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래픽노블 이야기 2 – 김금숙이 그리는 한국의 가족, 한국의 역사

[리뷰 – 그래픽노블]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그래픽노블 이야기 2

– 김금숙이 그리는 한국의 가족, 한국의 역사

 

김유진

 

 

 

1. 김금숙의 그래픽노블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을 말하기에 앞서 작가의 프로필을 꼼꼼히 정리해 놓고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의 작업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 놓으면 각 작품이 놓이고 흘러가는 자리에 바탕해 작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어 보인다. 작가의 생애와 이력에 비추어 작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 목록은 꽤 방대하고 수상 경력도 다채로운 데 비해 국내에서는 프로필이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어서 작가 소개글과 인터뷰 기사 내용 등을 모아 한눈에 정리할 필요도 있겠다.
    김금숙 작가는 1971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해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화가가 되고자 했고, 조각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게 가까웠던 장르는 저렴한 재료와 작은 공간으로도 작업 가능한 만화였다. 그는 2004년 만화를 번역하며(이희재의 『간판스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해 한국 만화를 100여 권 이상 번역했다고 한다.) 만화라는 세계와 만났고,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만화 작업에 나섰다.1) 프랑스에서 첫 만화 작업들을 발표하고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의 한인 신문 《한위클리》와 《프랑스존》에 만화를 발표했으며 단편 「내 산에 오르기」, 「베로니크」, 「할머니」 등을 출간했다.
    2012년 프랑스에서 출간한 첫 장편만화 『아버지의 노래』(2013)가 이듬해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그의 작품은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 책은 프랑스 몽펠리에 만화 페스티벌 NMK에 초청받아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받았고, 프랑스의 여러 만화 전문 서점(프낙 Fnac, 파이요 Payot)에서 추천작으로 선정됐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얽혀 있는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출발로 보인다.
    작가 나이 마흔 넘어 시작된 만화 작업은 이후 매우 부지런히 이어지는데, 초기에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시골에 살다 서울로 상경한 어린이의 일상을 담은 『꼬깽이 1-시골 이야기』(2013), 『꼬깽이 2-달동네 이야기』(2014), 『꼬깽이 3-우리 동네 이야기』(2015) 시리즈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원폭 피해자를 알리는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2016)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애기해녀 옥랑이, 미역 따러 독도 가요!』(2015), 『방정환, 어린이 세상을 꿈꾸다』(2016), 『우리 엄마 강금순』(2017), 『꼬깽이와 떠나는 고전 여행』 시리즈 등 어린이책이 있다. 이 어린이책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등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고난의 역사를 살아낸 이들을 어린이 독자에게 전한다.
    어린이책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근현대사의 풍랑을 겪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작업은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제주 4·3 항쟁을 담은 영화 〈지슬〉과, 6·25 전쟁이 작품 배경인 박완서의 동명 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한 작품 『지슬-제주 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4), 『나목』(2019)을 보면 그가 어떤 이야기를 자신의 만화로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2020)에서 또한, 사회주의 운동가로 한인사회당 창당에 참여한 실존 인물인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킴(1885-1918)의 일생을 담은 소설을 토대로 창작 의도를 새롭게 담아냈다.
    김금숙 작가의 작업을 전 세계에 알린 『풀』(2017)은 그가 추구한 작품 세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담은 이 작품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 최고의 만화,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그래픽노블, 미국도서관협회/미국청소년도서관협회 청소년을 위한 그래픽노블로 선정되고, 2020년 하비 어워드 최고의 국제도서상, 크라우제 에세이상, 빅아더북 그래픽노블 부문 상,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출판만화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풀』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일어 등 12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그의 신작 『준이 오빠』(2018), 『개』(2021) 등 또한 계속 출간되고 있다.
    김금숙은 신문 연재 칼럼인 〈김금숙의 만화경>에서 ‘그래픽노블이 뭔가요’라는 제목으로 장르에 관한 생각을 간략히 밝힌 적이 있다.2) 이 칼럼에서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생소하고 낯설어 보인다.”며 “내가 만난 프랑스 만화가들은 그래픽노블이건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 ‘만화’를 가리키는 말-필자 주)건 명칭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프랑스에서 만화가 ‘제9의 예술’로 독자들 사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흔히 그래픽노블은 만화보다 서사성이 강화된 형식이라고 정의되지만 그래픽노블과 만화의 구별이 그렇게 명확하지만은 않다. 특히 웹툰으로 장기 연재된 후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한국의 만화 출판 형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금숙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만화냐, 그래픽노블이냐 하는 용어보다는 창작 태도에 있다. 그는 그래픽노블 『피카소』의 작가 클레망 우브르리의 말을 인용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만화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어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난다는 것을 믿는다. ‘진짜’ 작품은 그래픽노블이건 만화건 코믹스건 방드 데시네건 독자가 찾을 것이다.”라고 글을 맺는다.

