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에서

[단편소설]

 

 

부용에서

 

 

남현정

 

 

 

    내가 부용으로 온 것은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외삼촌이 나를 부른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외숙모가 불렀을 것인데 기차에서 내리면서 어쩌면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외숙모가 아니라 이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숙모인지 이모인지 모를 그 사람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외삼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외숙모인지 이모인지 모를 그 사람은 전화기 너머로 외삼촌을 위해 부용으로 와달라고 말했다. 나는 주소를 또박또박 발음하던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내가 그녀의 부름에 응한 것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었고 마침 휴가 중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휴가를 허락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누구인지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휴식을 허용 받아야 하는 존재였고 그건 가급적 잊지 말아야 했다. 어쨌든, 나에게 전화를 건 외숙모인지 이모인지 모르는 사람과 그녀가 언급한 외삼촌은 모두 나의 엄마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 그 이상의 정보는 나에게 필요 없었다.
    부용역은 아주 작은 곳이었다. 기차는 부용역에 잠깐 동안 정차했다.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 내린 기분으로 나는 플랫폼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차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것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처량하면서도 서글픈 일인데 자기에게 주어진 지배적인 곡선의 길을 순순히 따르는 기차의 모습에서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기차는 떠났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적막한 플랫폼을 걸어가는 동안 내가 내려야 할 곳이 어쩌면 부용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용역이 아닌 다른 역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부용역 대합실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다. 나 이외에 두셋 정도 더 보였다. 어떤 이는 대합실 안을 무료하게 서성이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매표소 창구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벽에 기대 여행안내서를 성의 없이 훑어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도 있었다. 나는 흘깃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손에 들린 여행안내서 표지에는 ‘부용 여행: 부유에서 용부까지’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대합실의 사람들은 부용역이 실제로 있는 곳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했고 이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헛것을 듣고 헛곳으로 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안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여행안내서를 들고 있는 저 사람에게 부용으로 오게 된 경위 같은 것을 묻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정말로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말을 거는 건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대합실 안에는 딱히 앉을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이리저리 서성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분명했다. 외삼촌을 만나는 것. 이모인지 외숙모인지 모르는 사람이 알려준 주소를 찾기 위해 배낭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노트 어딘가에 적어 두었을 주소를 찾아보았다. 전화하는 동안 그 여자가 불러 주던 주소를 분명, 이 노트에 적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느 페이지에서도 주소는 보이지 않았다. 주소를 알 수 없으니 외삼촌을 만나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노트를 덮어 다시 배낭에 넣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나는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은 지금 이 상태가 아주 마음에 들었고 되도록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모르는 곳을 아무 계획 없이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솔직히 나는 노트를 대강대강 넘겨 보았고 혹시라도 주소처럼 보이는 메모가 눈에 띄면 오히려 그 페이지를 자세히 보지 않고 바로 넘겨버렸다. 어쨌든 지금 외삼촌의 주소를 모르니 외삼촌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셈이고 또 외삼촌에게 며칠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나는 역 밖으로 나가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기대와 달리 역 앞 광장은 작았다. 작은 역 앞에 작은 광장이 있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역을 빠져나오며 눈앞에 광활한 광장이 펼쳐지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 내 기대가 이상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광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광장 주변에는 사람도 없고, 가게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뽕나무 한 그루와 나무 그늘 아래 쌓여 있는 타이어들뿐이었다. 