 길과 그녀들을 떠올리자 밝은 빛이 드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졌다.

 

    남도분식이 있는 북촌에서 사직터널 위를 건너 행촌동까지는 도보로 40분이 걸린다. 나는 남도분식에서 점심을 먹고 종로의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그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공간이 지붕을 얹고 그 자리에 있는지,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네가 살고 싶은 공간을 상상하기 어려우면 이 중에서 고르라고 말해 주고도 싶었다. 나는 도시를 해설하고 건물과 길의 유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공간을 사랑했기에, 이 도시 전체가 내겐 공간이었고, 이 도시를 유럽의 거리만큼 사랑했다. 남도분식에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설계도가 벽에 걸려 있다. 나는 그녀들에게 그 설계도를 보여주며 바우하우스가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과 내가 왜 공간을 사랑하는지 말해 줄 계획이었다.
    북촌과 서촌과 사직터널을 건너 사직공원을 둘러보고 행촌동 꼭대기에서 한양의 성벽을 걸어 볼 수 있다니. 행운의 날이었다. 그러나 지하철역에서 남도분식까지 가는 길에 내가 본 것은 지방에서 몰려온 관광버스들이었다.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면 또 다른 관광버스가 와서 섰다. 관광버스들이 벽을 이루듯 거리를 막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서도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침부터 저랬어. 내가 일찍 와서 카페에 앉아 있었거든.
    남도분식에 들어서자마자 S가 말했다.
    – 괜찮아, 우리는 저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걸어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자신하자 T가 대꾸했다.
    – 백만이라고 했어. 오늘 모이는 예상 인원이 말이야. 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해서, 우리가 밥 먹고 나가는 시간에는 한창일 텐데. 괜찮겠지?
    나는 T와 S와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남도분식의 인기 메뉴인 짜장떡볶이를 시켰다. 순대와 튀김과 어묵, 납작 당면이 들어간 빨간 떡볶이까지 추가했다. 나는 남도분식 내부를 둘러봤다. 콘셉트가 레트로인 분식집으로 북촌과 익선동이 뜨면서 인스타에서 핫해진 분식집이었다. 레트로의 특징을 살려 옛날식 철판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옛날 거울, 쟁반도 둥근 철판에 큰 꽃이 그려진 80년대풍이었다. 냄비도 낡고 그릇까지 구식 공기와 국그릇이었다.
    – 김 씨 투어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실 곳은 딜쿠샤라고, 메리 린리 테일러가 살던 집입니다. 『호박 목걸이』 책 다들 읽어 오셨죠?
    내가 가이드 투로 유쾌하게 말하자 S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가이드님 책을 읽다가 말았어요. 딜쿠샤 미리 설명해 주고 출발하세요.
    T가 말을 받았다.
    –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서 숙제도 내줬잖아. 우리 초딩 된 기분이야.
    S와 T가 킥킥거렸다. 떡볶이가 나왔다. 나는 아침을 거른 터라 허겁지겁 먹으면서 두 여자가 좋아할 만한 액세서리 가게와 옷 가게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체크했다. 두 사람은 종로 투어를 위해 운동화를 신고 왔고, 책을 읽고 표시를 해왔다. 우리 북클럽의 이번 책은 메리가 남편과 함께 살던 ‘딜쿠샤’에 관한 에세이였다. 딜쿠샤는 인도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었다. 사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집터는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의 집터로 신성시되던 곳이었다. 은행나무가 한 번 벼락에 맞아 집이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어졌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할 말을 미리 정리하며 떡볶이를 먹었다. 마흔의 우리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음식 맛을 봤다. 핫한 카페를 검색해 미리 위치를 알아 뒀다가 모였다. 인스타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예쁜 카페 인증샷으로 채웠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십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T는 주말에 카톡을 보낸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는 신입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장이었고, S는 미니멀리즘과 킨포크적(Kinfolk) 삶을 선택해 베지테리언이 되었다. S는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기 위해 화장도 염색도 하지 않았다. T는 90년생과 소통하기 위해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트래바리와 원 데이 클래스, 소규모 모임으로 커뮤니티를 확장해 갔다. T의 모임 중 하나가 우리 모임이었다. 독서 모임인데 책보다는 핫한 장소를 찾아다니거나 수다를 떨었다. 북클럽의 방향을 잃어 갔지만, 그 잃어 가는 방향에 매력을 느껴 나는 이 모임에 남게 되었다.
