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낳는 ‘집’

이 에세이는 [2016년 문학집필공간운영지원사업]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각 집필공간의 추천을 받아 해당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작가의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글을 낳는 ‘집’

 

 

최은숙

 

 

    메모를 보지 않고 외울 수 있는 주소가 두 개 있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 영대리 185번지, 그리고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 555번지. 앞의 주소에 있는 집은 이제 집이 아니다. 식구들이 도시로 떠난 뒤, 뒤따라 아궁이의 솥들도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장독의 항아리며 마당의 돌절구가 하나하나 사라지더니 마침내는 수수깡이 앙상하게 드러난 흙벽이 지붕을 떠안고 함께 무너지는 중이다. 언젠가는 살림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삿짐을 싼 식구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마음뿐, 아무도 폐가를 돌볼 여력이 없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 555번지는 내 생의 두 번째 집이다. 논과 개울이 있고, 계곡이 흐르는 산 아래 외딴집이다. 그곳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의 아랫목에 돌아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소리 때문일까. 종종걸음에 마당의 잔돌 밟히는 소리, 고양이 야단맞는 소리, 개들 불러들이는 소리, 부엌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냄새 때문일까. 구수한 국 냄새, 찌개 냄새, 밥 냄새를 꿈결같이 느끼면서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순간이 달고 아늑했다. 작가들이 ‘글집’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담양 창작촌, ‘글을 낳는 집’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이었다.
    ‘글을 낳는 집’은 이름 그대로 ‘집’이었다. 밥이 있고 고단한 팔다리를 고루 펴주는 잠이 있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식구들이 있고 어떤 분쟁도 손가락질도 집안까지 따라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른이 있는, 철없던 시절에 내가 생각한 집은 그런 곳이었다. 다시 일어나 바람 앞에 서기 위해 숨을 고르는 곳, 자신을 칭찬할 용기를 얻는 곳, 자신을 벌할 힘을 얻는 곳. 누군가 자기를 비루하게 느낄 때 집을 떠올린다면, 그의 집엔 어른다운 어른이 있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처럼 다사다난을 겪는 대개의 사람들에게 집이란 어깨에 얹힌 짐이며, 어찌할 수 없는 회한이며, 바깥보다 더 암울하고 치열한 전장 같은 곳일 때가 많지 않은가. 그러므로 내가 창작촌에 기대한 것은 오직 단절과 소외였다. 너절한 일상, 복잡한 인간관계, 온갖 대소사로부터 합법적으로 멀어진 거리, 모든 장소에서 소외된 시간.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거미줄같이 빛나는 ‘집’을 만난 것이다.
    아침에 밖에 나가자 구절초 꽃묶음을 들고 산책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딱 보니 시인이었다. 시인이 마당 끝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장르가 짐작되지 않는 그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청바지에 긴 외투를 걸치고 나타난 곱슬머리 멋쟁이는 프랑스에서 온 시인이었다. 누가 꺾어 버린 꽃을 데리고 들어오는 시인은 미소와 어휘가 깨끗한 선비였고 솔직담백한 화법을 가진 시나리오 작가에겐 허약한 문인 끼가 없었다. 프랑스 시인은 밭에 나와 쇠스랑을 들 때도 선글라스와 청바지를 장착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비 오는 강천산의 단풍 아래서 넋을 잃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 보면 가마골 계곡의 빨치산 사령부 앞에서 왁자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김삿갓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를 따라 김삿갓 방랑의 종점인 화순 동복으로, 그의 시비가 있는 물염정(勿染亭)으로 몰려다녔으며 비 오면 호박전 앞에 마주 앉고, 화창한 날엔 마당에서 같이 국수를 먹었다. 그렇게 놀고 웃고 유쾌하게 어울려 산 적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웃는다는 것이, 그렇게 가볍다는 것이, 그렇게 편안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으로 나는 밝고 경쾌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내 생이 가장 따스하고 즐거웠던 때를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바로 그때일 것이다.
    촌장이신 김규성 시인은 작가들에게 담양의 곳곳을 펼쳐주시느라 백 번도 더 갔다는 소쇄원에 백 한 번째, 백 두 번째, 걸음을 보태야 했다.
    “이 사람아, 글을 일삼아 쓴가, 술 한 잔 묵고 이따 밤에 쓰면 되지.”
    목소리도 크지 않고 말도 많지 않은 촌장님이 빙그레 웃으시면 유혹을 기다리던 작가들이 후다닥 따라나섰다. 촌장님 말씀대로 작가들의 방은 밤 이슥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늦은 밤, 밖에 나와 뻣뻣해진 목과 허리를 풀면서 작가들의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면 애틋한 마음이 들곤 했다. 안 쓰면 누가 잡아먹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안 써도 세상은 별 탈 없이 돌아갈 텐데, 돈을 벌고자 한다면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 글 쓰는 일일 테고, 터전을 위한 일이라면 어린나무 한 그루 사서 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세상이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구나. 그러니,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풀벌레와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 밤, 불빛이 환한 작가의 창은 참 쓸만한 풍경이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은 촌장님의 방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촌장님의 어마어마한 독서와 창작이 과연 술 한 잔 묵고 난 밤마다 진행되는 중이었다. 촌장님은 입주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세심하게 알고 있었고 장점을 존중하고 격려했다. 그의 핸드폰 메모리엔 시작(詩作)을 위한 메모가 날마다 새롭게 채워졌다. 각자 다르기도 하고 별나기도 한 작가들이 한 지붕 아래서 탈 없이 석 달을 살고 나가는 창작촌의 중심에 긴장과 탄력을 놓지 않는 선배 시인, 김규성 선생님이 있었다.
    창평 장날, 우리는 장에 가서 사모님이 시킨 대로 작두콩 차도 덖고, 생선도 사고 콩엿도 사 먹었다. 그러다가 누가 말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가서 사모님께 국수 끓여달라고 하자.”
    그래, 그래, 하면서 우르르 차에 올랐다. ‘글을 낳는 집’에서의 매 순간이 감동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는 장면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가자, 라고 하는 그 말이 어딘가를 찌르르 울렸다. 우리가 정말 식구 같았다. 나는 특별히 살고 싶은 곳도 없고 주택마련 계획 같은 것도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착보다는 유목에 가까운 정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집이라니, 그것도 창작촌에서.