뽕나무 아래 타이어는 제자리가 아닌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어색함도 잠시였다. 뽕나무 아래 타이어를 바라보다가 다시 타이어 위의 뽕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타이어에게 제자리랄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뽕나무와 타이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뽕나무 타이어 타이어 뽕나무 뽕나무 타이어 타이어 뽕나무……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뽕나무와 타이어를 중얼중얼 말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정차된 택시 앞이었다. 반가운 택시였다. 택시 한 대가 있다는 것은 그다음 택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다음 택시가 있다면 또 그다음 택시가 있을 것이고…… 택시에 대한 이런 나의 믿음의 근거가 취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믿음으로 부용이 실재하는 곳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믿음 또한 취약한 것이어서 나는 이 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기억과 판단이 뒤죽박죽되어 결국 스스로 나를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택시의 문을 열었다. 운전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택시의 문을 닫고 그 앞에 서서 운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부용역 너머로 보이는 산의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능선 아래 녹색 덩어리는 아득하게 제 색채를 드러내었다. 자연의 빛깔로 합당한 오직 하나의 색. 부용역만 보아서는 부용은 도시라기보다 시골에 가까웠다. 나는 자연을 좋아했지만, 시골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마음도 싫어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시골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마다 부용역에서의 정적과 혼란이 계속 뒤따라 연상될 것 같았다. 이 순박한 낱말은 이렇게 오염되고 말았고 이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낱말의 인상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 아닌가. 낱말과 낱말이 부딪히는 사건, 환경, 마음들의 우연한 얽힘…… 그때 택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그 사람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택시의 문을 열었다. 운전자였다. 나는 운전자가 혹여 나를 두고 출발할까 봐 서둘러 택시에 올라탔다. 아마 운전자와 거의 동시에 택시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약간의 정적이 있었다. 나는 운전자에게 여기에서 가장 먼 호텔로 가달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운전자 또한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곧 드러났는데 택시는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부용역 주위만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택시가 택시 승차장을 네 번째로 지나쳤을 때에야 나는 운전자에게 겨우 말을 꺼냈다. 여기에서 가장 먼 호텔로 가주세요. 내 말에 운전자는 급정거를 하고는 뒤돌아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그의 기이한 웃음에는 어딘지 불쾌한 구석이 있었다. 신경이 갉아 먹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이런 기분으로 좋은 말이 나올 리도 없었고 좋은 말이 아닌 말을 내뱉고 난 뒤의 상황 또한 좋을 리 없어서 운전자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운전자의 기분 나쁜 웃음을 잊으려고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부용 여행: 부유에서 용부까지’라는 여행안내서의 제목이 떠올랐다. 부용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부유는 어디이고 용부가 어디쯤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운전자에게 묻고 싶진 않았다. 그가 내 질문을 듣고 한 번 더 피식 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불쾌한 웃음을 한 번 더 보느니 차라리 달리는 택시 밖으로 뛰어내리는 게 나았다. 이건 정말 과장된 말이 아니었고 그만큼 그의 웃음만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부용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될 수 있는 다른 자잘한 비법에 대해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택시 안에 신뢰할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택시는 어느새 부용역을 빠져나와 드문드문 놓인 약간의 논밭과 축사를 지나 저 멀리 동물들의 들판과 멀어지며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달려 나갔다. 풍경의 색채가 이름 붙일 수 없는 하나의 색으로 섞여들었고 바깥의 사물들은 사나운 속도로 뭉개져 나가 그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었다. 이런 스피드는 난생처음이었다. 빈 도로 위를 폭주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상태로 있는 한 산도 있고 하늘도 있고 들판도 있고 동물도 있는 풍경 속에 있어 봤자 좋은 생각 좋은 순간이 생겨날 리 없었다. 택시가 시커먼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내 마음은 더 요동쳤다. 아무리 가도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꽝꽝 울려 퍼지는 기괴한 사이렌 소리는 곧 무서운 일이 닥치리라는 확실한 예고처럼 들렸다. 온 신경이 조여 왔다. 