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찾아서

[단편소설]

 

 

귀를 찾아서

 

 

이지은

 

 

 

    흰 것들을 볼 때마다 은빈이가 생각난다. 은빈이의 얼굴, 손, 교복 깃. 모든 면에서 너무 단정해서 의아했던 첫인상 때문에 ‘왕과 거지’라는 드라마도 함께 떠오른다. 거지 역을 맡은 배우의 치아 때문에 내내 몰입하지 못한 드라마였다. 얼룩 한 점 없이 하얗게 래미네이트를 한 치아가 빛나서 조금도 연민을 느낄 수 없었던 기억 위로 은빈이의 얼굴이 겹쳐진다.
    선생님은, 내가 누군지 보여요? 은빈이의 목소리가 문득 바람에 섞여 지나간다. 그 순간과 공간으로 나는 속절없이 불려 들어간다. 은빈이가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는 제스처 안에서, 관찰되는 것을 아는 나를 알고 있는 은빈이와, 그것 또한 파악하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포함한 나를 아는 은빈이와, 나와, 은빈이의 겹겹이 관찰하고 관찰 당하는 세계를 그저 응시하는 내가 보인다.
    흰 턱을 괴고 은빈이가 다시 묻는다.

 

    정말 보여요?

 

    커피숍의 통유리 밖으로 외국인들이 싸라기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그들은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두 블록 떨어진 자전거 생산 공장을 향해 가고 있다.
    ㅎ시의 기차역에서 이곳으로 오는 시내버스를 탄 한국인 승객은 나뿐이었다. 이방인들이 버스 안에서 나지막하게 뱉는 먼 곳의 언어는 이해할 수 없어서 오히려 평온하게 들렸다. 누구의 얼굴에서도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이엘츠 시험을 공부하면서 하루 한 편씩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누가 누구인지 헷갈려서 몰두할 수 없었다.
    가끔은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도 잊었다. 표정을 읽고 나면 의도까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 믿음을 넘어서는 방법 중 가장 편한 것이 모호와 무지의 영역 안에 숨는 것이지만, 나는 그조차 서툴렀다.
    저는 사람을 볼 때 귀를 봐요. 사람마다 귀 모양이 달라요. 귓불이 넓은지, 도톰한지, 귓바퀴가 굽었는지, 물결 같은지, 귓구멍에 털이 솟았는지 같은 거요. 은빈이가 그랬다. 저는 트라거스에 구멍이 있어요. 자고 있는데 엄마가 바늘로 찔렀거든요. 여기, 보여요? 은빈이가 가리킨 곳은 오도독뼈 같기도 하고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젖니 같기도 한 부위였다. 살도 뼈도 아닌 것 같았다.
    지나가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귀는 머리카락이나 모자에 덮여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귀를, 유리창이 뚫어지도록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아웃 포커싱 된 장면의 초점이 문득 배경으로 옮겨가듯이, 은빈이가 이방인의 귀 너머로 웃으며 걸어올 것 같아서였다.
    은빈이를 정말 만날 생각이냐고, 그 아이를 오래 보호했던 선생님이 집요하게 물었다. 그녀는 쉰둘의 나이보다 훨씬 오래 산 여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방금 물걸레를 쥐어짠 손을 앞치마에 닦고 난 뒤 그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릇을 만졌다가 의자 등받이에 놓았다가 결국 팔짱을 꼈다. 나는 은빈이가 사라진 뒤 그녀가 했던 절박하고 헌신적인 행동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멀어지는 것에 무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은빈이를 직접 만나서 돌려줄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여러 사람들을 돌려보내 왔을 것이다.
    “나는, 그 애가 아직도 용서가 안 돼요. 아니, 용서라기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입술을 안으로 만 채 잠시 멈췄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나는 그녀의 내면이 영원히 닫혀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기묘하게도 그 모습에서, 가만히 문을 닫던 은빈이가 연상됐다. 그 아이는 자신의 등 뒤에 어떤 문이든 열려 있는 것을 못 견뎠다.
    누가 등을 떠미는 것 같아서요.
    “무서워요. 네, 그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난 그 애, 너무 무섭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기관의 대표를 통해 은빈이의 연락처를 알아봐 주었고, 나는 ㅎ시에 와서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은빈이를 만나면 은빈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방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통과해 지나갔는지 먼저 들려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다음에 작고 따뜻한 발에 대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

 