    남도분식에 걸려 있는 바우하우스의 설계도는 복사본이라도 희귀한 것이었는데 T도 S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좀 심드렁해져서 떡볶이를 씹어 먹고 일어섰다. T와 S는 무조건 나를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바우하우스 인테리어 소품을 전시해 놓은 집을 첫 번째 장소로 선택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내가 최고의 공간 창작자였다면 들어가고 싶었던 건축학교였다. 건축의 모던함을 전 세계에 유행시킨 바우하우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바우하우스 백 주년 기념으로 개인이 자신의 집에 전시회를 한 것이었다. 바우하우스를 모방한 사람이니 집도 모던함을 추구한 건축 방식이었다.
    – 나는 이 집에서 살래.
    T가 말했다.
    – 너가 숙제 내줬잖아. 업무도 많아 죽겠는데.
    내가 어이없어하며 대꾸했다.
    – 좀 구체적으로 네 속에 그리고 있는 집이 없는 거야? 이건 대답이 너무 쉽잖아.
    T가 웃으며 말했다.
    – 이게 좋은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렇게 단독으로 일층, 이층, 삼층, 고급지게 지어진 집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아파트 지겨워. 여기다 내 서재를 만들 거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도어록을 설치하고, 내 책을 쌓아 놓고, 메모지를 잔뜩 붙여 놓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T는 이 집의 주인이 어렵게 공수해 왔을 바우하우스 소품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집을 원했다. 나는 그 집을 나와 거리에 섰다. 인파의 함성과 발소리가 들렸다. 좋은데. S가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자개 모양 귀고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 저기 카페로 들어가자. 미니멀리즘하지는 않지만 핫하대. 조명이 특이해.
    나는 길 끝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두 여자가 나를 따라오면서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수제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늘어놓고 장사하는 집이었다. 두 여자는 길을 똑바로 걷지 않고, 한 집씩 들여다보며 걸었다. 나는 먼저 걸어가 손바닥을 치면서, 여기로 오세요. 김 씨 투어 벌써 시작됐습니다, 하고 흥을 돋웠다. 그때 우리가 건너가야 하는 건널목 앞에 집회자들 무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 어서 와. 저 사람들하고 부딪치면 안 되잖아.
    내가 소리 지르자 T와 S가 뛰어왔다. 우리는 군중을 피해 사잇길로 들어갔다. 군중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그들 사이에 휩쓸려 들어가면 비집고 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익숙해서 나는 군중을 훑어봤다. 붉은 조끼를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든 중년의 여자.
    엄마였다.
    나는 몸이 얼어붙어 엄마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만 겨우 숙였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지나가고 있었다. 나를 봤을까. T가 내 손을 잡더니 카페로 데리고 들어갔다.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는 상황을 그리자 머릿속의 산소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 내가 가지고 싶은 집은 이런 복잡한 곳이나, 이 카페처럼 화려한 곳이 아니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S가 입을 열었다.
    – 좀 조용한 동네에, 한옥 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 나는 카페가 가까운 것도 마트가 가까운 것도 상관없고 출퇴근을 위해 버스정류장만 가까우면 돼. 집 안의 가구도 복잡하지 않게 최소한으로 갖추어져 있으면 되고.
    S는 눈부신지 인상을 찡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층고가 높은 이 카페에는 베르사유 궁전에나 어울릴 법한 샹들리에가 다섯 개나 설치돼 있었다. 샹들리에마다 색다른 불빛이 쏟아졌다. 벽은 숲을 연상시키는 나무들이 유화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소품들과 테이블은 북유럽 스타일이었다. 카페 밖으로 길이 보였다. 길 건너에 여전히 대규모 인파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 눈에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카페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선두에 서서 나를 보며 외치는 환상이 그려졌다. 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 메리의 집이 있는 사직공원 뒤로 가고 싶었다. 이 카페는 속을 뒤집어 놓고 그만둔 신입에게 화가 난 T가 기분을 풀고 싶어서 찾아낸 핫플레이스였다. 테이블마다 커플들이 앉아 인증샷을 찍었다. 나는 T와 S의 정반대 취향을 머릿속에 그렸다.