운전자는 이런 불길한 징조에도 말 한마디 없이 그저 택시를 앞으로 빠르게 몰고 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그런 작자에게 내가 지금 겁에 질려 있다는 걸 굳이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요동치는 이 마음도 어둠의 터널이 끝나기만 하면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 차라리 운전자가 속도를 더 높이는 게 나았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는 이미 충분히 몰상식했고 이 속도만으로도 나는 꼭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니 지금보다 택시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 정말로 나는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고 그 말은 곧 내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될 것이란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징조는 징조로 끝났다. 터널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다. 택시는 이제 시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으로 진입했는데 운전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상식한 속도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의 변심을 나는 이해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고 택시가 갑자기 정차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정차한 것인지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지 운전자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할 수 없었다. 운전자는 말없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운전자에게 말을 거는 게 내키지 않아 나는 그의 뒷모습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순간적으로 운전자의 머리통이 검은지빠귀의 머리통처럼 보였다. 그가 내는 휘파람 소리가 언젠가 네덜란드의 아르티스 동물원에서 들었던 검은지빠귀의 울음소리를 상기시켜서였던 것 같은데 그때 나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검은지빠귀가 내는 울음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같은 부류의 종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그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고 나 또한 그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나를 약 올리듯 검은지빠귀는 내 주위를 맴돌며 티티 티 티티티티티티 연신 울어댔는데 그것은 내가 검은지빠귀의 세상으로부터 마침내 배제되었음을 선고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운전자의 휘파람이 그때의 기억을 상기한 것은 내가 그의 휘파람 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였기도 했지만, 우리가 같은 부류의 종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서로의 속내를 이해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택시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택시에서 내려야 할 적절한 때를 찾아야 했다. 운전자의 휘파람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창문 바깥으로 부용호텔이라는 간판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부용호텔이라는 간판은 운전자가 부용역에서 가장 먼 호텔로 가달라는 나의 요구를 잊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건 운전자가 아주 이상한 작자만은 아니라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이곳이 부용역에서 가장 먼 곳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호텔에 도착했고 택시에서 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운전자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는 뒤돌아 피식 웃음을 짓고는 흔쾌히 돈을 건네받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을 분명히 보았고 무엇이 그의 웃음을 불쾌하게 만드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창백한 눈썹. 눈송이처럼 흰 그의 눈썹은 여전히 내 신경을 갉아 먹으며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창백하다는 말로 그 눈썹의 특성을 다 드러내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것은 운전자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그의 태도와 성격마저도 결정짓고 있는 듯했다. 더는 운전자와 엮이고 싶지 않아 나는 서둘러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데 운전자 역시 나와 거의 동시에 택시에서 내렸다. 난처한 상황이 혹시 일어날까 잠시 긴장했지만, 그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호텔 맞은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의 이름도 부용카페였다. 운전자의 차갑고도 무례한 태도가 이상하게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는 호텔 입구를 향해 걸어가다가 다시 부용카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운전자 때문은 아니었다. 운전자를 슬쩍 쳐다봤을 때 얼핏 눈에 들어왔던 카페테라스 의자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는데 그것들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의자들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들의 색이 눈에 띄었다. 녹색. 그것도 아주 균일한. 일말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칠해진 그 녹색의 균일성에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일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부용카페로 들어가며 다이달로스의 녹색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의자들의 이름으로 적절해 보였다.