    치앙마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라를 만났다. 각 방마다 세 개의 이층 침대가 놓인 도미토리였다. 침대 밑 보관함에 배낭을 밀어 넣는 동안 이층 침대의 난간으로 사라가 헬로, 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발갛게 부푼 뺨 때문에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늘 그런 혈색이었다. 지푸라기색 단발머리가 오후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문득 은빈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사라의 귀를 유심히 바라보긴 했어도 짧은 순간이었다. 사라는 지나칠 만큼 환하게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사라는 침대가 나란히 놓인 구조의 좁은 통로를 막은 채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내가 세면도구를 꺼내느라 다시 배낭을 열고 지퍼를 잠그고 보관함에 자물쇠를 채우는 모든 과정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가진 돈으로 몇 달,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내키는 대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기온이 점점 달아오르는 방향으로.
    나는 뜨거운 나라를 좋아한다. 볕에 그을리는 동안에는 마음이 그저 단순해지다가 이윽고 사라져 버린다. 몸에서 많은 것이 저절로 빠져나가 버린 뒤 거대한 소금 결정체가 될 때까지 몸을 태우는 맛이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날부터 나는 내내 게스트하우스 안에만 머물렀다. 아무런 욕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식당을 겸한 리셉션에 놓인 파란색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차곡차곡 접어 날려 보냈다. 첫날과 이튿날은 스콜이 쏟아져서, 그다음 이틀은 햇볕이 너무 강해서, 그다음 날들은 그저 이런 자세가 익숙해서라고, 슬슬 걱정하며 주위를 맴도는 스태프들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그 외에 눈인사를 나누는 타인은 사라밖에 없었다. 언제나 사라가 먼저 다가왔다. 선데이마켓에서 사왔다면서 작은 드라이플라워 다발을 건네기도 하고, 캔 맥주나 포장된 팟타이 같은 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릴 때도 있었다.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겐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바람이 불 때 그 바람 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어디론가 내 몸이 옮겨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완전히 텅 비어 있는 세계로, 내 뒤의 문을 닫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동물원에 가자고 한 것도 사라였다. 마음이 복잡할 때 동물을 바라보는 것만 한 위안이 없다고 했다. 본능 이외의 것을 욕망하지 않는 방식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내 마음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인간의 삶을 유추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미스 리, 이렇게 지내다가 당신은 곧 돌이 되고 말 거야.”
    사라는 웃음기가 조금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표정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돌이라고?”
    “내가 코스타리카를 여행할 때 말이야, 정말로 돌이 된 여행자가 있었어. 마흔이 조금 넘은 미국인이었는데, 아내와 이혼하고 머리를 비우려고 여행을 왔다고 했지. 그 남자도 꼭 너처럼 말없이 벤치에 앉아만 있었어.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숙소에 있는 늙은 고양이랑 가끔 눈을 마주치는 게 전부였는데, 둘 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곤 했어. 마치 서로를 깊이 이해한다는 듯. 이상하게 나는 그 남자가 너무 신경이 쓰였어.”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 모서리에 담배로 여러 번 지져 꺼칠해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 자국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비볐다. 내가 닳아서 없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아무 일이 없으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잖아. 고요함이 곧 복선이지.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 때의 일이야. 달이 엄청 환해서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숙소 밖으로 나왔더니 글쎄,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아?”
    스태프들이 의자를 정리하다 말고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의 몸짓이나 톤은 외국인치고도 과해 보일 만큼 어딘가 어긋난 데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잘 보였다. 그래서 늘 외로운 건지도 몰랐다. 사라는 자신에게 집중된 눈길을 잠시 즐긴 뒤에 입을 열었다.
    “그 남자가 늘 앉아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
    “오!”
    스태프들이 웃으면서 장단을 맞춰 주었다. 나는 모든 말들이 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내가 조금쯤 닳은 것 같기도 했다.
    “그 돌, 달빛에 어찌나 새하얗게 빛나던지 잊을 수가 없어. 코스타리카에는 그렇게 한 번씩 돌이 되는 여행자들이 있대. 흔들어도, 깨워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이미 돌이 되어버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면 희고 거대한 돌산이 있어. 난 거기서 그 여행자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지.”
    “그렇게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오래된 비문처럼, 아무도 나를 읽을 수 없도록.
    사라는 내 어깨를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뭐야, 벌써 돌이 된 건 아니지? 하며 재미있다는 듯 혼자 웃었다. 그런 뒤, 동물원에 가자고 다시 제안했다.
    사라는 그전에도 야시장이며 사원들에 나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북적이는 곳이 싫다는 이유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월요일의 동물원이 얼마나 적막에 가까운 곳인지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스태프들도 우리를 부추겼다. 돌이 되면 안 돼, 안 돼! 그들은 손을 내저으며 그랩 택시를 불러 주었다.
    은빈이도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한참 졸라댔었다. 센터에는 일 년 단위의 주말 행사가 계획된 상태였고, 동물원 견학은 예정에 없었다. 하지만 은빈이는 나와 둘이 가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거든요. 가족이랑 같이 동물원에 가서 풍선을 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하마나 사자 같은 걸 보면서 이야기하는 거요. 영화 보면, 회전목마 타면서 웃는 어린이나 잔디밭에서 풍선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찍은 홈 비디오 같은 게 나오잖아요. 저한테는 동물원이 그런 느낌이거든요. 은빈이는 집요했다. 그런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끝에는 언제나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죽을걸. 나는 아마 그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라가 멘 작은 보조 가방에는 비닐봉지에 하나씩 싸인 양파가 들어 있었다. 기린은 심장과 머리 사이가 가장 멀리 떨어진 동물이어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양파를 내밀면 본능적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머리와 가슴이 멀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비폭력대화법의 상징이 되었다는 기린이 양파 냄새를 풍기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미스 리, 스웨덴에 가본 적 있어?”