 

    언제나 그렇듯 상냥한 미소를 띤 사모님이 국수를 쟁반에 받쳐 들고 마당으로 나오시자 작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쫓아가 받아들었다. 마당에 즐비한 항아리에서 약초연구가인 사모님의 효소와 식초가 발효되고, 냄새에 취한 벌들이 잉잉거렸다. 항아리들 사이로 꽃이 피고 고양이가 나비를 쫓았다. 이 복된 풍경은 동화작가 곽영미 선생에 의해 예쁜 그림동화로 탄생했다. 입주 작가들이 누리는 기쁨 가운데 제1번이 사모님의 음식이라는데 모든 작가가 동의한다. 단잠을 깨울까 봐 가만히 내려놓고 가시는 하루 치의 국과 반찬을 하루 이틀 먹다 보면 내가 이 밥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세설원(洗舌園) 정식’이라고 불렀다. ‘글을 낳는 집’이 사모님에겐 효소와 식초를 연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혀를 씻는 곳이란 뜻을 가진 세설원은 언어를 다루는 작가들에게도, 건강을 위해 효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담양은 떡갈비도 유명하고, 팥칼국수도 맛있지만, 음식의 궁합과 효소와 식초로만 맛을 내는 사모님의 음식을 먹는 동안 입이 까다로워진 작가들은 외식을 전혀 반기지 않았다.
    “내가 오늘 밥값을 했나?”
    그날의 작업량을 가늠하는 표현 속에도 사모님의 맛있고 따뜻한 밥이 있었다.

 

    창작촌에 머문 한 달간, 《내 인생의 첫 고전, 노자(老子)》를 마무리하여 출판사에 넘겼다. 《내 인생의 첫 고전, 장자(莊子)》도 시작했다. 책 읽고 산책하고 놀고 원고를 쓰다 잠자리에 들면 깨끗하고 편안한 잠이 찾아왔다. 촌장님이 마실 나간 개를 불러들이는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이 좋았다. 나의 평화와 명랑이 좋았다. 단절과 소외로 중무장하고 자연을, 만물일화(萬物一花)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갈 글을 쓰기에 조금은 더 적합해져 있었다.

 

    창평IC에만 들어서도 마음이 환해진다. 내게 집이 생긴 것이다. 거미줄에 촘촘한 이슬 같은 인연들을 기꺼워하는 어른이 있는 집. 다시 바람 앞에 서기 위해 숨을 고를 수 있는 울타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늦도록 불을 밝히고 써봐야겠다.

 

 

 

 

 

 

 

윤이삭
작가소개 / 최은숙

충남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집, 《집 비운 사이》
산문집 《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주자》 《미안, 네가 천사인줄 몰랐어》 《성깔 있는 나무들》 청소년 교양《내 인생의 첫 고전 노자》《내 인생의 첫 고전 장자》
공주봉황중 교사

 

   《문장웹진 2016년 1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