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소 일기 외 1편

[신작시]

 

 

나의 탄소 일기

 

 

김해선

 

 

 

위층 베란다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난다 유리를 깎는 소리 벽에 구멍을 뚫는 드릴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뿌리가 깨진 어금니를 뽑아내던 기계소리와 비슷하다 어금니 조각들을 핀셋으로 제거하자 구덩이가 생겼다 구덩이는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다물지도 않는다 텅 빈 구덩이에 혀끝이 닿을 때마다 깊은 협곡을 지나 국경을 넘을 때 마주쳤던 구덩이가 떠오른다 절벽 아래 팬 구덩이에서 아이 울음소리 염소와 닭 우는 소리가 났다 참새들이 사라진 지붕 위를 날아가고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드릴 소리에 빨려 들어간다 비누 거품을 묻히고 면도하는 소리도 가까이 온다 맨 끝에 있던 깨진 어금니처럼 베란다 건조대에 걸려 있는 빈 옷걸이가 흔들거린다 창문 너머 보이지 않는 투명한 뿌리를 달고 비행기가 날아간다 높은 산등성이를 지나 다른 나라로 들어갈 때 멈추지 않고 타던 냄새는 무엇이었을까 어디선가 거위 우는 소리가 들린다 봄부터 시큰거리고 피가 나던 자리에 약솜을 틀어막아도 핏물이 배어 나온다

 

 

 

 

 

 

 

 

 

 

두개골을 감싸고 있는 모태의 밤

 

 

 

 

몽롱한 지느러미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색깔도 없이 냄새도 없이 흔들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 막다른 골목 끝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이끼가 덮고 있다 검은 개미들이 줄지어 오른다 머리 위로 새들이 돌아다니는 소리 벌레소리가 난다 작은 날갯짓들이 창틀에 붙어 있다 흩어진다 보이지 않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웃음이 날린다 무엇을 더 나열해야 하는지 어떤 이력서를 써야 하는지 지루한 시간이 창틀에 쌓여 간다 매일 나를 배반해 가는 나의 일기처럼 차갑지 않고 무겁지 않다 몽롱한 지느러미를 찾아 흘러 다니는 뜨거움이 건너편 나무 아래로 옮겨질 때까지 미끄러지는 꿈이 돌아올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사라진 자전거를 타고 낄낄거리며 뼈와 뼈 사이에서 녹색 덩어리가 올라온다 지느러미도 오래된 배앓이도 아니다 깊은 잠 속에서 새로 태어난 세포 하나 흙길 위에 서성인다 고개를 들고 손을 내밀자 순간 솟구치고 발광한다

 

 

 

 

 

 

 

 

 

 

김해선
작가소개 / 김해선

2015년 《실천문학》 등단. 2021년 『중동 건설』 출간, 2021년 문학나눔 도서 선정.

 

   《문장웹진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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