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피로연과 모양막 외 1편

[신작시]

 

 

빛과 피로연과 모양막

 

 

김민식

 

 

 

    수족관이 우리를 따라온다

 

    가이유칸에 다녀온 뒤로 소요는 중얼거렸다

 

    흰 방 안에 빈 상자가 놓여 있다
    관람객들은 그것이 비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얻었고

 

    그것은 수조나 여과 시스템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갤러리를 빠져나오자 〈수리중〉 팻말이 보였다

 

    팔짱을 낀 사람들은
    위를 올려다볼 때도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끊어진 진주목걸이를 찾기 위해
    수리공들이 에스컬레이터를 분해하고 있었다
    검고 주름진 계단이 한 칸씩
    대리석 바닥 위에 놓여지고

 

    우리는 걸어서 백화점을 내려가기로 한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그 기억 속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공간에 내가 외워야 할 것들을 하나씩 배치하는 겁니다. 기억 속 궁전의 입구에서부터 가장 깊은 곳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순서대로 진열하고 외워 보세요.”

 

    소요의 기억 속에는 물과 물이 너무 많아서
    입구와 심층을 구분할 수 없었다
    둥둥 떠다니는 흰 상자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백화점을 휘감은 유리통로를 내려오는 동안
    나와 소요는 투명한 통로가 꼭 해저터널 같다고 생각했다
    물고기들의 입장에서
    해저터널은 누운 기둥처럼 보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물속에서 불타는 나무를 목도한다면
    우리 돌아오지 말자
    그냥 그곳에 있자

 

    함부로 기억하거나 잊을 수 없게 타오르는 눈으로.

 

    짓눌려 터진 뱀의 몸에서 밀려 나온 하얀 알들이
    다시 부화해서 어두컴컴한 바퀴 밑으로 기어간다

 

    뜯긴 진주알들이 다시 줄에 꿰이는 동안
    우리는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목서가 보내 온 종이상자를 열어 보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가 가득 차 있었다

 

 

 

 

 

 

 

 

 

 

피로연

 

 

 

 

    그날 목서는 무대 위에서 울지 못했고, 울지 못했던 걸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불타는 나무 앞에서 숲의 귀신과 약혼할 때 눈물이 나올 줄만 알았어. 근데 얼음 생각만 나더라. 불타는 나무 속에서 빛나는 하얀 얼음…”

 

    냉면이 미지근해지는 동안 목서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둥근 식탁보가 거무튀튀하게 젖고 있었다

 

    나는 목서에게 어떻게 얼음이 녹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불은 주황색 부직포, 얼음은 투명한 사각 전구라고 목서가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불타는 나무 앞에서의 일을 생각하면서, 꼭 필요할 때마다 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을 거야

 

    나와 목서는 옥상정원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래층에서 올려다본 에스컬레이터 수리 현장은 톱에 베인 살점 같았고

 

    누군가 우리를 위쪽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민식
작가소개 / 김민식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palinodia7@gmail.com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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