   1)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3월호. https://www.yna.co.kr/view/AKR20180218036200805?input=1195m
   2)  이 문단의 인용 문장은 《서울신문》 2020년 5월 4일자 〈김남숙의 만화경> 참조.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505026005

 

 

2. 김금숙이 그리는 한국의 가족

 

    그가 바라보고 걸어온 길을 기억하며, 이제 작가의 첫 장편만화인 『아버지의 노래』부터 하나씩 따라가 보자. 이 작품은 자전적 이야기면서도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듯 ‘역사 안의 개인, 개인 안의 역사’를 끊임없이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2010년 4월 10일 파리에서 시작한다. 작가가 사는 파리에 어머니가 방문해 잠시 체류하는 동안 작가는 어머니와 과거를 회상하는 대화를 나눈다. 4월 10일, 4월 17일, 4월 25일, 5월 10일, 5월 25일, 6월 11일…… 작품의 각 장은, 어머니의 두 달 체류 기간 중에 작가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후, 작가가 작품의 화자가 되어 자신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각 장은 액자 밖이 액자 안 이야기의 도입부가 되는 구성으로 반복되고, 액자 밖과 액자 안의 서로 다른 두 시간은 제각각 흐른다. 액자 밖 시공간은 2010년 4월부터 6월까지의 파리이고, 액자 안 시공간은 작가가 태어난 1971년 4월부터 작가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1994년 4월까지의 한국이다.
    현재 시점(작품 창작 당시)의 어머니와의 대화를 도입부로 삼는 구성은 액자 안 이야기에 신뢰도를 더한다. 도입부는 이후 전개되는 ‘나’의 기억을 어머니와의 대화로 뒷받침하는 형식을 마련한다. 작가 개인의 기억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복원해 낸 가족사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일인칭 회고담이 어머니와의 대화라는 액자로 둘러싸인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일 것이다. 작가의 체험을 가감 없이 작품으로 옮기는 창작 태도일 수도 있고, 작가가 탄생하기 이전의 가족사는 당연히 어머니의 입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개인의 회상이 아닌 가족 간의 대화는, 과거에 현재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작가가 회고하는 생애 체험이 개인으로 독립된 성장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포함된 가족사,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와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생애는 가족사이자 근현대 한국 민중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전 재산을 팔아 서울 변두리로 상경한 가족의 이야기는 1970년대 대한민국의 도시화, 산업화 과정의 일면을 보여준다. 친척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서 죽임을 당한 걸 지켜보며 작가의 가족들은 서울로 올라왔기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빈한하고 고단한 타향살이의 위안으로 삼는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개최를 앞두고 폭력적으로 진행된 노점상 단속에 작가의 부모님은 날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고등학생인 작가 앞에 놓인 입시 경쟁이나 교사의 폭력이 자행되는 학교 문화도 전쟁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생애와 아울러 한국의 현대사를 나란히 제시하며 개인의 삶이 역사적 조건으로 고난 겪는 모습을 ‘담담하게’ 재현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담담하게’ 재현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감정적인 울림이 크지만 이를 과장되게 자아내려 하지 않는다. 비장하지 않지만 묵직하다. 개인의 삶을 훼손하거나 고통스럽게 한 역사를 비판하고 처단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그럼에도 꿋꿋하게 살아낸 개인의 삶에 공명하도록 이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폭압성을 잘 알고 이를 반성적으로 사유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내고 존중한다. 어린이책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오직 흑백의 먹그림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거기에 있을 법하다. 『아버지의 노래』에 등장하는 장면들 – 한국의 산하와 초목(그의 소나무는 볼 때마다 매번 감탄스럽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거닐던 인사동의 돌담과 기와, 작가가 다시 그려내 삽입한 신윤복의 풍속화, 아버지가 부르던 판소리 ‘사랑가’가 울려 퍼지는 엔딩 – 로 작가가 ‘한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그래픽노블로 재현한 가족사에는 ‘한국’이 있다.