    – 너는 정말 아까 그 집이 살고 싶은 공간이야? 내가 일부러 두 달 전에 숙제를 내줬는데, 너무 보람 없잖아.
    내가 묻자 T가 대답했다.
    – 진짜 가족들 없이 혼자 있어 보고 싶어.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방 하나만 차지하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엄마는 수시로 문 열고 들어오고.
    T는 독립해 살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엄마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메리의 책을 꺼냈다. 본격적으로 책과 공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메리의 집에 갈 생각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T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내가 꿈꾸던 공간 인테리어는 직장에서 잘리면서 끝이 났다. 지금 내가 가진 공간은 육천 원짜리 커피가 놓인 핫한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가 다였다.
    – 메리는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평범한 여자의 삶을 거부했어. 메리는 연극배우가 된 다음, 동양의 나라들을 순례하다가 일본에서 남편을 만나 청혼을 받고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어떻게 첫눈에 반해서 청혼한다고 받아들이고, 이 조선 땅까지 와서 살았는지 대단해. 딜쿠샤 가기 전에 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가자.
    카페 밖에서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전 대통령의 석방과 현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귀에는 다 엄마 목소리로 들렸다. 잘…… 하고 다니는 짓이다. 엄마의 비아냥이 귀를 파고들던 오늘 아침이 그려졌다. 나는 입이 말라서 커피를 들이켰다. 얼음을 꺼내 씹으며 이가 시리다는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내 말은 잠시 끊어졌다.
    – 나는 메리가 신부학교를 거부하고 연극배우를 하겠다고 모험을 떠나 세상의 반대쪽까지 온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여자로서 딱 정해진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 거지.
    S가 카페 밖의 소리에 질세라 외쳤다.
    –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본 거지. 한국에 와서도 가만있지 않고 남편을 따라 금강산까지 가서 광산 사업을 함께했어. 개인적으로는 소련 치하의 시베리아를 횡단한 게 제일 부러워. 결혼하고, 딜쿠샤를 짓고, 집 안의 가구처럼 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았잖아.
    나는 메리의 공간에 발을 들인 것처럼 말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금을 찾아 동양까지 온 남자를 만나 조선에 온 메리. 메리 테일러는 권율 장군의 집터에 있는 사백 년 된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짓고 한양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내 집이야. 내가 꿈꾸던 집.
    – 고종의 장례식을 참관하고 3·1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메리의 글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을까. 그냥 우리나라에 금광 캐러 왔던 서양인 부부에 지나지 않았을 거야. 그 집도 기증돼 기념관 역할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저러나 3.1 독립운동 할 때나, 1987년 독재 타도 데모할 때나, 종로에 인파가 모였잖아. 이 거리는 지금과 다른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을 텐데.
    S가 책을 뒤적이며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 적이 하나였을 때가 나았으려나?
    T가 중얼거렸다. 카페 밖에서 또다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잔소리하던 목소리를 닮았다는 착각이 들었다. 엄마가 언제 저렇게 적극적인 보수 성향이 되었을까, 나는 곰곰이 되짚어 봤다. 엄마의 집에 들어가 살기 전에는 엄마를 자주 찾지 않았다. 엄마가 혼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매일매일을 사는지 관심이 없었다. 명절에나 찾아가 엄마를 보면 밥을 차려 주고 시집가라는 말을 했다. 또 무슨 말을 했던가. 나는 시린 이를 참으며 얼음을 씹었다. 나 때는 말이야. 엄마는 종종 말하곤 했다.