    사라가 비닐을 구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사라는 왠지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웨덴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인데. 다음에 우리나라에 꼭 초대할게. 놀러 와.”
    그 순간, 기린이 둥글게 목을 구부린 채 사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그 말에 담긴 진의를 깊은 데서부터 퍼 올릴 것처럼. 사라가 기린을 향해 활짝 펼친 두 손바닥을 높이 들고 양파가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무심결에 자신의 모국어인 듯한 언어로 무슨 말인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호수의 먼 곳에서부터 단숨에 불어오는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월요일의 동물원은 사라 말대로 그저 적막했다. 동물들은 사라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가끔 커다란 새들이 나무에 내려앉아 깃을 터는 소리만 들려왔다. 흙과 빗물, 재 냄새 같은 것이 풍기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고수가 들어간 오리고기 국수를 시켰다. 사라는 땀을 흘리며 젓가락으로 노란 면발을 집어 올리다가 번번이 실패했고 그때마다 웃었다. 식당 사장이 사라에게 포크를 갖다 주었다.
    하지만 사라는 눈으로 내 젓가락질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포크를 쥐지 않은 손으로 그것을 따라했다. 그러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불쑥 손을 내밀어, 내 손가락 마디의 연골이나 근육 따위를 확인하듯 어루만졌다.
    “손이 작고 예뻐. 이런 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걸 보고 있으면 네가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라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고 손등에는 가늘고 금빛을 띤 잔털이 많았다. 손에 들린 포크 날이 내 눈을 찌를 것 같았다.
    “난 주로 사람의 손을 보거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 손을 만져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사라가 손을 빌미로 나의 궤적을 짐작하기 전에 나는 귀 이야기를 했다. 할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었다. 사람을 마주 보기 불편할 때나 표정을 읽고 싶지 않을 때마다 어떤 아이가 알려준 대로 귀를 보기 시작했다고. 연기자들은 애정 신을 찍을 때나 웃음을 참아야 할 때 미간이나 인중을 보면서 집중하는데, 그런 부위보다 얼굴에 부록처럼 달린 부위를 보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은빈이를 생각했다. 사라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거듭 말하며 주술을 걸듯이 자신의 손바닥을 몇 번 뒤집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식당 주인의 아들인 리키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사라와 나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는데 창밖만 바라보는 나와 달리 사라는 계속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리키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는데도 사라는 개의치 않고 말을 쏟아냈다. 자신이 아는 작은 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키는 조심스럽게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라디오 진행자는 띄엄띄엄 놓인 허들을 향해 달려가 하나씩 단번에 뛰어넘는 듯한 리듬으로 말을 했고, 사라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다가 사라졌다.
    사라는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나는 스웨덴 사람을 처음 만나 보았고 그곳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막연한 나라였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라와 어떤 거리를 둘 수 있는지도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왜 자꾸 나한테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느냐고 물어보는 거야? 만나는 한국인마다 그런 소릴 하던데. 오래전 핀란드에서 온 여행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작나무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있을 때만 핀란드는 핀란드여서 그럴 거라고 말했다.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 눈이나, 그 위를 날아가는 검은 새와 같은 것은 우리 사이에 없다는 것. 그러니 그것은 그저 하나의 정서적 국경이 아니었을까. 깊어질 일이 없는, 안전하고 식상한 간격으로서.
    사라는 밤마다 내 침대 귀퉁이에 앉아 질문을 퍼부었다.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여행 경비나 다음 여정 같은 것에 대해 파고들었다. 경비가 부족하면 자신이 좀 보태 줄 수 있다고 했다. 사라의 지갑에는 여러 장의 국제현금카드와 사라가 거쳐 온 나라들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사라는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금발머리에 통통한 볼을 가진 여자 아이였다. 쿠키 따위를 먹다 말고 카메라를 보았는지 조그만 입술 주변에 부스러기가 붙은 채였다. 아이는 표정이 없었지만 그 아이를 뒤에서 안은 사라만은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고 사라는 말했다.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살아 있는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혼자서는 잠이 들 수 없어 여러 여행자들이 함께 묵는 도미토리 숙소만 고른다며, 아이를 외롭게 했던 벌로 이제 자신이 더 외로워졌다고 말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라가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다시 사방이 고요해졌을 때 나는 그저 남쪽으로 가는 것 외에 내게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점점 뜨거운 곳으로, 소금이 되는 기분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나를 찾아온 기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만 했다. 은빈 양의 휴대폰이 꺼진 마지막 지점이 이곳이라는데, 아는 것이 없으십니까? 정말 없으세요? 하임리히 기술을 써서 기도를 막은 사과 씨앗을 막 올려 보내듯 불가항력으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아이 씨―. 그때 내려앉던 정적과, 기자들의 얼굴에 떠오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물속에 오래 가라앉아 있던 작은 짐승의 사체가 서서히 떠오를 때처럼 그들의 피부 바깥으로 올라오던 확신의 부력. 모른다고요, 씨― 그만 좀― 씨, 괴롭히세요. 그 정도까지만 뱉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표정을 내가 볼 수 없을 텐데도 다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욕을 하는 사람들을 안다. 들여다보면, 거기 작은 상자가 하나 있는 게 보인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다. 열지 말라는 마음과 열라는 마음이 들여다보는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가.
    하지만 그 감각을 모국어로 정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적어도 다른 언어 속에서는 욕이 도지지 않았다. 뇌의 검은 방에 빛을 비추고 오래된 낱말카드들이 들어 있는 서랍을 연다. 먼지를 훅 불고 카드들을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한다. 그 방은 자주 쓰지 않아 예전보다 작아져 있다. 의자 하나를 놓으면 방이 꽉 찬다. 나는 바깥을 향하는 감각들을 모두 끈 채 뇌 속의 작고 검은 방에 놓인 의자 하나에 앉아 외국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고, 사라지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는 적막에 이를 때까지.