 

 

3. 김금숙이 그리는 한국의 역사

 

    김금숙이 그리는 가족에는 역사가 있듯, 그가 그리는 역사에는 가족이 있다. 물론 이는 근현대사의 굴곡을 지닌 한국의 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전통이자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0년대에도 이를 꾸준히 자신의 작품 세계로 만들어나간 작가가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원작 영화와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지슬』, 『나목』,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에서도 작가는 특별히 가족에 주목해 원작을 재해석한다.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에서도 그랬듯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다. 『지슬』에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식에게 줄 지슬(감자)을 움켜쥔 어머니의 손길과, 〈쉼표 첨가> 죽음을 앞두고 동굴에서 홀로 아이를 출산하는 여성이 부각된다. 이 작품은 흑백영화인 〈지슬〉의 화면을 오롯이 담아내려는 듯 그림의 선을 절제하고 흑백의 농담에 의지해 이미지를 표현한다. 흑백의 농담은 먹먹하게, 암울하게, 아득하게, 둔탁하게, 슬프게, 민간인 학살의 비극 위로 퍼져나간다.
    『지슬』,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의 원작은 최근 영화와 소설인 데 비해 『나목』은 발표된 지 50년이나 된 박완서의 원작 소설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의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주인공 경아와 어머니의 갈등은 원작과 다를 바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다이애나김’이라는 인물에 눈길이 간다. 원작 소설에서 ‘다이아나 김’은 혼외자식인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미군과의 성매매도 마다치 않으면서 그것을 위대한 모성으로 포장하며 생존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래픽노블 『나목』은 ‘다이애나김’을 생존 제일주의자로 그리면서도 그녀의 모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는 더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진 경아의 어머니도, 다이아나 김도, 김금숙의 그래픽노블에서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포용 된다.
    작중 인물이 지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심을 두는 작가 의식은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에서도 확인된다. 실존 인물인 알렉산드라 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하고 하바롭스크 극동인민위원회 외교인민위원(외무위원장)에 임명된 입지전적 혁명가이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된 독립유공자다. 그럼에도 김알렉산드라는 혁명전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어린 두 자녀를 떠나 결연히 노동운동에 나서지만, 그때마다 자녀들을 직접 돌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사랑을 품고 있다. “이 여성은 두 아이를 두고 어떻게 혁명전선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김알렉산드라가 죽을 당시 고작 서른세 살이었어요. 참 대단하죠? 러시아에서는 영웅으로 불렸어요. 저만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영웅적으로 내닫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요. 그러면 우리와 너무 먼 이야기 같잖아요.3) 작가의 말대로, 그는 역사를 말하면서도 그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개별성, 여성이며 어머니인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최신작 『기다림』 역시 역사적 아픔을 개인의 아픔을 통해 독자들이 공명할 수 있게 한다. 이 작품도 『아버지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딸과 구순의 노모, 즉 딸과 어머니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노래』가 딸의 이야기인 데 반해 이 작품은 6·25 전쟁 당시 이산을 겪은 구순 노모의 이야기로, 노모가 작중 화자다. 작품은 노모의 현재로 첫 장을 열고, 곧이어 1937년 함경남도 갑산군을 배경으로 노모의 유년기부터 회상한다. 피난 중에 어린 아들, 남편과 헤어진 노모는 죽기 전 이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쓰러진 노모의 몸은 물구나무를 선 듯 거꾸로 된 상태로 그려져 시각적 충격을 더하는데, 그 옆으로는 어린 아들이 즐겁게 뛰논다. 헤어진 가족이 만나는 엔딩 장면은 작품에서만 가능한 해피엔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이렇듯 개인을 말하며 역사를 아우르고, 역사를 말하며 개인에게 공명하게 하는 시선은 작가의 일관된 작품 세계다. 독자들은 여기서 역사적 견해나 이데올로기를 넘어 한 인간을 발견한다. 한 인간을 부각하며 그를 전적으로 포용하는 시선은 울림이 크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김알렉산드라의 영웅적 면모와 투쟁 과정을 좀 더 강렬하게 드러냈다면 더욱 가슴 뛰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나목』, 『기다림』, 『아버지의 노래』에서 아들이나 남성 가족에게로 편향된 어머니들의 마음을, 현재 시점에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마냥 긍정해도 되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개인의 삶을 한없이 긍정하면서도 시대의 횡포나 그에 대한 반성까지 올곧게 남겨 두는 재현의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

   3)  〈채널 예스> 인터뷰 중.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909967&memberNo=1101

 

 

4. 『풀』에서 재현된 개인과 역사의 관계

 

(그림 1)

 

(그림 2)

 