 

 

    부용카페는 밥도 팔고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곳으로 아주 시끄러웠다. 부용시의 사람들이 죄다 이곳에 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부용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용역에 도착한 이후 사람이라고는 두셋 정도 본 게 전부여선지 한데 모여 북적이는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얼굴들인데도 아주 반갑게 느껴졌다. 말소리 음악소리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들리지 않을 소리들이 카페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비어 있는 아무 테이블에 앉았다. 나의 착석이 마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도 된 것처럼 카페 한가운데로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춤이었는데 아마도 영화 〈Bande à part〉에 등장하는 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약속된 여러 개의 동작이 반복되는 동안 그들은 고장 난 기계처럼 여기저기 어긋나고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고 그런 어설픈 움직임이 그들을 더욱 국외자들처럼 보이게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름다웠다. 그러다 갑자기 사나운 고함소리가 내 감탄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는데 카페 한구석에서 두세 명의 사람들이 느닷없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좆같은 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좆같은 좆같은 좆같은…… 격렬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순전히 좆같다는 말 때문에 나는 저들의 싸움을 격렬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고 또 너무 많은 좆같은을 듣다 보니 어느 때부터 좆같은의 의미가 휘발되어 그 말이 더는 사납게 들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저들은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말하기만 하는 앵무새처럼 좆같은의 뜻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서로의 말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싸움 전체의 일부 중의 일부에 불과하고 이런 좆같은 자들의 좆같은 싸움에도 국외자들은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어긋난 움직임은 싸움 때문인지 더 흐트러지고 말았지만, 그것마저도 자연스러워 여전히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 부용카페는 고장 난 춤과 어리석은 싸움이 이질적으로 공존하는 곳이었고 그리하여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좆같은 곳이었다. 나는 이런 아름답고 좆같은 부용카페가 문득 세상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카페에서 나와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운전자가 택시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운전자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걸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운전자를 보고 알았다. 호텔 입구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슬쩍 운전자를 쳐다보았다. 창백한 그의 흰 눈썹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와 눈이 마주친 이상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운전자를 향해 까닥 고개를 숙였다. 운전자는 내 인사에도 별 반응 없이 계속 나만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카페 안에서 벌어진 싸움에 관해 물으며 운전자에게 말이라도 걸어 볼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을 건네는 게 더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는 재빨리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작은 홀이 펼쳐졌다. 자줏빛 벨벳 카펫과 삐걱대는 마룻바닥, 그리고 언뜻 보기에 위압적으로 보이는 옛날의 테이블과 의자들. 나는 홀을 가로질러 프런트 앞으로 갔다. 프런트 뒷벽에 걸린 흑백사진 속에는 칸딘스키임이 틀림없는 남자가 몸을 살짝 비틀고 〈Dominant Curve〉라는 그림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언젠가 칸딘스키를 만난 적이 있다. 그를 만났을 때 당신의 그림만큼 당신의 글도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고 그 기억은 후회와 자책으로 오래 남아 나를 괴롭혔다. 나는 흑백사진 속 남자가 옆얼굴만 내보이고 있었는데도 그가 칸딘스키임을 바로 알아차렸는데 그건 〈Dominant Curve〉라는 그림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그의 얼굴을 매우 상세하고 집요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칸딘스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는 프런트 여자는 프런트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머리통은 칸딘스키의 분위기를 모조리 다 흡수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머리통에선 편견 없어 새롭고 고상하여 외로운 칸딘스키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그래서였는지 나는 마치 칸딘스키 앞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프런트 앞에서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방 있나요? 떨리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나는 수줍게 말을 꺼냈다. 여자는 내 말에 고개를 들긴 들었지만 아무 말 없이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의 텅 빈 눈빛이 방이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는 의미인지 헷갈려서 어쩔 수 없이 나도 텅 빈 눈빛으로 그녀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잠시 후 여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열쇠를 내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이름이나 연락처, 숙박 예정 일수 같은 최소한의 정보도 묻지 않은 채 다시 프런트 아래로 고개를 푹 숙여 자기가 하던 일로 되돌아갔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녀를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나는 누가 나를 방해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누군가를 방해하는 것 역시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그녀에게 당신을 방해했다면 미안합니다. 당신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통만 겨우 보일 정도로 고개를 푹 숙여 다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그런 쓸모없는 말을 건네는 것은 방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사진 속 칸딘스키의 옆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열쇠에 새겨진 방 번호를 확인한 뒤 프런트를 떠났다.