 

    동물원에 다녀온 며칠 후 저녁, 사라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짐을 싸서 숙소를 옮겼다.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사라가 나를 찾아왔다. 숙소를 옮긴 다음날 아침이었다. 사라의 귀는 귓불이 두툼하고 늘어진 형태였다. 맞은편 이층 침대의 아래 칸에서 커튼을 걷으며 하이, 하고 인사한 건 분명 그런 귀를 가진 사라였다.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 땀이 번질거렸다. 입 꼬리가 올라가 광대뼈가 도드라졌지만 회색 눈동자는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라가 말했다.
    “너 이걸 두고 갔어. 내가 너한테 이거 찾아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니? 너는 정말 나를…….”
    사라가 말을 삼켰다. 마치 말이 실제 덩어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꿀꺽 소리를 내며 삼킨 탓에 나도 같이 입을 다물었다.
    사라가 내게 건넨 것은 다이어리였다. 표지에는 푸른 초승달이 청보리밭을 비추고 있고 다 자란 보리만 한 아이가 등을 보인 채 서서 달을 올려다본다. 빨간 고깔모자에 멜빵 청치마 차림이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아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마주 볼 것만 같은 그림이다. 다이어리의 구석에 ‘세영’이라고 써놓은 반듯한 글자가 보인다. 독서등이 붙어 있는 선반에 올려 두었던 것이다. 이전 숙소에 머물면서 몇 장만 넘겨 보았다. 그러나 넘겨 본 쪽들은 모두 여백뿐이었다. 더 볼 마음이 올라오지 않아 버리듯 두고 온 것인데 사라에게는 나를 찾아올 이유가 되었다. 헨젤이 숲 속에 던져 놓은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부리 큰 새처럼, 한 점 한 점씩 사라가 나를 쪼아 먹으며 내 속으로 성큼 들어오는 것 같았다.
    허락도 없이, 나의 미로 속으로.
    그 다이어리는 은빈이가 실종되던 날 내게 남긴 유일한 것이었다.

 