    『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하기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프랑스 체류 시기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의 통역과 번역을 맡았고,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단편만화 「비밀」로 2014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의 ‘지지 않는 꽃’ 전시에 참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주제의 한국만화 특별전이었던 이 전시회는 한국에서도 앙코르전이 개최됐는데 일부 관람객의 반응은 그에게 작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위안부는 여성의 이야기인데 남성의 시각으로 그린 그림 같다거나,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이 불편하다는 반응이었다.4) 단편만화 「비밀」에 미흡함이 많아 『풀』을 그렸다는 작가의 말5)은 폭력을 만화로 재현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과 해결의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노래』와 『기다림』이 액자 형식이었던 것처럼 『풀』도 작가인 ‘나’가 위안부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실존 인물인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과 기록자인 ‘나’는 종종 어긋나고 분리된다. 할머니는 우동가게의 수양딸로 가게 된 일을 말하며 사실상 식모로 일했고 자신의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속았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인 나는 할머니의 증언에 개입하여 “할머니의 어머니는 정말로 모르셨을까? 중국으로 끌려간 김순옥 어르신의 경우 아버지가 본인을 팔았다고 증언하지 않았던가.”(106-107쪽)라고 의문한다. 할머니가 계속 판에 박힌 말을 반복하는 바람에 인터뷰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을 실토하는 장면(145-146쪽)(그림 1)이나 할머니가 전하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걸 궁금해하는 장면(298쪽)에서도 증언자인 할머니와 기록자인 나는 분리된다.
    이는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전쟁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할머니의 삶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으로 보인다. 할머니의 삶을 작가인 내가 다 알거나 재현해 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겸허한 수용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그 아픔에 공감할 뿐이다. 이옥선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대변하지 않으며 위안부의 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거나 매개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한 개인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한 피해와 진실이 가려지지는 않는 것이다.
    성폭력 장면을 그리지 않은 채 24컷의 빈칸으로 남겨 둔 후 할머니의 얼굴과 손을 6컷씩 그린 장면(200-207쪽)(그림 2) 역시 이러한 의도로 해석된다. 성폭력 장면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자칫 선정적이고 관음적일 수 있는 재현 방식을 피하고, 성폭력 이미지를 재생산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존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울러 성폭력을 강조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던 기존 방식과 접근을 달리하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6컷의 각기 다른 그림체로 그린 할머니의 얼굴은 가해자의 폭력성과 가학성이 아닌 피해자 할머니의 고통에 집중하며 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내려는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 장면으로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전체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한 명의 타인도 함부로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거리를 인정할 때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한발 다가갈 수 있으며 그때 타인의 삶에 새겨진 역사의 횡포 역시 비로소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 같다.

   4)  《주간 경향》 2017년 8월 29일 자 기사 참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708221119341&pt=nv#csidxb1f8941fd6c1864bab233cf7efcab34
   5)  《연합뉴스》 2018년 3월 10일 자 기사 참조.

 

 

5. 김금숙이 그릴 한국의 그래픽노블

 

(그림 3)

 

(그림 4)

 

    가족과 역사에 천착하는 작품 세계를 꾸준히 보여 온 작가는 최근작에서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판소리 병창을 하는 음악인 최준의 발달장애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와, 개를 반려동물로 들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엮은 『개』가 그 작품들이다. ‘한국’이라는 주제를 넘어 장애인이나 동물권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준이 오빠』는 장애인의 이야기, 『개』는 반려동물의 이야기지만 두 작품은 같은 지평 위에 자리한다.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반려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취급하는 편견 모두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갇힌 채 존재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두 작품을 나란히 보여주며 현재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태도가 바로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두 작품의 지면 구성은 지금까지 작품들과 비교해 훨씬 시원하고 자유롭다. 『개』에서 강아지가 먹이에 집착하거나, 개껌을 먹거나, 슬리퍼의 냄새를 맡는 행동을 세 페이지에 걸쳐 27컷이나 담은 장면(17-19쪽)(그림 3)에서는 개의 용모와 습성을 관찰하는 작가의 애정 어린 관심이 따듯하게 드러난다. 펼친 면 양쪽에 걸쳐 마을 풍경 위로, 하늘 가득히 개의 얼굴을 그린 장면(50-51쪽)(그림 4)이나 개와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109쪽) 역시 작가의 마음이 한껏 드러난다. 그런 만큼 개를 잡아먹거나 가두고 돌보지 않는 현실은 더욱 비극적으로 표현된다. 지면 구성뿐 아니라 그림체 또한 사실적이면서도 친근하다. 이전 작품들이 대개 무겁고 강한 그림체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준이 오빠』는 더욱 간결하고 부드러운 선과 흑백의 음영만으로, 음악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애환을 시종 밝고 씩씩한 분위기로 말한다.
    두 작품은 앞으로 작가가 그려나갈 그래픽노블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작품 세계에서 강조한 인간애가 가족과 역사의 이야기를 지나 새로워질 지점이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다른 나라 독자에 앞서 한국 독자에게 더 진한 울림을 주는 한국의 이야기, 지금 한국 독자들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앞으로 그의 작품에서 계속 만나길 바란다. 여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고, 다양한 존재들이 평등하고 존중받는 세계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유진
작가소개 / 김유진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동시인.
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 시집 『그때부터 사랑』, 그림책 『오늘아, 안녕』 등을 냈다. 대학과 여러 기관에서 아동문학, 동시, 글쓰기, 젠더 주제의 강의를 한다.

 

   《문장웹진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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