 

    –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 대통령 몰아내고 세상을 뒤집더니 지금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된 거여. 너 하는 거 봐라. 내 말이 틀렸는가. 아빠가 경찰 하던 때만 해도 나라가 조용히 잘 돌아갔어야.
    전 대통령이 재판받는 뉴스를 보면서 엄마는 투덜거렸다. 그때 나는 집에 다니러 갔었는데, 엄마는 내가 촛불 집회를 하러 다녔던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국그릇에 있는 미역을 훌훌 마셨다.
    – 아빠가 그 시절에 데모하는 학생들 잡아다가 한 짓은 자랑할 것이 못 돼. 부끄러운 일이야. 아빠가 나이 드셔서도 본인이 했던 일 잘했다고 큰소리칠 때가 제일 싫었어.
    엄마가 벌떡 화를 냈다. 아빠는 엄마한테 평생 소리 지르고 무뚝뚝했는데,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새로운 신이 만들어진 것처럼 아빠가 했던 모든 일을 칭송했다.
    – 그 덕에 네가 남들만큼 먹고산 거야. 나라에서 시키니까 그랬지 네 아빠는 잘못한 거 없어야. 데모하는 빨갱이만 잡아다가 가뒀다고 그랬어야.
    엄마가 냉수를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 빨갱이? 그런 말 좀 안 할 수 없어? 그럼 나도 빨갱이야?
    엄마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 미친년이 오랜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나는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했다기보다 가슴이 답답해서 말했다.
    – 세월호 유가족들한테 보상금 지급할 때 아빠가 국가세금 낭비라고 했을 때, 진짜 싫었어.
    나는 입맛이 떨어져서 숟가락을 놓았다.
    – 젊은것들은 좋겠어. 늙은이들이 주는 돈으로 먹고 공부하고, 뒤로 가서 이것 잘했다 잘못했다 지적질이나 하고. 더 살아 봐라. 뭐가 좋은지 다 알게 될 테니까.
    엄마는 내가 먹던 밥상을 치운다며 밥그릇과 숟가락을 설거지통에 소리 나게 던졌다. 잠시 후 그릇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했다. 나는 엄마를 눈으로 찾았다. 엄마는 설거지통 앞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성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튜브 채널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남자는 종북좌파와 빨갱이 어쩌고 하는 말을 거의 3분마다 외치고 있었다. 조목조목 따지면서 하는 말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들렸다. 그는 흥분되고 격앙돼 있었다. 엄마는 30분 동안 말없이 그 채널을 구독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 들으라고 볼륨을 높여 놓은 듯했다. 내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 남자가 다 설명해 주는 것처럼. 나는 그날 엄마가 싸주는 반찬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빠가 살아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빠처럼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이 안 통하는 다른 아빠가 생긴 것처럼 답답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엄마가 적극적인 보수 성향의 사람이 되어서 거리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
    그런데 저렇게 모이는 것도 데모 아닌가.

 