    그날 나는 날씨 때문에 봉사자들과 아이들을 평소보다 일찍 돌려보낸 뒤 센터에 남아 뒷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이었다.
    은빈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비 퍼붓기 전에 가지 그러니?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데.”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날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힘주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 책 빌려가도 돼.”
    “괜찮아요.”
    은빈이가 읽고 있던 책을 바로 덮었다. 어디서 바람이 새는지 연필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등을 돌린 채 창가 아래에 흩날린 벤자민 잎들을 주웠다. 은빈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긴 침묵 속에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점점 거세어졌다. 작년에는 헐거워진 창틀에서 유리창이 통째로 날아가 학습실 책상 위에 쏟아졌다고 했다. 이번 바람도 심상치 않았다. 유리창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투명한 필름을 붙이면서 나는 은빈이가 이제 좀 돌아가 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공립 아동센터에 복지사로 온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아동심리학 공부를 미뤄 두고 2년만 실전 경험을 쌓을 생각으로 지원한 일이었고 첫 직장이었다. 당시 은빈이는 근처 여고 2학년인 아이였는데 꾸준히 방과 후 멘토링 봉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보얗게 맑은 얼굴에 예쁘장했고 아이들이 누나, 언니 하며 잘 따랐다. 은빈이가 나보다 아이들을 오래 봐와서 아이들 각각의 성격이나 환경을 더 잘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해, 명훈이라는 아홉 살 난 아이가 조리실에서 부엌칼을 들고 나와 구피 어항 속을 푹푹 찔러댔을 때 명훈이를 말린 것도 내가 아니라 은빈이였다. 나는 명훈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내 눈에는 번득이는 칼날만이 보였다.
    “명훈이 아빠가 좀 폭력적이에요. 칼이 눈에 안 띄게 잘 숨기셔야 해요. 가끔 포크로 친구들 찌르니까 그것도 조심하시구요. 명훈이 같은 애들은 항상 마음에 화가 가득하거든요.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거예요.”
    센터장이 은빈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리자, 은빈이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죽은 구피 몇 마리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종이컵에 담았다. 은빈이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내 손에 들린 종이컵을 조심스럽게 가져가더니 변기에 구피들을 붓고 물을 내렸다.
    센터장을 비롯해 복지사들은 모두 은빈이를 아꼈다. 은빈이에게는 스토리가 있었다. 은빈이의 보호자는 그 아이에게 버스 티켓 한 장을 끊어 주며 ㄷ시의 시설에 가서 살라고 했다. 보호자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가정에서 분리된 청소년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었다. 은빈이가 알려준 주소나 연락처로는 보호자와 연락이 일절 닿지 않았고 은빈이도 가정으로는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은빈이는 열여섯의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그 아이는 좌절하지 않고 스펀지 같은 학습 능력을 발휘해 명문 고등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시설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된 은빈이에게 선생님들의 신뢰와 사랑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자해와 가출이 반복되는 그곳에서 은빈이는 유독 어른스러웠고 단정하며 총명했다. 불행한 출생, 그럼에도 뛰어난 능력,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조력자를 만나 결국 성공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은빈이와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아이 같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소년이 되었다가 어른이 되는지 지켜본 적이 있었다. 웃을 때 웃는 얼굴의 꺼풀 뒤에 시멘트를 겹겹이 바른 듯 벽이 보이는 사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가만히 바닥을 응시하는 눈빛을 가진 사람. 그는 결국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범이 되었다. 그는 고시원에서 세 남자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와 유년을 보낸 친구들은 대개 그 남자애를 평이한 인상으로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럴 리가 없다고,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내면에 어둠의 씨앗 같은 것이 심겨 있었다 해도 적어도 우리가 그것에 물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안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여자친구였다. 내가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노숙자의 뺨을 때리는 것에 몰두해 있던 그 소년의 뒷모습과, 내 머리카락 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던 순간과, 죽은 새의 눈알이나 쥐의 발가락 같은 걸 꼭 쥐고 무심한 눈으로 서 있던 것이 잊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두에게 영악할 만큼 친절했고 그 이상으로 사랑 받았다. 나만 그의 그늘을 보았다. 다들 내가 예민한 거라고 웃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 욕을 하며 견뎠다. 이름을 바꾸고 먼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다.
    은빈이는 다른 아이들과 결이 달랐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불이 꺼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을 것 같은 태연한 힘이 있었다. 은빈이는 살갑게 대하지 않는 나를 의식하고 유독 내 눈치를 보았다. 내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 했다. 나는 그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더 큰 욕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체스를 두는 사람이 가진, 한 수 너머를 읽으려는 힘에 가까웠다.
    은빈이는 나를 힐끔거리다 눈이 마주치면 덤덤한 듯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간식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앉는 순서를 공들여 정해 준 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내가 땅콩 껍질을 까면 은빈이가 어느새 자신이 까놓은 누런 알맹이들을 접시 위에 조르르 옮겨 놓았고 딸기 과즙이 내 입가에 흐르기도 전에 티슈를 뽑아서 내밀었다. 나는 그 모든 게 불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조금씩 죽인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라를 등지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갑자기 사라가 다가와 날개뼈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위를 쓰다듬었다. 뱀이 몸을 스쳐간 것 같았다. 사라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서야, 여행을 떠나오기 직전에 피가 맺히도록 긁어대던 부위라는 게 기억났다.
    사라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냐고 자꾸 물었다. 사라의 몸에서는 옷장 안에서 여러 계절 동안 접혀 있던 옷과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런 감각을 떠올리다 보면 숨을 내뱉는 박자가 어색해졌다. 소고기뭇국을 먹다 육질 사이에 낀 고름 같은 지방덩어리를 본 뒤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던 때처럼, 기호를 결정해 버리는 사소한 순간들이 누적되었다.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꺼냈다. 초승달과 보리밭과 여자 아이의 뒷모습을 의식처럼 한참 바라본 뒤 표지를 넘겼다. 한 해의 달력이 모두 나와 있는 쪽을 넘기면 월별 스케줄을 정리하는 장이 나와야 하지만 은빈이는 열두 장을 모두 뜯어내고 메모장만 남겨 놓았고 세 장째까지는 아무것도 적어 놓지 않았다. 다이어리의 중간 즈음에 노란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 적나라함 때문에 나는 그 장을 열어 보지 못했다. 몰래 국경을 넘어가는 일보다 더한 경계를 넘어서는 일처럼 여겨졌다.
    “비가 와.”
    사라가 혼잣말을 했다. 소리만으로도 빗줄기의 굵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콩을 톡톡 던지는 듯한 소리에서 순식간에 호두를 철판 위에 쏟아 붓듯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라가 창문을 열고 팔을 길게 뻗어 담뱃재를 털었다. 바람이 불어와 다이어리를 넘겼다. 나는 은빈이가 실종되던 날로 떠내려갔다.