    나에게 주어진 방은 301호였다. 계단을 올라 3층에 이르자 복도 벽 끝에 설치된 커다란 거울과 그 앞에 쌓여 있는 수백 권쯤 되어 보이는 책들이 눈에 띄었다. 내 방으로 가기 위해선 그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야 했는데 그러는 동안 거울 속에서는 점점 커지는 내 모습과 함께 책들이 계속 증식되고 있었다. 그것들은 증식에 증식을 더하다 증식을 넘어 결국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돌연 들이닥친 아찔한 현기증에 몸을 벽에 기대지 않고는 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나는 거울 앞의 책탑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도망치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잘한 동작이었지만 효력은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노랑 보라 초록 검정 파랑을 비롯한 온갖 색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나의 시야를 점령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영향 때문이었다. 몇 차례 눈을 깜박이고 나서야 방은 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무엇보다 방의 벽 곳곳에 매달려 있는 정체 모를 물체들에 내 시선은 붙들렸는데 그것들을 보며 나는 우리의 기원 혹은 옛날들이란 말을 떠올렸다. 배아를 닮은 그 물체들은 마치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지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 너머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손에 든 책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발코니로 나갔다. 나는 난간에 기대 무언가에 이끌리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용카페의 테라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선 두 사람이 다이달로스의 녹색 의자에 앉아 서로 뒤엉켜 있었는데 그들을 바라보며 이상하게도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추락 없는 부유라면, 나쁠 것 없었다. 그러나 길 한복판에서 운전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만 몸의 균형을 놓치고 말았고 자칫 공중에서 추락할 뻔했다. 저 자는 헛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시선이 부딪쳤고 이만큼의 거리에서도 운전자의 창백한 눈썹은 서늘하게 빛났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저 자에게 나의 당혹스러움을 들키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이 방의 침대와 마주 보는 벽에는 계단이 하나 나 있었다. 고작 세 개의 층으로 이뤄진 낮은 계단이었다. 이 계단의 목적이 무엇인지 단지 방의 장식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숨겨진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것인지 외관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계단의 목적을 한동안 생각하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기차와 택시 운전자와 국외자들의 춤과 좆같은이란 말과 칸딘스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게 있긴 있었지만, 그것들 중에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미심쩍은 기분으로 배낭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노트를 넘기며 노트에 적힌 메모들을 읽어 나갔다. 그중 다음과 같은 메모가 눈에 띄었다. “아르키메데스의 그것 같은 옛 기하학 서적들과 이름들을 네가 베껴 적는 게 보이는구나. 얘야, 너는 정신이 나갔구나. 레몽 크노. 떡갈나무와 개.” 같은 페이지에는 얘야, 너는 정신이 나갔구나라는 문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 문장을 왜 수십 번 반복해서 적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이 문장들을 적는 동안 분명 나는 지금처럼 희열을 느끼며 웃고 있었을 것이다. 얘야, 너는 정신이 나갔구나. 나는 웃음을 참으며 한 번 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얘야, 너는 정신이 나갔구나.
    정신이 나갔구나 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오늘 기차에서 본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떠올랐다. 암스터르르르흐담. 그 사람은 내 앞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서서 난데없이 암스터르르르흐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릴라처럼 긴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암스터르르르흐담 암스터르르르흐담…… 나는 노트를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뚜렷한 질서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암스터르르르흐담. 나는 그 정신 나간 사람처럼 르를 발음할 때 목젖을 최대한 떨면서 소리를 굴려 보았다. 암스터르르르흐담. 그 사람이 정말로 정신이 나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러나 눈앞의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물이 자기에게 보내는 시선마저도 알아차리는 눈빛, 땀으로 온통 뒤범벅된 얼굴 위로 미끄러지는 손가락, 이빨을 드러내고 행운을 씹어 먹으며 암스터르르르흐담 노래하는 목소리…… 이 모든 것은 그 사람을 정말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암스터르르르흐담 암스터르르르흐담! 여기는 암스테르담이 아닌 부용시였고 더구나 암스테르담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지금 이렇게 암스테르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오늘 기차에서 들었던 그 사람의 노래 때문일 것이다. 기차가 움직이는 동안 나는 노래하는 그 사람을 힐긋힐긋 몰래 쳐다보며 저 사람이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면 저런 목소리로 저런 얼굴로 노래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생각만 계속했던 것 같다.