    이 거리를 빨리 떠나야 했다. 나는 가이드 말투를 흉내 내며 길잡이를 시작했다. 행촌동까지 가는 길목에서 계속 집회자들과 마주쳤다. 나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속 길을 찾아냈다. 그러나 골목마다 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엄마가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숨이 막혀서 거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너 무슨 일 있어? T가 묻자 떡볶이가 체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S가 길옆 편의점에서 사이다를 사다 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나는 엄마를 피해 도망 다녔다.
    사직터널 위로 걷기 시작했을 때에야 나는 오늘의 목적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숨이 가빠져 두 여자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핸드폰의 맵을 보며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 시작했다. 책 속 사진만 봐서는 궁궐처럼 지어진 딜쿠샤가 웅장하게 서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주택이 즐비했고, 행촌동까지 올라가는 골목은 가파르고 좁았다. 나는 점점 메리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재취 자리긴 하다만 집사님 친구 아들이란다. 아파트도 있단다. 엄마가 했던 말이 가쁜 숨과 함께 들렸다. 엄마! 엄마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 집 전세금 뺀 거 다 줬잖아. 이 집에 내 자리는 없어? 엄마는 못마땅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벌어 놓은 돈도 없잖아. 나이만 먹었고. 더 나이 들어서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엄마가 사진을 눈앞에 내밀었다. 엄마 나 아직 일할 수 있어. 한창때라고. 나한테 조금만 쉴 수 있는 시간을 줘. 아니, 그냥 내가 결혼할 거라는 기대를 접어. 나는 혼자 살 거야. 이 집에서.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저거 아닌가? S가 휴대폰 맵을 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허허벌판에 은행나무를 품고 서 있을 줄 알았던 건물은 빼곡한 집 사이에 임시 가림막을 치고 앙상한 철근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백 년 된 은행나무는? 나는 두리번거렸다. 두 여자가 나를 원망할까 봐 내심 마음을 졸였다. 붉은 벽돌담 근처에 수령이 제법 돼 보이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공사안내판에는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은행나무는 저거 같은데. 나는 변명처럼 중얼거리며 땀을 닦았다.
    메리도 귀족 아가씨의 삶을 버리고 여배우의 삶을 선택했을 때, 엄마한테 미친년이라는 소리 좀 들었겠지. 나는 위로받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중얼거렸다.
    종로구 행촌동 성곽 꼭대기에 펼쳐진 너른 벌판. 거대한 은행나무. 영국의 건축물처럼 복층에 창이 많으며 목조로 지어진 주택. 종로를 내려다보며 살고 싶었던 메리. 귀부인으로 살아야 했던 영국 여자의 삶을 버리고, 동양의 이름 없는 나라에 와서야 꿈꾸는 공간을 가질 수 있었던 메리. 메리만의 공간. 자유로운 여자의 삶을, 모험이 넘치는 삶을 꿈꿨던 여자의 집. 원하는 것을 찾아왔지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도록 허탈했다. 내가 원하던 삶이 이 여자가 원하던 삶보다 어려웠을까. 2차 대전도 다른 나라의 내전도 겪지 않고 살았는데. 나는 종로를 내려다봤다. 개미처럼 몰려다니는 군중 사이에 섞여 있을 엄마의 말이 아프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일찍 결혼이라도 하지 그랬니. 좋아하는 일 한다고. 무슨 공간을 만든다고. 외국에서 허송세월 보내고. 세상천지를 돌아다니더니 고작.
    나는 손이 떨렸다. 집회자들의 확성기 속 구호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 그나저나 나 내일 출근하려면 죽겠다. 이 동네 올라오느라 힘들었어. 집에 가면 뻗겠어. 아, 나이는 못 속여.
    T가 제 몸을 두드리며 말했다.
    – 나는 재미있었어. 김 씨 투어. 종로를 이만큼 둘러본 적이 없어.
    S가 말했다. 나는 닫혀 있는 메리의 집이 문이 닫힌 내 앞날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는 곳은 SNS 속에 들어 있는 카페밖에 없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백만 인파를 통제할 수 없어서 지하철이 역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시내버스도 진입 금지였다. 종로 전체에 보수파 지지자의 함성이 울렸다. 우리는 광화문을 벗어나려고 각자의 휴대폰 속 택시 앱을 열었다. 배차되는 택시가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인파만이 보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를 뺏겼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누구한테? 치고 올라와 내 자리를 뺏은 후배에게? 아니면 헛짓거리 그만 하고 현실적으로 살라는 엄마에게? 이 집회자들에게? 무릎과 발바닥이 뻐근했다. 사십 분이면 가는 길을 집회자들을 피해 사잇길로 가느라 거의 세 시간이 걸려 다녀왔다. 메리의 집은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나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서 있었다.
    중년 여인 한 명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등산복을 즐겨 입고 머리를 짧게 파마해 놓은 엄마의 차림과 비슷했다.
    드디어 엄마를 만났구나.
    나는 뒷걸음치다가 멈춰 섰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명치가 막혔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자 현기증이 나면서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식은땀으로 겨드랑이가 젖고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엄마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 엄마는 적극적인 보수다. 왜? 엄마는 왜 그러시는데? T가 물으면 나는 대답하겠지. 원래 노인층은 다 보수잖아. 기득권자들은 그걸 지켜내야 하니까. 2~30대는 그걸 엎고 새로운 판을 만들려고 하고. 엄마는 아빠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성향을 키우셨고 교회분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까 그러신 듯해. 매일 유튜브로 그들의 말을 듣다 보니까 그게 옳다고 생각하신 거 아닐까. 갑자기 여러 명의 말이 한꺼번에 들리는 듯했다.
    그럼 우린 옳고 저기 서 있는 백만은 그른가.
    몇 년 전 저기 서 있던 우린 옳다고 생각했잖아.
    광장이 모든 것을 옳게 하진 않아. 광장에서 벌어진 그른 일도 많았어.
    나는 나라를 바꾸려고 광장에서 종일 서 있는데, 너는 카페나 찾아다니고, 박물관이나 찾아다니며 헛짓거리하고 있구나. 쓸데없는 일 좀 그만 하고 결혼도 하고 돈도 벌고 쓸모 있는 일을 하렴. 한심하다. 매일 집에서 소일거리 하며 보내는 노인네보다 못한 삶을 살다니.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지는 듯했다.