 

    “비 냄새가 나요.”
    은빈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밖이 뿌예졌다. 거리의 모래와 잔돌 들이 바람을 타고 둥글게 날아올랐다. 정리가 끝났어도 당분간은 비바람이 멎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퇴근하는 길에 데려다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해도 은빈이는 화장실에 가거나 책을 고르면서 뭉그적거렸다. 결국 은빈이와 나만 센터에 남았다.
    나는 녹차를 우려 은빈이에게 한 잔을 건넸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으로 살아 보고 싶었던 적 없으세요? 이름을 바꾸거나, 이민을 가거나 해서라도요.”
    센터 아이들에 대해 깊이 없는 대화를 하던 끝에 은빈이가 맑은 연둣빛의 차를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나는 그 맥락 없는 맥락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누가 뺨을 갈기듯 번쩍하는 느낌이 들더니 곧 천둥이 울렸다.
    네가 뭘 알아. 갑자기 욕이 터질 것 같았다. 목구멍까지 욕이 밀려 올라왔다. 나는 계속 침을 삼켰다.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뇌 속의 검은 방은 눈을 감아야 열 수 있었으므로 어서 은빈이를 돌려보내야 했다.
    “한 사람으로 평생을 사는 건 지겹잖아요. 억울하기도 하고. 안 그래요?”
    나는 찻잔 고리를 쥔 은빈이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다른 한 손을 펴면서, 작은 눈알 같은 것을 내게 불쑥 내밀 것만 같았다.
    “글쎄. 새로운 사람으로 살게 되더라도 지리멸렬한 순간은 반드시 오게 될 거야.”
    나는 아무런 의도를 담지 않은 채 대답해 주었다.
    “누구로 살든, 어떻게 살든 말이죠?”
    그럼, 이건 다 의미가 없나 하고 은빈이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차를 홀짝였다.
    “얼마 전 조리사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나물을 제대로 데칠 줄을 몰라요. 간장 맛만 나요. 절에서 공양보살님으로 계시다가 왔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저 요즘 채식하잖아요.”
    나는 은빈이가 갑작스럽게 시작한 채식에 관해 물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은빈이는 언제나 상대가 문장의 끝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대화법을 알고 있었다. 노련하지만 은근한 강요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들이 공중으로 풀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이 모든 것이 연극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로하기만 했다.
    은빈이는 센터장과 복지사 선생님들, 시설 관리자들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그들의 말투나 웃음소리를 따라하기도 했고, 장점과 단점을 치밀하게 분석해 나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떤 식으로든 대화에 참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근데, 제가 아는 모든 어른들한테 있는데 선생님한테만 없는 게 뭔지 알아요?”
    마침내 그 아이는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없는 것. 그 많은 것들 중에 은빈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디까지 볼 수 있는 아이인지 몰랐다.
    “모르지.”
    나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은빈이는 내가 더 물어보지 않을 걸 알면서도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연민이 없다는 거요.”
    “연민?”
    “네. 연민이 없어서 좋아요.”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벽을 때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날개들이 바로 뒤에서 세차게 돌아가는 것처럼 압축된 공기의 힘이 회오리쳤다.
    은빈이는 매주 금요일 오후와 행사가 있는 주말에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 교대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이 자기소개서에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내역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모두 은빈이가 교대 진학을 꿈꾸고 있다고 짐작했다.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은빈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해 하지 않는 내게만은 작은 목소리로, 전 명문대가 아니면 안 갈 거예요, 하고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세 번의 계절을 보내면서도 나는 은빈이와 딱히 가까워지지 않았다. 잔일이 많아 종종 가장 늦게 센터를 떠나곤 했는데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은빈이가 내 퇴근시간에 맞춰 건물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시설 밥이 형편없다거나, 밉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날에는 시설 문 앞까지 태워 주기도 했다. 백미러로 은빈이가 내 차의 후미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게시판의 사진들을 괜히 정리했다. 녹색 부직포가 깔린 게시판에는 아이들 사진이 핀에 꽂혀 있었다. 밥을 먹는 모습, 월별 생일파티를 하는 모습, 소풍과 운동회, 연극 관람과 양로원 견학 장면 등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의 사진마다 은빈이가 웃고 있었다.
    “선생님, 있잖아요…….”
    “여기 사진에 너 아주 어른스럽게 나왔어.”
    나는 아무 사진이나 가리키며 말을 끊었다. 짚고 보니 은빈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에게 수제 브라우니 만들기 수업을 해주던 때의 사진이었다. 잠시 주춤하던 은빈이가 어디요? 하며 다가와 사진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진 너머의 것을 보고 있는 마냥 긴 시간이 지난 뒤에 은빈이가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물어보았다.
    “어느 정도로요?”
    “뭐가?”