    내가 암스테르담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도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내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꼈고 어느 때부터, 믿기지 않겠지만, 공중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정처 없이 부유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방 안 여기저기 매달려 있던 배아를 닮은 물체들 또한 나와 함께였는데 방 안의 가구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가끔씩 우리의 부유를 방해했다. 가구들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나는 이 방의 옛날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아무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염소의 이미지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아주 잠시 동안 벌어진 일이었고 나는 갑작스레 울린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프런트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 속 목소리는 누군가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 속 목소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다급하게 찾을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여전히 무질서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건 알의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배낭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복도는 깨끗했다. 복도 끝에 설치된 거울도 그 앞에 놓여 있던 수백 권의 책들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1층까지 계단을 다 내려와서도 갈 만한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눈앞에 보이는 프런트로 걸어갔다. 프런트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에게 방 열쇠를 준 여자가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 나는 프런트 남자에게 나를 찾아온 사람은 어디 있느냐 물었다. 프런트 남자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약간 당황한 듯했다. 나는 내 질문이 그에게 다소 뜬금없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전 내 방에 걸려온 전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말하다 보니 계속 같은 말만 하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건 기분이라기보다 사실이었다. 내가 받았던 전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만한 내용이라곤 딱히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나는 했던 말을 몇 번이고 장황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프런트 남자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글쎄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프런트 뒷벽에 걸린 흑백사진 속 칸딘스키는 〈Dominant Curve〉 앞에서 여전히 몸을 반쯤 비틀고 앉아 있었다. 프런트 여자와 달리 이 프런트 남자에게서는 칸딘스키의 편견 없는 새로움도 고상한 외로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칸딘스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칸딘스키의 분위기를 흡수하는 건 아니었고 나는 남자와 대화를 이어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서 로비 구석의 아무 의자로 가 앉아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누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나를 다급하게 찾는다고 했으니 누군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조금 전 내 방으로 걸려온 전화는 누군가의 착오였던 게 분명했다. 나를 찾아온 사람의 착오였든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고 알려준 사람의 착오였든 어찌 됐든 누군가의 착오였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프런트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남자는 프런트 아래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착오라고 생각했음에도 그의 머리통에 대고 정말 나를 찾아온 사람이 없느냐 다시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약간의 웃음을 짓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남자의 웃음으로 그의 말이 거짓말임을 확신했는데 그렇다면 그의 말이 거짓말임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키가 좀 크고 고릴라처럼 팔이 긴 사람이 서 있었어요.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그 사람은 뒷걸음질 치며 여기 로비 쪽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그러고는 호텔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프런트의 남자는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모호한 얼굴로 나의 거짓말을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이 분명 여길 지나서 달려 나갔는데 못 보셨어요?”
    “……몇몇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가긴 했어요.”
    “그럼 누군가 여기에 오긴 왔다는 말씀이시죠?”
    “그야…… 그렇죠.”
    남자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당신 말고 나에게 방 열쇠를 내준 여자는 어딨죠?”
    나는 내 방으로 전화를 건 사람이 체크인도 없이 나에게 방 열쇠를 내준 여자라고 확신했다. 내가 대화를 해야 할 사람은 이 남자가 아니라 그 여자였다.
    “저는 여기 계속 있었는데요.”
    “그럴 리가요. 당신 말고 다른 여자분이 저에게 방 열쇠를 주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오늘 여기 계속 있었어요.”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세요.”
    “거짓말이라뇨.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분명 저는 다른 여자분에게 301호 방 열쇠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아니었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정보를 확인하려는 듯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이 남자와 계속 대화를 이어 가는 한 내 말이 모두 거짓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건 정말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 호텔 출구 쪽으로 재빨리 걸어 나갔다.