 

    – 저기 아가씨, 여기 가까운 화장실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오줌 마려워 죽겠네.
    눈앞까지 다가온 중년 여인이 물었다. 엄마가 아니었다. S가 지하철역 화장실을 가리켰다. 건물 화장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니 카페 화장실을 찾아보아도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의사한테 약을 바꿔 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니. 이마의 땀을 닦는데 그제야 눈앞이 또렷이 보였다.
    T가 몇 번의 시도 끝에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우리를 태우고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택시가 가려는 길마다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택시기사는 그때마다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씨발. 여길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좆같은 것들. 택시기사는 브레이크를 거칠게 밟고 클랙슨을 눌렀다. 집회자들이 되레 택시를 노려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들의 얼굴이 모두 엄마로 보였다.
    나는 주눅 들어서 등에 식은땀이 났다. 메리의 집이고 뭐고 오늘 광화문에 오는 게 아니었다. 이미 이 집회는 예고되어 있었다. 지방에서 동원할 사람들이 몇이며 버스는 몇 대인지. 돈을 받고 모일 노인들에 대한 소문은 인터넷에 떠돌았던가. 혹시 엄마가 일당을 받고 다닌 거였나? 엄마의 외출이 시작된 시점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나는 그때 넷플릭스 드라마를 돌려보며 밤을 새우고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간단한 면접 후 돈이 들어오면 또 집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진짜 출근했던 것일까. 오늘 아침을 되돌아보면 엄마는 나가기 전에 내가 먹을 아침을 차려 놓고, 잔소리를 한바탕한 다음,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핫한 카페를 가지 말았어야 할까. 아님 남도분식을? 아니야. 메리의 집에 가지 말았어야 해.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나는 고심하며 오늘 하루를 후회했다.
    〈우리가 남자였으면 저딴 식으로 했을까. 셋 다 여자니까 만만해서 저렇게 욕지거리하는 거지. 한판 할까?〉
    S의 톡이었다.
    〈여기 어딘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또 택시를 어떻게 불러. 조금만 참자.〉
    나는 톡에 답을 올렸다.
    〈우선, 이 개 같은 택시기사 더는 못 참아 주겠어. 내려서 신고하자.〉
    T가 톡을 닫고 택시기사에게 내려 달라고 소리 질렀다. 택시기사는 코웃음을 치더니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리가 내린 곳은 터널 앞이었다. 내내 헤매고 다니던 길이 사직터널 위였는데 사직터널 아래에 서 있었다. 나와 T와 S는 택시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밝히고 거침없이 터널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우리는 갈 길을 잃었고, 갈 곳도 잃었으며, 갈 방법도 잃었다. 나는 집회자들에게 쫓겨 다니고 택시기사의 욕지거리에 시달리던 하루를 떠올리며 주저앉았다. 내 옆에 T와 S도 나란히 앉았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S가 중얼거렸다. 나는 출근할 곳이 없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종일 피해 다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픽 웃음이 났다.