    “어느 정도로 어른스럽게 보여요? 그러니까, 몇 살쯤으로 보여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사진 속의 은빈이를 뚫어져라 보았다. 은빈이도 자기 얼굴을 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수배 전단에 찍힌 낯선 사람을 보며 죄목과 관상을 연결 지으려는 것처럼.
    “글쎄, 한 스물셋? 혹은 넷쯤? 대학생처럼 나왔네.”
    은빈이의 얼굴이 고요한 속도로 굳었다. 은빈이는 차를 마시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식은 녹차를 몇 모금 마시다 말고 찻잔을 내려놓더니,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번득, 뭔가가 지나간 눈빛으로 말했다.
    “계속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선생님은…….”
    나는 침을 삼켰다.
    “내가 누군지 보여요?”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은빈이는 여전히 턱을 괸 채 나를 올려보았다. 그때의 은빈이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욕이 태풍의 눈으로 돋아나지 않도록, 시선을 피해 창문을 다시 점검하는 척했다. 창에 손바닥을 대면 바람의 힘이 묵직하게 닿았다.
    더 이상 바람소리라고 부를 것은 없었다. 빗물이 세계를 뒤집을 듯이 쏟아졌다.
    “정말, 보여요?”
    나는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은빈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은빈이가 앉았던 방석 가까이 다이어리가 하나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일대가 정전이 되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가라앉은 채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어둠에도 중력이 있는 줄을, 그날 처음 알았다.
    보호기관에서 은빈이의 실종신고를 한 것은 같은 날 자정이었다. 은빈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고 학생들과 선생님, 은빈이를 보호하던 시설의 담당자들이 모두 나서서 전단지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었다. 시설 주변에 살던 전과자들이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기자들과 경찰들이 자꾸 나를 찾아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등 뒤에서 은빈이가 비명을 지르는데 나는 몸이 굳어 돌아볼 수 없는 꿈. 창밖으로 나무들이 날아가고 어둠이 무겁게 쏟아져 내리는 꿈.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어.”
    사라의 그 말은 확실히 내 주의를 끌었다. 나는 라임 주스가 든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농도 짙은 신맛의 주스가 빈속으로 스며들었다. 한낮의 볕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사라와 내 몸을 데웠다. 사라는 내가 혼자 앉아 있도록 두지 않았다.
    나는 사라의 축축한 손바닥을 펼쳐 바짝 말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손이 말라 부서지는 걸 보고 싶었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었어. 맑고 따뜻한, 대낮. 이런 날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 못 했지. 뒷산에서였어. 딱히 멋진 구석도 없고 사람들이 가지 않아 수풀이 우거진 곳.”
    나는 턱을 괴고 사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그곳을 좋아했거든. 그날도 샌드위치와 물을 챙겨서 등산을 하고 있었지. 한참 올라갔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나는 거야. 그것도 아주 절박한 인기척이. 옆길로 새서 가보니 한 사내가 목을 매달고 발버둥치고 있었어. 머리가 검고 몸이 아주 마른 남자였어. 발 아래에는 술병들……. 발로 찼는지 조립식 의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 쓰러진 채였고.”
    의자를 들고 산을 오르는 남자가 떠올랐다. 오로지 죽겠다는 맹렬한 의지만 가지고 땀을 흘리며 걸음을 딛는 머리가 검은 남자.
    “죽는 순간에도 단계가 있잖아. 본능적으로 거부하다가 체념이나 수용에 이르는 과정들이. 남자는 자신이 그런 과정도 없이 단순하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 나는 조립식 의자를 가져와서 남자의 발밑에 대려고 했어. 하지만 그 의자는 이미 망가진 채였지. 내겐 칼이 없었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이고 내 등을 갖다 댔어.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 등에 닿은 남자의 발은, 참 작고 따뜻하더라.”
    나는 내 등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뒷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사라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남자가 힘겹게 말했어.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죽음이라고. 자신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으며 숲에서 썩어 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거였어. 오래 전부터 남자는 조류 시장에서 새를 사서 이 숲에 놓아 주곤 했대. 새들만이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건 남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남자가 잠시 진정한 건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힘을 모으기 위해서였어. 남자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밀어냈지.”
    그렇게 죽었어. 내가 죽인 거야. 사라는 구원을 바라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허리를 숙일 때마다 내 등에 닿던 그 발바닥의 감촉이 떠올라. 리, 당신도 이제 그 발을 잊지 못하게 될 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발을 나눠 갖게 되거든. 미안해.”
    사라가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문질렀다. 땀이 흥건하게 묻었다. 나는 그 자국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내일 이곳을 떠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그뿐이었다.