    호텔에서 빠져나왔을 때 다이달로스의 녹색 의자는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있고 없고의 상태가 언제부턴가 나의 감각과는 별개로 결정되고 있었다. 내가 다이달로스의 녹색을 보았다고 해서 다이달로스의 녹색이 실제로 있는 것임을 더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이달로스의 녹색을 한 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테라스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정작 내가 바라본 것은 의자가 아니라 각각의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이 부용호텔 301호의 발코니에서 본 서로 뒤엉켜 있던 사람들인지 아닌지 알 순 없었지만 어쨌든 둘은 둘이었다. 두 사람은 커피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잔의 냄새까지 맡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커피와 술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해 버렸다. 둘은 자기의 잔이 어느 것인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아무 잔을 아무렇게나 들이켜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는 그들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둘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서로 어떤 말들을 주고받더니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내 쪽을 쳐다보았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커피도 들이켜고 술도 들이켰다. 나도 저 테이블에서 저들과 함께 내 잔이 어느 것인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커피도 들이켜고 술도 들이켜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석해도 되겠느냐 이런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오히려 합석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둘과 눈도 마주쳐 가면서, 그것이 비록 수상쩍은 눈빛이라 하더라도, 이대로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게 저들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저들을 아무 말 없이 계속 바라만 보았다. 그러자 어느 때부터 저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아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둘 중 하나는 카페에서 국외자들의 춤을 춘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싸움을 벌이며 좆같은이란 말만 계속 퍼부어댔던 사람이었다. 마침 저들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춤과 싸움이 어떻게 벌어졌고 어떻게 끝났는지 이런 질문들을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저 테이블에 합석하여 커피도 들이켜고 술도 들이켤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 테라스를 그냥 지나쳐 걸어갔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커피와 술을 마신다고 해서 저들과 더 가까워지리란 법도 없고 그전에 내가 저들과 관계를 맺고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 것이냐 그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나는 다이달로스의 녹색 의자에 앉아 새로울 것 없는 세상에 내려앉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를테면 청기사 같은 제목으로, 우연히 떠오르는 말들을 즉흥적으로 조합해서 시대를 여는 선언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며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잔이 어느 것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커피와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이제 부용호텔과 부용카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깨에 배낭을 멘 채였고 조금 더 걷고 싶었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걷는 데 꼭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걷다 보면 목적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 내가 이런 상태라고 해서 걷는 데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걷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부용의 길은 인도와 도로가 따로 구분되지 않았는데 차도 없고 사람도 없어 걷는 데 방해받는 일은 없었다. 길 양편으로는 마지막 집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집들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각각의 집에서 음악소리 웃음소리 울음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개소리와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이 길 위에 사람이 없다고 말했던 건 아무래도 수정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나 보이지도 않는 저들의 실재를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도 않는 것을 있다고 말할 순 없는 것 아닐까. 시선을 주고받는 것은 최소한의 관계 맺음이며 관계 맺지 않은 자들의 실재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
    한참을 걸었다. 어느 때부터 용부대피소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앞으로 연거푸 나타나고 있었다. 용부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나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은 점점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기억이란 게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멋대로 남아 있거나 사라지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억하는 상태, 아니 그보다는 나는 계속해서 잊어 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용부대피소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용부대피소로 가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지금 내가 이 표지판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용부라는 문자가 계속 눈앞에 나타나 종국에는 용부대피소가 아닌 곳에서도 줄곧 용부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다. 용부 용부 용부 용부 용부 용부를 뒤집으면 부용이 되고 부용을 뒤집으면 용부가 되고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마치 뱀이 제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처럼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부용 용부…….
    그럼에도 용부대피소 앞에 이르렀을 때, 정작 나는 내 앞에 있는 건물이 용부대피소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건물의 전면만 보아서는 어디에도 대피소로 보이는 구석이 없었고 그것은 차라리 건물이라기보다 아담한 무덤처럼 보였다. 사실 용부대피소에 이르기 직전까지 나는 부용의 광활하여 공허한 풍경 속을 정신없이 걸어야 했는데 그 때문인지 용부대피소를 거의 잊고 있었다. 내가 용부대피소까지 걸으며 주로 보았던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드넓고 황량한 들판이었다. 어느 때부터 집들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살아 있는 것들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건 지평선뿐이었다. 어쩌다 물 빠진 갯벌 같은 것이 예고도 없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곳에서조차 먹이를 찾는 새 떼들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공허가 길 한복판으로 들이닥쳤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틀림없으니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용부대피소로 반드시 가야 할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다시 되돌아 걷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했다. 그리하여 나는 부용인지 용부인지 모를 이 광활한 자연 속을 길을 잃은 듯 헤매며 오랫동안 걷게 되었다.