 

    – 오늘 나, 너 봤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는 양말을 벗어 탈탈 털더니 빨래바구니에 넣었다.
    – 어디서? 나 친구들 만나서 기념관 찾아갔었는데. 어디서 봤어?
    엄마는 식탁으로 가서 물을 한 컵 마셨다. 컵이 놓인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약병들이 보였다. 고혈압과 위장약. 관절약. 진통제. 비타민과 루테인 등등.
    – 카페에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더라.
    나는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보나마나 잔소리를 할 것이다. 나는 보수파 집회를 쫓아다니는 엄마의 성향을 따지고 들 것이다. 우린 또 쓸데없는 꿈을 좇는 나에 대해서 한바탕 설전을 벌이겠지. 백만 인파에 쫓겨 다닐 때처럼 숨이 막혔다.
    – 이쁘고 젊더라! 너랑 네 친구들. 다 좋아 보이더라.
    엄마는 흰 봉투를 내 앞에 놓았다. 엄마 이름이 적혀 있었다.
    – 밥 사 먹어라. 친구들 밥도 사주고.
    딜쿠샤가 벼락을 맞아 불에 타버렸을 때, 영국에 있던 메리의 엄마가 젊었을 때 입던 드레스를 보냈다는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집과 부모를 다 버리고 떠났던 메리는, 자기가 만들어 온 모든 게 불에 타 사라진 순간, 부모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메리의 엄마가 보냈던 게 과연 낡은 드레스뿐이었을까.
    나는 엄마와 내가 사용하는 엄마의 집을 둘러봤다. 퇴직한 아빠가 아프면서 집은 점점 줄어들었다. 엄마는 연금 받아 잘살겠지. 어깃장을 놓던 마음이 쓰라렸다. 이 집에 들어와 살면서 가끔 엄마가 없는 집이 얼마나 편할까 상상했다. 엄마가 없어야 내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때론 무서운 상상에 닿았다.
    – 아버지 병원비 대느라 집도 잡히고 해서, 연금 나와도 은행으로 다 들어가고 돈이 없다. 너 유학비 댄다고 젊어서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늙으면 뭘 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일도 없고 시간은 남아돌고.
    나는 엄마가 종일 걸어 다녔을 종로의 길들을 그려 봤다. 나를 보고도 다가오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도 들여다봐졌다. 차라리 고집불통에 고래고래 고함치는 짱짱한 노인이었으면, 그 공간을 엄마에게 뺏겼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원하는 공간을 갖지 못하고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단단한 기성세대를 뚫고 올라가지 못해서라고 하소연할 수 있었을 텐데. 나달나달한 봉투의 주름이 고단한 엄마의 하루 같아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엄마, 아빠가 다 옳지는 않았어. 알고 있지?
    엄마는 무슨 말인가 싶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는 초저녁잠에 쫓겨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소파에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넓은 벌판에 가지를 펼친 은행나무가 서 있었고 서양식 목조건물이 보였다. 아치형 창문이 1층과 2층에 두 개씩 있었고, 창마다 눈부시게 환한 불빛이 비쳤다. 절대로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오를 불이었다. 내가 평생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한 공간. 영원히 내 안에 있는, 집이었다. 대문이 열렸다.

 

    엄마가 문 안에 서 있었다.

 

 

 

※ 작품 속 북클럽 책은 메리 린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책과함께. 2014)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박지음
작가소개 / 박지음

우리의 이야기로 모두를 이해시키고 싶었다.
동인 〈아시아〉, 북클럽 〈스바시바〉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소설집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테마 소설집 『여행시절』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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