 

    은빈이의 소재가 파악된 것은 실종된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난 뒤였다. 은빈이는 ㅎ시에 살고 있던 스물세 살의 여자였다는 것도 그때서야 밝혀졌다. 학대 받거나 버림받은 아이도 아니었다. 은빈이의 부모는 공단의 근로자 식당에 식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하며 지나칠 만큼 바쁘게 살고 있었고, 딸이 지방 대학에 잘 다니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뉴스를 보고 은빈이의 소재를 경찰에 알려준 사람은 자전거 공장에 다니는 외국인 근로자였다. 그는 한국인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구별하기 어렵지만 김세영의 얼굴만은 너무 하얘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은빈이의 본명이 김세영이었다.
    그 아이는 그저 다른 삶을 시작해 보고 싶어서 자작극을 꾸몄다고, 특이한 사건들을 취재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차분하게 말했다. 침착하고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뻤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기도 했다. 심리학과 교수와 정신과 의사가 은빈이의 상태를 분석했다. 그러나 수치와 통계와 카테고리가 있다고 해서, 은빈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사람은 그 너머에 있으니까.
    방송에 나오는 어떤 사람도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실체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조차 나 같지 않았다. 모른다는 말을 반복하는 내 목소리는 변조되어 나왔다. 아무것도 몰라요. 모른다고요, 삐―그만 좀, 삐―괴롭히세요. 공개 실종자에서 일반인으로 신분이 달라진 은빈이의 얼굴은 더 이상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 넣고 다니던 실종자 전단을 꺼내, 은빈이의 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외모의 특징을 알려달라는 인쇄 업체의 요구에 나는 트라거스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말했다. 그 문구는 현수막에도 전단지에도 인쇄되지 않았다. 전단지 속 은빈이의 하얀 귀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 보였다.
    은빈이는 대학 입학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홀연히 사라진 이유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인터뷰 맨 마지막에 갑자기 내 이름을 말했다. 가명 처리가 되었지만 나는 그걸 알아들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 선생님뿐이라고, 꼭 자신을 찾아오라며 중얼거리듯 뱉었는데 울음이 섞여들었다. 나는 그 순간 미친 듯이 웃었다. 웃다가 숨이 넘어갈 것 같더니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웃어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큰 착각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은 멀고도 황량해서, 그 사막 같은 공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깊이를 생각하면 아찔해졌다.

 

    내가 치앙마이를 떠나기로 한 날 새벽, 사라는 나의 여권과 100바트 한 장만을 침대에 올려 둔 채 내 모든 소지품을 훔쳐 달아났다. 숙소의 주인은 스웨덴 사람이 머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라라는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사라의 지푸라기색 머리와 붉은 뺨과 귀 모양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설명할수록 사라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스태프는 한쪽 눈썹을 올리더니 모른다는 말만 퉁명스럽게 뱉었다. 나는 사라를 처음 만났던 도미토리를 찾아갔다. 카운터를 지키던 스태프는 영문을 모른 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는 체크인을 할 때 여권을 복사해 둔 서류 더미에서 투야민 지브예바라는 여자를 찾아냈다.
    그녀는 러시아 사람이었다.   

 

*

 

    은빈이의 다이어리에는 끝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많은 소리들을 이미 들어버린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 다이어리를 올려 두고, ‘세영’이라는 글자를 냅킨 한 장으로 덮었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지나간 뒤 거리는 텅 비었다. 멀리, 눈이 얇게 한 겹 쌓인 보도블록 위에서 은빈이가, 아니 김세영이라는 이름의 얼굴이 하얀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다가 이윽고 발을 뗐다. 커피숍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고 있는 저 여자가 누구인지 문득 아득하고 막막해졌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고 흰 귀를 가진 어떤 여자를 내가 만나 본 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

 

 

 

 

 

 

 

 

 

 

이지은
작가소개 / 이지은

2021년 《강원일보》, 《부산일보》 소설 당선.
한낙원과학소설상·KB창작동화제 최우수상·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하였으며, 펴낸 책으로 『고조를 찾아서』(공저)가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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