    목적 없이 계속 걷다 보니 어느 때부터 나는 머릿속에 있는 공허한 미로 속으로 던져져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 와중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 용부대피소였다. 무덤처럼 보이는 이 볼록한 형상은 마치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마지막 구두점처럼 나의 부용 여행을 종결시키려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점령하고 있던 끝없는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입구에 적힌 용부대피소라는 문자가 나를 낯설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이제껏 그런 문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처럼 낯설게 그 문자를 바라보았는데 그런 걸 보면 내가 용부대피소를 거의 잊고 있었다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용부대피소의 문을 여는 순간 용부대피소라는 문자는 기억 속에서 제 정체를 드러냈고 나는 그제야 내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문을 열자 완만한 경사로가 아래로 쭉 이어졌다. 경사로의 끝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지상에 남아 있는 약간의 희미한 빛마저 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어둠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어떤 소리가 어둠 속을 파고들어 왔다. 무언가 조용히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울어진 땅을 걸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경사로의 끝과 이어진 좁은 통로를 지나자 둥그런 궁륭 아래 아담한 홀이 나타났다. 소리는 홀 한가운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수한 이파리들이 층을 이뤄 거대한 탑처럼 쌓여 있었고 그 틈에서 누에임이 틀림없는 흰 벌레 무리가 순종적으로 뽕잎을 갉아 먹고 있었다. 거대한 녹색 덩어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흰 누에들은 살아 숨 쉬는 생물의 내부에서 계속해서 분열해 나가는 세포들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들의 움직임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에는 누에 위와 누에 아래와 누에 앞과 누에 뒤와 누에 옆에서 중첩되어 타들어 가듯 뽕잎을 먹고 뽕잎을 먹다가 고치를 짓고 고치를 짓다가 고치 속으로 숨어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각각의 고치는 누에의 대피소라기보다 오히려 감옥에 더 가까워 보였는데 힘겹게 고치를 짓고 그 속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누에들의 마음을 나는 그만 이해하고 말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이해해선 안 되는 것을 이해해 버린 순간이었고 이건 분명 내가 곧 정신이 나갈 것이란 징조였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거대한 녹색 이파리 덩어리를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다. 헤아릴 수 없는 뽕잎과 누에와 고치들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었다. 간혹 흰 나방들이 딱딱해진 고치를 운 좋게 뚫고 나와 제 정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날아오르지도 못하는 그것들은 불가능한 비행의 몸으로 진화하고 만 자신의 처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날개만 파닥거렸는데 자기의 불능을 재차 확인하는 나방들의 무용한 날갯짓 주위로 희고 작은 먼지의 소용돌이가 이따금 일어났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흰 먼지들은 머지않아 닥칠 나의 질식을 예고하고 있었고 누에와 고치와 나방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불균일한 녹색 덩어리 탑 또한 머지않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내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대피소일 리 없었고 차라리 감옥이자 무덤이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여기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홀의 한쪽 벽에 작은 문이 하나 나 있는 게 보였다. 저 문이 용부대피소의 출구인지는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저 문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다시 어둠의 경사로를 오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어둠의 경사로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둠을 지나는 것은, 설령 그것이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어둠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용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게 보이는 저 유일한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은 내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은 높이였다. 문을 통과하자 나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폭의 나선형 계단이 위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는 위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 왔는데 그럼에도 나는 계단에 올라서고 말았다. 벽에 빼곡히 적힌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은 이 계단의 수상쩍음을 암시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지배적인 곡선을 따르는 것 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이 계단을 계속 오르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곡선의 지배를 따라 이렇게 계속 위로 올라가다 보면 어쩌면 질식이 아닌 탈출의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때 내가 비록 정신이 나간 상태라 하더라도 어쨌든 탈출은 탈출일 테니 나는 우선 계단을 계속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남현정
작가소개 / 남현정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